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Vs. 한국] 업무 이틀째, 덴마크와 한국 공공부문 업무스타일의 차이점

정책결정과정

덴마크 정책결정과정은 우리와 조금 다른 것이 내각책임제와 대통령제의 차이에서도 기인한다. 연정이든 하나의 다수당이든 집권여당이 장관직을 차지하고 있고 이들이 미리 관련부처간에 조율된 정책을 입안하면 나중에 이에 대해 국회에서 찬반투표가 이뤄지게 된다. 오늘 이에 대해 일부지만 정책을 국회에서 찬반 표결에 부치기 전에 어떤 프로세스를 거치게 되는 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주요 정책의 경우 관련 부처 장관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있어서 월에 한번 주요 정책을 모아 정기적으로 회의를 개최하고 부처별 찬반여부를 표기한 의결안을 작성한다. 정책안에 대한 찬반 내용 및 이와 관련된 이견 등이 담겨있기 때문에 정책 입안이 결정될 경우 야당에서 보면 안될 내용 등을 고려해 해당 자료는 기밀자료로 분류된다. 물론 해당 정책이 완전히 통과되서 입안되면 더이상 기밀자료는 아니다. 이렇게 입안이 결정된 정책은 국회 본회에 상정하기 전에 미리 관련 관련 정당 정책담당자가 모여 해당 정책에 대한 찬반 여부를 논의한다. 정당 입장에서는 정책에 대한 찬성을 결정하나 의원 각자에게 투표의 자유를 맡기는 경우, 해당 정당의 정책에 대해 의원 모두가 따라 투표를 하기로 강제하는 경우와 같이 두가지 형태로 정책에 대한 합의를 미리 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 따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정책에 대해 의원들이 투표를 한다.

내가 할 일은 이제 정당 합의만 완료된 일이고 상수도 및 하수도 업체의 이해관계에 연관된 일이라 어떤 업무를 하는지는 쓸 수 없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해당 섹터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업무에 바로 투여되서 공부도 하고 모델도 만들어야 한다는 게 놀랍다. 부담된다고 하기보다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옆에 있고 또 내외부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같이 찾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으니 나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야겠다는 긴장감이 든다. 다음주 우리 센터를 관장하는 부청장님과 회의가 잡혀있는데, 이 분야에 인사이트가 있으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란다.

이에 맞춰 읽을 거리를 산더미처럼 받았는데, 사전 찾아가면서 열심히 찾아봐야한다. 그래도 확실히 처음 몇페이지 읽는 동안은 부처 특수의 용어에 익숙하지 않아 사전을 많이 찾아봐야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 더 물 흐르듯이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또 이를 활용해 회의에 들어가서 설명도 듣고 질문도 하고 토론도 해야하다보니 읽은 표현을 활용하는 연습도 되서 표현 습득도 된다. 다만 하루종일 덴마크어로 읽고, 생각하고, 말하다보니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하기 전까지는 마냥 졸렵다. 뇌가 아주 피곤해하는 모양이다.

출퇴근 및 업무관리

여기서는 하루에 뭘했는지 카테고리별로 시간을 입력하게 되어있다. 이걸 기준으로 주당 근로시간을 확인하고 야근 수당도 이걸 기준으로 산정된다. 오늘 7시 반에 출근해서 3시 반에 퇴근했는데 조용할 때 업무를 시작하니까 집중도 잘되고 정말 좋았다. 나와 옌스의 하나 보육원 등하원시키는 스케줄과도 잘 맞아서 앞으로 큰 이변이 없는 한은 옌스가 드롭하고 내가 픽업하는 대로 유지하게 될 것 같다.

KPI

여기도 KPI가 있지만 한국보다는 덩어리가 크고 지표 설정에 있어 부처 재량도 크고 부처 특성에 맞춰 각자 차별화가 되어있다. 내 업무는 아직 2019년 KPI가 안나와 있어서 모르지만 나름 정성, 정량 평가가 잘 조화되서 KPI가 설정되는 것 같아서 어떤 형태가 될 지 궁금하다. 하나 좋은 건 워낙 덩어리가 크게 지표들이 설정되어 있어서 뭔가 빠뜨릴까 전전긍긍하는 일은 없어도 된다는 거다.

