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언홀름 시댁 방문

회사일이 바쁜 연말 옌스는 함께 할 수 없던 보언홀름 여행을 하기로 결정한 건 하나에게 한두달에 한 번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게 해주고 싶은 때문이었다. 한달도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 시부모님이 그 때 오실 터라 또 오시라 하기도 그렇고, 주로 시부모님이 오시니 간혹은 우리가 주도성을 보일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삼박 사일 여행. 

아침부터 애를 데리고 여행하긴 부담스러워서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비행기를 타기로 했고, 낮잠으로 자고 나 하나를 보육원에서 픽업해서 공항으로 가는 플랜이었다. 전날까지 우산식 유모차를 가져갈 지 일반 유모차를 가져갈 지 결정을 못하고 갈등하다가 비오고 바람이 많이 불 거 같아 일반 유모차를 갖고 가기로 막판에 결정했다. 일반 유모차를 갖고 여행하는 건 처음이라 항공사 사이트를 뒤져보니 2세 이하 아이는 유모차가 공짜라고. 다만 파손을 우려해 airshell이라는 커버를 권유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픽업해서 어떻게 부치는지 개괄적인 설명은 나오는데 구체적으로는 안나와서 살짝 긴장했다. 나 혼자 여행이고 뭔가 새로운 프로세스에 시간적 압박까지, 하나가 낮잠으로 좀 갈게 잔 탓에 공항에서 시간이 짧았더랬다. 

체크인을 하고 짐택을 하나 더 받아 에어쉘을 찾은 후 거기에 유모차를 접고 바퀴를 분해해 넣은 후 잘 포장해 오드사이즈 배기지 체크인 장소에서 짐택 붙여 체크인 하면 되는 거얐다. 애가 하나 옆에 있다는 게 꽤나 챌린징헸다.

어찌어찌 잘 놀고 탑승 직전 기저귀도 갈고 하며 비행을 잘 마쳤다. 유모차도 손상없이 잘 도착했고. 몰랐는데 오늘 바람이 너무 세서 페리가 다 취소되었다더라. 어째 우리 비행기 앞에 게 연착이 된 이유가 강풍이라더니, 우리 비행기 이륙도, 특히 착륙이 엄청 다이내믹헸다. 내가 경험한 가장 무서운 랜딩. 

이젠 자동차 타는 것도 좋아하는 하나를 데리고 시부모님네 잘 도착했다. 하나는 장난감들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전에 갖고 놀아본 민트껌 통을 들고 와서 냄새 맡겠다고 열어달래는데, 아 다 기억하는구나… 싶어 놀라웠다,

밥도 잘 먹고 즐겁게 놀다가 즐거워서 안자고 싶어하는 애 재우다가 나도 잠깐 잠이 들었다. 한산하신 반이나, 옌스가 전화해서 깼다. 

시부모님은 우리를 위해 일찌감치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셨고, 식사도 준비해두고 계셨다. 거의 바로 먹을 수 있게, 잘 곳도 이미 준비가 되어있었고. 항상 그렇듯 완벽한 준비, 오는 길은 힘들다만 막상 오면 너무 잘 쉬다가서 자주 오고싶은 시댁, 우리 부모님도 가까이 사시면 좋으련만 내가 멀리 사는 거니…

내일은 도서관에 가봐야겠다. 이번엔 하나가 더 좋아할 거 같다. 여기 와서 일 안하고 애랑 놀다만 가는 건 일연민에 처음이니 열심히 즐겨야지. 아자!

15개월의 하나 in Dubai

시어머니의 생신을 두바이 시누네에서 하신다 하여 우리도 이때 아니면 또 언제 두바이에 갈 지 몰라 같이 방문했다. 6시간의 비행동안 하나는 한숨도 자지 않았는데 안그래도 오전 45분 낮잠외엔 자지 않았던 터라 긴장이 엄청 되었다. 다행히 덴마크 시각으로 1시 정도에 큰 무리없이 잠이 들었다. 그렇게 맞이한 15개월의 날. 비행기에서 Hvad er det? (이건 뭐예요?)를 상황에 맞게 두번이나 해서 우리를 놀래켰던 날이다.

