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셋째주 기록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옌스와 소파에 어깨를 붙이고 앉아서 쉬고 있다. 요즘 일하면서 출퇴근 하면서 한국 노래를 많이 듣고 있다. 노래의 국적을 불문하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나 가수라든가 가사를 외우는 노래라든가 하는 게 별로 없는 탓에 그냥 그때 그때 떠오르는 장르의 노래를 듣는게 일상인데, 요즘은 어쩌다 god 노래를 듣게 된 이후로 한국 노래를 듣고 있다. 김광석의 노래는 20대엔 별로 좋은 지 몰랐는데 30대가 되면서 그 맛이 참 느껴지고 좋아졌다. 어찌나 이렇게 감미롭고 구슬픈지. K-pop 말고 다른 한국 노래는 없냐던 옌스도 김광석 노래는 마음에 든다고 한다. 밥딜런과 닐영 등의 가수를 좋아하는 옌스에게 김광석 노래는 나쁘지 않은 초이스일 거라 생각을 했는데 역시…

오늘 차를 인도받았다. 직불카드로 이렇게 큰 금액을 결제해본 적이 없어서 살짝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결제를 할 수 있었다. 딜러도 괜찮다고 했고 은행 홈페이지에도 잔고내 결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지만, 또 사람 마음이 불안하려면 여러가지로 불안하니까. 매연은 싫다는 옌스와 전기자동차의 승차감을 좋아하는 내가 의기투합하여 고른 건 현대자동차에서 나온 코나 전기자동차였다. 한번 충전에 500킬로미터를 뛸 수 있는 차는 인기가 너무 좋아 1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고 300킬로미터 차량에서 고르면 재고로 이미 있는 건 14일 안에 받을 수 있고 아니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했다. 우리는 재고에서 고르겠다 했더니 흰색, 빨간색, 애시드옐로우 색에서 고를 수 있다고 해서 애시드옐로우 색으로 골랐다. 흰색은 지루하고, 빨간색은 우리 취향이 아니고, 애시드옐로우색은 옌스가 좋아하는 밝은 연두색과도 맡닿아 있어서 쉽게 골랐다. 6개월 기다리는 건 우리가 원하는 선택지가 아니었으니까.

Acid yellow KONA electric

차값은 옌스가 냈으니 보험료는 내가 내라 해서 보험료는 내가 내기로 했다. 보험도 현대가 노르웨이 보험사랑 제휴해서 하는 것으로 골랐다. 옌스가 내 한국사랑을 적극 지원해주는 것이 참 좋다. 핸드폰 바꿀 때도 중국폰이 조금 더 싸서 그걸로 바꿀까 하면, 한국거 사라고 밀어주거나, 이번 자동차 살 때도 가급적이면 한국차 사라고 하는 것 말이다. 일본차는 사지 말라고 말하는 센스(?)까지 겸비하다니. 😉

하나는 엄청 잘 크고 있다. 모토릭 부분에서도 언어발달에서도 자기 나이보다 훨씬 빠른 발달을 보이고 있고 주변을 잘 챙기는 성격이란다. 덴마크어가 빠르게 늘기 시작하던 시기부터 한국어 사용은 매우 자제하더니 요즘 갑자기 한국어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애를 낳기 전과 애가 돌이 되기 전엔 꼭 한국어로만 말할 거라고 다짐을 했었는데, 주변 사람들과 내가 뻔히 덴마크어로 소통하는 게 보이는데 덴마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척을 할 수가 없다. 내 한국어 질문에 하나가 덴마크어로 답을 하면 맞다고 하면서 같은 내용을 한국어로 반복해 주고, 하나가 질문을 덴마크어로 하면 내가 그걸 또 한국어로 확인해준 후 한국어로 답을 해준다. 한국어로는 하나가 뜻을 모르는 단어의 경우는 덴마크어로 답을 한번 해주고 한국어로 세번 쯤 반복해 답을 해주는데 내가 하는 게 맞는 지 알 방법은 없지만 그냥 밀고 나갈 뿐이다. 모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했으니 꾸준히 해봐야지.

