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산후조리

영국 왕세자비가 출산 다음날에 퇴원한 것을 두고 한국에서 논란이 많이 있었다. 한국의 산후조리 관점으로 봐서 동양인도 이럴 수 있느냐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 우선 한국인의 출생시 머리둘레는 WHO 기준으로 평균이기에 애 머리가 커서 산후조리가 달라야 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또 흔히 이야기 되는 것으로 서양여성의 골반이 크고 근육량이 많아서 산후조리를 안해도 된다는 것이 있다.

같은 체중의 아이를 출산할 경우 서양모계가 동양모계보다 출산이 용이하다는 건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논문을 찾아볼 수 있었다. (대학원을 다녀서 저널 논문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간혹 임신과정에 대해 일반 책자로 알 수 있는 이상 더 파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이를 읽어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서양인과 동양인의 혼혈아기 출산시 제왕절개율로 보는 서양인과 동양인간 출산 난이도 차이 같은 것 말이다. (Michael J. Nystrom, Aaron B. Caughey, Deirdre J. Lyell, Maurice L. Druzin,Yasser Y. El-Sayed (2008). Perinatal outcomes among Asian–white interracial couples in American Journal of Obstetrics & Gynecology 199 (4), (385.e1-385.e5) DOI:10.1016/j.ajog.2008.06.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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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중요한 연구결과를 발췌한 표이다. Cesarean delivery (CD, 제왕절개)율을 보면 아시아 모계와 백인 부계의 자녀는 33.2%이고 백인 모계와 아시아 부계의 자녀는 23.0%이다. P value가 0.001보다도 낮아 매우 유의미한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같은 아시아-백인 혼혈자녀를 출산할 경우 백인 모계 출산시 제왕절개율이 아시아 모계 출산의 경우보다 10.2%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골반 골격 차이 등을 포함한 생물학적 차이가 이런 차이를 낳는다고 볼 수 있다. (논외의 발견이지만, 각각의 하위그룹 중 인종간 커플의 샘플사이즈를 보면 아시아 모계와 백인 부계는 690, 아시아 부계와 백인 모계는 178로 아시아 부계와 백인 모계 결합이 훨씬 드문 것을 볼 수 있다.)

단지 이것만 놓고 이야기하면  동양 여성의 골반이 작아 산후조리도 더 길게 해야한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백인커플과 동양인커플의 제왕절개율을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더 크게 태어나는 태아로 인해 백인커플의 출산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골반 사이즈 등의 체격 조건은 서양 모계가 출산에 더 용이하지만 아기가 더 커서 서양인의 출산시 충격이 동양인보다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골반 사이즈 차이로 인해 서양여성이 더 쉽게 출산할 수 있고, 따라서 산후조리가 필요 없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근육량은 어떨까? 인종간 선천적 근골격계 질량 차이를 보면 설명이 될 것 같다. (Silva AM, Shen W, Heo M, et al. Ethnicity-Related Skeletal Muscle Differences Across the Lifespan. American journal of human biology : the official journal of the Human Biology Council. 2010;22(1):76-82. doi:10.1002/ajhb.2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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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그래프의 여성 근골격량을 보면 빨간색이 백인, 보라색이 아시아인이다. 남성의 경우 아시아인은 생략되었다. (아마 적은 샘플사이즈 등으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안나와서 생략된 것 같다.) 여성의 인종간 근골격량 차이는 남녀의 근골격량 차이에 비하면 근소한 차이를 보이나 회귀분석으로 나타나는 백인과 아시아인 여성간 근골격량 차이는 전연령대에 걸쳐 개략적으로 3-4킬로그램 정도로 나타난다.  어쩌면 이 근골격량의 차이가 모체에 주는 출산의 충격에 차이를 빚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근골격량 3~4킬로그램 차이는 백인여성과 아시아인 여성의 키차이를 고려하면 골반 인근 근골격량 차이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사실 난 덴마크식 산후조리를 하고 있다. 덴마크식 산후조리는 사실 우리나라 의학계에서 조언하는 바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 의학계의 산후조리에 대한 조언이 덴마크 의학계의 그것보다는 우리나라 전통 산후조리 방식에 근접해 있으나, 임신 기간 중 체중 관리 및 운동에 대한 조언과 출산 후 그것에 대한 조언은 원론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산후조리방식은 사실 구전으로 내려온 전통적 방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사실 이는 지금과 많이 다른 과거의 주거문화 및 생활방식에 기초해 형성된 것으로 지금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출산 후 산후조리의 차이는 임신 기간 중 산모의 신체관리 방식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덴마크에서는 임신 기간 중 꾸준한 운동을 권장한다. 근손실을 최대한 막아야 출산시 용이하고 출산 후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임신중에는 무조건 휴식을 권장하고, 임신 초기 몸가짐을 조심하여 신체활동을 극히 줄이도록 주문하는데 그게 근손실에 큰 영향을 준다. 또한 의사가 체중관리를 요구한다 하더라도 임신 기간 중 먹고 싶은 것 못먹으면 스트레스가 애에게 간다든지, 몸이 요구해서 먹는다든지, 그때 남편이 원하는 것 안사다주면 평생 한이 된다든지의 이유로 원하는 대로 먹게 하는 경우가 많다. (과도한 체중 증량은 임신중독증, 임신성 당뇨, 부종, 아이의 체중 증가 – 이는 아이의 장기적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한다. – 등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살이 트는 것도 피부가 감당하기에 너무 빠른 체중 증량과 관계가 있다.)

근손실과 과도한 체중증가의 결합은 출산 후 신체가 받는 충격을 가중시킨다. 출산에 대비해 관절을 유연하게 만드는 릴렉신 호르몬의 본비는 출산후 6개월여까지 지속되는데, 이로 인해 출산 후 가볍게 걷는 것 자체도 너무 힘들고, 애를 안거나 돌보는 일도 힘들어진다. 그 와중에 급격히 체중이 느는 아기를 돌보면서 집안일을 하다보면 신체에 무리가 오고 소위 말하는 산후풍이라는 것을 겪게 되는 것 같다.

진짜 모체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의 임신과 출산후 산후조리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신 전부터 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늘려 임신기간 중 일부 근손실에 대비하고 임신 기간 전체기간 중 기간별로 알맞는 운동을 통해 근육량의 손실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 그리고 출산 후에도 초반부터 기간 별로 권장되는 운동을 함으로써 골반저 회복부터 시작해 신체 회복을 돕고, 가벼운 걷기를 포함해 서서히 정상 생활로 복귀하는 것이 필요하다.

출산 다음날 나는 퇴원을 해 복귀했는데, 경산의 경우 출산 후 6시간 내 퇴원하는 (산모가 난산 등으로 별도의 이유가 있지 않는한) 것이 이해가 간다. 나의 경우 초산이라 출산 후 어떤 일이 생기는 지를 잘 예상하기 어려워 산파와 건강상담사 (Sundhedsplejerske, 간호사 중 출산 및 육아와 관련된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자격을 획득한 전문상담사) 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하루 머물렀지만, 지나고 보니 바로 퇴원해도 상관없었다.

