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낯설게 느껴질 때

  • 설겆이를 하려는데 싱크대가 너무 낮을 때. 덴마크 싱크대가 내 허리에 딱 맞아서 한국 싱크대가 새삼 낮게 느껴질 때
  • 우회전을 할 때 신호 없이 우회전을 해도 된다는 게 영 불안하고 있지도 않은 자전거주행자가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며 회전할 때
  • 매장에 들어설 때 아무런 다른 역할없이 인사만 하는 점원이 영혼없는 모습으로 공허한 인사를 하고 아무도 그 인사에 대답을 안하는 모습을 볼 때
  • 그래서 그 인사에 내가 답을 하면 낯섬에 당황함이 느껴지는 점원의 얼굴을 볼 때
  • 나와 옌스가 하나와 걸어다닐 때, 하나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옌스의 얼굴을 쳐다본 후 끄덕거리는 모습을 볼 때
  • 하나와 쉽게 놀 수 있는 야외놀이터를 찾기가 어려울 때
  • 서울이 너무 크다고 생각될 때
  • 미용실에서 헤어디자이너 한명 뿐 아니라 어시스턴트 두명이 붙어서 커트를 도와줄 때
  • 그리고 그 가격이 너무 쌀 때
  • 홈쇼핑과 드라마 채널이 낯설게 느껴질 때
  • 한결같이 젊은 사람 일색인 뉴스 아나운서의 로보트같은 화장과 정장차림이 이상할 때
  • 단지 내가 자기보다 어리다고 반말하고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둥글려 답하는데도 굳이 집요하게 같은 질문으로 파고들 때
  • 엄청 많은 식당과 술집 간판을 볼 때
  • 이쁘고 아기자기한 디저트류를 여기저기서 흔히 볼 수 있을 때

 

 

처음에 덴마크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던 나는 어느새 덴마크의 삶에 익숙해졌다. 그때의 불편함과 낯섦은 당연함이 되었고, 한국의 익숙함은 낯섦으로 바뀌었다. 너무 차이가 극명해서 그 대조가 쉽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옌스와 결혼하며 한국에서의 삶은 고려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의 국제커플의 삶은 피곤한 면이 꽤 있는 것 같다. 끊임없는 질문과 시선 때문에. 사실 애 없을 땐 이 정도는 아닌 거 같았는데 웃으며 넘기긴 해도 조금 불편함이 있다. 또 키즈까페에서 하나와 놀면서 ‘쟤는 외국인인가봐, 머리가 노래, 머리가 노란데 왜 이름은 한국어로 써있지?’ 와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고, 엄마가 한국인이니 아이는 한국인이기도 하다고 해줘도 아니라는 부정의 말을 들을 때 덴마크를 터전으로 잡은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한국인이지만 여기서 더 이방인같은 느낌이 든다는 게 참 이상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배타적이어야 할까?

덴마크에 산지 5년, 한국과 다른 점 1

덴마크에 산 지도 어느새 거의 5년. 한달만 있으면 만으로 5년이 된다. 어느새 그렇게 시간이 흘렀구나 싶게 길지 않은 시간 같다. 하긴 대학원도 거의 끝나가고 애도 낳아서 17개월이 되어가니 이상할 것도 없네. 이제 이곳에서의 삶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여기가 이래서 더 좋거나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냥 당연하게 느끼게 되어서. 이제 그냥 여기 사회에 동화된 느낌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 한번 쯤 과거를 돌이켜보며 내가 현재 서 있는 곳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한국과 다른 점, 또는 이 곳의 다른 문화와 시스템 여건으로 인해 내가 한국에서와 달라진 점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자전거

유모차를 갖고 나가거나 비가 오는 날, 동결 방지를 위해 길에 소금이 뿌려져있는 시기(11월-3월)를 제외하면 가급적 자전거를 타고 나선다. 대학원까지 처음으로 자전거로 가던 날, 집에서 8km인 거리를 40분동안 힘들게 페달밟아 갔다. 구글엔 25분이라고 써있는데, 가는 길은 평균적으로는 약간 내리막이지만 제법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해서 있는 탓에 너무 헉헉대서 그랬다. 요즘은 학교까지는 25분 이내에 크게 힘들지 않게 간다.