고집도 성깔도 있지만 엄마가 단호하게 굴 때는 받아들일 줄도 알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고래고래 울만큼 울고 나면 툭툭 털고 일어날 줄도 아는 쿨한 아가씨다. 발레춤 추는 걸 좋아해서 주말에 밖에 나갈 준비하면 발레춤추러 가냐고 하고 머리 빗으면 엉킨 머리 푸느라 땡기는 것 싫어하면서도 자기 전에는 꼭 머리 빗어달라고 하며 등을 내어주는 귀여운 아가씨다. 보육원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몸을 어떻게 써야하는 지 정말 잘 아는 작은 장난꾸러기지만 친구가 울면 가서 안아줄 줄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이것저것 손가락으로 찍어가며 티비 프로그램을 골라 보지만 막상 조금만 무서운 게 나오면 엄마아빠를 불러 끌어안고 보는 겁도 있는 아가씨. 동양과 서양의 특징을 모두 섞어 갖고 태어난 하나. 우리에겐 너무나 축복같고 감사한 세상에서 가장 이쁜 아이이다. 다른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시때때로 하나 사진을 열어보며 키득거리기도 하고 어쩌면 이렇게 귀엽고 이쁘고 총명하냐며 탄복하는 팔불출이다. 다들 지금이 제일 이쁠 때라 하는데 그 말이 정말 맞는가보다.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단계는 돌을 시점으로 지난 거 같고 아직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시기는 안온 것 같고 말이다. 즐겨야지. 머리와 가슴에 이 시기를 아로새기듯 기억해야겠다.

TV에 푹 빠진 하나

나는 이제 수습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얼마전 상사와 평가 미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첫 1-2주동안 덴마크어로 일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 건지 걱정하면서 혹시 잘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다 말하니, 절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라면서 지금 해당 경제분석 프로젝트 너무나 순항하고 있는데 왜 그런 걱정을 하냐면서 놀라더라. 나도 지금은 이 프로젝트의 중요성도 인식하고, 나도 이걸 할 수 있음도 알고, 덴마크어로 보고서 쓰고 발표하고 이런 일련의 것이 다 가능함을 알기에 그런 걱정은 안하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시간이 약이라고, 아직 점심시간 대화는 챌린징하지만 일 면에서는 다행히 잘 굴러가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미래 상하수도 요금에 꽤나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기업, 이익단체 뿐 아니라 우리 경영진도 관심을 지대하게 갖고 있다. 경영진과의 미팅 주기가 짧아지고 있고 보고의 비중이 늘어나고 하면서 내 이름도 더이상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발음하고 기억해주게 되었으니 이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까지는 최소한 잘릴 일이 없을 거란 생각과 함께 조직도 나의 경험을 염가에 쓰고 있는 거라는 생각도 든다. 덴마크어가 완벽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조직이나 나나 윈윈하고 있는 게 아닐까.

발도 이제는 많이 나아져서 어제부로 목발은 졸업했다. 아직 절뚝거리며 걷고 통증과 함께 운동반경이 꽤 제한되어 있지만 천천히 집중해서 조심스레 걸을 땐 절뚝거리는 걸 거의 없앨 수 있을 정도이니 완전 감동이다. 삐면 전치 2주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2주정도면 그래도 심한 건 없어지니 말이다.

내일은 시부모님을 뵈러 보언홀름에 갈 거라 대충 가방을 쌌는데 하룻밤만 자고 올 거라 짐이 많지 않아 마무리는 내일 지으면 될 것 같다. 10시 비행기니 서둘러 나가야 하긴 하지만서도 하나 짐은 하나 자는 동안 쌀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하나가 얼마나 좋아할런지. 한국에 계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방문은 가을로 미뤄두고 지금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방문으로 족해야지. 덕분에 우리도 코펜하겐을 잠시나마 벗어나보고. 저녁식사 준비도 손에서 놓고 시부모님이 해주시는 음식 잘 먹고 잘 쉬다 와야지. 다행히 날씨도 나쁘지 않을 거 같으니 말이다. 이제 가서 자야지.

