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사랑

친교는 역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게 있어야 하는 것일까? 발레를 통해 일주일에 한두번씩 꾸준히 만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부터 그들과 사소한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중 한명과는 집에 가는 길을 함께 하면서 친분이 쌓이기 시작했다. 친구가 모자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나와 같이 열정을 공유할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좋다. 아무래도 내 발레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발레를 하지 않는 다른 친구들이 진정으로 공감해주긴 어려울 것이지 않는가. 발레는 건강 뿐 아니라 나에게 정말 여러가지를 주는 것 같다.

2012년 봄에서 여름사이 어딘가였던 것 같다. 발레를 처음 시작한 게. 어느 학원에서 시작해야할 지 감이 안서서 당시 코트라 다니던 감각으로 우선 발레학원협회부터 찾아본게 시작이었다. 협회에 회원학원 리스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역시나 내 예상대로 그런 리스트가 있었고, 그 리스트의 무수한 페이지 중 첫 페이지에 국립발레단이 있었던 게 발레와의 첫 인연이었다. 국립발레단 아카데미에 성인취미반이 있었는데, 마침 코트라와 그리 멀지도 않았고, 당시 업무로드가 심각하지 않아 야근에 대한 압박이 크지 않은 부서에 있다는 것도 다 잘 맞아 떨어져서 초보로서 아주 좋은 곳에서 발레를 시작할 수 있었다.

스트레칭은 괴로웠지만 수업을 끝내고 나면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신경 쓸 게 많은 동작들과 함께 온 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는 강한 운동수준이 버무려져서 복잡한 머릿속은 깨끗이 비워지고 몸은 한껏 달아올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로 충전된 상태.

주중 평일 2회 한시간 반씩 참석하던 수업이었는데, 주말 클래스에도 신청을 하며 주 4회가 되고, 중급반 참석도 허락받게 되며 평일에는 세시간씩 클래스를 들을만큼 몰입을 했더니 한달에 1킬로그램씩 빠지면서 한국 귀국 후 베이킹으로 찌운 살을 다 떨어냈더랬다. 덴마크에 와서 딱 나에게 맞는 수업을 찾기가 어려워 중간중간 수업을 다녔다 안다녔다 하기도 했지만 임신 후기 및 출산 후를 포함한 2년반 정도의 휴식기를 제외하면 손에서 발레를 완전히 놓은 적은 없었다. 그렇게 2020년 지금까지 해온 발레. 나에게 이렇게 오랜 기간 열정을 투자해온 일은 없었다.

지금도 끊임없이 고민을 하고 집에서 이래저래 연습을 해보고 배울 게 너무 많지만, 예전보다 테크닉적으로 훨씬 많이 늘고 이제 조금 춤을 춤답게 출 수 있어서 훨씬 더 즐겁다. 스트레칭도 예전처럼 괴롭지 않고 달아오른 몸을 약간 진정시키며 몸을 가다듬는다는 느낌에 시원하고 좋다. 상체와 하체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 느끼면서 몸의 근육이 눌린 스프링마냥 장력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꼭 튕겨나갈 것 같은 긴장감을 느끼는 것도 너무 좋다. 몸과 표정으로 그 긴장감을 표현해낼 수 있다는 사실도 쾌감으로 다가오고, 춤을 추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내 무대의 우아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에서도 설레인다. 높고 딱딱한 토슈즈를 신고 움직이다보면 물집도 생기고, 물집이 생겼음을 알기도 전에 이미 터져있고 하는 통증도 있지만, 사실 그걸 알기도 어려울 만큼 동작 자체에 집중하게 되어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게 직업이라면 다른 일이겠지만, 취미로서 접근하는 나에게 발레란 정말 아름다운 열정의 대상일 뿐이다. 끊임없이 추구해가는 그런 대상.

