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개월의 하나

하나는 이제 만 21개월이 조금 넘었다. 두돌까지 세달도 채 남지 않았다니, 세월이란 정말 쏜살같이 흘러가는구나. 보육원에서 부모와의 첫 면담이 좀 늦어졌지만 곧 시간을 잡는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요즘 부쩍 사회성이 늘어가는 것 같아서 그걸 지켜보는 게 즐거운데 내가 보는 일과 시간 밖의 하나에 대해 차분히 앉아 이야기할 시간을 갖는 게 참 기대된다.

하나는 보육원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애 중 하나라고 한다. 이중 언어인 아이는 말이 늦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닐 수 있다는 걸 예전 친구의 아이에게 본 것처럼 하나에게서도 확인한다. 보육원을 처음 시작했을 때 선생님이 이야기하기를, 물론 개인차이는 있지만 아이에게 언어 인풋을 많이 늘리면 이중 언어라도 늦게 말을 시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충분한 언어 인풋을 주었는지는 내 주관적인 경험이니 알 수 없지만, 유아 언어 없이 애가 알아듣든 말든 어려서부터 많이 말을 해주려고 노력했고 아이의 옹알이때부터 섀도잉을 포함해 아이의 말에 피드백을 열심히 해주었다. 그리고 하나는 말을 어찌나 열심히 연습하는지. 저렇게 끊임없이 연습하니 말이 늘지 싶을만큼 집요하다.

신체적으로는 키는 표준인 거 같다.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고. 몸도 딱 표준. 몸을 쓰는 건 참 열심히인데, 선생님들 표현으로는 작은 스파이더맨이란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까지 몸을 제법 사리는 편이면서도 자기 딴에 검증이 된 것에 대해서는 겁이 없다. 어디 부딪히거나 넘어져서도 피곤한 시간이 아니면 아주 아프기 전엔 아프다고 징징거리거나 울지 않고 툭툭 털고 일어난다. 막 기고 어디 잡고 일어서고 할 때부터 덴마크 엄마들이 하는 것처럼 하려던 건, 아주 위험한 게 아니면 넘어지고 부딪힐 기회를 주고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엔 상황을 차분한 얼굴로 얼른 판단한 후 필요 이상으로 과잉 반응하지 않고 괜찮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털고 일어나게 해줬다. 애들은 어떤 수준의 통증에 대해 얼마만큼 울어야 하는지를 엄마의 표정을 통해서 배우고 거기에 기준점을 잡는다고 들었는데, 하나의 기질 탓이 크겠지만 하여간 하나는 그런 면에서 참 강한 아이로 큰 것 같다.

내가 데릴러 가면 절대 그냥 옷을 입는 법이 없어서 보육원에 앉아 같이 거의 20분씩 놀다 오다보니 그 떄 남아있는 애들과 같이 노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게 되는데 아이들과는 제법 같이 놀이를 즐긴다. 우리가 집에서 하나에게 Goddag, goddag하면서 악수를 자주 시키는데, 요즘 간혹 우리에게 Goddag, goddag하면서 손을 잡아 흔들고 하더니, 보육원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그렇는 걸 봤다. Norma라고 하나보다 생일이 며칠 늦은 여자애가 있는데, 걔한테 그러고 Dagmar라는 다른 큰 여자애에게도 가서 또 그러더라. 그러니 Norma도 Dagmar에게 가서 똑같이 하고, 나에게 와서도 그러는 거였다. 공도 같이 던지고, 춤도 같이 추고. 어느 날은 Norma에게 가서 자기 모자와 자켓을 가리키며, “모자”, “자켓” 이러는 거다. 한국말로. Norma가 그런 하나를 보다가 나를 보더니 뭔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짓는다. 또 여기저기 애들한테 뛰어다니며 한명한명 짚어가며 이름을 불른다. 나에게 가르쳐주듯. 선생님 왈, 하나는 보육원 애들 모두의 이름을 다 알고 이름 외우는 거 좋아해서 새 아이가 들어오면 그 날부로 바로 이름을 외운다고 한다. 집에서 하도 연습을 해 나도 애들 이름 상당수를 알 정도니 말 다했다.

