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산후조리

영국 왕세자비가 출산 다음날에 퇴원한 것을 두고 한국에서 논란이 많이 있었다. 한국의 산후조리 관점으로 봐서 동양인도 이럴 수 있느냐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 우선 한국인의 출생시 머리둘레는 WHO 기준으로 평균이기에 애 머리가 커서 산후조리가 달라야 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또 흔히 이야기 되는 것으로 서양여성의 골반이 크고 근육량이 많아서 산후조리를 안해도 된다는 것이 있다.

같은 체중의 아이를 출산할 경우 서양모계가 동양모계보다 출산이 용이하다는 건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논문을 찾아볼 수 있었다. (대학원을 다녀서 저널 논문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간혹 임신과정에 대해 일반 책자로 알 수 있는 이상 더 파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이를 읽어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서양인과 동양인의 혼혈아기 출산시 제왕절개율로 보는 서양인과 동양인간 출산 난이도 차이 같은 것 말이다. (Michael J. Nystrom, Aaron B. Caughey, Deirdre J. Lyell, Maurice L. Druzin,Yasser Y. El-Sayed (2008). Perinatal outcomes among Asian–white interracial couples in American Journal of Obstetrics & Gynecology 199 (4), (385.e1-385.e5) DOI:10.1016/j.ajog.2008.06.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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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중요한 연구결과를 발췌한 표이다. Cesarean delivery (CD, 제왕절개)율을 보면 아시아 모계와 백인 부계의 자녀는 33.2%이고 백인 모계와 아시아 부계의 자녀는 23.0%이다. P value가 0.001보다도 낮아 매우 유의미한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같은 아시아-백인 혼혈자녀를 출산할 경우 백인 모계 출산시 제왕절개율이 아시아 모계 출산의 경우보다 10.2%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골반 골격 차이 등을 포함한 생물학적 차이가 이런 차이를 낳는다고 볼 수 있다. (논외의 발견이지만, 각각의 하위그룹 중 인종간 커플의 샘플사이즈를 보면 아시아 모계와 백인 부계는 690, 아시아 부계와 백인 모계는 178로 아시아 부계와 백인 모계 결합이 훨씬 드문 것을 볼 수 있다.)

단지 이것만 놓고 이야기하면  동양 여성의 골반이 작아 산후조리도 더 길게 해야한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백인커플과 동양인커플의 제왕절개율을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더 크게 태어나는 태아로 인해 백인커플의 출산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골반 사이즈 등의 체격 조건은 서양 모계가 출산에 더 용이하지만 아기가 더 커서 서양인의 출산시 충격이 동양인보다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골반 사이즈 차이로 인해 서양여성이 더 쉽게 출산할 수 있고, 따라서 산후조리가 필요 없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근육량은 어떨까? 인종간 선천적 근골격계 질량 차이를 보면 설명이 될 것 같다. (Silva AM, Shen W, Heo M, et al. Ethnicity-Related Skeletal Muscle Differences Across the Lifespan. American journal of human biology : the official journal of the Human Biology Council. 2010;22(1):76-82. doi:10.1002/ajhb.2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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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그래프의 여성 근골격량을 보면 빨간색이 백인, 보라색이 아시아인이다. 남성의 경우 아시아인은 생략되었다. (아마 적은 샘플사이즈 등으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안나와서 생략된 것 같다.) 여성의 인종간 근골격량 차이는 남녀의 근골격량 차이에 비하면 근소한 차이를 보이나 회귀분석으로 나타나는 백인과 아시아인 여성간 근골격량 차이는 전연령대에 걸쳐 개략적으로 3-4킬로그램 정도로 나타난다.  어쩌면 이 근골격량의 차이가 모체에 주는 출산의 충격에 차이를 빚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근골격량 3~4킬로그램 차이는 백인여성과 아시아인 여성의 키차이를 고려하면 골반 인근 근골격량 차이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사실 난 덴마크식 산후조리를 하고 있다. 덴마크식 산후조리는 사실 우리나라 의학계에서 조언하는 바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 의학계의 산후조리에 대한 조언이 덴마크 의학계의 그것보다는 우리나라 전통 산후조리 방식에 근접해 있으나, 임신 기간 중 체중 관리 및 운동에 대한 조언과 출산 후 그것에 대한 조언은 원론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산후조리방식은 사실 구전으로 내려온 전통적 방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사실 이는 지금과 많이 다른 과거의 주거문화 및 생활방식에 기초해 형성된 것으로 지금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출산 후 산후조리의 차이는 임신 기간 중 산모의 신체관리 방식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덴마크에서는 임신 기간 중 꾸준한 운동을 권장한다. 근손실을 최대한 막아야 출산시 용이하고 출산 후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임신중에는 무조건 휴식을 권장하고, 임신 초기 몸가짐을 조심하여 신체활동을 극히 줄이도록 주문하는데 그게 근손실에 큰 영향을 준다. 또한 의사가 체중관리를 요구한다 하더라도 임신 기간 중 먹고 싶은 것 못먹으면 스트레스가 애에게 간다든지, 몸이 요구해서 먹는다든지, 그때 남편이 원하는 것 안사다주면 평생 한이 된다든지의 이유로 원하는 대로 먹게 하는 경우가 많다. (과도한 체중 증량은 임신중독증, 임신성 당뇨, 부종, 아이의 체중 증가 – 이는 아이의 장기적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한다. – 등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살이 트는 것도 피부가 감당하기에 너무 빠른 체중 증량과 관계가 있다.)

