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통해 나도 다시 그 시절을 겪는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는 것처럼 어린 시절 기억들은 자주 떠올리던 기억이 아니면 잊혀지는 것이 많다. 내가 부모님에게 어떻게 어리광을 부렸는지, 어떤 감정을 겪었는지 등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잊혀진 어린 시절을 하나를 키우면서 다른 방식으로 다시 경험한다. 아이가 아닌 부모로서, 나라가 바뀌어 새로운 맥락에서.

하나는 신체적 접촉을 매우 좋아한다. 부모가 쓰다듬어주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자기 전 책을 다 읽고 나면 꼭 잠이 들때까지 몸을 쓰다듬어줘야 한다. 그런 연유로 만으로 거의 여섯살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한번도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하나를 재워준 적이 없다. 아이의 부드러운 뱃살을 쓰다듬는 그 따뜻한 감촉을 우리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일 거다. 또 길을 가다가 갑자기 “엄마, 안아주세요.”라던가, “엄마, 뽀뽀.”라면서 신체적 접촉을 원하는 때가 있다. 나는 어땠는가? 전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나와 옌스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과의 신체적 접촉을 좋아하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친구들 중 하나에게 작별 포옹을 하겠다고 안아줄때면 소극적으로 안겨줄 뿐이지 적극적으로 안아주는 건 정말 내키는 경우 아니면 애착을 느끼고자 하는 접촉을 좋아하지 않는다. 꽤나 드문일이더라.

책장을 새로이 사주고 디스코 램프랑 인형집, 전축 등을 그 위에 이쁘게 놔줬더니 자기 방이 큰 애 방같이 느껴졌던 거 같다. 그 다음부터는 저녁엔 방 정리를 제법해서 더이상 전쟁통같은 방에서 재워야 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때로는 같이 정리를 해야하기도 하지만, 정리하다가 딴짓하고 노는 것으로 새는 일이 줄어들면서 같이 정리하기도 수월해졌다. 그런데 어느날 그렇게 함께 정리를 하다가 머리카락 뭉텅이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싶어서 이게 뭐냐고 물었는데, 잘 모르겠단다. 음? 모른다고? 가위가 옆에 보이고, 가위로 싹둑 잘린 흔적이 보이는 머리카락인데? “내가 보기엔 네 머리카락 같은데, 아냐?”라고 재차 물으니, 씩 웃으면서 자기 머리를 어쩌다보니 자르게 되었다면서 죄송하단다. “네 머리카락이니까 미안할 일은 아닌데, 잘못해서 귀를 자를 수도 있고, 눈을 찌를 수도 있으니 머리카락은 엄마 없는데서 자르면 안돼. 그리고 다른 것보다 엄마한테 사실대로 이야기해야돼.”라고 말을 하자 “네.”라고 배시시 웃으면서 답을 한다. 왜 엄마한테 바로 이야기 못하고 모른다고 한건, 말하기 어려워서 그런거냐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단다. 자기 생각에 엄마가 하면 안된다고 하는 일일 것 같았던 거 같다. 나도 생각해보면 언젠가 앞머리를 바짝 당겨 눈썹 위로 잘랐던 일이 있었던 거 같다. 자르고 나서 머리가 짤뚱하게 올라갔던 기억도 나고. 다만 그래서 울었는지 뭘 어쨌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때 나도 몰래 했던 것 같은 기억만 어렴풋이 날 뿐. 아이가 잘못된 일이라도 나에게 언제고 솔직히 이야기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제 오늘 옌스가 취미활동을 하는 시간동안 이것저것 하나가 좋아할법한 일들을 하면서 여자들끼리 데이트를 많이 했다. “하나랑 같이 이렇게 데이트하니까 너무 hyggelig하고 좋다.”라는 내 말에, “자기도 딱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신나하는 모습에 나도 마음이 간질간질 따뜻했다. 엄마를 말이라면서 이름이 sommer에 성이 bacon이라고 작명도 해주고, 자기 수레를 끌으라고 이랴이랴 채찍질에 당근도 주고 하면서 그 큰 민속촌을 쏘다녔는데, 나이 든 엄마지만 그나마 이런 걸 해줄 수 있는 체력이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나도 덕분에 즐겁게 구경도 하고 놀다 왔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 또 이 나라의 학제도 덕분에 배우면서 학창생활이 어땠는지 되감아 가면서 생각해볼 수 있겠지. 초등학교 학창 시절 생각하면 3학년과 6학년의 담임선생님이 기억나는데, 특히 3학년때 담임선생님이 떠오른다. 다른 것도 아니고 쉬는시간에 선생님이 우리랑 놀아주시던 기억이다. 성함도 기억나지 않는데, 전두환씨처럼 머리가 벗겨지셨지만 또 얼굴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이들지 않았던 선생님이었는데, 연배가 어떠셨는지 모르겠다. 그 선생님이 자기는 기마자세로 단단히 자세를 잡고 서서 옆에서 순서대로 달려오는 애들 배를 잡고 일종의 공중제비를 돌릴 수 있게 해서 반대편 옆쪽으로 다시 뛰어가게 세워주시는 놀이였다. 많은 애들이 했는지, 아니면 내가 해달라고 해서 해주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기억이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나는 선생님과 어떤 관계를 쌓고 커갈지 궁금하고, 그걸 옆에서 간접적이나마 겪고 볼 걸 생각하니 설레기도 한다.