하나는 새로운 일에 너무나 즐거워하는 즐거운 아이란다. 별거 아닌 거에도 엄청 크게 웃고 즐거워하고 노래에 즐겁게 춤을 추는 흥이 많은 아이. 호기심도 엄청 많고 보육원 생활 태도도 좋다고 한다. 여태까지는 참 잘 커준 것 같다.

둘째는 없다라고 할 만큼 충분히 힘들었던 시간이지만, 둘째가 하나같이만 건강하고 씩씩하고 이쁘게 커준다면 둘도 낳고 싶을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보장은 전혀 없고 애들은 형제라도 너무나 다른 인격체일 것임을 알기에 둘째는 갖지 않을 거다. 그런 만큼 지나가는 이 시기가 돌아오지 않음을 알고, 매 순간이 소중하다. 하나를 키우면서 나도 엄청 큰다. 어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고 그에 맞춰 대응하려고 하고 인내심을 키우게 되는 등 말이다. 아이라면 참 싫어했던 내가 언제 이렇게 변했나 싶을만큼. 내 아이가 이쁜 만큼 다른 집 아이도 이뻐지고.

아기였던 게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닌 거 같은데, 아기라는 말은 붙일 수가 없을만큼 큰 하나. 어느새 이렇게 컸누. 지금은 내가 안아주겠냐고 물어보면 멀리 있다가도 확 뛰어와서 안아주고 내가 볼이 떨어져나갈 듯이 뽀뽀를 해주면 까르르 뒤집어지며 웃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허벅지와 종아리를 마사지해주면 간지러워 몸을 이리 굼실 저리 굼실 하며 배를 잡으며 웃고, 내가 하는 이런 저런 유치한 장난들 좋다며 또 해달라며 수십번이고 조르지만 이게 언제까지일까. 그런 생각이 들면 지금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거 같다는 표현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제야 와닿는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주렴 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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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체류 초기시절. 지금은 덴마크가 좋은 이유

5일의 시간이 어느새 흘러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휴가로는 딱 좋은 기간. 집에 돌아가고 싶은 이유 중 가장 큰 건 하나가 일상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밤에 잠에 들기까지 우는 것도 그렇고 우리와 같은 방에서 자니까 아침 너무 일찍 일어나서 놀고 싶어해서 더이상은 휴가가 힘들다. 애가 좀 클 때까진 긴 여행은 힘들 듯 하다.

어제 저녁엔 시어머니가 여기 생활이 어떤지 물어보셨다. 시누가 남편 주재기간동안 두바이에 사는 건 돌아올 기약이 있는 건데 내가 여기에 사는 건 뿌리를 내릴 생각으로 사는 거니 그 무게가 다르니 간혹 내가 어떤 느낌을 갖는지 궁금하시단다. 그래서 생각을 과거로 더듬어가봤다.