물론 앞으로도 산후조리는 시간에 걸쳐 해야하는 일이기에 추가적으로 관찰해보고 판단할 사항들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시아인이라 해서 꽁꽁 싸매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지루하게 산후조리원에 앉아서 산후조리를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인 입장이다. 초기 한달 정도는 모유 수유 및 기타 육아의 리듬과 패턴을 수립해 가는데 적응기간이 필요하기에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막대한 돈을 들여 산후조리원에 가서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사도우미를 쓰는게 더 낫지 않나 싶다. 그리고 모자 동실 쓰는게 엄청 힘들다고 하는 글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읽었는데, 사실 애가 가장 가볍고 요구사항이 가장 간단한 신생아 시절에 미리부터 아이에 대해 알아가고 밤중 수유의 패턴 등에 익숙해지는 것이 산후조리원 생활 이후 불쑥 커진 아기와 갑자기 둘이 앉아 그제서야 아이에 대해 배워가는 것보다 수월한 것 같다. 이제 13일차 된 하나를 보면 대충 뭘 원하는 지 우는 형태로 알겠고, 아이도 부모에 대해 빠르게 익혀가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 산다는 게 여러모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재미가 있다. 내 지인들은 내가 특별한 경우라고 하지만, 사실 내가 특별히 다른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신체적으로 유별나게 좋은 조건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 경험을 공유함으로서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간접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니 내가 쓰는 글이 절대적이거나 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덴마크 출산기

마지막으로 신파를 만났던 날, 지난 목요일. 다녀와서 덴마크 출산 시 산모 내진에 대한 글을 크다가 저장을 해두었는데, 그날 밤 그 글을 다 쓰기도 전에 출산을 해버리게 되었다. 내진의 고통에 대한 여러가지 글들을 익히 읽어둔 터라 그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임신 막달 들어 흔히 내진을 하는 한국의 프랙티스와 이곳의 차이가 크게 다가오기도 했다.

예정일이 지나도 안나와 다음 약속한 시간에 산파를 만날 경우, 분만 유도의 일환으로 내진이 어떻게 활용되는 지, 기타 예정일 후 12일이 지나도 안나와 경우 유도분만이 어떻게 진행될지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안내되어 있는 문서를 받아들고 집에 왔었더랬다. 도대체 내 자궁경부는 얼마나 많이 열려있는지, 진행은 어떻게 될 지에 대한 신파의 견해도 궁금했기에 살짝 아쉬웠다. 뭔가 예정일 직전 마지막 면담에는 내진을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한 탓이었다.
그날 밤, 유독 하나가 많이 움직였다. 그 전에 하나가 많이 움직이면서 손가락으로 하나가 자궁경부를 파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 들이 있었는데, 그게 알고보니 자궁경부가 조금씩 얇아지거나 벌어지면서 생기는 느낌일 수 있다고 한다. 애의 태동과 동시에 나는 경우, 그건 머리가 움직이면서 생기는 마찰 때문에 느끼는 경우가 흔하다고 하니 손가락으로 파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 전날 브랙스턴 힉스 수축이 유독 강했던지라 그날 출근하려나 김칫국을 마신 경험을 하고 난 후였어서, 이날 밤 세번의 강한, 꼭 생리통 같았던 배뭉침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냥 하나의 격렬한 태동이 다소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다가 뭔가 왈칵하고 흐르는 느낌. 소변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분비물이라기엔 느낌이 수상해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한번 더 왈칵하는 느낌이 들더니, 변기에 앉자마자 뭔가가 주르륵 쏟아졌다. 희뿌옇게 혼탁한 액체에 선홍빛 피가 섞여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자궁경부를 임신 기간 내 봉인하고 있었던 점액질의 플러그인가, 아니면 양수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우선 화장실 분을 열고 자고있던 옌스에게 소리를 쳤다. “I think, my water just broke!.” 그리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이때가 12:30. 한밤중이었다. 양수면 계속 흐른다고, 30분만 관찰해보고 다시 전화를 달라했다. 조금 지나고 보니 이게 말로만 듣던 양수였다. 다시 전화를 하니 6:30까지 진통이 4-5분 간격으로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단계에 돌입하지 않으면 그 시간에 와서 유도분만을 하자고 했다. 유도분만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는데, 사실 이미 심한 생리통같은 진통은 양수 터지기 시작 직전부터 브랙스턴힉스 수축의 형태로 세번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난 과연 6:30까지 아무일도 없으려나 하는 의구심이 들고 있었다.
다운 받아둔 진통 어플을 이용해 진통 간격 및 지속시간 등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진통 시작시점 기준, 분명 4-5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면서 도래하는 진통이 1분여 정도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여부를 한두시간 정도 관찰하고 병원으로 연락을 하라 했었다. 그런데 이건 뭐랄까… 처음부터 7-10분 간격이었는데 그게 빠르게 7-8, 6-7분 간격으로 내려오더니 5분, 4분, 3분 간격으로도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이미 아주 심해져서 호흡을 관리하기 힘들었다. 산파의 설명을 들은 후 유투브 비디오도 보고 열심히 연습도 해두었는데.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할 거 같아서 양수 색을 확인하려고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가기 직전 진통이 끝나고 화장실 가자마자 한번, 나오는 길에 화장실 앞에서 한번, 물이라도 한잔 더 마시려는데 부엌에서 또 한 번 더. 이건 재보지 못했지만 삼분 간격인 것같았다.
옌스에게 병원에 전화해서 가겠다고 하라 했는데, 병원 출산동 응급라인이 통화중이란다. 택시부터 잡으라 했는데, 옌스도 정신이 없었는지 허둥대고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하기를, 택시 부르는 법이 순간 기억이 안났다더라. 그때가 3:55분. 4:10분에 부를지 20분에 부를지를 물어보길래, 그냥 기다리게 해도 좋으니 우리 준비되면 바로 떠나게 10분으로 부르라고 했다. 십분 더 기다려서 돈이 더 나오는게 (물론 십분 차이에 한 이삼만원 더 내야겠지만) 뭐 대수냐는 마음에 치밀어오르는 화를 눌렀다. 사실 평소였으면 너무 당연한 질문인 건데, 상황이 이런데도 그런 질문을 하다니!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최대한 차분히 이야기를 하고 옷을 입었고, 이미 싸둔 짐을 챙기고 병원에 추가로 연락해서 우리가 간다는 걸 알리는 모든 걸 다 해야하는 옌스는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다행히 전화가 연결되서 내가 상황을 설명하고, 가는 것으로 알렸다. 덴마크인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는 역시나 그 와중에도 신호를 꼬박꼬박 지켰으나, 달리는 순간 만큼은 속도 제한 내에서 엄청 달리는 게 느껴졌다. 십분을 달리는 와중 세네번의 진통을 겪고 병원에 도착했다. 출산동으로 복잡한 길을 헤매며 도착했더니 시간이 4:20의 되어있었다. 목이 말라 밤새 못마신 물을 두잔 마시고 났더니 속이 미식거렸다. 아마 진통이 시작되면서 소화가 멈췄었던지, 다섯시에 먹었던 김치찌개의 일부와 그 이후 먹은 과일의 흔적을 확인하게끔 말끔히 게워냈다.
산파는 처음으로 내진을 해주었고, 통증따위는 없었다. 양수가 내내 이런 색이었냐길래, 그렇다고, 내내 선홍빛이 돌았다 하니, 지금은 약간 초록빛이란다. 오기 직전까진 아니었는데, 그 사이 색이 바뀐 모양이었다. 자궁경부는 이미 4-5센치가 열렸고, 매우 부드럽고 얇아 금방 열릴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자기가 지금 마사지를 하고 있으니 조금 시원할 거라고 하는데, 시원하진 몰라도 말로만 듣던 고통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애 심장 박동은 무리가 없는데, 그냥 태변을 봐서인지, 그걸 먹고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조금 모니터링을 해야한다길래 산모 접수실에서 모니터링을 조금만 더 하자고 했다. 오늘 분만실이 바쁘다며, 분만실 정리중이고, 모니터링 세팅은 추가로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다. 내가 진통중 자세를 움직이면서 모니터링이 잘 안되자, 누군가 들어와서 이렇게 움직이면 안된다고 하고 다시 심장박동기를 세팅해주로 나갔다. 두번째 그런 일이 생기자 들어온 사람이 (산파가 아닌 듯했다.) 이러면 모니터링에 시간이 더 걸린다며 움직이지 말라면서 그 방에 십분 더 있으라고 했다. 그런 일이 한번 더 있고 나서는 옌스가 내가 움직이지 않게끔 옆에 앉아 날 잡아주었다. 정말 아파서 어쩔 수 없었고, 물론 움직이려면 움직일 수 있었지만, 옆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버틸 정신적 힘이 조금 더 생겼다. 다행히 하나의 심장박동은 괜찮았다. 이때 에피듀럴 혹시 맞는게 가능하냐고 한번 물어봤는데, 아무 대답을 못들어었고, 나도 원래 원하던 바가 아니었기에 더이상 물어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진통은 빠르게 양상이 바뀌고 있었다. 갑자기 난 짐승과 같은 괴성이 섞인 긴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아주 긴 복식 호흡이 중요하다 해서 길게 내쉬고 있었는데, 이 호흡이 야수의 신음같이 나왔다. 그르릉 하는 소리로. 그리고 머리가 아래로 내려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빨리 산파 부르라고 옌스에게 말하고 나니 또 그런 진통이 왔다. 다시금 그런 느낌이 오는데 아직도 누가 안와서 옌스에게 화를 내며 재촉을 했다. 나 여기서 낳을 것 같다고, 빨리 부르라고.
나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했던 야속한 그녀가 나를 데리고 휠체어로 분만실에 데리고 갔다. 가는 길에 또 한번의 진통이 와서 야수같은 호흡을 내뱉자, 그녀가 히히후 하는 호흡을 하란다. 내 산파가 그건 구식 호흡이라고 이야기해줬는데. 힘들게 호흡을 컨트롤 하고 있는데 자꾸 히히후를 강요해서 짜증이 났다. 나 호흡중이라고 쏘아붙이고 나니 더이상 가타부타 않는다.
분만실 도착해서는 침대에 올라가 앉으라길래 왼쪽으로 기대 앉았다. 하나의 심박을 모니터링하고 때 그 자세가 아이에게 가장 편한 자세라고 했었기에. 옌스는 내 옷을 벗기라는 명을 받았는데, 나에게 몸을 움직여 보라길래, 그냥 당겨서 빼라고 움직일 수가 없다고 했다. 또 한번 강하게 오는 진통에 다시 짐승같은 호흡을 시작하자 산파가 잘 하고 있단다. 관장을 할 시간도 없었는데 뭔가 나온 것 같았다. 산파에 그 당황스러운 상황을 이야기했다. 기저귀를 벗기려는데, 옌스는 옆에 있고… 약간 지린 것이 맞았다. 이런… 그 와중이지만 민망하여 농담이 나왔다. 다 잊어버리라면서, 나 나중에 치매와서 벽에 똥칠하면 그 때 어차피 봐야하는 거니까 그렇게 본 셈 치라고. 농담을 할 힘이 난 건 좀 웃기긴 했지만 나도 오죽 민망했으면 그랬겠나.
그리고 또 한번 진통이 왔다. 이 진통이 끝날때쯤 이미 머리가 보였다고 하는데 진통이 멈추자 애가 다시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진통에는 진통이 끝나고도 배에 긴장을 늦추면 안되겠구나 싶었다. 지금 정말 잘하고 있다고, 딱 그 느낌으로 하라는데, 다음 진통엔 애의 머리가 나오고, 그 다음엔 하나의 온 몸이 나왔다. 중간에 힘 멈추랄 때 멈추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애가 나오자마자 배에 하나를 올려주는 순간 사실 너무 얼떨떨했다. 그 정신없는 와중 탯줄 아빠가 잘라줄 거냐고 산파가 물어서 옌스 얼굴을 한 번 봤는데, 이미 둘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안자른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눈이 촉촉히 젖어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많이 울었다더라. 난 약간 실감도 안나고 해서 눈물은 안났고, 그럼 엄마가 자르겠냐는 질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썩둑썩둑 잘랐다. 듣던대로 잘 잘라지지 않더라.
막상 분만기는 십오분에 불과했던건데, 가장 힘든건 이때보다는 자궁경부가 열리는 진통기였다. 특히 택시에서 내려 출산동으로 가는 시간, 태아 심박 모니터링하던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회음부 절개는 없었지만, 질이 일부 열상이 있어 여러 바늘 꼬맸는데, 마취 스프레이의 따가운 느낌도, 중간에 다소 깊은 열상을 꼬맬때의 따가운 통증도 느낄 만큼 통각이 살아있었다. 그만큼 산고의 시간이 짧있단 뜻인 것 같다. 괜찮냐는 산파의 질문에, 물론 괜찮긴 하다고, 출산도 했는데 이정도 못견디겠냐는 농담도 할 정도로 여유도 있었고, 실제 지쳐 쓰러질 것 같은 그런 게 없이 출산 후엔 상쾌했다. 하나의 첫 똥도 치우고. 내 손에 똥 범벅을 해 준 하나. 흠흠.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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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다섯시간만에 산모병실로 내려와서 하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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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병동 @ Herlev hosp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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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실에서 애 나오고나서 10분뒤 모습