대중교통이 비싼 편이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7000원 정도 한다. 오래 살다보니 그냥 여기 가격을 받아들이게 되어 이제는 별 다른 감흥이 없다. 그래도 통근을 자전거로 주로 하는 시기엔 지출 절감에 알게모르게 도움이 된다.

최근 헬스장에서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더니 오늘 시내 가는 길 10km가 전혀 힘들지 않았다. 대학원 처음 다니던 시절이 2015년이니까 한국나이로 36살때였는데… 그때보다는 애를 낳은 지금이 체력적으로 더 좋아졌다. 아마 자전거도 타고다니고 틈틈히 운동도 해서 그렇겠지. 마른 몸보다 근육이 있는 탄탄한 몸을 선호하는 문화 탓에 열심히들 운동하는게 눈에 보여서 나도 조금이라도 더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달리기도 더 하게되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히려 체력을 보강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잘 걸어다니지 않을 거리가 여기에선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로 다닐 거리가 되고, 그 덕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더 생기게 되는 거 같다.


날씨, 적정온도

비오고 바람부는 날씨가 익숙해졌다. 인도에서 살다가 한국가서 여름에 견디기 쉬웠던 것처럼 여기에서도 내 몸은 어느새 적응을 해가고 있다. 실내에서 적정한 온도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고, 같은 온도와 바람에 입는 옷이 바뀌었다. 여기 사람들은 왜 그리 춥고 비오는 날 얇게 입고 다니나 했는데, 그 날씨에 아직 적응이 안되었을 때 그랬다. 요즘 기후 이변으로 더운 날이 생겨서 그렇지 여기 여름 날씨라고 해봐야 20도 언저리가 흔하다. 거기에 비도 오고 흐리고 바람 불면 한국사람들은 엄청 춥다고 한다. 나도 예전엔 그랬으니까. 요즘은 25도면 더워서 힘들다. 같은 날씨면 예전보다 옷을 한겹 또는 두겹 덜 입는다. 겨울에도.

여기 날씨에 대해 처음에 많이 불평했는데, 겨울에 낮이 좀 짧은 거 빼고는 여기 날씨가 마음에 든다. 물론 겨울이 긴 건 좀 아쉽긴 한데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으니… 이제 한국은 여름과 겨울에는 가급적 방문하지 않는 걸로…


 

너무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하고 나머지는 다음에 더 이어 쓰는 것으로 해야겠다…

“한국이 그리운가?”

몇 일 전, 여름과정 기말 프로젝트를 함께 하던 덴마크 친구가 물었다. “한국이 그립지는 않아?” 한 5초정도 고민을 하다가 (사실 대화 중 5초의 적막은 짧지 않다.) 그렇지 않다는 답을 해주었다. 사실 내가 그리운 건 한국이 아니라 한국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 등이지 한국이 그리운 건 아니라고 덧붙이며.

뭘 먹을 수 있을지조차 잘 모르겠어 한국 음식이 막연히 그립던 입덧 시기를 지나간 후에는 한국 음식 자체가 생각이 나지 않고 있다. 강한 냄새나 양념, 고기 등이 싫어지고 나니 그런 것 같고, 그나마 심각한 갈증을 느끼던 음식은 한국가서 몇 번 먹고나니 해갈이 되었던 모양이다. 또 엄청나게 그리워하던 음식들은 내 머릿속으로 그리던 음식 맛과 실제 맛 간의 괴리만 오히려 느끼고 나서 그 갈증이 싹 없어지기도 했고.

한국의 자연이 그리울 때는 있다. 자주 가지는 않았어도 간혹 가고 싶을 때 오를 수 있는 산이 있었던 것이 가장 그립다. 지평선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여기저기 솟아있는 산은 한국에 사는 이상 그리워할 이유가 없는 너무나 당연한 존재였는데, 덴마크는 다 평지니까.

