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는데 머리는 복잡하다.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러 2월이 다 가고 있다. 어쩌면 시간은 이리도 잘 흘러가는지. 올 한해의 1/6이 거진 다 지나간 거 아닌가? 시간이 나이에 비례해 빠르게 흘러간다고 하더니, 내 나이 마흔에 맞춰 시간도 빠르게 흐른다. 인생의 전반전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이구나.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꾼 것도 거의 1년이 되어가고 있다. 가족이나 친구와 포옹을 나누지 않은지도 시간이 제법 흘렀다. 언제 그렇게 포옹을 나누며 살았다고 친구와 만나고 헤어지는 데 가까운 품을 내어주고받지 않는 지금이 매우 어색하고 아쉽다. 제대로 인사나누지 못하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포옹을 나누기에는 혹여나 있을 지 모르는 감염위험이 두렵다. 거리를 확 두는 것도 아니면서도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건 부담스럽다. 내가 옮을까봐서라기 보기는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는 상황이고 각자가 어느정도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걸릴 수 있는 지 모르는 상태라 내가 옮기든 상대에게 옮든하는 상황이 혹여나 생길까봐서이다.

내 인생은 표류하고 있다. 정확히 뭘 원하는 지 모르겠다. 우선 지금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일하지 않아도 등 따숩게 잘 수 있는 집이, 단란한 가족이 있고, 먹고 입는 것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아이가 원하는 것을 제공해줄 수 있는 여력이 있다. 아이는 쑥쑥 잘 자라고 있으며, 좋아하는 친구들과 선생님과 즐거운 유치원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을 다녀와 한국어에 관심과 자신감이 조금 늘었다. 그러니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경제적 자립이 요원하다는 게 마음을 조금 불편하게 한다. 누가 번 돈이면 어떠랴하고 쿨하게 생각하면 좋은데, 그래도 그렇지가 않다. 너무 힘들다고 관둔게 너무 배부른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 들면서도, 엄청 스트레스 받으면서 생활했을텐데 그게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마음도 한켠에 든다. 내가 새로이 벌인 일들에도 좋은 것과 아닌 것들이 섞여 있는데, 경제적인 요소에서 좋지 않은 부분이 있다. 혹여나 내가 전공했던 일들로 돌아가고 싶어진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서 기웃기웃 채용공고를 들여다보고 지원도 하게되는데, 지원 가능한 것들은 대부분 내가 관둔 일과 비슷한 프로필의 일들이라 그게 내가 원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에 망설이게 된다. 솔직히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닌 것인데… 내가 원하는 것일거라 생각해서 뛰어들고 보니 그렇지 않은 시행착오를 자꾸 겪으니까 앞으로 나아가기 망설여진다. 다음 걸음이 또 잘못된 걸음이면 어쩌지? 그게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것을 너무 어렵게 하면 어떻게 하지? 등등 생각이 많이 든다. 벌여놓은 일은 사이드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돈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낳고 인생의 판이 확 바뀌고 나니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등이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절대, 완전히 등과 같은 말은 섣불리 쓰지 말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 전에도 몸을 쓰고 내 눈 앞에서 결과가 보이는 일들이 재미있었는데, 배운 게 아까워서, 돈을 잘 벌기 어려워서 또는 힘들어서 시도해보지 않은 일들이 많았는데, 그걸 지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 발걸음을 내딛지는 못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천천히 표류하듯이 시간을 보내며 생각을 조금 더 해봐도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머리가 복잡하다.

인생의 의미

사람들은 각자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것일까? 각자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것일까? 인생에 있어서 어떤 시기라는 게 있는 걸까? 인생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지만 비슷한 인생의 이벤트를 겪는 단계에서 비슷한 고민을 듣게 되는 걸 보면 타인의 고민에서 혜안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되었던 펀자이씨 (instagram id @punj_toon) 께서 공유하신 어머니의 이야기 중 한 부분이 마음 속에 탁 와닿았다.  “부자라는 게 겉으로 화려하고 안정적인 것처럼 보여도 속사정은 그렇지만은 않아. 평화로울 날이 없지. 언제나 발버둥치고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오늘을 걸고 내일을 도박하지. 풍요로움 속 비신과 술수, 불안감은 친구처럼 따라다니지. 아버지는 내게 주셔야 할 것을 이미 다 주셨어. 자존감을 높여주셨고, 책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셨으니까.”

사실 부를 좆아온 인생은 전혀 아니었는데, 새로운 주거지를 천천히 물색하면서 – 꼭 이사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현재 지역 내에서 조금 더 큰 주거지로 옮겨보려는 생각 속에 기약없는 탐색 중이다. – 내가 가진 것을 부족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에게 조금 더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 조금 더 넓고, 좋고, 편안하고 안락함을 더 느끼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커지면서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나도 모르게 폄하하고 있었나보다. 그런데 저 말씀을 읽는 데 무릎을 탁 치게 되더라. 아차. 내가 이미 가져야 할 것을 다 가지고 있었구나. 내가 더 많은 물질적 여유를 누리려면 그에 수반해 얻을 고통이 또 있었겠구나.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 중 분명히 포기해야 할 것들이 더 있겠구나. 마음의 고통도 있었겠구나. 그리고 하나에게 줘야 할 것은 물질이 아니고 어려움이 닥칠 때 이를 마주할 용기와 극복할 힘을 주고 자기 통제 밖에서 일어나는 난관속에서 불필요하게 자책하지 않을 수 있는 자존감을 주는 것이겠구나. 그리고 답을 찾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거나 그를 탐색해갈 수 있는 삶의 태도를 알려주는 거겠구나. 그리고 나도 이를 향해 전진해나가며 하나가 이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거겠구나. 

