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의 하나

30개월의 하나가 어떤지 기록이 되어 있어야나 나중에 돌아볼 수 있을 거 같다. 일로 가정생활로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지만 짬을 내서 기록해본다. 

하나가 한국말과 덴마크어가 존재한다는 걸 이해한 건 대충 18개월  들어설 때 즈음부터였다. 사물이나 개념에 엄마와 아빠가 다른 표현방식을 쓴다는 것을 알고 그 표현방식에 한국어와 덴마크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덴마크어 어휘와 문장 구성이 한국어에 비해 월등히 낫지만 내가 한국어로 하는 말의 대부분을 이해하고 덴마크어로 표현한 단어에 대해서 그건 한국어로 뭐냐고 물었을 때 한국어 어휘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묻든 대부분 덴마크어로 답하고 간혹 한국어로만 아는 단어 (예를 들어 맵다와 같이 보육원에서 쓸 일이 없는 단어)나 덴마크어 문장에 섞어쓰는 게 일상이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 듣기를 통해 이해하는 수동적 학습만으로는 부족하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어휘를 선택해서 문장을 구성하는 능동적 학습이 필요한데, 그걸 강요하자니 한국어를 싫어하게 될 것 같고 쉽지가 않다. 그나마 요즘 한국어로 이게 뭐냐고 묻는 게 늘어나서 한국어 어휘를 넓히는 기회가 생기는게 다행이다. 덴마크어로 의사소통하는 부분만 따지면 미묘한 뉘앙스도 살려가며 대화하고 있어서 이맘때쯤 아이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거였구나 놀라곤 한다. 단어 열거로 의사소통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말다운 말을 긴 문장으로 하는 건지.

16개월인 친구네 애가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은 되나 아직 발화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하나는 언제 말을 시작했나 봤더니 만 15개월 되었을 때에는 아니오에 해당하는 엄마, 아빠, Hvad er det? (이게 뭐예요?), 하나 (자기 이름), 거북, nej (아니오), hej (안녕), bye 정도 말하고 기타 동물 소리흉내 (멍멍, 미야오, 구구, 꼬꼬 등)을 낼 수 있었다. 만 17개월이 되었을 때는 ja (예)를 사용하면서부터 조금 더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는 게 수월해졌다. 두달 사이 어휘가 빠르게 늘어서 할 수 있는 단어를 세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보육원 애들 이름을 다 기억하고 부정확한 발음이나마 애들 이름을 이야기해서 내가 다른 애들 이름 기억하는 것도 쉬워졌다.  보육원에서 또래 중 가장 말을 잘하는 애 중 하나였는데, 이중언어 하는 애들 중에 발화가 늦은 애도 있지만 하나처럼 오히려 더 잘 하는 애들도 있다고 들었더랬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아이가 맞는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살려줄 지 고민을해봐야겠다.

하나가 만 두살이 되자마자 발레를 시켰다. 어른과 함께 가서 하는 발레인데 하나의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도움이 될 활동 중 하나로 나도 즐길만할 걸 찾다보니 발레가 되었다. 처음엔 그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서 발레 수업 내내 노래에 맞춰 뛰려는 애를 잡아 함께하는 활동에 포함시키는 게벅찼다. 단 30분에 불과한 시간인데 말이다. 같이 움직여야 하는 규율에 애를 너무 맞추려다보면 애가 기분이 상해서 발레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고, 애를 마음대로 풀어놓으면 방해가 되니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애를 통제하고 활동에 동참시키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느라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진땀을흘린 날이 많았다. 거기다가 발레 수업이 끝나는 시간 때 즈음이 하나가 피곤해하는 타이밍이어서 안아달라는 하나를 안고 나 혼자 춤을 추느라 힘든 경우도 흔했다.

애가 발레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바는 없지만, 발레가는 시간을 고대하고, 보육원에서 다리를 들고 까치발로 다니고 빙글빙글 돌고, 선생님들이 뭐하냐고 물어보면 발레한다고 해서 선생님들이 하나를 Balletpige (발레소녀)라고 부를 정도기에 좋아하는구나 하고 추정할 뿐이다. 한달 반 정도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이번 주말부터 클래스가 시작되었는데, 가는 길에부터 그전에 배운 걸 기억하고 이야기하길래 신기했다. 이제 꽤나 장기 기억력이 생기는 모양이다.  지금은 2-3세 사이 유아반에서 배우고 있는데, 두살 반이되서 그런지, 이번엔 시키는 것도 제법 따라하고 애 쫓아다니느라 고생하는 거없이 30분을 잘 보내고 왔다. 내년에 3세 반에 올라갈 때면 혼자 들여보내도 걱정이 없겠다 확신이 들었다.

페달 없는 자전거는 발을 땅에 대는 시간이 얼마 안되게끔 쌩쌩 뒤로 밀기 시작해서 우리가 뛰어다녀야만 쫓아다닐 수 있게 능숙해졌다. 정글짐에 기어 올라가서 높은 곳의 미끄럼틀을 타고 씽씽 내려오는 것도 능숙해졌고 아빠가 잡아주는 손에 크게 기대지 않은채로 외줄타기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반동을 활용해 몸을 위아래로 흔드는 것까지도. 

어디 가서 크게 맞을 걱정은 하지 않는 게, 간간히 맞기는 하는 것 같지만 손바닥을 보이며 힘있게 팔을 뻗으면서 안된다고, 멈추라고 (Stop! Det må man ikke! Man må ikke slå!) 크게 외칠 줄 알아서 주변 어른의 시선을 쉽게 끌어낸다. 장난감이나 놀이터 시설 등에 대해서도 보육원에서 가르친 순서지키기, 적당히 놀고 양보하기 등을 이해하고 있어서 간혹 어른이 중재해야 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로 인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없어졌다. 그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서 가르쳐서 그런지 빨리 배우더라. 하나가 다른 애를 때리는 경우는 상대가 먼저 때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본 적도 더 어렸을 때나 있었고, 보육원에 물어봐도 그런 경우는 없다고 한다. 상대가 때린 경우에도 안된다 하고 크게 항의하는 거지 맞서 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다. 어려서는 애가 워낙 활동적이고 힘이 좋아서 남들 때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이제는 그건 크게 걱정을 안하고 지낸다. 

하나는 보육원에서 있던 일들을 이것저것 신나게 말해주는 편인데 궁금한 일 나중에 보육원가서 물어보면 되서 현황 파악이 쉽다. 친구 Feifei의 세살 생일에 케이크를 먹었는데, 자기는 케이크 안먹고 아이스바 먹었다며 시무룩하게 말하길래, 유당제한때문에 그런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그게 맞다고 이야기해주더라. 그리고 다른 애들이 자기들도 케이크 안먹고 아이스바 먹겠다고 해서 애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이제 생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자기 생일이 언젠지 자꾸 묻는다 최근 두어달사이에 애들 생일 잔치가 여럿 있었는데, 자기도 생일 주인공이 되고 싶었나보다. 하나 생일 땐 나도 케이크를 준비해야 할텐데 쩝. 그날은 대충 휴가 내고 새벽부터 준비를 하던가 해야할 것 같다. 

요즘은 수줍음을 조금 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낯선 남자에게 수줍음을 탄다. 인도에서 낯선 남자가 마주지나가면 내 바지가랑이를 잡고 뒤에 숨는다던가, 유모차에서 얼굴을 돌린다던가 한다. 그리고 나에게 Jeg er lidt genert. (저 조금 수줍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자는 매우 좋아해서 낯선 할머니나 아줌마 할 것 없이 마치 아는 사람이라도 되는 냥 Hej?! (안녕하세요)하고 크게 외치며 인사한다. 이 시기에 흔히 있는 거라고 하더니 수줍음의 수자도 모를 것 같던 하나도 그러는구나 싶었다.