다음 시즌부터는 고급반에 등록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콤비네이션도 많이 길지만,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이제 거기 등록할 예정이다. 요일이 내가 원하는 타이밍은 아니지만, 이번주 시즌 마지막 수업을 대타로 뛴 분이 고급반 담당 선생님이 될 분인데, 수업이 너무 즐거웠고 몸 뿐 아니라 두뇌적으로도 챌린징해서 희열이 느껴졌다. 이분이랑 다음주 월, 화, 수요일에 썸머 캠프 수업도 함께 할 예정인데 너무 기다려진다. 이제 주말만 지나면 바로네. 아…

발레, 내 몸을 알아가는 여정

올해 늦봄부터 발레를 다시 시작했다. 자동차를 산 덕에 저녁준비를 해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도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클래스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신 중기 이후 휴식을 하면서 그 사이 너무나 그리웠는데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2012년부터 시작한 발레이니 발레와 연을 맺은지도 만으로 7년이 되었구나. 휴식을 취했어도 운동을 할 때도 플리에와 탕듀 등 기초 동작을 트레이닝해왔으니 그 끈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정도 뿐이었다. 


거기에다가 중간에 오른쪽 고관절에 문제가 생겨서 물리치료도 받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내 골반이 왼쪽으로 약간 돌아간 탓이었다. 그건 발레와 상관은 없이 오래된 자세의 문제였는데 잘못된 체형에 장기간의 발레와 덴마크 와서 장거리를 뛰곤 한 자전거 페달밟기가 얹어서 문제가 불거진 거였다. 


발레를 시작한 지 오래되면서 내 몸의 목소리가 의미하는 바를 읽기 시작했다. 급성이 아닌 만성 부상은 뭔가 잘못된 자세에 부담이 오랜시간 얹어지면서 발생하는 바, 만성 부상이 생기면 뭔가 고칠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고칠 수 있다는 것도. 


왼다리로 섰을 때 턴아웃이 잘 안되어 자세가 풀리는 것이 왼다리의 문제라 생각했다. 그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드는 자세에서 고관절에 자꾸만 부담이 되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두 문제는 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같이 생기는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오른쪽 골반을 잡아주는 근육이 약해서 그게 밀리니 아무리 왼쪽의 턴아웃을 잡으려 해도 자꾸만 풀리는 거였다. 오른쪽 다리로 서는 건 안정적인데 왼쪽 다리로 서는 건 이 이유로 불안정하고 자꾸만 흔들리고 옆으로 무너지고, 간신히 서게 되도 종아리와 발에 부담을 많이 줘야나 가능했는데, 오른쪽 골반을 안정시키는 데 같이 신경을 쓰니 자연히 왼쪽을 축으로 하는 동작이 안정되는 거다.
남이 몸을 보고 교정해주는 것만으로는 맞는 자세를 찾을 수 없다. 각자 해부학적인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도 보기에 맞아보이는 자세를 찾아주면서도 맞는 동작은 이런 느낌이어야 한다며 움직일 때 느낌을 시각화해서 설명해주는 것이다. 즉 누구에게나 완벽하게 들어맞는 동작의 공식이 아니라 원칙적 공식에 각자 자기의 몸에 맞게 오차 보정을 해야하는 거다. 


여러 선생님을 거쳐오며 선생님들이 설명해준 내용을 조합해보고 내 몸의 소리를 들어가다보니 그간 고생해오던 고관절 부상은 없어졌다. 어깨도 그렇고. 의외로 내 몸의 오른쪽 소속 관절들이 왼쪽보다 불안정한 것 같다. 이런 불안정성을 교정하면 할 수록 몸의 근육부피 차이도 줄어든다. 짝짝이 가슴도 거의 같아졌고.


다른 운동과 달리 발레는 이런 몸의 소리를 세세하게 듣게 만들어준다. 각자 좋아하게 되는 운동과 그 이유가 다르듯이 모두에게 같지는 않겠지만 이런 이유로 나는 발레를 사랑하고 아마 지금 클래스에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이가 많이 들어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도 계속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