두바이는 많이 덥지만 대충 40도 이내라 못견딜 정도는 아니다. 조금 더 지나면 라마단인데다가 더 더워지면 정말 다닐 수도 없다해서 그나마 괜찮을 때 온 건데 잘 온 것 같다. 도시도 깔끔하고 좋더라. 물론 더워서 난 여기서 살라면 그닥 살 고 싶지 않겠지만애가 있어서 어차피 여기저기 많이 다니기도 어려워서 하루 한군데 정도 소화하는 게 전부인데 집에 풀장이 있어 오전 오후엔 여기서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하나도 덕분에 수영하는 것에 익숙해질 듯.

시어머니 생일 점심으로 아랍의 탑 (burj al arab) 에 있는 캐주얼한 식당에 갔는데 사람이 아주 많지 않아 하나도 사촌들과 많이 돌아다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사촌 세명이 모두 하나를 이뻐하고 잘 놀아줘서 참 좋았다. 금방 사촌들을 좋아해서 가서 안기기도 하던 하나. 이집에 있는 고양이 엘비스를 통해 고양이를 처음 본 하나는 만져 보고 싶은 마음 반, 무서운 마음 반에 가까이 다가가다가 울곤 했다.

시누이네는 시누이 남편이 주재원으로 나와있어서 여기 최소 3년을 살 계획으로 나온 건데, 기름 1리터에 500원 정도밖에 안하고 차값도 다른 나라에 비해 싼 이곳에서 아니면 이렇게 좋은 차를 못탄다고 해서 시누이 남편은 마세라티를, 시누이는 랜드로버를 샀단다. 일생에 나도 이때 아니면 마세라티를 타볼 일 있겠나 싶어서 타봤는데, 엄청난 출력을 가졌긴 한 모양이다. 안에 소재도 엄청 좋고. 아랍의 탑 호텔에서 나올 때 앞에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손을 흔들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유명한 사람이겠거니 했나보다.

집에 오는 길에 시누이 남편의 직원이 우리 바로 뒤에 멈춰섰다며 신호 정차시에 잠시 나갔다왔다.  그가 차로 돌아온 후 그 직원이 인사한다며 정차중 엔진소리를 세게 내었는데, 돌아보니 페라리였다. 두바이엔 진짜 비싼 차들이 널려있더라. 나름 덴마크 회사 다닌다고 조심스러웠는지 차를 사기 전에 시누이 남편에게 자기 아무 차나 사도 되냐고 묻더란다. 아마 사장이 마세라티를 몰고 있으니 덜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만…

이제 이틀 남았다. 4박 5일이지만 밤에 와서 오전 일찍 가는 여정이라 사실상 4박 3일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하나가 사촌들과 유대관계도 조금 다지고 즐겁게 놀다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남은 날들도 기대가 된다. 비행은 은근 스트레스였지만, 잘 온 듯.

진짜 오랫만에 한국이 아닌 곳으로 여행 온 것 같다. 3년 조금 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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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 홀로 한국여행

한국은 정말 가마솥 더위가 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서히 올라가는 기온에 적응했다면 모르겠지만 조석으로 15~20도 사이의 기온과 함께 부슬비, 바람이 결합된 날씨에 적응되어 있던 나에겐 견디기 힘든 날씨였다. 도착하는 날은 오후 3시에 랜딩하고, 출발하는 날은 오후 1시 반에 이륙하기에 공항에서 집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여드레 반도 안되는 기간동안 머물러있었는데, 그게 짧으면서도 참 길게 느껴진 것 또한 이 날씨 때문이었다.

속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건 아니라 하루 한끼 이상은 제대로 먹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계획했건 음식들의 상당 부분을 먹을 수 있던 것은 참 다행이었다. 먹고 싶었던 갖가지 나물과 낚지 볶음, 칼국수, 만두, 각종 해물찜 등. 깻잎 씨앗과 콩나물 콩을 사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다 만나지 못했던 것도 아쉽지만, 이 또한 시간이 너무 없었다. 날이 너무 덥고, 배가 조금씩 나오면서부터 중간중간 쉬고도 싶어지는 탓에, 점심, 저녁 약속 모두 잡고 비는 시간을 떠도는 일정을 소화할 수가 없는 것, 주말이 한 번 밖에 없는 것도 모두 제약요소가 되었다.