지난달에 친구가 와서 자고 가면서 자기도 남에 집에 가서 자고 싶기도 하고 그런가보다. 나는 걔네 집에서 언제 자냐고 간간히 묻는다. 우리 집에서 그 친구가 자던 날, 내가 책을 다 읽고 자라고 한 뒤 자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옆에서 자는 척 했다. 그러자 지들끼리 나를 사이에 둔 두 침대에서 서서 대화를 나눈다. 

하나: 네 엄마는 어디에 가셨니?” 

친구: “우리 엄마는 일하러 가셨어.” (집들이 파티 가느라 우리집에 애를 맡긴 거지만 애들은 일하러 간 걸로 오해했다.) 

하나: “너희 엄마는 휴가가셨니?” 

친구: “아니” 

하나: “그러면 Lagkagehuset (체인점 빵집)”에 가셨니?” 

친구: “아니” 

하나: “히히. 그거 나야. 내가 오늘 lagkagehuset에 다녀왔어” 

이날 하나는 우리와 그 빵집에 다녀왔는데, 이렇게 그걸로 농담까지 할 줄이야. 애들의 대화를 이렇게 들어볼 날이 없었는데 애들이 벌써 말장난도 치면서 노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이미 가까이 잘 노는 친구가 생긴 것도 놀랐고. 

내가 선생님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특정 친구와 놀기보다는 재미있는 걸 하는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데, 서서히 친한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툭하면 듣는 이름이 대충 열명 안으로 좁혀진 것만 봐도 그렇고. 

밤에는 옌스와 번갈아가며 책 읽어주고 재우는데, 간혹 주인공이 우는 이야기가 나오면 하나도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고, 티비에서 주인공이 울어도 같이 운다. 공감능력이 좋은 아이라고 보육원에서 들었는데 실제 우리가 느끼기에도 그렇다. 내가 공감능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 후천적으로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는 편인지라 그런 걸 볼 때 좋다 싶다.

아이가 태어나서 세살까지 부모를 기쁘게 하는 걸 보답하기 위해 부모가 그 나머지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은 적이 있다. 그 삼 년의 시간이 벌써 거의 다 흘렀구나. 앞으로도 계속 이쁘고 사랑스러운 딸이겠지만 이 첫 삼 년의 시간은 참으로 기적같은 시간이라고 기억할 것 같다. 작은 핏덩이에서 이렇게 아이같은 아이로 성장한 기적.

3주의 휴가

휴가 3주차에 접어들었다. 첫주의 시작은 집안 페인트칠로 땀을 빼는 육체노동이었지만 둘째주에는 시댁에서 먹고, 쉬고, 자고, 하나와 화끈하게 놀아주는 가족의 시간이었다. 마지막주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하나와 재미있게 놀아줄 수 있으면서도 우리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성인이 된 후 이렇게 여유로운 휴가를 보내본 적이 없다. 아니 그보다 일찍으로 시간을 돌려 중학생이 된 이후 이렇게 3주의 시간을 연속으로 여유롭게 보내본 적이 있던가.

덕분에 일상으로 돌아갈 힘이 나는 모양이다. 다소 긴 시간 쉰 탓에 돌아갈 걱정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3주간의 여름휴가라는 게 아주 적당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하나는 무섭게 크고 있고 한마디로 경이롭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이다. 애를 일반적으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다른 애들도 좋아하게 되고, 다른 부모들이 애들 자랑하는 걸 이해하지 못해하던 내가 그게 너무나 이해가 되고 애들의 성장 하나하나가 너무나 놀랍게 느껴진다. 기적같은 것이라 할까. 애들이 뛰어노는 혼돈의 상황이 평화로 느껴지게 바뀌는 기적. 관계의 축이 바뀌고 관심의 초점이 바뀐다.

이번 휴가는 그런 하나와 살갑게 부대끼는 그런 기간이다. 육아 초기, 사회생활이 없어지는 변화 속에 나의 시간을 간절히 그리워했다면, 그리고 육아가 제일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가장 힘든 시기가 지난 지금, 아이가 너무 이쁘고 같이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이제 다시 가을 한국 방문휴가를 가질 때까지, 연말 연시 연휴를 맞이할 때까지 하나와의 집중적인 시간은 미뤄둘 수 밖에 없지만, 그 때를 기다리며 일상을 열심히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내 사랑 하나

28개월 하나

특별히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좋은 게 아니면 하나는 밖에서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우리를 평균보다 힘들게 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친구를 만나러 나간 자리에 각자 애들을 데리고 왔는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카페라서 그런지 중간중간 나에게 와서 말을 걸긴 했어도 크게 힘들게 하지 않았다. 아빠랑 주말마다 가는 카페에서도 비슷하게 코너에 아이들 노는 코너가 있어서 그런지 왔다갔다는 해도 같이 먹기에 너무 힘든 아이는 아니다.

언젠가부터 기다린다, 순서를 지킨다는 컨셉을 이해하기 시작해서, “우리 이제 기다리는 거예요.”라고 이야기해주면 “Hannah venter! (하나는 기다려요)”를 조잘거린다. 수퍼마켓에서 자기 먹고 싶은 거 사달라고 해서 집어들고 계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 그때도 “Vi skal betale først! (우리 계산부터 해야해요)”를 외치며 기다린다. 계산대에서 계산이 끝나기가 무섭게 달라고 채근을 하기 시작하지만. 또 호기심 가는 물건을 만져보다가도 “그거 우리 것 아니예요.”라고 말하면 “Det er ikke vores! (그거 우리 것 아니예요)”라며 내려놓을 줄 안다.

간식은 중간에 주더라도 식사는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에만 하고, 안먹겠다 하면 안먹어도 된다 하고 중간에 끝났으면 식탁을 떠나도 좋다고 한다. 굳이 먹이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간혹 안먹는다 하면 한입정도 먹어보겠냐고 물어보는데 서서 한 입 먹어보고 나면 오래지 않아 우리가 앉은 자리에 와서 같이 먹으니 딱히 식사시간에 자리에 앉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굳이 와서 한 두입만 먹고 일어나는 걸로는 뭐라 하지 않는다. 처음엔 음식 남기는 거라든가 애써 만들었는데 안먹는 거라든가 하는 게 마음에 불편하고 스트레스가 되었는데,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나중에 배고프다고 따로 차려주고 하는 건 없으니 내가 더 육체적으로 힘들 건 없으니까. 안먹는 건 배가 안고파서 그러는 걸 것이라 생각하고 넘기고 나니 마음도 편해졌다. 애가 딱히 작은 것도 아니고, 보육원에서 애들하고 같이 먹으면 잘 먹는다니까 어느 때엔가는 잘 먹게 되겠지. 나도 만으로 9살까지는 진짜 잘 안먹어 작고 빼빼 마른 아이었으니까.

놀 때 순서지켜 놀라고 옆에서 상기시켜주면 순서 잘 지켜 놀고, 우리 것이 아니다 하면 금방 내려놓고, 우는 친구 있으면 안아줄 줄 알고, 인사하고 자리 뜨자 하면 씩씩하게 인사 잘 하고.

간혹 자기가 혼자 하려는 걸 우리가 도와주는 바람에 뒤로 넘어가 울고 난리법석을 떠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도 대부분 그 포인트를 아니까 그렇게 난리법석을 떠는 일도 많이 줄었다. 이제 말로 많은 걸 표현할 줄 알고.

