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면 괜히 섭섭하다더니 이런건가?

입덧이 시작한지도 어느새 일주일 반 조금 더 지나간 것 같다. 그 사이에 2kg이 빠졌으니 입덧이 꽤나 심하긴 한 모양이다. 시험은 다가오는데 먹은게 별로 없고 그나마 먹고 토하니 앉아있을 기운이 별로 없어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침대나 소파에 누워 지내고 있다. 조금 걷고나면 속이 울렁거려서 운동이라고 할 법한 것을 하기에도 어렵고, 혈압도 60:100으로 낮아지니 기력도 떨어지고 아침 활동도 저하된다.

화요일과 금요일에 시험이 하나씩 있는데, 주말 들어 옌스가 보는 주요 모습이 누워있는 것이다보니 걱정이 되었는지, 때로 내가 늘어져있는 모습을 볼 때 나를 좀 푸쉬해달라고 부탁했던 것 때문인지, ‘그래도 시험공부는 조금이라도 해야지. 핸드폰 볼 힘이 있으면 뭐라도 읽을 수 있잖아.’라며 서너번 이야기를 했다. ‘나도 안다고…’라고 답을 하다가 한번 울컥할 일이 있었다. 평소 주말에 함께 하던 커피데이트를 내가 못하게 되니 – 커피는 생각만 해도 속이 쓰려 못마시겠다. – 혼자라도 가겠다고 하며 뭐 필요한 거 없냐고, 그리고 힘든 거 아는데 공부는 조금이라도 해야한다고 하는 거다. 먹고 싶은게 생각나지도 않고 배는 그렇다고 안고픈 것도 아니고, 뭐라도 먹으라는 말은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데다가 공부 해야되는 거 아는데 알고도 못하는 내 마음은 아는지 하는 섭섭한 마음에 ‘이런 때 도움 청할 엄마도 없고 내가 그나마 생각할 수 있는 음식은 이곳에서 쉬이 먹을 수도 없는 음식이라 제대로 먹을 수도 없는데, 내가 이미 공부해야하는 거 알고 있다고 했는데도 자꾸 말하면 너무 섭섭해’라고 쏘아붙였다. 그리고는 눈물이 찔끔 나오는데, 서럽기도 하고, 이런 걸로 눈물 흘리는 내가 좀 부끄럽기도 하고.

힘든거 모르는 거 아니라며, ‘예전에 네가 그런 상황엔 꼭 좀 푸쉬를 해달라고 하기도 했고, 시험인 거 뻔히 아는데 계속 누워있으니까 걱정되서 그랬어. 나도 네가 원하는대로 푹 쉬면 좋겠지. 시험만 끝나면 그렇게 할 수 있잖아. 조금이라도 앉아서 하고 다시 쉬더라도 그렇게 하라는 거였어. 서운하게 해서 미안해.’라고 말한다.

마늘을 먹을 수가 없어서 뭐든 한식은 참 만들어먹기 어려운데 사실 해물수제비가 먹고 싶었다. 칼칼하며 시원한. 거기에서 마늘만 뺀. 당연히 해물수제비를 제대로 해먹을 수는 없지만, 집에 멸치라도 있으니 그냥 멸치 감자 수제비라도 해먹어봐야겠다 싶어서 – 면이 손칼국수 면이 아니라 그런가, 칼국수는 이상하게 안 땡긴다. – 커피 마시러 가기전에 고추와 애호박이나 사달라고 해서 애써 끓였다. 마늘을 아주 안넣으니 도저히 맛이 하나도 안나서 아주 아주 조금 넣었는데, 그게 맛을 확 바꿔주더라. 반죽이 질어져서 별로 반죽도 안넣고 감자랑 애호박, 고추를 듬뿍 넣어 만들었는데, 그런대로 먹을 만 해서 좀 먹었다. 먹고나서 그 조금의 마늘때문에 입에 남은 그 특유의 입맛때문에 남은 반나절을 고생했지만, 뭐라도 먹고나니 힘이 나서 앉을 수 있었다.

조금 울어서 그런가, 돌아오는 길에 크래커 등 내가 사다달라는 것을 정확히 찾아주기 위해 페이스타임까지 해가며 수박이니 뭐니 꼼꼼히 챙겨왔다. 아이고 착한 우리 남편. 그리고 애 낳으면 자기도 요리하고 이런 거 좀 더 배워야겠다고, 그래야 내가 요리할 수 없을 때거나 그런 타이밍에 애가 거르는 일 없이 요리할 수 있을거라면서. 이래저래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 오히려 나보다 많이 생각하고 있구나 싶어서 훌륭하다 싶었다.