애를 키우면서 체력적으로 힘든 시기는 다 지나고 나니 애를 키우며 내가 겪는 많은 일들과 배움이 인생을 새롭게 채워주는구나 싶어서 이런 소중한 시간을 갖게 해주는 아이에게, 그 시간을 같이 행복하게 나누고 채워가주는 옌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부모에게서 받는 것과 또 다른 차원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눠주는 아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소중한 일이다.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오래된 연인

오늘 잠시 보다만 다큐멘터리에서 롱디를 해 절절한 젊은 커플 이야기가 나왔다. 시작하지 오래 되지 않아 롱디를 시작한 이 커플의 재회 장면을 보면서 이렇게 애닲았던 적이 언제였더라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롱디라고 해봐야 연애한지 1년되던 때 쯤에 내 한국 방문 4주, 얼마전 연초에 하나와 한국 방문 3주, 이게 전부였어서 그랬는지, 저렇게 절절한 적은 없었다. 연애 초기에 옌스가 손만 잡아도 떨리고,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녹는 것 같던 시기도 있었지만, 같이 산지 6년에 애가 네살이 넘은 지금은 그런 애닲은 감정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래도 옌스가 간간히 다가와 나를 잡아 당기며 그 큰 몸에 푹 덮이게 꼭 안아 내 머리 위에 턱을 얹고 있으면 그 따뜻함에서 사랑을 느낀다.

요즘 그런데 내가 조금 건조했던 것 같다. 이사도 해야하고 준비할 것도 많고 등등 하다보니 옌스에게 많이 신경을 못 쓴 것 같다. 저 포근함을 느낀 횟수가 적었던 것으로 보아 내가 다가갔던 순간들이 적었던 것도 같고. 요즘 옌스가 어깨죽지에 담이 와서 건드리면 아파하니까 안아주거나 쓰다듬어주는 것 조차도 신경쓰이기도 했고. 오래된 연인이 된 건가? 이렇게 관심을 덜 두고 있었다니.

이사하고 정리하면 더 챙겨줘야지… 라는 것 말고 지금도 틈을 내서 조금 더 챙겨줘야겠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가장 소중히 다뤄야지… 가까이 있다고 당연시 하면 안된다. 가까울 수록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관심 갖고 지켜봐줘야 더 가까워지니까. 오늘 딸기라도 좀 챙겨줘야지. 내 몸 힘들다고 쉬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챙겨줘야겠다.

나를 사랑하는 아이, 내가 사랑하는 아이

원래도 애정표현이 많은 아이었지만 요즘 부쩍이나 사랑한다거나 엄마가 세상에서 최고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세살 반만 지나면 정말 사람이 되서 육아가 쉬워진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요즘 들어서 그 말이 부쩍 와 닿는다. 애하고 크게 씨름할 일도 없고 애가 짜증을 내는 타이밍에도 쉽게 진정시킬 수 있게 되었으며, 밤에 악몽을 꾸더라도 그걸 현실과 구분을 해서 말로 차분하게 애를 진정시킬 수 있게 되었다.

