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사인 및 잡생각

드디어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서로 구속력있는 채용 및 근로의사를 이메일로 표현했기에 근로시작일로부터 한달 이내에만 고용주가 근로계약서를 교부하고 고용인이 이에 서명을 하면 된다고는 했다. 그래도 또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 진짜 일이 마무리가 되는 것인지라 지난주 내 측에서 필요한 경력증명서류 등을 보내놓은 후부터 언제 계약서가 오나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오늘 받았다. 받자마자 후다닥 내용을 읽어보고 서류에 서명을 해서 얼른 답신하고 나니 이제 모든 게 정리된 기분이다. (논외로 공무원은 비자를 안해주는 걸까? 계약서 마무리를 위해 필요한 게 노동허가증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아니면 혹시 노동허가증이 없으면 그것부터 만들고 계약서를 써야 하는 거였을까? 다 마무리가 되었는데 내 노동허가증이 없어서 계약서를 못보내주고 있다며 서둘러 보내달라고 했었고, 그걸 보내주자마자 계약서를 송부해줬는데, 정말 노동허가가 없으면 계약서에 사인조차도 할 수가 없는 거인가?)

내일은 스투디프뢰운 시험의 구술시험이 있는 날. 시험을 볼까 말까 2주일을 고민했으나 결국은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1. 세계화 시대에서의 언어, 2. 덴마크의 청소년 범죄, 3. 예술과 문화, 덴마크의 문화정책, 이렇게 세가지 주제 중에서 랜덤하게 뽑은 주제로 5분간 발표를 하고 25분간 질의응답시간을 갖게 된다. 우선 발표 준비는 안하고 가는 걸로 마음을 먹었다. 진짜 시험을 볼 의지따위는 취직 이후 사라졌지만, 시험을 보다가 구술만 안보는 건 화장실에서 뒤 안닦고 나오는 것 같은 찜찜한 일이라서 말이다. 따라서 5분 발표준비를 안하고 가서 떨어지게 되면 떨어지더라도 시험을 안봐서 떨어졌지만 혹시 봤다면 어땠을지 결과를 모르겠다, 라는 것보다는 기분이 나을 것 같다. 10시부터 10시 30분까지니까 시간도 나쁘진 않고 다행히 내일 비도 안올 거 같아서 자전거 타고 가기도 아주 나쁘진 않다. 시험보러 가는 길 역풍인 것만 빼면…

옌스가 취직도 했으니 옷을 좀 사라며 너무 싼 브랜드에서 말고 좀 더 좋은 브랜드에서 옷을 사란다. 맨날 SPA 브랜드에서 몇개 사서 주구장창 입는 게 돈 많이 안쓰는 측면에선 좋았겠지만, 보기에 아주 좋았던 건 아닌 모양이다. 사실 나도 알긴 했지만, 다른 학생들도 다 수수하게 다니는데 나도 학생으로서 혼자 괜히 화려하게 입고 다닐 이유도 없고, 돈도 안버는 입장에서 괜히 옷에 돈 많이 쓰기도 그랬고. 무엇보다 어린 애가 있으니 하도 옷에 뭐 묻힐 일이 많아서도 그랬다. 이제 하나가 내 옷에 뭘 묻히는 빈도도 낮고, 돈도 벌고 하니 옷장을 조금만 업데이트하려고 한다. 오래간 묵혀뒀던 신발들도 이제 좀 다시 꺼내서 신어줄 수 있겠다 생각하니 그 또한 살짝 두근거리긴 한다. 크리스마스 선물 쇼핑이 다 끝나면 내 것도 좀 사야지. 낡은 옷들도 정리 좀 하고…

시험을 앞두니 피곤하면서도 잠이 안오는구나. 어거지로 잠을  청해봐야겠다.

