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개월 하나

특별히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좋은 게 아니면 하나는 밖에서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우리를 평균보다 힘들게 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친구를 만나러 나간 자리에 각자 애들을 데리고 왔는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카페라서 그런지 중간중간 나에게 와서 말을 걸긴 했어도 크게 힘들게 하지 않았다. 아빠랑 주말마다 가는 카페에서도 비슷하게 코너에 아이들 노는 코너가 있어서 그런지 왔다갔다는 해도 같이 먹기에 너무 힘든 아이는 아니다.

언젠가부터 기다린다, 순서를 지킨다는 컨셉을 이해하기 시작해서, “우리 이제 기다리는 거예요.”라고 이야기해주면 “Hannah venter! (하나는 기다려요)”를 조잘거린다. 수퍼마켓에서 자기 먹고 싶은 거 사달라고 해서 집어들고 계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 그때도 “Vi skal betale først! (우리 계산부터 해야해요)”를 외치며 기다린다. 계산대에서 계산이 끝나기가 무섭게 달라고 채근을 하기 시작하지만. 또 호기심 가는 물건을 만져보다가도 “그거 우리 것 아니예요.”라고 말하면 “Det er ikke vores! (그거 우리 것 아니예요)”라며 내려놓을 줄 안다.

간식은 중간에 주더라도 식사는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에만 하고, 안먹겠다 하면 안먹어도 된다 하고 중간에 끝났으면 식탁을 떠나도 좋다고 한다. 굳이 먹이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간혹 안먹는다 하면 한입정도 먹어보겠냐고 물어보는데 서서 한 입 먹어보고 나면 오래지 않아 우리가 앉은 자리에 와서 같이 먹으니 딱히 식사시간에 자리에 앉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굳이 와서 한 두입만 먹고 일어나는 걸로는 뭐라 하지 않는다. 처음엔 음식 남기는 거라든가 애써 만들었는데 안먹는 거라든가 하는 게 마음에 불편하고 스트레스가 되었는데,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나중에 배고프다고 따로 차려주고 하는 건 없으니 내가 더 육체적으로 힘들 건 없으니까. 안먹는 건 배가 안고파서 그러는 걸 것이라 생각하고 넘기고 나니 마음도 편해졌다. 애가 딱히 작은 것도 아니고, 보육원에서 애들하고 같이 먹으면 잘 먹는다니까 어느 때엔가는 잘 먹게 되겠지. 나도 만으로 9살까지는 진짜 잘 안먹어 작고 빼빼 마른 아이었으니까.

놀 때 순서지켜 놀라고 옆에서 상기시켜주면 순서 잘 지켜 놀고, 우리 것이 아니다 하면 금방 내려놓고, 우는 친구 있으면 안아줄 줄 알고, 인사하고 자리 뜨자 하면 씩씩하게 인사 잘 하고.

간혹 자기가 혼자 하려는 걸 우리가 도와주는 바람에 뒤로 넘어가 울고 난리법석을 떠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도 대부분 그 포인트를 아니까 그렇게 난리법석을 떠는 일도 많이 줄었다. 이제 말로 많은 걸 표현할 줄 알고.

넘어지고 해도 잘 안우는 편이고. 높은 데 기어올라가고 뛰어내리고 스릴 넘치는 일들을 엄청 좋아한다. 조심도 하지만 조심보다는 스릴에 무게가 더 실린 듯 하다. 이처럼 힘이 넘쳐 우리가 옆에서 그런 활동을 지지해주다보면 육체적으로는 힘들다. 하지만 주변 이야기 들어보면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다. 예민하지 않은 아이다.

기질 탓이 가장 크겠지만 보육원이나 집에서 많지 않은 대원칙만 지키면 대부분은 자유롭게 놔두는 편이라 자기도 그 규칙을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다른 애들 사이에서 같이 놀아야하는 환경에 두었을 때 노는 걸 보면 잘 아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 행동하는게 제법 다르다. 아예 공공장소에서 다른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없이 놀면 그건 다른데 내가 만난 친구의 애들과 같이 논다던가 하면 조금 조용하게 관찰을 많이 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편이다. 곧잘 놀기도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조잘조잘하는 게 없어진다.

이제 만 28개월을 채웠는데 정말 많이 컸구나 싶다. 이제는 작은 인간이 되어서 부모와 여러 형태로 상호작용도 하고 대화도 제법 하고. 말이 많이 느니까 이렇게 수월해질 수가 없다. 이젠 예전에 아주 힘들었던 기억은 힘들었던 사실만 기억나지 별로 생각나지도 않는다. 우리야 둘은 안낳을 거지만 이래서 둘 낳는구나 싶기도 하고. 젊었다면, 내가 다른 나라에 이주해 새 커리어를 시작한 것만 아니었다면 애 하나 더 낳았을 수도 있겠지만, 이도 저도 아니니 말이다.

시부모님도 나이가 많이 들어가시고 멀리 사시는데다가 우리 부모님은 이역만리 떨어져 계시니 더욱이 기댈 데도 마땅하지 않고. 출산부터 지금까지 급하게 애가 아픈데 휴가를 내기 어려워 하루 이틀씩 시부모님 손을 벌린 거 아니면 우리끼리 다 해야만 했기에 하나 더는 못하겠다. 애야 우리 애지 시부모님이나 부모님 애들이 아니니 못맡아주신다고 서운할 일도 아니고. 출산 이후 애 맡기고 옌스랑 단 둘이 밖에서 저녁식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도 그립고. 하나 더 생기면 그런 게 더 어려워질텐데… 하나로 부모가 되는 기쁨을 충분히 누리고 있으니 이를 두배로 굳이 늘리며 고난도 두배로 늘릴 생각은 잘 안드는 게 아마 나이 탓일 거라 괜한 나이 핑계를 대본다.

앞으로 하나랑 같이 해나갈 여러가지 일이나 기대해보며 한 명만 잘 키워보련다.

어른에게도 엄청 높은 미끄럼틀을 겁없이 타는 하나
뒤에 자기 키의 두배가 되는 장에 (기어 올라가도록 설계) 기어 올라가 뛰어내리기를 다섯번도 넘게 반복했다. 잡아주고 뛰어내리기 도와주느라 나도 힘이 들더라.
그네도 요상하게 타야하고. 재미있게 노는 법은 역시 애들이 잘 안다니까.