넘어지고 해도 잘 안우는 편이고. 높은 데 기어올라가고 뛰어내리고 스릴 넘치는 일들을 엄청 좋아한다. 조심도 하지만 조심보다는 스릴에 무게가 더 실린 듯 하다. 이처럼 힘이 넘쳐 우리가 옆에서 그런 활동을 지지해주다보면 육체적으로는 힘들다. 하지만 주변 이야기 들어보면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다. 예민하지 않은 아이다.

기질 탓이 가장 크겠지만 보육원이나 집에서 많지 않은 대원칙만 지키면 대부분은 자유롭게 놔두는 편이라 자기도 그 규칙을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다른 애들 사이에서 같이 놀아야하는 환경에 두었을 때 노는 걸 보면 잘 아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 행동하는게 제법 다르다. 아예 공공장소에서 다른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없이 놀면 그건 다른데 내가 만난 친구의 애들과 같이 논다던가 하면 조금 조용하게 관찰을 많이 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편이다. 곧잘 놀기도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조잘조잘하는 게 없어진다.

이제 만 28개월을 채웠는데 정말 많이 컸구나 싶다. 이제는 작은 인간이 되어서 부모와 여러 형태로 상호작용도 하고 대화도 제법 하고. 말이 많이 느니까 이렇게 수월해질 수가 없다. 이젠 예전에 아주 힘들었던 기억은 힘들었던 사실만 기억나지 별로 생각나지도 않는다. 우리야 둘은 안낳을 거지만 이래서 둘 낳는구나 싶기도 하고. 젊었다면, 내가 다른 나라에 이주해 새 커리어를 시작한 것만 아니었다면 애 하나 더 낳았을 수도 있겠지만, 이도 저도 아니니 말이다.

시부모님도 나이가 많이 들어가시고 멀리 사시는데다가 우리 부모님은 이역만리 떨어져 계시니 더욱이 기댈 데도 마땅하지 않고. 출산부터 지금까지 급하게 애가 아픈데 휴가를 내기 어려워 하루 이틀씩 시부모님 손을 벌린 거 아니면 우리끼리 다 해야만 했기에 하나 더는 못하겠다. 애야 우리 애지 시부모님이나 부모님 애들이 아니니 못맡아주신다고 서운할 일도 아니고. 출산 이후 애 맡기고 옌스랑 단 둘이 밖에서 저녁식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도 그립고. 하나 더 생기면 그런 게 더 어려워질텐데… 하나로 부모가 되는 기쁨을 충분히 누리고 있으니 이를 두배로 굳이 늘리며 고난도 두배로 늘릴 생각은 잘 안드는 게 아마 나이 탓일 거라 괜한 나이 핑계를 대본다.

앞으로 하나랑 같이 해나갈 여러가지 일이나 기대해보며 한 명만 잘 키워보련다.

어른에게도 엄청 높은 미끄럼틀을 겁없이 타는 하나
뒤에 자기 키의 두배가 되는 장에 (기어 올라가도록 설계) 기어 올라가 뛰어내리기를 다섯번도 넘게 반복했다. 잡아주고 뛰어내리기 도와주느라 나도 힘이 들더라.
그네도 요상하게 타야하고. 재미있게 노는 법은 역시 애들이 잘 안다니까.

4월 일기.

논문이 바빠지니 다른 것에 소홀해진다. 논문은 대충 첫번째 포스트에 도착한 것 같다. 원시적 모델링은 우선 되었으니 이제 이론 연구와 모델링을 병행하고, 그 다음엔 분석하고 논문을 써야한다. 그간 진행이 참 지지부진하다 싶었는데, 그래도 1차 모델링을 하고나서 보니 어찌어찌해 절반은 왔구나. 약간이지만 안도가 된다.  물론 아직도 반 이상이 남았는데 시간은 반이 흘렀으니 긴장이 되는 게 더 큰다. 내 논문 생활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게 하나 있다면 항상 크리티컬한 관점으로 내 논문을 비판해 줄 남편이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모델을 보여줬더니 이건 고려해봤느냐, 저건 고려해봤느냐, 이 건 왜 이런 함수형태를 취했느냐, 독립변수 선택의 전략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며 꼬치꼬치 묻는다. 아직 그 단계까지 안갔는데 쏟아지는 질문에 무방비로 폭격을 당한 기분이었으나 나혼자 하는 씨름에 타인의 신선한 인풋이 좋은 자극으로 다가왔다. 역시 연구는 남과 공유해야하는 법이다.

우리 학과가 속한 인스티튜트에서 박사과정 공고가 났다. 자금사정이 트인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매주 수요일에 있는 인스티튜트 아침식사시간에 같이 참여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도교수에게 박사과정에도 관심있다고 했더니 지원서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나를 많이 아껴주시는 교수님이 있는데, 그분께도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무것도 보장되는 건 없지만 추천서만큼은 꼭 써주시겠다면서, 오히려 박사과정에 꼭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논문을 제외하고 학점이 10.9니까… 논문을 잘 쓰면 11점 정도로 학점은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라성같은 사람들이 완벽한 점수를 들이밀 걸 생각하면 아주 빼어난 점수는 아니라도 점수가 흠이 될 건 아닌 정도니 논문이 많이 중요하다. 사실 큰 기대는 못한다. 요즘 박사과정은 세계 각지에서 지원을 하니 경쟁률도 높고, 내가 원하는 연구방향과 인스티튜트에 가장 어필하는 방향이 매칭이 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든 해보지 않으면 될지 안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배웠으니까 우선은 지원을 해봐야겠다. 뭐 되든 안되든 간에 내가 박사과정까지 생각하리라는 건 정말 상상도 못해봤고 공부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는데, 역시 절대 안한다 못한다 이런 이야기는 함부로 하면 안된다.

덴마크어 필기 시험도 한달이 채 안남았고, 구술은 그 뒤 한달뒤로 다가왔는데, 시험은 큰 걱정이 되지 않는다. 선생님을 잘 만난 덕에 쓰기가 후반으로 갈 수록 느는 게 느껴졌다. 알듯말듯한 몇가지 문법이 자꾸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는데, 내 고민을 정확히 이해하고 딱 꼬집어 지적을 해주는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이 좋아졌다. 작년 말 시험으로 모의시험을 쳐보니 읽기는 12, 쓰기는 약한 12 또는 강한 10이라한다. 말하기는 한달 시간이 있기도 하고, 읽기와 쓰기의 중간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있는 부문이라 대충 10~12 사이로 모든 부문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보고 있다. 모듈 6를 하게 될지 아닐지는 지금도 결정하지 못했지만, 항상 옵션을 갖고 있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우선은 그대로 해보련다. 덴마크어 교육도 갈수록 팍팍해져가고 있고 그러다보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더 미루지 않고 올해 초 다시 시작하기로 한 건 아무래도 잘 한 결정이란 생각이다.

하나는 쑥쑥 자라고 있다. 이제는 제법 아가씨 태가 난다. 잔디밭을 뛰어다니면서 겁이 없어져서 그런지 위험한 일들을 서슴없이 해서 조금 걱정이다. 집에서 놀다가 살짝 휘청한 것 같았는데, 금속 바구니 테두리에 부딪혀서 앞니가, 그것도 윗니가 살짝 깨졌다. 다행히 신경은 안건드린 거 같긴 한데, 우선은 지켜봐야한다. 옌스도 같은 이가 부러진 적이 있다하니 젖니 깨먹는 건 이 집안 내력인가 한다. 이일로 나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고, 아픈 하나를 보기위해 마침 휴가를 내고 있었던 옌스에게 애를 맡기고 나가면서 그 스트레스로 인해 구역질이 났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도 구역질이 계속 나는데, 그걸 멈추기 위해서 산책을 해야했다. 원래 스트레스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신체적으로 반응이 올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건 내가 아닌 아이 일이라서 그렇다. 누가 있었어도 생겼을 일이었기에 나를 자책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애가 더 크게 잘못되었으면 어쨌나 하는 두려움에서 오는 구역질. 더 큰 사고가 나도 차분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말로 단단히 먹어야한다.

