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30일

두발자전거를 온전히 타기 시작하다

내 생일 즈음에 하나에게 페달이 달린 두발자전거를 선물했다. 그게 두달 조금 지난 일이다. 하나는 두돌때부터 페달이 달리지 않은 두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데, 이걸 타고는 내가 빠르게 뛰지 않으면 따라잡지 못할 만큼 빠르게, 급회전도 하면서 능숙하게 탄지 벌써 몇달이 된 시점이었다.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자전거 중 가장 작은 것을 샀는데, 아이들 자전거는 아주 특별하게 비싼 게 아니면 아이 체중 대비 정말 무거운 것들 밖에 없었다. 애가 금방 자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 비싼 걸 사기는 어려워서 그냥 살만한 범위 내 자전거에서 가볍고 조금 비싼 걸 골랐다. 그래도 9킬로그램이 조금 넘더라. 내 자전거가 스포츠 자전거로 개중 가벼운 것임을 감안하더라도50킬로그램대의 내 체중에 자전거10킬로그램인 걸 생각하면, 아이 15킬로의 몸무게에 9킬로는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냥 복잡한 계산 없이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런 자전거를 아이가 처음에 타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이미 자유로이 빨리 탈 수 있는 발자전거가 있는데, 어떻게 타야할 지도 잘 모르겠고 힘든 페달자전거는 인기가 별로 없었다. 본인이 그렇게 원하던 분홍색 자전거였음에도.

그래도 옌스가 시간이 날 때마다 자전거 타보겠냐고 물어보고, 옆으로 허리를 구부정하게 기울여 하나 자전거를 뒤에서 밀며 뛰어다니는 수고를 여러번 거듭한 탓에 8월 중반에 들어 거의 매일 하나가 자전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주변을 관찰해보더니, 큰 애들은 페달자전거를 타고 작은 애들이나 발자전거를 탄다, 이런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자기도 큰 애가 되어가고 있으니 자전거를 탈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자전거가 무거운데다가 발이 땅에 적당히 닿을 정도로 안장을 낮게 설치했더니 페달질이 힘들어서 그런지, 옌스가 밀어주면 자기는 균형만 잡으며 크루징을 하고, 페달은 발판 정도로만 썼었다. 옌스가 손으로 페달을 돌리는 걸 여러번 도와주고 나니 서서히 페달을 밟기 시작했고, 가장 어려워하던 스타트는 약간의 내리막 비탈길에서 모멘텀을 활용한 연습을 반복하더니 어느새 요령을 터득해 평지출발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 온 가족이 해안도로로 나가 하나의 자전거 투어를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며 함께하기로 했다. 결론은 대성공이었다. 우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인라인스케이트 도로에서 하나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가 리드를 함에 있어서 불편함이 없었고, 하나도 넘어짐 없이 우리의 신호에 따라 정지와 출발을 반복하며 완주해줬기 때문이다. 어느새 배가 고파진 하나가 찡찡거리긴 했지만, 주차장에 위치한 아이스크림집을 미끼로 써서 완주에 성공했다. 제법 긴 거리긴 했지만, 유치원에서 긴 소풍을 가면 길게는 8-9킬로미터도 너끈히 걸어내는 아이인지라 큰 무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와 온가족이 함께 체육활동을 한 건 처음이라서 의미가 큰 하루였다. 통상, 우리가 하는 체육활동은 하나가 제대로 참여하기 어려운 것들이라 옌스가 줄을 타거나 외발자전거 연습을 하면, 내가 그동안 하나와 그 인근에서 다른 걸 하다가 교대를 해왔는데, 이번엔 모두가 동시에 같은 경험을 나누었으니까. 새로운 시대가 열린 기분이다. 아이와 취미를 나누는 시대. 뭔가 꿈꾸는 이야기 같구나.

운동 다시 시작 – 자전거와 발레

살이 제법 쪘다. 작년 가을 한국에 갔을 때만 해도 조금 찌려나 했는데 그 이후로 조금씩 꾸준히 살이 붙더니 도합 6킬로가 늘었다. 회사다닌다면서 운동에서 멀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대학원 다닐때만해도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저녁에 운동도 간간히 했는데 겨울 들어가면서 자전거를 타지 않고 통근거리가 길어져서 날씨가 자전거 타기에 적합해져서도 자전거를 타지 않은게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거기다가 떨어진 의욕을 탓하며 운동을 하지 않은 것도 큰 원인이고. 회사 식당에서 주는 밥 싸고 맛있다며 열심히 먹은 것도 뺼 수 없을 것이고 하나 밥 먹인다고 매일 밥을 하면서 남기지 않겠다고 줏어먹은 것도 빼먹을 수 없다.