오늘의 에피소드 – 하나와 옌스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아침부터 회의준비를 하느라 바쁜데 옌스에게 문자가 왔다. 하나 보육원에서 픽업해서 집에 같이 있다고. 하나가 보육원 모래밭에서 나오면서 모래밭 담장을 넘다가 고꾸라져서 입술이 찢어졌단다. 보육원에서는 우선 상황이 생기자마자 피가 많이 나서 옌스에게 전화를 했고, 옌스가 서둘러 미팅 몇개만 캔슬하고 돌아와서 보육원에 갔다 한다. 컴퓨터는 켜지도 못했으니 하나 드롭하고 자전거 꺼내타고 회사에 가는데 15분에서 20분 걸리니, 그 사이에 생긴 일이였나보다. 대충 일이 벌어지고 20분정도만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피는 대충 멎어있었단다. 입에는 오렌지맛 아이스바를 물고서. 애를 놀래지 않게 지혈하고 통증도 경감시킬 요량으로 아이스바를 물렸다는데, 나쁘지 않은 방법인 거 같다. 우선 집에 데리고 와서 상처를 깨끗이 씻고 의사이자 세아이의 엄마인 시누이에게 페이스타임을 해보려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았단다. 그래서 치과의사셨던 시부모님도 입주변 상처에 대해서 대충 답변을 주실 거 같아 페이스타임을 해보니, 입술은 그정도 상처에 봉합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 같고 애도 전혀 이에 대한 통증을 호소하지 않으니 혹시 양치질할 때 잇몸에 부푸는 물집이 잡히는지, 치아 색깔이 변하는지 정도만 관찰하라고 하셨다. 소독약으로 소독 해주고 대충 보아하니 입술이 찢어지긴 했지만 입술 선 밖으로는 괜찮았다. 나는 다 씻기고 난 뒤를 봤으니 그런데, 옌스는 피떡이 앉은 얼굴을 봤었을터라 놀랐을 거 같다.

나도 미팅 내 발표순서를 바꿔서 내 발표를 맨 앞으로 돌리고 자리를 일찍 떴다. 옌스가 집에서 일을 할 동안 나는 하나를 데리고 밖에 유모차에 눕혀 낮잠을 재웠다. 애가 집에서는 침대에서 밤에만 자는 관계로 낮잠은 반드시 유모차에서 재우는데, 옌스가 일을 해야해서 두시반이 되도록 낮잠을 안자고 버텼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하나가 평소보다 길게 거의 두시간이 되도록 낮잠을 자고 수퍼마켓에 갔다. 가서 보육원 애들을 만나 부모들와 애들이랑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하나 반에 있는 루너라는 아이는 하나랑 비슷한 곳에 상처가 났더라. 다른 형태로 낙상사고가 있었다는데, 하루 차이로 비슷한 곳에 상처가 나다니. 우연도 참. 회사에서 애 얼굴에 상처나서 옌스랑 일 교대해주러 좀 가봐야 한다니 상사나 선임 모두 자기네 애들 경험담을 알려주면서 애들 사고는 너무 자주 일어나니 그 마음 잘 안다고 위로를 해주더라.

그런데 수퍼에서 또 만난 한 여자애를 빤히 보더니 쟤는 사라예요. 하고 이야기하는거 아닌가. 내가 모르는 보육원 친구인가 해서 걔 이름이 사라냐고 그 애 아빠에게 물어보니, 맞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 보육원 이름을 얘기하며 걔도 거기 보내냐 물어보니 아니라는 거다. 걔는 우리 하나를 모르는 듯 했다. 어떻게 알지? 싶었는데, 이 동네 살아서 여기 놀이터에서 만났나? 라는 거다. 음… 하나가 애들 이름 외우고 물건 주인 외우는 거 좋아해서 유아원으로 올라간 첫날 애들 이름을 다 외웠다며 놀랬다고 하긴 했는데 이렇게 랜덤하게도 기억할 수도 있는가 하며 팔불출 엄마처럼 놀라워했다. 마침 그 수퍼에서 하나 보육원 미술선생님도 만났는데, 하나 넘어졌을 때 바로 옆에 있었다며 하루종일 하나 괜찮았을 지 걱정했다고, 여기서 만나서 괜찮다고 듣고 나니 안심이 된다고 고맙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오히려 아이스크림도 물려주고 얼른 옌스에게 전화해주고 하루종일 신경도 쓰셨다고 해주시는게 내가 고마웠는데… 사실 내가 애를 봐도 있을 수 있는 사고인지라 보육원 탓을 할 일은 아니니 말이다.

내가 머리 빗어주고 묶어주고 나면 내 머리도 빗어주겠다, 묶어주겠다 나서고, 뭐 내가 하나만 하면 자기도 혼자 하겠다고 “Jeg skal selv prøve!” (내가 직접 해볼거예요.) 하고 말하며 나서는 것도 다 대견하고 예쁘다. 나나 옌스가 침대 옆에서 책 읽어주고 잠을 재우는데, 자기가 자기 인형 재워주겠다고 침대 옆에 앉아서 책을 집어 드는 것이 웃기고 엄마나 아빠가 낮잠을 자면 자기가 아끼는 인형과 이불을 갖고 와서 우리 위에 올려두는 것도 웃기다. 자기가 그들이 필요하듯 우리도 그들이 필요할 거라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다.

덴마크어는 말하기도 잘 하고 한국어는 듣기 중심으로만 잘하지만, 하나가 문장을 만들어 말할 때 부정어와 목적어 위치가 간혹 잘못되는 걸 보고 내가 발견한 건 한국어가 덴마크어에 영향을 주는 부분도 있다는 거다. 간식으로 싸주는 딸기 먹은 이야기를 할 때 Jeg jordbær spiste. 라며 나는 딸기 먹었다를 직역해서 말한다든지 Jeg ikke spiser 라면서 나는 안먹을거다라고 이야기하든지 말이다. 처음엔 그냥 실수라고 생각했는데, 자주 말해서 생각이 필요없는 문장은 실수를 안하고 자기가 생각해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만들 때 이런 실수를 하더라. 요즘에서야 한국어 단어도 책읽으면서 같이 한국어로 따라하며 열심히 익히지 그 전엔 내가 한국어로 읽어주면 덴마크어로 같은 이야기를 따라하곤 했다. 주언어 위에 다른 이중언어를 쌓으면 된다고 하니 그냥 별 부담없이 언어교육을 시키고 있는데 하나는 잘 할 거 같다. 요즘 과거형도 슬슬 익히기 시작하는 거 같아서 애들의 언어 발달의 신묘함에 놀래고 있다.