아침식사로는 토스트빵에 버터와 잼, 치즈(는 안먹었지만), 요구르트가 제공되었고 이를 먹으며 정말 한국과 다른 경험을 한다 싶었다. 출산이 바빴던 밤에 애를 낳은 탓에 산모병실이 안비어서 분만실에서 서너시간 지루하게 있다가 방을 옮겼다. 일인실인 방은 괜찮았고, 첫날부터 수유도 정상적으로 하고 밤도 무사히 잘 보냈다. 배는 바람빠진 듯 뭔가 이상한 감촉이지만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그냥 모든게 예상한 것보다 수월했다. 덕분에 바로 다음날 무리 없이 퇴원해 집에 올 수 있었는데, 정상으로 분만한 경산부가 여섯시간만에 집으로 가는게 어떻게 가능한 지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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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실로 아침식사가 배달되었다. 생일엔 대네브로(Dannebrog, 덴마크 국기)가 빠질 수 없다. 

이제 시작이지만, 그 시작이 수월해서 참으로 감사하다. (산파 왈, 이렇게 급격한 출산이 골반인대엔 그닥 좋지 않단다. 너무 급격하게 벌어지니 일종의 충격이… 그래도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긴 것보단 짧은 게 산모의 고통 입장에서는 나은 듯…?) 효녀 하나 덕분인 것 같다. 앞으로 잘 해보자 우리. 🙂

또 이렇게 봄이 오는구나…

봄이 오고 있다. 내가 이런 이야기하면 옌스는 겨울은 공식적으로는 2월까지이고, 개인적으로는 3월까지라 생각한다고 반박한다. 그런 숫자를 떠나서 내가 봄이 오고 있다고 하는 것은 모든 생명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을 나고 꽃을 틔우는 식물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2월 21일 동지가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 2~3분씩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이 때는 오전, 오후 각 1~2분씩 길어지는 거라 별로 티가 나지 않지만, 동지라는 반환점을 확실히 지나고 나면 하루 5분씩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어느날 갑자기 해지는 시간이 뒤로 밀렸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날이 오게되는데, 요즘이 바로 그런 때이다.

