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개월 하나

자기는 대놓고 한국어 잘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하나. 덴마크어만 아주 잘 하고 발음도 이 또래 애 같지 않게 또박또박 잘한다. 한국어와 덴마크어 간에 격차가 엄청 크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주어진 범위 안에서 노력하는 수밖에.

요즘은 역할놀이에 꽂혔다. 역할에 따라 이름이 바뀌고 나도 그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부여가 된다. 나는 잘 기억하는데, 옌스는 너무 역할이 다양해서 자긴 기억 못하겠다고 한다. 사람과 하는 역할놀이도 있지만 인형들에게 역할을 나눠준 뒤 혼자 다인역할을 하며 놀기도 한다.

프로즌과 라이온킹을 본 후 부모의 죽음이나 자녀의 독립 등에 대해 처음으로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나가 태어나기 전에 옌스와 같이 간 곳에 하나와 처음으로 같이가다가 내가 길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더니 자기는 어디에 있었냐 묻는거다. 아직 너는 세상에 없었다 하니 자기를 혼자 어디에 두고 둘만 다녀왔는가 싶었는지 자기 두고 떠나면 안된다고 서럽게 울더라. 그러고 나서 덧붙이길 자기는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네로 비행기 타고 갈거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기를 잘 보살펴 주셔서 다시 행복해 질 거라고. 여기서 빵 터졌다.

사회성이 엄청 좋다. 동네에서 덕분에 아는 사람이 늘었다. 어찌나 인사성이 좋은지. 코로나 때문에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해야하는지라 목청 높여 대화를 시도한다. 간혹 그냥 무시하고 가는 어른들도 있는데, 그럴 땐 자기랑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서운해하기도 하고.

우리 집에 반절이 옷걸이로 사용되는 발레바가 있는데 나머지 반절은 하나의 철봉으로 사용된다 나는 옷걸이가 걸린 쪽을 발레바로 쓰고. 어찌나 힘이 좋은지. 매일 엄청 자주, 또 오래 매달린다. 복근이 덕분에 장난이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표정이 엄청 풍부하다. 또렷하고. 이녀석 나중에 뭘 할런지.

떼를 쓸 때는 또 엄청나다. 음… 시부모님도 하나 보시더니 보통이 아니라며 첫째 조카랑 비슷한 것 같다 하시는데… 평소에는 참 수월한 아이지만 한번 성깔을 부릴 땐 정말 대단하다. 흠…

모두가 자기 새끼 다 이뻐하듯이 우리 눈에 세상에서 제일 이쁘고 사랑스러운 하나. 계속 이렇게만 자라주면 정말 더 바랄게 없을 것 같다.

가족과 함께하는 코로나 자가격리 및 재택근무 일상

확인할 길은 없지만, 지난 한 주 코로나로 의심되는 증상을 경험하고 거의 회복이 끝나가고 있다. 지난 주 목요일부터 꼬박 집에 있었으니 벌써 만으로 열흘을 집에 콕 박혀있었다. 지금 덴마크는 거의 나라를 닫은 상태다. 공공은 필수 (치안/의료 등)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택근무로 전환되었고 민간에서도 강제로 닫은 부문도 있고 상당수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사재기는 처음 이 조치가 있었던 날 이후 48시간 정도에만 있었고 대부분은 정상화되었다. 식량안보를 정부에서 잘 조율하고 있는 상황.

전원 재택근무 결정이 난 날인 수요일 저녁부터 약간 몸이 으슬으슬한가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목요일 오후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몸살에 마른 심한 기침만 있었는데 월요일 낮부터 수요일 오후까지는 기존 증상에 추가해서 열도 나고 -다행히 38도 정도의 미열이었지만 – 무엇보다 몸이 참 부서지는 거 같이 아프더라. 손발가락 끝까지 아픈 몸살은 또 처음 경험해봤다. 목요일부터는 진통제 먹고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신종플루보다는 덜하지만 심하게 아프다보니 월요일 낮부터 수요일 낮까지 꼬박 48시간은 회사일/집안일/육아를 모두 손에서 놓았다. 덕분에 옌스가 혼줄이 났다. 그 모든 일을 다 떠맡은 옌스가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정말 고맙더라. 그 와중 옌스와 하나는 가볍게 기침하고 약간 으슬으슬해하는 정도로 끝났다. 어찌나 다행인지.

하나는 재택근무기간 얼마나 잘 지내는지 대견하기 이를데 없다. 아침 6시반-7시 사이에 일어나던 평소에는 졸렵다고 잠투정도 하고 짜증도 많이 냈다. 재택근무 기간 에는 깨우지 않고 알아서 일어나게 두었는데, 평소보다 일어나는 타이밍이 30분 정도 늦어진 대신에 투정부리지 않고 혼자 방에서 걸어나온다. 잠이 살짝 덜 깬 눈으로 휘적휘적 걸어나와 우리를 안아주며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는데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물론 양치질을 안한다고 하거나, 수가 틀려서 떼를 쓰고 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간간히 난리를 치기도 하지만, 그거야 뭐 애들이 원래 그런 거고.

우리와 함께 집안에 꼬박 같혀 지내는 이 기간동안 우리의 설명을 잘 받아들여 버텨주고 있다. 회의가 있는 타이밍에는 간간히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기도 하고, 집안을 매일매일 폐허로 만들고 (밤에 재우기 전에 싹 치워도 다음날이면 여지없는 폐허…), 자기 혼자하는 가상의 통화놀이에는 “나 지금 회의중이라 바뻐.”, “지금 아파서 남들에게 병을 옮길 수 있어서 밖에 나갈 수 없어.” 이런 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애 식사도 챙겨줘야하고 번갈아가며 애랑도 간간히 놀아줘야 하는 시간을 메우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해야하긴 하지만, 그래도 지난 이틀간 육아와 병행하는 재택근무의 일상에 조금 더 익숙해졌다. 자가 격리가 끝나고 나면 애랑 밖에서도 놀아줄 수 있을테니 집 안에서 혼자 놀아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상황이나마 해소가 될 수 있겠지.

일하는 중간 애랑 나는 온라인 발레클래스를 따라하기도 하고 옌스는 하나의 장난감을 섞어서 HIIT같은 트레이닝을 놀이처럼 만들어 하나와 함께 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사람이 중요한 회의가 있는 경우 다른 사람이 애랑 다른 방에 가서 놀기도 하고, 이제는 중요한 회의 플래닝은 서로의 스케줄을 봐가면서 짠다. 대신 하나도 평소에 30분 이내로 보던 동영상을 1시간 정도로 늘여보게 되었다.

