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의 동물화 – 옌스 닮아가기

부부는 닮는다던데.

옌스가 나를 닮아가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옌스를 닮아가는 건 분명히 있다. 습관을 기르고 습관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는 면에서가 그렇다. 나는 옌스를 “습관의 동물”로 묘사할 만큼 무슨 일을 하든 앞으로 계속 해야할 일이면 쉽사리 습관화를 하고 꾸준히 이를 지켜간다. 덕분에 한국에 가서 산 건 두 달 뿐인데 지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의 자습을 통해 나와 한국어로도 제법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다.

나는 즉흥의 삶을 살아왔는데, 한 번 꽂힌 일은 짧은 시간동안 주구장창 파고, 실증이 나거나 한번 어떤 이유로 멀어지면 다시 그 길로 잘 들어서지 못하는 사람이다. 한번 망친 일은 다시 들여다보기 싫어서라고나 할까. 완벽”주의”의 대표자이다. 그러다 보니 삶에 있어서도 부침이 큰 편이었는데, 잘 할 때는 엄청 열심히 하고 열정적으로 살다가 번아웃이 오면 관둬버렸고, 살도 엄청 쪘다가 뺐다가를 자주 반복했다. 집도 일주일에 하루 힘을 내서 치울 때만 엄청 깔끔하게 치우고, 한동안은 어지르고 정리하기 싫어하곤 했다. 그랬던 내가 옌스와 함께 지내면서 많이 바뀌었다. 완벽주의를 천천히 버려가고 있다. ‘조금만 더 해보자.’, ‘좀 쉬었어도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게 더 나으니 다시 해보자.’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만났던 첫 해 겨울, 옌스가 퇴근하고 집에 놀러와서 같이 놀다가 산책을 나가자고 하면 어찌나 나가기가 싫던지. 하루에 한번은 꼭 산책을 해야 한다고 믿는 전형적 덴마크인인 옌스는 그래도 나가자고 나를 찔러서 추운 겨울 밤 나를 집 밖으로 끌어냈는데, 막상 나가면 좋은데도 왜그렇게 나가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싫다고 해도 좀 끌어내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다.

옌스는 시간 낭비하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간혹 파워냅이라고 10~30분 낮잠 자는 거 빼고는 뒹굴거나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엄청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환멸을 느끼게 하는 게 뒹굴거리는 것이었는데 그런 바른 모습을 몸소 보여주는 남편이 옆에 있으니 갈 수록 뒹굴거리지를 못하겠더라.

퇴근하고 와서 피곤하다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한국어를 공부하는 옌스를 보면서 덴마크어 공부하기를 불평할 수 없었고,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많이 먹고 빼는 건 건강한 삶의 습관이 아니라는 그 앞에 확 빼고 찌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직장생활을 한 동안 한번도 병가를 낸 적이 없었다는 옌스 앞에서 아프다고 늘어져있을 수가 없다.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 물론 지금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 이제는 그냥 그렇게 생각만 할 게 아니라 나도 그렇게 하고싶다. 절대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하고 아주 탁월한 재능은 노력으로 이길 수 없을지 몰라도 어설픈 재능은 노력을 이길 수 없다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그리고 예전엔 말이 쉽지, 실천이 어렵다고 하던 것들은 그냥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가 느슨해진 나를 발견하면 나중에 다시 나사를 조여야지 하는게 아니라 바로 나사를 조이곤 한다.

11월 자기가 하나를 보겠다고 하더니, 나보고 바로 공부하라고 재촉이었다. 일 하는 것과 똑같이, 평일엔 친구 만나고 놀지 말고 이제 공부하란다. 원칙주의자. 흠. 갑자기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 쉽지 않았지만, 자기도 갑자기 혼자 애 보기 힘들텐데 나를 뒤에서 밀어준 덕에 어느새 학교에서의 일상이 다시 익숙해지고 탄력이 붙었다.

예전엔 짐 회원권 끊어놓고도 가기 귀찮아서 안가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게 어디있는가. 짐에 못가는 날이면 집에서라도 하게된다. 하기 싫은 순간도 하기 싫다는 생각을 길게 할 수록 하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생각이 나면 몸을 움직여 스쿼트라도 몇번 한다. 그러면 몸도 다시 상쾌해져서 목표하던 바를 계속 추진하게 된다.