한국에서 떨어져있던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한국이 낯설어지는 면도 늘어난다. 새로이 봐서 낯 선 모습도 있지만, 그간 보지 않아서 낯설어진, 원래는 익숙했던 모습도 있다. 주변에서 한국말만 들려오는 것, 시내 도심에서 다른 도심으로 가는데까지 한시간씩 걸리는 것, 더 거칠어진 듯한 사람들의 운전 습관 (도로 한복판을 가로막는 꼬리 물기는 정말 인상깊었다.), 지난번과 또 달라진 사람들의 메이크업 유행, 길이든 상점이든 식당이든 어딜가나 사람으로 붐비는 모습, 맛집 앞 길게 늘어선 줄 (특히 종로의 모밀집이나 강남역의 셰이크셱 버거), 줄 서서 걸어가는 듯한 강남대로의 인파, 여기저기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왕복 8~10차선 도로, 줄어든 성형외과 광고 (전에 한동안 어딜가나 성형외과 광고로 도배되어 있었는데.) 식당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번호벨, 소리 높여 사람을 부르는 식당 문화, 거리에 거의 보이지 않는 자전거, 교차로와 횡단보도의 긴 신호등, 낮은 세면대, 줄어든 길거리 흡연자 수 (거의 못 본 것 같다. 덴마크에서 훨씬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듯.), 임산부에게 몸 조심하라고 나보다 더 걱정해주는 사람들, 서로 계산하려고 경쟁하는 사람들, 점심시간에 쏟아져나오는 직장인 인파, 없던 사이 새로 생긴 많은 건물 등등.

낯설다는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내 삶의 기본 환경이 달라졌다고 눈에 새롭게 띈다는 사실이 재미도 있고 사람이 얼마나 쉽게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는 지 간사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제 짐을 싸야겠다. 아침 8시 반엔 출발해야 하는데, 어느새 오후 6시가 넘었다. 내년의 한국방문은 이번과는 완전 양상이 다를 것이다. 나 하나 바라보는 어린 아기를 데리고 들어올 것이고, 남편도 한달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머물며 한국 생활을 간접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을 것이고, 시부모님도 한국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더 특별했다. 내 홀몸 (뱃속의 태아는 아직 내 일부인 것으로 치고)으로 하는 마지막 여행. 이 여행을 끝내는 의식으로 짐을 싸고, 돌아가자마자 바쁜 리듬으로 시작될 덴마크의 생활을 미리 계획해보며 오늘을 마무리해야겠다.

나의 첫 미국행과 그에 얽힌 기억들

나의 고등학교 단짝친구는 나의 직장 동료이기도 했다. 이제는 회사를 관뒀으니 더이상 직장 동료는 아니다. 회사 생활 중 힘든 상황이 있을 때나 좋은 일이 있을 때 누구보다 상황을 더 잘 이해해줄 수 있었던 친구다. 우린 비슷하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닮았다. 많은 어려움과 행복함을 나눴던지라 더욱 소중하고, 서로 배려하는 따뜻함이 항상 느껴지는 그녀다.