문서관리

우리랑 문서시스템이 크게 차이가 있는데, 어떤 사안별로 “사안”명을 넣은 문서그룹을 설정하고 그 안에 관련된 문서와 저장이 필요한 이메일 수발신 내용을 전부 기록한다. 우리처럼 어떤 형식이 정해져있지는 않다. 물론 문서에 따라서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이메일의 경우는 그런 것이 없으니 말이다. 아웃룩에 연동된 문서저장시스템을 통해 쉽게 이메일을 문서로 저장할 수 있고, 관련 문서번호는 자동으로 채번된다. 쏟아지는 문서에 매몰되는 일이 없어서 좋다.

금요일 아침식사

금요일엔 대부분의 회사가 아침식사로 업무를 시작한다. 우리는 9시 15분부터 아침식사를 함께 하는데, 각자 당번을 맡아서 한번씩 돌아가며 아침식사를 사오는데, 빵, 치즈, 버터 등 대충 정해져있다. 이 식사에 붙여 주간 회의를 하는데, 업무보고는 아니고 전달사항 같은 게 있으면 하는 식이다. 먹으면서 체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근무 이튿날도 무사히 흘러갔다. 사람들도 너무 나이스하고 각자 하는 일이 서로에게 긴밀하게 영향을 주게 되어 있어서 협업이 많아야 하는 점도 재미있을 거 같고 (물론 스트레스도 있겠지만) 좋다. 그래도 주말이 좋은 건 엉망진창이 된 집을 정리하고 싶어서라 해야하나. 그간 그렇게 취직하고 싶어하더니 주말이 바로 좋은 건 너무 간사한 거 같다. 흠흠. 하나와 같이 보낼 내일, 모레 이틀이 기대된다.

한국이 낯설게 느껴질 때

  • 설겆이를 하려는데 싱크대가 너무 낮을 때. 덴마크 싱크대가 내 허리에 딱 맞아서 한국 싱크대가 새삼 낮게 느껴질 때
  • 우회전을 할 때 신호 없이 우회전을 해도 된다는 게 영 불안하고 있지도 않은 자전거주행자가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며 회전할 때
  • 매장에 들어설 때 아무런 다른 역할없이 인사만 하는 점원이 영혼없는 모습으로 공허한 인사를 하고 아무도 그 인사에 대답을 안하는 모습을 볼 때
  • 그래서 그 인사에 내가 답을 하면 낯섬에 당황함이 느껴지는 점원의 얼굴을 볼 때
  • 나와 옌스가 하나와 걸어다닐 때, 하나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옌스의 얼굴을 쳐다본 후 끄덕거리는 모습을 볼 때
  • 하나와 쉽게 놀 수 있는 야외놀이터를 찾기가 어려울 때
  • 서울이 너무 크다고 생각될 때
  • 미용실에서 헤어디자이너 한명 뿐 아니라 어시스턴트 두명이 붙어서 커트를 도와줄 때
  • 그리고 그 가격이 너무 쌀 때
  • 홈쇼핑과 드라마 채널이 낯설게 느껴질 때
  • 한결같이 젊은 사람 일색인 뉴스 아나운서의 로보트같은 화장과 정장차림이 이상할 때
  • 단지 내가 자기보다 어리다고 반말하고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둥글려 답하는데도 굳이 집요하게 같은 질문으로 파고들 때
  • 엄청 많은 식당과 술집 간판을 볼 때
  • 이쁘고 아기자기한 디저트류를 여기저기서 흔히 볼 수 있을 때

 

 

처음에 덴마크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던 나는 어느새 덴마크의 삶에 익숙해졌다. 그때의 불편함과 낯섦은 당연함이 되었고, 한국의 익숙함은 낯섦으로 바뀌었다. 너무 차이가 극명해서 그 대조가 쉽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옌스와 결혼하며 한국에서의 삶은 고려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의 국제커플의 삶은 피곤한 면이 꽤 있는 것 같다. 끊임없는 질문과 시선 때문에. 사실 애 없을 땐 이 정도는 아닌 거 같았는데 웃으며 넘기긴 해도 조금 불편함이 있다. 또 키즈까페에서 하나와 놀면서 ‘쟤는 외국인인가봐, 머리가 노래, 머리가 노란데 왜 이름은 한국어로 써있지?’ 와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고, 엄마가 한국인이니 아이는 한국인이기도 하다고 해줘도 아니라는 부정의 말을 들을 때 덴마크를 터전으로 잡은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한국인이지만 여기서 더 이방인같은 느낌이 든다는 게 참 이상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배타적이어야 할까?