20대까지만 해도 서울이 정말 좋았다. 모든 것이 집적되어 있기에 음식, 공연, 전시, 쇼핑 등 내가 먹고, 보고, 하고 싶은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 평균 한시간이 넘는 도시내 이동시간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특별히 불편하다고 느낄 일도 없었고, 사람이 많은 거리는 도시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피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런 인파를 뚫고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그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동을 느꼈고, 미여터질듯한 유명 작가의 전시를 줄서서 볼 때면, 그 인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전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감사했다. 교보문고와 같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큰 서점에 앉아서 사고 싶은 책을 천천히 읽어가며 고를 때면 도심 한복판의 여유가 더욱이나 소중하게 느껴졌고, 또 대형 오페라나 클래식 콘서트에 가면 그런 공연 저변이 별로 없는 지방에 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다행이다 싶었는지.

인도에서 2년 반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던 2011년 그 해, 나는 역문화충격을 받았다. 길에는 차와 사람, 동물로 그 복잡함에 정신이 혼미해질 듯한 현기증을 자주 느끼곤 했지만, 쇼핑센터를 가던 식당을 가던 내가 돈을 내고 소비를 하는 공간에서는 한국에서와 같은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이미 길에서 느낀 피곤함으로 인해 한국과 다르다고 느끼지 못했고, 한국에 돌아가면 항상 지금의 이 생활보다 좋을 것이라고만 상상을 하곤 했던 것이다. 막상 돌아온 후에 느낀 건 인도보다 질서정연한 도로와 정리된 도심 이외에는 더 복잡하고, 더 피곤한 일상이었다. 어딜 가도 줄을 서야 하고, 물건을 사려고 해도 사고 싶은 건 사이즈가 없고, 뭘 보려해도 미여터지는 사람 구경을 해야 하는 것 등. 물론 인도에 없던 문화 저변에 대한 접근은 대단히 감사한 일이었지만, 내가 기억하던 것과 달리 서울이 정말 붐비고 지치는 도시라는 것을 인식하게된 큰 계기가 되었다.

덴마크에 오고 나니 이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더이상 내가 서울과 같은 대도시생활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난 아주 간혹 문화적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는 기회와 자연만 있으면 크게 여행을 다녀야 되는 것도 아니고, 맛있는 것을 찾아 먹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것 저것 쇼핑을 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모르던 나를 알게 된 것이다.

이민이라는 게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이 직장을 구해야 하고, 언어도 배워야 한다. 이제 사전을 옆에 두면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일간신문을 읽을 수 있고, 왠만한 대화는 다 덴마크어로 할 수 있다. 직장생활을 덴마크어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 뿐이지. 대학원을 원하는 대로 배우고 싶은 것들을 잘 흡수해 배우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목표를 향해감과 동시에, 내 가정도 잘 꾸려가고, 운동도 해가며 덴마크어를 배우는 등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저글링하듯 해야 한다. 마침 운동선수가 잘 맞는 매니저를 만난 듯이 나를 잘 이해하고 나와 비슷한 남편을 만나 여러모로 배우며 나 스스로를 잘 채찍질 할 수 있게 되었다. 페이스 조절 잘하며 장거리 레이스를 잘 할 수 있게끔 말이다.

이민자로서 느끼는 피로감을 느꼈던 시기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런 시기가 다시금 닥쳐올 순간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있다. 그래도 난 이제 덴마크의 삶에 충분히 적응을 했고, 이 곳의 삶이 내 라이프스타일과 잘 맞기에 오히려 더 내 집같은 생각이 든다. 언어가 편안해지면서 사회로부터 더욱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물질적이든 자연 환경이든 소비를 하고 싶은 것들은 충분히 소비할 수 있는 저변이 되면서도 물질적 소비가 중심을 이루지 않는 사회문화, 가족 중심의 생활 패턴,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사회의 룰을 지키는 범위안에서라면 서로 터치하지 않는 점 등이 좋다. 내가 가정을 꾸리며 처음으로 제대로 된 뿌리를 내리게 된 곳이 여기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막상 질문을 던진 덴마크 친구는, 자기는 덴마크를 뜨면 정말 덴마크가 그리울 것 같다며, 인도네시아에 정착해 현지인과 결혼해 10년 이상 살고 있는 자기 형처럼 나 같이 이민 생활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을 크게 그리워하지 않으며 살고 있는 내가 신기하다고. 3년을 살고 이런 일을 논하기엔 내 이곳 생활이 너무 짧은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7년을 더 살고 나면 난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지막 나 홀로 한국여행