이렇게 하루가 가면 정말 어떻게 하루가 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휙 가버린다. 하나가 좀 안쓰럽긴 하지만 지금은 이게 우리가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상황이고 흔들리지 않고 월급을 줄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하기에 하나가 잘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그래도 이렇게 가족끼리 부대껴가며 잘 지내고 있지만, 혼자서 해외생활하다가 이런 상황에 놓였다면 적막과 외로움, 두려움 등으로 정말이지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 상황에 코로나에 걸렸다면… 생각만 해도 두렵다. 예전에 옌스 만난지 얼마 안되서 신종플루에 걸렸을 때 정말 너무 아파서 반쯤 몽롱한 상태로 병원 응급실 여는 시간에 (당시 우리 동네 제일 가까운 종합병원은 오전 7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았다. 지금도…) 차를 끌고 운전해가 입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전날 오후에 아프기 시작해 바로 그날 밤에 기관지염으로 넘어갈만큼 심했었는데, 그 때 혼자 산다는 게 참 힘들었던 게 기억난다. 그제 막 사귀기 시작했던 옌스가 장도 좀 봐다주고 해서 힘겹게 버틸 수 있었는데, 그나마도 없는 사람이 혼자 아프면 어떨런지 상상도 가고…

굳이 이 상황에서 긍정적인 상황을 찾자면, 모두 바깥 활동을 못하고 집에서 있어야 하다보니, 주말이 너무 바쁘지 않게 가족간의 활동으로만 즐겁게 채워질 수 있어서 좋다는 거다. 발레를 못하는 건 아쉽지만, 온라인 클래스로 바랑 약간의 플로어 연습은 할 수 있고.

또 자가격리 상태에서 배송 폭주 문제로 나흘에서 닷새에 한번 꼴로 배송이 가능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장을 보다보니, 간혹 고기나 빵, 등 주문에 있어서 필요한 물량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거나 유통기간의 걱정으로 다소 부족하게 주문할 때가 생긴다. 그러면 창의적으로 요리를 해야하는데, 덕분에 오늘은 도우를 직접 반죽해서 피자도 해먹었다. 이렇게 피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든 건 거의 7년만의 일인 것 같다. 덴마크 오기 전엔 몇번 손반죽으로 해 먹었는데… 이번엔 그나마 다행인 게 반죽기가 있기 때문이다. 물자의 부족 속에서 이렇게 알뜰살뜰 해먹고 사는 재미도 있으니 이게 또 장점이라면 장점일런지?

다들 힘들겠지만, 서로를 위해 조금씩 더 조심하며 생활해 이 위기를 빨리 극복해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배움의 즐거움

부모님이 나에게 어려서부터 익히 말씀하신 건, 부모님으로서 주고 싶은 건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연배가 드심에 따라 이것 저것 주고 싶은 마음과, 주고 싶은 만큼 주지 못하심으로 인해 생각이 다소 변하신 바도 있겠지만, 나의 성장기동안에는 항상 그를 주지시키셨다. 그리고 나에게 여러 종류의 배움의 기회를 주셔서 그 과정을 통해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배움에 대한 다소의 강박이 생겼긴 했지만, 그건 내 성격 탓이고. 

내가 하나에게 주고 싶은 것을 꼽자면 바로 그 배움의 즐거움이다. 배움에는 시기가 없고 배움의 종류에도 제한이 없다는 것도 함께. 

테니스와 배드민턴, 탁구 등 부모님과 함께 했던, 또는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했던 (전혀 진지하지 않게 취미/가족 스포츠로서) 운동에서 운동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했던 피아노에서 (한때는 속으로 몰래 싫어하면서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참 긴 시간)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사실 발레를 좋아하게 된 건 이런 것들이 다 결합된 취향일 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의 선율에 맞추어 정교한 몸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발레라는 예술이자 운동이 나에게 얼마나 큰 배움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끊임없는 노력, 미미하지만 끊임없는 발견과 발전, 나의 한계에 대한 인지,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넓히려는 또 다른 노력, 내 몸의 구조와 근육에 대한 이해. 내가 몸담고 있지 않은 예술 직종에 대한 간접적 노출과 이해 등… 

이에 더불어 부모님의 도움으로 일찍부터 시작한 영어나 중국어 학습을 통해 내가 언어에 평균보다 좋은 감각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언어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되었다. 그로 인해 찔끔찔끔 공부한 여러 유럽언어들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지금 덴마크어를 공부함에도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고. 앞으로 덴마크어가 영어보다 더 유창한 언어가 되는 시점에는 또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고자 하지 않을까 싶다. 배움이 주는 즐거움을 아니까. (물론 이게 인스턴트한 즐거움이 아니다보니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게 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긴 하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 배움은 평생을 이어가도 닿을 수 없는, 영원이 풀어가야할 숙제임도 알고 있다. 이 또한 즐겁다는 것도.

하나에게 물려주고 싶은 건 바로 이러한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그리 해주셨듯이. 남들보다 잘해야 하는 게 아니라 어제보다 더 잘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연습밖에 없다는 것. 배워봐야 좋고 싫음도 알 수 있다는 것을. 작은 실패와 성공이 자기에게 어떻게 힘이 되는 지를. 얼마나 내가 이걸 잘 알려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뭘 알려주고 싶은지 아는 것만으로도 좋은 출발이라 생각해본다.

33개월의 하나

이제 거의 만 33개월이 다 되어가는 하나. 부쩍 큰 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행동과 말, 생각이 모두 부쩍 달라졌다. 


한국에 다녀오며 내가 덴마크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음을 느끼고 내가 한국인인지 묻는 것부터 해서 자기도 한국인인지, 아빠는 한국말을 잘 못하고 덴마크어를 잘한다고 말한다. 한동안 덴마크어를 많이 사용했던 내가 한국행 이후로 한국말을 고수하자, 내가 자기에게 한국말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보육원에서도 한국 다녀온 이야기를 하며 아빠는 한국말을 잘 못한다는 말도 한 모양이다. 하나가 덴마크말을 한국말보다 잘하다보니 나도 하나에게 덴마크어 사용이 너무 늘고 그래서 하나의 한국어 발달이 정체되었는데, 이를 다시 뒤집어보려고 한다. 워낙 언어감각이 뛰어나고 빠른 아이이니 나만 열심히 하면 장기적으로 한국어를 어느 수준까지 올리는 건 가능할 것 같다. 


