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내 몸을 알아가는 여정

올해 늦봄부터 발레를 다시 시작했다. 자동차를 산 덕에 저녁준비를 해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도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클래스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신 중기 이후 휴식을 하면서 그 사이 너무나 그리웠는데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2012년부터 시작한 발레이니 발레와 연을 맺은지도 만으로 7년이 되었구나. 휴식을 취했어도 운동을 할 때도 플리에와 탕듀 등 기초 동작을 트레이닝해왔으니 그 끈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정도 뿐이었다. 


거기에다가 중간에 오른쪽 고관절에 문제가 생겨서 물리치료도 받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내 골반이 왼쪽으로 약간 돌아간 탓이었다. 그건 발레와 상관은 없이 오래된 자세의 문제였는데 잘못된 체형에 장기간의 발레와 덴마크 와서 장거리를 뛰곤 한 자전거 페달밟기가 얹어서 문제가 불거진 거였다. 


발레를 시작한 지 오래되면서 내 몸의 목소리가 의미하는 바를 읽기 시작했다. 급성이 아닌 만성 부상은 뭔가 잘못된 자세에 부담이 오랜시간 얹어지면서 발생하는 바, 만성 부상이 생기면 뭔가 고칠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고칠 수 있다는 것도. 


왼다리로 섰을 때 턴아웃이 잘 안되어 자세가 풀리는 것이 왼다리의 문제라 생각했다. 그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드는 자세에서 고관절에 자꾸만 부담이 되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두 문제는 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같이 생기는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오른쪽 골반을 잡아주는 근육이 약해서 그게 밀리니 아무리 왼쪽의 턴아웃을 잡으려 해도 자꾸만 풀리는 거였다. 오른쪽 다리로 서는 건 안정적인데 왼쪽 다리로 서는 건 이 이유로 불안정하고 자꾸만 흔들리고 옆으로 무너지고, 간신히 서게 되도 종아리와 발에 부담을 많이 줘야나 가능했는데, 오른쪽 골반을 안정시키는 데 같이 신경을 쓰니 자연히 왼쪽을 축으로 하는 동작이 안정되는 거다.
남이 몸을 보고 교정해주는 것만으로는 맞는 자세를 찾을 수 없다. 각자 해부학적인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도 보기에 맞아보이는 자세를 찾아주면서도 맞는 동작은 이런 느낌이어야 한다며 움직일 때 느낌을 시각화해서 설명해주는 것이다. 즉 누구에게나 완벽하게 들어맞는 동작의 공식이 아니라 원칙적 공식에 각자 자기의 몸에 맞게 오차 보정을 해야하는 거다. 


여러 선생님을 거쳐오며 선생님들이 설명해준 내용을 조합해보고 내 몸의 소리를 들어가다보니 그간 고생해오던 고관절 부상은 없어졌다. 어깨도 그렇고. 의외로 내 몸의 오른쪽 소속 관절들이 왼쪽보다 불안정한 것 같다. 이런 불안정성을 교정하면 할 수록 몸의 근육부피 차이도 줄어든다. 짝짝이 가슴도 거의 같아졌고.


다른 운동과 달리 발레는 이런 몸의 소리를 세세하게 듣게 만들어준다. 각자 좋아하게 되는 운동과 그 이유가 다르듯이 모두에게 같지는 않겠지만 이런 이유로 나는 발레를 사랑하고 아마 지금 클래스에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이가 많이 들어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도 계속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21개월의 하나

하나는 이제 만 21개월이 조금 넘었다. 두돌까지 세달도 채 남지 않았다니, 세월이란 정말 쏜살같이 흘러가는구나. 보육원에서 부모와의 첫 면담이 좀 늦어졌지만 곧 시간을 잡는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요즘 부쩍 사회성이 늘어가는 것 같아서 그걸 지켜보는 게 즐거운데 내가 보는 일과 시간 밖의 하나에 대해 차분히 앉아 이야기할 시간을 갖는 게 참 기대된다.

하나는 보육원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애 중 하나라고 한다. 이중 언어인 아이는 말이 늦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닐 수 있다는 걸 예전 친구의 아이에게 본 것처럼 하나에게서도 확인한다. 보육원을 처음 시작했을 때 선생님이 이야기하기를, 물론 개인차이는 있지만 아이에게 언어 인풋을 많이 늘리면 이중 언어라도 늦게 말을 시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충분한 언어 인풋을 주었는지는 내 주관적인 경험이니 알 수 없지만, 유아 언어 없이 애가 알아듣든 말든 어려서부터 많이 말을 해주려고 노력했고 아이의 옹알이때부터 섀도잉을 포함해 아이의 말에 피드백을 열심히 해주었다. 그리고 하나는 말을 어찌나 열심히 연습하는지. 저렇게 끊임없이 연습하니 말이 늘지 싶을만큼 집요하다.