근손실과 과도한 체중증가의 결합은 출산 후 신체가 받는 충격을 가중시킨다. 출산에 대비해 관절을 유연하게 만드는 릴렉신 호르몬의 본비는 출산후 6개월여까지 지속되는데, 이로 인해 출산 후 가볍게 걷는 것 자체도 너무 힘들고, 애를 안거나 돌보는 일도 힘들어진다. 그 와중에 급격히 체중이 느는 아기를 돌보면서 집안일을 하다보면 신체에 무리가 오고 소위 말하는 산후풍이라는 것을 겪게 되는 것 같다.

진짜 모체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의 임신과 출산후 산후조리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신 전부터 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늘려 임신기간 중 일부 근손실에 대비하고 임신 기간 전체기간 중 기간별로 알맞는 운동을 통해 근육량의 손실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 그리고 출산 후에도 초반부터 기간 별로 권장되는 운동을 함으로써 골반저 회복부터 시작해 신체 회복을 돕고, 가벼운 걷기를 포함해 서서히 정상 생활로 복귀하는 것이 필요하다.

출산 다음날 나는 퇴원을 해 복귀했는데, 경산의 경우 출산 후 6시간 내 퇴원하는 (산모가 난산 등으로 별도의 이유가 있지 않는한) 것이 이해가 간다. 나의 경우 초산이라 출산 후 어떤 일이 생기는 지를 잘 예상하기 어려워 산파와 건강상담사 (Sundhedsplejerske, 간호사 중 출산 및 육아와 관련된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자격을 획득한 전문상담사) 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하루 머물렀지만, 지나고 보니 바로 퇴원해도 상관없었다.

물론 앞으로도 산후조리는 시간에 걸쳐 해야하는 일이기에 추가적으로 관찰해보고 판단할 사항들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시아인이라 해서 꽁꽁 싸매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지루하게 산후조리원에 앉아서 산후조리를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인 입장이다. 초기 한달 정도는 모유 수유 및 기타 육아의 리듬과 패턴을 수립해 가는데 적응기간이 필요하기에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막대한 돈을 들여 산후조리원에 가서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사도우미를 쓰는게 더 낫지 않나 싶다. 그리고 모자 동실 쓰는게 엄청 힘들다고 하는 글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읽었는데, 사실 애가 가장 가볍고 요구사항이 가장 간단한 신생아 시절에 미리부터 아이에 대해 알아가고 밤중 수유의 패턴 등에 익숙해지는 것이 산후조리원 생활 이후 불쑥 커진 아기와 갑자기 둘이 앉아 그제서야 아이에 대해 배워가는 것보다 수월한 것 같다. 이제 13일차 된 하나를 보면 대충 뭘 원하는 지 우는 형태로 알겠고, 아이도 부모에 대해 빠르게 익혀가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 산다는 게 여러모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재미가 있다. 내 지인들은 내가 특별한 경우라고 하지만, 사실 내가 특별히 다른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신체적으로 유별나게 좋은 조건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 경험을 공유함으로서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간접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니 내가 쓰는 글이 절대적이거나 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덴마크 출산기