덴마크어도 마찬가지다. 2014년 8월부터 시작했으니 어느새 3년이 넘었다. 준외교비자로 온 탓에 비자를 바꾸기 전까지 1년은 6주에 100만원씩 내가며 공부했었다. 남들은 나라에서 내주는 돈으로 공짜로 배우는 덴마크어를… 그때까지만 해도 옌스와 결혼까지 하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관계가 유래없이 안정적인 사람이었기에 헤어지게 된다면 관둔다 하더라도 우선은 배워두겠다는 마음이었다. 산책을 나가면 몇 단어를 모르던 시기에서부터 무조건 덴마크어로만 말하기를 한다던가 옌스의 방식대로 우리만의 습관을 만들었었다. 책 읽기 연습을 하면서 옆에서 옌스가 발음을  교정해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내가 쓰는 글에 문법적으로 오류가 있거나 다소 이상한 표현들은 있을지라도 이제는 거의 업무를 할 수 있는 덴마크어에 가까워져가고 있다. 물론 덴마크어사전은 내 베스트프렌드지만.

항상 쉬지 않고 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그가 있었기에 간혹 덴마크어 배우는 게 힘든 순간이 와도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영어로 하루종일 수업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했던 첫학기, 집에와서 오늘 배운 것을 덴마크어로 말해야하는 게 짜증나던 날도 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버벅거리는 나를 상대하고 있어야 했던 옌스가 더 짜증났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옌스 한국어 공부 도와주는 것이 엄청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걸 보면… 계속 시도하지 않으면 늘지 못한다는 그, 자기도 말뿐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어찌 말이 쉽지 실행이 어렵다고 불평할 수 있겠으랴.

덴마크 엄마그룹에 껴서 덴마크어를 할 때 바짝 긴장했던 10개월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알아듣는 폭도 엄청 늘었고, 덴마크어로 말하고 생각하는게 스트레스가 아니다. 매일매일은 느는 걸 못느끼고 발전이 더디다고 생각하지만, 어느날 과거 어떤 날의 내 모습이 기억나는 때가 있는데 그런 때, ‘아하. 엄청 늘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외국인이니 못하는게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며 처음 배운 덴마크어로 무조건 여기저기서 시도해보는 나를 보며 옌스는 간혹 재미있다며 웃기도 했지만 그게 좋은 자세라며 항상 격려해줬다. 그런 그가 있었기에 더욱 더 철판을 깔고 시도했고, 간혹 내가 엉뚱하게 알아듣고 잘못 답하고 상대가 이상한 표정을 짓게 되는 에피소드들도 더해져갔다. ‘아, 내가 외국인이라 잘 못알아 듣고 헛소리를 간혹한다. 미안하다.’로 마무리 되는 에피소드를 집에 와서 전하면 옌스는 배를 잡고 웃곤했는데, 이렇게 틀린 것들은 잘 잊어버리지 않게 되어 오히려 더 좋았다. 외국인인 나를 위해 영어로 바꿔주는 덴마크인들에겐 나 연습 좀 하고싶다고 부탁아닌 부탁까지 해가며 연습을 했는데 간혹은 낯이 뜨겁긴 했어도 다 좋은 경험이었다. 덕분에 하나 보육원을 시작하면서 보육 선생님과 말도 다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늘은 참 날씨가 별로인데, 그래도 운동을 가야겠다. 짐 회원권도 끊었으니 자주 가야지. 레노베이션도 해서 많이 커지고 좋아졌더라. 열은 내렸지만 컨디션은 여전히 별로인지 하나가 껌딱지처럼 나에게 붙어있는다. 그래도 요즘 운동을 엄청 열심히 했더니 아기띠를 오래하고 있어도 허리가 하나도 안아프네. 그러니 더 해야지. 요즘 옌스가 하나를 재우는 덕에 7시 이후 내 개인 시간도 생기고 너무 좋다. 일 분담도 정해지고 이런 루틴 또한 분명해지니 삶이 편해지는구나.

