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문 직전 급히 바쁜 근황

일주일동안 한국에 다녀올 예정이다. 가을방학 기간에는 휴가를 내는 부모들이 많아 이때는 휴가를 내는 게 옌스에게 그닥 어렵지 않기도 하고 한국에 날씨가 좋은 이유도 있고 등등해서 이때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때엔 직장을 구했을 확률도 현저히 낮다고 판단한 이유였다. 너무 짧은데다가 병원 검진, 작은 지방종 절제 (여기서는 미용시술이라 안해줄 그런 작은 거지만, 이마에 있는데다가 조금 커지는 거 같아서 괜히 늦어지기 전에…), 가족 행사 등이 많아서 전적으로 가족방문의 기간으로 삼게 될 것 같다.

한국에 다녀오기로 해서 그런가. 2주짜리 프로젝트가 딱 한국가기 2주 반전에 잡혔는데, 나를 단기로 고용하기로 한 컨설팅펌에서 발주처와의 계약 문제로 계약이 1주일이 밀렸다. 2주짜리 프로젝트를 1주일 반 안에 해야 하는 상황. 오늘은 더이상 일 할 수 없을만큼 오래 일했으니 이제 접어뒀지만 중간에 하나가 아픈 일이 있으면 절대 안되게 타이트해졌다. 짐은 주말 저녁에 싸야한다. 옌스가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밤 늦게까지 출장을 가는터라 주말 낮엔 싸기가 어려울 것 같다. 하나 거 중심으로만 싸야지. 시부모님이 금-토 이렇게 오신다니까 그때 좀 봐달라고 하고 짐을 싸던가 해봐야겠다.

면접이 하나 잡혔다. 졸업하기 직전부터해서 이력서를 몇개 썼더라.  5개를 썼구나. 2개는 거절당했고, 세번째로 쓴 곳에서 면접이 잡혔다. 나머지 2개는 아직 서류전형 중이다. 2개 거절당하고 나서 (사실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음에도) 그 충격이 생각보다 컸나보다. 마치 10번은 거절당한 듯한 기억이었던 것을 보면. 하필이면 일분일초가 귀한 타이밍에 면접을 보러 가야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물론 당연히 면접을 보러가야지.

잘되면 좋은 거고, 안되도 면접 연습을 한 셈이니 좋은 거다. 안그래도 제일 가고 싶은 회사 (지금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에 오프닝이 하나 났는데, 여기 면접 기회가 올 지야 모르지만 온다고 하면 이곳을 위한 면접 연습도 되는 셈이니…

프로젝트는 정말 재미있다. 진작에 데이터 프로그래밍 쪽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았을텐데 싶을 정도로. 배우는 것도 많은데 돈도 주고!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싸게 나의 고급노동력을 이용하는 거다. ) 논문을 GIS와 R을 많이 써야 하는 주제로 정한 덕에 나도 모르게 이 두 프로그램과 많이 친해져있었다. 2주동안 빠른 속도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 같다. 직장이 빨리 안잡히면 Datacamp 등을 통해 프로그래밍 공부도 좀 하고, 부동산 시장도 들여다볼겸 (집산다는 친구도 있고 등등) 데이터 놀이도 해볼까한다.

내일 또 일하러 나갈 생각에 기분이 들뜬다. 물론 일과 육아 및 가정생활을 병행하려다 생기는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지만, 그거야 내가 가정주부로 내 재량이 아주 많아지는 경우를 제외하고서야 어떤 경우에도 있을 거 아닌가.

이제는 자러가야지. 내일은 내일의 코딩이 기다리니까. 🙂

시부모님 오시기 전 한국방문기간을 정리하며

아기와 함께 하는 고국방문은 전혀 다르리라는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 유모차 하나로 대중교통 타고 다니며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던지라 아기가 하나 있는 게 크리 큰 장애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애가 카시트를 싫어하긴 했지만 금방 적응하리라고, 그전에 그랬듯이 애가 항상 건강할 것이라고, 밥은 항상 잘 먹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동경에도 가볼 수 있지 않겠냐면서 한번 계획해보자고 했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황당무계한 상상이었는지.

