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읽기 또는 공부하기가 싫어지는 이유

간혹 읽기가 싫어질 때가 있다. 물론 날이 좋아 놀고싶은 마음이 들어서인 경우도 있지만, 그런걸 떠나서 읽기위해 앉는 자체가 싫은 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왜 그런지. 지금처럼 읽을 거리가 많은 때 미뤄봐야 돌아오는 건 스트레스일 뿐인데.

두려움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다 못 읽을까봐. 읽어도 충분히 이해가 안갈까봐. 또는 나와 다른 입장을 가진 텍스트가 설득력있게 다가와 혼란에 빠질까봐. 두려움의 근원은 다양하지만, 결국은 두려움이 나를 막는다. 얼마전 읽은 글에서 두려움을 나의 일부로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서 대항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라고 했는데, 내가 읽기 싫은 게 아니라 두려움이 나를 못읽게 하는 것이다. 내가 완벽하지 않은 사람인 것을 또 한번 알게 되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 내가 평생 싸워야 할 괴물이다.

난 완벽주의자로 살아왔다. 내가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고, 완벽하게 하지 못할 것 같은 건 쉬이 포기했다. 그렇게 하면 완벽하지 않은 내가 내 선택에 의해 이런 모습으로 구현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내 학부 성적표가 A와 C로 대부분이 채워진 것을 들 수 있다. 딱 봐서 A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과목은 재미가 없다는 말로 포장하며 관심을 주지 않고 최소한의 것만 해 C가 나오게 하는 것이다. 내가 못해서가 아니라 재미가 없어서 그렇다는 이유를 들며 포기의 여지를 주었다. 이러한 완벽주의는 일종의 정신 질환이다. 물론 아주 심각한 완벽주의를 정신 질환으로 분류하는 것이고 내 완벽주의의 정도가 딱히 심각한 것이 아니기에 실제 병으로 분류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그러한 성향이 있음을 언젠가부터 인지해왔다.

때론 이 완벽주의로 삶의 모든 분면에서 버둥거릴 땐 삶이 참 힘들어졌다. 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데 꽉 쥔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 흘러내리면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해 하지 말라는 말이 이런 순간에 큰 위안이 된다.  발에 쉬이 걸려차일 듯 널리고 널린 흔한 말일지언정 정말 중요한 말이다. 완벽을 추구하며 결과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한정지을 것이 아니라 실패해도 도전하고 노력해서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첫 시험 이후로 줄곧 12점을 받아온 터라 이젠 잃을 것만 있는 것 같고 두려움 마저 든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옌스는 꼭 최선만 다해서 네가 네 스스로에게 떳떳하면 되지, 결과에 연연해 할 필요가 어디에 있느냐고 한다. 거기에 내가 최선을 항상 다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라고 이야기 하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힘들지 않은 삶이 어디있냐고. 삶은 항상 힘든 것이라고. 또한 그게 당연한 것이라는 걸 알면 고통스럽지 않거나 그 고통이 덜해진다고. 삶이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 힘든 일이 생기면 그게 이상한 거고 마음이 고통스러운 건데, 누구나에게 삶은 힘든 것이라 생각하면 그건 당연히 다뤄야 하는 일이 되고, 고통스럽지 않다고.

옌스의 말과 어떻게 보면 같은 맥락이기도 하고, 다른 맥락일 수도 있는 말인데, 어디서 본 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삶은 공평하지 않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지금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소화한 바로는 이렇다. 사회적 성공이나 타인의 인정 같은 건 내가 노력한다고 꼭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순간에는 참 불공평한 것 같다는 분노가 들 때도 있지만, 그거에 분개해봐야 달라지는 것이 아닌 것이 참 불공평하지만 그게 현실이라고. 그러한 불공평함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이 보다 공평한 방향으로 흘러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런 불공평함에 싸우는 것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현실을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역할이 있기에 그 불공평함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때로는 그 불공평함이 나로 하여금 타인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부여하기도 하고. 이 글귀를 읽고 타인에 대한 부러움이나 그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자격지심 등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오히려 내가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음을 잊고 간혹 이런 두려움이 찾아오는 순간이 많다. 내가 노력을 했는데도 안될까봐, 그러면 불공평하다고 느끼고, 아니면 스스로에게 실망할까봐. 그런 때면 다시금 그 두려움은 괴물이라는 걸 생각하며 극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