마지막으로 신파를 만났던 날, 지난 목요일. 다녀와서 덴마크 출산 시 산모 내진에 대한 글을 크다가 저장을 해두었는데, 그날 밤 그 글을 다 쓰기도 전에 출산을 해버리게 되었다. 내진의 고통에 대한 여러가지 글들을 익히 읽어둔 터라 그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임신 막달 들어 흔히 내진을 하는 한국의 프랙티스와 이곳의 차이가 크게 다가오기도 했다.

예정일이 지나도 안나와 다음 약속한 시간에 산파를 만날 경우, 분만 유도의 일환으로 내진이 어떻게 활용되는 지, 기타 예정일 후 12일이 지나도 안나와 경우 유도분만이 어떻게 진행될지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안내되어 있는 문서를 받아들고 집에 왔었더랬다. 도대체 내 자궁경부는 얼마나 많이 열려있는지, 진행은 어떻게 될 지에 대한 신파의 견해도 궁금했기에 살짝 아쉬웠다. 뭔가 예정일 직전 마지막 면담에는 내진을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한 탓이었다.
그날 밤, 유독 하나가 많이 움직였다. 그 전에 하나가 많이 움직이면서 손가락으로 하나가 자궁경부를 파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 들이 있었는데, 그게 알고보니 자궁경부가 조금씩 얇아지거나 벌어지면서 생기는 느낌일 수 있다고 한다. 애의 태동과 동시에 나는 경우, 그건 머리가 움직이면서 생기는 마찰 때문에 느끼는 경우가 흔하다고 하니 손가락으로 파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 전날 브랙스턴 힉스 수축이 유독 강했던지라 그날 출근하려나 김칫국을 마신 경험을 하고 난 후였어서, 이날 밤 세번의 강한, 꼭 생리통 같았던 배뭉침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냥 하나의 격렬한 태동이 다소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다가 뭔가 왈칵하고 흐르는 느낌. 소변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분비물이라기엔 느낌이 수상해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한번 더 왈칵하는 느낌이 들더니, 변기에 앉자마자 뭔가가 주르륵 쏟아졌다. 희뿌옇게 혼탁한 액체에 선홍빛 피가 섞여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자궁경부를 임신 기간 내 봉인하고 있었던 점액질의 플러그인가, 아니면 양수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우선 화장실 분을 열고 자고있던 옌스에게 소리를 쳤다. “I think, my water just broke!.” 그리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이때가 12:30. 한밤중이었다. 양수면 계속 흐른다고, 30분만 관찰해보고 다시 전화를 달라했다. 조금 지나고 보니 이게 말로만 듣던 양수였다. 다시 전화를 하니 6:30까지 진통이 4-5분 간격으로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단계에 돌입하지 않으면 그 시간에 와서 유도분만을 하자고 했다. 유도분만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는데, 사실 이미 심한 생리통같은 진통은 양수 터지기 시작 직전부터 브랙스턴힉스 수축의 형태로 세번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난 과연 6:30까지 아무일도 없으려나 하는 의구심이 들고 있었다.
다운 받아둔 진통 어플을 이용해 진통 간격 및 지속시간 등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진통 시작시점 기준, 분명 4-5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면서 도래하는 진통이 1분여 정도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여부를 한두시간 정도 관찰하고 병원으로 연락을 하라 했었다. 그런데 이건 뭐랄까… 처음부터 7-10분 간격이었는데 그게 빠르게 7-8, 6-7분 간격으로 내려오더니 5분, 4분, 3분 간격으로도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이미 아주 심해져서 호흡을 관리하기 힘들었다. 산파의 설명을 들은 후 유투브 비디오도 보고 열심히 연습도 해두었는데.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할 거 같아서 양수 색을 확인하려고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가기 직전 진통이 끝나고 화장실 가자마자 한번, 나오는 길에 화장실 앞에서 한번, 물이라도 한잔 더 마시려는데 부엌에서 또 한 번 더. 이건 재보지 못했지만 삼분 간격인 것같았다.
