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직장생활의 중요한 일부 – 금요일 아침식사

매주 금요일이면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30분 아침식사를 함께 하고 나머지 30분엔 회의할 게 있으면 하고, 아니면 해산한다. 직원들 수가 늘어나면서 20명에 다다르니 준비할 것의 무게도 너무 늘어나서 두명이 같이 준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식사로 먹을 빵으로는 큰 덩어리의 빵이나 일인용 분량의 작은 덩어리빵을 섞어서든 큰 덩어리 빵만이나 작은 덩어리 빵만으로 양을 맞춰서 준비한다. 또 그 후에 후식으로 먹을만한 wienerbrød (영어로는 Danish pastry이나 사실 오스트리아에서 이민온 제빵사가 만든데에서 기인한 탓에 비너브횔이라고 한다)을 준비한다.

이와 함께 빵 위에 발라먹을 버터와 얹어먹을 치즈, 잼, 햄, 폴랙(pålæg) 초콜렛(빵에 얹어먹도록 나온 얇은 판형의 초콜렛. 스프레드 대신 빵에 바로 얹어먹는다.)를 준비한다. 우리 센터 직원들의 취향을 반영해 버터는 락토스 없는 것도 하나 준비해가고 잼은 최소 두가지 종류로, 햄은 파마햄 종류, 치즈는 아주 전형적인 mellemlagret danbo와 함께 크리미한 브리타입의 치즈를 준비한다. 폴랙 초콜렛은 다크가 중요하다. 과일을 함께 준비하기도 하는데 요즘은 딸기 철이라 딸기를 가져가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

음료수로는 주스 세병을 준비하는데 오렌지, 사과에 다른 주스 한종류 섞어가는 게 보통이다.

두명으로 분량을 나눈 이후 한 명은 빵, 한명은 기타 같은 식으로 나누기로 했는데 나는 집 근처에서 회사가는 방향에 빵집을 찾기가 애매해서 항상 그 나머지를 사는 것으로 한다. 원래 다음달 생일 전날 아침식사 담당이었는데 동료가 이번주 아침식사 담당일에 휴가를 쓰려고 한다며 바꿔줄 수 없냐고 물었다. 마침 생일날 케이크도 사야하는데 아침식사도 준비해오려면 참 뭐가 많겠다 싶었기에 흔쾌히 승락했다.

저녁에 잦은 회식이 없고 점심시간도 자리 떴다 돌아오기까지 30분에 불과한 탓에 생일자가 가져오는 케이크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30분, 이렇게 회의를 겸한 금요일 아침식사 30분이 직원간 네트워킹에 중요하다. 각자 뭐하는지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디어도 주고받고, 또 사생활에 대해서도 담소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이해도 높이고 말이다.

내일 저녁엔 빨래를 하고 (공동빨래 공간 금요일 오후 예약이 내가 예약하기 전에 차버려서 할 수 없이 내일 예약했다.) 하나도 재워야 해서 (옌스와 매일 번갈아가며 애를 재운다.) 장을 보러 가기 어려울 것 같아 오늘 미리 금요일 아침식사 장을 봤는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덴마크 직장생활 만 4개월 평가

요즘 언론에 초점을 받는 업체들이 조금 있는데, 그와 관련해서 우리도 영향이 있을 거 같아서 주시하다가 사안을 조금 깊게 파고 들어봤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경영진의 관심이 쏠린 사안이라 급히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급히 작업을 해서 보고서를 만든 후에 경영진에 자료를 송부했다. 자료를 미리 보내둬야 주말에 경영진들도 자료를 읽고 월요일에 회의를 할 수 있으니까. 금요일은 그덕에 점심도 스킵하며 일하고 서둘러 퇴근했는데, 오늘 회의도 열두시 반에 잡힌 탓에 한시 반이 넘어 간신히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일이 커져서 그 일을 내가 본격적으로 담당하게 되었는데 재미있을 것 같다.

지난 4개월 조금 넘은 기간 동안 느낀 걸 몇 개 뽑아보니 참 신선하면서도 은근히 금방 익숙해지는 것 같다.