 

덴마크 산후조리

영국 왕세자비가 출산 다음날에 퇴원한 것을 두고 한국에서 논란이 많이 있었다. 한국의 산후조리 관점으로 봐서 동양인도 이럴 수 있느냐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 우선 한국인의 출생시 머리둘레는 WHO 기준으로 평균이기에 애 머리가 커서 산후조리가 달라야 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또 흔히 이야기 되는 것으로 서양여성의 골반이 크고 근육량이 많아서 산후조리를 안해도 된다는 것이 있다.

같은 체중의 아이를 출산할 경우 서양모계가 동양모계보다 출산이 용이하다는 건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논문을 찾아볼 수 있었다. (대학원을 다녀서 저널 논문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간혹 임신과정에 대해 일반 책자로 알 수 있는 이상 더 파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이를 읽어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서양인과 동양인의 혼혈아기 출산시 제왕절개율로 보는 서양인과 동양인간 출산 난이도 차이 같은 것 말이다. (Michael J. Nystrom, Aaron B. Caughey, Deirdre J. Lyell, Maurice L. Druzin,Yasser Y. El-Sayed (2008). Perinatal outcomes among Asian–white interracial couples in American Journal of Obstetrics & Gynecology 199 (4), (385.e1-385.e5) DOI:10.1016/j.ajog.2008.06.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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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중요한 연구결과를 발췌한 표이다. Cesarean delivery (CD, 제왕절개)율을 보면 아시아 모계와 백인 부계의 자녀는 33.2%이고 백인 모계와 아시아 부계의 자녀는 23.0%이다. P value가 0.001보다도 낮아 매우 유의미한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같은 아시아-백인 혼혈자녀를 출산할 경우 백인 모계 출산시 제왕절개율이 아시아 모계 출산의 경우보다 10.2%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골반 골격 차이 등을 포함한 생물학적 차이가 이런 차이를 낳는다고 볼 수 있다. (논외의 발견이지만, 각각의 하위그룹 중 인종간 커플의 샘플사이즈를 보면 아시아 모계와 백인 부계는 690, 아시아 부계와 백인 모계는 178로 아시아 부계와 백인 모계 결합이 훨씬 드문 것을 볼 수 있다.)

단지 이것만 놓고 이야기하면  동양 여성의 골반이 작아 산후조리도 더 길게 해야한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백인커플과 동양인커플의 제왕절개율을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더 크게 태어나는 태아로 인해 백인커플의 출산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골반 사이즈 등의 체격 조건은 서양 모계가 출산에 더 용이하지만 아기가 더 커서 서양인의 출산시 충격이 동양인보다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골반 사이즈 차이로 인해 서양여성이 더 쉽게 출산할 수 있고, 따라서 산후조리가 필요 없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근육량은 어떨까? 인종간 선천적 근골격계 질량 차이를 보면 설명이 될 것 같다. (Silva AM, Shen W, Heo M, et al. Ethnicity-Related Skeletal Muscle Differences Across the Lifespan. American journal of human biology : the official journal of the Human Biology Council. 2010;22(1):76-82. doi:10.1002/ajhb.2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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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그래프의 여성 근골격량을 보면 빨간색이 백인, 보라색이 아시아인이다. 남성의 경우 아시아인은 생략되었다. (아마 적은 샘플사이즈 등으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안나와서 생략된 것 같다.) 여성의 인종간 근골격량 차이는 남녀의 근골격량 차이에 비하면 근소한 차이를 보이나 회귀분석으로 나타나는 백인과 아시아인 여성간 근골격량 차이는 전연령대에 걸쳐 개략적으로 3-4킬로그램 정도로 나타난다.  어쩌면 이 근골격량의 차이가 모체에 주는 출산의 충격에 차이를 빚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근골격량 3~4킬로그램 차이는 백인여성과 아시아인 여성의 키차이를 고려하면 골반 인근 근골격량 차이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사실 난 덴마크식 산후조리를 하고 있다. 덴마크식 산후조리는 사실 우리나라 의학계에서 조언하는 바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 의학계의 산후조리에 대한 조언이 덴마크 의학계의 그것보다는 우리나라 전통 산후조리 방식에 근접해 있으나, 임신 기간 중 체중 관리 및 운동에 대한 조언과 출산 후 그것에 대한 조언은 원론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산후조리방식은 사실 구전으로 내려온 전통적 방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사실 이는 지금과 많이 다른 과거의 주거문화 및 생활방식에 기초해 형성된 것으로 지금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출산 후 산후조리의 차이는 임신 기간 중 산모의 신체관리 방식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덴마크에서는 임신 기간 중 꾸준한 운동을 권장한다. 근손실을 최대한 막아야 출산시 용이하고 출산 후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임신중에는 무조건 휴식을 권장하고, 임신 초기 몸가짐을 조심하여 신체활동을 극히 줄이도록 주문하는데 그게 근손실에 큰 영향을 준다. 또한 의사가 체중관리를 요구한다 하더라도 임신 기간 중 먹고 싶은 것 못먹으면 스트레스가 애에게 간다든지, 몸이 요구해서 먹는다든지, 그때 남편이 원하는 것 안사다주면 평생 한이 된다든지의 이유로 원하는 대로 먹게 하는 경우가 많다. (과도한 체중 증량은 임신중독증, 임신성 당뇨, 부종, 아이의 체중 증가 – 이는 아이의 장기적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한다. – 등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살이 트는 것도 피부가 감당하기에 너무 빠른 체중 증량과 관계가 있다.)