오랫만에 신생아때부터 사진을 찬찬히 둘러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힘든 건 거의 다 잊혀지고 좋은 기억만 남아있다. 옌스가 마흔 일곱에 나도 마흔인지라 이제와서 둘째를 낳을 생각은 없지만, 왜 사람들이 그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째를 낳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맞은편 집 윗집에서 딸아이를 낳았는데,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얼마나 설레고 이쁘던지. 그 당시의 기쁨과 체력적 피로에서 오는 애환이 동시에 기억나서 부모들의 다채로울 감정을 미루어 짐작해보기만 한다. 하나는 지금도 냄새를 맡아보면 어른과 달리 좋은 냄새가 나는데 애가 나를 사랑한다면서 나에게 몸을 던져 파고들을 때면 이럴 시기도 얼마 안남았을 것 같아서 얼른 나도 살을 부벼가며 냄새를 흠뻑 맞곤 한다. 이렇게 나에게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아이를 돌보는 게 힘들어 했던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하나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더욱 더 힘껏 안아준다.

하나는 내게 가장 완벽한 아이이다.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그런 완벽한 아이. 요즘은 그래서 네가 나에게 심통이 나있을 때도, 나쁜 일을 했을 때도, 그래서 내가 혼을 내거나 화를 내게 되더라도 나는 너를 그대로 사랑한단다… 라고 자주 말해준다. 또 잘하는 걸 너무 당연시 생각하고 잘못하는 것만 훈육을 위해 지적하면 자기가 잘 하는게 없다고 내가 생각한다 오해할까 싶어 잘한 건 잘했다고 담백하게라도 칭찬해주려고 노력한다.

밤에 잠든 얼굴을 보면 많이 없어진 것 같은 아기때 얼굴이 아직도 보인다. 이 아이는 아마 내가 여든살이 되어도 나에겐 아기이겠지? 애 키우다보면 마음 철렁할 것 같은 아찔한 순간들이 간간히 생기는데, 그럴때마다 큰 사고 없이 나와 함께 인생을 나눌 수만 있으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건강하게 자라줘 하나야…

발레 사랑

친교는 역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게 있어야 하는 것일까? 발레를 통해 일주일에 한두번씩 꾸준히 만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부터 그들과 사소한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중 한명과는 집에 가는 길을 함께 하면서 친분이 쌓이기 시작했다. 친구가 모자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나와 같이 열정을 공유할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좋다. 아무래도 내 발레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발레를 하지 않는 다른 친구들이 진정으로 공감해주긴 어려울 것이지 않는가. 발레는 건강 뿐 아니라 나에게 정말 여러가지를 주는 것 같다.

2012년 봄에서 여름사이 어딘가였던 것 같다. 발레를 처음 시작한 게. 어느 학원에서 시작해야할 지 감이 안서서 당시 코트라 다니던 감각으로 우선 발레학원협회부터 찾아본게 시작이었다. 협회에 회원학원 리스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역시나 내 예상대로 그런 리스트가 있었고, 그 리스트의 무수한 페이지 중 첫 페이지에 국립발레단이 있었던 게 발레와의 첫 인연이었다. 국립발레단 아카데미에 성인취미반이 있었는데, 마침 코트라와 그리 멀지도 않았고, 당시 업무로드가 심각하지 않아 야근에 대한 압박이 크지 않은 부서에 있다는 것도 다 잘 맞아 떨어져서 초보로서 아주 좋은 곳에서 발레를 시작할 수 있었다.

스트레칭은 괴로웠지만 수업을 끝내고 나면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신경 쓸 게 많은 동작들과 함께 온 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는 강한 운동수준이 버무려져서 복잡한 머릿속은 깨끗이 비워지고 몸은 한껏 달아올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로 충전된 상태.

주중 평일 2회 한시간 반씩 참석하던 수업이었는데, 주말 클래스에도 신청을 하며 주 4회가 되고, 중급반 참석도 허락받게 되며 평일에는 세시간씩 클래스를 들을만큼 몰입을 했더니 한달에 1킬로그램씩 빠지면서 한국 귀국 후 베이킹으로 찌운 살을 다 떨어냈더랬다. 덴마크에 와서 딱 나에게 맞는 수업을 찾기가 어려워 중간중간 수업을 다녔다 안다녔다 하기도 했지만 임신 후기 및 출산 후를 포함한 2년반 정도의 휴식기를 제외하면 손에서 발레를 완전히 놓은 적은 없었다. 그렇게 2020년 지금까지 해온 발레. 나에게 이렇게 오랜 기간 열정을 투자해온 일은 없었다.