친구에 대한 인식이 있긴 했지만, 한두달 전부터는 가장 친한 친구를 꼽으라면 나오는 이름이 딱 두명으로 정해졌다. 휴가 기간에도 자기의 장난감 전화를 눌러가며 친구에게 전화해서 자기 일상을 설명하기도 했다. 예전에 전화놀이를 하면 자기 집이다 또는 보육원이다, 또 보자, 혹은 의미없는 중얼거림으로 어른의 전화통화를 흉내냈는데, 이제는 구체적으로 이런 저런 자기 근황을 전하더라. 넘어졌는데 계속 아프다거나, 배가 아프다거나, 자기는 잘 지낸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거기에 말에 뉘앙스를 더하기 시작했고, 숫자는 9까지 세고, 실제 사물의 개수를 세는 건 네 개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상황에 어떤 말을 하는지도 이해하기 시작해서 우스운 상황도 만든다. 예를 들면, 하나와 옌스가 기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 날이었다. 사람들이 하나에게 인사를 건낼 때 하나가 수줍어하는 때가 간혹 있는데 (주로 체격이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저씨) 그럴 때면 내가 하나가 수줍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해주곤 했다. 그 날은 어떤 할머니가 하나에게 인사를 건냈는데, 하나는 인사를 하고 옌스는 인사를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자 하나가 우리 아빠가 수줍어서 그래요.라고 했다는데 옌스가 우스워서 박장대소를 했단다.


이번 한국방문에서 하나와 나의 모습을 보던 오빠가 나보고 엄하다 하더라. 사실 내가 딱히 엄한 사람이라고 덴마크 생활에서는 느껴본 적이 별로 없는데, 아마 한국에서는 그래보일 수도 있는 모양이다. 그냥 소수의 몇가지 정해진 규칙에 있어서 예외가 별로 없고, 해당 사항에 대한 단호한 말투에 하나도 큰 저항없이 따르는 것 뿐인데. 옌스는 그냥 균형잡힌 엄함인 것 같다고 하고 옌스도 나와 비슷한 육아를 하고 있어서 둘다 그렇게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 덕분인지 대충 두돌에서 두돌 반 사이의 시기를 거치며 거세게 떼를 쓰는 일은 이제 없어진 것 같다. 우리와의 대화가 구체적이고 많이 자유로워지면서 떼 쓰는 일이 없어진 것 같다. 타협이 안되는 건 타협이 안된다고 받아들여서 규칙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어쩐지 한국과 덴마크간 7시간 시차를 거슬러 여행함에 있어서도 너무나 잘 짜증내지도 않고 즐겁게 여행하고, 안된다고 하는 것은 하지 않고, 밥도 너무 잘먹고, 놀기도 잘 놀고, 타인과 열린 교류도 잘 하고, 보육원에서도 사랑받고 잘 자라고 있는 하나가 너무나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생일잔치가 하고 싶고 얼른 세살이 되고 싶어 자기 생일만 손꼽고 자기 곰인형에게 선물 주고 받는 놀이를 하는 하나가 세돌이 되는 날이 나도 기대된다. 그땐 또 얼마나 커 있을지. 세돌 반만 되면 이제 거의 대화의 외양 면에서는 그냥 아이와 비슷해진다고 했던 논문지도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그 시기가 그리 오래지 않아 올 거라 했는데, 이제 일년도 채 남지 않았구나. 하나야. 너무 빨리 크지 말아라. 엄마 품 떠날 날이 하루하루 다가온다는 걸 체감할 거다라는 말이 와닿는 요즘이다.

30개월의 하나

30개월의 하나가 어떤지 기록이 되어 있어야나 나중에 돌아볼 수 있을 거 같다. 일로 가정생활로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지만 짬을 내서 기록해본다. 

하나가 한국말과 덴마크어가 존재한다는 걸 이해한 건 대충 18개월  들어설 때 즈음부터였다. 사물이나 개념에 엄마와 아빠가 다른 표현방식을 쓴다는 것을 알고 그 표현방식에 한국어와 덴마크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덴마크어 어휘와 문장 구성이 한국어에 비해 월등히 낫지만 내가 한국어로 하는 말의 대부분을 이해하고 덴마크어로 표현한 단어에 대해서 그건 한국어로 뭐냐고 물었을 때 한국어 어휘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묻든 대부분 덴마크어로 답하고 간혹 한국어로만 아는 단어 (예를 들어 맵다와 같이 보육원에서 쓸 일이 없는 단어)나 덴마크어 문장에 섞어쓰는 게 일상이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 듣기를 통해 이해하는 수동적 학습만으로는 부족하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어휘를 선택해서 문장을 구성하는 능동적 학습이 필요한데, 그걸 강요하자니 한국어를 싫어하게 될 것 같고 쉽지가 않다. 그나마 요즘 한국어로 이게 뭐냐고 묻는 게 늘어나서 한국어 어휘를 넓히는 기회가 생기는게 다행이다. 덴마크어로 의사소통하는 부분만 따지면 미묘한 뉘앙스도 살려가며 대화하고 있어서 이맘때쯤 아이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거였구나 놀라곤 한다. 단어 열거로 의사소통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말다운 말을 긴 문장으로 하는 건지.

16개월인 친구네 애가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은 되나 아직 발화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하나는 언제 말을 시작했나 봤더니 만 15개월 되었을 때에는 아니오에 해당하는 엄마, 아빠, Hvad er det? (이게 뭐예요?), 하나 (자기 이름), 거북, nej (아니오), hej (안녕), bye 정도 말하고 기타 동물 소리흉내 (멍멍, 미야오, 구구, 꼬꼬 등)을 낼 수 있었다. 만 17개월이 되었을 때는 ja (예)를 사용하면서부터 조금 더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는 게 수월해졌다. 두달 사이 어휘가 빠르게 늘어서 할 수 있는 단어를 세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보육원 애들 이름을 다 기억하고 부정확한 발음이나마 애들 이름을 이야기해서 내가 다른 애들 이름 기억하는 것도 쉬워졌다.  보육원에서 또래 중 가장 말을 잘하는 애 중 하나였는데, 이중언어 하는 애들 중에 발화가 늦은 애도 있지만 하나처럼 오히려 더 잘 하는 애들도 있다고 들었더랬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아이가 맞는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살려줄 지 고민을해봐야겠다.

하나가 만 두살이 되자마자 발레를 시켰다. 어른과 함께 가서 하는 발레인데 하나의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도움이 될 활동 중 하나로 나도 즐길만할 걸 찾다보니 발레가 되었다. 처음엔 그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서 발레 수업 내내 노래에 맞춰 뛰려는 애를 잡아 함께하는 활동에 포함시키는 게벅찼다. 단 30분에 불과한 시간인데 말이다. 같이 움직여야 하는 규율에 애를 너무 맞추려다보면 애가 기분이 상해서 발레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고, 애를 마음대로 풀어놓으면 방해가 되니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애를 통제하고 활동에 동참시키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느라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진땀을흘린 날이 많았다. 거기다가 발레 수업이 끝나는 시간 때 즈음이 하나가 피곤해하는 타이밍이어서 안아달라는 하나를 안고 나 혼자 춤을 추느라 힘든 경우도 흔했다.