첫째로 보고서에 대해서 절대 막 수정하지 않는다. 보고서를 검토, 수정해서 나에게 보고서가 돌아올 때도, 그 분량이 많지 않고, 내용이 내가 의도하던 내용에 부합하는지 등을 확인하고 수정이 괜찮은지 봐달라고 표현하는 게 참 신선했다. 내가 외국인이니 나는 문법 틀린 거는 매우 환영하며 고쳐달라고 하는데, 그게 혹시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는지를 확인하는 것부터 좋은 의미로 얼마나 이상하던지.

그리고 잘 한 부분은 정말 열심히 칭찬해준다. 덴마크도 겸양을 중시하는 터라 칭찬에 반응하는 방법이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은데, 칭찬은 적극적으로 하는 편인 것 같다. 우리 센터장이 특별히 그런 타입인 것 같긴 한데.

직군별 이동이 없다. 행정직은 행정업무만 한다. 행정직이 오래 근무를 했다 해서 전문직군 업무를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이코노미스트 (økonom) 포지션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해당 학위가 있어야만 한다. 이를 대체할만한 이력이 있으면 모를까 짧은 행정 관련 직무교육을 받고 비서로 계속 일한 사람은 같은 직장에 계속 있었다고 해서 이코노미스트 포지션에 앉을 수 없다.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파는 것 뿐. 부서를 바꿀 수는 있어도 크게 자기가 속한 커리어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공공부문이 이런 건 더욱 강한 것 같다. 민간이야 사실 그런 업무를 할 수 있기만 하면 교육 백그라운드가 중요한 건 아니고, 경력이 길 수록 교육의 의미야 흐려지기도 하니까.

회식은 진짜 없다. 다 각자 바쁘니까. 나도 바빠서 참여하기도 어려우니. 대신 1년에 한번 센터데이를 한단다. 업무시간 중 프로그램은 철저히 업무와 관련해서 짜더라. 우리 같은 경우 우리가 관리하는 하수처리 업체 중 하나를 방문해서 하수처리 프로세스도 보고 설명도 듣고, 예산 관련 애로사항도 청취하는 걸로 짰는데, 대신 저녁에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는 걸로 했다. 음… 기대기대. 놀라운 건 이 모든 어레인지를 센터장이 했다는 것. 이게 가장 센터데이에서 가장 놀라운 파트였다. 일정은 두달 전에 이미 전체 직원에게 일정을 물어봐서 조율한 거였다.

행정 업무가 일에서 빠져 있으니까 일에 대한 집중도가 얼마나 올라가는 지 모른다. 자기가 어떤 일을 맡을 줄 알고 지원해서 채용된 포지션에서 다른 이상한 잡무 안하고 관련된 일을 중심으로 담당하면 당연히 집중도가 올라갈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가지수가 늘어나면 날 수록 데드라인 점검하는 것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니.

직장생활에서 친구 사귀는 건 힘든 일인 건 맞는 거 같다. 내가 내 생활에 여유를 내줄 수 없는 것처럼 타인도 자기 생활의 여유를 내주기 힘들고 그나마 그걸 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은 또 아침에 회사 헬스장에서 만나서 같이 운동하거나 같이 러닝클럽에서 뛰는 식으로 내가 맞추기 어려운 활동을 하더라.

금요일마다 직원들이 돌아가며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대충 사가는 품목은 큰 틀에서 정해져있지만 자세한 건 자기가 정하면 된다. 인원이 늘어나서 올 3월부터 2인이 분담해 해당 주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주스, 잼, 치즈, 버터, 햄, 과일, 빵, 패스츄리 등을 준비하면 된다. 은근 무겁다. 그래도 이렇게 금요일 아침에 30분 식사를 함께하며 담소를 나누고 센터회의를 뒤이어 하면 서로 공유할 정보도 나누고 친교도 나누고 좋다. 회식이 어려운 덴마크인에겐 회식같은 요소이다. 물론 점심도 있지만 점심보다는 회의실에 앉아서 하는 식사라 좀 더 친목요소가 더 있는 느낌?