하나는 참 씩씩한 아이다. 웬만해서는 넘어진 거나 부딪힌 걸로 울지 않는다. 시부모님도 그렇고 보육원 선생님들도 인정하는 씩씩한 아이인데, 그렇다고 튼튼한 건 아닌 것 같다. 감기나 설사 같은 걸로 자주 아픈편이고, 폐렴 입원도 그렇고 천식성 기관지염을 앓는 일이 꽤 잦은 것 같다. 오늘도 그로 인해 응급실을 다녀왔으니… 물론 이번엔 응급했다기 보다는, 일반 GP, 스페셜리스트로 올라가는 시스템을 이용하기에는 응급했다고 봐야하는 거니까, 그냥 적기의 진료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겨울 아기로 겨울 초입부터 보육원을 시작해서 그런 것도 있다지만. 다행인 건 씩씩한 아이라 잘 견뎌준다는 것. 나도 생각해보면 어려서 자주 아팠던 것 같다. 항상 건강체질은 아니었고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자주 배가 아파서 학교를 많이 쉬었던 기억이다. 엄마도 내가 씩씩했었다는데, 지금도 꽤 씩씩한 거 생각하면 하나도 그런 면에서는 강한 아이일 것 같다.

요즘 얼마나 놀이터 생활을 즐기는지. 날이 좋아지면서 아파트 앞 잔디밭에서 놀리게 되니 동네 아이들과도 교류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한 때 비명을 고래고래 지르던 아래층 이웃 아이는 아직도 간혹 그렇긴 하지만 그런 게 줄었고, 그 아이의 오빠와 둘다 다정한 애들로 컸더라. 이제 곧 7살이 된다는 베어트람은 하나를 유독 이뻐해주고 쓰다듬어주고 (아마 여동생을 데리고 지낸 경험에서 우러나는 듯) 4살 여동생인 딕터도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아이었고, 둘다 하나와 함께 놀아주더라. 하나가 갖고 나온 공을 갖고 잔디밭에 삼각형으로 둘러 앉아 셋이서 공을 미는 놀이를 하는데 (그나마 하나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놀이로 배려해 준 베어트람이 놀랍다.) 곧잘 노는 게 신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놀라고 나는 빠져있는 건데 내가 중간에 괜히 옆에서 개입했나 싶었다. 말못하는 하나를 대변해준답시고, 아직 애가 이해를 못해서 그래, 하나야 앞으로 밀어봐, 이러면서 옆에서 참견을 했다. 그냥도 잘 했을 거 같고, 아니어도 오빠와 언니가 적당히 반응해가며 놀았을텐데 말이다. 앞으로는 다른 아이가 충분히 큰 경우 내가 조금은 더 뒤로 빠져서 지켜보는 역할에 그치는 것으로 해봐야겠다.

다음주에는 두바이에 주재중인 시누이네를 시부모님과 함께 방문하는데, 출산 후 거의 바로 이주한 시누이가족과는 하나가 처음으로 제대로 교류하게 될 거라 기대가 많이 된다. 조카들이 동생 만나서 놀아줄 기대로 부풀어있어서 더욱 기대된다. 수영복도 사고 이래저래 준비를 했는데 아픈게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오늘 해가 엄청 쨍하고 더웠는데, 하나 데리고 오전에 응급실에서 3시간 씨름하고, 가장 해가 쩅한 시간에 나와 낮잠에 든 애를 두시간 반이 넘는 시간동안 밀고 싸돌아다녔더니 몸에 화기가 든 기분이다. 아마 피부가 많이 탄 모양이다. 밤에 잠이 잘 안올 것 같다. 나는 못자도 애가 좀 잘 자줬으면 좋겠다. 기침을 덜하는 걸 보니 오늘은 잘 자려나? 역시 병원에서 천식약 흡입한 게 도움이 많이 된 모양이다. 딱 쓰고나니 기침하네. 흠… 역시 입초사인가…

임신 때보단 육아가 훨씬 힘들긴 한데, 출산 후 100일이 제일 힘들었던 거 같다. 지금은 다른 차원의 힘듦이지만, 육체적으로는 애가 어릴 때 더 힘들었던 거 같다. 얼마전 출산한 사람, 앞으로 출산할 사람 등 주변에 애 참 많이 낳는데, 신생아 냄새가 생각날 듯 하면서 그립기도 하지만 또 낳을 생각은 안난다. 다 잊혀져서 애를 또 낳는다는데, 힘든 기억은 잊혀졌지만 힘들었다는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내 애는 그만 낳고 남들 애기 보면서 신생아 이뻐하는 건 그걸로 끝내야겠다. 아… 신생아 볼 생각에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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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일상으로 천천히 복귀하는 중

한국에서 돌아온지도 어느새 보름이 되었다. 방안에서는 옌스가 하나 수면교육하느라 하나의 울음소리가 크게 새어나온다. 어제 건강상담사의 방문 이후 오늘부터 다 흐트러진 수면교육을 다시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만 5개월을 지나면서 하나가 서서히 분리불안을 느꼈는데 밤에 처음 재우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중간에 깨면 난리를 치면서 울고 나에게서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탓에 혼자자던 리듬이 다 깨졌었다. 젖 물리는 것과 자는 것은 철저히 분리하라는 것도 그렇고 중간에 깨고 나면 내가 하던 일을 다 중단하고 하나와 같이 자기 시작했는데, 그렇고나니 저녁의 삶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고 나만의 시간을 누리는게 불가능해졌었다.

한국에 가서도 이러한 일상이 지속되었고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돌발진을 앓으며 고열에 수분 섭취가 중요하다며 입맛 떨어진 애에게 수유를 늘렸는데, 밤중 수유가 늘어나며 낮에 잘 먹던 이유식 양도 줄고 하여간 여러가지가 꼬여있었다.

단호한 수면교육. 쉽지 않았다. 얼마나 울려도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장시간 우는 게 트라우마로 남아 아이의 성격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어 우선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고 어떻게 할 지 결정하기로 했다.

건강상담사는 하나의 정서적인 특성을 비롯해 발달상황을 관찰하고 수면 패턴과 수유에 대한 내 관찰사항을 듣고 나더니, 밤중 수유는 습관인 것 같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이건 내가 마음을 먹고 끊으려면 끊을 수 있는 것인데, 꼭 당장 끊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하니 내 편할 대로 결정하라 한다. 다만 밤에 많이 먹으면 낮에 별로 안먹으려하니 그 점을 고려하라고 했다. 수면 부족으로 성장에 저해가 된다며 애의 밤중 수유를 꼭 끊으라는 글 등을 보고 마음이 영 불편했었는데 그건 아니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밤중 수유는 서서히 줄여보련다.

