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저녁

오래간만에 맞이하는 혼자만의 저녁이다. 금요일 저녁에 떠나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출장을 떠난 옌스 덕에 맞이하게 된 시간이다. 어제는 시부모님이 계셔서 수다도 떨고 하느라 아늑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어제 저녁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는데 기분이 영 묘하더라. 옌스가 설거지를 하던 내가 하던간에 누군가가 부엌을 방문해서 한마디 두마디 나누는 게 일상이었는데 그게 없다보니 엄청 적막함이 느껴지더라. 그 작은 일상의 부재가 옌스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게 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혼자인 건 참 이상했다. 저녁 약속으로 늦게 들어오더라도 옆에 들어와 눕는 걸 항상 봤었기에.

그런데 이렇게 떨어져지내는 시간이 나쁜 것 같지는 않다. 길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빈자리가 서로의 소중함을 더 크게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동료들과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있겠지. 나는 대신에 딸기에 설탕과 생크림을 얹어 먹어야겠다. 이젠 물론 이미 하우스 딸기이지만 여름이 가도록 중독된 딸기를 차마 쉽게 놓을 수 없다.  그리고 설겆이를 하고 집을 치우고 청소를 해야지. 티비도 보고…

[육아일기] 늦은 저녁, 혼자 보내는 시간의 여유

오늘은 마지막 수유를 마치고 깨어있는 상태로 침대에 누였는데도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어제는 재우는 건 조금 시간이 걸렸어도 아홉시반부터 일곱시간을 쭉 이어 자더니 오늘은 정말 쉽게 자주는구나. 매주 화요일마다 저글링클럽에 가는 옌스는 열한시쯤이 되어야 돌아올테니 그때까지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하나와 나는 좋은 친구가 된 것 같다. 이제 다양한 울음도 제법 구분할 줄 알게 되었고, 옹알이일 뿐이지만 하나와 나는 많은 대화를 한다. 보리와 대화를 하던 게 습관이 돼서 그런지 하나와 혼자 대화를 하는 게 어색하지 않다. 처음 몇 주는 부족한 잠과 그녀의 울음의 원인을 빠르게 판단하지 못한 때문에 힘든 날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하나의 체중이 많이 늘어 산책나갈때마다 무거운 리프트를 들고 내려가야하는 게 힘들긴 하지만, 하나가 목을 확실히 가누고 좀 더 커지면 리프트는 쓰지 않고 그냥 바로 안고 내려가서 유모차를 태우면 될테니 그 또한 힘든 게 줄어들 것 같다.

딱 하나 힘든 게 있다면 거의 하루에 한번 젖을 왈칵 토한다는 건데, 이제 그것도 거의 익숙해져서 덜 힘들다. 그건 거의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하던 일인데, 놀랍게도 하나는 우리의 반응을 보고 울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 같다. 초반에 놀라서 애를 살피려니 울었는데, 우리가 침착하게 괜찮다고 하면 애가 우리 표정을 보고 울음을 멈추더라.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토하는 일에 마음속으로는 놀라도 최대한 침착하게 아무일도 아닌 척 행동도 천천히, 표정도 평정을 유지했더니, 놀랍게도 매우 많은 양을 토하고도 아무렇지도 않더라. 그 어린 갓난쟁이가 상황 판단을 다 하는 건데, 생각해보면 놀라울 것도 없는 것이, 어린 강아지들 조차도 사람의 표정을 보고 상황 판단을 다 하는데 사람 갓난쟁이가 그렇게 못할소냐.

 

젖 토하고 똥 묻히고 해서 오늘은 옷을 세번이나 갈아입었다. 여기에 없는 한 벌이 더 있었으니. 

며칠 전에 주문한  Secrets of the baby whisperer 책이 오늘 도착해서 서론과 첫번째 챕터를 읽고 있는데, 저자인 Tracy Hogg도 아기와 대화를 하라고 하던데, 다 읽고 나면 육아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오늘 남은 저녁시간은 그걸 읽으며 보내야지. 켜둔 음악의 피아노 선율과 칸투치니를 곁들인 디카페인 커피 한잔.  백일도 안된 첫 아이를 둔 엄마로서 사치도 이런 사치가 없구나.

홀로 보내는 저녁의 적막함

옌스가 출장을 간 날이면 그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진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일까? 내가 한국으로 여행을 간 때면 그 빈자리가 이렇게 느껴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번 달엔 이번 주 한 주, 다음 주 한 주 건너 그 다음 또 한 주 이렇게 2주를 꽉 채워 집을 비우니 그 빈자리를 느낄 기간도 길다.

회식이나 친구들과의 모임이 별로 없다보니 카약이나 기타 취미활동 등으로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대충 10시 전엔 집에 들어오는 터라 이렇게 10시 반을 넘어가는 시간에 혼자 집을 지키는 일은 어색하다. 내 옆자리를 파고드는 보리도 없고.

이 기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늦은 시간 내가 원하는 음악을 켜고 공부를 하든, 글을 쓰든 일련의 활동에서 그 나름의 묘미를 찾는 것이지, 그게 아니면 이 저녁시간을 그렇게 즐기진 못할 거다. 해외에서 홀로 맞이하는 저녁의 적막함이 주재원 생활 중 가장 힘든 것이었으니까. 사실 보리를 한 가족으로 맞이한 것도 그런 적막함을 견디기 힘들어서였고. (물론 반대로 낮에 나를 기다리는 보리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나와 달리 옌스는 혼자 시간 보내는 것을 참 잘한다. 하루를 어떻게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로 꽉 채우고자 노력하는, 24시간이 부족한 사람이니까. 되려 저녁에 졸음이 오더라도, 그 시간에 졸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될까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니까. (그게 자기 단점이라고 한다. 뭘 스트레스를 받기까지… 뼛속까지 경제학자다.) 그래서 내가 열흘간 한국 가 있으면 그게 꼭 나쁘진 않단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거 좋다고. 그래도 그게 긴시간이 아닌 거 아니까 좋은 것이지, 내가 집을 비울 때 내 존재의 크기를 새삼 크게 느낀다고 하는 것을 보면 나나 그나 별반 다르지 않다.

애가 태어나고 나면 옌스가 출장을 간다고 해서 혼자만의 시간 따위는 없을 거니까 사실 감사한 마음으로 즐겨야 한다. 석사과정의 무거운 리딩리스트의 압박에 짓눌려 이렇게 딴 짓 하면서도 스트레스 받지만, 이렇게 틈새를 노리는 딴 짓도 사치가 될 시간이 올 테니까.

왠지 센치해지네. 음악도 한 몫하고 있다. Spotify의 Reading soundtrack, 처음 들어본 플레이리스트인데, 아주 마음에 든다. 바로 저장. 가을의 감성을 한껏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력추천한다. 읽던 건 대충 마무리 짓고 설겆이하고 자야지. 벌써 옌스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