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랫집의 맞은편에는 어린 아이가 둘인 싱글맘이 산다. 삶에 항상 찌든 듯한 표정을 보면 다소 안타깝기도 해서 가만히 있었지만, 거의 이사온 지 1년이 다되가는 지금까지 여러모로 참은 것들이 쌓여서 작은 대응을 시작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애를 자꾸만 공용 복도로 내보내고 자기네 집 문은 닫아 잠근다. (여기는 닫으면 잠기는 구조) 둘째 애가 이제 만 세살 조금 안된 것 같은데 복도에서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곤 한다. 한두살 차이나 보이는 오빠가 조용히 하라고 하는데, 그냥 애가 소리 지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처음엔 우는 소리인가 했더니 신나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우리 라인에 이 집만 이런 애가 있었던 게 아닌데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어째야 할 지 잘 모르겠더라. 영국 친구들은 애랑 엄마를 같이 마주치면 “네가 그 목소리가 큰 애구나!” 또는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인 줄 몰랐구나!”라고 살짝 비꽈주라는데, 애만 밖에 내어두니 그럴 기회가 잘 없었다.
한달 정도 전부터는 더이상 놔둘 수가 없었다. 출근하고 나가버리는 다른 집 사람들은 괜찮다쳐도 학교 안가고 집에서 공부하는 날들이 있는 나에겐 오전 9시~10시 경에 신나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는 아이를 더이상 참기에 인내심이 남아있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는 아이네 집 앞으로 내려가 여기는 너네 집이 아니라 공용공간이고 소리를 질러서는 안된다고 차분히 타일렀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왜?”를 반복하는 아이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자 집 안에서 애 엄마가 불쑥 나오면서 애를 집 안으로 들이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애를 집안에서 소리지르게 놔둘 인내심은 부족했던 엄마지만, 남에게 애가 잔소리 듣는 일은 싫었던 모양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애를 복도에 풀어두는 일은 눈에 띄게 줄었고, 어디 나가기 전에 잠깐 애 먼저 나가게 해서 소리지르는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옌스에게 하니, 사람들이 애들을 갈 수록 버릇없게 키우면서도 남들이 자기 애에게 한소리 하는 건 다들 싫어하는 것 같다고 한다. 하나가 나중에 어디 가서 버릇없이 행동해서 남에게 피해를 준 경우, 상식적인 선에서 남이 타이르는 것에 대해선 받아들일 거라면서 이 부분을 잘 못하는 부모가 늘어나는 게 아쉽다고.
두번째는 우리 아파트 라인의 출입구앞에 자전거와 유모차를 항상 두는 것이었다. 아파트 복도가 넓지 않고 소방안전 등의 문제가 있어서 복도와 출입구 앞에 물건을 적재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처음엔 한두 번이었는데, 누가 딱히 제제를 하지 않으니 6~7개월 정도 전부터는 항상 그곳에 두기 시작했다. 가을이 지나서는 쓰지도 않으면서 거기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자전거와 유모차를 주차해 두었다. 먼지도 쌓이고 그 안에 빈 병 같은 것도 놓이기 시작했다. 공간이 작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에서 유모차를 집으로 올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은 자전거와 유모차를 위한 지하 주차공간에 두는데, 우리처럼 새걸 사는 경우는 집에 올리거나 자기 창고 안에 넣어둔다. 거기가 조금 좁아서 주차하고 빼오기가 불편한 경우가 있는데, 자리가 없는 건 또 아니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어디 나갈 때 일찌감치 여유있게 내려가서 챙겨야 한다는 것만 생각해두면 큰 불편은 아니다.
좁은 창고에 불뚝나온 배를 안고 들어가 유모차 주차 공간을 만드려고 먼지 들이키며 정리 및 청소를 하고, 자전거 빼올 때마다 많은 자전거 해치며 씨름을 하더라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아파트의 규칙을 지키려는데, 갈수록 더 규칙을 안지키고 주변을 어지럽히는 이웃이 참 신경이 쓰였다.

정리 후 창고. 유모차는 이곳에 주차할 수 있겠지.
