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언홀름 시댁 방문

회사일이 바쁜 연말 옌스는 함께 할 수 없던 보언홀름 여행을 하기로 결정한 건 하나에게 한두달에 한 번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게 해주고 싶은 때문이었다. 한달도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 시부모님이 그 때 오실 터라 또 오시라 하기도 그렇고, 주로 시부모님이 오시니 간혹은 우리가 주도성을 보일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삼박 사일 여행. 

아침부터 애를 데리고 여행하긴 부담스러워서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비행기를 타기로 했고, 낮잠으로 자고 나 하나를 보육원에서 픽업해서 공항으로 가는 플랜이었다. 전날까지 우산식 유모차를 가져갈 지 일반 유모차를 가져갈 지 결정을 못하고 갈등하다가 비오고 바람이 많이 불 거 같아 일반 유모차를 갖고 가기로 막판에 결정했다. 일반 유모차를 갖고 여행하는 건 처음이라 항공사 사이트를 뒤져보니 2세 이하 아이는 유모차가 공짜라고. 다만 파손을 우려해 airshell이라는 커버를 권유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픽업해서 어떻게 부치는지 개괄적인 설명은 나오는데 구체적으로는 안나와서 살짝 긴장했다. 나 혼자 여행이고 뭔가 새로운 프로세스에 시간적 압박까지, 하나가 낮잠으로 좀 갈게 잔 탓에 공항에서 시간이 짧았더랬다. 

체크인을 하고 짐택을 하나 더 받아 에어쉘을 찾은 후 거기에 유모차를 접고 바퀴를 분해해 넣은 후 잘 포장해 오드사이즈 배기지 체크인 장소에서 짐택 붙여 체크인 하면 되는 거얐다. 애가 하나 옆에 있다는 게 꽤나 챌린징헸다.

어찌어찌 잘 놀고 탑승 직전 기저귀도 갈고 하며 비행을 잘 마쳤다. 유모차도 손상없이 잘 도착했고. 몰랐는데 오늘 바람이 너무 세서 페리가 다 취소되었다더라. 어째 우리 비행기 앞에 게 연착이 된 이유가 강풍이라더니, 우리 비행기 이륙도, 특히 착륙이 엄청 다이내믹헸다. 내가 경험한 가장 무서운 랜딩. 

이젠 자동차 타는 것도 좋아하는 하나를 데리고 시부모님네 잘 도착했다. 하나는 장난감들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전에 갖고 놀아본 민트껌 통을 들고 와서 냄새 맡겠다고 열어달래는데, 아 다 기억하는구나… 싶어 놀라웠다,

밥도 잘 먹고 즐겁게 놀다가 즐거워서 안자고 싶어하는 애 재우다가 나도 잠깐 잠이 들었다. 한산하신 반이나, 옌스가 전화해서 깼다. 

시부모님은 우리를 위해 일찌감치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셨고, 식사도 준비해두고 계셨다. 거의 바로 먹을 수 있게, 잘 곳도 이미 준비가 되어있었고. 항상 그렇듯 완벽한 준비, 오는 길은 힘들다만 막상 오면 너무 잘 쉬다가서 자주 오고싶은 시댁, 우리 부모님도 가까이 사시면 좋으련만 내가 멀리 사는 거니…

내일은 도서관에 가봐야겠다. 이번엔 하나가 더 좋아할 거 같다. 여기 와서 일 안하고 애랑 놀다만 가는 건 일연민에 처음이니 열심히 즐겨야지. 아자!

이젠 정말 가족이다.

옌스네 조카 생일이 있어서 생일파티에 갔다. 작년부터 조카들 생일에 두번씩 갔으니 생일로는 6번 갔고, 기타 이래저래 간것까지 여동생네 집에 열번 이상은 간 것 같다. 항상 함박웃음을 띄는 가족들은 처음부터 나를 따스하게 맞아주었지만, 10명 이상이 모이면 간간히 대화가 덴마크어로 전환될 때도 있었고, 그럴때면 옌스만 바라보고 있기도 애매하고 뻘쭘하지 않은 듯 뻘쭘하게 있어야 했다. 꼭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만이 아니라 그들이 아무리 따뜻하게 대해줘도 친해지는데 걸리는 물리적 시간이 걸려서였을 것이다.

갈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편해지고 있음을 느끼긴 했지만, 오늘 처음으로 우리 가족 모임에 간것만큼 편하게 있다 왔다. 결혼을 통해 옌스의 여자친구가 아닌 아내가 되어서 그런지, 이모님네 가족과 옌스 사돈댁 어르신들 모두 그전보다 훨씬 편하게 대해주셨고, 조카들도 더이상 나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아직 모든 대화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간혹 상황을 놓치면 옌스에게 조금씩만 도움을 받으면 되니, 대화에서 소외되는 기분이 없어졌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긴장감도, 상황에 익숙해지고 나니 다 없어진 모양이다. 만날 때 이름을 꼭 불러주고, 대화 중간중간 이름을 불러가며 대화한다던가, 서로 안아주며 인사하는 방식, 어떤 타이밍에 뭘 하는지 등 소소한 것 같지만 모르면 약간 주춤하게 되는 것들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몸에 익었다.

내 마음안의 변화도 크게 한 몫을 한 것이리라. 예전엔 옌스의 여자친구의 입장에서 간 것이라면, 이제는 진짜 가족의 테두리 안에 들어선 입장으로 갔기에 보다 자연스러워져서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었을 게다.

무엇때문이든간에 덴마크에서 내가 잘 정착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주는 가족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시댁에 놀러가는 일이 참 즐겁다. 시누이네 집에는 맨날 초대만 받아 놀러가서 미안한과 고마운 마음이 크다. 웨딩 디너로 드디어 그들을 우리가 초대하는 일이 생겨 마음이 조금이나마 놓인다.

우리 부모님이 멀리 사시기에 시댁과 친정간의 교류가 잦기 어렵다는 점은 시누이네 가족 행사때 자주 만나시는 그분들을 볼 때마다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번 웨딩 디너로 만나서 인사도 하시고, 부모님이 덴마크에 놀러오실때나, 내후년 쯤 시부모님이 한국가실 때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아쉬운대로 자리를 마련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