신체적으로는 키는 표준인 거 같다.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고. 몸도 딱 표준. 몸을 쓰는 건 참 열심히인데, 선생님들 표현으로는 작은 스파이더맨이란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까지 몸을 제법 사리는 편이면서도 자기 딴에 검증이 된 것에 대해서는 겁이 없다. 어디 부딪히거나 넘어져서도 피곤한 시간이 아니면 아주 아프기 전엔 아프다고 징징거리거나 울지 않고 툭툭 털고 일어난다. 막 기고 어디 잡고 일어서고 할 때부터 덴마크 엄마들이 하는 것처럼 하려던 건, 아주 위험한 게 아니면 넘어지고 부딪힐 기회를 주고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엔 상황을 차분한 얼굴로 얼른 판단한 후 필요 이상으로 과잉 반응하지 않고 괜찮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털고 일어나게 해줬다. 애들은 어떤 수준의 통증에 대해 얼마만큼 울어야 하는지를 엄마의 표정을 통해서 배우고 거기에 기준점을 잡는다고 들었는데, 하나의 기질 탓이 크겠지만 하여간 하나는 그런 면에서 참 강한 아이로 큰 것 같다.

내가 데릴러 가면 절대 그냥 옷을 입는 법이 없어서 보육원에 앉아 같이 거의 20분씩 놀다 오다보니 그 떄 남아있는 애들과 같이 노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게 되는데 아이들과는 제법 같이 놀이를 즐긴다. 우리가 집에서 하나에게 Goddag, goddag하면서 악수를 자주 시키는데, 요즘 간혹 우리에게 Goddag, goddag하면서 손을 잡아 흔들고 하더니, 보육원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그렇는 걸 봤다. Norma라고 하나보다 생일이 며칠 늦은 여자애가 있는데, 걔한테 그러고 Dagmar라는 다른 큰 여자애에게도 가서 또 그러더라. 그러니 Norma도 Dagmar에게 가서 똑같이 하고, 나에게 와서도 그러는 거였다. 공도 같이 던지고, 춤도 같이 추고. 어느 날은 Norma에게 가서 자기 모자와 자켓을 가리키며, “모자”, “자켓” 이러는 거다. 한국말로. Norma가 그런 하나를 보다가 나를 보더니 뭔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짓는다. 또 여기저기 애들한테 뛰어다니며 한명한명 짚어가며 이름을 불른다. 나에게 가르쳐주듯. 선생님 왈, 하나는 보육원 애들 모두의 이름을 다 알고 이름 외우는 거 좋아해서 새 아이가 들어오면 그 날부로 바로 이름을 외운다고 한다. 집에서 하도 연습을 해 나도 애들 이름 상당수를 알 정도니 말 다했다.

하나는 새로운 일에 너무나 즐거워하는 즐거운 아이란다. 별거 아닌 거에도 엄청 크게 웃고 즐거워하고 노래에 즐겁게 춤을 추는 흥이 많은 아이. 호기심도 엄청 많고 보육원 생활 태도도 좋다고 한다. 여태까지는 참 잘 커준 것 같다.

둘째는 없다라고 할 만큼 충분히 힘들었던 시간이지만, 둘째가 하나같이만 건강하고 씩씩하고 이쁘게 커준다면 둘도 낳고 싶을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보장은 전혀 없고 애들은 형제라도 너무나 다른 인격체일 것임을 알기에 둘째는 갖지 않을 거다. 그런 만큼 지나가는 이 시기가 돌아오지 않음을 알고, 매 순간이 소중하다. 하나를 키우면서 나도 엄청 큰다. 어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고 그에 맞춰 대응하려고 하고 인내심을 키우게 되는 등 말이다. 아이라면 참 싫어했던 내가 언제 이렇게 변했나 싶을만큼. 내 아이가 이쁜 만큼 다른 집 아이도 이뻐지고.

아기였던 게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닌 거 같은데, 아기라는 말은 붙일 수가 없을만큼 큰 하나. 어느새 이렇게 컸누. 지금은 내가 안아주겠냐고 물어보면 멀리 있다가도 확 뛰어와서 안아주고 내가 볼이 떨어져나갈 듯이 뽀뽀를 해주면 까르르 뒤집어지며 웃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허벅지와 종아리를 마사지해주면 간지러워 몸을 이리 굼실 저리 굼실 하며 배를 잡으며 웃고, 내가 하는 이런 저런 유치한 장난들 좋다며 또 해달라며 수십번이고 조르지만 이게 언제까지일까. 그런 생각이 들면 지금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거 같다는 표현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제야 와닿는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주렴 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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