그녀가 워싱턴 D.C.에 있고 내가 뉴델리에 있던 2008년,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24시간을 날아 그녀를 방문했다. 알았어도 갔겠지만, 그렇게 오래 걸리는 지 잘 모르고 계획한 여행이었다. 비행기의 연발로 공항에 늦게 도착한 탓에 새벽같이 암스테르담에서 나를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던 동기를 만나지 못하고 – 아직도 너무나 미안한 기억이다. – 게이트 앞에서 연결편 비행기를 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승객이 다른 이에게 비행시간을 물어보니, 8시간이라고 대답하는 걸 들었다. 정확한 시간을 모르니 알아두면 나쁠 것도 없겠다 싶어서였는데, 너무 놀라서 대화에 갑자기 끼어들고 말았다. “4시간이 아니라?” 너무 황당한 질문이라서 그랬는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일이 너무 바빠, 간신히 일 마무리하고 비행기 잡아 타느라, 비행시간을 자세히 확인할 여력이 없었다.”고 멋쩍게 답을 하고 내 자리로 돌아앉아 머리를 쥐뜯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새 5년이나 지난 기억이라, 그녀와 공항에서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수선한 공항에서 공중전화를 찾아 그녀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해서 공항에서 잘 만났는데, 그게 나의 첫 미국방문이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간 것인지라 뭘 봐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알아보지도 않았던 탓에 모든 것이 즉흥적이었다. D.C.에 둥지를 튼 친구 덕에 차로 뉴욕을 향했다. 그들은 2박을, 나는 3박을 했는데, 나는 하루를 더 묵고 열차를 타고 D.C.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돌아가는 길에 차에 문제가 생겨 새벽에 길 한복판에서 아기와 함께 세 식구가 덜덜 떨었다고 한다. 얼마나 춥고 걱정되었을지, 이 또한 첫 미국 여행에 얽힌 미안한 기억 중 하나이다.

많은 지구촌 여성들에게 그런 것처럼 나에게도 Sex and the City는 나에게 뉴욕 생활의 꿈을 그려줬던 드라마였다. 돈암동에 나가 혼자 살며 여의도 회사생활에 찌들린채로 MBA 가보겠다고 GMAT 책을 펴놓고 딴짓을 하던 나에게, 허황된 뉴욕에서의 – 가능하다면 월가에서의 – 삶을 꿈꾸게 해줬던 드라마였다. 결국 야근만 많이 하다가 이대로는 은행에 주저앉겠다 싶어 이직을 하고 MBA는 마음 구석 깊숙히 접어두었지만, 뉴욕에 대한 로망만은 마음 한구석에 항상 자리잡고 있었다.

그랬던 뉴욕에 가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Sex and the City의 Sarabeth에서 브런치를 먹게 되고, 뉴욕 공립도서관을 지나고 – 보지는 못했다. – 월가의 황소 뿔을 만져보게 되니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로커펠러센터의 아이스링크를 저녁에 바라보니 내가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다만 인도에서 보던 릭샤가 뉴욕 타임스퀘어에서도 달리기 시작한 것을 보고, 잠시 잊고 싶었던 인도의 시간을 다시 떠올리게 되어 미간에 주름을 잡고 머리를 흔들며 이를 떨쳐내기도 했다.

뉴욕 공립도서관

그러나 사람은 역시나 현재의 노예임이 틀림없다. 인도에서 여러모로 치여살던 나에게 관광은 금방 사치가 되었고, 친구 부부가 D.C.로 떠나자마자 나는 쇼핑을 시작했다. 물건이 귀하고 같은 제품이면 높은 관세로 더 비싼 인도에서 살던 나에게, 세상의 물건이 집결하는 미국의 한복판은 쇼핑의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거대한 쇼핑장으로 변한 뉴욕에서, 준비없이 여행온 나는 그냥 물욕의 노예가 되어 옷가지를 주워담았다. 그때 산 옷과 신발을 7년이 다되가는 지금도 입고, 신고 있으니 완전 실패했던 쇼핑은 아니었다. 설마 이게 나의 마지막 뉴욕행이 되겠는가 하고 생각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올해 여름 다시 뉴욕을 가게 되었으니, 겨울과는 또 다른 얼굴의 그곳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새로 산 옷가지로 가득찬 무거운 트렁크를 낑낑대고 끌고 다니며, 부가세 환급을 위한 여러 절차까지 마친 나는 Penn station으로 가 D.C.로 갈 기차를 탔다. 준비없이 혼자하는 여행은 하루면 충분하다면서 자리에 앉았는데, 4명이 마주앉는 자리였다. 조금 있어 멀쑥하게 차려입은 두명의 남성이 앉아도 되냐길래, 그렇라고 하고 나는 곧 고개를 벽쪽으로 기대고 잠이 들었다. 덜컹임에 잠에서 깨어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자기들 뭐 사마시려고 하는데 뭔가 필요하냐고 묻길래 괜찮다고 했다. 솔직히 낯선 사람을 믿고 살기 어려운 인도에서 6개월동안 치여온 나인지라, 낯선이를 믿을 용기가 없었기에 그렇게 답을 했다. 정말 괜찮냐면서, 뭐 사다주겠다고 하길래, 물을 마시겠노라 했다.  페트병에 담긴 물을 갖고 온, 멀쑥하게 입은 그들을 자세히 보니, 나에게 뭔가 사기를 칠 것 같이 생기진 않았다. 고급스러운 어휘와 유려한 말솜씨를 봐도 크게 걱정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서 고마워하며 마시기로 했다. 얼마냐고 하니 손사래를 치기에 굳이 어거지를 써가며 돈을 주지는 않기로 하고 지갑을 넣어두었다.