오늘은 이 밖에 옌스가 연출한 아주 웃기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하나랑 방에서 놀고 있는데 옌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보고 화장실로 와보라는 거다. 되게 민망하면서도 웃긴 표정을 지어서 변기가 막힌 건 아닌거 같고 뭐지? 싶어서 봤더니 변기 위 플라스틱 변좌가 깨진거다. 헐. 어쩌면 그런 일이!! 자기 엉덩이가 큰 건 알았지만 이렇게 무거웠냐면서 웃어대는데. 옌스가 예전에 날렵한 경주용 카약에 자기 엉덩이가 꽉 껴서 힘들었다고 하며 자기 엉덩이 안큰데…라길래 나보다 당신 엉덩이가 크다고 해준 적이 있었다. 키가 커서 상대적으로 작은 거 뿐이지 우리가 옆으로 누워있으면 내 골반 높이보다 당신 골반 높이가 더 높다고, 그리고 엉덩이도 그렇게 살이 없는 건 아니다 라고 해줬었는데. 흠흠. 내가 자주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거라고 말도 안되게 장난으로 우기길래, 나는 변비가 잦은 사람이라 오래는 앉아있어도 자주는 안앉아있는다, 자주 앉는 건 당신이라고 해줬다. 남의 집에서 그렇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지… 그런데 변좌는 어떻게 바꾸지? 나사를 어떻게 푸는걸까? 유튜브를 연구해봐야겠네…

하나의 화해

아직도 간혹 밤에 이유 모르게 하나가 거세게 울며 엄마를 찾는 날이 있다. 흔하진 않지만 간혹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다. 18개월 이후 그런 게 심했던 시기가 있긴 했지만 빈도는 줄어들었다. 주로 엄마를 거세게 찾아서 옌스가 달래기 어렵고, 내가 달랜다 해도 우선은 울어내서 자기가 감정을 한템포 추스를 때까진 건드리면 안된다. 초반엔 달래본다고 안아도 봤는데 오히려 더 애의 감정폭발만 자극하고 말았다.

우선 건드리지 말고 옆에서 조금 달래주다가 하나가 저리 가라고 Gå væk! Lad være!를 외치면 (진짜 속된 말로 지랄한다는 말이 딱 맞을 상태로) 매트리스 깔고 누워서 자라고 달래는 말만 반복해준다. 그러고 자기가 감정을 추스르고 꾹꾹 소리내며 자는 가 싶으면 반드시 한번 또 일어나 서럽게 소리높여 운다. 아마 엄마랑 화해를 꼭 해야하는 거 같다. 이때는 안아달라고 하는 거 보면 말이다. 좀 안아주고 엄마는 하나 사랑한다 그런 말 나누고 다시 토닥여주면 쌓인 울움으로 여전히 끅끅하며 잠든다. 그리고 두어번 깨어나 짧게 소리높여 울고 달래주는 걸 반복하며 잔다. 이런 날은 나는 제대로 자긴 어려운 게 잠이 토막나기 때문이다.

다른 것보다 재미있는 건 그 화해의 프로세스이다. 이 나이의 아이도, 아니 이미 18개월부터 엄마와의 화해가 (나야 감정 상한게 없으니 하나 혼자만의 화해이긴 하지만) 필요하다는 것이 놀랍다. 내가 너무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 과소평가를 해온 것 같다. 이렇게 놀라운 존재인데 말이다.

요즘은 why not에 해당하는 말에 꽂혔다. 안된다는 말에 대한 답이 아니라 하나의 웃긴 행동에 우리가 웃겨서 그걸 왜 그렇게 했냐고 묻는 질문에 하는 답으로 말이다. 내 긴 치마를 입는 모숨이 너무 웃겨서 물어보니 Hvorfor ikke? 이런다. 얼마나 웃겼는지.모른다. 앞으로 얼마나 우리를 더욱 웃게 만들련지 이 장난꾸러기. 🙂

3월 셋째주 기록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옌스와 소파에 어깨를 붙이고 앉아서 쉬고 있다. 요즘 일하면서 출퇴근 하면서 한국 노래를 많이 듣고 있다. 노래의 국적을 불문하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나 가수라든가 가사를 외우는 노래라든가 하는 게 별로 없는 탓에 그냥 그때 그때 떠오르는 장르의 노래를 듣는게 일상인데, 요즘은 어쩌다 god 노래를 듣게 된 이후로 한국 노래를 듣고 있다. 김광석의 노래는 20대엔 별로 좋은 지 몰랐는데 30대가 되면서 그 맛이 참 느껴지고 좋아졌다. 어찌나 이렇게 감미롭고 구슬픈지. K-pop 말고 다른 한국 노래는 없냐던 옌스도 김광석 노래는 마음에 든다고 한다. 밥딜런과 닐영 등의 가수를 좋아하는 옌스에게 김광석 노래는 나쁘지 않은 초이스일 거라 생각을 했는데 역시…

오늘 차를 인도받았다. 직불카드로 이렇게 큰 금액을 결제해본 적이 없어서 살짝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결제를 할 수 있었다. 딜러도 괜찮다고 했고 은행 홈페이지에도 잔고내 결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지만, 또 사람 마음이 불안하려면 여러가지로 불안하니까. 매연은 싫다는 옌스와 전기자동차의 승차감을 좋아하는 내가 의기투합하여 고른 건 현대자동차에서 나온 코나 전기자동차였다. 한번 충전에 500킬로미터를 뛸 수 있는 차는 인기가 너무 좋아 1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고 300킬로미터 차량에서 고르면 재고로 이미 있는 건 14일 안에 받을 수 있고 아니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했다. 우리는 재고에서 고르겠다 했더니 흰색, 빨간색, 애시드옐로우 색에서 고를 수 있다고 해서 애시드옐로우 색으로 골랐다. 흰색은 지루하고, 빨간색은 우리 취향이 아니고, 애시드옐로우색은 옌스가 좋아하는 밝은 연두색과도 맡닿아 있어서 쉽게 골랐다. 6개월 기다리는 건 우리가 원하는 선택지가 아니었으니까.