애가 발레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바는 없지만, 발레가는 시간을 고대하고, 보육원에서 다리를 들고 까치발로 다니고 빙글빙글 돌고, 선생님들이 뭐하냐고 물어보면 발레한다고 해서 선생님들이 하나를 Balletpige (발레소녀)라고 부를 정도기에 좋아하는구나 하고 추정할 뿐이다. 한달 반 정도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이번 주말부터 클래스가 시작되었는데, 가는 길에부터 그전에 배운 걸 기억하고 이야기하길래 신기했다. 이제 꽤나 장기 기억력이 생기는 모양이다.  지금은 2-3세 사이 유아반에서 배우고 있는데, 두살 반이되서 그런지, 이번엔 시키는 것도 제법 따라하고 애 쫓아다니느라 고생하는 거없이 30분을 잘 보내고 왔다. 내년에 3세 반에 올라갈 때면 혼자 들여보내도 걱정이 없겠다 확신이 들었다.

페달 없는 자전거는 발을 땅에 대는 시간이 얼마 안되게끔 쌩쌩 뒤로 밀기 시작해서 우리가 뛰어다녀야만 쫓아다닐 수 있게 능숙해졌다. 정글짐에 기어 올라가서 높은 곳의 미끄럼틀을 타고 씽씽 내려오는 것도 능숙해졌고 아빠가 잡아주는 손에 크게 기대지 않은채로 외줄타기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반동을 활용해 몸을 위아래로 흔드는 것까지도. 

어디 가서 크게 맞을 걱정은 하지 않는 게, 간간히 맞기는 하는 것 같지만 손바닥을 보이며 힘있게 팔을 뻗으면서 안된다고, 멈추라고 (Stop! Det må man ikke! Man må ikke slå!) 크게 외칠 줄 알아서 주변 어른의 시선을 쉽게 끌어낸다. 장난감이나 놀이터 시설 등에 대해서도 보육원에서 가르친 순서지키기, 적당히 놀고 양보하기 등을 이해하고 있어서 간혹 어른이 중재해야 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로 인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없어졌다. 그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서 가르쳐서 그런지 빨리 배우더라. 하나가 다른 애를 때리는 경우는 상대가 먼저 때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본 적도 더 어렸을 때나 있었고, 보육원에 물어봐도 그런 경우는 없다고 한다. 상대가 때린 경우에도 안된다 하고 크게 항의하는 거지 맞서 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다. 어려서는 애가 워낙 활동적이고 힘이 좋아서 남들 때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이제는 그건 크게 걱정을 안하고 지낸다. 

하나는 보육원에서 있던 일들을 이것저것 신나게 말해주는 편인데 궁금한 일 나중에 보육원가서 물어보면 되서 현황 파악이 쉽다. 친구 Feifei의 세살 생일에 케이크를 먹었는데, 자기는 케이크 안먹고 아이스바 먹었다며 시무룩하게 말하길래, 유당제한때문에 그런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그게 맞다고 이야기해주더라. 그리고 다른 애들이 자기들도 케이크 안먹고 아이스바 먹겠다고 해서 애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이제 생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자기 생일이 언젠지 자꾸 묻는다 최근 두어달사이에 애들 생일 잔치가 여럿 있었는데, 자기도 생일 주인공이 되고 싶었나보다. 하나 생일 땐 나도 케이크를 준비해야 할텐데 쩝. 그날은 대충 휴가 내고 새벽부터 준비를 하던가 해야할 것 같다. 

요즘은 수줍음을 조금 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낯선 남자에게 수줍음을 탄다. 인도에서 낯선 남자가 마주지나가면 내 바지가랑이를 잡고 뒤에 숨는다던가, 유모차에서 얼굴을 돌린다던가 한다. 그리고 나에게 Jeg er lidt genert. (저 조금 수줍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자는 매우 좋아해서 낯선 할머니나 아줌마 할 것 없이 마치 아는 사람이라도 되는 냥 Hej?! (안녕하세요)하고 크게 외치며 인사한다. 이 시기에 흔히 있는 거라고 하더니 수줍음의 수자도 모를 것 같던 하나도 그러는구나 싶었다.

지난달에 친구가 와서 자고 가면서 자기도 남에 집에 가서 자고 싶기도 하고 그런가보다. 나는 걔네 집에서 언제 자냐고 간간히 묻는다. 우리 집에서 그 친구가 자던 날, 내가 책을 다 읽고 자라고 한 뒤 자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옆에서 자는 척 했다. 그러자 지들끼리 나를 사이에 둔 두 침대에서 서서 대화를 나눈다. 

하나: 네 엄마는 어디에 가셨니?” 

친구: “우리 엄마는 일하러 가셨어.” (집들이 파티 가느라 우리집에 애를 맡긴 거지만 애들은 일하러 간 걸로 오해했다.) 

하나: “너희 엄마는 휴가가셨니?” 

친구: “아니” 

하나: “그러면 Lagkagehuset (체인점 빵집)”에 가셨니?” 

친구: “아니” 

하나: “히히. 그거 나야. 내가 오늘 lagkagehuset에 다녀왔어” 

이날 하나는 우리와 그 빵집에 다녀왔는데, 이렇게 그걸로 농담까지 할 줄이야. 애들의 대화를 이렇게 들어볼 날이 없었는데 애들이 벌써 말장난도 치면서 노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이미 가까이 잘 노는 친구가 생긴 것도 놀랐고. 

내가 선생님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특정 친구와 놀기보다는 재미있는 걸 하는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데, 서서히 친한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툭하면 듣는 이름이 대충 열명 안으로 좁혀진 것만 봐도 그렇고. 

밤에는 옌스와 번갈아가며 책 읽어주고 재우는데, 간혹 주인공이 우는 이야기가 나오면 하나도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고, 티비에서 주인공이 울어도 같이 운다. 공감능력이 좋은 아이라고 보육원에서 들었는데 실제 우리가 느끼기에도 그렇다. 내가 공감능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 후천적으로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는 편인지라 그런 걸 볼 때 좋다 싶다.

아이가 태어나서 세살까지 부모를 기쁘게 하는 걸 보답하기 위해 부모가 그 나머지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은 적이 있다. 그 삼 년의 시간이 벌써 거의 다 흘렀구나. 앞으로도 계속 이쁘고 사랑스러운 딸이겠지만 이 첫 삼 년의 시간은 참으로 기적같은 시간이라고 기억할 것 같다. 작은 핏덩이에서 이렇게 아이같은 아이로 성장한 기적.

3주의 휴가

휴가 3주차에 접어들었다. 첫주의 시작은 집안 페인트칠로 땀을 빼는 육체노동이었지만 둘째주에는 시댁에서 먹고, 쉬고, 자고, 하나와 화끈하게 놀아주는 가족의 시간이었다. 마지막주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하나와 재미있게 놀아줄 수 있으면서도 우리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성인이 된 후 이렇게 여유로운 휴가를 보내본 적이 없다. 아니 그보다 일찍으로 시간을 돌려 중학생이 된 이후 이렇게 3주의 시간을 연속으로 여유롭게 보내본 적이 있던가.

