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지난 한주는 너무 많은 행사가 있었다. 평소에 누구를 잘 만날 일도 없고 회사, 집, 하나 방과후 활동 따라가니기, 운동, 우리 세식구와의 시간 등 뻔하디 뻔한 루틴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자체로도 바빠 다른 일을 끼워넣을 여유가 별로 없다. 그런 타이트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테마데이, 친구와의 저녁 약속, 런치 약속, 조카 생일, 옌스 출장 공항 드롭에 평소 옌스가 했을 소소한 집안일도 내가 넘겨받아야 했으니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사무실로 출근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두른 후 아침 커피 한잔을 마시며 산업뉴스를 읽으면 그제서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주당 1회 재택근무가 가능하지만, 의사를 만나거나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는 한 가급적 사무실로 출근하는 이유는 집으로부터 물리적으로 공간을 불리해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함이다.

이렇게 평화스러울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스트레스로 가득찼던 것이 바로 내 머리속 내 목소리와 생각 때문이었다는 게 참 놀랍다. 내가 겪은 생각과 스트레스는 다수의 현대인이 겪는 일이기에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민 생활에 이정도 힘든 거야 당연하잖아?’하면서 이를 진작에 다루지 않은 게 문제를 키운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문제가 있으면 이를 적극적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도. 물론 문제가 이정도 커졌으니 이게 상담을 요하는 일이란 것도 알게 되었지만.

내가 나에게 엄격했던 것 만큼 남의 아픔에도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힘듦을 토로했을 때 그 힘듦이란 게 누구나 겪기도 하고 다 이겨내야 하는 것이니까, 어느정도는 공감하면서도 이겨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대화를 했다.

해외에서 산다는 게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힘들어 상담이 필요한 순간에 상담의 여건이 녹록치 않다는 데 있다. 아마 영어로 상담을 해야 했다면 내게 맞는 상담자를 고를 수 있는 풀이 크게 줄어들었을 거다. 현지어나 영어 모두 상담하기에 불편하다면 한국에서 온라인 상담을 해야할텐데 온라인이라는 환경이 오프라인의 환경을 대체하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그 또한 아쉬웠을 거다.

내가 문제에서 헤어나온 이후 주변에 같은 고민으로 고통받거나 받았던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정도의 차이가 있고, 문제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더라도 본질적으로 같은 고민을 하거나 했던 사람들. 내 주변의 동료들에게서도 여럿 같은 종류의 고민으로 상담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도 참 많이 받았는데, 그런 모든 사람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인식해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구직기간의 스트레스 관리

실업기간이 6개월에서 길게는 1년도 될 수 있음을 마음에 두고 조급함을 버리라는 옌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불안함과 조급함이 끊임없이 마음에 찾아온다. 이 녀석들… 불안함과 조급함은 내가 부족하다 느끼기에 생긴다. 결국 내 욕심에 비해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이겠지. 욕심을 버리거나 노력을 늘리거나, 아니면 둘다 조금씩 조정하거나 해야지 그냥 앉아서 불안함과 조급함에 내 정신을 맡겨두는 건 건강하지 못하다.

항상 하려는 건 많고 그 중 건지는 건 몇 개에 불과한 나이기에 이런 노력이 얼마나 갈 지야 모르겠다. 하지만 항상 이것 저것 해보기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건지는 게 늘어남 또한 알고 있다. 꾸준함이 덜하다면 시도라도 해서 맞는 걸 건져야 할 것.

한국 다녀와서 5주동안 데이터 사이언스 온라인 과정을 들으면서 R에 대한 숙련도도 늘리고, 기타 다른 프로그래밍 스킬을 계발하려고 한다.

그간 풀어진 정신상태도 조금씩 조여서 쓸데없는 넷서핑도 줄이고.

unsolicited 이력서도 조금씩 내보고… 원하는 일자리 자체가 별로 나지 않는다. 옌스가 이 전공이 특화된 전공이기 때문에 구직 기간을 비전문 전공보다 더 길게 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별로 나지 않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다.

그래도 천천히 해보자.

대신 일주일에 한번 정도  평일에 친구를 만나거나 문화생활을 하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구직기간을 조금이나마 즐길 수 있도록…

조금 천천히 가기로 했다.

애가 아픈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가 아플때마다 시부모님께 도움을 부탁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애의 병치레에 따라 나의 논문 스케줄은 심하게 흔들린다. 덴마크도 대학원 졸업생을 대상으로는 공채 비슷한게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엄청 적은 수고, 1년에 한번 있어서 여름에 졸업하는 학생이 중심 대상이긴 하지만 없는 것보단 있는게 나으니까. 마침 마음에 드는 회사도 있고 해서 지원하려고 이력서도 준비하고 취업박람회 가서 면담도 하고 했는데, 막상 논문이 너무 흔들려서 제 때 여름에 졸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덴마크어 어학원이 코펜하겐시(단지 코펜하겐시만은 아닐거다. 곧 다른 시 어학원들도 영향을 받을 듯하다.) 덴마크어 교육 예산 절감 계획에 따라 교육 기관 선정이 입찰제로 바뀌었다. 유명한 어학원들은 학생 1인당 교육비용을 11000크로나 정도로 잡았는데 (지금보다 낮은 수준) 8000크로나 정도로 잡아 제출한 악명 높은 교육기관 2개가 낙찰을 받고 나머지는 다 떨어졌단다. 따라서 8월부터 이 학원들은 무료 덴마크어 교육을 다 문닫는다. 원래 8월부터는 무료 교육도 시스템이 바뀌면서 모듈당 2000크로나를 내는 것으로 바뀐다고 해서, 모듈 6은 돈 내고 들어야겠구나 했었다. (모듈 3까지 돈내고 다녀봐서 아는데, 진짜 유료는 모듈당 하부 모듈이 2개가 있어서 10000크로나가 넘는다.  모듈 5는 하부 모듈이 4개라 20000크로나가 넘는다.) 그런데 이 또한 이상한 학원으로 다녀야하는 거라면 굳이 모듈 6을 듣고 싶지 않다. 모듈 5 시험은 이미 모의고사를 토대로 본 결과 지금 쳐도 10점 정도 받는 거엔 큰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모듈 6을 수강할 자격 획득은 가능할 것이라 생각이 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덴마크어 수업을 조금은 설렁설렁 들어도 될것이고 숙제도 조금은 느슨하게 해가도 되지 않을까 싶다.