Acid yellow KONA electric

차값은 옌스가 냈으니 보험료는 내가 내라 해서 보험료는 내가 내기로 했다. 보험도 현대가 노르웨이 보험사랑 제휴해서 하는 것으로 골랐다. 옌스가 내 한국사랑을 적극 지원해주는 것이 참 좋다. 핸드폰 바꿀 때도 중국폰이 조금 더 싸서 그걸로 바꿀까 하면, 한국거 사라고 밀어주거나, 이번 자동차 살 때도 가급적이면 한국차 사라고 하는 것 말이다. 일본차는 사지 말라고 말하는 센스(?)까지 겸비하다니. 😉

하나는 엄청 잘 크고 있다. 모토릭 부분에서도 언어발달에서도 자기 나이보다 훨씬 빠른 발달을 보이고 있고 주변을 잘 챙기는 성격이란다. 덴마크어가 빠르게 늘기 시작하던 시기부터 한국어 사용은 매우 자제하더니 요즘 갑자기 한국어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애를 낳기 전과 애가 돌이 되기 전엔 꼭 한국어로만 말할 거라고 다짐을 했었는데, 주변 사람들과 내가 뻔히 덴마크어로 소통하는 게 보이는데 덴마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척을 할 수가 없다. 내 한국어 질문에 하나가 덴마크어로 답을 하면 맞다고 하면서 같은 내용을 한국어로 반복해 주고, 하나가 질문을 덴마크어로 하면 내가 그걸 또 한국어로 확인해준 후 한국어로 답을 해준다. 한국어로는 하나가 뜻을 모르는 단어의 경우는 덴마크어로 답을 한번 해주고 한국어로 세번 쯤 반복해 답을 해주는데 내가 하는 게 맞는 지 알 방법은 없지만 그냥 밀고 나갈 뿐이다. 모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했으니 꾸준히 해봐야지.

고집도 성깔도 있지만 엄마가 단호하게 굴 때는 받아들일 줄도 알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고래고래 울만큼 울고 나면 툭툭 털고 일어날 줄도 아는 쿨한 아가씨다. 발레춤 추는 걸 좋아해서 주말에 밖에 나갈 준비하면 발레춤추러 가냐고 하고 머리 빗으면 엉킨 머리 푸느라 땡기는 것 싫어하면서도 자기 전에는 꼭 머리 빗어달라고 하며 등을 내어주는 귀여운 아가씨다. 보육원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몸을 어떻게 써야하는 지 정말 잘 아는 작은 장난꾸러기지만 친구가 울면 가서 안아줄 줄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이것저것 손가락으로 찍어가며 티비 프로그램을 골라 보지만 막상 조금만 무서운 게 나오면 엄마아빠를 불러 끌어안고 보는 겁도 있는 아가씨. 동양과 서양의 특징을 모두 섞어 갖고 태어난 하나. 우리에겐 너무나 축복같고 감사한 세상에서 가장 이쁜 아이이다. 다른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시때때로 하나 사진을 열어보며 키득거리기도 하고 어쩌면 이렇게 귀엽고 이쁘고 총명하냐며 탄복하는 팔불출이다. 다들 지금이 제일 이쁠 때라 하는데 그 말이 정말 맞는가보다.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단계는 돌을 시점으로 지난 거 같고 아직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시기는 안온 것 같고 말이다. 즐겨야지. 머리와 가슴에 이 시기를 아로새기듯 기억해야겠다.

TV에 푹 빠진 하나

나는 이제 수습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얼마전 상사와 평가 미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첫 1-2주동안 덴마크어로 일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 건지 걱정하면서 혹시 잘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다 말하니, 절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라면서 지금 해당 경제분석 프로젝트 너무나 순항하고 있는데 왜 그런 걱정을 하냐면서 놀라더라. 나도 지금은 이 프로젝트의 중요성도 인식하고, 나도 이걸 할 수 있음도 알고, 덴마크어로 보고서 쓰고 발표하고 이런 일련의 것이 다 가능함을 알기에 그런 걱정은 안하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시간이 약이라고, 아직 점심시간 대화는 챌린징하지만 일 면에서는 다행히 잘 굴러가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미래 상하수도 요금에 꽤나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기업, 이익단체 뿐 아니라 우리 경영진도 관심을 지대하게 갖고 있다. 경영진과의 미팅 주기가 짧아지고 있고 보고의 비중이 늘어나고 하면서 내 이름도 더이상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발음하고 기억해주게 되었으니 이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까지는 최소한 잘릴 일이 없을 거란 생각과 함께 조직도 나의 경험을 염가에 쓰고 있는 거라는 생각도 든다. 덴마크어가 완벽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조직이나 나나 윈윈하고 있는 게 아닐까.

발도 이제는 많이 나아져서 어제부로 목발은 졸업했다. 아직 절뚝거리며 걷고 통증과 함께 운동반경이 꽤 제한되어 있지만 천천히 집중해서 조심스레 걸을 땐 절뚝거리는 걸 거의 없앨 수 있을 정도이니 완전 감동이다. 삐면 전치 2주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2주정도면 그래도 심한 건 없어지니 말이다.

내일은 시부모님을 뵈러 보언홀름에 갈 거라 대충 가방을 쌌는데 하룻밤만 자고 올 거라 짐이 많지 않아 마무리는 내일 지으면 될 것 같다. 10시 비행기니 서둘러 나가야 하긴 하지만서도 하나 짐은 하나 자는 동안 쌀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하나가 얼마나 좋아할런지. 한국에 계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방문은 가을로 미뤄두고 지금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방문으로 족해야지. 덕분에 우리도 코펜하겐을 잠시나마 벗어나보고. 저녁식사 준비도 손에서 놓고 시부모님이 해주시는 음식 잘 먹고 잘 쉬다 와야지. 다행히 날씨도 나쁘지 않을 거 같으니 말이다. 이제 가서 자야지.

3월 첫 주, 생각의 흐름대로 쓰는 일기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10월 가을방학 일주일을 포함해 그 전주 약간으로 해서 한국 순수체류일정을 10박 10일로 할 수 있도록. 부모님이 이번주에 홍천으로 이사하시면서 나의 주민등록도 홍천으로 같이 옮겨지게 되었고 이번 한국방문 일정의 대부분은 홍천을 중심으로 해 강원도 방문이 주를 이루게 될 것 같다. 공항에서부터 차를 렌트해 바로 홍천으로 갈 예정이다. 그때면 하나도 엄청 많이 커있을 거고, 비행도 조금 더 수월해질 것 같다. 비행기에서 한번도 걷도록 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비행기에선 자리를 뜨지 않고 잘 앉아있어서 한국 방문 두번 모두가 쉬웠는데 앞으로는 더 쉬울테니 다행이다. 서울 일정은 출국 전 삼일로 잡았는데, 조금 더 길면 좋겠지만서도 아직은 하나가 어려서 같이 할 수 있는 것도 조금 제한되어 있고 돌아다니기 힘드니까 서울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건 하나가 더 큰 뒤로 미뤄두려한다. 한국가면 블루보틀 커피가 성수동에 문을 열었을테니 거기 한번 가보는 게 계획에 들어있고, 그 외엔 호텔 잡은 거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번엔 한국의 자연을 하나에게 많이 보여줄 생각이다.