결국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메일로 불평을 여러차례 했다. 담당자가 이웃에게 경고서한만 발송하며 6주가 넘도록 해결을 잘 안해주길래, 그녀의 보스를 참조로 넣어, “이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문제를 해결 안해주면 이게 새로운 규칙인 줄로 이해하고 앞으로 자전거니 뭐니 우리도 다 출입구에 주차하겠다”라고 메일을 넣었다. 다음날 새벽 6시 반에 답장이 와서, 바로 주민과 전화해보겠다며 절대 주차하면 안된다고 보스에게서 답장이 왔다. 복도 규정공고문에 붙어 있듯이 이런 건 주차하면 안된다고.
이런 공식적인 불평에 더불어 비공식적이나 적극적인 대처를 추가하기로 했다. 공식적 항의서한을 보낸지 한달이 조금 넘은 시점부터는 이게 과연 이렇게 해결될지 확실하지 않아 뭔가 해봐야겠다 싶었다. 그녀의 유모차와 자전거를 사진으로 찍어 우리 라인 전체사람에게 쓰는 공고문처럼, “자전거, 장난감, 유모차는 공용공간인 출입구 앞에 비치해서는 안되고, 지하실 전용공간에 두어야 한다. 이 사진은 하면 안되는 행동의 대표적 예시다. 모두가 규정을 잘 지켜야 한다.”고 덴마크어로 써붙였다. 규정 공고문 바로 아래에. 안그래도 그걸 붙이겠다고 했던 이야기를 들었던 옌스가 집에 와서 웃더니, 몇 개 문법을 수정해야지 아니면 네가 붙인 거 알겠다고 한다. 그리고 문법은 틀리지 않았어도 너무 딱딱하고 공식적인 것 같은 표현은 수정을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빨간펜으로 수정을 해주었다.
다음 날, 학교가는 길에 보니 그 공고문은 사라져있었다. 옌스가 퇴근한 이후에 사라진 것이니 청소부가 뗀 것은 아니고. 수정한 문서를 붙이고 떼는 숨바꼭질 같은 일이 일주일여간 지속되더니 유모차가 사라졌다. 그리고 공고문이 남아있었다. ‘아하… 유모차 치운 것으로 떳떳해졌군! 그런데 자전거는 안치워도 떳떳한 건가?’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공고문에 자전거 부분을 강조해서 “자전거는? (Hvad med cyklen?)” 이라고 손으로 쓴 뒤 다시금 붙였더니 이틀 만에 자전거도 사라졌다. 열흘 정도 씨름을 하고 나니 해결이 되었구나.
진작 얼굴보고 불평했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안되었을 수도 있는데, 뭔가 이사온 초반부터 안맞는 이웃이었다. 인사를 여러 번 해도 씹고 (지금은 그 집이 먼저 인사하기 전엔 나도 인사 안한다.), 애가 뭘 복도에 엎으면 남들같으면 치우는데 치우지도 않아서 다음주 청소부가 걸레질을 할 때까지 복도를 엄청 끈끈해진 채로 놔두고, 뭐 빌린다고 불쑥불쑥 와서 강한 율란 억양으로 빠르게 이야기하고, 내가 외국인이라 그러니 천천히 이야기해달라고 해도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두르륵 이야기 하고 가는 등… 발코니에 남이 보이도록 뭘 적재하면 안되도록 되어있는데 (이건 참 신기한 규정이다. 밖에서 보이는 아파트가 지저분해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규정이니.) 이사온 지 일년이 지나도록 그 집 발코니는 안이 거의 안보일 정도로 뭔가 쌓여있다.) 그거 안지킨다고 옌스가 여러번 지적하더라. 아무튼 뭔가 상식이 통하는 집은 아닌 거 같아서 얼굴 보고 불평하며 얼굴 붉히기 싫었다. 그래서 이런 치사한 방식으로 해결을 한 거다.
공고문을 붙이는 순간부터는 더이상 이 일이 짜증나기보다는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 숨바꼭질 같아서 재미있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오기를 부렸다. 해결되고 나니 십년묵은 체증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다시금 아파트 주변 환경도 깨끗해지고. 애들도 소리를 안지르고. 옌스가 나중에 하나 태어나면 그 집 앞에 가서 소리를 지르게 해봐야 하는게 아니냐 할 정도였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