4개월이니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지난 기간에 대한 평가는 대만족이다. 오히려 너무 대만족이라 두려운 듯. 상사가 갑자기 바뀐다면 어떨까 등등 이런 생각 말이다. 우리 팀장은 여자인데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유형의 여자 상사로 카리스마, 부드러움, 유머, 강단을 잘 버무린 사람 같다. 쓸데 없는 생각말고 일이나 해야지. 새로운 프로젝트가 하나 떨어졌는데 사안을 과거사부터 깊게 파봐야 하는 일이라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분석리포트도 재미있지만 두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것도 하나가 안풀릴 때 다른 걸 하는 식으로 돌릴 수 있어서 더 좋을 것 같다.

3월 셋째주 기록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옌스와 소파에 어깨를 붙이고 앉아서 쉬고 있다. 요즘 일하면서 출퇴근 하면서 한국 노래를 많이 듣고 있다. 노래의 국적을 불문하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나 가수라든가 가사를 외우는 노래라든가 하는 게 별로 없는 탓에 그냥 그때 그때 떠오르는 장르의 노래를 듣는게 일상인데, 요즘은 어쩌다 god 노래를 듣게 된 이후로 한국 노래를 듣고 있다. 김광석의 노래는 20대엔 별로 좋은 지 몰랐는데 30대가 되면서 그 맛이 참 느껴지고 좋아졌다. 어찌나 이렇게 감미롭고 구슬픈지. K-pop 말고 다른 한국 노래는 없냐던 옌스도 김광석 노래는 마음에 든다고 한다. 밥딜런과 닐영 등의 가수를 좋아하는 옌스에게 김광석 노래는 나쁘지 않은 초이스일 거라 생각을 했는데 역시…

오늘 차를 인도받았다. 직불카드로 이렇게 큰 금액을 결제해본 적이 없어서 살짝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결제를 할 수 있었다. 딜러도 괜찮다고 했고 은행 홈페이지에도 잔고내 결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지만, 또 사람 마음이 불안하려면 여러가지로 불안하니까. 매연은 싫다는 옌스와 전기자동차의 승차감을 좋아하는 내가 의기투합하여 고른 건 현대자동차에서 나온 코나 전기자동차였다. 한번 충전에 500킬로미터를 뛸 수 있는 차는 인기가 너무 좋아 1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고 300킬로미터 차량에서 고르면 재고로 이미 있는 건 14일 안에 받을 수 있고 아니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했다. 우리는 재고에서 고르겠다 했더니 흰색, 빨간색, 애시드옐로우 색에서 고를 수 있다고 해서 애시드옐로우 색으로 골랐다. 흰색은 지루하고, 빨간색은 우리 취향이 아니고, 애시드옐로우색은 옌스가 좋아하는 밝은 연두색과도 맡닿아 있어서 쉽게 골랐다. 6개월 기다리는 건 우리가 원하는 선택지가 아니었으니까.

Acid yellow KONA electric

차값은 옌스가 냈으니 보험료는 내가 내라 해서 보험료는 내가 내기로 했다. 보험도 현대가 노르웨이 보험사랑 제휴해서 하는 것으로 골랐다. 옌스가 내 한국사랑을 적극 지원해주는 것이 참 좋다. 핸드폰 바꿀 때도 중국폰이 조금 더 싸서 그걸로 바꿀까 하면, 한국거 사라고 밀어주거나, 이번 자동차 살 때도 가급적이면 한국차 사라고 하는 것 말이다. 일본차는 사지 말라고 말하는 센스(?)까지 겸비하다니. 😉