한국에서 가져 온 접이식 작은 자전거와 중고로 여기에서 산 자전거 두개를 갖고 있다. 인구보다 많은 자전거로 유명한 나라이니 나도 여기서 살면 자전거 두대는 기본이지! 뭐 그런 이유는 아니다. 접이식 자전거는 바퀴가 너무 작아서 같은 거리를 뛸 때 기어를 21단으로 최대로 올려도 페달링을 너무 많이 해야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통근용으로는 무리였다. 장점은 작은 크기만큼 무게도 적게 나간다는 점. 10킬로가 조금 넘었던 것 같다. 다른 자전거는 중고로 800크로나 주고 사서 800크로나 들여 정비해 타고 중간에 또 정비하고 갈 거 간다고 800크로나 정도 들인 자전거다. 킬러모스(kildemoes)라고 여기 자전거 브랜드로 새거 주고 사려면 5000크로나 정도 드는 자전거니 딱히 비싸게 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 무겁다. 20킬로에 달한다. 기어가 내장기어라 비오거나 눈이올 때 부식에서는 조금 강한데 그런 날씨에 잘 타지 않는 나에겐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다. 오히려 내장기어라서 더 무거울 뿐이다.

무거운 자전거로 투덜거릴 때마다 옌스는 하나 새로 사도 좋은데, 내부에 제대로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때만 새로 사라고 했다. 사실 옌스도 밖에 주차해야 하는 경우 자전거를 절대 안타고 나간다. 비싼 자전거 도난당할까봐. 여기는 자전거 도난이 워낙 흔해서 그 점 주의해야한다. 그런데 대학원엔 그렇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어서 포기했었고, 또 그렇게 그냥 통근하는 거에 익숙해지고 나니 그 무거운 자전거로 매일 편도 25분짜리 길을 떄로는 왕복으로 때로는 편도로 타고 다녔다. 그런데 회사까지는 편도로 10분 이상 거리가 더 추가되는데다가 다소 높은 언덕길이 두번 추가가 되서 한번 통근 해보고는 너무 힘들어서 뻗었다. 이건 아니다 싶더라.

생각해보니 회사에는 자전거 주차 공간이 직원 주차공간 안에 별도로 구비되어 있다. 직원 신분증을 찍고 들어와야 하는 공간이니 안전하다. 요즘 살이 쪄서 운동 겸 자전거를 타려고 하니 자전거를 사야겠다 하니 옌스가 반색을 하며 훈수를 둔다. 1-2킬로가 크게 차이를 주고 자전거 프레임 구조도 큰 의미를 갖는다며 추천 브렌드를 내민다. 그래서 사기로 한 건 trek 자전거. 가까운 곳에 매장이 있어서 가서 한번 타봤는데 자전거 처음 페달질할 때 느낌이 완전 다르더라. 10.5킬로라는데 내 작은 자전거랑 비슷한 무게에 큰 사이즈인 거니까 색다르더라. 12킬로짜리는 내 키에 맞는 미디움 프레임이 있었는데, 내가 사고싶은 모델은 큰 프레임만 있어서 대충 느낌만 봤고, 다음주에 자전거가 매장에 들어오면 테스트 해보고 사는 것으로 했다. 8500크로나니까 조금 비싸긴 한데 한달에 통근 기차권이 600크로나가 넘는 걸 생각하면 1년여에 원가를 뽑는거고 운동도 겸하는 거니까 크게 비싼 건 아니다. 여름엔 조금 더워서 땀도 나겠지만 출근해서 살짝 샤워를 하고 일을 하면 되니까 땀나는 거에 대한 부담도 없고.