상사에게 부활절 휴가와 가을 휴가를 메일로 승인 받았다. 이 기간 중 휴가를 쓰고 싶은데 괜찮은가? 라고 메일을 보내니, 물론이지! 캘린더에만 마킹해둬! 라고 답이 왔다. 음…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쌈빡하게 승인을 받다니. 참 구질구질하게 설명해가며 휴가를 쓰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며 왜 꼭 그렇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말엔 행사가 많다. 토요일엔 발레 첫수업이 기다리고 있고 일요일엔 자동차를 사고 회사에서 열리는 fastelavnfest에 갈 예정이다. 오늘 드디어 차고 열쇠를 받았는데, 월 400크로나 내고 빌리는 차고라 그런지 안에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전기자동차이니 매연 걱정도 없고, 앞으로도 안에는 깔끔하게 잘 관리해야겠다. 현대 자동차에서 나온 KONA 전기 자동차가 대형배터리 버전으로 2019년 3대 전기자동차로 선정되었다고 하는데, 그 버전은 너무 인기가 좋고 배터리 수급에 문제가 있어서 1년은 기다려야 한다 해서 패스. 옌스나 나나 내연기관차는 더이상 구입하지 않고 싶기도 하고 해서 전기자동차를 구입하고 싶었는데, 가급적이면 한국차를 구입해야하지 않겠냐는 옌스 의견에 따라 현대로 당첨. 사실 KONA 자동차 디자인이 마음에 든게 큰 몫을 한 것 같다. 다만 우리는 빨리 자동차를 사고 싶은 관계로 소형배터리 버전으로 구입하기로 했다. 그건 색상 및 옵션에 따른 재고 현황에 따라 짧게는 14일, 길게는 한달이면 구할 수 있을 거란다. 자동차 보험은 보험회사마다 가격 차이가 꽤나 큰 것 같다. 우리는 현대차와 손을 잡고 시장을 확대하려는 노르웨이 자동차보험사를 선택할 거 같은데, 덴마크 보험회사의 반값이다. 자동차회사와 서비스센터를 같이 끼고 보험을 제공함으로서 본인-대리인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한 걸까? 차 사고 났을 때 차량 렌트를 제공하는 비용 등에서 자동차회사를 끼고 있으면 싸진 걸까? 자세한 보장내역을 봐야 알겠지만 큰 차이가 없을 걸로 예상되는데… 음…

하나는 유아원으로 옮긴 이후 엄청 조잘조잘 하루 있었던 일과를 설명해준다. 한국어는 매우 제한되어있다. 대부분 덴마크어다. 이걸 못알아듣는다고 해야하는 건지 그냥 듣고 한국말로 번역해 내용을 반복해주면서 그냥 듣고 넘겨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우선 후자의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한글학교 다닐 나이가 되어 또래 한국친구들을 조금 더 만나게 되면 달라지려나? 유아원은 마음에 든다. 기존에 보육원에 보육지원을 와서 알던 선생님들도 있고, 반대로 보육원에서 유아원으로 자리를 옮긴 선생님도 있어서 하나에게도 연속성이 느껴져서 좋다. 한 지붕아래 보육원, 유아원, 유치원 등으로 삼단계 구분되어 있는 시스템이라 애들이 서로 잘 알며 클 수 있어서 부모도 안심이 된다. 어느새 옮긴지 2주가 넘었다. 친한 친구들도 생겨서 누구누구랑 뭐하고 놀았다고 이야기도 해주고 참… 세월 참 빠르다. 여긴 이렇게 애들이 어려서부터 같이 쭉 크는 경우가 많아서 깊게 사귀는 오랜 친구들이 많은데 이게 외국인 입장이나 타지에서 이주해온 덴마크인 입장에서 친구를 새로 사귀기 어렵게 만드는 진입장벽 역할도 한다. 다 장단점이 있겠지… 발레학원 시작하면 거기서 또 다른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될테니 그것도 좋다. 지금은 이미 발레복에 빠져서 이번 토요일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벌써 수요일이 다 지나갔다. 또 일하고 퇴근해서 애 픽업하고 조금 놀다가 밥 해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치우면 저녁이 다 가겠지. 그러면 또 하루가 가고 하루가 가고… 벌써 3월의 첫주가 다 가는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겠다. 차곡차곡 일이 진척이 되고 있으니 문제야 없지만 너무 시간이 정신없이 간다는 생각이다. 워킹맘이 된 이래로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흐르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즈인가 어디에 hygge가 가고 pyt이 뜬다는 기사가 나온 모양이다. 애들이 뭔가 잘 해보려했는데 안되서 속상해 하거나 원하는데로 안풀려서, 아니면 남이 기분 상하게 해서 마음 상해 있으면 어른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가 Pyt med det! 다. 작년인가 언제 한번 요즘 애들에게 특히 이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굳이 한국식으로 번역하자면, 다 털어버려. 신경쓰지마. 정도될 거 같다. 교수가 애들 키우다 보면 애들이 자기가 꼭 하고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엄청 좌절하고 분노하는 시기가 온다고 하면서 그때마다 자기가 해주는 이야기가 Pyt med det라고 했는데, 그 때 읽었던 기사를 떠올렸었다. 그런데 그게 또 새로운 단어로 뜨고 있다니 참 덴마크의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갖는구나 싶었다. 실패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툭 털어버리라는 건데, 어찌보면 크게 야심차지 않고 그래서 작은데서 행복을 찾는 평균적인 덴마크인의 특성을 보여주는 말인 것 같다. 얼마전에 유아원에서 하나를 픽업하는데, 간식을 먹고 있던 아이들 중 하나가 자기 빵 안먹겠다니까 선생님이 그래도 괜찮아. 라고 하고, 그러다가 빵 다시 먹겠다니까 그래도 괜찮아 라고 하는 걸 봤다. 그러다가 과일을 먹겠다고 하다가 또 안먹겠다고 변덕을 부리는데, 그래도 괜찮다고 참 느긋하게 말을 해주는데,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문제 없다는 그 느긋함에서 Pyt med det의 저변에 흐르는 덴마크인의 여유있는 사고방식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회사에서 잘 안풀리는 일 있을 때 초조해하지 말고 Pyt med det!를 외치며 감정을 리셋하고 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친구네 가족과 우리집 플레이데이트… 그리고 자동차

