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는 다 선택이다.

요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아이의 첫겨울과 보육원 생활이 겹칠 때 애가 얼마나 자주 아플 지를 고려하지 않고 너무 많은 플래닝을 한 것일까? 남편에게 자주 짜증을 내게 된다.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짜증은 결국 나에게 나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조금만 더 플랜을 잘 했더라면, 조금만 더 플랜을 잘 지켰더라면, 변수가 생겼을 때 기존의 플랜을 조금 더 잘 끼워넣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그때 옌스가 이렇게 해주었더라면 조금 더 좋아졌을텐데, 그렇게 해주지 않아서 그래… 라는 말도 안되는 형태로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잠깐 심통을 내곤 한다. 잠깐 다른 일을 하다보면 말도 안되게 심통을 부렸구나, 유도리있게 이렇게 했으면 되었을텐데 하고 돌아와서 짜증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옌스가 받아주고 풀곤 한다. 자꾸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오늘은 제대로 이러저러했던 상황에 대해 나의 생각의 전개 및 감정을 설명하고 제대로 사과했다.

논문도 다 끝나지 않았지만 취직 준비를 서서히 해야하는 탓에 더 조급해지는 것 같다. 다음주 금요일엔 취업박람회가 있어 거기에 갖고갈 요량으로 덴마크어 이력서를 준비하고 있다. 졸업은 8월이지만 대충 6월이면 상반기 채용이 끝나는 탓이다. 오늘 대충 드래프트를 끝냈고 옌스가 잠깐 훑어봐준 결과를 토대로 추가 작성해서 내일 봐달라고 해야한다. 오래된 이력서를 들쳐보고 이를 덴마크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번역이라는 작업 자체도 그렇지만 여기 채용시장의 이력서 유형에 맞춰 쓰느라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원래 뭐든 처음이 힘든 거니까…

 

대학원 동기 한명이 자살했다. 가까운 동기는 아니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친구도 자살을 예상할 수는 없었던 걸 보면 그 속사정을 깊게 털어놓을 수 없어 더 힘들어하던 게 아닌가 싶다. 살면서 자살을 생각해보는 게 아주 드물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걸 실행으로 옮기는 데에는 그만큼 큰 용기(?)와 좌절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막상 그를 실행해 옮긴 그의 힘듦을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내 주변에서 자살한 건 그가 처음인데, 자살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다. 그를 추모하러 그가 자살한 기차역에 갔을 땐 그렇게 많이 보았던 열차의 주행이 새삼 섬뜩하고 무섭게 보였고, 또한 무심하게 보였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러 모였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소한 농담도 나눌 수 있는 우리에게서 어쩔 수 없는 무심함을 보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 그렇게 스치는 생각이었다. 덴마크에서 직장을 관두기 전에 나도 과도한 스트레스로 극단적인 생각들을 조금 구체적으로 했던 탓에 이번 일이 완전히 남일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는 하나가 있어 더욱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되겠지만, 사람이 참 힘들다보면 이성적이지 않은 극단적 결정도 할 수 있기에… 남겨질 사람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그 친구는 이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죽음의 길을 선택했기에 이제 최소한 자유로워졌을테지. 그런 자유를 희망했을 것이리라. 그의 죽음에 찬동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그가 원했던 것을 얻었을 것이기라 믿으며 위로의 마음을 띄워보낸다.

세상 일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될 때, 어디에도 “그래야만 했다”는 당위는 없음을 기억해야한다. 항상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나도 지금처럼 힘들다고 끙끙대며 주변인을 상처입힐 땐, 이 모든 상황은 우리가 다시 프레이밍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평활함수와 예측불가한 인생

어려서부터 나는 수학을 안좋아하고 영어를 좋아한다고 했다. 오빠는 반대로 수학을 좋아하고 영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수학을 잘하고 싶었지만 이해가 느렸고 아주 쉽게 풀어 설명해줘서 하나하나 이해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제일 싫어하는 말이 그냥 받아들이고 외우라는 거였는데, 그 이유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면 머리에 들어가지를 않아서였다. 그래서 나는 수학은 선행학습이 절대 안된다는 것을 이해했다. 다행히 쉽게 설명해주는 과외선생님을 만나서 내 눈높이에 맞는 설명을 들어가며 뒤늦게 수학을 따라잡았다.
대학에 가서도 경제수학과 통계학은 정말 괴로웠다. 고등학교때 배우던 것에서 갑작스레 너무 점프해버렸다고나 할까. 학부때 재수강을 해서 그냥 최소한의 성적을 받고 넘겨버린 두 과목 모두 대학원에 가서야나 이해가 되었다. 참 오래걸렸다. 경제수학은 같은 교수님이었고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그냥 결국 여러번 반복하고 부딪히면서 이해안되는 건 교수님을 엄청 귀찮게 해서 이해하고 넘어갔다. 통계학은 질문을 엄청 하고 무안도 엄청 주시던 재미있는 교수님이었는데, 이미 무안을 당한 바 무식한 질문도 많이 해가며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이 때 이해한 게 없었으면 지금의 공부도 엄청 힘들었을 듯하다.
이제는 여러 방법론을 리뷰한 저널 아티클 한개를 읽기 위해 다른 레퍼런스 아티클을 읽고 이것저것 뒤적뒤적 거리며 읽어야 한다. 살면서 평활함수를 이해하기 위해 이것저것을 뒤적거리라고는 “나는 수학을 못해. 좋아하지 않아.” 라고 읊고 다니던 시절의 나는 상상못할 일이었는데.
인생은 정말 예상하지 못하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