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세자비가 출산 다음날에 퇴원한 것을 두고 한국에서 논란이 많이 있었다. 한국의 산후조리 관점으로 봐서 동양인도 이럴 수 있느냐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 우선 한국인의 출생시 머리둘레는 WHO 기준으로 평균이기에 애 머리가 커서 산후조리가 달라야 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또 흔히 이야기 되는 것으로 서양여성의 골반이 크고 근육량이 많아서 산후조리를 안해도 된다는 것이 있다.
같은 체중의 아이를 출산할 경우 서양모계가 동양모계보다 출산이 용이하다는 건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논문을 찾아볼 수 있었다. (대학원을 다녀서 저널 논문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간혹 임신과정에 대해 일반 책자로 알 수 있는 이상 더 파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이를 읽어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서양인과 동양인의 혼혈아기 출산시 제왕절개율로 보는 서양인과 동양인간 출산 난이도 차이 같은 것 말이다. (Michael J. Nystrom, Aaron B. Caughey, Deirdre J. Lyell, Maurice L. Druzin,Yasser Y. El-Sayed (2008). Perinatal outcomes among Asian–white interracial couples in American Journal of Obstetrics & Gynecology 199 (4), (385.e1-385.e5) DOI:10.1016/j.ajog.2008.06.065)
이 논문의 중요한 연구결과를 발췌한 표이다. Cesarean delivery (CD, 제왕절개)율을 보면 아시아 모계와 백인 부계의 자녀는 33.2%이고 백인 모계와 아시아 부계의 자녀는 23.0%이다. P value가 0.001보다도 낮아 매우 유의미한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같은 아시아-백인 혼혈자녀를 출산할 경우 백인 모계 출산시 제왕절개율이 아시아 모계 출산의 경우보다 10.2%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골반 골격 차이 등을 포함한 생물학적 차이가 이런 차이를 낳는다고 볼 수 있다. (논외의 발견이지만, 각각의 하위그룹 중 인종간 커플의 샘플사이즈를 보면 아시아 모계와 백인 부계는 690, 아시아 부계와 백인 모계는 178로 아시아 부계와 백인 모계 결합이 훨씬 드문 것을 볼 수 있다.)
단지 이것만 놓고 이야기하면 동양 여성의 골반이 작아 산후조리도 더 길게 해야한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백인커플과 동양인커플의 제왕절개율을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더 크게 태어나는 태아로 인해 백인커플의 출산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골반 사이즈 등의 체격 조건은 서양 모계가 출산에 더 용이하지만 아기가 더 커서 서양인의 출산시 충격이 동양인보다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골반 사이즈 차이로 인해 서양여성이 더 쉽게 출산할 수 있고, 따라서 산후조리가 필요 없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근육량은 어떨까? 인종간 선천적 근골격계 질량 차이를 보면 설명이 될 것 같다. (Silva AM, Shen W, Heo M, et al. Ethnicity-Related Skeletal Muscle Differences Across the Lifespan. American journal of human biology : the official journal of the Human Biology Council. 2010;22(1):76-82. doi:10.1002/ajhb.20956.)