옌스에게 병원에 전화해서 가겠다고 하라 했는데, 병원 출산동 응급라인이 통화중이란다. 택시부터 잡으라 했는데, 옌스도 정신이 없었는지 허둥대고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하기를, 택시 부르는 법이 순간 기억이 안났다더라. 그때가 3:55분. 4:10분에 부를지 20분에 부를지를 물어보길래, 그냥 기다리게 해도 좋으니 우리 준비되면 바로 떠나게 10분으로 부르라고 했다. 십분 더 기다려서 돈이 더 나오는게 (물론 십분 차이에 한 이삼만원 더 내야겠지만) 뭐 대수냐는 마음에 치밀어오르는 화를 눌렀다. 사실 평소였으면 너무 당연한 질문인 건데, 상황이 이런데도 그런 질문을 하다니!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최대한 차분히 이야기를 하고 옷을 입었고, 이미 싸둔 짐을 챙기고 병원에 추가로 연락해서 우리가 간다는 걸 알리는 모든 걸 다 해야하는 옌스는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다행히 전화가 연결되서 내가 상황을 설명하고, 가는 것으로 알렸다. 덴마크인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는 역시나 그 와중에도 신호를 꼬박꼬박 지켰으나, 달리는 순간 만큼은 속도 제한 내에서 엄청 달리는 게 느껴졌다. 십분을 달리는 와중 세네번의 진통을 겪고 병원에 도착했다. 출산동으로 복잡한 길을 헤매며 도착했더니 시간이 4:20의 되어있었다. 목이 말라 밤새 못마신 물을 두잔 마시고 났더니 속이 미식거렸다. 아마 진통이 시작되면서 소화가 멈췄었던지, 다섯시에 먹었던 김치찌개의 일부와 그 이후 먹은 과일의 흔적을 확인하게끔 말끔히 게워냈다.
산파는 처음으로 내진을 해주었고, 통증따위는 없었다. 양수가 내내 이런 색이었냐길래, 그렇다고, 내내 선홍빛이 돌았다 하니, 지금은 약간 초록빛이란다. 오기 직전까진 아니었는데, 그 사이 색이 바뀐 모양이었다. 자궁경부는 이미 4-5센치가 열렸고, 매우 부드럽고 얇아 금방 열릴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자기가 지금 마사지를 하고 있으니 조금 시원할 거라고 하는데, 시원하진 몰라도 말로만 듣던 고통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애 심장 박동은 무리가 없는데, 그냥 태변을 봐서인지, 그걸 먹고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조금 모니터링을 해야한다길래 산모 접수실에서 모니터링을 조금만 더 하자고 했다. 오늘 분만실이 바쁘다며, 분만실 정리중이고, 모니터링 세팅은 추가로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다. 내가 진통중 자세를 움직이면서 모니터링이 잘 안되자, 누군가 들어와서 이렇게 움직이면 안된다고 하고 다시 심장박동기를 세팅해주로 나갔다. 두번째 그런 일이 생기자 들어온 사람이 (산파가 아닌 듯했다.) 이러면 모니터링에 시간이 더 걸린다며 움직이지 말라면서 그 방에 십분 더 있으라고 했다. 그런 일이 한번 더 있고 나서는 옌스가 내가 움직이지 않게끔 옆에 앉아 날 잡아주었다. 정말 아파서 어쩔 수 없었고, 물론 움직이려면 움직일 수 있었지만, 옆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버틸 정신적 힘이 조금 더 생겼다. 다행히 하나의 심장박동은 괜찮았다. 이때 에피듀럴 혹시 맞는게 가능하냐고 한번 물어봤는데, 아무 대답을 못들어었고, 나도 원래 원하던 바가 아니었기에 더이상 물어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진통은 빠르게 양상이 바뀌고 있었다. 갑자기 난 짐승과 같은 괴성이 섞인 긴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아주 긴 복식 호흡이 중요하다 해서 길게 내쉬고 있었는데, 이 호흡이 야수의 신음같이 나왔다. 그르릉 하는 소리로. 그리고 머리가 아래로 내려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빨리 산파 부르라고 옌스에게 말하고 나니 또 그런 진통이 왔다. 다시금 그런 느낌이 오는데 아직도 누가 안와서 옌스에게 화를 내며 재촉을 했다. 나 여기서 낳을 것 같다고, 빨리 부르라고.