덴마크에 산지 5년, 한국과 다른 점 1

덴마크에 산 지도 어느새 거의 5년. 한달만 있으면 만으로 5년이 된다. 어느새 그렇게 시간이 흘렀구나 싶게 길지 않은 시간 같다. 하긴 대학원도 거의 끝나가고 애도 낳아서 17개월이 되어가니 이상할 것도 없네. 이제 이곳에서의 삶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여기가 이래서 더 좋거나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냥 당연하게 느끼게 되어서. 이제 그냥 여기 사회에 동화된 느낌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 한번 쯤 과거를 돌이켜보며 내가 현재 서 있는 곳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한국과 다른 점, 또는 이 곳의 다른 문화와 시스템 여건으로 인해 내가 한국에서와 달라진 점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자전거

유모차를 갖고 나가거나 비가 오는 날, 동결 방지를 위해 길에 소금이 뿌려져있는 시기(11월-3월)를 제외하면 가급적 자전거를 타고 나선다. 대학원까지 처음으로 자전거로 가던 날, 집에서 8km인 거리를 40분동안 힘들게 페달밟아 갔다. 구글엔 25분이라고 써있는데, 가는 길은 평균적으로는 약간 내리막이지만 제법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해서 있는 탓에 너무 헉헉대서 그랬다. 요즘은 학교까지는 25분 이내에 크게 힘들지 않게 간다.

대중교통이 비싼 편이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7000원 정도 한다. 오래 살다보니 그냥 여기 가격을 받아들이게 되어 이제는 별 다른 감흥이 없다. 그래도 통근을 자전거로 주로 하는 시기엔 지출 절감에 알게모르게 도움이 된다.

최근 헬스장에서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더니 오늘 시내 가는 길 10km가 전혀 힘들지 않았다. 대학원 처음 다니던 시절이 2015년이니까 한국나이로 36살때였는데… 그때보다는 애를 낳은 지금이 체력적으로 더 좋아졌다. 아마 자전거도 타고다니고 틈틈히 운동도 해서 그렇겠지. 마른 몸보다 근육이 있는 탄탄한 몸을 선호하는 문화 탓에 열심히들 운동하는게 눈에 보여서 나도 조금이라도 더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달리기도 더 하게되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히려 체력을 보강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잘 걸어다니지 않을 거리가 여기에선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로 다닐 거리가 되고, 그 덕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더 생기게 되는 거 같다.


날씨, 적정온도

비오고 바람부는 날씨가 익숙해졌다. 인도에서 살다가 한국가서 여름에 견디기 쉬웠던 것처럼 여기에서도 내 몸은 어느새 적응을 해가고 있다. 실내에서 적정한 온도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고, 같은 온도와 바람에 입는 옷이 바뀌었다. 여기 사람들은 왜 그리 춥고 비오는 날 얇게 입고 다니나 했는데, 그 날씨에 아직 적응이 안되었을 때 그랬다. 요즘 기후 이변으로 더운 날이 생겨서 그렇지 여기 여름 날씨라고 해봐야 20도 언저리가 흔하다. 거기에 비도 오고 흐리고 바람 불면 한국사람들은 엄청 춥다고 한다. 나도 예전엔 그랬으니까. 요즘은 25도면 더워서 힘들다. 같은 날씨면 예전보다 옷을 한겹 또는 두겹 덜 입는다. 겨울에도.

여기 날씨에 대해 처음에 많이 불평했는데, 겨울에 낮이 좀 짧은 거 빼고는 여기 날씨가 마음에 든다. 물론 겨울이 긴 건 좀 아쉽긴 한데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으니… 이제 한국은 여름과 겨울에는 가급적 방문하지 않는 걸로…


 

너무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하고 나머지는 다음에 더 이어 쓰는 것으로 해야겠다…

“한국이 그리운가?”

몇 일 전, 여름과정 기말 프로젝트를 함께 하던 덴마크 친구가 물었다. “한국이 그립지는 않아?” 한 5초정도 고민을 하다가 (사실 대화 중 5초의 적막은 짧지 않다.) 그렇지 않다는 답을 해주었다. 사실 내가 그리운 건 한국이 아니라 한국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 등이지 한국이 그리운 건 아니라고 덧붙이며.

뭘 먹을 수 있을지조차 잘 모르겠어 한국 음식이 막연히 그립던 입덧 시기를 지나간 후에는 한국 음식 자체가 생각이 나지 않고 있다. 강한 냄새나 양념, 고기 등이 싫어지고 나니 그런 것 같고, 그나마 심각한 갈증을 느끼던 음식은 한국가서 몇 번 먹고나니 해갈이 되었던 모양이다. 또 엄청나게 그리워하던 음식들은 내 머릿속으로 그리던 음식 맛과 실제 맛 간의 괴리만 오히려 느끼고 나서 그 갈증이 싹 없어지기도 했고.

