이사 추진 포기, 집안 환경개선 사업 추진

졸업시즌이다. 트럭을 하고 다니면서 아무 걱정 없는 표정으로 소리 지르며 흥에 가득차 춤을 추고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졸업을 자축하는 그들을 보면 미래의 하나를 보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나도 손을 마주 흔들며 축하의 인사를 날린다.

졸업시즌은 한해 중 해가 가장 긴 하지를 지나면서 바로 시작되는데 이 때의 저녁 아홉시가 어찌나 좋은지. 테라스에 앉아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와 뺨을 간질이는 바람을 즐기며 앉아서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하거나 지금처럼 블로그를 쓸 수 있는데 그 순간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사실 내 삶이 특별히 큰 이벤트로 가득차있지 않은데 감사할 일이 많은 것을 느낄 때면 나이가 예전보다 조금 더 들었기 떄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듬성듬성한 화분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가꾸기로 마음을 먹고 꽃들 사이 큰 빈공간에 제라늄을 심었다. 왜 우리 집에는 보라색 꽃만 있고 옆집 할머니가 갖고 있는 분홍색 꽃은 없냐고 묻는 하나의 말에, 그럼 우리도 분홍색 꽃을 심을까 하고 물었더니 너무나 기뻐하더라. 수국을 심었다가 바람에 꺾였던 기억에 제라늄이 잘 버틸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몇년 째 같은 제라늄을 잘 키우시고 계신 옆집 할머니를 보며 화분 네개를 들여 옮겨 심었다.

여러가지 우리가 내거는 조건에 딱 맞는 집을 찾기가 어려운 것도 있고 우리가 살고 싶은 곳에 집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도 있어서 고민을 하다가 집 찾기를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 대신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옌스가 살던 집에 내가 들어오고, 하나가 태어나며 니즈가 꾸준히 변했는데 크게 물건을 정리하고나 수납 방식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지 않았던 게 쌓이고 쌓여 불편함이 커진 게 이사를 꿈꾸게 만든 이유였다. 그래서 그 이유를 없애지 않고는 이 집 생활이 더이상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아 변화가 필요했다.

우리 옆집에 할머니가 여기서 애를 낳아 길러 독립을 시키시고 그 장성한 아들이 옌스랑 비슷한 나이일만큼 오래 사셨으니 애 하나에 못살 집은 아니렸다. 애가 십대때 충분한 사생활을 보장해줄 수 없음에 불편함을 다소 느끼신 거 외엔 큰 불편함이 없으셨다는데, 삼십평 집에 세식구 못산다 하면 사실 배부른 소리가 맞다. 그러니 이 집을 잘 아끼고 가꿔서 써야하겠다 싶었다.

지난 주말과 평일 저녁을 할애해서 많은 물건을 정리했다. 그간 불편함을 느꼈던 부분들을 크게 개선했고 휴가때 할 일들을 리스트업해서 그때 사용할 자재들을 주문해서 일부는 도착하고 일부는 기다리고 있다. 가장 큰 프로젝트는 베란다 마루를 물청소하고 사포질해서 오일처리하는 일이다. 사흘에 걸쳐 할 일인데 이게 끝나면 수납을 위해 사용하던 플라스틱 상자들을 처분하고 벤치처럼 앉을 수 있난 야외 가구형 수납가구를 들일 계획이다. 그리고 셔츠와 같은 빨래를 널기 위해 쓰던 옷걸이를 정리하고자 한 벽에 설치하고 필요할 때마다 댕겨서 반대편 벽에 걸어 쓸 수 있는 옷걸이를 샀다. 이제 드릴질 해서 설치할 일만 남았네.