소유를 많이 할 수록, 도둑이 들까, 재난이 찾아올까, 이를 어떻게 더 가꿔가야하나 하는 여러 구속이 따르겠다 싶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겠지만 소유를 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희생이 더 크다면 내게 그 가치는 크지 않을 거다. 우리 동네 주택가를 걸어다니며 좋은 집들을 보고 좋은 환경을 흠뻑 느끼다가 생각한게 거기서 누리고 싶은 정원에서의 활동은 공원에서 해도 되고 넓은 공간이 필요할 땐 집의 물건을 정리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게 꼭 내 지척에 있어야 하는 것도, 매일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야 한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싶었다. 무리하지 않고 그를 얻을 수 있는 여건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그리고 사실 내가 갖고 있는 것도 분에 넘치고 좋은 것들인데 말인데, 그보다 좋은 것을 바라보느라 내가 갖고 있는 것의 부족함에 초점을 맞춘게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이제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했더니 내 일생에 드라마는 없어졌다. 항상 내 인생을 여기저기로 끌어가던 모험에 대한 열망도 사그라들었고. 드라마가 없으니 남는 건 매일의 일상이다. 밥을 준비해 먹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회사일을 하고 애를 돌보고 남편과 수다를 떨고 운동하고 같이 취미활동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차를 마시고. 반복되는 삶에서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이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끼고,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럴 체력과 여력이 있음에 감사하고, 반복적인 일상이 무료해질만큼 안전함이 내게 있음에 감사하며 일상의 소소함을 지켜나가는 것, 배움을 놓지 않고 크든 작든 배움을 이어가는 게 내 인생의 의미라는 것. 그리고 무소유의 삶을 지향하지는 않더라도 소유에 대한 집착은 끊임없이 내려놓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잊지 말아야겠다. 

만으로도 마흔이 될 새해를 앞두고

해외에서 살면서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피할 수 없다. 한국에 있었어도 피할 수 없었겠지만 고민의 차원이 추가된다고 할까. 이 고민이란 게 덩어리가 큰 고민은 아니지만 언뜻언뜻 스치듯이 마음에 자잘한 갈등을 일으키곤 한다.

아마 이 자잘한 고민 자체가 사실은 내가 덜 여물어서인 것 같다. 이제 좀 인간관계 뿐 아니라 인생을 한차례 정리해야 하는 모양이다.

12월 마무리를 보름도 남기지 않은 이 시점. 내년이면 만으로도 마흔이 된다. 나이에 얽메이는 것도 우습지만 옛 성현인 공자님 말씀에 따르면 이제 나는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불혹의 나이에 달한 것이니 한번쯤 지금의 내 모습을 뒤돌아보는 것도 중요할 듯 하다. 안그래도 얼마전 거울을 보면서 이제 내 얼굴에 나이의 흔적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재미가 없는 인간관계는 이제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 싶다. 어쩌면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이다. 만나서 즐거운 사람들만 곁에 둬도 아까울 시간이다. 특정 그룹에 가까운 사람과 가깝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경우 그룹으로 만나는 건 정리하고, 관계의 즐거움이 사그라들었지만 습관처럼 남아있는 사람과 만나는 것도 정리해야겠다. 가까움의 정의라는 것도 상대적이긴 하지만 과거 가까웠던 사람을 정리하는 것은 왠지 마음 속 부채감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사실 이미 시들어가고 있었기에 나 혼자 잡고 있던 마음속 끈을 놓는 거나 마찬가지이고 부채감, 죄책감 이 또한 나 스스로 혼자 갖고 있는 허상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라는 걸 그래서 느낀다. 그리고 그런 가정을 꾸릴 때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란 게 한번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같이 가꿔나가고 키우도록 노력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느낀다.

옌스와 하나, 내 가족, 결혼으로 연결된 가족, 그리고 가까운 내 친구. 그 외엔 천천히 정리를 해야겠다. 내 마음속의 정리. 그리고 중요한 건 더 가꿔가야지. 그리고 나만의 시간을 다시 찾아야될 것 같다. 나를 성장시킬 시간.

인생사는 다 선택이다.