4시 반이면 새카맣게 변해있던 하늘이, 오늘은 같은 시간임에도 푸른 조각을 품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른 봄을 알리는 노란 꽃이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아직 꽃잎을 활짝 벌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봄 내내 여기저기 피며 함께할 긴 시간을 생각하면 벌써 얼굴을 활짝 내어 보여주기에는 아직 이르다. 관목들도 서서히 가지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고 그 끝은 초록빛이 감돈다. 어떤 잎몽우리는 이미 껍질을 터뜨리고 나왔고,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리할 채비를 하는 몽우리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한낮엔 해가 쨍하니 코트 앞섶을 여미지 않아도 춥지 않았다. 영상 4~5도의 날씨에 해가 쨍한 겨울이라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100년만에 가장 추운 겨울이 될 거라고 하더니만 몇번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거 외엔 크게 추운 날씨도 없었고, 비나 눈도 별로 오지 않았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기후가 정말 변하고 있다. 이젠 뭐가 정상적인 건지 잘 모르겠다. 온난한 겨울은 덴마크에도 좋지 않은게 해수면 상승과 태풍 등이 결합하면 폭풍해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실제 이로 인해 얼마전 덴마크엔 작고 큰 해일 피해가 잇따랐다.

임신을 한 엄마의 두뇌는 아이에 초점을 맞추도록 회백질이 일시적으로 1~2년간 감소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나도 그래서 그런가, 삶의 관심이 임신, 출산, 육아에 맞춰지고 있다. 날이 따뜻해지고 나니 예전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아이에 생각이 또 미친다. 이제 벌써 봄이 시작되면 애를 유모차에 데리고 산책하기 좋겠네, 기기 시작할 때가 여름이라 잔디에서 놀게 하기 좋겠네, 등 소소한 생각 조각이 아이에게 가 있는 나를 발견하며 생소함을 느낀다.

하나의 베이비샤워 @ 베스터브로

38주차에 접어들었다. 예정일까지 3주도 채 남지않은 셈. 하루하루 컨디션이 다르다. 어떤 날은 앉았다 일어나거나 돌아누울 때 억소리나게 많이 아프기도 하다가, 어떤 날은 또 너무 멀쩡하기도 하고. 하나의 머리가 골반으로 내려와 고정되면서부터는 간혹 한쪽 다리 신경이 눌리는지, 걷거나 서 있다가 전기가 통하듯 찌릿하거나 저리기도 한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서 이를 보상하기 위해 허리를 뒤로 젖히려 하게 되는데, 이게 허리 통증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주의하라고 한다. 의식적으로 배에 힘을 주고 바로 서면 뭔가 앞으로 허리를 숙이고 있는 듯 해 꼭 앞으로 기울어진 느낌이다. 그래도 학교 잘 다니고 있고, 여기저기 빨빨거리며 잘 돌아다닌다. 오늘은 출산 전 할 거리 중 하나였던 머리자르기도 해결했다. 출산 후 3개월부터면 앞머리가 많이 빠진다고 해서 미용사가 긴 앞머리를 내줬다. 앞머리 안좋아하지만 나중에 생길 무수한 잔머리를 숨기려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많이 짧아져서 한동안 머리를 틀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난 주말엔 친구들이 베이비샤워 파티를 열어주었다. 이는 덴마크가 아니라 영미권문화지만, 이 친구들은 덴마크 친구들이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핀란드, 미국, 한국 등 다양한 곳에서 온 친구들이라 베이비샤워를 하게 되었다. 영국으로 귀국한 친구의 생일파티에 모였을 때, 1월 중 베이비샤워를 열어주고 싶다며 괜찮겠냐고 물어보길래, 물론 좋다고 했다. 우리 문화의 파티는 아니라 영화로 본 게 다이고 다소 생소하긴 했지만, 친구들과 만나는 데에 새로운 핑계는 언제나 좋고 하나를 위해 파티를 열어준다는 게 참 고마웠다.

호주에서 온 에밀리네 집에서 하기로 했는데, 이사한 지 일주일도 안된 집을 정리하고 수선하느라 엄청 바빴다고 한다. 유명한 건축사무소에서 건축가로 일하는 친구인데 주로 특급호텔과 레스토랑 건축+인테리어 디자인을 한다. 평소에도 미적 센스가 탁월한데, 감각도 감각이고 여기저기 이쁘고 세련된 것을 많이 보는 경험이 더해져 그녀가 지내는 집마다 참 디자이너답게 센스있게 꾸민다. 주중엔 일하느라 정신없었는데, 가구 조립에 짐 풀고, 여기저기 수선하느라 얼마나 바빴을 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저것 먹을거리며 케이크와 쿠키, 음료 등 어찌나 다양하게 준비했던지 깜짝 놀랐다. 그냥 차에 케이크나 쿠키 같은 거 먹을 거라는 기대에 갔는데 너무 융숭한 준비에 정말 놀랐다. 주말 오전 11시 반까지 준비하느라 얼마나 정신없었을런지… 집안 장식까지 말이다. 모든 게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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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완전 감격! ㅠㅠ

호스트인 에밀리가 따로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초대하라고 해서 미국에서 온 친구와 한국에서 온 친구는 내가 따로 초대했다. 우리 문화가 아닌 영미권 문화 파티라 다른 한국 친구들을 초대하기엔 약간 애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한 한국 친구는 고등학교부터 오랜기간을 미국에서 지내서 베이비샤워라는 컨셉에 익숙할 것 같았고, 다른 친구들과도 알게 되면 좋을 것 같아서 초대했다. 약혼자네 가족 방문차 영국에 갔을 때 영국 근위병이 그려진 옷을 샀다며 손수 뜬 아기 양말과 함께 선물해주었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그 작은 양말 두개에 들어간 마음이 정말 따뜻하게 느껴졌다.

베이비샤워를 열어주는 게 너무 고마워서 뭔가 선물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인터넷을 뒤적여봤다. 역시나 Thank you gift 같은 걸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되어, 뭐가 좋을 지 고민을 했다. 베이비 샤워라는게 아기에게 선물로 샤워를 시켜준다는 의미이니 뭔가 샤워와 연관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들의 스윗한 마음을 고맙게 여기며 친구들의 샤워를 스윗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의미로 달콤한 향이 나는 샤워오일을 준비했는데, 내 마음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남아공에서 온 폴로소는 감정이 풍부한 예술적인 친구인데, 그 이야기에 괜히 눈물이 난다며 눈가를 훔쳤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다보니, 거의 다섯시간을 앉아서 있었던 것 같다. 임신전보다 7킬로나 불어 제법 동글동글해진 얼굴에 웃음이 떠날 새가 없었다. 선물을 열 때는 얼마나 두근두근대던지. 🙂

이렇게 행복하고 기억에 남을 시간을 만들어준 친구들에게 모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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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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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 온 마리아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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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푸드와 음료, 케이크와 빵 등 다양한 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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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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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고 쓰기엔 작지만, 하나에게는 완벽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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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정말 고마워!!!

임신 후기, 병원 방문 단상

임신 중기 이후, 굳이 심박이 느껴지는 곳에 손가락을 올리지 않아도 심박수를 셀 수 있게 되었다. 심박의 강도가 세졌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간혹 그 심장의 박동이 불편하게 느껴지면서 호흡이 불편해지고 오심이 날 때가 있다. 심박수는 대충 80과 90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으니 특별히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난번 방문 이후로 의사가 좀 이상하다 싶은 건 오라고 했기에 예약을 잡고 병원을 방문했다.