부엌은 높은 벽에 선반을 설치해서 수납 공간을 추가로 확보하려 하는데, 큰 요리용기들을 사서 자주 쓰는 재료는 그 안에 모아서 사용하기 쉽게 정리할 예정이다. 그러면 지금 그런 재료가 차지하는 공간을 다른 것에 할당하고 부엌 선반에 뭐가 너저분하게 늘어있는 상황을 없애려고 한다. 그리고 계속 마음에 안들던 싱크대 보울을 바꾸려고 한다. 그간 적립해온 환경개선비용을 활용할 수 있다면 임대주에게 요청해서 그걸 활용하도록 하고, 그게 안된다 하면 자비를 내서 하려한다. 여기서 사는 시간을 잘 사는 게 중요하니까.

우리 침실에서는 옷걸이로 전락한 발레바를 베란다로 내오고 옷장이든 오픈식 시스템 옷걸이를 설치하든 수납을 좀 달리하기로 했다. 그와 함께 나중에 내 피아노를 돌려올 공간을 만들기 위해 침실에 있던 낡은 오디오시스템과 CD, DVD가 가득한 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여기서 빼오는 CD와 DVD는 거실에 한쪽 벽을 가득 메울 책장을 새로 사 설치하면 거실 오디오장에 꼽혀있는 책과 하나 물건을 다 옮겨내고 그 빈 공간으로 옮기기로 하고.

거실에 책장벽을 설치하고 나면 잡스럽게 굴러다니는 소품을 다 안보이게 정리할 수 있어서 청소도 쉬워질 것 같고 눈을 거슬리게 하는 게 줄어들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올 것 같다.

그와 함께 지하실도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기 위해서 버릴 건 정리해 버리고 그곳에도 선반을 설치해 더이상 물건을 테트리스처럼 쌓는 일이 없도록 하기로 했다. 물건을 테트치스처럼 쌓아 정리하면 그 아래 들어간 물건은 거의 쓸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죽은 물건을 들고 있는 셈이 되고, 쓸 수 있는 것도 안쓰게 되니 정말 큰 공간낭비, 공간을 빌리는 돈 낭비다.

그간 옌스의 저항으로 대대적 정리와 변화를 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이사 추진 및 중단을 계기로 내가 우리 공간에 대해 생각하는 문제를 조금 더 잘 생각해서 말할 수 있기도 했고, 옌스도 그 필요를 이해하기도 해서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번 휴가의 첫주는 이런 대대적인 가사일의 한 주로 계획되었다. 힘도 들겠지만 내가 원하던 변화를 드디어 실행에 옮기는 시기라 두근거리고 흥분된다.

3주의 휴가

휴가 3주차에 접어들었다. 첫주의 시작은 집안 페인트칠로 땀을 빼는 육체노동이었지만 둘째주에는 시댁에서 먹고, 쉬고, 자고, 하나와 화끈하게 놀아주는 가족의 시간이었다. 마지막주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하나와 재미있게 놀아줄 수 있으면서도 우리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성인이 된 후 이렇게 여유로운 휴가를 보내본 적이 없다. 아니 그보다 일찍으로 시간을 돌려 중학생이 된 이후 이렇게 3주의 시간을 연속으로 여유롭게 보내본 적이 있던가.

덕분에 일상으로 돌아갈 힘이 나는 모양이다. 다소 긴 시간 쉰 탓에 돌아갈 걱정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3주간의 여름휴가라는 게 아주 적당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하나는 무섭게 크고 있고 한마디로 경이롭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이다. 애를 일반적으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다른 애들도 좋아하게 되고, 다른 부모들이 애들 자랑하는 걸 이해하지 못해하던 내가 그게 너무나 이해가 되고 애들의 성장 하나하나가 너무나 놀랍게 느껴진다. 기적같은 것이라 할까. 애들이 뛰어노는 혼돈의 상황이 평화로 느껴지게 바뀌는 기적. 관계의 축이 바뀌고 관심의 초점이 바뀐다.

