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일기.

논문이 바빠지니 다른 것에 소홀해진다. 논문은 대충 첫번째 포스트에 도착한 것 같다. 원시적 모델링은 우선 되었으니 이제 이론 연구와 모델링을 병행하고, 그 다음엔 분석하고 논문을 써야한다. 그간 진행이 참 지지부진하다 싶었는데, 그래도 1차 모델링을 하고나서 보니 어찌어찌해 절반은 왔구나. 약간이지만 안도가 된다.  물론 아직도 반 이상이 남았는데 시간은 반이 흘렀으니 긴장이 되는 게 더 큰다. 내 논문 생활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게 하나 있다면 항상 크리티컬한 관점으로 내 논문을 비판해 줄 남편이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모델을 보여줬더니 이건 고려해봤느냐, 저건 고려해봤느냐, 이 건 왜 이런 함수형태를 취했느냐, 독립변수 선택의 전략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며 꼬치꼬치 묻는다. 아직 그 단계까지 안갔는데 쏟아지는 질문에 무방비로 폭격을 당한 기분이었으나 나혼자 하는 씨름에 타인의 신선한 인풋이 좋은 자극으로 다가왔다. 역시 연구는 남과 공유해야하는 법이다.

우리 학과가 속한 인스티튜트에서 박사과정 공고가 났다. 자금사정이 트인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매주 수요일에 있는 인스티튜트 아침식사시간에 같이 참여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도교수에게 박사과정에도 관심있다고 했더니 지원서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나를 많이 아껴주시는 교수님이 있는데, 그분께도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무것도 보장되는 건 없지만 추천서만큼은 꼭 써주시겠다면서, 오히려 박사과정에 꼭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논문을 제외하고 학점이 10.9니까… 논문을 잘 쓰면 11점 정도로 학점은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라성같은 사람들이 완벽한 점수를 들이밀 걸 생각하면 아주 빼어난 점수는 아니라도 점수가 흠이 될 건 아닌 정도니 논문이 많이 중요하다. 사실 큰 기대는 못한다. 요즘 박사과정은 세계 각지에서 지원을 하니 경쟁률도 높고, 내가 원하는 연구방향과 인스티튜트에 가장 어필하는 방향이 매칭이 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든 해보지 않으면 될지 안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배웠으니까 우선은 지원을 해봐야겠다. 뭐 되든 안되든 간에 내가 박사과정까지 생각하리라는 건 정말 상상도 못해봤고 공부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는데, 역시 절대 안한다 못한다 이런 이야기는 함부로 하면 안된다.

덴마크어 필기 시험도 한달이 채 안남았고, 구술은 그 뒤 한달뒤로 다가왔는데, 시험은 큰 걱정이 되지 않는다. 선생님을 잘 만난 덕에 쓰기가 후반으로 갈 수록 느는 게 느껴졌다. 알듯말듯한 몇가지 문법이 자꾸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는데, 내 고민을 정확히 이해하고 딱 꼬집어 지적을 해주는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이 좋아졌다. 작년 말 시험으로 모의시험을 쳐보니 읽기는 12, 쓰기는 약한 12 또는 강한 10이라한다. 말하기는 한달 시간이 있기도 하고, 읽기와 쓰기의 중간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있는 부문이라 대충 10~12 사이로 모든 부문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보고 있다. 모듈 6를 하게 될지 아닐지는 지금도 결정하지 못했지만, 항상 옵션을 갖고 있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우선은 그대로 해보련다. 덴마크어 교육도 갈수록 팍팍해져가고 있고 그러다보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더 미루지 않고 올해 초 다시 시작하기로 한 건 아무래도 잘 한 결정이란 생각이다.

하나는 쑥쑥 자라고 있다. 이제는 제법 아가씨 태가 난다. 잔디밭을 뛰어다니면서 겁이 없어져서 그런지 위험한 일들을 서슴없이 해서 조금 걱정이다. 집에서 놀다가 살짝 휘청한 것 같았는데, 금속 바구니 테두리에 부딪혀서 앞니가, 그것도 윗니가 살짝 깨졌다. 다행히 신경은 안건드린 거 같긴 한데, 우선은 지켜봐야한다. 옌스도 같은 이가 부러진 적이 있다하니 젖니 깨먹는 건 이 집안 내력인가 한다. 이일로 나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고, 아픈 하나를 보기위해 마침 휴가를 내고 있었던 옌스에게 애를 맡기고 나가면서 그 스트레스로 인해 구역질이 났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도 구역질이 계속 나는데, 그걸 멈추기 위해서 산책을 해야했다. 원래 스트레스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신체적으로 반응이 올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건 내가 아닌 아이 일이라서 그렇다. 누가 있었어도 생겼을 일이었기에 나를 자책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애가 더 크게 잘못되었으면 어쨌나 하는 두려움에서 오는 구역질. 더 큰 사고가 나도 차분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말로 단단히 먹어야한다.