겨울아침 잡생각

아침 8시. 해는 아직 뜨지 않았고, 새벽녘의 어스름으로 하늘은 잿빛이 되었다. 따뜻한 글뢱 한잔을 곁들이며 K-pop을 듣고 있다. (글뢱 – Gløgg, 독어 Glühwein (글뤼바인)의 glüh와 같은 어원의 단어 – 은 와인에 계피, 팔각, 카다몸, 오렌지 등을 넣어 뭉근히 끓인 것으로, 프랑스에서는 Vin Chaud(뱅 쇼)라고 한다. 가족을 위한 글뢱이라고 와인대신에 사과즙을 넣어 만든 걸 팔길래 사왔다.) Spotify가 장르중의 하나로 K-pop을 따로 구분해놨길래 그 중 그나마 아침에 들어볼 만한 것으로 OST를 골랐는데, 다는 아니라도 들을 만한 것들이 있다. 굳이 아침에 딱히 어울리는 믹스는 아니다. 그냥 다른 거 들어야겠다. 한국분위기 내볼까 했는데 영 실패.

얼마전에 옌스가 왜 K-pop을 안듣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좋아했던 한국가수가 많지 않은데, 전람회, 이적, 토이, 박정현 등 발라드 가수 일부를 좋아했던 게 전부였던 것 같다. 학창시절엔 그나마 길거리 음반가게에서 음악도 많이 틀어줘서 관심가는 노래가 생기면 듣기도 하고, 애들이 들려준 거 좋으면 찾아 듣기도 하고 했는데, 이제는 그럴 사람도 없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서양 음악이라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라는 게 이미 거의 정해져서 그런지 자꾸 듣다보니 Spotify의 discover가 내 취향을 정말 잘 파악할 정도가 되었다. 놀라운 알고리즘.

어제 저녁에 피곤함이 심해서 다리가 아플지경이었다. 딱히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오전수업하고 자켓 하나 사느라 쇼핑한 게 전부인데. 10시 반에 침대에 누워 딴짓을 하다가 11시에 불을 껐고, 12시 전에 옌스에게 잘 자라는 말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뻗어버렸다. 아침엔 또 어찌나 일어나기 힘든지… 깊게 못자고 잘 깨는 나답지 않았다. 특히 태동이 심해져 하나가 뱃속에서 온갖 아크로배틱한 동작들을 해댈 때면 한참 다시 잠에 들지 못하곤 했는데. 중간에 불편해서 한 번 깨고는 그냥 쭉 잤다. 물론 꿈자리는 사나웠지만. 남들이 말하던 임신 후기의 피곤함이 9개월차 들면서 느껴지는 것인가보다.

어제는 겨울파카를 사왔다. 안사고 버티려다가 안에 입는 옷을 조금만 두껍게 입어도 지퍼를 잠글 수 없음에 짜증이 밀려와 정신건강에 좋지 않겠다 싶어 벼르던 옷을 샀다. 앞판에 자크가 양쪽으로 달려있는 긴 패치가 있어 출산 후엔 이 패치를 떼어내 슬림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다. 사실 지금 겨울이라고 해도 유래없이 따뜻하고 비도 안오는 기이한 날씨를 보이고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풍 한파가 몰려올 경우엔 확 추워지기 때문에 그런 날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주엔 딱 한번 영하 5도까지 내려간다하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에 불과하고… 백년에 한번 오는 추위가 온다 해서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실망마저 든다. 겨울은 추워야 하는 법. 그래야 겨울에 마땅히 죽어야 할 양의 병충해의 근원이 죽어 다음해의 나무와 작물이 잘 클 수 있는데.

하늘이 흐려서 언제 해 뜨는지도 모르게 해가 뜨려나보다. 하늘이 밝은 회색으로 변했다. 곧 해가 뜨려나보니 나도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야겠다. 오늘은 논문 지도교수와의 첫 면담이 예정되어 있는 날. 기대가 된다. 두근두근. 오늘 결혼하는 친구도 있는데 나때와 마찬가지로 비가 오려나. 행복하게 잘 살 모양이다. 출산교육도 저녁에 예정되어 있으니 뭔가 이벤트가 많은 날이네. 좋은 하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