지금도 끊임없이 고민을 하고 집에서 이래저래 연습을 해보고 배울 게 너무 많지만, 예전보다 테크닉적으로 훨씬 많이 늘고 이제 조금 춤을 춤답게 출 수 있어서 훨씬 더 즐겁다. 스트레칭도 예전처럼 괴롭지 않고 달아오른 몸을 약간 진정시키며 몸을 가다듬는다는 느낌에 시원하고 좋다. 상체와 하체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 느끼면서 몸의 근육이 눌린 스프링마냥 장력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꼭 튕겨나갈 것 같은 긴장감을 느끼는 것도 너무 좋다. 몸과 표정으로 그 긴장감을 표현해낼 수 있다는 사실도 쾌감으로 다가오고, 춤을 추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내 무대의 우아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에서도 설레인다. 높고 딱딱한 토슈즈를 신고 움직이다보면 물집도 생기고, 물집이 생겼음을 알기도 전에 이미 터져있고 하는 통증도 있지만, 사실 그걸 알기도 어려울 만큼 동작 자체에 집중하게 되어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게 직업이라면 다른 일이겠지만, 취미로서 접근하는 나에게 발레란 정말 아름다운 열정의 대상일 뿐이다. 끊임없이 추구해가는 그런 대상.

다음 시즌부터는 고급반에 등록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콤비네이션도 많이 길지만,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이제 거기 등록할 예정이다. 요일이 내가 원하는 타이밍은 아니지만, 이번주 시즌 마지막 수업을 대타로 뛴 분이 고급반 담당 선생님이 될 분인데, 수업이 너무 즐거웠고 몸 뿐 아니라 두뇌적으로도 챌린징해서 희열이 느껴졌다. 이분이랑 다음주 월, 화, 수요일에 썸머 캠프 수업도 함께 할 예정인데 너무 기다려진다. 이제 주말만 지나면 바로네. 아…

35개월 하나

얼마나 이쁘게 자랐는지 모르겠다. 이제 정말 대화같은 대화도 나누게 되고 하나의 참 살갑고 따뜻한 성격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덴마크어로는 세세한 뉘앙스를 담아 이야기를 나누는 게 늘어가고 요즘은 한국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나에게 뭔가 달라고 하는 건 한국어로 말하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다.

뭔가를 가르쳐주면 금방 기억하는데, 어떤 규칙에 대한 것 중 사회성과 관련된 규칙을 특히 잘 기억한다. 다른 사람을 때리면 안된다, 우리집에 놀러온 사람은 내 것을 빌려 놀아도 된다, 남이 갖고 놀고 있던 것을 뺐으면 안된다, 누가 때리면 맞때리는 게 아니라 멈추라고 이야기하고 어른을 불러서 중재를 시켜라, 자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해야하고, 조용히 해야하는 상황임을 어른이 알려주면 조용히 해야한다 같은 것 말이다.

하나 성격이 이렇다보니 자기 것을 잘 안나누려는 아이와도 크게 다투는 법 없이 잘 노는 편이고, 상대가 때려도 상대가 사과를 하면 기꺼이 먼저 가서 안아주려거나, 아니면 상대가 사과 하기 전에도 사과를 기다리며 다가가서 화해를 준비한다. 옆에서 보고 있다보면 나랑 달리 참 따뜻하고 살가운 아이구나 싶다.

힘이 넘쳐서 여기저기 많이 뛰어다니고 하지만 어디 데리고 다니기에 부산하지 않고, 외출해서 앉아서 밥을 먹거나 기차를 타고 다님에 있어서도 큰 어려움이 없다.

사교적인 성격이고 타인에 대한 신뢰를 기본적으로 깔고 있어서 낯선 사람과도 눈을 마주하고 자기를 소개하고, 상대 이름도 묻고, 이런 저런 자기 이야기도 늘어놓는다. 때로는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도 한다. 참 매력적인 아이라는 생각이다.

기질이라는 게 참 큰 것 같다. 주변 환경과 부모의 육아, 보육원에서의 보육환경 등 여러가지 환경적 요소의 영향도 있겠지만, 제일 큰 건 하나가 타고 난 기질인 것 같다. 그 기질이 잘 발휘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의 몫이겠지.

