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 중에 하나다. 특히 덴마크인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특히나 어렵다. 이는 덴마크로 이주해 온 외국인이 흔히 하는 불평중 하나다. 외국인을 위한 덴마크인 이해하기 강좌 등에 가보면, 덴마크인을 코코넛에 비유하곤 한다. 처음에 껍질을 깨고 그 내면으로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스페인 등 남유럽쪽 사람들은 타인을 쉽게 친구로 맞이하곤 하는데, 사실 그 내면 깊숙한 곳에는 단단한 씨앗이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이유로 복숭아 같다고하며 이 둘을 비교해 설명하는데, 다들 참 적절한 비유라고 이야기한다. (어학원에서 만난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등에서 온 남유럽 사람들 또한 매우 공감하던 이야기다.) 이는 꼭 덴마크에 온 외국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다가 새로이 코펜하겐으로 이사온 덴마크인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덴마크인과 가족이 되지 않고는 덴마크인의 주류 사회로 편입되기까지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친구를 사귀는 길이라고. 그러나 사실 남자친구/남편의 가족은 가족이지만 또 친구와는 다르다. 가족이 있다고 해서 친구가 필요없는 건 아닌 것처럼. 또한 그의 친구는 그의 친구이지, 내 친구는 아니다. 물론 가깝게 지내고 소식 들으면 반갑고 언젠가는 정말 가까운 사람이 되겠지만, 그건 남자친구 또는 남편을 매개로 한 관계이기 때문에 따로 만나고 할 관계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덴마크인은 다른 나라에서는 친구로 분류할 사람들을 아는 사람으로 분류할만큼 친구에 대한 정의가 참 까다롭다. 덴마크식 정의로 하자면, 내 친구중의 대부분을 아는 사람으로 쳐내야 할 정도다.
물론 대학생활을 같이 하는 경우는 다소 예외로 봐야 한다. 모든 나라를 가본 것은 아니지만, 감히 섣불리 예단하자면, 많은 나라에서 학생은 쉽게 친구가 되니까.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고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인 것 같다. 직장은 내 입맛과 상관없이 조직이 원하는 대로 물리적으로 필요한 인간관계가 구성이 되고, 좋든 싫든 만나야 하는 사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친구가 생기긴 하지만, 한국처럼 회식문화가 없는 덴마크에선 그렇게 되기 어렵다. 결혼식 때 직장 동료를 초대하는 경우가 드문 것도 그 때문이다. 가족 중심적인 덴마크 사회에선 근무시간이 딱 끝나면 여러가지 가정 내 의무와 책임을 위해 빨리 퇴근해 집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일 끝나고 한잔?’ 이런 것이 힘들다. 뭘 하려면 최소 1~2주 전에는 약속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친구를 사귀려는 관계 초반에 어찌 그렇게 플랜 잡고 하게 되나? 잘 안된다.
결국 외국인들은 주로 외국인을 많이 사귀게 된다. 외국인과 사귀는 게 나쁜 건 절대 아닌데, 정착을 하려는 사람이 아닌 경우, 다 친해지고 나면 떠나는 경우가 많다. 전 세계에 친구의 씨앗을 뿌리는 셈인데, 내 친구들도 이미 여기저기 전세계에 많이 흩어져 있는 탓에 이미 익숙은 하지만, 내 일상을 시차 없이, 얼굴 보고 만나서 부담 없이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 하나쯤은 자기 사는 도시에 갖고 싶은 것이 인간 마음일 것이다. 미리 몇일전에 약속 잡고 봐야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느 순간 생각나서 문자 한 통 보내거나, 전화 한 통 해서 얼굴 볼 수 있는 그런 사람.
덴마크어 학원을 다니면서 알게 된 한 명의 친구, Amanda. 그녀는 나의 이러한 갈증을 채워준 친구이다. 미국인 어머니와 덴마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두가지 문화를 갖고 있으며, 미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덴마크에서 살 생각으로 완전히 건너왔다. 지금은 수업을 같이 듣지는 않지만, 그 밖에 따로 만나서 저녁도 먹고, 차도 마시고, 수다도 떨며, 나중에 같이 아프리카 여행도 같이 하자고 이야기한 친구이다. 나와는 나이 차이가 거의 10살 가까이 나지만, 나이라는 숫자는 중요하지 않고, 참 성숙한 친구다. 공통점도 많고, 할 이야기도 많고, 참 마음이 따뜻해지는 친구이다. 과장이 없고, 담백한, 그리고 인생의 드라마를 만들지 않는, 자신에 대한 사랑도 충분하고, 타인에 대해 사랑할 수 있고, 혼자 설 수 있는 친구이다. 어렸을 적 사귀는 친구는 처음 케미스트리가 맞지 않아도 어린 날 다른 서로에게 고무찰흙처럼 서로 맞추어가면서 친해지고, 장단점 서로 끌어안고 가까워지기 좋지만, 나이가 어느정도 들어서 사귀는 친구는 초반 케미스트리가 맞지 않으면 가까워지기 어려운데, 그녀는 친구로서의 케미스트리도 맞고, 서로에게 수업을 같이 들은 다섯 달이라는 시간동안 서서히 맞춰가면서 성향도 잘 파악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아있고, 항상 서로에 대해 궁금하고, 걱정해주고, 오랫만에 만나도 바로 엊그제 만난 것처럼 멀어지지 않는 절친한 친구들이 있다. 그들과는 다르지만, 그들 중 하나가 될 것 같은 그녀. 참 좋다. 지난 2년간 고생해서 친구 두 명을 얻고, 한명은 스위스로 떠나보냈지만, 그래도 한명은 앞으로 이 곳에 계속 남아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푸근하다.
터키 여행을 다녀온 그녀가 샐러드에 넣어 먹을 수 있는 향신료를 사왔다. 터키의 달달한 스위트도 먹어가면서 커피 한 잔 하는 일이 참 편안하고 즐거웠다. 집중력 저하에 대한 극복 방법 등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면서 헤어지고 나니, 그간 뭔지 약간 부족한 듯 했던 마음 한켠이 탁 채워졌다. 내가 한국으로 1주 다녀오고, 그녀가 터키로 1주 다녀올 2주 동안 옌스와 가족 외엔 별로 이야기를 길게 나눌 일이 없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옌스가 아무리 좋고 그래도, 인간은 개인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덴마크에서 친구 사귀기는 앞으로도 계속 되겠지만, 좋은 친구 한 명 얻은 것이 어찌나 기쁜지… 오늘 하루 마음이 푸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