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적 그리움

나는 메신저가 싫다. 직접 사람을 만나서 대화할 수 없다면, 아직도 난 전화나 편지, 그게 안된다면 최소한 이메일이 좋다. 편지를 쓰는 일은 아주 드물어졌지만 그 아날로그적 경험이 주는 감성을 사랑한다. 연락이 뜸해졌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싶으면서도 하기 싫어지는 이유는 바로 변한 채널 때문이다. 게으름 또는 마음의 거리를 감추기 위한 변명일 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 나는 정말 메신저가 싫다.

어제는 날씨가 참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 안 15분의 시간을 생산적으로 쓸 수도 있겠지만 난 밖을 내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읽기도, 라디오를 듣기도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이다. 매일 관찰하면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것들이, 그 관찰을 한달, 두달, 한철, 두철 이렇게 꾸준히 관찰하다보면 변화하는 것이 조금씩 느껴진다.

마침 열차가 Nordhavn (북항) 역으로 들어서는데 하늘과 바다가 얼마나 아름답게 만나고 있던지. Nordhavn 지역은 재개발이 한창이라 전혀 그 자체가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하지만 은색으로 시작해서 수평선으로 갈 수록 검푸른 색으로 변하는 바다의 색깔과 핑크색으로 시작해서 노란색, 하늘색, 푸른색으로 변해가는 하늘, 하늘이 어두운 건 아니지만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길거리 등이 어우러져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의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어쩌면 내 완벽주의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의 느낌을 정말 온전히 전하고 싶은 마음때문에. 그냥 한 줄 메세지로 “이 순간을 너와 공유하고 싶었어.”라고 전해도 되는데, 그간 자주하지 못했던 연락에 미안한 마음이 커져서 그 마음의 크기만큼 제대로 표현하고 싶은 탓에 메세지는 선택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내 글들이 대체로 일방적인 것처럼 나는 그 마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도 있었다. 교류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순간 생기는 응답에 나도 재응신을 해야 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나누고 싶음과 혼자있고 싶음이 교차하는 순간, 난 다시금 연락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곤 한다.

메신저의 그 즉흥성 또는 가벼움이 싫다.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관심을 약간만 할당하는 게 싫다. 난 온전히 전하고 온전히 받고 싶은데…

내가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나의 마음은 항상 그녀에게 닿아있다고 했던 것을 그녀가 언제고 알아주면 좋겠다. 세상이 아직도 충분히 느려서 사람들이 이와 같이 느린 교류를 마음의 거리와 동선에 두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그녀에게 시간을 내서 편지를 써야지 한 것이 어느새 달을 넘기고 있다. 펜을 들어야지. 간혹 주고받았던 메세지 만으로는 전달되지 못한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적도의 땅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을 그녀가 춥지만 맑고 아름다운 오늘 더욱 그립다.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엘니뇨 현상으로 올 겨울은 온화한 계절이 예상된다고 한 것을 들은 지 오래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북풍한파가 닥쳤다. 거센 바람과 함께 눈폭풍이 들이치기 전에 부모님이 타신 비행기는 한국을 향해 떴다. 아슬아슬하게 한파를 피해가신 탓에 늦가을의 끝자락을 겨울이 오기 직전까지 함께하고서야 돌아가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무서운 눈폭풍이 가라앉고 난 뒤 통상 찾아드는 고요함과 함께 밝은 햇살이 겨울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부모님의 빈자리가 갑자기 느껴진다. 계신 동안 학교 수업이 시작되며 바빠져 제대로 마지막 한 주를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일상은 계속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엄마가 떠나기직전 남기고 가신 편지 한 장이 내 마음을 크게 울린다. 이를 쓴 엄마의 마음이 한 글자, 한 글자 온전히 마음에 다가오기에 이를 읽을때마다 눈물이 난다. 내 진짜 독립은 지금 이 순간이 아닌가한다. 이미 독립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또 다른 가정을 꾸려가야 하는 이 순간을 맞이해 나를 떠나보내는 마음과 인생을 살아가다 지칠 때 나를 다시 추스를 수 있도록 하는 그 글에서 더이상 내가 부모님 품 안의 자식이 아님을 느낀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날기 싫은 마음마저 갑자기 들지만, 그간 무수히 연습만 해왔던 비행은 앞으로 떠날 긴 진짜 여정의 시작이 되었다.

이 편지는 깊고도 소중한 곳에 묻어둔다. 언젠가 타국의 삶이 힘들고 나를 지치게, 주저앉게 할 땐 이를 꺼내 마음의 위안을 얻으리라. 지금은 그 마음에 울며 읽지만, 지금 알 수 없는 미래의 힘든 그 순간엔 이 종이 한 장이 참으로 따뜻한 마음의 울림을 주리라. 그리고 난 다시금 용기와 힘을 내어 그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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