심박이 불규칙한 건 아니고 규칙적인데 불편한 정도로, 어렸을 때 별다른 심장 질환이 없었다면, 지금 검사한 정도로는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잠시 누워보라고 할 때 한 다리를 먼저 얹고 다른 다리를 끓어올리는데, 사흘 전부터 다시 시작된 치골통에 약간 신음을 하며 미간을 찌푸리니까 의사가 그렇게 움직이면 안된다고 한다. 양 다리를 벌렸다가 오므리는 활동은 치골통이 있는 경우 이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니 반드시 두 다리를 모아서 동시에 움직이라고 한다. 또한 잘 때 다리 사이에 베게를 끼우고 자라길래, 그건 이미 하고 있다고 답했다.

출산 후 몇 주 안에 없어지는 통증인데, 지금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까 정 힘들면 파노딜같은 진통제를 먹으란다. 다 그렇게 한다고. 그런데 이런 치골통이 임신후기에 느껴지는 건 서서히 아이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골반뼈가 양쪽으로 벌어지는 때문이라며 몸이 출산에 준비하는 신호이니 좋은 거라며 위로해준다. 오늘 치골과 그 반대편 허리아래편이 아프던데, 이제 서서히 준비하는 거로구나 싶으니 빨리 이런저런 출산 준비를 마무리해야겠다 싶었다.

다음 주말 크리스마스엔 시부모님이 오셔서 우리 가구 움직이고 하는 거 도와주시겠단다. 난 이제 무거운 거 들면 조산할 수 있어서 안된다며. 칠순이 넘으신 시아버지가 괜히 힘쓰시다가 아파지시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되더라. 차라리 옌스 친구를 부르는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한데, 도와주신다니까 우선 알겠다고 말씀은 드렸다.

배가 급격히 나오고 있다. 물론 이틀간 연이은 크리스마스 디너에 변비가 겹쳐 배가 더 나온 것도 있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도 이미 배가 좀 급격히 나왔었다. 11월 하순 이후로 체중은 더이상 안늘고 있는 것 같다. 거의 한달 정도 되었는데. 아무래도 조금만 많이 먹어도 배가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냥 임신 전과 다를 것 없이 먹게되는데, 그래서 그런가보다. 그 기간중 애는 1킬로는 늘었을텐데, 내 몸에서 1킬로 정도가 빠진 모양이다.

나와 예정일이 같나, 하루차이인가 하는 지인은 양수가 부족해서 37주에 유도분만이든 뭐든 해서 애를 낳을 거 같다고 한다. 여기에선 딱히 양수를 검사하는 건 아닌데, 촉진을 통해서 자궁 크기와 아기 크기를 판단하니까, 그 두 개가 정상이면 양수도 정상이라고 판단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다.

이제 이번주 수요일이면 모유수유 교육이 있다. 그게 끝나면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3주의 부모준비교실이 끝나는데, 사실 안가도 출산하고 수유하면서 배우게 되겠지만, 미리 알아두면 우리가 뭘 아는지 모르는지를 알 수 있게 되서 조금 더 준비하기 수월해지는 것 같다. 또 책에 써있지 않지만 우리가 궁금해하는 병원의 프랙티스에 대해서는 따로 질문을 통해 배울 수 있고, 다른 부모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질의응답을 통해 들으면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고민해 볼 수 있어서도 좋다.

이제 6주도 채 안남았는데, 크리스마스 명절에, 프로젝트 제출 및 시험도 있고 하니 정신없이 지내다가 덜렁 애를 낳을 것 같다. 시간이 어찌나 쏜살같이 흘러가는지. 오늘 병원에서 내 진료차례를 기다리며 여러 꼬마 아기들을 많이 봤는데, 저게 내 미래구나 싶어 새삼 두근거렸다. 흠흠…

임신 전엔 몰랐던 임신에 관한 것

임신 전엔 임신에 대해 참 잘 몰랐다. 출산하고 나서는 또 출산에 대해 참 잘 몰랐다는 것을 또 배우겠지. 임신에 대해 나도 많이 물어보지 않았고, 물어보지도 않는데 굳이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일찍 애를 가진 친구들은 뭐 다 그렇게 낳는거지 하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했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잘 관리하고 운도 따라주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고, 불편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또 예상하지 못했던 점에서 불편하기도 하다.

대부분은 이래저래 들어서 알고 있던 어려움들인데, 아래 두가지는 몰랐던 일이다.

  •  배가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받는다.

복근, 피부 이렇게 안밖으로 따로 또 같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자궁이 커지면서 임신 초기에 아랫배에 콕콕 또는 쿡쿡 찌르는 느낌이 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피부가 찢어질 것 같다는 이야기는 별로 못들어봤다. 너무 당연해서 이야기를 안해줬나보다. 1년 새 10킬로 찌거나 빠진 경험이 다수 있어 그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그 안에 묵직한게 들은 채로 배에 집중해서 체중이 증가할 경우 다를 거라는 것을 몰랐다. 살에 한줄 튼 살이 생겼는데, 실제 이렇게 찢어지는 느낌을 받는 거겠지.

  • 치질이 생긴다.

변비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치질 이야기는 잘 못들었고, 변비 없이도 치질이 생길 수 있다는 건 몰랐다. 치질은 변비나 화장실에 오래 앉아있는 습관때문에 생기는 것인 줄 알았는데, 임신으로 증가한 복압으로 생길 수도 있었다. 애 낳고 대부분은 좋아진다는 말에 기대하고 있다. 좌욕을 하기엔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건 임신 중 아이에게 좋지 않다해서 패스하고…

소위 후기에 많이 발생한다고 들었던 치골통이나 기타 문제들은  중기에 오히려 미리 겪고, 대부분은 여러가지 대처법을 통해 극복했는데, 저 위의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이 안되고 있다. 막판까지 계속 저럴 듯. 7주 동안 또 무슨 일들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젠 정말 막바지다.

옌스가 오늘 아침, 처음으로 하나를 만나는 순간을 꿈으로 꿨다는데, 눈을 잘 못떠서 애써 눈을 뜨려고 용을 쓰는 표정을 보았다고 한다. 이젠 실감이 정말 나나보다. 이번 주 토요일이면 하나 침대도 들어오고 이것저것 수납용품 등이 배송되는데, 그거 정리하면 진짜 실감날 듯. 식탁도 거실로 나오고… 집에도 대변화가 예상된다. (미니멀한 집은 안녕)

산파 면담 후 가을 산책

2개의 블록 사이의 일주간의 방학. 이 타이밍에 산파와의 면담이 딱 걸려서 편히 다녀왔다. 10월 정도부터 배가 좀 불러와서 자전거 타기를 관뒀는데, 그러고 나니 유산소운동이 크게 부족해졌다. (여기 임산부들은 막판까지 타는데, 난 팔이 짧아서 앞으로 많이 숙여야 하는 탓에 그게 불편해진 타이밍부터 열차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마침 해가 쨍하고 날도 푹해 옳다구나 싶어 산책을 겸해 병원까지 걸어갔다 왔다.

가는 길 풍경도 좋고, 적당히 싸늘한 공기가 어찌나 쾌적한지 가을이 온 게 행복한 그런 날이었다. 우리보다 위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있어 해가 드는 각도가 철따라 급격하게 변하는데, 그러다 보면 같은 풍경도 참 달리보인다. 빛이 드는 곳과 그림자가 지는 곳이 바뀌니 그 전엔 눈에 띄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같은 건물조차 다른 느낌으로 보인다. 늦가을에 들어서면서 나무들도 거의 헐벗기 시작하지만, 아직까지 겨울의 잿빛 느낌은 아니고 햇살도 아직 따뜻한 색감을 보여 마음이 아직까지는 춥지 않다. 작은 하천가를 수북히 덮던 수초들도 추워 시들고 나면 물이 좀 더 많이 보인다.