간만에 손님을 초대했다. 옌스네 직장동료 가족으로 우리 결혼식에도 오고 우리도 그 집 애 세례식에도 가고 왕래도 잦은 집이다. 이미 옌스와 알고지낸 지 10년도 넘은 친구인데 둘째 애가 하나보다 5개월정도 큰 딸이다. 지금이야 또래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하나가 5개월 때 놀러왔을 때나 그 이후에 한번 우리가 놀러갔을 때와는 그 5개월차가 너무 컸다. 하나가 아기이기도 했고. 대학원 논문 쓰고 뭐하느라 바쁜데다가 초대하고 초대받은 게 여러번 애가 아픈 걸로 취소되면서 왕래가 줄어들었었다. 하나 못본지 너무 오래되었다며 놀러왔는데, 세상에 애들이 또래라 그런지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하나가 애들과 노는 것을 이해하기 시점 이후에 누군가가 우리집에 놀러온 적이 없다보니, 자기 장난감을 갖고 나눠 노는 것을 힘들어했다. 항상 우리가 놀러갔었다보니 그런 거 같다. 우리가 애가 하나고 상대가 애가 둘인 경우나, 상대방의 애가 하나보다 어린 경우 우리가 움직이는게 더 쉬워서 그랬던 거 같다. 처음에는 나눠 노는 걸 힘들어하더니 시간이 지날 수록 같이 잘 놀았다. 자기 좋아하는 장난감을 줬다가 또 막상 주고나니 힘들어 울기도 하고. 앞으로 조금 더 우리 집에서 모이는 것을 계획해봐야 할 것 같다.

마지막엔 카롤리나 안아주겠냐고, 카롤리나도 하나 안아주겠냐고 하니까 둘이 서로 다가가서 꼭 안아주는데 얼마나 귀엽던지. 잘 가라고 인사도 하고, 간 다음 카롤리나 와서 좋았냐고 하니까 좋았다고 하더라. 다음엔 우리가 놀러가겠노라 했다.

오늘 정말 오랫만에 내가 하나를 데리고 나가고 옌스가 청소를 했는데, 매번 내가 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더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계산하에 다 떠맡는게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조금씩 불만이 쌓이는 것도 있었나보다. 아직 준비하지 못했던 5주년 기념 선물도 사고 커피도 한잔 마시고 맛있는 아몬드크로아상도 먹고. 거의 지난 한달간 주말은 주로 동네에서 보내다보니 시내의 카페 투어를 못하고 있었는데 그또한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나가 짧게 자고 일어난데다가 빨래 예약도 해둔 게 있어서 시내 투어는 한시간여만에 끝났지만 여러가지 처리할 일들을 빠르게 해내서 다행이었다.

내일은 전 직장 동료를 초대해서 오후 커피를 하기로 했다. 다행히 청소며 빨래며 다 오늘 끝내놓았으니 내일은 좀 더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거다.

옌스와 차를 사는 문제로 상의를 계속 하고 있었는데 우선 차를 사기 전에 주차공간부터 신청해야 하지 않냐 하고 있었던 차, 빈 차고 하나와 외부 주차공간 하나 해서 두 공간에 대한 임대 신청을 받는다는 공고를 봤다. 자주 생기는 일이 아니라 얼른 신청부터 해봤는데, 덜컥 차고 할당을 받았다. 다음달부터 임대하는 거라, 이제 차를 사는 일만 남았다. 우선 전기차를 사는 걸로 했는데 어떤 차를 살 것인지 고민을 하고 있다. 우선 현대차의 코나라는 자동차의 전기차 모델이 유럽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것 같아 그걸 제일 우선순위로 두고 알아보려 한다. 당장 다음 주말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풀타임 직장을 가진 부모에게 주말은 정말 바쁜 것 같다. 친구랑도 플레이데이트도 해야하는데. 주말은 정말 순식간이구나. 뭐 하긴 주중도 순식간이고. 그냥 한마디로 시간이 갈수록 빨리 흐르는 거 같다.

하나는 내 선생님

하나에게 이것저것 혼자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나름 내가 하는 말에 대답도 하고 제대로된 대화는 아닐지언정 내가 하는 이야기에 하나가 나름 반응해주면서 혼자의 이야기는 대화의 모습을 띈다. 

기차를 타면 창밖에 보이는 풍경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을 해주는데, 하나가 아는 단어를 섞어 말해주는 게 보통이다. “밖에 나무가 많이 서있죠? 그런데 날이 추워지면서 잎이 많이 떨어져서 앙상해졌어요. 남은 잎도 누렇게 색이 바뀌었죠? 왜 그렇죠? 그건 나무가 추운 겨울 얼어죽지 않고 생존을 하기 위해 올 해 할 일을 다한 나뭇잎에 남아있는 영양분과 수분을 최대한 거두고 떨어뜨리는 거예요. 그러면 겨우내내 준비해둔 싹눈이 추위가 끝날때쯤 잎을 틔우면서 내년에 다시 초록 나무가 되는 거예요. 삶은 원래 그래요. 크기 위해선 나를 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게 어제 밖에 나서는 길에 하나에게 해 준 이야기인데, 오랫동안 삶이 바빠서 이런 저런 생각을 못하고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았다는 걸 이 이야기를 하다가 느꼈다. 여유가 있을 땐 주변도 돌아보고 사색도 했는데, 한동안 정말 그냥 살았구나 싶었다.

하나 덕에 잊었던 생각들을 다시금 꺼내보게 된다. 그리고 나도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금 중요한 것들을 되새기고 말이다. 애가 최고의 스승이라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21개월 3주 하나

내일은 학부모면담이 있는 날이다. 아침 8시에 하나를 등원시키고 나는 면담까지 하고 돌아오면 된다. 옌스는 자기가 주재하는 외부전문가 미팅이 있어 새벽같이 나가는 터라 나 혼자 가야한다. 월요일에 리허설까지 다녀온 거니 중요하긴 한 모양이다. 내용도 재미있어보이긴 했는데…

요즘 하나는 엄청 말이 늘고 있고, 요즘은 말을 가려해야지 (물론 딱히 가려할 건 없긴 하지만.) 듣는 걸 그대로 옮기기 시작했다. 오늘 선생님들이 초콜렛케이크 (쇼콜렐케이) 를 이야기하자마다 쇼콜렐… 쇼콜케이..하면서 따라했다며 긴 음절도 빠르게 따라한다며 놀랍다고 했다. 보육원에서 몇개월 차이나는 큰 애들도 많은데 가장 말을 잘하는 아이라고 하니 언어재능이 있는 모양이다. 선생님이 자기가 말한 단어를 못알아 듣는 것 같으면 한국어에서 덴마크어로 바꿔 말하고. 선생님들도 하나가 말하는 게 뭔지 모르겠는 거 같으면 한국어려니 미루어 짐작을 하고 그게 틀렸다고 하지 않고 덴마크어로 표현하게끔 도와주는 게 좋다. 