근손실과 과도한 체중증가의 결합은 출산 후 신체가 받는 충격을 가중시킨다. 출산에 대비해 관절을 유연하게 만드는 릴렉신 호르몬의 본비는 출산후 6개월여까지 지속되는데, 이로 인해 출산 후 가볍게 걷는 것 자체도 너무 힘들고, 애를 안거나 돌보는 일도 힘들어진다. 그 와중에 급격히 체중이 느는 아기를 돌보면서 집안일을 하다보면 신체에 무리가 오고 소위 말하는 산후풍이라는 것을 겪게 되는 것 같다.

진짜 모체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의 임신과 출산후 산후조리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신 전부터 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늘려 임신기간 중 일부 근손실에 대비하고 임신 기간 전체기간 중 기간별로 알맞는 운동을 통해 근육량의 손실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 그리고 출산 후에도 초반부터 기간 별로 권장되는 운동을 함으로써 골반저 회복부터 시작해 신체 회복을 돕고, 가벼운 걷기를 포함해 서서히 정상 생활로 복귀하는 것이 필요하다.

출산 다음날 나는 퇴원을 해 복귀했는데, 경산의 경우 출산 후 6시간 내 퇴원하는 (산모가 난산 등으로 별도의 이유가 있지 않는한) 것이 이해가 간다. 나의 경우 초산이라 출산 후 어떤 일이 생기는 지를 잘 예상하기 어려워 산파와 건강상담사 (Sundhedsplejerske, 간호사 중 출산 및 육아와 관련된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자격을 획득한 전문상담사) 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하루 머물렀지만, 지나고 보니 바로 퇴원해도 상관없었다.

물론 앞으로도 산후조리는 시간에 걸쳐 해야하는 일이기에 추가적으로 관찰해보고 판단할 사항들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시아인이라 해서 꽁꽁 싸매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지루하게 산후조리원에 앉아서 산후조리를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인 입장이다. 초기 한달 정도는 모유 수유 및 기타 육아의 리듬과 패턴을 수립해 가는데 적응기간이 필요하기에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막대한 돈을 들여 산후조리원에 가서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사도우미를 쓰는게 더 낫지 않나 싶다. 그리고 모자 동실 쓰는게 엄청 힘들다고 하는 글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읽었는데, 사실 애가 가장 가볍고 요구사항이 가장 간단한 신생아 시절에 미리부터 아이에 대해 알아가고 밤중 수유의 패턴 등에 익숙해지는 것이 산후조리원 생활 이후 불쑥 커진 아기와 갑자기 둘이 앉아 그제서야 아이에 대해 배워가는 것보다 수월한 것 같다. 이제 13일차 된 하나를 보면 대충 뭘 원하는 지 우는 형태로 알겠고, 아이도 부모에 대해 빠르게 익혀가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 산다는 게 여러모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재미가 있다. 내 지인들은 내가 특별한 경우라고 하지만, 사실 내가 특별히 다른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신체적으로 유별나게 좋은 조건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 경험을 공유함으로서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간접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니 내가 쓰는 글이 절대적이거나 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이제 절반이다.