이번 휴가는 그런 하나와 살갑게 부대끼는 그런 기간이다. 육아 초기, 사회생활이 없어지는 변화 속에 나의 시간을 간절히 그리워했다면, 그리고 육아가 제일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가장 힘든 시기가 지난 지금, 아이가 너무 이쁘고 같이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이제 다시 가을 한국 방문휴가를 가질 때까지, 연말 연시 연휴를 맞이할 때까지 하나와의 집중적인 시간은 미뤄둘 수 밖에 없지만, 그 때를 기다리며 일상을 열심히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내 사랑 하나

논문 중간 진행상황 및 여름 휴가

Theory와 variable construction description 파트를 쓰면서 꽤나 오랜 시간을 쓴 탓에 기가 엄청 빨렸다고 할까? 과연 8월 6일까지 최종본을 제출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했다. 다행히 하나가 여름이라고 아픈 날이 줄어들어 주중에 쉬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다가 느리더라도 꾸역꾸역 쓰던 게 결합되면서 속도가 서서히 붙기 시작했다. 덕분에 Results section을 거의 썼고, 내일부터 결과를 theory에 쓴 것에 비추어 discussion을 쓰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열흘 전에 theory 부분을 중심으로 1차 드래프트를 제출했고 금요일까지 우선 중요한 내용은 최대한 다 써서 2차 draft를 낸 후 코멘트를 받아 최종본은 8월 6일에 제출하면 된다.

시험 일정 컨펌으로 교수의 연락을 받았는데, 이론 부분은 way above average이고 더이상 개선할 만한 사항이 거의 없다고 했다. 한 섹션만 조금 더 클리어하게 쓰면 좋겠다고 했으니 이건 2차 draft 제출 후에 수정 보면 될 것 같다. 교수의 기대수준을 잘 모르겠었는데, theory가 무사히 통과를 했으니 나머지는 그냥 쓰는 대로 쓰면 될 것 같다는 결론이다. 이제 23000 단어를 썼으니 지난번 불평했던 일주일 전보다 4400단어를 더 썼다. 수식도 별로 없고 그래프도 그릴 게 없는데다가 source가 덕지덕지 붙는 파트도 아니라 속도가 나는 모양이다. Econometric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이론을 실무를 통해 익히는 연습도 겸하는 탓에 재미도 있다. 간혹 계수분석을 위해 오랫동안 손을 또 놓고 있던 선형대수를 살짝 다시 접하는 재미도 있달까?

다음주엔 가족 여름휴가로 시댁이 있는 보언홀름에 간다. 시부모님은 별장에 가 있기를 원하시는데, 난 일하려면 도서관에 가야해서 주로 시댁 아파트에 머물다가 하루정도나 별장에 다녀올 것 같다. 목표는 2차 draft 제출 후 2주 이내에 editing만 남기고 다 쓰는 것이다. 그래야 교수 코멘트도 반영하고, 최종 점검도 할테니까.

시험은 대충 22일로 잡힐 것 같다. 교수가 컨펌을 다시 해주기로 했으니. 최초에 교수가 제안한 날짜와 시간은 그 많고 많은 날 중 딱 컨퍼런스 내 발표시간에서 1시간 뒤였다. 거리가 물리적으로 멀어서 완전히 불가능한 탓에 날을 다시 조정하기로 했는데, 아마 그대로 확정될 것 같다. 다행히 부모님이 참석하실 수 있는 기간에 잡힐 것 같다. 디펜스 22일에 컨퍼런스 23-24일 참석이라니… 완벽한 일정이라고 해야하나 어쩌나. 22일 저녁엔 친구와 피아노 콘서트 참석 일정도 있는데… 이 주간은 엄청나게 바쁠 것 같다.

교수는 컨퍼런스에 논문을 내보라고 해놓고 자기가 못가게 되었다면서 다른 동료가 내 논문 발표할 때 잘 듣고 질문도 하라고 해두겠단다. 그래야 웰컴한 분위기도 느낄 수 있고 편한 기분으로 발표할 수 있을거라면서 논문 내용에 관심 있을 사람 많으니까 편하게 발표하란다. 이런 세심한 코멘트에서 느껴지는 배려에 참 고마움을 느낀다. 나와 나이가 같은 교수인데, 참 좋고 스마트한 사람인 것 같다.

으쌰으쌰하고 차분히 하나하나 해결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