왼쪽 그래프의 여성 근골격량을 보면 빨간색이 백인, 보라색이 아시아인이다. 남성의 경우 아시아인은 생략되었다. (아마 적은 샘플사이즈 등으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안나와서 생략된 것 같다.) 여성의 인종간 근골격량 차이는 남녀의 근골격량 차이에 비하면 근소한 차이를 보이나 회귀분석으로 나타나는 백인과 아시아인 여성간 근골격량 차이는 전연령대에 걸쳐 개략적으로 3-4킬로그램 정도로 나타난다. 어쩌면 이 근골격량의 차이가 모체에 주는 출산의 충격에 차이를 빚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근골격량 3~4킬로그램 차이는 백인여성과 아시아인 여성의 키차이를 고려하면 골반 인근 근골격량 차이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사실 난 덴마크식 산후조리를 하고 있다. 덴마크식 산후조리는 사실 우리나라 의학계에서 조언하는 바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 의학계의 산후조리에 대한 조언이 덴마크 의학계의 그것보다는 우리나라 전통 산후조리 방식에 근접해 있으나, 임신 기간 중 체중 관리 및 운동에 대한 조언과 출산 후 그것에 대한 조언은 원론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산후조리방식은 사실 구전으로 내려온 전통적 방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사실 이는 지금과 많이 다른 과거의 주거문화 및 생활방식에 기초해 형성된 것으로 지금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출산 후 산후조리의 차이는 임신 기간 중 산모의 신체관리 방식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덴마크에서는 임신 기간 중 꾸준한 운동을 권장한다. 근손실을 최대한 막아야 출산시 용이하고 출산 후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임신중에는 무조건 휴식을 권장하고, 임신 초기 몸가짐을 조심하여 신체활동을 극히 줄이도록 주문하는데 그게 근손실에 큰 영향을 준다. 또한 의사가 체중관리를 요구한다 하더라도 임신 기간 중 먹고 싶은 것 못먹으면 스트레스가 애에게 간다든지, 몸이 요구해서 먹는다든지, 그때 남편이 원하는 것 안사다주면 평생 한이 된다든지의 이유로 원하는 대로 먹게 하는 경우가 많다. (과도한 체중 증량은 임신중독증, 임신성 당뇨, 부종, 아이의 체중 증가 – 이는 아이의 장기적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한다. – 등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살이 트는 것도 피부가 감당하기에 너무 빠른 체중 증량과 관계가 있다.)
근손실과 과도한 체중증가의 결합은 출산 후 신체가 받는 충격을 가중시킨다. 출산에 대비해 관절을 유연하게 만드는 릴렉신 호르몬의 본비는 출산후 6개월여까지 지속되는데, 이로 인해 출산 후 가볍게 걷는 것 자체도 너무 힘들고, 애를 안거나 돌보는 일도 힘들어진다. 그 와중에 급격히 체중이 느는 아기를 돌보면서 집안일을 하다보면 신체에 무리가 오고 소위 말하는 산후풍이라는 것을 겪게 되는 것 같다.
진짜 모체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의 임신과 출산후 산후조리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신 전부터 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늘려 임신기간 중 일부 근손실에 대비하고 임신 기간 전체기간 중 기간별로 알맞는 운동을 통해 근육량의 손실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 그리고 출산 후에도 초반부터 기간 별로 권장되는 운동을 함으로써 골반저 회복부터 시작해 신체 회복을 돕고, 가벼운 걷기를 포함해 서서히 정상 생활로 복귀하는 것이 필요하다.
출산 다음날 나는 퇴원을 해 복귀했는데, 경산의 경우 출산 후 6시간 내 퇴원하는 (산모가 난산 등으로 별도의 이유가 있지 않는한) 것이 이해가 간다. 나의 경우 초산이라 출산 후 어떤 일이 생기는 지를 잘 예상하기 어려워 산파와 건강상담사 (Sundhedsplejerske, 간호사 중 출산 및 육아와 관련된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자격을 획득한 전문상담사) 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하루 머물렀지만, 지나고 보니 바로 퇴원해도 상관없었다.
물론 앞으로도 산후조리는 시간에 걸쳐 해야하는 일이기에 추가적으로 관찰해보고 판단할 사항들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시아인이라 해서 꽁꽁 싸매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지루하게 산후조리원에 앉아서 산후조리를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인 입장이다. 초기 한달 정도는 모유 수유 및 기타 육아의 리듬과 패턴을 수립해 가는데 적응기간이 필요하기에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막대한 돈을 들여 산후조리원에 가서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사도우미를 쓰는게 더 낫지 않나 싶다. 그리고 모자 동실 쓰는게 엄청 힘들다고 하는 글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읽었는데, 사실 애가 가장 가볍고 요구사항이 가장 간단한 신생아 시절에 미리부터 아이에 대해 알아가고 밤중 수유의 패턴 등에 익숙해지는 것이 산후조리원 생활 이후 불쑥 커진 아기와 갑자기 둘이 앉아 그제서야 아이에 대해 배워가는 것보다 수월한 것 같다. 이제 13일차 된 하나를 보면 대충 뭘 원하는 지 우는 형태로 알겠고, 아이도 부모에 대해 빠르게 익혀가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 산다는 게 여러모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재미가 있다. 내 지인들은 내가 특별한 경우라고 하지만, 사실 내가 특별히 다른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신체적으로 유별나게 좋은 조건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 경험을 공유함으로서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간접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니 내가 쓰는 글이 절대적이거나 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