시가와 친정사이, 그리고 행복의 레시피

아무래도 남편네 나라에 살다보니 친정보다 시가와 자주 보게된다. 물론 연락이야 비교할 수 없이 친정과 더 많이 하지만 보는 주기는 시가가 훨씬 잦다. 시부모님과 연락은 주로 문자메세지로 이뤄지는데, 간간히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로부터 메세지를 받고 나도 두분께 메세지를 보낸다. 주로  두분을 수신자로 헤딩에 넣어 시어머니께 문자를 보내드리지만, 혹여나 그게 섭섭하실까봐 시아버지께 보내기도 한다. 전화는 주로 시어머니와 이뤄지는데, 내가 전화를 드리기도 하고 시어머니가 주시기도 한다. 주기로 보자면 한 2주에 한 번 정도?

옌스는 우리 부모님께 직접 연락을 드리지는 않고 내가 연락을 드릴 때 옆에 있으면 안부를 전하곤 한다. 영어로 아빠와는 대화를 할 수 있지만, 아직 옌스의 한국어 실력으로는 나 없이 부모님과 대화를 할 수 없기도 하고. 아마 이부분은 우리 부모님이 조금 섭섭해 하실 수도 있는 부분이긴 한데, 여긴 약간 자기 부모님에 대한 연락이나 그런건 셀프인 부분이 많아서 딱히 내가 뭐라 이야기하긴 애매하다. 시부모님께 연락 드린 것도 시부모님이 먼저 문자로 연락을 주셔서 답을 하다보니 나도 답을 하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아, 내가 조금 너무했나?’ 싶어 전화로 한 번 연락을 드렸더니 그 다음부터 조금씩 전화로도 연락을 주신 거였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보니, 아마 내가 좀 역할이 부족했나 싶다. 양쪽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하면 그냥 내가 잘 지낸다고 양쪽에 전할 뿐이지, 안부를 물었다는 사실을 옌스에게 전하는 건 잘 안했다. 옌스는 누가 전화나 문자로 연락하며 내 안부를 물으면 꼭 나에게 그 사실을 전하곤 했는데. 그런 사실을 듣고 나면, ‘아. 그 사람이 내 생각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걸 떠올려보면, 나도 그랬어야 했었는데… 옌스가 괜히 우리 부모님은 자기 안궁금해하나 싶어하겠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국제결혼이라고 시가와의 갈등이 없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는게 다 똑같다고, 여기도 가족간의 갈등이 다 있는 것이고,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도 집안 따라, 사람 따라, 국가별 문화 따라 갈등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그렇다. 다행히 난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시댁을 만나 아무런 문제 없이 아주 잘 지내고 있는데, 항상 그걸 당연시 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기억하고자 한다.

국제결혼은 양가의 문화가 만나는 것이라 나 뿐 아니라 시가 입장에서도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시부모님을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이 곳의 문화를 내가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어머님, 아버님으로 부르는 우리 문화를 시부모님이 받아들일 것이냐 같은 작은 문제부터 그렇다. 옌스는 처음엔 이상할 것 같다고 했지만, 시부모님께 내가 우리 문화를 설명하고 그래도 되겠는지 여쭤봤을 때 시부모님은 매우 좋아하시며 (그런 문화냐고 놀라시긴 했지만) 그러라고 하셨고, 그분들 또한 나를 딸 해인이라고 불러주신다.