한국은 정말 가마솥 더위가 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서히 올라가는 기온에 적응했다면 모르겠지만 조석으로 15~20도 사이의 기온과 함께 부슬비, 바람이 결합된 날씨에 적응되어 있던 나에겐 견디기 힘든 날씨였다. 도착하는 날은 오후 3시에 랜딩하고, 출발하는 날은 오후 1시 반에 이륙하기에 공항에서 집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여드레 반도 안되는 기간동안 머물러있었는데, 그게 짧으면서도 참 길게 느껴진 것 또한 이 날씨 때문이었다.

속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건 아니라 하루 한끼 이상은 제대로 먹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계획했건 음식들의 상당 부분을 먹을 수 있던 것은 참 다행이었다. 먹고 싶었던 갖가지 나물과 낚지 볶음, 칼국수, 만두, 각종 해물찜 등. 깻잎 씨앗과 콩나물 콩을 사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다 만나지 못했던 것도 아쉽지만, 이 또한 시간이 너무 없었다. 날이 너무 덥고, 배가 조금씩 나오면서부터 중간중간 쉬고도 싶어지는 탓에, 점심, 저녁 약속 모두 잡고 비는 시간을 떠도는 일정을 소화할 수가 없는 것, 주말이 한 번 밖에 없는 것도 모두 제약요소가 되었다.

한국에서 떨어져있던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한국이 낯설어지는 면도 늘어난다. 새로이 봐서 낯 선 모습도 있지만, 그간 보지 않아서 낯설어진, 원래는 익숙했던 모습도 있다. 주변에서 한국말만 들려오는 것, 시내 도심에서 다른 도심으로 가는데까지 한시간씩 걸리는 것, 더 거칠어진 듯한 사람들의 운전 습관 (도로 한복판을 가로막는 꼬리 물기는 정말 인상깊었다.), 지난번과 또 달라진 사람들의 메이크업 유행, 길이든 상점이든 식당이든 어딜가나 사람으로 붐비는 모습, 맛집 앞 길게 늘어선 줄 (특히 종로의 모밀집이나 강남역의 셰이크셱 버거), 줄 서서 걸어가는 듯한 강남대로의 인파, 여기저기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왕복 8~10차선 도로, 줄어든 성형외과 광고 (전에 한동안 어딜가나 성형외과 광고로 도배되어 있었는데.) 식당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번호벨, 소리 높여 사람을 부르는 식당 문화, 거리에 거의 보이지 않는 자전거, 교차로와 횡단보도의 긴 신호등, 낮은 세면대, 줄어든 길거리 흡연자 수 (거의 못 본 것 같다. 덴마크에서 훨씬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듯.), 임산부에게 몸 조심하라고 나보다 더 걱정해주는 사람들, 서로 계산하려고 경쟁하는 사람들, 점심시간에 쏟아져나오는 직장인 인파, 없던 사이 새로 생긴 많은 건물 등등.

낯설다는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내 삶의 기본 환경이 달라졌다고 눈에 새롭게 띈다는 사실이 재미도 있고 사람이 얼마나 쉽게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는 지 간사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제 짐을 싸야겠다. 아침 8시 반엔 출발해야 하는데, 어느새 오후 6시가 넘었다. 내년의 한국방문은 이번과는 완전 양상이 다를 것이다. 나 하나 바라보는 어린 아기를 데리고 들어올 것이고, 남편도 한달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머물며 한국 생활을 간접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을 것이고, 시부모님도 한국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더 특별했다. 내 홀몸 (뱃속의 태아는 아직 내 일부인 것으로 치고)으로 하는 마지막 여행. 이 여행을 끝내는 의식으로 짐을 싸고, 돌아가자마자 바쁜 리듬으로 시작될 덴마크의 생활을 미리 계획해보며 오늘을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