하나는 엄청 잘 크고 있다. 모토릭 부분에서도 언어발달에서도 자기 나이보다 훨씬 빠른 발달을 보이고 있고 주변을 잘 챙기는 성격이란다. 덴마크어가 빠르게 늘기 시작하던 시기부터 한국어 사용은 매우 자제하더니 요즘 갑자기 한국어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애를 낳기 전과 애가 돌이 되기 전엔 꼭 한국어로만 말할 거라고 다짐을 했었는데, 주변 사람들과 내가 뻔히 덴마크어로 소통하는 게 보이는데 덴마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척을 할 수가 없다. 내 한국어 질문에 하나가 덴마크어로 답을 하면 맞다고 하면서 같은 내용을 한국어로 반복해 주고, 하나가 질문을 덴마크어로 하면 내가 그걸 또 한국어로 확인해준 후 한국어로 답을 해준다. 한국어로는 하나가 뜻을 모르는 단어의 경우는 덴마크어로 답을 한번 해주고 한국어로 세번 쯤 반복해 답을 해주는데 내가 하는 게 맞는 지 알 방법은 없지만 그냥 밀고 나갈 뿐이다. 모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했으니 꾸준히 해봐야지.

고집도 성깔도 있지만 엄마가 단호하게 굴 때는 받아들일 줄도 알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고래고래 울만큼 울고 나면 툭툭 털고 일어날 줄도 아는 쿨한 아가씨다. 발레춤 추는 걸 좋아해서 주말에 밖에 나갈 준비하면 발레춤추러 가냐고 하고 머리 빗으면 엉킨 머리 푸느라 땡기는 것 싫어하면서도 자기 전에는 꼭 머리 빗어달라고 하며 등을 내어주는 귀여운 아가씨다. 보육원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몸을 어떻게 써야하는 지 정말 잘 아는 작은 장난꾸러기지만 친구가 울면 가서 안아줄 줄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이것저것 손가락으로 찍어가며 티비 프로그램을 골라 보지만 막상 조금만 무서운 게 나오면 엄마아빠를 불러 끌어안고 보는 겁도 있는 아가씨. 동양과 서양의 특징을 모두 섞어 갖고 태어난 하나. 우리에겐 너무나 축복같고 감사한 세상에서 가장 이쁜 아이이다. 다른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시때때로 하나 사진을 열어보며 키득거리기도 하고 어쩌면 이렇게 귀엽고 이쁘고 총명하냐며 탄복하는 팔불출이다. 다들 지금이 제일 이쁠 때라 하는데 그 말이 정말 맞는가보다.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단계는 돌을 시점으로 지난 거 같고 아직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시기는 안온 것 같고 말이다. 즐겨야지. 머리와 가슴에 이 시기를 아로새기듯 기억해야겠다.

TV에 푹 빠진 하나

나는 이제 수습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얼마전 상사와 평가 미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첫 1-2주동안 덴마크어로 일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 건지 걱정하면서 혹시 잘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다 말하니, 절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라면서 지금 해당 경제분석 프로젝트 너무나 순항하고 있는데 왜 그런 걱정을 하냐면서 놀라더라. 나도 지금은 이 프로젝트의 중요성도 인식하고, 나도 이걸 할 수 있음도 알고, 덴마크어로 보고서 쓰고 발표하고 이런 일련의 것이 다 가능함을 알기에 그런 걱정은 안하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시간이 약이라고, 아직 점심시간 대화는 챌린징하지만 일 면에서는 다행히 잘 굴러가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미래 상하수도 요금에 꽤나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기업, 이익단체 뿐 아니라 우리 경영진도 관심을 지대하게 갖고 있다. 경영진과의 미팅 주기가 짧아지고 있고 보고의 비중이 늘어나고 하면서 내 이름도 더이상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발음하고 기억해주게 되었으니 이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까지는 최소한 잘릴 일이 없을 거란 생각과 함께 조직도 나의 경험을 염가에 쓰고 있는 거라는 생각도 든다. 덴마크어가 완벽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조직이나 나나 윈윈하고 있는 게 아닐까.

발도 이제는 많이 나아져서 어제부로 목발은 졸업했다. 아직 절뚝거리며 걷고 통증과 함께 운동반경이 꽤 제한되어 있지만 천천히 집중해서 조심스레 걸을 땐 절뚝거리는 걸 거의 없앨 수 있을 정도이니 완전 감동이다. 삐면 전치 2주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2주정도면 그래도 심한 건 없어지니 말이다.