한국의 자연이 그리울 때는 있다. 자주 가지는 않았어도 간혹 가고 싶을 때 오를 수 있는 산이 있었던 것이 가장 그립다. 지평선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여기저기 솟아있는 산은 한국에 사는 이상 그리워할 이유가 없는 너무나 당연한 존재였는데, 덴마크는 다 평지니까.

20대까지만 해도 서울이 정말 좋았다. 모든 것이 집적되어 있기에 음식, 공연, 전시, 쇼핑 등 내가 먹고, 보고, 하고 싶은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 평균 한시간이 넘는 도시내 이동시간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특별히 불편하다고 느낄 일도 없었고, 사람이 많은 거리는 도시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피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런 인파를 뚫고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그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동을 느꼈고, 미여터질듯한 유명 작가의 전시를 줄서서 볼 때면, 그 인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전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감사했다. 교보문고와 같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큰 서점에 앉아서 사고 싶은 책을 천천히 읽어가며 고를 때면 도심 한복판의 여유가 더욱이나 소중하게 느껴졌고, 또 대형 오페라나 클래식 콘서트에 가면 그런 공연 저변이 별로 없는 지방에 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다행이다 싶었는지.

인도에서 2년 반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던 2011년 그 해, 나는 역문화충격을 받았다. 길에는 차와 사람, 동물로 그 복잡함에 정신이 혼미해질 듯한 현기증을 자주 느끼곤 했지만, 쇼핑센터를 가던 식당을 가던 내가 돈을 내고 소비를 하는 공간에서는 한국에서와 같은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이미 길에서 느낀 피곤함으로 인해 한국과 다르다고 느끼지 못했고, 한국에 돌아가면 항상 지금의 이 생활보다 좋을 것이라고만 상상을 하곤 했던 것이다. 막상 돌아온 후에 느낀 건 인도보다 질서정연한 도로와 정리된 도심 이외에는 더 복잡하고, 더 피곤한 일상이었다. 어딜 가도 줄을 서야 하고, 물건을 사려고 해도 사고 싶은 건 사이즈가 없고, 뭘 보려해도 미여터지는 사람 구경을 해야 하는 것 등. 물론 인도에 없던 문화 저변에 대한 접근은 대단히 감사한 일이었지만, 내가 기억하던 것과 달리 서울이 정말 붐비고 지치는 도시라는 것을 인식하게된 큰 계기가 되었다.

덴마크에 오고 나니 이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더이상 내가 서울과 같은 대도시생활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난 아주 간혹 문화적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기회와 자연만 있으면 크게 여행을 다녀야 되는 것도 아니고, 맛있는 것을 찾아 먹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것 저것 쇼핑을 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모르던 나를 알게 된 것이다.

이민이라는 게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이 직장을 구해야 하고, 언어도 배워야 한다. 이제 사전을 옆에 두면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일간신문을 읽을 수 있고, 왠만한 대화는 다 덴마크어로 할 수 있다. 직장생활을 덴마크어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 뿐이지. 대학원을 원하는 대로 배우고 싶은 것들을 잘 흡수해 배우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목표를 향해감과 동시에, 내 가정도 잘 꾸려가고, 운동도 해가며 덴마크어를 배우는 등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저글링하듯 해야 한다. 마침 운동선수가 잘 맞는 매니저를 만난 듯이 나를 잘 이해하고 나와 비슷한 남편을 만나 여러모로 배우며 나 스스로를 잘 채찍질 할 수 있게 되었다. 페이스 조절 잘하며 장거리 레이스를 잘 할 수 있게끔 말이다.