덕분에 일상으로 돌아갈 힘이 나는 모양이다. 다소 긴 시간 쉰 탓에 돌아갈 걱정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3주간의 여름휴가라는 게 아주 적당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하나는 무섭게 크고 있고 한마디로 경이롭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이다. 애를 일반적으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다른 애들도 좋아하게 되고, 다른 부모들이 애들 자랑하는 걸 이해하지 못해하던 내가 그게 너무나 이해가 되고 애들의 성장 하나하나가 너무나 놀랍게 느껴진다. 기적같은 것이라 할까. 애들이 뛰어노는 혼돈의 상황이 평화로 느껴지게 바뀌는 기적. 관계의 축이 바뀌고 관심의 초점이 바뀐다.

이번 휴가는 그런 하나와 살갑게 부대끼는 그런 기간이다. 육아 초기, 사회생활이 없어지는 변화 속에 나의 시간을 간절히 그리워했다면, 그리고 육아가 제일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가장 힘든 시기가 지난 지금, 아이가 너무 이쁘고 같이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이제 다시 가을 한국 방문휴가를 가질 때까지, 연말 연시 연휴를 맞이할 때까지 하나와의 집중적인 시간은 미뤄둘 수 밖에 없지만, 그 때를 기다리며 일상을 열심히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내 사랑 하나

28개월 하나

특별히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좋은 게 아니면 하나는 밖에서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우리를 평균보다 힘들게 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친구를 만나러 나간 자리에 각자 애들을 데리고 왔는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카페라서 그런지 중간중간 나에게 와서 말을 걸긴 했어도 크게 힘들게 하지 않았다. 아빠랑 주말마다 가는 카페에서도 비슷하게 코너에 아이들 노는 코너가 있어서 그런지 왔다갔다는 해도 같이 먹기에 너무 힘든 아이는 아니다.

언젠가부터 기다린다, 순서를 지킨다는 컨셉을 이해하기 시작해서, “우리 이제 기다리는 거예요.”라고 이야기해주면 “Hannah venter! (하나는 기다려요)”를 조잘거린다. 수퍼마켓에서 자기 먹고 싶은 거 사달라고 해서 집어들고 계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 그때도 “Vi skal betale først! (우리 계산부터 해야해요)”를 외치며 기다린다. 계산대에서 계산이 끝나기가 무섭게 달라고 채근을 하기 시작하지만. 또 호기심 가는 물건을 만져보다가도 “그거 우리 것 아니예요.”라고 말하면 “Det er ikke vores! (그거 우리 것 아니예요)”라며 내려놓을 줄 안다.

간식은 중간에 주더라도 식사는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에만 하고, 안먹겠다 하면 안먹어도 된다 하고 중간에 끝났으면 식탁을 떠나도 좋다고 한다. 굳이 먹이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간혹 안먹는다 하면 한입정도 먹어보겠냐고 물어보는데 서서 한 입 먹어보고 나면 오래지 않아 우리가 앉은 자리에 와서 같이 먹으니 딱히 식사시간에 자리에 앉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굳이 와서 한 두입만 먹고 일어나는 걸로는 뭐라 하지 않는다. 처음엔 음식 남기는 거라든가 애써 만들었는데 안먹는 거라든가 하는 게 마음에 불편하고 스트레스가 되었는데,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나중에 배고프다고 따로 차려주고 하는 건 없으니 내가 더 육체적으로 힘들 건 없으니까. 안먹는 건 배가 안고파서 그러는 걸 것이라 생각하고 넘기고 나니 마음도 편해졌다. 애가 딱히 작은 것도 아니고, 보육원에서 애들하고 같이 먹으면 잘 먹는다니까 어느 때엔가는 잘 먹게 되겠지. 나도 만으로 9살까지는 진짜 잘 안먹어 작고 빼빼 마른 아이었으니까.

놀 때 순서지켜 놀라고 옆에서 상기시켜주면 순서 잘 지켜 놀고, 우리 것이 아니다 하면 금방 내려놓고, 우는 친구 있으면 안아줄 줄 알고, 인사하고 자리 뜨자 하면 씩씩하게 인사 잘 하고.

간혹 자기가 혼자 하려는 걸 우리가 도와주는 바람에 뒤로 넘어가 울고 난리법석을 떠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도 대부분 그 포인트를 아니까 그렇게 난리법석을 떠는 일도 많이 줄었다. 이제 말로 많은 걸 표현할 줄 알고.

넘어지고 해도 잘 안우는 편이고. 높은 데 기어올라가고 뛰어내리고 스릴 넘치는 일들을 엄청 좋아한다. 조심도 하지만 조심보다는 스릴에 무게가 더 실린 듯 하다. 이처럼 힘이 넘쳐 우리가 옆에서 그런 활동을 지지해주다보면 육체적으로는 힘들다. 하지만 주변 이야기 들어보면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다. 예민하지 않은 아이다.

기질 탓이 가장 크겠지만 보육원이나 집에서 많지 않은 대원칙만 지키면 대부분은 자유롭게 놔두는 편이라 자기도 그 규칙을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다른 애들 사이에서 같이 놀아야하는 환경에 두었을 때 노는 걸 보면 잘 아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 행동하는게 제법 다르다. 아예 공공장소에서 다른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없이 놀면 그건 다른데 내가 만난 친구의 애들과 같이 논다던가 하면 조금 조용하게 관찰을 많이 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편이다. 곧잘 놀기도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조잘조잘하는 게 없어진다.

이제 만 28개월을 채웠는데 정말 많이 컸구나 싶다. 이제는 작은 인간이 되어서 부모와 여러 형태로 상호작용도 하고 대화도 제법 하고. 말이 많이 느니까 이렇게 수월해질 수가 없다. 이젠 예전에 아주 힘들었던 기억은 힘들었던 사실만 기억나지 별로 생각나지도 않는다. 우리야 둘은 안낳을 거지만 이래서 둘 낳는구나 싶기도 하고. 젊었다면, 내가 다른 나라에 이주해 새 커리어를 시작한 것만 아니었다면 애 하나 더 낳았을 수도 있겠지만, 이도 저도 아니니 말이다.

시부모님도 나이가 많이 들어가시고 멀리 사시는데다가 우리 부모님은 이역만리 떨어져 계시니 더욱이 기댈 데도 마땅하지 않고. 출산부터 지금까지 급하게 애가 아픈데 휴가를 내기 어려워 하루 이틀씩 시부모님 손을 벌린 거 아니면 우리끼리 다 해야만 했기에 하나 더는 못하겠다. 애야 우리 애지 시부모님이나 부모님 애들이 아니니 못맡아주신다고 서운할 일도 아니고. 출산 이후 애 맡기고 옌스랑 단 둘이 밖에서 저녁식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도 그립고. 하나 더 생기면 그런 게 더 어려워질텐데… 하나로 부모가 되는 기쁨을 충분히 누리고 있으니 이를 두배로 굳이 늘리며 고난도 두배로 늘릴 생각은 잘 안드는 게 아마 나이 탓일 거라 괜한 나이 핑계를 대본다.