하나는 참 씩씩한 아이다. 웬만해서는 넘어진 거나 부딪힌 걸로 울지 않는다. 시부모님도 그렇고 보육원 선생님들도 인정하는 씩씩한 아이인데, 그렇다고 튼튼한 건 아닌 것 같다. 감기나 설사 같은 걸로 자주 아픈편이고, 폐렴 입원도 그렇고 천식성 기관지염을 앓는 일이 꽤 잦은 것 같다. 오늘도 그로 인해 응급실을 다녀왔으니… 물론 이번엔 응급했다기 보다는, 일반 GP, 스페셜리스트로 올라가는 시스템을 이용하기에는 응급했다고 봐야하는 거니까, 그냥 적기의 진료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겨울 아기로 겨울 초입부터 보육원을 시작해서 그런 것도 있다지만. 다행인 건 씩씩한 아이라 잘 견뎌준다는 것. 나도 생각해보면 어려서 자주 아팠던 것 같다. 항상 건강체질은 아니었고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자주 배가 아파서 학교를 많이 쉬었던 기억이다. 엄마도 내가 씩씩했었다는데, 지금도 꽤 씩씩한 거 생각하면 하나도 그런 면에서는 강한 아이일 것 같다.

요즘 얼마나 놀이터 생활을 즐기는지. 날이 좋아지면서 아파트 앞 잔디밭에서 놀리게 되니 동네 아이들과도 교류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한 때 비명을 고래고래 지르던 아래층 이웃 아이는 아직도 간혹 그렇긴 하지만 그런 게 줄었고, 그 아이의 오빠와 둘다 다정한 애들로 컸더라. 이제 곧 7살이 된다는 베어트람은 하나를 유독 이뻐해주고 쓰다듬어주고 (아마 여동생을 데리고 지낸 경험에서 우러나는 듯) 4살 여동생인 딕터도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아이었고, 둘다 하나와 함께 놀아주더라. 하나가 갖고 나온 공을 갖고 잔디밭에 삼각형으로 둘러 앉아 셋이서 공을 미는 놀이를 하는데 (그나마 하나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놀이로 배려해 준 베어트람이 놀랍다.) 곧잘 노는 게 신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놀라고 나는 빠져있는 건데 내가 중간에 괜히 옆에서 개입했나 싶었다. 말못하는 하나를 대변해준답시고, 아직 애가 이해를 못해서 그래, 하나야 앞으로 밀어봐, 이러면서 옆에서 참견을 했다. 그냥도 잘 했을 거 같고, 아니어도 오빠와 언니가 적당히 반응해가며 놀았을텐데 말이다. 앞으로는 다른 아이가 충분히 큰 경우 내가 조금은 더 뒤로 빠져서 지켜보는 역할에 그치는 것으로 해봐야겠다.

다음주에는 두바이에 주재중인 시누이네를 시부모님과 함께 방문하는데, 출산 후 거의 바로 이주한 시누이가족과는 하나가 처음으로 제대로 교류하게 될 거라 기대가 많이 된다. 조카들이 동생 만나서 놀아줄 기대로 부풀어있어서 더욱 기대된다. 수영복도 사고 이래저래 준비를 했는데 아픈게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오늘 해가 엄청 쨍하고 더웠는데, 하나 데리고 오전에 응급실에서 3시간 씨름하고, 가장 해가 쩅한 시간에 나와 낮잠에 든 애를 두시간 반이 넘는 시간동안 밀고 싸돌아다녔더니 몸에 화기가 든 기분이다. 아마 피부가 많이 탄 모양이다. 밤에 잠이 잘 안올 것 같다. 나는 못자도 애가 좀 잘 자줬으면 좋겠다. 기침을 덜하는 걸 보니 오늘은 잘 자려나? 역시 병원에서 천식약 흡입한 게 도움이 많이 된 모양이다. 딱 쓰고나니 기침하네. 흠… 역시 입초사인가…

임신 때보단 육아가 훨씬 힘들긴 한데, 출산 후 100일이 제일 힘들었던 거 같다. 지금은 다른 차원의 힘듦이지만, 육체적으로는 애가 어릴 때 더 힘들었던 거 같다. 얼마전 출산한 사람, 앞으로 출산할 사람 등 주변에 애 참 많이 낳는데, 신생아 냄새가 생각날 듯 하면서 그립기도 하지만 또 낳을 생각은 안난다. 다 잊혀져서 애를 또 낳는다는데, 힘든 기억은 잊혀졌지만 힘들었다는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내 애는 그만 낳고 남들 애기 보면서 신생아 이뻐하는 건 그걸로 끝내야겠다. 아… 신생아 볼 생각에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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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만 8주 + 하루의 하나에게