이렇게 또 한번의 다툼 아닌 다툼을 했다. 아마 임신하면 그렇게 다들 서럽다고 하던데, 이런 거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엄청 서러운 건 아니고, 평생 가져갈 기억도 아니지만 그래도 뭔지 약간 알 것 같다. 같이 원해서 생긴 아기인데 남편이 대리로 경험해줄 수 없는 힘든 일을 혼자 겪어야하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 아닐런지.

궁금한게 하나 있다면 대부분은 입덧이 아침에 심하다던데, 난 점심 조금 전부터 저녁까지 입덧이 있는 거 같다. 아침엔 꽤나 쌩쌩한데. 지금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팀원들과 나누기로 했던 논문 요약본도 마무리하고 이렇게 블로그 글까지! 뭐지? 수박 사분의 일쪽과 크래커를 먹었음에도 배가 고프다. 속도 살짝씩 동하기 시작하고.

내 사랑 커피는 땡기지도 않으니 아쉬울 건 없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던 주말 커피 데이트는 그립다. ㅠㅠ

임신, 입덧, 덴마크 생활

요며칠 입덧이 심해서 하루에 1~200 그램씩 빠지는 것 같다. 최소한의 먹거리만을 먹고 버티고 있는데, 먹고 토하는 일이 잦아지니까 먹기도 살짝 겁나고 안먹자니 애한테도 좋지는 않을 거 같아서 최소한 먹는 것으로 버티고 있다. 시험은 코앞으로 다가와있는데, 공부도 요며칠 하나도 안하고 놀고 있다. 다행인건 스트레스도 별로 받는게, ‘아, 임신해서 몸이 안좋아서 시험 못치면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근거없는 생각 때문이랄까. 그나마 그간 성적을 잘 받아두어서 한두개 좀 못친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도 없거니와 하나는 내가 쓴 페이퍼를 근거로 시험보는 것이라 이미 고생해서 낸 것에 대한 평가가 시험의 큰 몫을 좌우하기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다.

어느덧 임신 7주. 시어머니와 함께 임신 후 처음으로 병원을 다녀왔다. 멀리 Bornholm에 살고 계시지만 내일 새벽같이 시누이와 첫손녀와 함께 셋이서 떠날 2박 3일의 짧은 런던여행을 위해 Holte에 잠깐 와계셨다. 그 전에 병원 갈 때 혼자 가기 그러면 언제고 이야기해달라고 하셨는데, 비행기로 오셔야 하는 시어머니 일부러 오시라 하기 뭣해서 그냥 혼자가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혹시 말씀은 드려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씀드렸는데 잘 한 일이었다. 마침 와계시기도 했고 기뻐하시며 같이 가주신다 하셨다.

시어머니와 함께 간 것은 잘한 일이다. 남편 CPR번호도 기억이 안났는데, 시어머니가 기억하고 계셨고 (그런게 필요할 줄이야), 남편 가족 병력 등에 대해서도 문진을 했는데 그 또한 시어머니가 답변해주실 수 있었다. 쌍둥이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우리 가족에는 그런 이력이 전혀 없다 했더니, 시어머니가 자기네에는 이력이 있다 하신다.

앞으로의 병원 일정은 12~13주 중 다운증후군 검사 1차, 25, 32주에 있을 초음파 검사 및 기타 아이에 대한 상세 검진이 거의 다 인것 같다. 나머지는 나의 출산을 담당할 산파와 만나서 할 일들이 있고, 출산 교육 등이 있는 모양인데, 그건 산파가 나에게 연락을 준다고 하니 그냥 기다리면 될 일이다. 아, 의사가 덴마크의 모든 병원 기록이 다 전산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임신과 관련된 것만큼은 문자 그대로 Paperwork이 아직도 살아있다면서 노란 봉투에 관련 내 임신 정보를 기록해서 넣어주었다. 앞으로 모든 진료시 항상 지참하라며. 이 아날로그식이라니. 모든 정보가 다 전산으로 날아오다가 갑자기 이런 노란봉투를 받아드니 월급봉투라도 받은 듯한 느낌이다.