나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했던 야속한 그녀가 나를 데리고 휠체어로 분만실에 데리고 갔다. 가는 길에 또 한번의 진통이 와서 야수같은 호흡을 내뱉자, 그녀가 히히후 하는 호흡을 하란다. 내 산파가 그건 구식 호흡이라고 이야기해줬는데. 힘들게 호흡을 컨트롤 하고 있는데 자꾸 히히후를 강요해서 짜증이 났다. 나 호흡중이라고 쏘아붙이고 나니 더이상 가타부타 않는다.
분만실 도착해서는 침대에 올라가 앉으라길래 왼쪽으로 기대 앉았다. 하나의 심박을 모니터링하고 때 그 자세가 아이에게 가장 편한 자세라고 했었기에. 옌스는 내 옷을 벗기라는 명을 받았는데, 나에게 몸을 움직여 보라길래, 그냥 당겨서 빼라고 움직일 수가 없다고 했다. 또 한번 강하게 오는 진통에 다시 짐승같은 호흡을 시작하자 산파가 잘 하고 있단다. 관장을 할 시간도 없었는데 뭔가 나온 것 같았다. 산파에 그 당황스러운 상황을 이야기했다. 기저귀를 벗기려는데, 옌스는 옆에 있고… 약간 지린 것이 맞았다. 이런… 그 와중이지만 민망하여 농담이 나왔다. 다 잊어버리라면서, 나 나중에 치매와서 벽에 똥칠하면 그 때 어차피 봐야하는 거니까 그렇게 본 셈 치라고. 농담을 할 힘이 난 건 좀 웃기긴 했지만 나도 오죽 민망했으면 그랬겠나.
그리고 또 한번 진통이 왔다. 이 진통이 끝날때쯤 이미 머리가 보였다고 하는데 진통이 멈추자 애가 다시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진통에는 진통이 끝나고도 배에 긴장을 늦추면 안되겠구나 싶었다. 지금 정말 잘하고 있다고, 딱 그 느낌으로 하라는데, 다음 진통엔 애의 머리가 나오고, 그 다음엔 하나의 온 몸이 나왔다. 중간에 힘 멈추랄 때 멈추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애가 나오자마자 배에 하나를 올려주는 순간 사실 너무 얼떨떨했다. 그 정신없는 와중 탯줄 아빠가 잘라줄 거냐고 산파가 물어서 옌스 얼굴을 한 번 봤는데, 이미 둘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안자른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눈이 촉촉히 젖어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많이 울었다더라. 난 약간 실감도 안나고 해서 눈물은 안났고, 그럼 엄마가 자르겠냐는 질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썩둑썩둑 잘랐다. 듣던대로 잘 잘라지지 않더라.
막상 분만기는 십오분에 불과했던건데, 가장 힘든건 이때보다는 자궁경부가 열리는 진통기였다. 특히 택시에서 내려 출산동으로 가는 시간, 태아 심박 모니터링하던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회음부 절개는 없었지만, 질이 일부 열상이 있어 여러 바늘 꼬맸는데, 마취 스프레이의 따가운 느낌도, 중간에 다소 깊은 열상을 꼬맬때의 따가운 통증도 느낄 만큼 통각이 살아있었다. 그만큼 산고의 시간이 짧있단 뜻인 것 같다. 괜찮냐는 산파의 질문에, 물론 괜찮긴 하다고, 출산도 했는데 이정도 못견디겠냐는 농담도 할 정도로 여유도 있었고, 실제 지쳐 쓰러질 것 같은 그런 게 없이 출산 후엔 상쾌했다. 하나의 첫 똥도 치우고. 내 손에 똥 범벅을 해 준 하나. 흠흠.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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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다섯시간만에 산모병실로 내려와서 하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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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병동 @ Herlev hosp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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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실에서 애 나오고나서 10분뒤 모습