시가를 방문해서 집안일을 거드는 문제부터, 시부모님이 우리집에 오셨을 때 어느 방이든 편히 드나드시는 것까지 다 다르다. 이건 그냥 나라간의 문화차이에 집안 차이가 겹쳐 있어, 어느 까지가 나라의 문화고 가풍인지의 경계가 모호하고 나로선 구분해내기가 불가능하다. 간혹 내가 생각하는 시가와 며느리 사이의 경계를 넘어선 행동들에 살짝 놀라는 일이 있더라도, 그게 만약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하실 일에서 벗어나있지 않다면 그냥 별 의미없이 받아들이기로 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예전에 우리 집에서 모여 같이 이동하는 일이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기억이 정확히 안나지만 시어머니께서 옌스 옷인가 소품인가를 하나 챙기시려고 침실 옷장을 여셨던 일이 있었다. 순간은 놀랐지만, 나와 같이 살기 전까지는 매우 편히 드나드시던 아들네 집이니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아실 것이고, 옷장을 여는 일이 갑작스레 터부시될 일도 아니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며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내가 시부모님을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내가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과 같을 수 없듯이 시부모님이 옌스나 시누이를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시부모님이 나를 딸과 똑같이 대하지 않으신다 해서, 아니면 옌스 생각을 하시는 것만큼 내 생각을 안하신다 해서 섭섭하지 않고, 섭섭해 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그런걸 느낀 바도 없지만, 설령 그런 일이 생긴다해도…) 같이 사는 아들이 행복하기를 위해서이든 어떤 이유이든 내가 잘 지내고, 잘 지내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일이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어찌 상대에게 기대하랴.

명절 스트레스도 없고, 연락 자주 안한다 타박하는 사람도 없고, 가정 대소사는 다 직접 챙기는 남편이 있으니 시가 문제로는 난 아주 땡잡은 기분이다. 내가 시부모님을 좋아하는 것처럼 옌스도 우리 부모님을 좋아하고, 특히 내년 한국에 방문해 우리 부모님과 지내며 혹여나 엄마와 단둘이 있는 순간이 생길 때에 대비하려고 옌스가 지금 바짝 한국어를 공부하는 걸 보면 참 고맙다.

반대로 옌스는 굳이 그렇게 안해도 되는데 자주 시가에 연락을 하는 나에게 참 고마워한다. 자기 가족은 자기가 챙기는 셀프문화가 자리잡힌 이 곳에서 자발적으로 꾸준히 연락을 하고 가까이 지내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연애 초기에, 자기 가족과 내가 만나는 자리가 몇번 있고 나서,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며, “가족과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는 게 아니라, 같이 보내는 시간이 너에게도 좋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너는 나와 함께하는 것이지, 내 가족과 함께하려는 것이 아니다. 혹여나 내 가족과 너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하면 난 네 편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옌스이니 물론 내가 가족과 잘 지내길 기대했겠고, 나도 그들이 이미 마음에 들었지만, 저렇게 이야기해준 자체에 마음이 정말 든든해졌었다.

이런 고마운 감정이 조금씩 쌓이는 걸 모아두었다가 간혹 표현하곤 한다. 그러면 옌스나 나나 모두 이런 것들 당연시 하지 말자며 이런 소소한게 삶을 행복하고 감사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에 공감하는데, 이런 게 서로 잘 맞는다는게 참 감사하다.

이제 불과 3년밖에 안된 커플이지만 정말 큰 갈등없이 행복하게 잘 살아온 것에 대해 요인을 분석해보자면,

  1. 우선 라이프스타일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 – 금전감각과 관리, 건강/체력관리, 가족과의 관계, 인생 전반에 걸친 목표와 생활 태도, 집안 관리 등등
  2. 서로에 대해 어떻게 해주길 기대하는 점이 없다거나, 딱히 기대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려는 점
  3. 서로가 하는 행동이 혹여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게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마음 상하게 하려고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4. 원하는 게 있으면 구체적으로 정확히, 또 솔직히 말하는 것
  5. 상대가 내 요구에 거절하더라도 이유가 합당하면 받아들이는 것
  6. 감사함과 사랑함을 작든 크든 꾸준히 표현하는 것
  7. 침묵 고문하지 않는 것 (이것은 절대 하지 않기로 약속한 바 있다.)
  8. 주말 하루는 꼭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갖는 것 (하나가 태어나면 다른 형태로 바뀌겠지만)
  9. 서로가 각자의 취미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적당한 수준의 개인 공간/시간/자유를 주는 것
  10. 서로를 위해 상대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것에 노력하는 것
  11. 우리 문화가 이렇다고 강요하지 않고 서로 대화를 통해 타협하는 것
  12. 우리의 현재 생활와 주어진 것에 대해 당연시 여기지 않는 것
  13. 이런 우리의 삶의 방식을 친정과 시가 모두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

대충 이런 것 같다.