내일은 시부모님을 뵈러 보언홀름에 갈 거라 대충 가방을 쌌는데 하룻밤만 자고 올 거라 짐이 많지 않아 마무리는 내일 지으면 될 것 같다. 10시 비행기니 서둘러 나가야 하긴 하지만서도 하나 짐은 하나 자는 동안 쌀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하나가 얼마나 좋아할런지. 한국에 계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방문은 가을로 미뤄두고 지금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방문으로 족해야지. 덕분에 우리도 코펜하겐을 잠시나마 벗어나보고. 저녁식사 준비도 손에서 놓고 시부모님이 해주시는 음식 잘 먹고 잘 쉬다 와야지. 다행히 날씨도 나쁘지 않을 거 같으니 말이다. 이제 가서 자야지.

신입사원 졸업

내일부로 학생직원이 한 명 새로 들어온다. 점심 먹으러 구내식당 내려가는데 동료 중 한명이, “신입사원 지위를 누릴 수 있을 때 마음껏 누리세요. 내일부터는 모르는 거 질문하기 없기!”라고 했다. ‘아. 맞다. 내일 아침 환영다과가 있었지.’ 싶었다.

나랑 같이 면접을 봤지만 2018년 계속 사업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어 나보다 1개월 먼저 일을 시작했던 직원 두 명이 있다. 나를 환영하는 다과회에서 그 중 한명이 “나도 얼마전에 신입사원이었는데, 이렇게 너를 환영하는 다과에 와서 자기 소개를 하니 어느 새 마치 오래된 기존 직원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라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기분을 내가 느낀다.

3일부터 일을 시작했으니까 일 시작한지 거의 만 3주 되었나보다. 내가 맡은 분석사업도 슬슬 발동이 걸리고 있다. 다음주 월요일 부청장 미팅이 있어서 그 보고에 앞선 보고서를 작성하는 중이다. 일 시작한 첫주에 내가 과연 보고서를 덴마크어로 쓰고 관려된 내용을 보고할 수 있을지, 과연 그들이 내 덴마크어 업무수행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잘못 뽑은 건 아닌지 스트레스를 제법 받았었다. 수습기간 3개월에 자르는 경우는 진짜 특별한 경우라며 그런 걸 생각하는 건 말도 안된다고 옌스가 말했지만, 그게 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도대체 나를 왜 뽑았을까? 경력을 2년 인정해 준다고 했는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언제 적응할 수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다. 원래 신입사원은 그런거야 라면서 자위하기도 했지만 또 다시금 밤에 침대에 누우면 불안한 생각이 엄습해와 깊은 잠이 들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그 모든 게 적응의 일부분이었던 것 같다.

첫주엔 정말 내 뒤에 보는 사람이 없는 구석자리에 앉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나게 자주 사전을 찾았다. 그간 대충 감으로 알고 있었지만, 딱 한단어로 번역해봐라 하면 그렇게 하기 어려웠던 단어들부터 새로운 단어까지 다 찾아내려다보니 읽는 자료마다 단어 뜻이 누덕누덕 적혀있었다. 내용을 정리하면서 읽기보다는 우선 닥치는 대로 읽었다. 중간중간 궁금한 점만 적어내려가며 담당자별 인트로 미팅을 할 때 질문을 해서 내 업무와 그들의 업무가 어떻게 연결될 지 최대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유사 제도에 대한 경험이 있는 다른 센터와의 미팅 두 건을 마친 후 센터장과 선임컨설턴트와 현황미팅을 가졌다. 그리고 센터장으로부터 보고서를 하나 만들어 현재 우리가 가장 많이 참고해야할 섹터의 제도 도입 내용을 정리해보고 우리 섹터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을 나눠 정책적 고려사항을 도출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어떤 식으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할 지 아주 러프하게만 틀을 정해준 거라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우선 그냥 한국에서 였으면 어떻게 일했을까를 생각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었다. 다만 덴마크어로. 보고서 작성 메뉴얼도 대충 훑어봤었는데다가 관련 보고서를 2-300 페이지를 읽고 났더니 대충 어떤 문체를 쓰는지 알 수 있었고, 무지막지하게 단어를 많이 (그중 같은 단어도 잘 기억 안나는 것을 두세번도 찾아봤었다.) 찾아본 게 다 도움이 되서 생각했던 것이랑 달리 빨리 보고서를 써내려갈 수 있었다. 최종은 아니지만 보고서 서론만 남겨두고 작성한 보고서를 갖고 센터장과 선임컨설턴트를 대상으로 한시간 정도 브리핑과 토의를 했는데, 아주 의미가 있었다. 우선 내가 작성한 방향에 대해서 매우 좋게 생각을 했고, 이번 브리핑을 연습삼아 다음주에 있을 부청장 미팅의 브리핑에 대한 부담을 덜을 수 있었다. 또한 2월 초에 내 담당 사업에 대한 모니터링 그룹 미팅이 있어 청장 주재하에 진행 내용을 발표해야 해서 이 작은 스텝 하나하나가 연습이고 경험이 된다.