거기에 발레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옌스네 카약클럽 근처에 성인 초중급반 발레반이 있는데 7시 45분부터 시작한다. 버스를 타면 30분 걸리는데다가 30분에 한번 오는 버스라 타이밍 맞추기도 어렵고 옷 갈아입고 뭐 하고 하려면 너무 일찍부터 집을 떠야 하는데, 차가 생겼으니 가는게 너무 힘들 지 않다. 그래서 옌스에게 발레 수업 나가도 괜찮은지 양해를 구했는데 역시나 흔쾌히 지지해줬다. 자기도 저글링한다고 화요일마다 나갔었으니 말이다. 요즘은 팔꿈치 부상으로 조금 쉬긴 해도 다 나으면 다시 나갈 것이기도 하고.

내 몸이 싫어진 순간이 와서 이젠 다시 움직여야 한다. 내 몸이 싫어지면 다시 좋아지도록 해야지. 건강도 다시 찾고. 발목도 많이 좋아졌으니 재활도 해야하고. 여러모로 타이밍이 좋은 거 같다. 다시 강인한 몸으로 돌아가야지.

덴마크에 산지 5년, 한국과 다른 점 1

덴마크에 산 지도 어느새 거의 5년. 한달만 있으면 만으로 5년이 된다. 어느새 그렇게 시간이 흘렀구나 싶게 길지 않은 시간 같다. 하긴 대학원도 거의 끝나가고 애도 낳아서 17개월이 되어가니 이상할 것도 없네. 이제 이곳에서의 삶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여기가 이래서 더 좋거나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냥 당연하게 느끼게 되어서. 이제 그냥 여기 사회에 동화된 느낌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 한번 쯤 과거를 돌이켜보며 내가 현재 서 있는 곳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한국과 다른 점, 또는 이 곳의 다른 문화와 시스템 여건으로 인해 내가 한국에서와 달라진 점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자전거

유모차를 갖고 나가거나 비가 오는 날, 동결 방지를 위해 길에 소금이 뿌려져있는 시기(11월-3월)를 제외하면 가급적 자전거를 타고 나선다. 대학원까지 처음으로 자전거로 가던 날, 집에서 8km인 거리를 40분동안 힘들게 페달밟아 갔다. 구글엔 25분이라고 써있는데, 가는 길은 평균적으로는 약간 내리막이지만 제법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해서 있는 탓에 너무 헉헉대서 그랬다. 요즘은 학교까지는 25분 이내에 크게 힘들지 않게 간다.

대중교통이 비싼 편이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7000원 정도 한다. 오래 살다보니 그냥 여기 가격을 받아들이게 되어 이제는 별 다른 감흥이 없다. 그래도 통근을 자전거로 주로 하는 시기엔 지출 절감에 알게모르게 도움이 된다.

최근 헬스장에서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더니 오늘 시내 가는 길 10km가 전혀 힘들지 않았다. 대학원 처음 다니던 시절이 2015년이니까 한국나이로 36살때였는데… 그때보다는 애를 낳은 지금이 체력적으로 더 좋아졌다. 아마 자전거도 타고다니고 틈틈히 운동도 해서 그렇겠지. 마른 몸보다 근육이 있는 탄탄한 몸을 선호하는 문화 탓에 열심히들 운동하는게 눈에 보여서 나도 조금이라도 더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달리기도 더 하게되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히려 체력을 보강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잘 걸어다니지 않을 거리가 여기에선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로 다닐 거리가 되고, 그 덕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더 생기게 되는 거 같다.


날씨, 적정온도

비오고 바람부는 날씨가 익숙해졌다. 인도에서 살다가 한국가서 여름에 견디기 쉬웠던 것처럼 여기에서도 내 몸은 어느새 적응을 해가고 있다. 실내에서 적정한 온도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고, 같은 온도와 바람에 입는 옷이 바뀌었다. 여기 사람들은 왜 그리 춥고 비오는 날 얇게 입고 다니나 했는데, 그 날씨에 아직 적응이 안되었을 때 그랬다. 요즘 기후 이변으로 더운 날이 생겨서 그렇지 여기 여름 날씨라고 해봐야 20도 언저리가 흔하다. 거기에 비도 오고 흐리고 바람 불면 한국사람들은 엄청 춥다고 한다. 나도 예전엔 그랬으니까. 요즘은 25도면 더워서 힘들다. 같은 날씨면 예전보다 옷을 한겹 또는 두겹 덜 입는다. 겨울에도.