밤에 악몽을 꾸는 듯 일어나서 우는 것에는 여행으로 인한 중이염 등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우리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흉내낸다했더니 그건 아닌 거 같다고 하고, 그 또한 혼자 스스로를 위로하며 잘 수 있게 해주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애가 새로운 습관에 적응하기까지 14일정도 걸리니 그때까지는 일정한 패턴으로 수면의식을 해주라더라. 14일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오랜 기간이다. 그리고 아빠가 재우는 것이 조금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여 오늘부터 옌스가 애 잠을 재우는 것으로 한 것이다. 나야 덕분에 7시부터 자유를 누리고 있어 좋지만 방 안에서 20분이 넘도록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영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약 열흘의 적응기간을 거쳐 이제는 하나와 6~7시간을 떨어져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전날 이유식을 준비해두면 오후 4시에 집에 돌아올 때까지 애 밥도 먹이고 놀고 산책도 다니고 하면서 하루를 하나와 함께 보내는 건데, 생각보다 잘 하고 있다. 그 전에 집안 살림과 애 보는 것을 내가 다 하던 것과 달리 자기는 애만 보는 것인데도 힘들어서 그런가, 그러한 일과가 끝나고서도 설겆이며 여러 집안일을 좀 더 꼼꼼히 하고 있다. 자기가 경험해보니 전업주부 하며 애 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나보다. 역시 사람들은 역할도 바꿔보고 해야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법이지.

아기 보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옌스는 힘이 들겠지만, 나는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너무나 좋다. 애 보면서 이것저것 정신없이 처리하던 노동의 일상에 젖어있던 탓에 한 주제에 집중하는 게 좀 힘들었지만 오늘은 다른 날보다 그게 잘 되서 기분도 좋았다.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학교로 통학하자니 비오는 날 조차도 상쾌하고 좋다.

논문 작성할 수 있는 고정 데스크도 신청해서 자리를 배정받았고, 읽기도 시작하고, 뇌를 조금씩 쓰기 시작하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느낌. 아무래도 아이가 아프면 집에 들어앉아 애도 봐야하고 할테니 여유있는 시작이 나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빠르게 돌아가는 것인데, 덴마크에선 대부분 생후 1년 이내에 기관에 애를 보내기도 하고 해서 이래저래 내 사정에도 잘 맞다. 오랫동안 영어도 안쓰다 보니 한국에서 옌스 및 친구와 함께 영어할 때 덴마크어가 자꾸 툭툭 튀어나오길래 영어도 퇴화되는 거 아닌가 걱정했었다. 그런데 다시금 아예 영어로 대화하는 환경에 돌아가니 그런 것도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엄마로서의 내가 아니라 온전히 나로서 있을 수 있는 환경에 돌아간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12월 첫주까지는 옌스가 육아휴직중이라 둘이서 같이 하나를 보육원에 보낼 수 있다. 그 이후엔 1주간 나 혼자 하나의 적응기간을 지켜보고, 다음엔 나도 완전히 워킹맘으로서의 일상으로 복귀해야지.

30분만에 옌스가 하나를 재우고 나왔다. 엄청 울더니… 앞으로 이렇게 하자, 하나야. 엄마도 이제 저녁엔 엄마의 삶을 찾을게. 고마워.

한국에서 맞이하는 8개월 육아단상

3개월 지나면서부터 수면교육을 시작했었고, 그런대로, 아주 쉽지는 않지만, 하나는 젖 없이 뉘여 재울 수 있고 한번 자면 다음날까지 통잠을 쭉 자는 아기였다. 그런데 뒤집기 시작하면서부터 밤에 자주 깨고 다시 잠에 못들고 젖을 그렇게 찾더니 그게 습관이 되면서 밤에 깨면 젖을 주게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7개월 들어서며 분리불안이 생기더니 밤에 잠에서 두어번 깨면 그 다음엔 나를 놓지 않는 것이었다. 거의 한달을 옆에 끼고 잘 수 밖에 없었다. 옌스는 직장에 나가야 하는 사람인데 옆에 뒤척이는 애를 같이 두고 자게 할 수 없었기에 하나 방에 매트리스를 넓게 깔고 잤다. 젖은 달라는 대로 다 줘가면서. 그간 쌓아온 작은 습관이 다 무너지는 거 아닌가 하며 걱정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국 수면교육을 다시 하기로 마음먹고 어제부터 시작했다. 어제는 한시간 울다가 잠이 들었고 오늘은 20분만에 잠이 들었다. 눕히면 앉고 서서 울어재끼는 아이를 2분, 3분, 4분과 같이 1분씩 늘리는 간격으로 다시 눕혔다. 오늘은 6분이 될 때 포기를 했는지 눕히자 마자 손가락을 두어번 빨더니 잠에 들었다. 짧으면 3~4일, 길면 1주일 걸린다는 수면교육이 가능한한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다. 젖을 자꾸 먹으면 깊게 못자게 되는 탓이었을까? 어제는 잘 깨지도 않더라. 한번은 그냥 두어번 토닥이니 다시 잤고, 한번은 3시가 넘어서였는데 토닥임도 안통해서 젖을 주니 많이 먹었다. 그리고 다시 누이니 그냥 잘 잤다.

사실 마음이 정말 안좋았다. 한시간이나 애가 우는 걸 보는 엄마 마음이 좋을 수가 없지. 순간 울컥하기도 하고, 멈춰볼까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이렇게 끼고 자면 8개월부터는 떼라는 밤중 수유를 도저히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서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내가 자면서 엄마를 찾아 울부짖는 악몽을 꿨다. 엄마와 사이가 멀어지는데 서러워 하며 엄마를 찾는 꿈. 수면교육으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싶었더니 한번 직접 겪어보라는 거 같은. 지금도 자는 중간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불쌍한 것.

이제 나흘이면 8개월이 되는 하나는 오늘 새로운 스킬을 완전히 굳혔다. 배를 땅에서 떼고 두 팔과 두 다리로 기기. 그리고 어제 수면교육에서 익힌 침대잡고 완전히 서기. 이걸 결합하니 벽타고 일어서기가 가능해지더라. 그리고 옆으로 걷기까지. 물론 아직 엄청 불안정하지만. 이미 가구잡고 서기를 하며 엉덩방아 찌며 다시 앉는 낙법을 익혀둔 터라 대부분은 잘 앉지만 위험한 순간도 연출되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육체적으로는 덜 힘들지만 끊임없이 지켜봐야 해서 힘이 들기도 하다.

페이스타임 덕에 생후 5~7주 사이 봤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잘 기억한 덕일까? 낯가림 좀 하고 있는 중인데도 부모님은 전혀 어려워하지 않고 처음부터 너무 잘 웃고 잘 지냈다. 그제와 오늘 네시간 정도 떨어져 봤는데, 울지 않고 잘 지냈다 한다. 분리 불안이 조금 사라진 것인 사인인 것 같기도 하고. 11월에 옌스와 둘만 있게 하는 시간이 덜 걱정된다. 내가 없어져도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서 말이다.

자기 의지도 강해지고 갈수록 활동적이어져서 힘든 면도 있지만, 항상 너무나 잘 웃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하나가 있어 육아가 참 행복하구나. 앞으로 이렇게 부모님이 사위와 손녀와 장시간 같이 보낼 일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옌스 육아휴직 덕에 이런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정말 다행이고 행복하다.