얼마전 영화관 가서 한시간 반동안 조용히 잘 앉아서 관람도 하고 오늘도 한시간 반에 달하는 왕립극장 관람에서도 하고 싶은 말은 귓속말로 속닥속닥 하며 잘 버텨줬다. 미로같은 왕립극장의 긴 거리를 잘 걸어주었고 여기저기 환경이 따라주는 연습실에서는 깡총깡총 뛰어다니고 매달리고 춤추고 힘을 발산하면서도 부산하거나 시끄럽지 않게 잘 따라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에 시댁 친척까지 모인 모임에 가서도 행동이 얼마나 유쾌하던지, 가족들이 말도 너무 잘하고 성격이 밝고, 식탁 예절도 바르고, 귀엽다고 칭찬이 어찌나 많던지.

올해 크리스마스며 새해 맞이까지 자기 몫을 톡톡히 해냈다. 이제 한달 후면 하나의 세돌 생일이 되는데 그때가 되면 또 달라지겠지. 한달 한달이 다르니까.

내 사랑 하나. 널 세상에 낳아 엄마는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하구나. 내 세상이 180도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하나. 사랑해.

내 모자를 가져다 쓴 하나. 패션 센스하며 참 훌륭하네. 🙂

30개월의 하나

30개월의 하나가 어떤지 기록이 되어 있어야나 나중에 돌아볼 수 있을 거 같다. 일로 가정생활로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지만 짬을 내서 기록해본다. 

하나가 한국말과 덴마크어가 존재한다는 걸 이해한 건 대충 18개월  들어설 때 즈음부터였다. 사물이나 개념에 엄마와 아빠가 다른 표현방식을 쓴다는 것을 알고 그 표현방식에 한국어와 덴마크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덴마크어 어휘와 문장 구성이 한국어에 비해 월등히 낫지만 내가 한국어로 하는 말의 대부분을 이해하고 덴마크어로 표현한 단어에 대해서 그건 한국어로 뭐냐고 물었을 때 한국어 어휘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묻든 대부분 덴마크어로 답하고 간혹 한국어로만 아는 단어 (예를 들어 맵다와 같이 보육원에서 쓸 일이 없는 단어)나 덴마크어 문장에 섞어쓰는 게 일상이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 듣기를 통해 이해하는 수동적 학습만으로는 부족하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어휘를 선택해서 문장을 구성하는 능동적 학습이 필요한데, 그걸 강요하자니 한국어를 싫어하게 될 것 같고 쉽지가 않다. 그나마 요즘 한국어로 이게 뭐냐고 묻는 게 늘어나서 한국어 어휘를 넓히는 기회가 생기는게 다행이다. 덴마크어로 의사소통하는 부분만 따지면 미묘한 뉘앙스도 살려가며 대화하고 있어서 이맘때쯤 아이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거였구나 놀라곤 한다. 단어 열거로 의사소통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말다운 말을 긴 문장으로 하는 건지.

16개월인 친구네 애가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은 되나 아직 발화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하나는 언제 말을 시작했나 봤더니 만 15개월 되었을 때에는 아니오에 해당하는 엄마, 아빠, Hvad er det? (이게 뭐예요?), 하나 (자기 이름), 거북, nej (아니오), hej (안녕), bye 정도 말하고 기타 동물 소리흉내 (멍멍, 미야오, 구구, 꼬꼬 등)을 낼 수 있었다. 만 17개월이 되었을 때는 ja (예)를 사용하면서부터 조금 더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는 게 수월해졌다. 두달 사이 어휘가 빠르게 늘어서 할 수 있는 단어를 세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보육원 애들 이름을 다 기억하고 부정확한 발음이나마 애들 이름을 이야기해서 내가 다른 애들 이름 기억하는 것도 쉬워졌다.  보육원에서 또래 중 가장 말을 잘하는 애 중 하나였는데, 이중언어 하는 애들 중에 발화가 늦은 애도 있지만 하나처럼 오히려 더 잘 하는 애들도 있다고 들었더랬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아이가 맞는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살려줄 지 고민을해봐야겠다.

하나가 만 두살이 되자마자 발레를 시켰다. 어른과 함께 가서 하는 발레인데 하나의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도움이 될 활동 중 하나로 나도 즐길만할 걸 찾다보니 발레가 되었다. 처음엔 그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서 발레 수업 내내 노래에 맞춰 뛰려는 애를 잡아 함께하는 활동에 포함시키는 게벅찼다. 단 30분에 불과한 시간인데 말이다. 같이 움직여야 하는 규율에 애를 너무 맞추려다보면 애가 기분이 상해서 발레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고, 애를 마음대로 풀어놓으면 방해가 되니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애를 통제하고 활동에 동참시키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느라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진땀을흘린 날이 많았다. 거기다가 발레 수업이 끝나는 시간 때 즈음이 하나가 피곤해하는 타이밍이어서 안아달라는 하나를 안고 나 혼자 춤을 추느라 힘든 경우도 흔했다.