우선 회사 지원은 졸업 뒤로 미루기로 했다. 논문은 우선은 8월까지 쓰는 걸로 목표를 하되, 미루는 것도 염두에 두고 쓰기로 했다. 교수님과 어떤 consequence가 있는 지에 대해서는 한번 상의해보고, 현실적으로 지금 시점에서 8월까지 중간에 애 아플 것도 감안해서 다 쓸 수 있을 것 같은지 교수님의 생각도 들어봐야겠다.

덴마크어도 조금 루스하게 하고, 취업은 손에서 놓고, 논문에 최우선을 다해 하되, 졸업을 미룰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둔다면 지금의 높아진 스트레스 레벨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뭐든 낭비는 없는거니까, 지금까지 다른 것에 투자한 시간자원은 어떤 형태로든 나중에 도움을 줄 거다. 나중에 다시 해야하는 일이기도 하고.

남편과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남편이 8월에 내가 빨리 졸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고 믿었고, 남편은 그걸 미루면 나에게 부담이 되는 consequence가 학제상으로 있을까봐 그랬던거지, 빨리 졸업해서 빨리 취업하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그걸로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한다. 내가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하니, 나보고 더이상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남편이 말하더라. 당신 잘못이 아니라 내가 주어진 데드라인 안에 이를 달성을 못할 것 같은 확률이 갈수록 높아지는데 당신은 내가 8월에 끝내기를 기대하니까 힘든 거다라고 이야기했더니, 전혀 그런 기대는 안하고 있다면서, 서로 오해하고 있었단다.

조금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애가 아플 때 애 아픈 거 걱정보다도 내 일이 밀리는 걸 걱정하게 되는 게 참 엄마로서 죄책감이 들곤 했는데, 이런 걱정은 내려두고 조금 더 흐름에 몸을 내맡겨보려한다. 왜 갑자기 조급해졌었는지…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조급증이 나도 모르는 새 싹을 다시 틔우고 있었는가보다. 좀 내려놓고 천천히 차근차근 밟아가야지. 이 프로세스를 즐기면서…

뇌가 토할 것 같은 하루

오늘은 명상이 필요한 날이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30분의 시간동안 ‘inhale’, ‘exhale’을 되뇌이며 페달을 밟았다. 무엇을 하든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면서 다른 생각이 머리에 들어오는 것을 무심히 두면 명상이 된다는 티벳 승려의 인터뷰를 마침 본 탓이다.

오후 수업은 Applied General Equilibrium Analysis. 작년엔 Computable general equilibrium model을 했다던데, 해당 과정을 담당했던 교수가 다른 곳에 취직을 하면서 교수진과 함꼐 과정 내용도 바뀌었다. 올해는 Input-Output model에 기반한 Quantity model을 가르친단다. 덴마크의 National 및 Regional Accounts Data를 기반으로 지역경제학 + 생산경제학을 배운다. 환경경제학에서 어떤 한 산업의 생산을 늘릴 경우 그로 인한 영향이 다른 지역으로 어떻게 확산되는 지 등에 활용한다고 해서 배워두면 좋을 것 같긴 하다.

솔직히 재미는 정말 없다. 수학적으로는 크게 어렵지 않은 선형모델을 이용하는데, 그 모델이 구축된 배경을 이해하고 이 모델이 사용하는 데이터를 이해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다. 교수의 단조로운 목소리도 그렇고 쉬운 컨셉과 어려운 컨셉 할 것 없이 단조로운 속도로 빠르게 진도를 빼는 것이 고역이다. 간혹 이해가 안되서 질문을 해도 그 설명이 참 쉽지 않다.

그런 상황이 지난 2주간 차곡차곡 쌓여 오늘은 머리가 정말 터질 것 같았다. 뇌가 더이상 이해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나 할까. 수업이 끝나고 속이 안좋은 기분마저 들었다. 뇌가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고 토하는 것 같은 기분.

안그래도 Political Ecology의 철학적이고 긴 텍스트를 읽고 그룹 프로젝트를 매주 준비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이 수업마저.

집에 온 옌스가 집에 오자마자 스트레스 받은 내 상태를 눈치채고 괜찮냐고 물어본다. 읽을 거리와 수업으로 스트레스 너무 받는다고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8주간 더 가야하는데, 벌써 이런 기분이 들면 어쩌나. 일체유심조라는데 자꾸 싫다는 생각이 들면 더 싫어져서 힘들 거 같아 자전거 통학길 마지막 순간에는 ‘다른 여러 관점을 이해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거야. 감사한 마음으로 읽자.’라고 되뇌이며 스스로에게 체면을 걸고자 노력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공부를 하기 싫어서 조금이나마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이라 봐야한다.

취침 전까지 남은 네시간, 열심히 읽어봐야겠다. 우선 하루살이 인생으로라도 버텨봐야지. 아자아자!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멀리 한국에서 출장온 대학교 후배와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점심 먹고 후배가 가져다준 바나나킥을 먹을 때까진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는데… 오늘 오후가 참 힘들었다.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