이민자로서 느끼는 피로감을 느꼈던 시기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런 시기가 다시금 닥쳐올 순간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있다. 그래도 난 이제 덴마크의 삶에 충분히 적응을 했고, 이 곳의 삶이 내 라이프스타일과 잘 맞기에 오히려 더 내 집같은 생각이 든다. 언어가 편안해지면서 사회로부터 더욱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물질적이든 자연 환경이든 소비를 하고 싶은 것들은 충분히 소비할 수 있는 저변이 되면서도 물질적 소비가 중심을 이루지 않는 사회문화, 가족 중심의 생활 패턴,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사회의 룰을 지키는 범위안에서라면 서로 터치하지 않는 점 등이 좋다. 내가 가정을 꾸리며 처음으로 제대로 된 뿌리를 내리게 된 곳이 여기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막상 질문을 던진 덴마크 친구는, 자기는 덴마크를 뜨면 정말 덴마크가 그리울 것 같다며, 인도네시아에 정착해 현지인과 결혼해 10년 이상 살고 있는 자기 형처럼 나 같이 이민 생활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을 크게 그리워하지 않으며 살고 있는 내가 신기하다고. 3년을 살고 이런 일을 논하기엔 내 이곳 생활이 너무 짧은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7년을 더 살고 나면 난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지막 나 홀로 한국여행

한국은 정말 가마솥 더위가 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서히 올라가는 기온에 적응했다면 모르겠지만 조석으로 15~20도 사이의 기온과 함께 부슬비, 바람이 결합된 날씨에 적응되어 있던 나에겐 견디기 힘든 날씨였다. 도착하는 날은 오후 3시에 랜딩하고, 출발하는 날은 오후 1시 반에 이륙하기에 공항에서 집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여드레 반도 안되는 기간동안 머물러있었는데, 그게 짧으면서도 참 길게 느껴진 것 또한 이 날씨 때문이었다.

속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건 아니라 하루 한끼 이상은 제대로 먹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계획했건 음식들의 상당 부분을 먹을 수 있던 것은 참 다행이었다. 먹고 싶었던 갖가지 나물과 낚지 볶음, 칼국수, 만두, 각종 해물찜 등. 깻잎 씨앗과 콩나물 콩을 사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다 만나지 못했던 것도 아쉽지만, 이 또한 시간이 너무 없었다. 날이 너무 덥고, 배가 조금씩 나오면서부터 중간중간 쉬고도 싶어지는 탓에, 점심, 저녁 약속 모두 잡고 비는 시간을 떠도는 일정을 소화할 수가 없는 것, 주말이 한 번 밖에 없는 것도 모두 제약요소가 되었다.

한국에서 떨어져있던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한국이 낯설어지는 면도 늘어난다. 새로이 봐서 낯 선 모습도 있지만, 그간 보지 않아서 낯설어진, 원래는 익숙했던 모습도 있다. 주변에서 한국말만 들려오는 것, 시내 도심에서 다른 도심으로 가는데까지 한시간씩 걸리는 것, 더 거칠어진 듯한 사람들의 운전 습관 (도로 한복판을 가로막는 꼬리 물기는 정말 인상깊었다.), 지난번과 또 달라진 사람들의 메이크업 유행, 길이든 상점이든 식당이든 어딜가나 사람으로 붐비는 모습, 맛집 앞 길게 늘어선 줄 (특히 종로의 모밀집이나 강남역의 셰이크셱 버거), 줄 서서 걸어가는 듯한 강남대로의 인파, 여기저기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왕복 8~10차선 도로, 줄어든 성형외과 광고 (전에 한동안 어딜가나 성형외과 광고로 도배되어 있었는데.) 식당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번호벨, 소리 높여 사람을 부르는 식당 문화, 거리에 거의 보이지 않는 자전거, 교차로와 횡단보도의 긴 신호등, 낮은 세면대, 줄어든 길거리 흡연자 수 (거의 못 본 것 같다. 덴마크에서 훨씬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듯.), 임산부에게 몸 조심하라고 나보다 더 걱정해주는 사람들, 서로 계산하려고 경쟁하는 사람들, 점심시간에 쏟아져나오는 직장인 인파, 없던 사이 새로 생긴 많은 건물 등등.

낯설다는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내 삶의 기본 환경이 달라졌다고 눈에 새롭게 띈다는 사실이 재미도 있고 사람이 얼마나 쉽게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는 지 간사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제 짐을 싸야겠다. 아침 8시 반엔 출발해야 하는데, 어느새 오후 6시가 넘었다. 내년의 한국방문은 이번과는 완전 양상이 다를 것이다. 나 하나 바라보는 어린 아기를 데리고 들어올 것이고, 남편도 한달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머물며 한국 생활을 간접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을 것이고, 시부모님도 한국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더 특별했다. 내 홀몸 (뱃속의 태아는 아직 내 일부인 것으로 치고)으로 하는 마지막 여행. 이 여행을 끝내는 의식으로 짐을 싸고, 돌아가자마자 바쁜 리듬으로 시작될 덴마크의 생활을 미리 계획해보며 오늘을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