간혹 국제결혼해서 해외에 나가 사니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런데 그게 좋을 수도 있지만 마음가짐에 따라서는 정말 더 힘든 게 될 수도 있다. 실제 그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커플들도 많이 있고. 사실 옌스를 만나서 한국의 문화 중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겪지 않아 좋은 대신에 한국 문화에서 내게 편하거나 득이되는 것들을 누리지 못해 좋지 않은 점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것 생각하면 끝이 없고 서로 자기 좋은 것만 주장하는 것으로 흐를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 둘이 합리적으로 판단해 공평하고 서로가 만족스러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인생 트레이너와 함께한 동네 자전거 여행과 덴마크 삶의 소소한 즐거움

CBS에서 MMPI 과정을 듣느라 6월까지 꼼짝없이 바쁜 옌스의 스케줄로 인해 같이 있지만, 따로 활동하는 시간이 많이 늘었다. 덕분에 집에 면학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SNS를 하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던 나였는데, 옆에 앉은 그가 독서를 하니, 뭔가 눈치가 보이기 시작해서 나도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옌스는 습관의 사람이다. 습관을 잘 만들고, 한번 만든 습관은 잘 유지한다. 뚝심의 인간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뼛속까지 경제학자라 시간 낭비를 하기 싫어해서 자기에게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해 시간을 잘 배분한다. 난 습관을 잘 못들이는 사람이다. 중요하다고 하는 순간 마음먹고 집중을 해 원하는 결과를 내는 일에는 강하지만, 인생지사 그렇게 짧고 굵게 살 수 없다. 따라서 난 자꾸 동기부여를 해줘야 한다. 내 스스로 동기부여가 안되면, 옆에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두고 스스로를 독려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내가 제일 배우고 싶은 성실함과 뚝심을 갖고 있는 옌스가 내 옆에 있어줘서 참 고맙다.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은 순간, 다시 정진하는 길로 돌아올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옌스가 빠뜨리지 않는 것은 체력관리이다. 아침마다 윗몸일으키기 등을 포함해 15분 정도 꼭 근력운동을 하고, 카약과 인라인스케이트 등을 꼭 2번씩은 한다. 10kg씩 몸무게가 오르락 내리락 변하던 내가 살이 크게 않고 유지하는 것도 옆에서 운동을 장려하고, 나를 데리고 나가는 그 덕분이다. 걸어서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하러 나가자고 한다.

겨울에 한번, 정말 나가기 싫은데 옌스가 산책을 나가자고 하길레 간신히 따라 나선적이 있다. 정말 추웠는데, 조금 걷고 나니 좋았다. 그 날, “앞으로 내가 나가기 싫어해도 사실 나오면 좋아하니까 게으름 피워도 꼭 끌고나와줘.”라고 부탁을 했다. 나가자고 할 때, 기다 아니다는 말을 안하고 미적대고 있으면, “Come on, it’s good to have some fresh air.”라고 하며 독려하는데, 안나갈 수가 없다. 내가 한 말도 있고 하니.

그래서 가급적이면, 나가고 싶지 않아도 옌스가 나가자도 하면, 흔쾌히 좋다고 답을 해버린다.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 나갈 마음이 생긴다.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저녁 먹고 8시가 넘었는데, 바람도 많이 부는데, 자전거 투어를 나가자고 한다. 나가면 좋을 것 같기도 해서 알았다고 했는데, 안나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 했다. 낮에 비가 많이 오고나서 구름이 이쁘게 남았더라. 자전거를 타고 쌩쌩 움직이니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비포장 산책길이라 중간중간 쿵하면서 튕겨 놀라기도 한다. 갑자기 오리 또는 거위때가 나타나기도 하고, 탁트인 호수가 나오기도 한다. 습지인지라 다채로운 생태가 발견되고, 갈대숲에선 바람에 사라락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게 천국인가 싶은 그런 느낌.