한가지, 하나가 카시트를 너무 싫어해서 어디를 가기 힘들다는게 큰 애로사항인데, 그것도 수면교육의 결과로 좀 나아지거나 그런 일은 없으려나? 한국은 너무 크고 대중교통이나 여러 인프라가 차 없이 애 데리고 다니기 어렵게 되어 있어 서울로 이동하는 게 과하게 부담스럽다. 버스는 거의 유모차 들고 타기는 어렵고 간혹 계단이 장애물이 되기도 하고. (장애인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 이 때문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두달 가까이 있는 기간 중 사람들을 오히려 별로 못만나고 갈 것 같아 그점이 많이 아쉽다. 그래도 애가 최우선일 수 밖에 없는 육아휴직 기간, 어쩌겠나…

6개월의 하나에게

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 너는 6개월이 되었구나. 사실 6개월하고도 며칠 지났지. 너는 키도 크고 힘도 세 벌써 기기 시작한 걸 보면 엄마가 아기였을 때와는 참 다르구나 싶단다. 엄마는 팔다리가 너처럼 길지 않았고 한번 기지 못하고 엉덩이로 앉아 손으로 땅을 밀치며 다녔단다. 너는 벌써 머리가 길어서 거의 눈에 닿을 지경인데 엄마는 돌때가 되도록 솜털같은 머리만 있었더랬지. 엄마 어릴 적 사진 보면 그냥 둥글둥글 토실토실 아기라서 귀여웠던 얼굴인데, 너는 벌써 여자애같은 생김새가 또렷이 나타나기 시작해 예쁘구나. 사진으로 봐왔던, 이야기로 들었던 엄마의 어린 시절을 너에게서 발견하기도 하고, 우리의 차이를 발견하며 너와 나는 꼭 같지는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되기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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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자마자 10분 뒤의 네 모습은 이랬단다.

네가 몸이나 마음 모두 아프거나 다치지 않고 컸으면 하는게 엄마 마음이지만, 그게 진정 너를 위한 것도 아니니 대범한 마음으로 키우고자 노력하고 있단다. 기다보면 여기저기 부딪히게 마련이고 멍도 들고 혹도 생기기 마련인데, 얼마만큼을 경험하게 해줘야 하는 건지 고민이 벌써 된단다. 미리 부딪히는 경험을 충분히 해서 조심하게끔 만들어줘야 하는 건지, 얼마만큼이 다쳐도 되는 만큼인지 등 확신이 안선단다. 더러운 것에 노출되는 것도 마찬가지고. 집안 곳곳의 것들을 핧아보고 빨아보고 싶은 너의 구강기 욕구를 만족시키면서도 통제할 건 통제해야하는데 그게 어느 수준까지 허용해야 하는 것인지도 애매하고.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닦기도 하고, 닦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은 못빨게도 하지만 너를 100% 쫓아다닐 수도 없으니. 덴마크 아기들은 길바닥도 기어다니고 하던데 나는 그걸 얼만큼 허용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단다. 아빠와 상의해서 적당한 범위를 정하려고 하긴 하는데 너를 만나고 나니 그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는구나.

오늘은 우리가 먹는 저녁과 거의 같은 것을 네가 처음으로 먹게 되서 기뻤단다. 시판 이유식은 맛도 제약이 크고 해서 결국은 엄마가 해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너를 위해 모든 음식을 따로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엄마도 사실 살림하면서 모든 것을 다 하기가 벅찰 때가 있단다. 한국처럼 싸게 배달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매 끼 다 직접 해 먹어야 하는데 네 음식 따로 준비하기가 마음에 버거운게 현실이란다. 미안해. 그래도 엄마가 너무 힘들면 너에게 마음을 다할 수 없어서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려면 적정 수준을 찾아야 하거든. 오늘은 가자미, 새우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었는데 네 거 따로 뺀 다음에 고추기름과 소금간만 하는 식으로 너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음식을 준비했단다. 네 걸 스르륵 갈고 맛을 봤더니 참 맛있더구나. 잘 먹어주길 바랬는데 정말 잘 먹어줘서 고마웠어. 앞으로는 좀 더 우리 식사와 같은 것으로 준비해보려고 한단다. 경험이 쌓이면 엄마도 음식 준비가 더 쉬워지겠지.

엄마에겐 집안을 엄청 깔끔하게 정리하고 먼지 한톨 없이 청소하시던 네 할머니 때문에 너무 힘들었던 청소년 시기가 있었단다. 나는 그렇게 안치워도 되는데 할머니는 그렇게 치워야 하시니 덕분에 피곤해진다는 생각을 했었지. 사실 내 방 정리하나 하는 건데도 그렇게 피곤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엄마가 얼마나 게을렀는지는 말할 것도 없지?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런 깨끗한 삶이 몸에 배어서 주변이 지저분하면 참을 수가 없어졌어. 물론 지저분함을 정리해야하는 피곤함과 지저분함에서 오는 스트레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터라 할머니를 따라잡을 수야 없지만 나이가 늘어갈 수록 할머니와 비슷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있어. 다행인 건 네 친할머니도 비슷하셔서 네 아빠가 나와 비슷하다는 점이란다. 내가 조금 더 깔끔을 떨긴 하지만 둘이 중점을 두는 부분이 조금 달라서 오히려 서로 보완이 되는구나. 아무튼 애가 있는 집에서 청결을 유지하려면 바쁘단다. 엄마가 너를 업고 청소기 돌리고 빨래하고 바삐 움직이는 게 다 그래서란다. 사실 그런 이유로 네 음식을 처음엔 주로 사다먹이려 했는데, 몇번 사먹이다 보니 한계가 느껴져서 가족 식단을 준비하게 된 것이지.

널 키우면서 엄마도 너 임신하고 찐 살이 다 빠졌단다. 6개월 전에 살을 빼야 몸이 새로운 몸무게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길래 그때까지 빠질까 살짝 걱정했는데 걱정할 일은 아니었어. 오히려 임신전에 쪄서 다이어트를 해야한다고 벼르기만 하고 빼지 못하던 살을 덜어내고 있는 판이니 말이야. 엄마가 임신 전에 4kg가 쪘는데 그게 참 빼기가 힘든 살이었단다. 그 당시 주체못할 식욕 덕분에 살이 쪘었는데 임신 전에 그렇게 빼려고 해도 잘 안되더구나. 아무튼 너를 낳고 모유 수유하고 바삐 움직여서 그런지 다행히도 다 빠졌으니 너에게 고마워 할 일이다.

나는 그 전에 애들을 보며 열정적으로 웃는 엄마와 아빠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단다. 상상만으로도 진이 다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 사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웃을까 싶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웃는 것도 한계가 있지, 한참을 까르륵 웃으며 애와 놀아줄 수 있을까 싶었단다. 그런데 너와 놀다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구나. 네 웃음으로 여러 힘든 순간이 다 지워질만큼 너의 웃음은 특별하단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른 아이들도 같이 귀해졌단다. 다른 아이들의 웃음도 이쁘고, 너를 지켜주고 싶은 것처럼 그 아이들도 곱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란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처럼 네가 엄마를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 느껴져서 고맙고 기쁘단다. 네가 어른이 되기까지 훈육도 해야 해서 항상 친구같은 엄마가 되어줄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항상 기댈 수 있고,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는 엄마라는 사실을 네가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구나. 엄마도 그에 걸맞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사랑한다, 하나야.