지금이야 하나도 태어나고, 시댁 가족과 관계도 훨씬 돈독해져가서 옌스네 외가 가족이고 친가가족이고 가깝게 지내는데다가 내 친구도, 내 일(직장은 아니더라도)도 있고, 말이 통하니 더이상 내가 외국인이라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고 지낸다. 그래서 그런가 외국에서의 삶이라 힘들다거나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낸지가 꽤 되었다. 그렇지만 분명히 힘이 들긴 했는데…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라 (그래서 이렇게 글도 써서 가록으로 남기는 거지만) 다행인 건, 힘든 기억을 잊는다는 거다. 말이 잘 안통해서 가족 모임이나 친구 모임에서 애매하게 웃는 것도 웃지 않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나 혼자의 상상의 세계를 펼치면서 너무 딴짓하지 않는 척 보이게 앉아있었던 게 참 힘들었던 거 같다. 나를 위해 영어로 바꿔주는 것도 큰 모임에선 한계가 있었으니까. 물건 하나 사는 것 조차 구글 번역기를 돌려야 했을 때, 내가 원하는 물건을 찾기가 힘들었는데 점원을 발견하기가 너무 어려웠을 때, 뭘 물어볼 때 누구한테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 줄을 서야 하는 건지 아닌지… 진짜 사소한 것을 알 수 없어서 허둥지둥댈 때 힘들었다. 내 친구가 별로 없었을 때, 밤에 시차로 인해 연락할 수 있는 친구가 없었을 때도 힘들었다. 이웃들끼리 가까이 지내는 거 같은데, 무슨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말도 잘 안통해서 듣는 거 하나하나가 긴장되는 순간이었을 때 힘들었다. 머리로 힘들게 생각하지 않고 내가 편한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그리웠을 때 힘에 부쳤다.

그런데 지금은 다 지나간 일이다. 5년은 그런 시간인가보다.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내 가치관도 바뀐다. 예를 들면 결혼에 대한 생각. 애를 낳고 보니 결혼은 그냥 서류일 뿐이다 라고 했던 옌스의 말을 이해하겠다. 우리야 비자 문제로도 결혼이 필요했지만 동거를 하다가 애를 낳고서야 결혼을 하는 (애가 생기면 혹여나 있을 지 모르는 일들로 인해 결혼을 하는 게 여러모로 수월한 경우가 많다.) 경우가 엄청 많은데, 이제는 그게 이해가 간다. 이런 걸로 예를 들며 서양사람들은 성에 개방적이다거나 문란하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이야기같다. 어차피 연애를 하면서 성관계를 갖는 면에 있어서는 한국이나 외국이나 매한가지인데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없는 척 한다는 점… 그래서 모텔 대실제도 생기고 성을 숨기다보니 왜곡된 성관념을 갖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낀 건 오히려 동양이 훨씬 성에 몰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아무튼 결혼이 제도적인 장치에 불과하고 가장 남녀사이를 강력하게 묶어주는 건 둘간의 사랑과 우정, 자녀라는 생각이다. 자녀는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있고, 자녀가 있고도 헤어지는 사람도 있으니 자녀가 관계를 묶어주는 존재라는 건 아닌데, 한번 누군가와 자녀를 갖게 된다면 아무리 헤어져도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생긴다는 점에서 강력하게 묶어준다는 이야기다.

덴마크에서의 삶이 좋은 건 아주 시내 한복판에 사는 거 아니면 내가 어렸을 적 느꼈던 이웃과의 정을 아직도 느낄 수 있고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과도 따뜻한 인사를 나누고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거다. 바쁨과 짜증이 스며나는 가식적 친절이 아닌 좀 수더분하고 거칠더라도 마음이 느껴지는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점원들이 있는 상점이 좋다. 동네에 아이들이 어른 없이도 자기들끼리 놀이터에 나와서 모여 놀 수 있는 안전함과 유모차를 몰고 거의 모든 곳에 비난의 눈길 없이 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좋다. 차보다 자전거가 대우받고 자전거로 왠만한 곳에 갈 수 있도록 도시가 아담한 사이즈인게 좋다.

결국 느낀 건 언어가 중요하다는 거다. 영어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만큼 덴마크어 없이도 살 수 있는 이곳이지만, 언어가 열리면서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어지고 나면 그 전에 차가운 것 같던 사람들이 더 열린 마음으로 나를 받아들여주고 생활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준다. 못알아듣는 대화가 줄어들 수록 내가 나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고, 꾸밈이 없어지다보니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더 드는가보다.

직장까지 구하고 나면 정말 사회의 일원이 된 느낌을 강하게 받겠지. 한번에 하나씩 하자.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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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해안가… 아이스크림 하나 사들고 산책을 나섰다. 같은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간 커플이 마침 같은 해안가에 앉아서 아이스림을 먹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