이 작은 경험을 통해 얻은 건, 우리 청에서 나를 괜히 뽑은 건 아니고 내가 기여할 바가 있었다는 확인이다. 기후변화적응과 관련한 범정부차원 정책 이니셔티브가 수립중에 있는데, 환경식품부와 에너지유틸리티기후부가 부처간 이견을 조율하는 단계에 있다. 이 부처간 이견이 조율되고 나면 수자원관리 기능을 담당하는 우리 센터에 경제적비용편익에 대한 분석업무가 떨어질 거라 이걸 수행하기 위한 사람을 2019년 중에 채용하고자 하고 있었다 한다. 다만 이 업무는 착수 시점이 애매해서 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면서 지금 내가 담당하는 업무를 수행할 사람을 2019년 1월부터 바로 일할 수 있게 채용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비용편익분석은 내 논문을 통해 했던 것과 매우 깊게 연관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내 학부 전공의 경영학과 은행 재무기획팀 근무 경력을 보고 아주 딱 맞다 생각했던 것이다. 학부때 별로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투자 관련 수업도 많이 듣고, 결국 다 중도에 포기하긴 했었어도 은행 다니며 CFA와 FRM도 끄적끄적 공부도 하고, 재무기획팀에서 예산 (및 약간의 관리회계) 기획과 성과평가 업무를 하며 이래저래 머리에 쌓아왔던 먼지쌓인 지식이 도움이 되는 때가 온 것이다. CAPM이며 WACC이며 기업재무에 손을 댈 날이 이렇게 뒤에 올 지는 전혀 몰랐는데. 힘들었던 은행업무시절, 금융은 뒤도 안돌아보겠다 했던 걸 지금 손바닥 뒤집듯 갑자기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차피 전문가의 손이 필요한 경우 외부에 손을 뻗어야 하지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면 제도 도입이 어렵기에 그걸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히지만 우리 센터 안에 할 사람이 없는 걸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오늘 보고하고 느낀 후에 자신감과 안도감이 버무러진 감정을 느꼈다.

보고서 작성이야 코트라에서 끊임없이 하던 것이었으니 그냥 언어만 바뀐 것 뿐이고. 선임 컨설턴트가 경력직을 채용하면 이런 거 설명 안해줘도 되서 너무 편하다고 하던데 나도 나라가 달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들이 있구나 싶은 생각에 다행이다 생각했다.

오늘부로 신입사원은 졸업한 느낌인데 공식적으로도 내일부로 신입사원은 졸업이다. 오늘 보육원에서 하나를 2월 18일부로 다음단계 보육원으로 이동시킨다고 들었는데 나뿐이 아니라 하나도 졸업이구나. 세상으로 나가는 전체 교육과정 중 가장 이른 단계를 졸업하는 거니 세상의 신입사원 졸업이라고나 할까?

내일 얼른 보고서를 마무리 짓고 다음 단계 일을 시작하도록 해야겠다. 얼른 공을 선임컨설턴트에게도 넘겨야 문법 검토도 받고 최종 마무리도 될테니까. 우선 오늘은 밀린 드라마 한편 보고 잠을 자야겠다. 아이 피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