 

이유식과 미니멀리즘

글 쓴지가 벌써 두달이 다 되었구나. 어느새 한달반여면 시작할 이유식을 고민하고 있으니 하나도 참 많이 자랐다. 요즘 조금 소원해진 친구에 대해 다른 친구에게 생각을 물어보니 내가 참 바쁘지 않은 모양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생각을 조금 해보았다. 내가 몸이 바빠서 그렇지 머리가 참 바쁘지 않았던 게 맞더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왜이리 쓸 데 없는데 신경을 쓰고 있었나? 부정적인데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나에게 소중한 사람과 문제에 집중할 일이다. 허구한날 시간이 없어서 뭔가 하지 못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엉뚱한 데 쏟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게 해준 친구에게 감사를 표하며…

요즘에 신경쓰는 것은 두가지다. 첫째는 하나의 이유식이고 둘째는 단촐한 삶이다. 이유식에 대한 책을 샀는데, 7월 말이면 시작될 하나의 이유식과 관련해 미리 공부해두려 한다. 사개월여에 불과한 육아기간 중 느낀 것은 미리 알아두고 준비해두는 만큼 불안함 없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남의 나라에서 애를 홀로 키우다보니 양쪽의 문화를 조율하는 것과 더불어 초보 엄마로서 이론을 실제에서 경험하고 적용하는 데 미리 충분히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어려움이 따른다는 생각이다.

두번째 단촐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이미 조금씩 지향하기 시작했던 바인데, 그 전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것이다. 매번 물건을 정리하려다 보면, ‘아, 이것 그래도 쓰려면 쓸 수 있는데…’, ‘이것 이제라도 써봐야지.’ 등의 이유로 반도 채 못정리하고 끝나곤 했다. 이번엔 정말 최근 1-2년간 쓰지 않은 물건은 과감히 정리하기로 했다.

이런 결심을 한 것은 둘째 계획과도 연관되어 있다. 특별한 이유로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둘째는 낳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커리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데다가 (난 엄마지만 나 자체도 중요하다.) 지금도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는데, 커리어를 이유로 둘째를 40이 넘어서 갖는다고 하면 정말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건강상담사에게 “애를 더 낳는다면 하나를 위해서가 될 것 같다. 애가 외롭다고 할까봐…”라고 이야기하니, “애는 당신과 남편이 원하면 낳아야지, 애 때문에 낳지는 말아라. 어차피 형제를 갖는게 항상 좋기만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 형제가 있어서 좋기만 했는가?”라고 답을 하더라.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결국 성인이 될 때까지 책임을 지고 양육하는 내가 원해서 애를 낳아야 할 일인 것 같다. 한국이었으면 달랐을까? 잘 모르겠다. 우선 남편을 늦게 만난 것도, 내 커리어의 방향을 이민와서 튼 것도 이유다. 물론 애를 낳고 나면 나라에서 양육의 많은 부분을 지원해줘서 한국에서보다 수월하게 애를 키울 수도 있겠지만, 결국 엄마가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것은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라 애가 둘이 되면 내가 추가적으로 많은 희생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애가 생기고 나서 정말 매우 기쁜 것도 있지만 옌스와 거의 처음으로 감정 상할 일도 생기기도 하고, 애가 둘이 되면 더 힘든 순간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보다 젊었다면 모르겠지만, 육체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 나중에 거의 할머니 같은 엄마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애에게도 어떨지 모르겠고.

아무튼 애를 하나만으로 마무리짓는다고 생각하면 지금 집에서 오랫동안 이사를 할 이유가 없다. 보육원도 코앞에 있고, 교통도 편하고. 수납이 조금 부족한 집이라는 게 딱 하나 불편하다. 벽에 수납 대신 그림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나마 있는 수납 공간에 쓰지 않는 물건이 너무 많이 있는 것도 이유가 된다. 그래서 우선 내 물건부터 시작해서 과감하게 정리하려 한다. 그리고 나서 옌스 물건에도 정리할 게 있으면 정리해달라고 이야기하려 한다. 마음대로만 버리지 말아달라고 옌스가 한마디 하더라. 이 집으로 이사온 이후부터 물건을 별로 사들이지 않았는데, 그러니 돈도 아끼게 되고 참 좋다. 단촐한 삶의 덤은 경제적 여유라고 해야할려나? 좋은 덤이다.

물건을 떠나서 내 인생의 여러가지를 좀 정리해보려고 한다. 인간관계 및 내가 집중하는 일들까지, 좀 단촐하게, 단순하게 살아봐야겠다. 물론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그걸 줄이려는 건 아니지만, 뭔가 테마가 있는 것에 집중한다던지 말이다. 오늘 큰 봉투로 옷을 두봉투 덜어낸 것이 좋은 출발이려거니 생각한다. 육아휴직 기간 중 정리할 게 참 많네.

[육아일기] 만 8주 + 하루의 하나에게

하나야. 엄마는 아기를 낳고나면 세상이 바뀐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단다. 그래. 너를 낳고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진 않더라. 엄마는 너를 낳기 전까지 36년이 넘는 시간을 엄마가 아닌 사람으로 살았는데 그게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뀌겠니. 그래도 네가 태어나고 나니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바뀌더구나. 아마 그게 하루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런 것 같다. 딱 하나 확 바뀐 게 있다면 내가 네 아빠와의 관계랄까? 결혼을 하고난 뒤 우리는 가족이라 이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피를 나눈 가족과는 다르다고 생각을 했는데, 너의 출산을 기점으로 놀랍게도 네 아빠가 내 마음속으로 더욱 더 확 다가왔단다.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말야.

엄마는 네가 처음에는 하나의 과업처럼 느껴졌단다. 잘 수행해 내야 하는 과업 말이야. 처음부터 정말 열심히 했어. 모든 일은 효율적, 효과적으로 하고 싶은 사람인지라 육아마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단다. 네가 울면 빨리 왜 우는지 파악해서 해결해주고 싶었고, 기저귀 갈고, 목욕하고, 산책시키고, 토하면 치우고 등등 이런 일들을 최대한 잘 해결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걸로는 부족하더라. 네 아빠가 너를 다루는 모습에서는 효율성은 부족하지만 나와 다른 여유가 있어보였어. 그리고 어떤 날은 젖토한 것으로 엉망이 된 너를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서두른다는 것이 오히려 토한 뒤의 불쾌감으로 우는 너를 보듬어주기보다 치우는 데 급급하고 있었어. 소리만으로도 똥이 기저귀 밖으로 곧 샐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다른 날엔 똥 빨래를 최대한 피하고자 마음만 급해서 너를 눕히지 않고 한손으로 안아 바지와 바디수트를 벗기려고 하며 너를 불편하게 하고 있었단다. 그럴 때마다 아차 싶었어. 어느 날 이런 저런 육아 글을 읽다가 갓 태어난 아기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말에 그거구나 싶었어. 엄마가 너를 인격체보다는 엄마가 수행해야 할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었구나 하고 말야. 이젠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너를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러면서 너와 한층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엄마도 처음으로 엄마가 되다보니 하루하루 깨닫는 것이 많단다. 그래서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어. 물론 그 말이 정말 말그대로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만큼 사람을 새롭게 성숙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말이겠지.

엄마가 너를 낳기 전에 보리를 입양해 키운 것은 참 잘한 일이었구나 생각해. 지금은 살고 있는 집의 조건상 보리와 함께할 수 없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워주고 계시지만, 그 경험이 없었으면 너를 키우는 게 한층 더 힘겨웠을 것 같아. 내가 책임져야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없는 존재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를 한층 낮은 수준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거든. 엄마는 한국에 가서 지내는 동안 네가 보리와 지내며 동물과 가까이 하는 법을 어려서부터 알려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싶어.

세월호가 인양되서 항구로 옮기는 중이란다. 네가 태어나기 전에만 해도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어. 그건 너를 임신하고 있는 기간중에도 마찬가지였단다. 지금도 여전히 완전히는 알 수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하루하루 너와 가까워지고 있는데, 이렇게 사랑과 공을 들여 키우는 자식과 20년이 가깝도록 매순간 조금씩 더 가까워졌는데 하루 아침에 차가운 물속에 잃어버리고 찾지 못하는 심정이 어떨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로구나.