요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아이의 첫겨울과 보육원 생활이 겹칠 때 애가 얼마나 자주 아플 지를 고려하지 않고 너무 많은 플래닝을 한 것일까? 남편에게 자주 짜증을 내게 된다.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짜증은 결국 나에게 나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조금만 더 플랜을 잘 했더라면, 조금만 더 플랜을 잘 지켰더라면, 변수가 생겼을 때 기존의 플랜을 조금 더 잘 끼워넣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그때 옌스가 이렇게 해주었더라면 조금 더 좋아졌을텐데, 그렇게 해주지 않아서 그래… 라는 말도 안되는 형태로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잠깐 심통을 내곤 한다. 잠깐 다른 일을 하다보면 말도 안되게 심통을 부렸구나, 유도리있게 이렇게 했으면 되었을텐데 하고 돌아와서 짜증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옌스가 받아주고 풀곤 한다. 자꾸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오늘은 제대로 이러저러했던 상황에 대해 나의 생각의 전개 및 감정을 설명하고 제대로 사과했다.

논문도 다 끝나지 않았지만 취직 준비를 서서히 해야하는 탓에 더 조급해지는 것 같다. 다음주 금요일엔 취업박람회가 있어 거기에 갖고갈 요량으로 덴마크어 이력서를 준비하고 있다. 졸업은 8월이지만 대충 6월이면 상반기 채용이 끝나는 탓이다. 오늘 대충 드래프트를 끝냈고 옌스가 잠깐 훑어봐준 결과를 토대로 추가 작성해서 내일 봐달라고 해야한다. 오래된 이력서를 들쳐보고 이를 덴마크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번역이라는 작업 자체도 그렇지만 여기 채용시장의 이력서 유형에 맞춰 쓰느라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원래 뭐든 처음이 힘든 거니까…

 

대학원 동기 한명이 자살했다. 가까운 동기는 아니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친구도 자살을 예상할 수는 없었던 걸 보면 그 속사정을 깊게 털어놓을 수 없어 더 힘들어하던 게 아닌가 싶다. 살면서 자살을 생각해보는 게 아주 드물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걸 실행으로 옮기는 데에는 그만큼 큰 용기(?)와 좌절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막상 그를 실행해 옮긴 그의 힘듦을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내 주변에서 자살한 건 그가 처음인데, 자살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다. 그를 추모하러 그가 자살한 기차역에 갔을 땐 그렇게 많이 보았던 열차의 주행이 새삼 섬뜩하고 무섭게 보였고, 또한 무심하게 보였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러 모였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소한 농담도 나눌 수 있는 우리에게서 어쩔 수 없는 무심함을 보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 그렇게 스치는 생각이었다. 덴마크에서 직장을 관두기 전에 나도 과도한 스트레스로 극단적인 생각들을 조금 구체적으로 했던 탓에 이번 일이 완전히 남일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는 하나가 있어 더욱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되겠지만, 사람이 참 힘들다보면 이성적이지 않은 극단적 결정도 할 수 있기에… 남겨질 사람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그 친구는 이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죽음의 길을 선택했기에 이제 최소한 자유로워졌을테지. 그런 자유를 희망했을 것이리라. 그의 죽음에 찬동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그가 원했던 것을 얻었을 것이기라 믿으며 위로의 마음을 띄워보낸다.

세상 일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될 때, 어디에도 “그래야만 했다”는 당위는 없음을 기억해야한다. 항상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나도 지금처럼 힘들다고 끙끙대며 주변인을 상처입힐 땐, 이 모든 상황은 우리가 다시 프레이밍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평활함수와 예측불가한 인생

어려서부터 나는 수학을 안좋아하고 영어를 좋아한다고 했다. 오빠는 반대로 수학을 좋아하고 영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수학을 잘하고 싶었지만 이해가 느렸고 아주 쉽게 풀어 설명해줘서 하나하나 이해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제일 싫어하는 말이 그냥 받아들이고 외우라는 거였는데, 그 이유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면 머리에 들어가지를 않아서였다. 그래서 나는 수학은 선행학습이 절대 안된다는 것을 이해했다. 다행히 쉽게 설명해주는 과외선생님을 만나서 내 눈높이에 맞는 설명을 들어가며 뒤늦게 수학을 따라잡았다.
대학에 가서도 경제수학과 통계학은 정말 괴로웠다. 고등학교때 배우던 것에서 갑작스레 너무 점프해버렸다고나 할까. 학부때 재수강을 해서 그냥 최소한의 성적을 받고 넘겨버린 두 과목 모두 대학원에 가서야나 이해가 되었다. 참 오래걸렸다. 경제수학은 같은 교수님이었고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그냥 결국 여러번 반복하고 부딪히면서 이해안되는 건 교수님을 엄청 귀찮게 해서 이해하고 넘어갔다. 통계학은 질문을 엄청 하고 무안도 엄청 주시던 재미있는 교수님이었는데, 이미 무안을 당한 바 무식한 질문도 많이 해가며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이 때 이해한 게 없었으면 지금의 공부도 엄청 힘들었을 듯하다.
이제는 여러 방법론을 리뷰한 저널 아티클 한개를 읽기 위해 다른 레퍼런스 아티클을 읽고 이것저것 뒤적뒤적 거리며 읽어야 한다. 살면서 평활함수를 이해하기 위해 이것저것을 뒤적거리라고는 “나는 수학을 못해. 좋아하지 않아.” 라고 읊고 다니던 시절의 나는 상상못할 일이었는데.
인생은 정말 예상하지 못하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