여기 날씨에 대해 처음에 많이 불평했는데, 겨울에 낮이 좀 짧은 거 빼고는 여기 날씨가 마음에 든다. 물론 겨울이 긴 건 좀 아쉽긴 한데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으니… 이제 한국은 여름과 겨울에는 가급적 방문하지 않는 걸로…


 

너무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하고 나머지는 다음에 더 이어 쓰는 것으로 해야겠다…

올해 첫 여름날, 혼자만의 프레덴스보 여행

유난히 해가 쨍하고 뜨거운 날씨. 올해 진정한 여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첫날이었다. 고백하기 부끄럽게도 게으름이 뼛속까지 배어있는 나에게는 아무리 좋은 날씨라고 몸을 추스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직장을 다니면 원하지 않아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어 밖으로 나서게 되는데, 그렇지 않은 지금은 자유와 방만함 사이의 줄타기를 하며 지내고 있다. 열심히 지내는 날이 있다가도 정말 손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이 있으니 그게 우연히 날씨가 좋은 날과 겹치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집에서 공부를 하는 경우라면 육체적으로는 게을러도 지적으로는 부지런하다며 자위라도 할 수 있는데, 아무 것도 안하면서 나가지도 않다니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렇지만 어제는 날이 너무 좋았다. 이러저러한 일들로 수학공부를 게을리한지 몇날이 흘렀으니 사실은 연필을 쥐고 책상 앞에 앉았어야 쓰겠으나, 이렇게 좋은 날씨를 나가 찬양하지 않기엔 왠지 모르게 다른 종류의 죄책감이 들었다. 흔하지 않은 날을 기념하지 않고는 이런 날씨가 서운해서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

밖에 나가기를 결심하고 막상 밖으로 나서기까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침 9시, 옌스에게 “나 오늘 짧은 여행을 하고 올거야. 기차타고 자전거 타고 유채꽃이 핀 들판을 찾아 나설거야.”라고 문자를 보냈다. 저녁에 오늘 공부 뭐했냐고 물어보지 않기를 원하는 문자다. 조심하라는 답을 듣고, 사실 진짜 조심하긴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는 들판 한가운데서 자전거 바퀴라도 펑크나면 어떻게 해야할 지는 나도 모르니까.

작년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고속도로를 타고 멀리 여행할 때면 유채꽃이 한가득 핀 들판이 끝도 없이 펼쳐진 것을 본 적이 몇 번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와 함께 밀이 누렇게 영글어 있는 들판이 있었음을 기억한다면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가 최절정에 이르는 시기임을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어제는 그런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열심히 구글 검색을 하느라 쓸데 없이 시간을 낭비하다가, 이러다 또 나가기를 관두겠다 싶어 그냥 외어순스토(Øresundstog)를 타고 올라가자 마음먹고 비스켓 하나, 물 한병, 깔고 앉을 담요를 한장 챙겨서 서둘렀다. 벌써 정오였다.

열차 안에 자전거를 고정시키려다가 자전거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칸은 소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로 가득차있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나를 보고 귓속말을 하는 아이도 있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도 있었다. 이런 일에 신경쓰려면 한도 끝도 없는 해외생활이기에 그냥 이어폰을 귀에 꼽고 음악을 들으며 알랑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조금 읽자니 나의 게으름과 그에 따른 죄책감을 그도 똑같이 느꼈다는 사실에 실소를 흘렸다.

“… 이 책들은 각기 다른 방식이지만 입을 모아 바깥에는 마드리드라고 부르는 흥미진진하고 다채로운 현상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곳에는 기념관, 교회, 박물관, 분수, 광장, 쇼핑거리 등이 수도 없이 널려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나도 그런 유혹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또 내가 그것을 볼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 자신의 게으름과 좀 더 정상적인 관광객들이 느꼈을 진지함을 비교하며 냉담과 자기혐오가 뒤섞인 느낌에 시달리기만 했다. 나는 그냥 침대에 누워있고 싶은 욕구, 가능하다면 얼른 비행기에 올라타 집에 가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 …” <알랑 드 보통, 여행의 기술>