시부모님 계시는 한주를 제외하면 거의 한달 반에 달하는 시간이었는데, 가족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보자고 약속을 하고 기대를 한껏 하고 왔던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쉽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남편이 뭘 쓰느냐고 물어서 답을 해줬더니 자기는 이번 여행은 자기가 예상한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육아휴직여행이지 놀러가는 휴가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냐한다. 내가 나이브했나?

하나는 도착해서 첫 2주를 감기로 고생하며 신고식을 하더니 지난 며칠은 돌발진이라는 것으로 고생을 했다. 사흘 정도를 고열로 고생을 하더니 갑자기 어제 열꽃이 피는 것이었다. 열꽃을 찾아보니 돌발진이라는 병명을 알 수 있었는데 증상이 정확히 하나와 일치하더라.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니 (혹여나 다른 병일 수도 있어서) 열이 내리면서 발진이 난 거면 돌발진이 맞고 (증상으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병이란다.) 그거면 힘든 부분은 다 지난거라며 열이 다시 오르는지와 가려워서 긁는 일이 있는지 등만 관찰하라고 했다. 39도가 넘어 끙끙거리던 밤만은 병원으로 가야하는지를 참 고심했는데, 결국은 안가기를 잘했다. 가봐야 해열제 처방 받는 거 외엔 크게 해줄 수 있는게 없다고 한다.


최근 하나는 부쩍 컸다.

엄마, 아빠를 말하고, 드디어 책은 먹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뚜렷하게 인식한 것 같다. 새로운 단어를 반복해서 이야기해주거나 혀를 차는 것 같은 소리를 들려주면 한참 관찰하다 따라하곤 한다.

애가 이유를 모르게 찡찡댈 때 달래줄 수 있는 방법이 안거나 업어주는 것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놀아주는 것으로 상당부분 대체되었다. 좋아하는 인형을 주고 안아주는 거는 정말 피곤해서 쉬고싶을 때만 통한다.

숟가락으로 떠먹여주는 이유식은 거의 다 거부한다. 자기가 손가락으로 탐험을 한 음식을 자기가 손으로 먹거나 포크로 먹기를 원하고, 어른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싶어한다.

할머니가 안아주면 엄마가 방에 들어가서 쉬거나 외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할머니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안아주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가 생겼다. 물론 아예 내가 외출하는 경우는 아빠보다 할머니가 안아주는 것을 선호하고 할머니를 많이 따른다고 한다.

대문은 사람들이 사라지는 문이라는 것을 알게된 모양이다. 언젠가 그 앞에 가서 손가락질하며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더니, 그리로 누군가 옷을 입고 나가려면 싫다고 운다.

또 누울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말이 뭔지를 실감하게 해주는 게, 기저귀를 간다거나 손톱을 깎는 등 하나가 싫어하는 일을 내가 할 때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괜히 울면서 땡깡을 부린다. 구해달라는 듯이. 자기가 울면 애교를 떠는 사람들을 보고 그런 판단을 한 것 같다. 그러면 나 혼자 하겠다고 저리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한다. 이러나 저러나 해야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할 일을 하면 하나는 곧 딴 짓하며 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안된다는 말을 이해하는 것 같은데, 안되는 일은 우리가 보지 않는 틈을 노리려는 모습을 보인다. 호시탐탐…

낯을 가리는 것이 얼굴을 보고 우는 것 말고 수다를 멈추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엄청 수다쟁이인 녀석이 낯선 사람이 있으면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가고 나면 그간 말을 못해 답답했던 듯 터진 둑처럼 수다를 떨기도 하고, 친해지고 나서 말을 많이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듣던 것처럼 기왕이면 젊은 사람을, 여자를 더 좋아한다. 특히 나이든 남자는 친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제 다음주 월요일에 짐 싸고 화요일에 호텔로 옮겨서 시부모님 공항에서 픽업하고 나면 일주일 여러 행사를 마치고 덴마크로 귀국하는 일만 남았다. 아이를 낳고서부터는 인간관계의 지평이 엄청 바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크게 느낀 여행이었다. 왜 아이를 낳은 부모들이 달라지는지는 되고서야 이해하게 되더라. 내 딴엔 타인의 시선으로 이해하려 한다하면서도 그렇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게 된 계기도 되었다. 만나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던 내 아끼는 지인들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게 된다. 정말 만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