하나야. 엄마는 아기를 낳고나면 세상이 바뀐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단다. 그래. 너를 낳고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진 않더라. 엄마는 너를 낳기 전까지 36년이 넘는 시간을 엄마가 아닌 사람으로 살았는데 그게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뀌겠니. 그래도 네가 태어나고 나니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바뀌더구나. 아마 그게 하루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런 것 같다. 딱 하나 확 바뀐 게 있다면 내가 네 아빠와의 관계랄까? 결혼을 하고난 뒤 우리는 가족이라 이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피를 나눈 가족과는 다르다고 생각을 했는데, 너의 출산을 기점으로 놀랍게도 네 아빠가 내 마음속으로 더욱 더 확 다가왔단다.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말야.

엄마는 네가 처음에는 하나의 과업처럼 느껴졌단다. 잘 수행해 내야 하는 과업 말이야. 처음부터 정말 열심히 했어. 모든 일은 효율적, 효과적으로 하고 싶은 사람인지라 육아마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단다. 네가 울면 빨리 왜 우는지 파악해서 해결해주고 싶었고, 기저귀 갈고, 목욕하고, 산책시키고, 토하면 치우고 등등 이런 일들을 최대한 잘 해결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걸로는 부족하더라. 네 아빠가 너를 다루는 모습에서는 효율성은 부족하지만 나와 다른 여유가 있어보였어. 그리고 어떤 날은 젖토한 것으로 엉망이 된 너를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서두른다는 것이 오히려 토한 뒤의 불쾌감으로 우는 너를 보듬어주기보다 치우는 데 급급하고 있었어. 소리만으로도 똥이 기저귀 밖으로 곧 샐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다른 날엔 똥 빨래를 최대한 피하고자 마음만 급해서 너를 눕히지 않고 한손으로 안아 바지와 바디수트를 벗기려고 하며 너를 불편하게 하고 있었단다. 그럴 때마다 아차 싶었어. 어느 날 이런 저런 육아 글을 읽다가 갓 태어난 아기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말에 그거구나 싶었어. 엄마가 너를 인격체보다는 엄마가 수행해야 할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었구나 하고 말야. 이젠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너를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러면서 너와 한층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엄마도 처음으로 엄마가 되다보니 하루하루 깨닫는 것이 많단다. 그래서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어. 물론 그 말이 정말 말그대로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만큼 사람을 새롭게 성숙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말이겠지.

엄마가 너를 낳기 전에 보리를 입양해 키운 것은 참 잘한 일이었구나 생각해. 지금은 살고 있는 집의 조건상 보리와 함께할 수 없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워주고 계시지만, 그 경험이 없었으면 너를 키우는 게 한층 더 힘겨웠을 것 같아. 내가 책임져야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없는 존재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를 한층 낮은 수준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거든. 엄마는 한국에 가서 지내는 동안 네가 보리와 지내며 동물과 가까이 하는 법을 어려서부터 알려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싶어.

세월호가 인양되서 항구로 옮기는 중이란다. 네가 태어나기 전에만 해도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어. 그건 너를 임신하고 있는 기간중에도 마찬가지였단다. 지금도 여전히 완전히는 알 수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하루하루 너와 가까워지고 있는데, 이렇게 사랑과 공을 들여 키우는 자식과 20년이 가깝도록 매순간 조금씩 더 가까워졌는데 하루 아침에 차가운 물속에 잃어버리고 찾지 못하는 심정이 어떨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로구나.

너를 키우다보면 아찔한 순간들을 상상하게 되는 찰나들이 있어. 너를 안고 걸어가다가 발에 뭔가 채여서 살짝 흔들린다거나 하는 찰나. 그에 걸려 넘어졌으면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이 드는 거지. 집안일을 하는 도중 혼자서 목이 터져라 우는 너를 내버려 둘 수 없어서 바운서에 앉혀 부엌에 두고 부엌일을 하다보면 혹시 뭐가 떨어져서 너를 다치게 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과민하다싶을 정도로 조심하게 되곤 해. 그러다가 아주 일순간 습관처럼 일을 하다 손이 기름병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아차 하는 생각에 다시금 정신을 차리곤 하지. 그러다 보면 네 아빠도 괜히 걱정이 된단다. 세상일이란건 정말 모르는 일이니까. 예전에 엄마, 아빠가 나보고 길조심 하라고 매일 이런저런 걱정어린 말씀들을 하실 때면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냐고 핀잔을 드리곤 했는데,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이제는 이해가 되는구나. 왜 어제 한 이야기인 것을 알면서도 또 이야기 하셨는지.