5페이지도 채 읽지 않은 짧은 기차여행에서 그 부분을 읽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지며,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괜히 더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대미술관 중의 하나라는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이 위치한 홈르백(Humlebæk)에 내려 왕실의 여름궁전인 프레덴스보(Fredensborg)에 가기로 했다. 그 길로 가는 중엔 유채꽃밭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2년이나 살면서 그곳에 아직 가보지 않았다는게 게으름의 표상인 것 같아, 아무도 비난하지 않지만 스스로 비난받은 듯한 느낌마저 들어 선택한 곳이었다. 남들은 굳이 힘들게 돈과 시간을 들여 오는 여행지중 하나인 유럽에 살면서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지 않는 건 귀한 걸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을 다녀올 때면 흔히 이용하던 고속도로까지 가는 지방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니 주변 풍경이 사뭇 달랐다. 지방도로가 자전거도로와 높이가 다른데다가 가로수로 가려져 있어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전거도로는 들판 안쪽으로 훨씬 가까이 붙어 차도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2시가 거의 다 된 시간. 집에서 나올 때보다 한결 뜨거워진 공기가 느껴졌다. 이날 따라 바람이 덜 부니 22도밖에 되지 않는 온도도 매우 덮게 느껴졌다.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높아 해가 더 쨍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시골이라 인적이 드문 길이 많았다. 이름 모를 보라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길에 잠시 멈춰 한참 사진을 찍다가 다시 페달을 힘차게 밟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을 즐기다보니, 아차. 어느 새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리고 바퀴가 큰 자전거임에도 40분은 족히 달려야 할 거리라 빨리 다녀와야 저녁시간에 늦지 않게 집에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 탓이었다.

갑자기 훅하고 코를 잡는 꽃향기. 라일락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뜨거운 공기 속에 열기인지 향기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자신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느끼는 그 기분이 좋아 굳이 멈춰서지 않고 계속 페달을 밟았다.

밀밭은 알이 충분히 영근 밀작물로 짙은 초록색을 뽐내고 있었다. 그 옆의 유채꽃밭은 이제 갓 꽃몽오리가 진 유채꽃 사이에 성급히 터진 어린 꽃들만 조금 보여, 그 노란색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았다. 6월 말에서 7월 정도 사이에 다시 오면 노란 물결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다 싶었다. 아쉽다고 느끼는 순간, 그럴 거 없이 또 오면 된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또 한번 이런 여행을 해야겠구나.

간간히 지나가는 차들 빼고는 인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 밭과 멀리보이는 농장을 지나치며, 여기서 타이어 터지면 정말 난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물지만 가파른 언덕에서 20kg에 달하는 나의 무거운 애마의 페달을 간신히 밟아가며 오르다, 잠깐이지만 내가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다니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다음 만나는 내리막길에선 신나게 바람을 즐기며 내려갔지만, 반대로 집에 갈 땐 어쩌나 하는 두려운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프레덴스보 궁전은 여름 별궁답게 소박한 느낌이었다. 관광철이 아니라 그런지 북적임도 없어 궁전 부속 공원을 산책하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작은 새들이 조잘거리는 소리는 어찌나 영롱하고 행복한지. 굳이 여기가 아니라도 요즘 흔히 들을 수 있는 새소리이지만, 적막함과 바람소리에 어우러지는 새소리는 메아리까지 쳐서 들려 한차원 다른 소리로 들렸다.

공원의 끝에 접하고 있는 이스훔 호수(Esrum Sø)는 크고 고요했다. 나중에 지도를 살펴보니, 셸란(Sjælland) 섬에서 두번째로 큰 호수이다. 그 큰 공원과 호수를 몇 안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호사스러울 지경이었다. 관광철에 와서 북적임을 느낀다면 또 다른 느낌으로 즐거울 수 있겠지만, 북적임보다는 적막을 좋아하는 나에겐 이쪽이 훨씬 좋다.

집에서 싸온 비스켓을 우물우물 씹어먹으며 앉아있는데, 예전이면 외롭게도 느껴졌을 수 있던 그런 순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길지 않은 시간, 땀을 식히며 앉아있는 그 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초록색이 가득한 곳이라 그랬을까? 사람들로 북적이는 길거리 까페에서 홀로 앉아있으면, 내 땅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싶어 유독 고독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별로 없는 그곳에 앉아 있으니, 간혹 산책하는 사람들 한두명과도 눈인사를 나누기도 하며 오히려 혼자가 아님을 느꼈다.