앞으로 하나랑 같이 해나갈 여러가지 일이나 기대해보며 한 명만 잘 키워보련다.

어른에게도 엄청 높은 미끄럼틀을 겁없이 타는 하나
뒤에 자기 키의 두배가 되는 장에 (기어 올라가도록 설계) 기어 올라가 뛰어내리기를 다섯번도 넘게 반복했다. 잡아주고 뛰어내리기 도와주느라 나도 힘이 들더라.
그네도 요상하게 타야하고. 재미있게 노는 법은 역시 애들이 잘 안다니까.

4월 일기.

논문이 바빠지니 다른 것에 소홀해진다. 논문은 대충 첫번째 포스트에 도착한 것 같다. 원시적 모델링은 우선 되었으니 이제 이론 연구와 모델링을 병행하고, 그 다음엔 분석하고 논문을 써야한다. 그간 진행이 참 지지부진하다 싶었는데, 그래도 1차 모델링을 하고나서 보니 어찌어찌해 절반은 왔구나. 약간이지만 안도가 된다.  물론 아직도 반 이상이 남았는데 시간은 반이 흘렀으니 긴장이 되는 게 더 큰다. 내 논문 생활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게 하나 있다면 항상 크리티컬한 관점으로 내 논문을 비판해 줄 남편이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모델을 보여줬더니 이건 고려해봤느냐, 저건 고려해봤느냐, 이 건 왜 이런 함수형태를 취했느냐, 독립변수 선택의 전략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며 꼬치꼬치 묻는다. 아직 그 단계까지 안갔는데 쏟아지는 질문에 무방비로 폭격을 당한 기분이었으나 나혼자 하는 씨름에 타인의 신선한 인풋이 좋은 자극으로 다가왔다. 역시 연구는 남과 공유해야하는 법이다.

우리 학과가 속한 인스티튜트에서 박사과정 공고가 났다. 자금사정이 트인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매주 수요일에 있는 인스티튜트 아침식사시간에 같이 참여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도교수에게 박사과정에도 관심있다고 했더니 지원서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나를 많이 아껴주시는 교수님이 있는데, 그분께도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무것도 보장되는 건 없지만 추천서만큼은 꼭 써주시겠다면서, 오히려 박사과정에 꼭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논문을 제외하고 학점이 10.9니까… 논문을 잘 쓰면 11점 정도로 학점은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라성같은 사람들이 완벽한 점수를 들이밀 걸 생각하면 아주 빼어난 점수는 아니라도 점수가 흠이 될 건 아닌 정도니 논문이 많이 중요하다. 사실 큰 기대는 못한다. 요즘 박사과정은 세계 각지에서 지원을 하니 경쟁률도 높고, 내가 원하는 연구방향과 인스티튜트에 가장 어필하는 방향이 매칭이 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든 해보지 않으면 될지 안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배웠으니까 우선은 지원을 해봐야겠다. 뭐 되든 안되든 간에 내가 박사과정까지 생각하리라는 건 정말 상상도 못해봤고 공부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는데, 역시 절대 안한다 못한다 이런 이야기는 함부로 하면 안된다.

덴마크어 필기 시험도 한달이 채 안남았고, 구술은 그 뒤 한달뒤로 다가왔는데, 시험은 큰 걱정이 되지 않는다. 선생님을 잘 만난 덕에 쓰기가 후반으로 갈 수록 느는 게 느껴졌다. 알듯말듯한 몇가지 문법이 자꾸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는데, 내 고민을 정확히 이해하고 딱 꼬집어 지적을 해주는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이 좋아졌다. 작년 말 시험으로 모의시험을 쳐보니 읽기는 12, 쓰기는 약한 12 또는 강한 10이라한다. 말하기는 한달 시간이 있기도 하고, 읽기와 쓰기의 중간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있는 부문이라 대충 10~12 사이로 모든 부문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보고 있다. 모듈 6를 하게 될지 아닐지는 지금도 결정하지 못했지만, 항상 옵션을 갖고 있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우선은 그대로 해보련다. 덴마크어 교육도 갈수록 팍팍해져가고 있고 그러다보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더 미루지 않고 올해 초 다시 시작하기로 한 건 아무래도 잘 한 결정이란 생각이다.

하나는 쑥쑥 자라고 있다. 이제는 제법 아가씨 태가 난다. 잔디밭을 뛰어다니면서 겁이 없어져서 그런지 위험한 일들을 서슴없이 해서 조금 걱정이다. 집에서 놀다가 살짝 휘청한 것 같았는데, 금속 바구니 테두리에 부딪혀서 앞니가, 그것도 윗니가 살짝 깨졌다. 다행히 신경은 안건드린 거 같긴 한데, 우선은 지켜봐야한다. 옌스도 같은 이가 부러진 적이 있다하니 젖니 깨먹는 건 이 집안 내력인가 한다. 이일로 나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고, 아픈 하나를 보기위해 마침 휴가를 내고 있었던 옌스에게 애를 맡기고 나가면서 그 스트레스로 인해 구역질이 났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도 구역질이 계속 나는데, 그걸 멈추기 위해서 산책을 해야했다. 원래 스트레스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신체적으로 반응이 올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건 내가 아닌 아이 일이라서 그렇다. 누가 있었어도 생겼을 일이었기에 나를 자책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애가 더 크게 잘못되었으면 어쨌나 하는 두려움에서 오는 구역질. 더 큰 사고가 나도 차분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말로 단단히 먹어야한다.

하나는 참 씩씩한 아이다. 웬만해서는 넘어진 거나 부딪힌 걸로 울지 않는다. 시부모님도 그렇고 보육원 선생님들도 인정하는 씩씩한 아이인데, 그렇다고 튼튼한 건 아닌 것 같다. 감기나 설사 같은 걸로 자주 아픈편이고, 폐렴 입원도 그렇고 천식성 기관지염을 앓는 일이 꽤 잦은 것 같다. 오늘도 그로 인해 응급실을 다녀왔으니… 물론 이번엔 응급했다기 보다는, 일반 GP, 스페셜리스트로 올라가는 시스템을 이용하기에는 응급했다고 봐야하는 거니까, 그냥 적기의 진료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겨울 아기로 겨울 초입부터 보육원을 시작해서 그런 것도 있다지만. 다행인 건 씩씩한 아이라 잘 견뎌준다는 것. 나도 생각해보면 어려서 자주 아팠던 것 같다. 항상 건강체질은 아니었고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자주 배가 아파서 학교를 많이 쉬었던 기억이다. 엄마도 내가 씩씩했었다는데, 지금도 꽤 씩씩한 거 생각하면 하나도 그런 면에서는 강한 아이일 것 같다.