이번에 덴마크에 방문을 하고 가신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비행기 안에서 난기류에 기체가 흔들리는 순간에 그런 이야기를 나누셨대. 할머니가 “여보, 혹시 이 비행기가 추락이라도 하면 걱정되는 일이 있수?” 하고 물어보시자 할아버지는 “아니, 이제 해인이도 결혼생활 어떻게 하는지 잘 보고, 하나도 낳아 잘 기르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아들, 딸 자식 모두 잘 살고 있어 걱정하는 거 하나 없소.” 라고 하셨대. 그리고 할머니도 그 생각이셨다고. 그 마음이 어떻셨을런지는 난 아직 잘 모르겠어. 언젠가 나도 너를 보고 그런 마음이 들런지. 그게 진짜 너를 독립시키는 순간일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8주밖에 되지 않은 네가 벌써부터 엄마와 힘겨루기를 시작하는 것을 보며 앞으로도 참으로 많은 밀고 당기기가 기다리고 있음을 느끼고 있어. 어느새 부모와 너만의 방식으로 대화를 하며 요구사항을 밝히는 너. 이제 우리가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을 땐 너는 바운서에 앉아서 기다리는 것으로 룰이 정해졌고, 너는 칭얼거리거나 울음으로 젖을 빨아보겠다고 한 두번 시도를 해보지만 기다리라며 손을 뻗어주지 않는 단호함에 참고 기다리게도 되었구나. 방금 젖을 먹고도 저녁에 엄마를 찾는 너를 보며, 벌써 떼를 쓰기 시작하는 네가 정말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알게 된단다.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밀당을 하겠지만 너의 마음은 보듬어주면서도 네가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훈육은 놓지 않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 거란다. 서운한 순간도 많겠지만, 엄했던 엄마의 마음을 충분히 잘 이해하는 나이기에 너도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란 마음으로 힘든 밀당을 할 거란다. 그 시기가 이렇게 일찍 온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란다.

오늘부터 썸머타임이 시작되었어. 컴퓨터 시계엔 8시로 되어있지만, 사실 어제까지 7시였던 시간이지. 내 앞에선 네가 자다가 지금 막 용을 쓰며 기지개를 키는구나. 매일 밤 수유하느라 세번은 깨지만 이젠 그게 크게 힘들지 않단다. 사람의 몸이 다 적응하게 설계가 되어있구나 싶어. 솔직히 일년이라는 육아휴직기간이 두려워. 공부로부터 손을 확 뗀 상태로 두 달이 벌써 지나가버렸는데, 앞으로 8개월 후 논문으로 잘 복귀할 수 있을런지 걱정도 되고. 그렇지만, 조금 더 네가 크고 나면 아주 조금이나마 여유가 더 생기고, 진득하게 앉아서 아티클이라도 읽을 시간을 확보하게 되면 그때 공부는 걱정하기로 하고 지금은 너에게 집중하기로 했단다. 수유하고 기저귀 갈고 하는 토막난 시간에 긴 호흡으로 집중하며 읽고 생각해야 하는 아티클은 정말 읽기가 어렵더구나. 그걸 다 잘 하는 엄마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대신에 엄마는 신문과 텔레비전을 마음 놓고 보기로 했단다. 너 수유하는 시간과 다 먹고 젖토하는 지 지켜보는 시간 동안 말이야. 그래서 그런지 지난 두달 간 엄마의 덴마크어가 한층 더 늘었음을 느껴. 그러다 보면 더 단어도 열심히 외우고 작문도 해보며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늘지만, 채우기 힘든 욕구를 쌓아두면 스트레스가 되니 우선은 그 마음은 한켠으로 미뤄두고 말이야.

이제 너도 곧 일어날 시간이 되었구나. 엄마도 배가 참 고프다. 너에게 젖을 먹이려면 엄마가 먼저 잘 먹어야 한단다. 오늘 하루도 같이 잘 해보자꾸나, 하나야.

 

Procrastination or 미루기

시험기간이 되면 어찌나 시험공부 뺀 모든 것이 다 재미있고 하고싶은지? 심지어는 청소까지.

내일 모레면 치르게 될 구술시험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천은 양이 너무 많아서 하기가 싫다는 것. 마지막 순간까지 충분히 준비가 안될까봐서. 사실 그럴 걱정할 시간에 공부하면 되는 건데 불안하니 한자리에 잘 못 붙어있겠다.