키를 재보지는 않았지만 바지들이 급속히 짧아지고 신발들도 사이즈를 바꿔줘야 하고 언뜻 봐서도 커진 느낌이니 꽤 큰 것 같다.

좋아하는 강아지 인형만 들고다니더니 다른 인형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강아지 인형 (훈이)에게 다른 인형을 소개시켜주고 대화를 시키기 시작했다. 돼지를 꿀이라고 부른다. 돼지가 뭐라고 말하냐 하면 꿀꿀 하는데, 그 소리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훈이에게는 기저귀를 채우기 시작했고, 보육원에서도 인형 밑에 방석을 깔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씽크대 장난감에 아기를 데려가 엉덩이 씻긴다는 거 보면 세면대에서 내가 엉덩이 씻겨주는 습관을 그대로 옮기고 있어서 깜짝 놀랬다. 

보육원 아이와 선생님 이름을 노래를 부르며 연습하는 걸 좋아하며, 밖에 나가면 낙엽을 하늘로 뿌리며 노는 것을 좋아한다. 길을 건널 떈, 하나, 둘, 셋을 덴마크어로 세고 누! (지금) 이렇게 외치면 후다닥 건넌다. 보행신호가 엄청 짧아서 어른도 서둘러 걸어야 하는 걸 감안하면 왜 애들이 이 신호에 뛰는 연습을 했는지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요즘은 좋아하는 옷들이 생겼다. 옷 고르고 있으면 옆에 와서 이거 달라 저거 달라 이런게 있다. 주로 동물이나 꽃 같은게 그려있거나 달린 옷이다. 그래서 오늘은 사이즈 큰 양말 사 올 때 동물이 그려져 있는 걸 열심히 찾아서 사왔다. H&M에서. 하나가 엄청 좋아하더라. 

하나 엄청 웃긴건 오페라를 매우 좋아한다는 거다. 다른 음악 틀면 오페라로 바꾸라고 한다. 그 특유의 발성을 알아챈 게 놀랍다.

아. 피곤하다. 얼른 정리하고 자야겠다. 오늘 여기저기 엄청 돌아다녔더니 커피를 사발로 들이켰음에도 피곤하네. 화요일밖에 안되었는데 곧 주말이어야할 것만 같다…

거울방이 이제는 무섭지 않아요!
역시 오페라야. 플라시도밍고가 역시 좋구만.
소세지빵을 즐기며 집으로 가는 유모차안에서 훈이와
기저귀를 찬 훈이
친구들과 기차로 15분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숲에 나들이를 나선 나비그룹 아이들
엘리자벳 선생님 찍어주신 하나 독사진. 너무 귀엽다!

플레이데이트 주간

오늘은 하나의 보육원 친구인 빅토리아네이자 내 엄마그룹 동기 엄마네 집에 초대를 받아 브런치를 하러 다녀왔다. 우리는 초콜렛과 주스를 사들고 갔는데, 우리도 맛있게 준비된 브런치와 대화도 즐기고 하나도 빅토리아의 색다른 장난감을 즐기는 등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 또래 애네 가족과 어울려서 좋은 점은 생활 리듬이 비슷해서 만나고 헤어지는 플랜을 하기도 수월하단 것이다. 9시 반부터 일찌감치 만나서 11시 반까지 놀고나니 하나도 지쳐서 금방 잠이 들었다. 물론 한시간 15분밖에 자지 않긴 했지만. 아마 크면서 점차 잠이 줄고 있는 거 같다. 원래도 잠이 많은 애는 아닌데… 잠 부족으로 짜증만 내지 않는다면 낮잠이 짧아도 상관은 없긴 하지만.

하나와 빅토리아는 1주일 차이로 태어난 아이들인데 둘이 발달이 조금씩 달라서 재미있었다. 하나는 걷거나 말이 빅토리아에 비해 많이 빨랐다. 이미 하나는 보육원 애들 이름을 다 말할 수 있고 그 발음도 상당히 정확한 편이다. 빅토리아 이름을 발음하는 걸 듣더니 빅토리아 엄마가 이렇게 정확히 발음하는 또래 애들을 못봤다면서 감탄을 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옷을 입거나 신발을 신는 것에서는 하나는 자기가 해보다가 원하는 대로 안되면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반면 빅토리아는 절대 엄마에게 도움받기를 거부하고 항상 혼자 해내야 하는 아이란다. 하나의 독립심은 자기가 내킬때만 작동하는 건데 빅토리아는 완전 독립스타일. 덕분에 자기 옷은 이미 혼자 입고 벗는단다. 하나는 양말 신는 것이나 하지 벗는 것은 해도 입는 것은 못하는데. 아이들은 다 자기만의 강점이 있다. 그래서 어떤 아이로 커갈지 지켜보는 게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 된다.

집에 돌아와서는 부엌 살림 장난감을 사줬다. 나무로 된 건 600-700 크로나 사이로 제법 가격이 나가서 살까 말까 망설였는데, 동네 독일 마트 리들에서 250 크로나에 독일산 플라스틱 부엌 장난감을 파는 게 아닌가. 냉큼 사왔다. 하나가 얼마나 오랫동안 갖고 놀 지 모르겠어서 괜히 비싼 걸 사기가 싫었다. 엄청 좋아하더라. 음. 좀 더 좋은 걸로 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가, 어차피 싼거라도 좋아할 거면 굳이 비싼 걸 사줄 필요도 없는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내일은 익스페리멘타리움에 또 간다. 비오는 날, 옌스가 카약가는 날은 무조건 익스페리멘타리움. 내일은 친구 티칭하는 동안 집에서 애를 데리고 밖으로 떠돌아야 하는 친구 남편을 만나서 시설도 소개시키고 하나도 친구와 놀리도록 하기로 했다. 옌스는 카약 갔다가 돌아와서 뒤늦게 합류하기로. 시안이와 이미 많이 놀아봐서 이제는 좀 더 잘 놀지 않을까 싶다. 확실히 혼자 노는 것보다 아는 애랑 놀 때 노는 게 달라 기대가 된다. 내일 갖고 갈 바나나 빵도 구웠는데, 이제 가서 한번 맛을 봐야겠다. 하나 생일 때 구워 갈 바나나빵을 미리 몇번 연습해보는 중인데, 이번엔 메이플시업을 넣어봤고, 보육원에 보낼 땐 당류는 다 빼고 만들어야 한다. 당이 추가된 음식은 제공이 안되기 때문에. 맨날 하나 혼자 데리고 가서 조금 미안했는데, 마침 홀로 떠돌아야 하는 친구 남편도 구제(?)하고 우리도 하나를 혼자 노는 상황에서 구제(?)하니 윈윈이다. 끝나고는 역시나 커피 한잔. 애들이 잠이 잘 들어 조용히 커피 한잔씩 할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21개월의 하나