필라델피아 소재 로펌에 근무하는 그들은 업무 회의차 뉴욕에 들렀다가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한명은 딸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아직도 사지 못했다면서 크리스마스 직전까지 일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고 했고, 다른 한명은 약혼녀를 크리스마스 쇼핑에 홀로 내보냈다며 구박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려고 여행하는 길인지 물었다. 그 날이 아마 이브날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때까지 일을 하다니, 역시 로펌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샜다.

어쩌다 대화가 그렇게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 미국에서 매우 인기가 높았고, 나도 좋아했던 The Grey’s Anatomy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면서 중요한 남성 캐릭터였던 McDreamy와 McSteamy중 누가 나의 남성상이냐는 질문에 뭐가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면서 30초 안에 고르라고 재촉을 하길래 McDreamy를 골랐던 기억이 난다. 그 답에 그가 놀라했던 기억이 나는데, 왜 놀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덕분에 아주 유쾌한 시간을 보냈는데, 그들이 필라델피아에서 내릴 때 아쉬울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즐거운 기억이다. 그간 낯선이와 대화가 그리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껏 이렇게 자세히 기억이 나는 모양이다.

친구네 집에서 친구네 가족과 크리스마스를 보낸 것도 처음이었다. 미국 여행은 참으로 많은 첫기억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그 기억의 순간을 나의 소중한 그녀와 함께할 수 있어 기뻤다. 월마트에서 끝도 없이 진열되어 있는 상품의 종류와 양에 기함을 했던 것이나 돌아오는 편에 이민가방을 가득채워 화물을 싣는 과정에 중량 문제로 고생을 한 것, 공항에서 짐을 스캐닝하는 과정에 내 짐에 있는 햄을 보고 공항직원이 박장대소하는 것에 쑥쓰러워했던 것, 미국에서 사온 네스프레소를 인도에서 사용하자마자 전압이 맞지 않아 바로 퓨즈가 날아간 것 등 무수히 많은 소소한 기억들. 순간순간에는 여러가지 감정이 섞였겠지만, 지금 뒤돌아 시간을 되짚어보면 그냥 다 즐겁고 웃음이 나는 작은 기억의 파편들이다.

올해 미국을 방문하면 그녀는 그곳에 있지 않다. 지금은 먼 싱가포르에 있어 과연 언제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항상 내 마음속에 있고 언제고 마음 먹으면 방문할 수 있고, 기술이 우리를 이렇든 저렇든 마음을 전할 수 있게 연결해주기에 서운하지만은 않다. 대신 또다른 친구가 그곳에 있기에 그녀와 다른 추억을 쌓아올 수 있을 것이다.