크게 달라진 게 있다면 샛소리가 안들린다는 것이다. 남녘으로 갈 철새들은 이미 날아갔고, 텃새들은 동절기 준비에 바쁜 모양이다. 간혹 보이는 까치나 갈매기가 그나마 여기에 새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활엽수의 낙엽들은 축축하게 젖어 땅에 납작하게 붙어있고, 서서히 분해가 시작되어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밑에 작은 곤충류가 얼마나 바삐 움직이고 있을런지. 그런 낙엽들 아래에는 공벌레가 많더라.

예전 사택에서 살 때, 나무가지를 좀 쳐내고 지친 나머지 일주일 뒤에 낙엽들을 치운 적이 있는데, 그걸 들자마자 쏟아져나온 공벌레들에 얼마나 기함을 했던지. 대학원에 들어와서 생태학을 배우면서야 작은 곤충들의 역할에 대해 알 게 되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공포에서 호기심으로 약간 바뀌었다. 벌레와 흙을 만지기 무서워하는 나를 보고 유럽 친구들이 얼마나 나를 신기하고 웃기게 보던지. 어떻게 환경경제를 공부할 생각을 했냐고. 자연에 대해 너무 모르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굳이 내 변명을 하자면, 난 환경 보호에 관심이 있고 그에 접목해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환경에 대해 잘 모르면 배우면 되니까.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쭉 자란 내가 자연에 대해 잘 모르는게 너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삭막하게 자랐나 싶다.

10월 중순쯤에 위치하는 한 해의 42번째 주가 지나면 비가 안오는 날에도 땅이 항상 젖어있고 축축하다. 그래서 그 시기가 지나면 감자가 다 썩는다고 애들 손까지 빌어가며 감자를 캐던 과거의 역사를 반영하는게 42번째 주에 있는 게 가을 방학인데, 감자방학 (kartoffelferie) 으로도 불린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좋아하는 옌스는 땅이 젖으면 바퀴의 그립이 안좋아져서 미끄러지는 등의 사고가 나기 좋다며 이 계절의 도래를 안좋아하는데, 사실 하늘이 맑을 땐 약간 땅이 축축한 느낌이 난 좋더라. 비온 뒤의 상쾌함과 비슷한 기분을 낼 수 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흙과 풀냄새를 많이 느낄 수 있어서 자연에 한걸음 더 가까워진 듯한 착각을 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산파와의 약속이 10시에 있었어서 그게 끝나고 돌아오던 시각은 약 10시 반. 다들 각기 바쁠 시간인지 주택가인 우리 동네에는 사람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한적했고, 하천을 따라 걷는 30분동안 몇 명 만나지 못했다. 자주 놀던 오리들도 다 떠나고. 그래서 이 좋은 풍경을 거의 혼자 느끼는 것 같아 사치를 부리는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산파가 내 배를 여기저기 꼼꼼히 눌러가며 만지고 줄자를 대고 길이를 재보고, 레퍼런스 테이블 같은 것을 찾아보더니 대충 하나는 1.3 킬로 정도이고, 자궁의 크기, 아기 보두 내 주차수에 맞게 크고 있다고 해주었다. 하나가 딱국질 할때마다 오른쪽 아래에서 경련이 느껴지길래 애가 옆으로 누워있다보다고 약간 걱정을 했는데, 머리가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쳤지만 아래 있다며 잘 있다고 알려주길래 안심했다. 다들 이렇게 원시적인 듯한 방법으로 해도 애 낳오면 대충 비슷하게 보는 거 보면 산파들이 대단하다고 하던데, 나도 하나 나오고 보면 산파들의 이런 촉진의 정확도를 가늠해 보려 한다.

임신성 당뇨나 단백뇨 수치 등도 모두 정상이고, 혈압도 극히 정상이다. 다음달에 부모준비 교실이 3차례 있다고 해서 병원 가서 열심히 들어보려 한다. 영어로 된 과정은 한시간 반짜리 한번이던데, 덴마크어로 하는 건 두시간짜리 세번짜리 과정이길래, 옌스와 그걸로 가보려 한다. 그거 알아보라고 자꾸 옌스가 재촉을 해대길래 잊지 않고 물어봤는데, 마침 12월에 하는게 있다고 하니 거기 가서 하라는 것들 좀 해봐야겠다. 외국인에 대해 꾸준히 배려는 하지만, 덴마크 살면서 덴마크어 못하면 손해보는 순간들이 꽤 되는 것 같다.

다음 블록 리딩리스트도 나오고 했으니, 이제 진정한 의미의 방학은 끝났다. 다음주 시작할 과정 준비를 하며 주말을 보내야하겠다. 그 전에 이런 좋은 날씨가 있어서 상쾌한 산책을 즐길 수 있었던 게 참 좋았다. 오늘은 점심으로 삼겹살 김치덮밥을 해 먹어야지. 친구가 선물해준 맛있는 집김치로 메인 재료만 스팸, 연어, 삼겹살로 바꿔가며 김치볶음을 해먹고 있는데, 세번째 여는 오늘이면 다 끝날 예정이다. 덕분에 아주 맛나게 먹었네. 좋은 가을날이다.

 

 

임신 7개월차 돌입

오늘부로 임신 7개월차로 접어든다. 거의 2/3선에 다가서는구나.
 
이제 배가 가슴보다 앞으로 나와 헐렁한 옷을 입어도 살짝 눈에 띈다. 이 시기의 자궁은 축구공만한 크기라고 하니, 배가 눈에 띄는 게 이상할 게 전혀 없다.
 
태반이 복벽쪽으로 자리를 잡아 태동을 남들보다 약하게 느낄거라고 들었는데, 확실히 남보다 늦게 느끼기도 했고, 남들 이야기하듯 불편할 정도의 태동은 느끼지 않고 있다. 그래도 그 빈도나 강도는 확실히 처음과 달리 잦고 강해졌다.
 
간간히 자세에 따라 왼쪽 아랫허리나 치골뼈가 아프기도 하고 (살짝 비뚤어진 골반이 이유인 모양이다. 그나마 발레해서 척추측만과 골반의 전반측만이 일부 교정된 덕에 이정도라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다.) 그로 인해 수면 자세가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번 편한 자세를 찾았나 싶으면 곧 또 그게 아니고, 돌아눕다 보면 앗!하고 싶은 찰나의 통증에 깰 때도 있다.
쉬는 시간 없이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있으면 배가 뭉쳐서 중간중간 꼭 한번씩 일어나 줘야 하는 것도 새로이 생긴 변화다.
또 배에 자주 가스가 차서 의도치 않게 갑작스레 방귀를 뀔 때가 있는데 (ㅠㅠ), ‘아, 이게 내가 원래 이렇게 예의없지 않은데, 하나 때문에 생긴 일이야. 아, 민망해.’ 라며 변명을 하니 옌스가 너무 웃기다며 웃는다. 방귀가 웃긴게 아니라 너무 민망해하며 설명을 하는게 웃기단다. 물론 옌스 앞에서 이런 일이 있었던게 처음은 아닌데, 그냥 아직도 이는 민망하다.
 
내일이면 담당 GP를 임신 초기 검사 이후로 처음 만나는데, 뭘 할 지 궁금하다. 피검사와 자궁 크기와 위치 보고 뭐 대충 그런거 할 거 같긴 한데. 처음부터 좀 부실하게 챙기긴 했지만, 영양제 열심히 안먹고 있는데, 그런 거 답할 때가 제일 부담이다. 먹는 건 열심히 골고루 먹으려 하고 있고, 채소, 과일 이런건 열심히 먹고 있는데.
 
지금쯤이면 하나는 30센치미터 정도의 크기에 600그램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을 것이라 한다. 여태까지는 거의 교과서적인 사이즈로 성장하고 있었기에 대충 실제로도 그정도 크기와 무게가 아닐까 싶다.
 