도서관에서 하늘이 어둑해질때까지 앉아서 열심히 하는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집에서 끄적끄적하면서 딴 짓을 절반 이상 하는 날도 있다.

완벽한 준비는 안될 것 같지만, 어느 정도는 준비가 되겠지.

다음 학기엔 조금 더 잘 할 수 있기를… 15 ECTS 수업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다.

실업자의 게으른 하루

회사에 다니지 않으니 하루를 꾸리는 것이 전적으로 나의 몫이 된다.

아침에 눈을 비비적 거리면서 옌스에게 출근 인사를 하는 것이 시작이다. 의욕에 찬 날이면 미리 일어나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로션을 바르고, 옷을 정갈히 입는 정도의 예의를 보여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면 잠옷 바람으로 산발머리를 하고 카페인 공급차 커피한잔 내리는 게 다이다.

항상 짧은 번아웃 주기를 갖고 있는 나에게는 이러한 패턴이 자주 반복된다. 그래도 내리막길로 들어섰을 떄 나를 과하게 힐난하며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거나, 최소한 그렇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는 면에서 적은 죄책감과 함께 오르막길로 다시 돌아서곤 한다.

요 며칠간은 내리막길이다. 내 안의 나을 너무 비난하지 않고 잘 달래서 오르막길로 올라가야 한다.

내리막길에 들어서면 주변 정리를 하기 싫어지고, 미루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사람과의 연락에서도 좋은 답을 하기 위해 3분이면 답을 할 일도 3일이나 심하면 일주일을 미루게 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고 싶어하나,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놓아버리는 것이 완벽주의자의 성향인데, 딱 내 이야기다.

오늘은 특히나 밤에 잠을 잘 못잔 탓에 커피 한잔에도 잠이 영 깨지 않아, 침대로 돌아가 누워 잠을 잤다. 8시에 들어가서 10시 반에 다시 일어났으니… 그나마 이시간에 일어난 것은 배꼽시계가 울렸기 때문이다.

요즘 영 입맛이 없다. 냉장고를 열었다가 한숨쉬면서 닫는 게 일상이다. 뭐든 해먹으려면 해먹을 수 있지만, 내가 해먹고 싶은 것은 여기서 재료값이 비싸고, 특정 장소에 가서 재료를 사야 하기 때문에 선뜻 떠올랐을 때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 그래도 뭔가는 먹어야 하니… 하면서 떠오른 것은 라면. 수출용 신라면은 별로 맵지가 않다. 달걀을 넣었더니 진라면 같이 되어버렸길래, 이번엔 달걀도 없겠다, 그냥 끓였다. 순간 떠오른 것이 캡사이신 소스. 한국에서 얼마전 특별히 조달해왔다. 아… 과유불급이라 하였던가. 속이 엄청 쓰리다. 국물은 그냥 하수구로 부어버렸다. 아까워라. 결국은 속까지 쓰리길래 옆에 굴러다니는 크래커를 한통 비웠다. 칼로리를 소비해야 하는데, 앉은 자리에서 정크 푸드를 두개나 위에 쑤셔넣었으니.

식기세척기라는 럭셔리는 사람의 게으름을 더 부추기는 아이템이다. 그래도 진정 부엌의 혁신자라고 할 수 있다. 엉망인 부엌도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하나씩 넣다보면, 금방 정리가 끝난다.

덴마크어 학원 가야 하는데, 숙제를 다 하지 못했다. 통제하는 사람이 없으니, 인터넷 서핑을 수시로 하게 된다. 중간중간, 너 이러면 안돼!를 스스로에게 몇번이나 외쳐야 하는지 모른다. 멀티태스킹을 해야하는 회사생활이 오래되다보니, 뇌구조가 변했다보다. 멀티태스킹도 잘 못하지만 모노태스킹에 큰 장애가 생겼다. 빨리 학교생활을 해서, 공부에 쫓겨야만 할 것 같다. 간신히 스스로를 달래가며 숙제를 끝내서 잘 프린트 한다음 가방을 챙기고 수업에 뛰어갔다. 수업시간엔 집중이 잘 되고, 공부가 재미있는 거 보면, 대학원 복학 후 삶이 즐거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 오는 길에, 저녁 찬거리를 고민하다가 맥도널드에 들렀다. 오늘 하루는 정말 불량식품으로 점철되었다. 집에 와서 이것저것 잡스러운 글을 읽고, 상념에 잠기다보니 시간이 휙하고 흘러갔다.

이제 곧 자야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