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vs. 한국] 탄력근로제

덴마크에 있는 모든 기업이 탄력근로제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서는 탄력근로제를  시행하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많은 경우 9시부터 3시 정도까지는 사무실에서 있는 것으로 하되 그 외 시간은 주당 37시간을 채우도록 앞뒤 시간을 개인 사정에 맞추는 것이 흔하다. 9시보다 늦게 출근해야 하는 경우는 별도의 승인을 받게 하는 경우가 흔한데, 회의라던가 공동의 작업에 지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야근에 대해서는 전문직일수록 별도의 수당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남편은 평소 8시 반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을 한다. 출산 전엔 6시 반 정도에 퇴근했는데 지금도 평일 저녁에 이틀 정도는 몇시간씩 일을 하고 주말 저녁에도 하루 정도는 일을 한다. 점심을 30분 이내로 짧게 쓸 경우 점심시간을 안쓴 것으로 간주하기에 평소에 점심을 30분 이내로 먹거나, 앞뒤로 연이은 미팅때문에 10분동안 샌드위치를 입에 우겨 넣곤 하는 남편은 주당 50시간 정도 일하는 것 같다. 주당 37시간이 기준 시간이지만 그 이상 일한다고, 툭하면 주말을 껴서 가는 출장의 경우 사무실을 비우는 기간 동안 쌓일 이메일을 비운다고 저녁에도 일하고 집에 와서도 며칠 바삐 야근을 해도 딱시 야근 수당 같은 건 없다. 이는 애초에 직무와 연봉에 이런 초과근무에 대한 고려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부처라고 모두 일관된 출퇴근 정책을 갖는 건 아니다. 부처의 특성을 고려해서 각자에 맞는 정책을 갖게 되는데, 경쟁소비자청은 탄력근로제를 도입하고 있다. 분기별 20시간은 야근을 할 수 있도록 급여에 야근 수당이 이미 책정되어 있다. 업무시스템 체크인, 체크아웃 시간을 기준으로 추가시간과 부족시간을 분기당 산정해서 네팅한 순초과시간이 20시간을 넘지 않으면 야근수당을 주지 않고, 이보다 부족하다고 해서 토하지는 않는다. 물론 최소 근무시간은 근무해야한다. 물론 여기도 특정 직급 이상의 경우 야근이라는 개념이 없다. chefkonsulent, specialkonsulent, chef 이런 사람들은 근로 상한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정의되어 있으니 말이다. 

한국에서 일할 때도 탄력근로제가 있었다. 마지막 해외파견 전 새로이 도입된 나름 현대적인 정책이었다. 육아가 필요한 사람들의 경우 조금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조금 특별한 것이라 신청한다고 받아들여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에 따른 인력 조정이 쉽지 않은 터였다. 물론 여기서도 풀타임 채용인 자리에 파트타임으로 해달라고 하는 건 쉽지 않다. 만약 일찍 근무하고 실제로 일찍 퇴근하는 게 가능했다면 이를 쓸 사람들도 제법 있었을 것 같은데, 일찍 근무를 시작한다 해도 일찍 퇴근하는 게 불투명하고, 늦게 출근하는 걸 신청할 경우 야근을 피하려 한다는 인상을 줄까 싶어 그렇게 신청하는 사람도 없었다. 따라서 아주 특별한 경우에나 쓰는 게 탄력근로제였다.

남편과 나는 아마 내가 일찍 출근해서 남편이 애를 보육원에 드롭하고 내가 일찍 퇴근해 애를 픽업하는 식으로 일을 하게 될 것 같다. 기왕 일찍 일을 시작하는 게 아침에 조용한 때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출퇴근 혼잡을 피할 수 있으며, 저녁 장 봐서 밥 하기에도 수월할 것 같기 때문이다. 7시 반 출근으로 잡으면 오후 3시에서 오후 3시반 사이에는 퇴근할 수 있을 것이다. 점심시간을 근무시간에 포함시켜주는 정책 덕이다. 물론 아마 저녁에 집에서 일을 해야하는 날들이 제법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이런 게 되니 둘이 다 일을 하면서 주변 가족의 도움 없이 애를 키울 수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애 낳는다고 한차례에 그치는 출산수당, 애 키우면서 조금씩 나오는 양육수당은 애 키우는 데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전체 사회가 이런 유연성을 가질 수 있고, 그로 인해 증가하는 사회 전체 비용 증가를 개개인이 용인해 줄 때 애 낳을 마음이 나는 것 아닐까? 옌스와 나는 이런 여건 속에서도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생각인데 한국이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 같다. 풀타임 근로자의 탄력근로제야말로 한국 출산율 증가에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아닐까?  

학생으로서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 2막

나만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았던 어린 시절 나의 기억은 여느 누구와 다를 바 없이 단편의 조각으로 토막나 그 중 아주 일부만이 남아있다. 그 일부 중 하나는 학교 가는 첫날이다. 부모님이 사주신 책가방을 몇번이고 만져보고 필통에서 연필과 지우개를 꺼냈다 넣었다 반복하며 등교할 첫날만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막상 내 등교 첫날의 기억은 혼돈이다. 입학 전 수시로 들락날락 거라며 놀았던 운동장에서 있을 입학식인지라 엄마는 혼자 가서도 잘 할거라고 생각해서 학교에 날 보내셨고, 어려서부터 독립심이 넘쳤던 나는 그런 상황에 더 신나 등교를 했었다. 하지만 대규모 인파가 몰린 곳에 혼자 가는 것은 처음이었던지라 맞는 반에 찾아가고 다른 학생과 줄을 맞춰 교실로 가는 것이 의외로 정신없었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조차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이 엄마와 함께 있어서 더욱 위축되어 자신이 없어졌던 것도 같다. 다행히도 큰 문제는 없었고, 하교 길엔 항상 다니던 길로 잘 돌아왔던 것 같다. 사실 하교 길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 그 당시는 국민학교였다. – 입학 이후엔 입학이라는 일이 그렇게 설레는 일이 아니고 졸업이 큰 일이었다. 대학교 입학도 자유로운 세상이라는 생각에 설레긴 했지만, 계속 하던 공부를 더 하는 거라 그랬는지 크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처럼 새로운 학교에서의 공부라는 것이 쭈욱 아무런 감흥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상적 일이었기에 대학원 입학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어제는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의 첫날이었다. 전날 저녁부터 가방을 싸고 아침 일찍 일어나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아 캠퍼스에 도착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때까지는 그냥 즐거운 하루의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그간 집에서 혼자 공부하며 지냈던 탓에 사람 냄새를 별로 못맡아 그런지 뭔가 어색한 듯 했지만, 금방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시작하며 어색함의 벽은 허물어졌다.

10시가 되어 사람들이 서서히 대강의실로 이동했고, 나도 그 무리의 꼬리를 밟고 거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강의실에 들어섰다. 연대 강의실은 별로 가파르지 않았기에 가파르게 설계된 강의실의 큰 규모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거의 마지막줄에 앉고 나니 큰 화면과 칠판, 앞을 메운 학생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아… 내가 정말 풀타임 학생이 되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덴마크에서 새롭게 꾸려갈 인생 2막이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오랜 기간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이제 시작이다. 미래에 대한 고민은 꾸준히 해야겠지만, 지금은 그냥 이 순간에 집중하며 즐기고 열심히 공부하련다. 어린 학생들과 친구가 되고 경쟁도 하며 즐거운 2년의 시간을 꾸려갈 마음에 설렘과 걱정이 교차하지만 이 모든 것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