친구가 선물로 준 루이보스티를 오늘 처음으로 마셨다. 집에 티백으로 몇 개 있을 땐 마셨지만 일부러 사서는 먹게 안되던 루이보스티. 양수를 맑게 또는 풍부하게 해준다고 들었는데, 양수가 충분하다는 검사 결과에 따라 별 신경 안쓰고 있었다. 그냥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냐며. 커피와 달리 차는 수퍼마켓가서 챙겨 사지는 않게 되는 품목인데, 선물로 받은 덕에 끝을 볼 때까지 열심히 챙겨마시려고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마셔야지. 마침 조카가 나의 임신을 축하한다고 만들어준 잔이 생겼으니, 여기에 챙겨 먹어야겠다. 문구는 ‘Tillykke Haein’ (축하해요, 해인숙모: 조카들은 나를 Tante Haein (해인 숙모) 이라고 부른다.)
얼마전 ‘브리짓존스의 아기’ 영화를 보았는데, 배꼽을 잡고 웃었다. 간만에 정말 신나고 유쾌한 영화였다. 2편과 달리 억지스러운 장면도 그렇게 많지 않고 브리짓 존스의 다소 성장한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내가 출산을 3~4개월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정말 남 일 같지 않은 장면을 볼 수 있어서 더 그랬던 지 모른다. 출산이 살짝 무서워지기도 했지만, 다시금 엄마라면 누구나 겪는 일인데 싶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사그라들었다.
시간이 잘만 가는구나. 이제 아침 저녁으로 5~10도 정도의 기온 변화가 일어나고 하루종일 세찬 동풍이 부는 계절이 왔다. 이상하게 가을엔 동풍이 자주 분다. (옌스가 카약을 하는 이유로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대해 매일 듣고 보게 되어 이런 이상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달 말이면 썸머 타임도 끝나고, 12월에 들어 겨울이 오고 나면 하나와 만날 날도 후딱 다가와있겠지. 그렇게 싫어하는 겨울도 올 해엔 참 기다려진다.

임신에 따른 불편함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향해 페달을 힘차게 밟고 있던 도중 뭔가 왈칵하고 쏟아지는 기분이 났다. 뭐지? 22주밖에 안되었는데 양수가 터진건가? 피가 흐르는 건가? 큰 길 한복판에 갈 곳이라고는 없어서 그냥 서둘러서 학교로 가야겠다 싶었다. 그런 상태가 조금 더 지속되는가 싶더니 멈춘 것 같기도 하고, 배에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어떻게 되었든 간에 허허벌판 같은 고속도로 옆길에서는 자리를 떠야 했기에.

10분여를 밟아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서둘러 달려갔다. 최소한 혈흔은 아니었다. 딱히 뭐였는지 알수도 없이 무색 무취의 젖은 흔적 뿐이었다. 그냥 물같은 분비물의 경험이 없던 건 아닌데, 뭔가 그 양이 달랐다. 왈칵하는 기분이라니. 시어머니나 시누이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봐야 하나? 응급 상황에 연락하라고 산파가 알려준 번호에 전화를 해서 물어봐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책상에 앉아 태동이 있는지 여부를 한 10분정도만 관찰한 후 조치를 취하든 말든 해야겠다 싶었다. 등교전 아침에 바빠서 제대로 앉아있을 수 없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태동을 느낄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았다. 괜히 불안했다. 배를 쪼물락거리고 앉아있는데 ‘콩’하고 배 안을 울리는 느낌과 함께 안도감이 몰려왔다.

나중에 찾아보니 임신 중 흔한 일이라고 한다. 여러 세균으로부터의 감염을 막기 위한 몸의 방어기제의 일환이란다.

저녁에 발레수업들으러 가던 중 옌스에게 전화가 왔다. 잠자리에 들러가는 길이란다. 중국과 이곳의 시차는 한국과의 시차보다 한시간이 부족해 페이스타임을 한다는게 참 힘들다. 이런 일이 있어서 학교 가는 길에 가슴이 철렁했다며, 별 일 없는 거 같다고 이야기 해주었더니 다 지나간 일을 이야기해준 것임에도 엄청 놀랬는가보다. 임신하고 나니 여러가지 일에 엄청 걱정도 하게 되고 놀랄 일도 많다며 너무 과한 걱정을 했나보다고 하니, 늘 항상 조금이라도 걱정은 된다고 한다. 나야 내 몸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태동도 느끼기도 하고 좀 더 긴밀하게 변화 상태를 감지하지만, 그렇지 못한 옌스는 오히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니 더 불안하기도 한가보다. 이런 괜한 걱정은 임신에 따른 하나의 불편함이다.

 

임신을 하고 나니 얼굴이 자주 붉어지고 더워진다. 간혹 이야기하다보면 얼굴이 벌개질 때가 있는데, 수업시간 중 발표나 토론하다가 얼굴이 벌개지면 오해할까 싶다. 뭔가 감정 상했다고 오해할까봐. 그런 생각을 하면 얼굴이 더 달아오른다. 그리고 유독 덥게 느껴져서 나 혼자 창문을 자꾸 열고싶어한다. 요즘 조금 추워져서 그런지 다들 자꾸 창문을 닫으려하는데 말이다. 늘상 환기를 원하는 옌스 덕에 나도 시원함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임신 때문인 것 같다.

 

요즘 걸을 때 치골 부분이 그렇게 아프다. 양 골반뼈를 이어주는 인대가 릴렉신 호르몬에 의해 이완되면서 통증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내가 그 중의 하나인 모양이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된 것 같은 이 치골통은 엄마도 느끼셨었다는데. 계속 심한 건 아니지만 간혹 자면서 옆으로 돌아누울 때가 특히 아프고, 한참 앉아있다가 걷거나 뛸 때 아프다. 자전거 탈 땐 큰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 비가 자주 와서 열차를 타고다녀야 하는 일이 늘어날텐데, 그럴 때가 영 번거롭다. 한참 걸으면 오히려 괜찮은데 움직이기 시작하는 초반에 영 불편하다. 아마 자다가 돌아누울 때 아픈 것도 그래서 그런 것 같다. 그 뿐 아니라 나도 모르게 등으로 바로 누워자면 허리 아래쪽이 아파서 깬다든가 등의 이유로 인해 바로 요 몇 일 전부터 잠을 잘 못자겠다. 입덧으로 빠진 4kg도 4.5kg의 체중증가로 원상태를 넘어섰는데, 몇달안에 이렇게 체중이 늘어나니 계단 오르는 것도 서서히 무거워짐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내일이면 만 23주 되는데, 남은 17주동안 5.5kg정도 늘리게 될테니 내 인생 최고의 몸무게로 인해 계단오르기도 새로운 차원의 문제가 될 것 같다.

 

이정도 불편한 거 외엔 딱히 아직까지는 심각하게 힘들다는 식의 문제는 없으니, 그냥 아이가 잘 커가고 있다는 것으로 참 감사한 일이다. 열흘 정도 후엔 오래간만에 주치의도 만나고 할테니 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해야겠다.

 

산파 면담기

아침부터 부지런히 페달을 밟고 나섰다. 산파와의 첫 만남이 예정되었기 때문에. 자전거로 7분거리에 있는 겐토프트병원에서 면담이 예정되었는데, 응급실 말고 제대로 가본 적이 없는 병원이었던 터라 내부도 궁금했다.

이름을 까먹었는데, 내 담당 산파는 젊은 여성이었다. 경력은 어느 정도 있는 듯 안정된 모습이었고 침착한 성격으로 보여 앞으로 함께 할 출산의 여정을 맡겨도 괜찮을 사람으로 느껴졌다.