너를 키우다보면 아찔한 순간들을 상상하게 되는 찰나들이 있어. 너를 안고 걸어가다가 발에 뭔가 채여서 살짝 흔들린다거나 하는 찰나. 그에 걸려 넘어졌으면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이 드는 거지. 집안일을 하는 도중 혼자서 목이 터져라 우는 너를 내버려 둘 수 없어서 바운서에 앉혀 부엌에 두고 부엌일을 하다보면 혹시 뭐가 떨어져서 너를 다치게 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과민하다싶을 정도로 조심하게 되곤 해. 그러다가 아주 일순간 습관처럼 일을 하다 손이 기름병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아차 하는 생각에 다시금 정신을 차리곤 하지. 그러다 보면 네 아빠도 괜히 걱정이 된단다. 세상일이란건 정말 모르는 일이니까. 예전에 엄마, 아빠가 나보고 길조심 하라고 매일 이런저런 걱정어린 말씀들을 하실 때면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냐고 핀잔을 드리곤 했는데,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이제는 이해가 되는구나. 왜 어제 한 이야기인 것을 알면서도 또 이야기 하셨는지.

이번에 덴마크에 방문을 하고 가신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비행기 안에서 난기류에 기체가 흔들리는 순간에 그런 이야기를 나누셨대. 할머니가 “여보, 혹시 이 비행기가 추락이라도 하면 걱정되는 일이 있수?” 하고 물어보시자 할아버지는 “아니, 이제 해인이도 결혼생활 어떻게 하는지 잘 보고, 하나도 낳아 잘 기르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아들, 딸 자식 모두 잘 살고 있어 걱정하는 거 하나 없소.” 라고 하셨대. 그리고 할머니도 그 생각이셨다고. 그 마음이 어떻셨을런지는 난 아직 잘 모르겠어. 언젠가 나도 너를 보고 그런 마음이 들런지. 그게 진짜 너를 독립시키는 순간일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8주밖에 되지 않은 네가 벌써부터 엄마와 힘겨루기를 시작하는 것을 보며 앞으로도 참으로 많은 밀고 당기기가 기다리고 있음을 느끼고 있어. 어느새 부모와 너만의 방식으로 대화를 하며 요구사항을 밝히는 너. 이제 우리가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을 땐 너는 바운서에 앉아서 기다리는 것으로 룰이 정해졌고, 너는 칭얼거리거나 울음으로 젖을 빨아보겠다고 한 두번 시도를 해보지만 기다리라며 손을 뻗어주지 않는 단호함에 참고 기다리게도 되었구나. 방금 젖을 먹고도 저녁에 엄마를 찾는 너를 보며, 벌써 떼를 쓰기 시작하는 네가 정말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알게 된단다.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밀당을 하겠지만 너의 마음은 보듬어주면서도 네가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훈육은 놓지 않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 거란다. 서운한 순간도 많겠지만, 엄했던 엄마의 마음을 충분히 잘 이해하는 나이기에 너도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란 마음으로 힘든 밀당을 할 거란다. 그 시기가 이렇게 일찍 온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란다.

오늘부터 썸머타임이 시작되었어. 컴퓨터 시계엔 8시로 되어있지만, 사실 어제까지 7시였던 시간이지. 내 앞에선 네가 자다가 지금 막 용을 쓰며 기지개를 키는구나. 매일 밤 수유하느라 세번은 깨지만 이젠 그게 크게 힘들지 않단다. 사람의 몸이 다 적응하게 설계가 되어있구나 싶어. 솔직히 일년이라는 육아휴직기간이 두려워. 공부로부터 손을 확 뗀 상태로 두 달이 벌써 지나가버렸는데, 앞으로 8개월 후 논문으로 잘 복귀할 수 있을런지 걱정도 되고. 그렇지만, 조금 더 네가 크고 나면 아주 조금이나마 여유가 더 생기고, 진득하게 앉아서 아티클이라도 읽을 시간을 확보하게 되면 그때 공부는 걱정하기로 하고 지금은 너에게 집중하기로 했단다. 수유하고 기저귀 갈고 하는 토막난 시간에 긴 호흡으로 집중하며 읽고 생각해야 하는 아티클은 정말 읽기가 어렵더구나. 그걸 다 잘 하는 엄마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대신에 엄마는 신문과 텔레비전을 마음 놓고 보기로 했단다. 너 수유하는 시간과 다 먹고 젖토하는 지 지켜보는 시간 동안 말이야. 그래서 그런지 지난 두달 간 엄마의 덴마크어가 한층 더 늘었음을 느껴. 그러다 보면 더 단어도 열심히 외우고 작문도 해보며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늘지만, 채우기 힘든 욕구를 쌓아두면 스트레스가 되니 우선은 그 마음은 한켠으로 미뤄두고 말이야.

이제 너도 곧 일어날 시간이 되었구나. 엄마도 배가 참 고프다. 너에게 젖을 먹이려면 엄마가 먼저 잘 먹어야 한단다. 오늘 하루도 같이 잘 해보자꾸나, 하나야.

 

5주 육아 단상 

하나는 정말 먹성이 대단하다. 간혹은 자기의 위의 용량을 넘어서게 먹는데다가 성격이 급하다보니 사래가 걸려 기침하다가 젖을 토하는 일이 잦다. 살짝 걱정마저 될 정도다. 특별히 아픈게 아니고 여전히 잘 먹으면 괜찮다고 하니 그러려니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바탕 토를 하고나면 빈 배가 허기져 또 먹겠다고하며 이미 다 비운 젖을 오래 빨아댄다. 

하나의 토사물 범벅을 대충 닦아낸 내 몸에선 젖토한 냄새가 나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다보면 제대로 다 입지도 못하고 수유 나시티셔츠나 간신히 걸쳐입고 허겁지겁 수유를 다시하게 되는데 그러면 싸늘한 공기에 목과 어깨가 살짝 시리다. 또 이렇게 젖을 왈칵 토하면 하나도 온몸이 젖은 탓에 옷도 갈아입히고 기저귀도 갈고 해야하는데 이를 치울 새 없이 배고프다고 목청 높여 우는 하나에게 수유를 한다. 몇분안에 난장판이 된 거실을 보며 수유를 하며 드는 생각이 육아란 참 티 안나는 노동집약적 행위라는 생각이다. 물론 그 결과물인 애는 쑥쑥 크고 있지만 말이다. 

하루종일 장보고 집 치우고 빨래하고 애 먹이고 놀아주고 나도 먹고 하다보면 정말 정신없는데, 애 크는 거 외엔 사실 집안일이란 게 현상유지 아닌가. 애가 낮에는 잘 안자서 간단한 집안일을 하려고 해도 애를 안고 어르고 달래고하다보면 간단한 일이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 되어버리니 꽤나 챌린징하다. 한국기준으로는 일찍 퇴근하는 옌스지만 간혹 저녁에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보면 하나와 잠에 들때까지 혼자 다 해아하는데 힘이 든다. 회사에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옌스지만 내 이런 힘든 상황을 공유했다. 역시나 힘든 건 나누면 반이 된다고, 우선 말한 것 만으로도 힘든 게 줄어들고 또 개선 방안을 의논했으니 앞으로 좀 더 나아지겠다는 생각에 힘도 난다. 

역시나 육아는 힘든 것. 앞으로도 더 힘든 일이 많이 있겠지만 아직은 초보라 더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천사같은 아이 얼굴을 보니 힘 내서 할 수 있는 것이지. 

한바탕 토하고 젖을 또 먹고 자는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