애가 발레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바는 없지만, 발레가는 시간을 고대하고, 보육원에서 다리를 들고 까치발로 다니고 빙글빙글 돌고, 선생님들이 뭐하냐고 물어보면 발레한다고 해서 선생님들이 하나를 Balletpige (발레소녀)라고 부를 정도기에 좋아하는구나 하고 추정할 뿐이다. 한달 반 정도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이번 주말부터 클래스가 시작되었는데, 가는 길에부터 그전에 배운 걸 기억하고 이야기하길래 신기했다. 이제 꽤나 장기 기억력이 생기는 모양이다.  지금은 2-3세 사이 유아반에서 배우고 있는데, 두살 반이되서 그런지, 이번엔 시키는 것도 제법 따라하고 애 쫓아다니느라 고생하는 거없이 30분을 잘 보내고 왔다. 내년에 3세 반에 올라갈 때면 혼자 들여보내도 걱정이 없겠다 확신이 들었다.

페달 없는 자전거는 발을 땅에 대는 시간이 얼마 안되게끔 쌩쌩 뒤로 밀기 시작해서 우리가 뛰어다녀야만 쫓아다닐 수 있게 능숙해졌다. 정글짐에 기어 올라가서 높은 곳의 미끄럼틀을 타고 씽씽 내려오는 것도 능숙해졌고 아빠가 잡아주는 손에 크게 기대지 않은채로 외줄타기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반동을 활용해 몸을 위아래로 흔드는 것까지도. 

어디 가서 크게 맞을 걱정은 하지 않는 게, 간간히 맞기는 하는 것 같지만 손바닥을 보이며 힘있게 팔을 뻗으면서 안된다고, 멈추라고 (Stop! Det må man ikke! Man må ikke slå!) 크게 외칠 줄 알아서 주변 어른의 시선을 쉽게 끌어낸다. 장난감이나 놀이터 시설 등에 대해서도 보육원에서 가르친 순서지키기, 적당히 놀고 양보하기 등을 이해하고 있어서 간혹 어른이 중재해야 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로 인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없어졌다. 그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서 가르쳐서 그런지 빨리 배우더라. 하나가 다른 애를 때리는 경우는 상대가 먼저 때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본 적도 더 어렸을 때나 있었고, 보육원에 물어봐도 그런 경우는 없다고 한다. 상대가 때린 경우에도 안된다 하고 크게 항의하는 거지 맞서 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다. 어려서는 애가 워낙 활동적이고 힘이 좋아서 남들 때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이제는 그건 크게 걱정을 안하고 지낸다. 

하나는 보육원에서 있던 일들을 이것저것 신나게 말해주는 편인데 궁금한 일 나중에 보육원가서 물어보면 되서 현황 파악이 쉽다. 친구 Feifei의 세살 생일에 케이크를 먹었는데, 자기는 케이크 안먹고 아이스바 먹었다며 시무룩하게 말하길래, 유당제한때문에 그런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그게 맞다고 이야기해주더라. 그리고 다른 애들이 자기들도 케이크 안먹고 아이스바 먹겠다고 해서 애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이제 생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자기 생일이 언젠지 자꾸 묻는다 최근 두어달사이에 애들 생일 잔치가 여럿 있었는데, 자기도 생일 주인공이 되고 싶었나보다. 하나 생일 땐 나도 케이크를 준비해야 할텐데 쩝. 그날은 대충 휴가 내고 새벽부터 준비를 하던가 해야할 것 같다. 

요즘은 수줍음을 조금 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낯선 남자에게 수줍음을 탄다. 인도에서 낯선 남자가 마주지나가면 내 바지가랑이를 잡고 뒤에 숨는다던가, 유모차에서 얼굴을 돌린다던가 한다. 그리고 나에게 Jeg er lidt genert. (저 조금 수줍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자는 매우 좋아해서 낯선 할머니나 아줌마 할 것 없이 마치 아는 사람이라도 되는 냥 Hej?! (안녕하세요)하고 크게 외치며 인사한다. 이 시기에 흔히 있는 거라고 하더니 수줍음의 수자도 모를 것 같던 하나도 그러는구나 싶었다.