덴마크의 삶은 한국의 삶에 익숙하고, 그 삶의 패턴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에겐 힘든 것이라 생각한다. 불편함을 받아들여야 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출장온 대기업 중역분들 중엔, 여기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어보신 분들도 많았다. “차도 비싸 코딱지 만한 차 사야지, 밥 값 비싸지, 맛집도 적지, 술도 비싸고, 문도 일찍 닫고, 세금 많이 내지, 무슨 재미로 살아요? 한국은 돈만 있으면 살기 정말 좋아. 여긴 재미없는 천국이야.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지만.” 판에 박힌듯한 이야기를 해주신 분들이 꽤나 있었다.

다행인건 내가 소비보다는 경험 중심의 삶을 원하고, 북적이는 거 싫어하고, 술 집에서 와인이나 한잔 남친과 기울이면 되고, 소소한 즐거움에 행복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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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기상청의 약속에서 시작된 공공부문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

6월부터 여름이 시작이라더니, 정말 그러려나보다. 6월 날씨에 대한 덴마크 기상청의 약속을 믿는다면 말이다. 5분마다 변한다고 하는 하루하루의 날씨가 아니라 기간에 대한 예측이니 대충 맞을 듯 하다. 일중 5~15도의 날씨를 오락가락하는 5월의 봄날씨는 흐리고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엔 유독 춥게 느껴진다. 6월 중엔 드디어 25도의 고온도 맛볼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덴마크는 날씨에 대해 기상청이 약속했다(DMI lovede)고 표현한다. 기상청이 태풍을 약속했다, 태양을 약속했다고. 그 약속은 상당히 자주 지켜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으 보면 덴마크의 약속 개념이 약한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덴마크어 수업에서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보면 유럽 내 덴마크의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게 참 재미있다.

우리가 행복한 복지국가 덴마크에 갖는 환상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덴마크는 유럽 내에서 가장 해고가 쉬운 나라에 속한다. 실업 복지가 뒷받침을 해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flexicurity model), 좋은 직장에서 자리 잘 잡고 일하는, 좋은 경력을 추구하는 사람에겐 이러한 급작스런 해고통보가 청천벽력같은 소식이다.

프랑스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로 일을 잘 하고 있다가, 덴마크 사람과 결혼을 하고 이곳으로 이주해온 한 컨설턴트는 덴마크를 북유럽의 이탈리아, 그리스로 표현하는데, 웃음이 나오면서도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사업부문 정리와 함께 사람들을 대량 해고하는 것이나, 어떤 기한내 일을 처리해주겠다고 하고 잊어버리거나, 회의에 참석하기로 하고 잊어버리는 일도 꽤나 자주 발생하며, 일정의 지연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들을 예로 들며, 덴마크는 충분히 신뢰하기엔 의외로 어려운 곳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불평은 않는다면서, 지금 구한 곳은 자택근무를 허용해주는데, 두터운 신뢰기반이 받혀주는 덴마크에서나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 또한 공감하는 이야기다.

미국인들이 특히 놀라워하는 일은, 앞의 프랑스인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지만, 많은 공사가 지연되고, 공공프로젝트가 허망한 투자로 끝나도 이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하철 공사가 대표적인 예다. 2018년까지 끝나기로 한 프로젝트에 대해 대부분의 덴마크인은 2019년은 되어야 끝날 것이라고 했다. 어느샌지 슬그머니 준공시점 안내문에 2019년이 표기되어 있다. (아마 2020년에 끝나려나보다.) 미국에서는 공기가 지연될 경우 막대한 지연배상금이 일단위로 계산되기 때문에 준공을 칼같이 지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덴마크에서는 계획은 수정될 수 있다고 보고, 변동되는 현실에 맞춰 합리적으로 프로젝트 기간을 연장한다.

변화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덴마크의 시스템이 있기에 기일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생기지 않거나 적게 생긴다. 그러나 모든 일에 양면이 있듯이, 간혹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며 유야무야 봐주는 경우도 생기고, 대규모 투자가 들어간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하게 오랜기간 진행되다가 실패로 드러나는 경우도 생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탈리아에서 도입하려던 IC4 열차 프로젝트이다. 일명 IC4 스캔들이라고도 불린다.