돌아가는 길은 다행히 다른 루트로 운행하는 로컬 열차가 있어 쉽게 돌아왔다. 그 열차 속에 앉아, 그 무수히 많았던 날들처럼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몸을 일으켜 나온 5시간 전의 나에게 감사하며, 또 이런 혼자만의 여행을 나서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인생 트레이너와 함께한 동네 자전거 여행과 덴마크 삶의 소소한 즐거움

CBS에서 MMPI 과정을 듣느라 6월까지 꼼짝없이 바쁜 옌스의 스케줄로 인해 같이 있지만, 따로 활동하는 시간이 많이 늘었다. 덕분에 집에 면학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SNS를 하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던 나였는데, 옆에 앉은 그가 독서를 하니, 뭔가 눈치가 보이기 시작해서 나도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옌스는 습관의 사람이다. 습관을 잘 만들고, 한번 만든 습관은 잘 유지한다. 뚝심의 인간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뼛속까지 경제학자라 시간 낭비를 하기 싫어해서 자기에게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해 시간을 잘 배분한다. 난 습관을 잘 못들이는 사람이다. 중요하다고 하는 순간 마음먹고 집중을 해 원하는 결과를 내는 일에는 강하지만, 인생지사 그렇게 짧고 굵게 살 수 없다. 따라서 난 자꾸 동기부여를 해줘야 한다. 내 스스로 동기부여가 안되면, 옆에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두고 스스로를 독려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내가 제일 배우고 싶은 성실함과 뚝심을 갖고 있는 옌스가 내 옆에 있어줘서 참 고맙다.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은 순간, 다시 정진하는 길로 돌아올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옌스가 빠뜨리지 않는 것은 체력관리이다. 아침마다 윗몸일으키기 등을 포함해 15분 정도 꼭 근력운동을 하고, 카약과 인라인스케이트 등을 꼭 2번씩은 한다. 10kg씩 몸무게가 오르락 내리락 변하던 내가 살이 크게 않고 유지하는 것도 옆에서 운동을 장려하고, 나를 데리고 나가는 그 덕분이다. 걸어서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하러 나가자고 한다.

겨울에 한번, 정말 나가기 싫은데 옌스가 산책을 나가자고 하길레 간신히 따라 나선적이 있다. 정말 추웠는데, 조금 걷고 나니 좋았다. 그 날, “앞으로 내가 나가기 싫어해도 사실 나오면 좋아하니까 게으름 피워도 꼭 끌고나와줘.”라고 부탁을 했다. 나가자고 할 때, 기다 아니다는 말을 안하고 미적대고 있으면, “Come on, it’s good to have some fresh air.”라고 하며 독려하는데, 안나갈 수가 없다. 내가 한 말도 있고 하니.

그래서 가급적이면, 나가고 싶지 않아도 옌스가 나가자도 하면, 흔쾌히 좋다고 답을 해버린다.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 나갈 마음이 생긴다.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저녁 먹고 8시가 넘었는데, 바람도 많이 부는데, 자전거 투어를 나가자고 한다. 나가면 좋을 것 같기도 해서 알았다고 했는데, 안나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 했다. 낮에 비가 많이 오고나서 구름이 이쁘게 남았더라. 자전거를 타고 쌩쌩 움직이니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비포장 산책길이라 중간중간 쿵하면서 튕겨 놀라기도 한다. 갑자기 오리 또는 거위때가 나타나기도 하고, 탁트인 호수가 나오기도 한다. 습지인지라 다채로운 생태가 발견되고, 갈대숲에선 바람에 사라락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게 천국인가 싶은 그런 느낌.

덴마크의 삶은 한국의 삶에 익숙하고, 그 삶의 패턴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에겐 힘든 것이라 생각한다. 불편함을 받아들여야 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출장온 대기업 중역분들 중엔, 여기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어보신 분들도 많았다. “차도 비싸 코딱지 만한 차 사야지, 밥 값 비싸지, 맛집도 적지, 술도 비싸고, 문도 일찍 닫고, 세금 많이 내지, 무슨 재미로 살아요? 한국은 돈만 있으면 살기 정말 좋아. 여긴 재미없는 천국이야.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지만.” 판에 박힌듯한 이야기를 해주신 분들이 꽤나 있었다.

다행인건 내가 소비보다는 경험 중심의 삶을 원하고, 북적이는 거 싫어하고, 술 집에서 와인이나 한잔 남친과 기울이면 되고, 소소한 즐거움에 행복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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