어제부로 만 20주였으니, 이제 절반이다. 오늘 아침 잰 체중으로 보면 임신시점보다는 여전히 1kg이 빠진 상태지만, 임신 아주 초기에 입덧으로 몸무게가 준 경우는 그냥 그걸 임신 시점 몸무게로 봐도 무방하다고 하니, 3kg 찐 걸로 보면 되겠다.

배가 눈에 띄게 불러오고 있다. 헐렁한 옷을 입는 경우가 아니면 임산부인 것을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불러오는 배와 함께 뭘 먹어도 쉬이 포만감이 느껴져서 충분히 먹기가 힘들다. 입덧만 끝나면 식욕이 돌아올 거라 하더니만, 입덧이 끝난지 한달 반이 지났지만 폭풍식욕 같은 건 경험하기 어렵다.

그나마 이 체중을 늘린 것도 어거지로 열심히 먹어대서인 것을 생각하면 체중이 많이 늘어 고민하는 임산부는 어떻게 이 배부른 느낌을 견뎌내고 먹었을까가 난 되려 궁금하다. 아니면 이런 배부른 느낌도 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며 체중을 늘리는 법을 고민하자 식단에 관심이 많은 여자 친구들로부터 이러저러한 조언을 얻었다. 아보카도, 렌틸콩, 견과류, 크림치즈 등을 많이 먹으라는 것. 안그래도 아침으로 자주 토스트에 아몬드 크림치즈를 듬뿍 얹어 먹으며 우유를 큰 걸로 한 잔 가득, 사과와 자두 등을 2~3개 먹고 있다. 뭔가 부엌에서 열심히 조리해야 하는 게 한껏 귀찮아진 요즘, 학교 구내식당에서 콩류 등도 열심히 먹고 있는데, 아보카도는 추가할 좋은 아이디어이다.

사다두고 잘 먹지 않고 있는 김치를 빨리 먹어 없애고자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정말 간만에 대 성공. 제일 쉬울 것 같은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만드는 게 어렵다니. 이상하게 고슬고슬한 볶음밥은 어떤 것이든 종류를 막론하고 참 어렵더라. 아무튼, 그걸 먹어서 그런가. 벌써 6시가 다 되어가고 있는데, 배가 아직도 빵빵하다. 저녁 식욕은 제로. 내 현재의 배 크기와는 상관없이, 그냥 느껴지는 기분으로는 배가 앞으로 터져버릴 것 같다. 내일부터 다음주 일요일 저녁까지 꽉 채워 1주일을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옌스는 집에서 밥하기 싫으면 나가서 한식당에 가더라도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하는데… 이 꽉 찬 배로…

아무래도 오늘 운동을 너무 안해서 그런 모양이다. 통학을 위해 매일 20km정도 자전거를 타는데 주말엔 아무래도 운동량이 줄어드니까. 출산 직전까지 다닐 학교가 일종의 내 임신 기간 중 트레이너인 셈이다.

오랫동안 쉬었던 발레는 지난 주부터 다시 시작했다. 오랫동안 안한 것도 있고, 너무 뛰는 센터워크는 좀 무리일 것도 같아 초급반으로 신청을 했다. 발레 선생님께 임신 사실을 알리고 났더니, 발레는 출산 전날까지도 해도 되는 운동인 거 아냐며, 오히려 골반을 열어줘서 아이를 쉽게 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운동이니 끝까지 열심히 나오라고 한다. 나도 그 사실을 듣고 간거지만, 그렇게까지 이야기 하니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좀 이렇게 움직여줘야 소화가 되어 먹을 생각도 들고 몸무게도 조금이나마 더 늘릴 수 있겠지. 아흐레 있으면 볼 2차 초음파가 엄청 기다려진다. 애는 잘 자라고 있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