아침식사로는 토스트빵에 버터와 잼, 치즈(는 안먹었지만), 요구르트가 제공되었고 이를 먹으며 정말 한국과 다른 경험을 한다 싶었다. 출산이 바빴던 밤에 애를 낳은 탓에 산모병실이 안비어서 분만실에서 서너시간 지루하게 있다가 방을 옮겼다. 일인실인 방은 괜찮았고, 첫날부터 수유도 정상적으로 하고 밤도 무사히 잘 보냈다. 배는 바람빠진 듯 뭔가 이상한 감촉이지만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그냥 모든게 예상한 것보다 수월했다. 덕분에 바로 다음날 무리 없이 퇴원해 집에 올 수 있었는데, 정상으로 분만한 경산부가 여섯시간만에 집으로 가는게 어떻게 가능한 지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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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실로 아침식사가 배달되었다. 생일엔 대네브로(Dannebrog, 덴마크 국기)가 빠질 수 없다. 

이제 시작이지만, 그 시작이 수월해서 참으로 감사하다. (산파 왈, 이렇게 급격한 출산이 골반인대엔 그닥 좋지 않단다. 너무 급격하게 벌어지니 일종의 충격이… 그래도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긴 것보단 짧은 게 산모의 고통 입장에서는 나은 듯…?) 효녀 하나 덕분인 것 같다. 앞으로 잘 해보자 우리. 🙂

하나의 베이비샤워 @ 베스터브로

38주차에 접어들었다. 예정일까지 3주도 채 남지않은 셈. 하루하루 컨디션이 다르다. 어떤 날은 앉았다 일어나거나 돌아누울 때 억소리나게 많이 아프기도 하다가, 어떤 날은 또 너무 멀쩡하기도 하고. 하나의 머리가 골반으로 내려와 고정되면서부터는 간혹 한쪽 다리 신경이 눌리는지, 걷거나 서 있다가 전기가 통하듯 찌릿하거나 저리기도 한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서 이를 보상하기 위해 허리를 뒤로 젖히려 하게 되는데, 이게 허리 통증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주의하라고 한다. 의식적으로 배에 힘을 주고 바로 서면 뭔가 앞으로 허리를 숙이고 있는 듯 해 꼭 앞으로 기울어진 느낌이다. 그래도 학교 잘 다니고 있고, 여기저기 빨빨거리며 잘 돌아다닌다. 오늘은 출산 전 할 거리 중 하나였던 머리자르기도 해결했다. 출산 후 3개월부터면 앞머리가 많이 빠진다고 해서 미용사가 긴 앞머리를 내줬다. 앞머리 안좋아하지만 나중에 생길 무수한 잔머리를 숨기려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많이 짧아져서 한동안 머리를 틀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난 주말엔 친구들이 베이비샤워 파티를 열어주었다. 이는 덴마크가 아니라 영미권문화지만, 이 친구들은 덴마크 친구들이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핀란드, 미국, 한국 등 다양한 곳에서 온 친구들이라 베이비샤워를 하게 되었다. 영국으로 귀국한 친구의 생일파티에 모였을 때, 1월 중 베이비샤워를 열어주고 싶다며 괜찮겠냐고 물어보길래, 물론 좋다고 했다. 우리 문화의 파티는 아니라 영화로 본 게 다이고 다소 생소하긴 했지만, 친구들과 만나는 데에 새로운 핑계는 언제나 좋고 하나를 위해 파티를 열어준다는 게 참 고마웠다.