2000년 2월, DSB(덴마크 국영 철도운영사)는 50억 달러 규모의 도시간 철도용 열차를 EU 공공입찰을 통해 발주했다. 12월, 제일 싼 가격으로 이탈리아의 AnsaldoBreda사가 낙찰을 받게 되고, 2002년 12월까지 납품을 받기로 한다. 원래는 2003년 4월부터 운행을 할 목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새로운 열차에 맞춰 주요 역의 플랫폼은 길이 확장을 위해 확장공사도 마쳤다. 그러나, 2004년으로 납품이 연장되고, 납품된 제품은 전기시스템과 열차용 컴퓨터와 기계장치 시스템의 상호작용에도 문제가 발생되어 프로젝트가 좌초위기에 있었다. 감리기업은 프로젝트 중단을 권고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DSB는 매몰비용이 너무 아쉬워, 사실 포기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끌고 나갔다. 결국 2007년 10월 4대의 열차가 최초로 납품이 되어 오후스와 올보 구간에서 운영되었으나, 2008년 2월 열차 매연에서 과다하게 발생되는 악취로 인해 운행을 중단했다.

이는 이 길디 긴 스캔들의 시작일 뿐이라 다 쓰자면 한도 끝도 없어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부 추가 차량이 납품되고, 문제가 생기고, 또 일부는 운영되었으나, 열차 여러개를 연결하는데 문제가 많아 운영할 수 있는 횟수가 극히 제한되어 효용이 크게 떨어졌다. 중간에 열차에 문제가 자주 생겨 별로 운영도 못해본 열차는 유지보수만 잡아먹는 하마가 되었다. 2013년 9월, 드디어 모든 차량 82대가 납품이 되었고, 현재 일부 구간에서 정기적 운행을 하고 있으나, 2014년 2월에는 해저터널에서 열차가 멈춰 다른 열차로 191명이 구조되는 일도 발생해 신뢰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2014년 9월, 덴마크 교통부는 이 열차를 폐기하고 분해해 저속의 지역 열차로 개조해 이용하는 것에 대한 경제성 평가를 위한 조사단을 출범했다. 이는 DSB를 파산하게 만들 수도 있는 대형 스캔들이다.

이처럼 덴마크의 공공조달은 이런 유연한 합리성에 의해 많은 예산낭비를 가져오기도 했다.

한국엔 덴마크의 행복, 복지, 녹색 성장, 디자인 등만을 보고 좋은 이야기만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면서 일반화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해답이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 뭐 하나만 터지면, 선진국에서는 이러면 책임자 처벌하고 이런 일이 없도록 한다고 전국민이 공분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업무의 절차상 과실과 도덕성에 문제만 없었다면 책임자 엄벌, 이런 것은 여기선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약속 문화도, 서양 선진국은 다 약속 잘 지킨다면서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배웠는데, 알고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다 나라별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면서 공분하는 것보다는 우리 내부에서 우리의 상화에 맞는 해답을 계속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물론 잘못된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발전을 할테니까. 그리고 사회 구조의 변화 속에서 문제점을 이제 인식한 단계로 해답을 찾아가기 전 단계일 수도 있다.) 우리가 항상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서 좋아지길 원할 땐, 우리 좋은 것은 포기할 수 없고 남의 좋은 것만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런 좋은 것은 다른 나쁜 것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덴마크에 갑자기 선거철이 와서(그저께, 6월 총선을 실시하기로 발표가 났다.) 온 나라가 시끌시끌한 가운데, 덴마크가 당면한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정당간 정책목표가 발표되면서 이곳의 문제가 더 피부로 와닿는다. 그래도 올해는 날씨 좋은 때 선거하니까, 날씨만 좋아지면 행복해지는 덴마크인들에게도 시끄러운 선거철도 즐겁게 느껴지지 않을까 말도 안되는 억측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