요즘 얼마나 놀이터 생활을 즐기는지. 날이 좋아지면서 아파트 앞 잔디밭에서 놀리게 되니 동네 아이들과도 교류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한 때 비명을 고래고래 지르던 아래층 이웃 아이는 아직도 간혹 그렇긴 하지만 그런 게 줄었고, 그 아이의 오빠와 둘다 다정한 애들로 컸더라. 이제 곧 7살이 된다는 베어트람은 하나를 유독 이뻐해주고 쓰다듬어주고 (아마 여동생을 데리고 지낸 경험에서 우러나는 듯) 4살 여동생인 딕터도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아이었고, 둘다 하나와 함께 놀아주더라. 하나가 갖고 나온 공을 갖고 잔디밭에 삼각형으로 둘러 앉아 셋이서 공을 미는 놀이를 하는데 (그나마 하나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놀이로 배려해 준 베어트람이 놀랍다.) 곧잘 노는 게 신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놀라고 나는 빠져있는 건데 내가 중간에 괜히 옆에서 개입했나 싶었다. 말못하는 하나를 대변해준답시고, 아직 애가 이해를 못해서 그래, 하나야 앞으로 밀어봐, 이러면서 옆에서 참견을 했다. 그냥도 잘 했을 거 같고, 아니어도 오빠와 언니가 적당히 반응해가며 놀았을텐데 말이다. 앞으로는 다른 아이가 충분히 큰 경우 내가 조금은 더 뒤로 빠져서 지켜보는 역할에 그치는 것으로 해봐야겠다.

다음주에는 두바이에 주재중인 시누이네를 시부모님과 함께 방문하는데, 출산 후 거의 바로 이주한 시누이가족과는 하나가 처음으로 제대로 교류하게 될 거라 기대가 많이 된다. 조카들이 동생 만나서 놀아줄 기대로 부풀어있어서 더욱 기대된다. 수영복도 사고 이래저래 준비를 했는데 아픈게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오늘 해가 엄청 쨍하고 더웠는데, 하나 데리고 오전에 응급실에서 3시간 씨름하고, 가장 해가 쩅한 시간에 나와 낮잠에 든 애를 두시간 반이 넘는 시간동안 밀고 싸돌아다녔더니 몸에 화기가 든 기분이다. 아마 피부가 많이 탄 모양이다. 밤에 잠이 잘 안올 것 같다. 나는 못자도 애가 좀 잘 자줬으면 좋겠다. 기침을 덜하는 걸 보니 오늘은 잘 자려나? 역시 병원에서 천식약 흡입한 게 도움이 많이 된 모양이다. 딱 쓰고나니 기침하네. 흠… 역시 입초사인가…

임신 때보단 육아가 훨씬 힘들긴 한데, 출산 후 100일이 제일 힘들었던 거 같다. 지금은 다른 차원의 힘듦이지만, 육체적으로는 애가 어릴 때 더 힘들었던 거 같다. 얼마전 출산한 사람, 앞으로 출산할 사람 등 주변에 애 참 많이 낳는데, 신생아 냄새가 생각날 듯 하면서 그립기도 하지만 또 낳을 생각은 안난다. 다 잊혀져서 애를 또 낳는다는데, 힘든 기억은 잊혀졌지만 힘들었다는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내 애는 그만 낳고 남들 애기 보면서 신생아 이뻐하는 건 그걸로 끝내야겠다. 아… 신생아 볼 생각에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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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일상으로 천천히 복귀하는 중

한국에서 돌아온지도 어느새 보름이 되었다. 방안에서는 옌스가 하나 수면교육하느라 하나의 울음소리가 크게 새어나온다. 어제 건강상담사의 방문 이후 오늘부터 다 흐트러진 수면교육을 다시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만 5개월을 지나면서 하나가 서서히 분리불안을 느꼈는데 밤에 처음 재우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중간에 깨면 난리를 치면서 울고 나에게서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탓에 혼자자던 리듬이 다 깨졌었다. 젖 물리는 것과 자는 것은 철저히 분리하라는 것도 그렇고 중간에 깨고 나면 내가 하던 일을 다 중단하고 하나와 같이 자기 시작했는데, 그렇고나니 저녁의 삶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고 나만의 시간을 누리는게 불가능해졌었다.

한국에 가서도 이러한 일상이 지속되었고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돌발진을 앓으며 고열에 수분 섭취가 중요하다며 입맛 떨어진 애에게 수유를 늘렸는데, 밤중 수유가 늘어나며 낮에 잘 먹던 이유식 양도 줄고 하여간 여러가지가 꼬여있었다.

단호한 수면교육. 쉽지 않았다. 얼마나 울려도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장시간 우는 게 트라우마로 남아 아이의 성격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어 우선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고 어떻게 할 지 결정하기로 했다.

건강상담사는 하나의 정서적인 특성을 비롯해 발달상황을 관찰하고 수면 패턴과 수유에 대한 내 관찰사항을 듣고 나더니, 밤중 수유는 습관인 것 같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이건 내가 마음을 먹고 끊으려면 끊을 수 있는 것인데, 꼭 당장 끊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하니 내 편할 대로 결정하라 한다. 다만 밤에 많이 먹으면 낮에 별로 안먹으려하니 그 점을 고려하라고 했다. 수면 부족으로 성장에 저해가 된다며 애의 밤중 수유를 꼭 끊으라는 글 등을 보고 마음이 영 불편했었는데 그건 아니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밤중 수유는 서서히 줄여보련다.

밤에 악몽을 꾸는 듯 일어나서 우는 것에는 여행으로 인한 중이염 등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우리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흉내낸다했더니 그건 아닌 거 같다고 하고, 그 또한 혼자 스스로를 위로하며 잘 수 있게 해주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애가 새로운 습관에 적응하기까지 14일정도 걸리니 그때까지는 일정한 패턴으로 수면의식을 해주라더라. 14일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오랜 기간이다. 그리고 아빠가 재우는 것이 조금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여 오늘부터 옌스가 애 잠을 재우는 것으로 한 것이다. 나야 덕분에 7시부터 자유를 누리고 있어 좋지만 방 안에서 20분이 넘도록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영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약 열흘의 적응기간을 거쳐 이제는 하나와 6~7시간을 떨어져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전날 이유식을 준비해두면 오후 4시에 집에 돌아올 때까지 애 밥도 먹이고 놀고 산책도 다니고 하면서 하루를 하나와 함께 보내는 건데, 생각보다 잘 하고 있다. 그 전에 집안 살림과 애 보는 것을 내가 다 하던 것과 달리 자기는 애만 보는 것인데도 힘들어서 그런가, 그러한 일과가 끝나고서도 설겆이며 여러 집안일을 좀 더 꼼꼼히 하고 있다. 자기가 경험해보니 전업주부 하며 애 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나보다. 역시 사람들은 역할도 바꿔보고 해야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법이지.