다음 병원 일정에도 시어머니가 가주신다고 하니 이번엔 그냥 마음의 부담 없이 부탁하련다. 같이 가주시면 기쁘겠다고 말씀드리니 Bornholm에서 날아오신다고. 아. 이 감사함. 이 먼 덴마크에 내 부모와 떨어져살며 한켠으로나마 기댈 시댁이라는 구석이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시누이가 시어머니께 엽산 꼭 챙겨먹으라고 알려주라 했다는데, 시누이도 뭔가 참견하는 듯하게 보일까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나보다. 🙂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보라는데 사실 뭘 물어봐야할지 잘 모르겠고, 책이나 각국 정부 보건당국에서 제공하는 홈페이지도 워낙 자세하게 정보를 담고 있으니 아무래도 먼저 연락하게는 잘 안된다. 참 좋은 시누이인데도 괜히 폐끼칠까봐 어려운 건 한국인이라 그런걸까?

병원을 나와 같이 커피한잔 (나는 초코우유 한잔)을 함께 하고 장을 본 뒤 각자 방향으로 향했다. 옌스랑 대화해도 쓰는 어휘가 한정되어 있는데, 병원에서 의사를 보거나 시어머니와 대화를 한다거나 할 땐 평소엔 잘 안쓰던 어휘도 쓰게 되서 좋다. 요즘 학원도 쉬다보니 듣기는 되도 뭔가 말은 퇴화하는 느낌이 조금씩 들고 있었는데, 역시 집중력의 문제인 것 같다. 꼭 써야된다는 생각이 없으니 요즘 다시 덴마크어 비중이 줄어 반반 정도 쓰는 거 같다. 복잡한 건 대충 영어로 이야기하고 일상 대화만 덴마크어로 하는? 집에서도 다시금 덴마크어 비중을 늘려봐야할 것 같다. 곧 방학도 하니 더욱…

뭔가 약간 퇴보하나 하는 불안이 드는 와중 하나 위안이 되는 건, 대학원 덴마크 친구가 자기는 지방 방언도 좀 심하면 못알아 듣는데 내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듣겠다면서 나에게 억양이 별로 없다고 해준 것이다. 옌스가 너 발음 좋다 이렇게 이야기해줘도 뭔가 그냥 자기 아내니까 격려해주려 하는 이야기로 들리고 덜 객관적으로 들렸는데,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나의 덴마크어 미래가 전도유망하다는 착각을 더 하게 해줬다고나 할까? 흠흠.

시간이 지나면서 덴마크에 친구도 서서히 늘고, 이제 내 피를 나누는 가족도 곧 생기고 할테니 뭔가 정말 조금씩 뿌리를 내리는 기분이다. 아직도 나에게 내 나라는 한국이지만 이곳도 이제 내 나라가 될 것이니까.

입덧에 제대로 식사 못하는 아내를 위해 생일 아침상으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차려주는 남편도 있고, 병원간다고 멀리서 와주시는 시어머니도 있고, 다 감사하다. 인생의 많은 일들은 그간 걸어온 일과 우연이 만나 얽히면서 생기는 놀라운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을 떠나 일을 해보고 싶다 했던 아주 초등학교 3학년짜리의 꿈은 내 직장 선택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그를 통해 이곳에 와있었고, 그간 잡다하게 해왔던 취미와 한국에선 드세다고 들어왔던 나의 적극적 성격은 옌스가 나에게 관심을 갖게한 동력이 되었다. 많은 연애 실패담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를 깨닫게 해주었고, 결혼생활은 어때야 한다는 가치관을 심어주게 되었다. 그리하여 만난 그는 나와 결혼과 인생관이 놀랍도록 흡사하게 닮아있었으며, 또한 다른 부분이 있어 서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이 있다. 우린 스스로의 자유를 갈망하면서 같이 함께 하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갖고 있기에 서로 잘 이해해줄 수 있고 지지해줄 수 있다. 애가 생겨서 인생의 많은 변화가 생기고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잘 헤쳐갈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가 있다. 일부러 상처를 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 성격덕분에 문제를 차분히 잘 해결해나갈 수 있으니까.

정말 애를 가져도 좋겠다고 확신이 선 순간 이렇게 아이가 찾아와준 점 정말 고맙다. 앞으로 남은 기간 별 문제없이 건강하게 커주고 태어나주기만을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