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직장, 첫 출근

계약서 상으로는 5월 1일이었지만 정식 첫 출근은 오늘이었다. 집 페인트칠이다 이사준비다 뭐다 해서 정신없는 와중에 맞이한 첫 출근이라 그런지 막상 아무런 생각 없이 갔다. 그래도 전날 잠이 잘 안와서 설친 거 보면 흥분이 있었던 것 같다. 마치 늦게 마신 커피의 카페인으로 잠을 못 이루는 것처럼 온 몸에 흥분상태가 유지되는 것 같은 기분. 꿈에 옌스가 무슨 단어의 발음을 교정해주면서 왜 이 발음 자꾸 틀리냐고 하는 것도 나오고, 첫 출근에 상사랑 이야기 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잘 안나오고 혀가 꼬여서 자꾸 말이 틀리는 것도 나온 거 보면, 아무런 생각없이 있던 것 같아도 무의식 저편에는 긴장과 걱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직까지 재택근무라 회사 건물은 거의 텅텅 비어 있었지만, 오늘 여러 센터에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면접때 쥐 죽은 듯하던 적막은 없고 약간의 생명력이 느껴졌다. 업무 시작을 도와줄 파트너로 지정된 동료직원이 나를 마중나왔고 전체 건물을 돌며 소개를 해줬다. 전체 인원이 125명이라 하는데, 서로 다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고 할 만큼 잘 알고 지내는 것 같았다. 나도 오늘 짧은 시간동안 우리 부서 뿐 아니라 지원부서의 동료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몇 몇은 이름을 외우게 되었으니 시간이 흐르면 속속들이 새로운 동료를 알게되리라 본다. 다들 나를 보면, 우리 인사 안나눈 거 같다며 인사를 청하고 이름을 교환했으니 이게 전체 청의 문화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센터의 장이 새로이 부임해 상당수의 센터장들이 출근을 했는 모양이었다. 청장을 포함해. 우리 센터가 청장과 같은 층에 있는데 도시락의 샌드위치 하나를 다 먹고 다음 샌드위치를 꺼내려는 타이밍에 내 책상이 있는 사무실에 들어와 새로 온 것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내더라. 경쟁소비자청의 절반 조금 넘는 크기의 조직이라 그런지 조직 구조도 더 수평적이고, lean한 것 같았다.

경쟁소비자청에 첫출근할 때를 기억해보면 진짜 머리에 엄청난 인풋을 우겨 넣는 기분이었다. 덴마크어로 취직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타이밍에 덴마크어로 일을 시작해야 되는 것 하나, 법령, 시행령 등을 포함해 한 무더기의 보고서를 손에 건내 받고 시작했는데, 생소한 분야의 어휘를 통째로 익혀야 하는 부담이 하나 있었다. 또한 덴마크 직장문화, 회의 문화, 조직 구조, 커뮤니케이션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규범을 익히는 것도 큰 도전이었다. 그래서 첫날 정말 머리가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화 하나하나 집중해서 들어야 간신히 이해되고, 또 뭘 말하거나 쓸때마다 틀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회의에서 자기 소개할 때 뭘 어떻게 말해야 하나, 남들은 어떻게 말하나 관찰하고 내가 튀거나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등도 신경쓰이고 등등… 그래서 첫 한달은 집에 오면 너무너무 피곤했더랬다.

그런데 이번 출근은 우선 산업 분야는 달라도 업무는 연관성이 있는 것들이라 완전 생소하지 않다는 점, 더이상 언어가 큰 장벽이 아닌 점 등이 작용해서 그런지, 매끄러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동료들도 다 차분하고 좋은 것 같고, 같이 일할 게 기대되는 사람들이다. 그 전 직장도 좋은 동료들이 많았지만, 이번이 더 케미가 잘 맞을 것 같은 느낌… 진짜 느낌적 느낌인 근거 없는 느낌이지만 말이다.

이번엔 너무 달리지도, 너무 나에 대해 부담을 주지도 말고, 천천히 내 페이스 찾아가며 롱런하는 것이 목표다. 이사가 마무리 되면 다시금 내 프로젝트들도 다시 천천히 굴리기 시작하고 말이다. 오늘은 좀 푹 잘 수 있을 거 같다.

덴마크 직장 첫지원 완료!

결국 한군데는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남편 찬스를 써서 오늘 덴마크어 교정을 최종적으로 받아서 지원서와 이력서, 성적증명서를 보냈다. 마침 취업박람회에서 무료로 찍은 프로필사진도 길면 2주까지 걸릴 수 있다더니 오늘 도착해서 그걸로 바꿔 첨부했다. 프로필 사진으로 찍은 것 중 처음으로 마음에 든 사진이다.

무료 프로필 사진에 포샵을 기대할 수도 없지만, 여기는 애초에 포샵을 잘 하지도 않는다. 이 행사에 두번째 가보는 거라 사진을 어떻게 찍힐 지 알고 있었고, 덴마크 이력서 사진 유형도 익힌 덕에 이번엔 화장을 안하고 (플래시 터지면 안보일 정도로 흐린 눈썹만 그리고) 활짝 웃고 자연스럽게 찍었는데 잘 나왔다.

지원서를 우선은 영어로 쓰고 덴마크어로 번역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덴마크어로 사고하고 바로 작성하기에는 내 덴마크어가 너무 딸려서 필요한 컨텐츠를 충분히 생산할 수 없어서이다. 회사 다닐때만 해도 영어로 보고서를 쓰는 게 꽤나 스트레스였는데, 이제는 별 어려움이 없어져서 대학원 공부의 힘을 느꼈다. 물론 보고서를 계속 썼긴 해도 그 오랜 세월 잘 안늘던 영어가 어떻게 짧은 시간 동안 늘었을까 생각을 해보니, 보고서 쓰면서 자료 인용할 일이 엄청 많아서 그랬던 거 같다는 생각이다. paraphrasing을 하면서도 군더더기 없게 효율적으로 글쓰기를 해야해서 골머리를 썩었던 것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되었을 줄이야. 거기에 덴마크어 수업에서 작문을 엄청 시키는 것이 그래도 도움이 된 덕에 이를 번역해서 초안을 잘 만들 수 있었다. 남편의 도움이 없었으면 안되었지만, 그래도 나의 첫 덴마크어 이력서에 지원서라니. 뿌듯하다.

요건에 덴마크어와 영어 모두 fluent해야 된다고 되어있었으니, 사실 나는 요건이 안된다. 이력서에도 중상급이라고 명기해두었고, 이는 면접에 가게 된다면 확연히 드러날 사실이다. 그러니 떨어지는 것을 기대하고 지원한 것이지만, 그래도 혹여나 1차 면접에 가기라도 한다면 엄청 큰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정말 최선을 다해 썼다. 떨어져도 이 경험 자체가 소중하니 후회는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