호주에서 온 에밀리네 집에서 하기로 했는데, 이사한 지 일주일도 안된 집을 정리하고 수선하느라 엄청 바빴다고 한다. 유명한 건축사무소에서 건축가로 일하는 친구인데 주로 특급호텔과 레스토랑 건축+인테리어 디자인을 한다. 평소에도 미적 센스가 탁월한데, 감각도 감각이고 여기저기 이쁘고 세련된 것을 많이 보는 경험이 더해져 그녀가 지내는 집마다 참 디자이너답게 센스있게 꾸민다. 주중엔 일하느라 정신없었는데, 가구 조립에 짐 풀고, 여기저기 수선하느라 얼마나 바빴을 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저것 먹을거리며 케이크와 쿠키, 음료 등 어찌나 다양하게 준비했던지 깜짝 놀랐다. 그냥 차에 케이크나 쿠키 같은 거 먹을 거라는 기대에 갔는데 너무 융숭한 준비에 정말 놀랐다. 주말 오전 11시 반까지 준비하느라 얼마나 정신없었을런지… 집안 장식까지 말이다. 모든 게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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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완전 감격! ㅠㅠ

호스트인 에밀리가 따로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초대하라고 해서 미국에서 온 친구와 한국에서 온 친구는 내가 따로 초대했다. 우리 문화가 아닌 영미권 문화 파티라 다른 한국 친구들을 초대하기엔 약간 애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한 한국 친구는 고등학교부터 오랜기간을 미국에서 지내서 베이비샤워라는 컨셉에 익숙할 것 같았고, 다른 친구들과도 알게 되면 좋을 것 같아서 초대했다. 약혼자네 가족 방문차 영국에 갔을 때 영국 근위병이 그려진 옷을 샀다며 손수 뜬 아기 양말과 함께 선물해주었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그 작은 양말 두개에 들어간 마음이 정말 따뜻하게 느껴졌다.

베이비샤워를 열어주는 게 너무 고마워서 뭔가 선물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인터넷을 뒤적여봤다. 역시나 Thank you gift 같은 걸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되어, 뭐가 좋을 지 고민을 했다. 베이비 샤워라는게 아기에게 선물로 샤워를 시켜준다는 의미이니 뭔가 샤워와 연관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들의 스윗한 마음을 고맙게 여기며 친구들의 샤워를 스윗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의미로 달콤한 향이 나는 샤워오일을 준비했는데, 내 마음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남아공에서 온 폴로소는 감정이 풍부한 예술적인 친구인데, 그 이야기에 괜히 눈물이 난다며 눈가를 훔쳤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다보니, 거의 다섯시간을 앉아서 있었던 것 같다. 임신전보다 7킬로나 불어 제법 동글동글해진 얼굴에 웃음이 떠날 새가 없었다. 선물을 열 때는 얼마나 두근두근대던지. 🙂

이렇게 행복하고 기억에 남을 시간을 만들어준 친구들에게 모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1

음식을 먹어야지요!

2

핀란드에서 온 마리아와 나.

3

핑거푸드와 음료, 케이크와 빵 등 다양한 먹거리

9

두근두근…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11

내가 입고 쓰기엔 작지만, 하나에게는 완벽하겠다.

8

선물 정말 고마워!!!

나는 출산이 두렵지 않다.

어제 사람들과 만나서 점심을 했다. 중간에 출산이 무섭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내 답은 아니라고 했는데, 아직 출산이 임박하지 않아서 그런 거다, 아니면 잘 몰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내가 출산이 무섭지 않은 이유는 그런 게 아니다. 사실 그 순간엔 정확히 왜 그런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그냥 출산이 임박한 순간에도 그 고통이 무섭지 않을 거란 것은 안다. 물론 긴장은 되겠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왜 그런걸까?

고통은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물리적 고통 자체를 두려워한 적은 없었다. 어떤 기약없는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건 두려워할 것 같다. 그러나 누구나 감내할 통과의례적 고통으로 어떤 특정 기간만 견뎌내면 되는 고통은 괜찮다.

내가 무서워하는 건 고통이 아니라 어떤 결과다. 내가 정신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어떤 결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거나 하는 종류의 결과 말이다.

물론 출산과정 중 애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마음 한 켠에조차 없진 않다. 그러나 난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고, 사람들의 직업윤리를 믿고, 어떤 실수가 있더라도 그걸 만회할 정도의 상황이 되리라 믿기에 그 두려움이나 불안함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그럴 확률 또한 낮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삶이 한결 쉬워진다는 게 나의 믿음이다. 그게 나이브한 생각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믿음은 그런 거 아니던가? 타인이 생각하는게 중요하지 않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