지난달에 친구가 와서 자고 가면서 자기도 남에 집에 가서 자고 싶기도 하고 그런가보다. 나는 걔네 집에서 언제 자냐고 간간히 묻는다. 우리 집에서 그 친구가 자던 날, 내가 책을 다 읽고 자라고 한 뒤 자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옆에서 자는 척 했다. 그러자 지들끼리 나를 사이에 둔 두 침대에서 서서 대화를 나눈다. 

하나: 네 엄마는 어디에 가셨니?” 

친구: “우리 엄마는 일하러 가셨어.” (집들이 파티 가느라 우리집에 애를 맡긴 거지만 애들은 일하러 간 걸로 오해했다.) 

하나: “너희 엄마는 휴가가셨니?” 

친구: “아니” 

하나: “그러면 Lagkagehuset (체인점 빵집)”에 가셨니?” 

친구: “아니” 

하나: “히히. 그거 나야. 내가 오늘 lagkagehuset에 다녀왔어” 

이날 하나는 우리와 그 빵집에 다녀왔는데, 이렇게 그걸로 농담까지 할 줄이야. 애들의 대화를 이렇게 들어볼 날이 없었는데 애들이 벌써 말장난도 치면서 노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이미 가까이 잘 노는 친구가 생긴 것도 놀랐고. 

내가 선생님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특정 친구와 놀기보다는 재미있는 걸 하는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데, 서서히 친한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툭하면 듣는 이름이 대충 열명 안으로 좁혀진 것만 봐도 그렇고. 

밤에는 옌스와 번갈아가며 책 읽어주고 재우는데, 간혹 주인공이 우는 이야기가 나오면 하나도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고, 티비에서 주인공이 울어도 같이 운다. 공감능력이 좋은 아이라고 보육원에서 들었는데 실제 우리가 느끼기에도 그렇다. 내가 공감능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 후천적으로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는 편인지라 그런 걸 볼 때 좋다 싶다.

아이가 태어나서 세살까지 부모를 기쁘게 하는 걸 보답하기 위해 부모가 그 나머지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은 적이 있다. 그 삼 년의 시간이 벌써 거의 다 흘렀구나. 앞으로도 계속 이쁘고 사랑스러운 딸이겠지만 이 첫 삼 년의 시간은 참으로 기적같은 시간이라고 기억할 것 같다. 작은 핏덩이에서 이렇게 아이같은 아이로 성장한 기적.

21개월의 하나

하나는 이제 만 21개월이 조금 넘었다. 두돌까지 세달도 채 남지 않았다니, 세월이란 정말 쏜살같이 흘러가는구나. 보육원에서 부모와의 첫 면담이 좀 늦어졌지만 곧 시간을 잡는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요즘 부쩍 사회성이 늘어가는 것 같아서 그걸 지켜보는 게 즐거운데 내가 보는 일과 시간 밖의 하나에 대해 차분히 앉아 이야기할 시간을 갖는 게 참 기대된다.

하나는 보육원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애 중 하나라고 한다. 이중 언어인 아이는 말이 늦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닐 수 있다는 걸 예전 친구의 아이에게 본 것처럼 하나에게서도 확인한다. 보육원을 처음 시작했을 때 선생님이 이야기하기를, 물론 개인차이는 있지만 아이에게 언어 인풋을 많이 늘리면 이중 언어라도 늦게 말을 시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충분한 언어 인풋을 주었는지는 내 주관적인 경험이니 알 수 없지만, 유아 언어 없이 애가 알아듣든 말든 어려서부터 많이 말을 해주려고 노력했고 아이의 옹알이때부터 섀도잉을 포함해 아이의 말에 피드백을 열심히 해주었다. 그리고 하나는 말을 어찌나 열심히 연습하는지. 저렇게 끊임없이 연습하니 말이 늘지 싶을만큼 집요하다.