약 30분간 인터뷰와 촉진을 했는데, 주로 임신 경험 (임신까지 걸린 시간, 입덧, 체중 변화추이, 기타 힘들었던 사항) , 유전관련 참고사항 (가족병력 – 당뇨 등을 포함해), 생활 습관 (흡연, 음주, 운동, 식이요법, 영양제 복용), 출산에 대한 희망사항 등에 대한 상담이 주를 이뤘다. 촉진으로는 자궁의 위치를 확인하고,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또한 의료 정보에 대한 제공동의, 내 응급상황의 보호자 정보 수집, 응급상황시 연락할 곳 안내 등이 이뤄졌다.

임신 경험

6주~14주 사이의 입덧으로 4킬로 빠진 걸 제외하면 내 임신경험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입덧 기간 중 먹은게 없어 움직이지 못하니 근손실이 많았는데, 그래도 그 전에 축적해둔 근육이 있었고, 입덧이 끝나자마자 다시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시작하며 체력을 조금씩 다졌다. 발레도 시작해서 잃어버린 근육들의 흔적을 찾아헤매고 있다. (물론 아직은 집 나간 근육들이 다 돌아오진 않았다.) 몸에 근육이 있어야 나오는 배를 안정적으로 잡아주고, 릴렉신이란 호르몬으로 인해 관절 가동범위가 늘어나 발생할 수 있는 부상 등에서 보호할 수 있다고 한다. 살이 한번에 과도하게 찌지 않아야 해서 운동하라는 것도 있지만, 근육 운동도 하라는 것은 그런 이유가 있단다. 살면서 항상 배에 긴장감을 주고 지내왔는데, 그 긴장감을 한번 풀어보니 배가 불룩하고 튀어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여하튼 운동이 체력을 키워준다는 말은 임신과 상관없이 맞는 말인 모양이다. 물론 운동의 선택에 있어 제약은 따르지만.

우리는 임신을 계획하자마자 했기에 인고의 기다림의 시간이 없었고, 한국에서 미리 하고 온 산전 검사에서도 내 난소의 기능이 20대 중반의 기능이라 했던 것처럼 1차 초음파 검사 결과 기형아 발생 확률도 1/4000을 훨씬 밑돌았기에 큰 걱정 없이 임신기간을 보내왔다. 체중도 이제야 입덧기간 중 빠졌던 체중을 회복했는데, 22주에 4킬로면 정상적이라고 듣고 왔다. 기타 사항은 약간의 치골통이 있는 것? 서서히 좀 아프긴 하지만, 남들 다 겪는 일이니 특별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유전관련 참고사항

당뇨를 포함해 각종 유전병에 대한 질문을 했다. 아버지 형제분들이 당뇨병이 있고, 아빠는 엄청 체중을 관리하시는데도 위험군에 들었다 나왔다를 반복하시기에, 아마 나에게도 당뇨병 유전인자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점 이야기 했는데, 1형 당뇨병이 아니면 되었다고 한다. 그 밖엔 유전관련 위험인자는 딱히 없는 것 같다.

생활습관

옌스나 나는 생활습관은 좋은 편이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으려고 하고, 흡연과 음주 등 안좋은 것 피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이다. 사실 임신 이후 샴페인을 총량 기준으로 2잔 정도 마셨다. 친구 결혼식과 우리 결혼기념일 저녁식사때 반 잔씩, 얼마전 친구들과 만나서 야외에서 한 잔을 마셨으니. 산파 왈, 한달에 1~4잔 이내를 마시는 것은 괜찮지만, 권장사항은 안마시는 것이니 그 점 알아두라했다. 그리고 내가 여태까지 2잔 정도 마셨음을 다 컴퓨터에 기록해두었다. 흠흠.

운동양은 적당하다고 하고,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것 같은 극한의 운동 및 몸에 충격을 꾸준히 주는 승마와 같은 운동만 제외하면 다 좋다고 한다. 자전거든 발레든 향후 체형의 변화에 따라 힘든 정도가 달라질 텐데 그 정도를 감안해 강도나 양을 조절해주라는 것만 잊지말라고 했다.

영양제 복용 문제로 갔을 땐 내가 좀 부끄러워 했는데, 사실 비타민을 열심히 먹는 편이 아니라 이실직고하는데 왠지 꼼지락거리게 되었다. 특히 철분은 변비가 너무 심해서 복용을 시도하는 자체가 무섭다고 하자, 철분제제마다 변비 유발 정도가 다르니 영 안맞으면 다른 것을 먹어보도록 하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것으로 해서 우선은 복용해보도록 하라고 했다. 그리고 우유는 어쩌냐 해서 많이 마시고 있다 하니, 잘 하고 있다며, 애는 알아서 다 필요한 만큼 칼슘을 다 빼가니까 애와 상관없이 나를 위해 마시라고 했다. 또한 내 피부가 태닝되었기에 광량이 부족하기 시작한 요즘시기부터 충분히 태양광을 흡수하지 못해 비타민 D 소요량만큼 충분히 생성이 안될 것이라며, 이 또한 복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산관련 희망사항

혹시 출산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본 바 있냐고 해서, 우선은 에피듀럴 없이 자연출산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회음부가 찢어지는 확률을 조금이나마 낮춰보려고. 그리고 고통은 심하더라도 출산을 좀 빨리, 자궁의 수축 리듬에 따라 힘을 줘가며 수월하게 해보고자 함이었다. 자연주의를 추종하고 뭐 그런거랑은 상관없이, 내 몸이 가장 빨리 회복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고자 함이다.

촉진

누워보라며 배를 이래저래 만져보더니 자궁의 위치와 크기가 적당하단다. 그래서 그 위치가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냐하니, 너무 아래로 내려와 있거나 등의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단다. 그리고 이틀 전 헤얼레우 병원에서 들었던 아기 심장소리를 한번 더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 들은 소리는 내 심장소리였고, 조금 옆으로 이동해 들어보니 아기 심장소리가 들렸다.

응급상황시 

응급상황시 연락할 수 있는 번호를 받았다. 어떤 상황이 응급상황인지에 대해서도 안내를 받았고. 지금부터는 매일매일 태동을 느끼는 게 맞고, 하루라도 태동을 못느끼는 날이 있으면 그 또한 응급상황이라고.

임시 또는 최종 이름

옌스가 저글링클럽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한국어 공부 복습을 하다가 ‘유레카’하는 순간이 있었나보다. ‘하나’라는 이름 어떠냐고. 첫째기도 하고, 두음절 이름에다가, 덴마크에서도 쓰는 이름 (그러나 아주 흔하지는 않은) 이며, 약간은 이국적이기도 한 이름이라고 한다. Hanne면 완전히 덴마크 이름인데 Hannah면 약간 이국적인 스펠링이라, 검은 머리 아기일 우리애에게 적당한 이름이라며. 또한 ‘한’이라는 글자가 한글, 한국을 뜻하기도 하니 아주 적합하지 않냐한다. 나도 매우 공감하며, 우선 이 이름으로 아기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간 부른 ‘아기’라는 태명이, 실제 덴마크 이름 (Aggi) 으로 존재한다. 이 사람은 평생 아기.)

내 생각에 아마 태명이 아니라 정말 이름이 될 것 같다. 🙂

앞으로 11월에 또 산파를 만나서 그때는 임신중독증 및 임신성 당뇨 등을 검사하게 될텐데, 그 때는 내 배가 얼마나 커질지 궁금해진다. 이렇게 목요일이 또 거의 다 지나가며 주말이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