아기 보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옌스는 힘이 들겠지만, 나는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너무나 좋다. 애 보면서 이것저것 정신없이 처리하던 노동의 일상에 젖어있던 탓에 한 주제에 집중하는 게 좀 힘들었지만 오늘은 다른 날보다 그게 잘 되서 기분도 좋았다.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학교로 통학하자니 비오는 날 조차도 상쾌하고 좋다.

논문 작성할 수 있는 고정 데스크도 신청해서 자리를 배정받았고, 읽기도 시작하고, 뇌를 조금씩 쓰기 시작하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느낌. 아무래도 아이가 아프면 집에 들어앉아 애도 봐야하고 할테니 여유있는 시작이 나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빠르게 돌아가는 것인데, 덴마크에선 대부분 생후 1년 이내에 기관에 애를 보내기도 하고 해서 이래저래 내 사정에도 잘 맞다. 오랫동안 영어도 안쓰다 보니 한국에서 옌스 및 친구와 함께 영어할 때 덴마크어가 자꾸 툭툭 튀어나오길래 영어도 퇴화되는 거 아닌가 걱정했었다. 그런데 다시금 아예 영어로 대화하는 환경에 돌아가니 그런 것도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엄마로서의 내가 아니라 온전히 나로서 있을 수 있는 환경에 돌아간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12월 첫주까지는 옌스가 육아휴직중이라 둘이서 같이 하나를 보육원에 보낼 수 있다. 그 이후엔 1주간 나 혼자 하나의 적응기간을 지켜보고, 다음엔 나도 완전히 워킹맘으로서의 일상으로 복귀해야지.

30분만에 옌스가 하나를 재우고 나왔다. 엄청 울더니… 앞으로 이렇게 하자, 하나야. 엄마도 이제 저녁엔 엄마의 삶을 찾을게. 고마워.

한국에서 맞이하는 8개월 육아단상

3개월 지나면서부터 수면교육을 시작했었고, 그런대로, 아주 쉽지는 않지만, 하나는 젖 없이 뉘여 재울 수 있고 한번 자면 다음날까지 통잠을 쭉 자는 아기였다. 그런데 뒤집기 시작하면서부터 밤에 자주 깨고 다시 잠에 못들고 젖을 그렇게 찾더니 그게 습관이 되면서 밤에 깨면 젖을 주게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7개월 들어서며 분리불안이 생기더니 밤에 잠에서 두어번 깨면 그 다음엔 나를 놓지 않는 것이었다. 거의 한달을 옆에 끼고 잘 수 밖에 없었다. 옌스는 직장에 나가야 하는 사람인데 옆에 뒤척이는 애를 같이 두고 자게 할 수 없었기에 하나 방에 매트리스를 넓게 깔고 잤다. 젖은 달라는 대로 다 줘가면서. 그간 쌓아온 작은 습관이 다 무너지는 거 아닌가 하며 걱정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국 수면교육을 다시 하기로 마음먹고 어제부터 시작했다. 어제는 한시간 울다가 잠이 들었고 오늘은 20분만에 잠이 들었다. 눕히면 앉고 서서 울어재끼는 아이를 2분, 3분, 4분과 같이 1분씩 늘리는 간격으로 다시 눕혔다. 오늘은 6분이 될 때 포기를 했는지 눕히자 마자 손가락을 두어번 빨더니 잠에 들었다. 짧으면 3~4일, 길면 1주일 걸린다는 수면교육이 가능한한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다. 젖을 자꾸 먹으면 깊게 못자게 되는 탓이었을까? 어제는 잘 깨지도 않더라. 한번은 그냥 두어번 토닥이니 다시 잤고, 한번은 3시가 넘어서였는데 토닥임도 안통해서 젖을 주니 많이 먹었다. 그리고 다시 누이니 그냥 잘 잤다.

사실 마음이 정말 안좋았다. 한시간이나 애가 우는 걸 보는 엄마 마음이 좋을 수가 없지. 순간 울컥하기도 하고, 멈춰볼까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이렇게 끼고 자면 8개월부터는 떼라는 밤중 수유를 도저히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서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내가 자면서 엄마를 찾아 울부짖는 악몽을 꿨다. 엄마와 사이가 멀어지는데 서러워 하며 엄마를 찾는 꿈. 수면교육으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싶었더니 한번 직접 겪어보라는 거 같은. 지금도 자는 중간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불쌍한 것.

이제 나흘이면 8개월이 되는 하나는 오늘 새로운 스킬을 완전히 굳혔다. 배를 땅에서 떼고 두 팔과 두 다리로 기기. 그리고 어제 수면교육에서 익힌 침대잡고 완전히 서기. 이걸 결합하니 벽타고 일어서기가 가능해지더라. 그리고 옆으로 걷기까지. 물론 아직 엄청 불안정하지만. 이미 가구잡고 서기를 하며 엉덩방아 찌며 다시 앉는 낙법을 익혀둔 터라 대부분은 잘 앉지만 위험한 순간도 연출되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육체적으로는 덜 힘들지만 끊임없이 지켜봐야 해서 힘이 들기도 하다.

페이스타임 덕에 생후 5~7주 사이 봤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잘 기억한 덕일까? 낯가림 좀 하고 있는 중인데도 부모님은 전혀 어려워하지 않고 처음부터 너무 잘 웃고 잘 지냈다. 그제와 오늘 네시간 정도 떨어져 봤는데, 울지 않고 잘 지냈다 한다. 분리 불안이 조금 사라진 것인 사인인 것 같기도 하고. 11월에 옌스와 둘만 있게 하는 시간이 덜 걱정된다. 내가 없어져도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서 말이다.

자기 의지도 강해지고 갈수록 활동적이어져서 힘든 면도 있지만, 항상 너무나 잘 웃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하나가 있어 육아가 참 행복하구나. 앞으로 이렇게 부모님이 사위와 손녀와 장시간 같이 보낼 일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옌스 육아휴직 덕에 이런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정말 다행이고 행복하다.

한가지, 하나가 카시트를 너무 싫어해서 어디를 가기 힘들다는게 큰 애로사항인데, 그것도 수면교육의 결과로 좀 나아지거나 그런 일은 없으려나? 한국은 너무 크고 대중교통이나 여러 인프라가 차 없이 애 데리고 다니기 어렵게 되어 있어 서울로 이동하는 게 과하게 부담스럽다. 버스는 거의 유모차 들고 타기는 어렵고 간혹 계단이 장애물이 되기도 하고. (장애인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 이 때문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두달 가까이 있는 기간 중 사람들을 오히려 별로 못만나고 갈 것 같아 그점이 많이 아쉽다. 그래도 애가 최우선일 수 밖에 없는 육아휴직 기간, 어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