어제 카톡으로 그녀와 잠깐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한시간도 넘게 이야기를 했다. 마음의 크기만큼 시간은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가 피부로 느껴지는 대화시간이다. 잠깐의 대화를 통해 마음 한구석 장롱 한구석에 보관해두었던 추억 한보따리를 꺼내 열어보게 되니 기분이 좋다. 벌써 20년지기 친구이니, 우리가 몰랐던 시간보다 알고지낸 시간이 이제는 더 많아졌다. 그런 친구를 내 마음속에 두고, 그 친구의 마음속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렇게 있어줄 수 있었던 그녀가 소중하고 고맙다.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나는 하늘을 참 좋아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를 잊고 살게 되었다. 탁트인 파란 하늘은 힘겹게 오른 산의 정상에서 땀을 닦고 숨을 고르면서야나 바라보고 좋아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몰랐다. 그냥 나이가 들어서 매사 시큰둥해진 모양이라며, 되려 예전엔 안그랬는데 하는 씁쓸함만 느끼기도 했다.

덴마크에 온 이후로 하늘에 다시 관심이 늘었다. 하루에도 수십번 변하는 덴마크의 날씨 때문이려니, 자주 오는 비 탓에 해가 뜨기만 해도 기뻐하며 하늘 쳐다볼 일이 많아서 그런가 싶었다. 어느 날, 덴마크를 그리워하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높은 건물이 없어서 하늘이 쉽게 보여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무릎을 탁 쳤다. 굳이 올려다보지 않아도 시선을 조금만 멀리 두면 하늘이 보인다. 하늘이 자꾸 보이니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국의 하늘과 차이가 눈에 띈다.

차이점을 열거해보자면, 덴마크 하늘은 낮은 구름이 많아서 유독 가깝게 느껴진다. 또 바람이 상시 많이 불어 스모그가 없는 덕에 해만 뜨면 새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위도가 달라 계절에 따른 일조량과 일조시간, 일출, 일몰의 직전과 후의 색깔이 다르다. 특히 일몰시간의 분홍빛깔 하늘은 오묘하기 짝이없다. (이는 어쩌면 덴마크에 산과 높은 건물이 없어 도심에서도 지평선 근처에서 이뤄지는 일출과 일몰을 쉽게 볼 수 있어서 다르게 느낀 것으로, 한국과 큰 차이가 없지만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것뿐일 수도 있다.) 구름 모양은 또 어찌나 다른지. 어려서 좋아하던 뭉개구름은 지금도 참 좋지만, 깃털구름을 비롯해 이름도 잘 모르겠는 다양한 모양의 구름을 새롭게 좋아하게 되었다.

다른 것이 좋은 이유는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왜 다를까?” 하고.

구름에 대해 중학교때 배운 기억이 난다. 날씨에 대해 배우면서 배운 것 같다. 지금도 고기압, 저기압, 한랭전선, 온난전선, 층적운, 적란운 이런 용어들이 기억난다. 그런데 이런 용어만 기억난다. 아마 시험의 정답으로 써야 했던 것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구름이 왜 어떤 건 흰색이고 어떤건 회색인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구름이 하얀 것은 햇빛을 반사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회색 구름은 왜 그런 색깔인지. 인터넷을 찾아 구름의 색깔이 왜 다른지 알아냈다.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아마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덴마크가 참 좋은 나라라고는 해도 내 모국어를 쓰는 내 나라에서 사는 것과는 달라 힘든 순간이 있다. 어린이처럼 많은 것을 새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은 그간 당연시 했던 것에 질문을 던지게 하고 그런 것을 누릴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한다. 또한 새로이 주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한다. 어린이처럼 많은 것을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은, 간혹 나를 지치게 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부러워하곤 하는 어린이의 신선한 관점을 조금이나마 다시금 갖게 한다.

지난 3일간 스웨덴 말뫼에 아르바이트 하러 기차로 통근을 했는데, 일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 국경을 넘으며 방송이 덴마크어로 바뀌니 어찌나 마음에 편안함이 찾아오던지. 변화는 사람을 일깨우고, 기민하게 만든다. 3일이라는 스웨덴에서의 짧은 시간이 이곳에 적응해가는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게 해주었다. 2년의 기간동안 이곳에 많이도 적응한 모양이다. 적응은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새로운 시각도 계속 유지해가고 싶다면 내 욕심일까. 예전엔 즐기고 경험하려고 여행을 한다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 삶을 더 잘 바라보기 위해 필요한 일탈이기 떄문에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이 다니고 많이 보자. 그리고 다른 눈을 키워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