하나는 이제 만 21개월이 조금 넘었다. 두돌까지 세달도 채 남지 않았다니, 세월이란 정말 쏜살같이 흘러가는구나. 보육원에서 부모와의 첫 면담이 좀 늦어졌지만 곧 시간을 잡는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요즘 부쩍 사회성이 늘어가는 것 같아서 그걸 지켜보는 게 즐거운데 내가 보는 일과 시간 밖의 하나에 대해 차분히 앉아 이야기할 시간을 갖는 게 참 기대된다.

하나는 보육원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애 중 하나라고 한다. 이중 언어인 아이는 말이 늦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닐 수 있다는 걸 예전 친구의 아이에게 본 것처럼 하나에게서도 확인한다. 보육원을 처음 시작했을 때 선생님이 이야기하기를, 물론 개인차이는 있지만 아이에게 언어 인풋을 많이 늘리면 이중 언어라도 늦게 말을 시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충분한 언어 인풋을 주었는지는 내 주관적인 경험이니 알 수 없지만, 유아 언어 없이 애가 알아듣든 말든 어려서부터 많이 말을 해주려고 노력했고 아이의 옹알이때부터 섀도잉을 포함해 아이의 말에 피드백을 열심히 해주었다. 그리고 하나는 말을 어찌나 열심히 연습하는지. 저렇게 끊임없이 연습하니 말이 늘지 싶을만큼 집요하다.

신체적으로는 키는 표준인 거 같다.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고. 몸도 딱 표준. 몸을 쓰는 건 참 열심히인데, 선생님들 표현으로는 작은 스파이더맨이란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까지 몸을 제법 사리는 편이면서도 자기 딴에 검증이 된 것에 대해서는 겁이 없다. 어디 부딪히거나 넘어져서도 피곤한 시간이 아니면 아주 아프기 전엔 아프다고 징징거리거나 울지 않고 툭툭 털고 일어난다. 막 기고 어디 잡고 일어서고 할 때부터 덴마크 엄마들이 하는 것처럼 하려던 건, 아주 위험한 게 아니면 넘어지고 부딪힐 기회를 주고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엔 상황을 차분한 얼굴로 얼른 판단한 후 필요 이상으로 과잉 반응하지 않고 괜찮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털고 일어나게 해줬다. 애들은 어떤 수준의 통증에 대해 얼마만큼 울어야 하는지를 엄마의 표정을 통해서 배우고 거기에 기준점을 잡는다고 들었는데, 하나의 기질 탓이 크겠지만 하여간 하나는 그런 면에서 참 강한 아이로 큰 것 같다.

내가 데릴러 가면 절대 그냥 옷을 입는 법이 없어서 보육원에 앉아 같이 거의 20분씩 놀다 오다보니 그 떄 남아있는 애들과 같이 노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게 되는데 아이들과는 제법 같이 놀이를 즐긴다. 우리가 집에서 하나에게 Goddag, goddag하면서 악수를 자주 시키는데, 요즘 간혹 우리에게 Goddag, goddag하면서 손을 잡아 흔들고 하더니, 보육원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그렇는 걸 봤다. Norma라고 하나보다 생일이 며칠 늦은 여자애가 있는데, 걔한테 그러고 Dagmar라는 다른 큰 여자애에게도 가서 또 그러더라. 그러니 Norma도 Dagmar에게 가서 똑같이 하고, 나에게 와서도 그러는 거였다. 공도 같이 던지고, 춤도 같이 추고. 어느 날은 Norma에게 가서 자기 모자와 자켓을 가리키며, “모자”, “자켓” 이러는 거다. 한국말로. Norma가 그런 하나를 보다가 나를 보더니 뭔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짓는다. 또 여기저기 애들한테 뛰어다니며 한명한명 짚어가며 이름을 불른다. 나에게 가르쳐주듯. 선생님 왈, 하나는 보육원 애들 모두의 이름을 다 알고 이름 외우는 거 좋아해서 새 아이가 들어오면 그 날부로 바로 이름을 외운다고 한다. 집에서 하도 연습을 해 나도 애들 이름 상당수를 알 정도니 말 다했다.

하나는 새로운 일에 너무나 즐거워하는 즐거운 아이란다. 별거 아닌 거에도 엄청 크게 웃고 즐거워하고 노래에 즐겁게 춤을 추는 흥이 많은 아이. 호기심도 엄청 많고 보육원 생활 태도도 좋다고 한다. 여태까지는 참 잘 커준 것 같다.

둘째는 없다라고 할 만큼 충분히 힘들었던 시간이지만, 둘째가 하나같이만 건강하고 씩씩하고 이쁘게 커준다면 둘도 낳고 싶을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보장은 전혀 없고 애들은 형제라도 너무나 다른 인격체일 것임을 알기에 둘째는 갖지 않을 거다. 그런 만큼 지나가는 이 시기가 돌아오지 않음을 알고, 매 순간이 소중하다. 하나를 키우면서 나도 엄청 큰다. 어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고 그에 맞춰 대응하려고 하고 인내심을 키우게 되는 등 말이다. 아이라면 참 싫어했던 내가 언제 이렇게 변했나 싶을만큼. 내 아이가 이쁜 만큼 다른 집 아이도 이뻐지고.

아기였던 게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닌 거 같은데, 아기라는 말은 붙일 수가 없을만큼 큰 하나. 어느새 이렇게 컸누. 지금은 내가 안아주겠냐고 물어보면 멀리 있다가도 확 뛰어와서 안아주고 내가 볼이 떨어져나갈 듯이 뽀뽀를 해주면 까르르 뒤집어지며 웃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허벅지와 종아리를 마사지해주면 간지러워 몸을 이리 굼실 저리 굼실 하며 배를 잡으며 웃고, 내가 하는 이런 저런 유치한 장난들 좋다며 또 해달라며 수십번이고 조르지만 이게 언제까지일까. 그런 생각이 들면 지금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거 같다는 표현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제야 와닿는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주렴 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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