신체적으로는 키는 표준인 거 같다.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고. 몸도 딱 표준. 몸을 쓰는 건 참 열심히인데, 선생님들 표현으로는 작은 스파이더맨이란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까지 몸을 제법 사리는 편이면서도 자기 딴에 검증이 된 것에 대해서는 겁이 없다. 어디 부딪히거나 넘어져서도 피곤한 시간이 아니면 아주 아프기 전엔 아프다고 징징거리거나 울지 않고 툭툭 털고 일어난다. 막 기고 어디 잡고 일어서고 할 때부터 덴마크 엄마들이 하는 것처럼 하려던 건, 아주 위험한 게 아니면 넘어지고 부딪힐 기회를 주고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엔 상황을 차분한 얼굴로 얼른 판단한 후 필요 이상으로 과잉 반응하지 않고 괜찮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털고 일어나게 해줬다. 애들은 어떤 수준의 통증에 대해 얼마만큼 울어야 하는지를 엄마의 표정을 통해서 배우고 거기에 기준점을 잡는다고 들었는데, 하나의 기질 탓이 크겠지만 하여간 하나는 그런 면에서 참 강한 아이로 큰 것 같다.

내가 데릴러 가면 절대 그냥 옷을 입는 법이 없어서 보육원에 앉아 같이 거의 20분씩 놀다 오다보니 그 떄 남아있는 애들과 같이 노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게 되는데 아이들과는 제법 같이 놀이를 즐긴다. 우리가 집에서 하나에게 Goddag, goddag하면서 악수를 자주 시키는데, 요즘 간혹 우리에게 Goddag, goddag하면서 손을 잡아 흔들고 하더니, 보육원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그렇는 걸 봤다. Norma라고 하나보다 생일이 며칠 늦은 여자애가 있는데, 걔한테 그러고 Dagmar라는 다른 큰 여자애에게도 가서 또 그러더라. 그러니 Norma도 Dagmar에게 가서 똑같이 하고, 나에게 와서도 그러는 거였다. 공도 같이 던지고, 춤도 같이 추고. 어느 날은 Norma에게 가서 자기 모자와 자켓을 가리키며, “모자”, “자켓” 이러는 거다. 한국말로. Norma가 그런 하나를 보다가 나를 보더니 뭔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짓는다. 또 여기저기 애들한테 뛰어다니며 한명한명 짚어가며 이름을 불른다. 나에게 가르쳐주듯. 선생님 왈, 하나는 보육원 애들 모두의 이름을 다 알고 이름 외우는 거 좋아해서 새 아이가 들어오면 그 날부로 바로 이름을 외운다고 한다. 집에서 하도 연습을 해 나도 애들 이름 상당수를 알 정도니 말 다했다.

하나는 새로운 일에 너무나 즐거워하는 즐거운 아이란다. 별거 아닌 거에도 엄청 크게 웃고 즐거워하고 노래에 즐겁게 춤을 추는 흥이 많은 아이. 호기심도 엄청 많고 보육원 생활 태도도 좋다고 한다. 여태까지는 참 잘 커준 것 같다.

둘째는 없다라고 할 만큼 충분히 힘들었던 시간이지만, 둘째가 하나같이만 건강하고 씩씩하고 이쁘게 커준다면 둘도 낳고 싶을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보장은 전혀 없고 애들은 형제라도 너무나 다른 인격체일 것임을 알기에 둘째는 갖지 않을 거다. 그런 만큼 지나가는 이 시기가 돌아오지 않음을 알고, 매 순간이 소중하다. 하나를 키우면서 나도 엄청 큰다. 어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고 그에 맞춰 대응하려고 하고 인내심을 키우게 되는 등 말이다. 아이라면 참 싫어했던 내가 언제 이렇게 변했나 싶을만큼. 내 아이가 이쁜 만큼 다른 집 아이도 이뻐지고.

아기였던 게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닌 거 같은데, 아기라는 말은 붙일 수가 없을만큼 큰 하나. 어느새 이렇게 컸누. 지금은 내가 안아주겠냐고 물어보면 멀리 있다가도 확 뛰어와서 안아주고 내가 볼이 떨어져나갈 듯이 뽀뽀를 해주면 까르르 뒤집어지며 웃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허벅지와 종아리를 마사지해주면 간지러워 몸을 이리 굼실 저리 굼실 하며 배를 잡으며 웃고, 내가 하는 이런 저런 유치한 장난들 좋다며 또 해달라며 수십번이고 조르지만 이게 언제까지일까. 그런 생각이 들면 지금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거 같다는 표현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제야 와닿는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주렴 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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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부관계를 위한 우리의 원칙

결혼한지 3년이 조금 넘었으니까 신혼은 아니렸다. 남편이 이젠 정말 뼛속까지 가족같은 느낌. 아마 하나를 낳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하나가 우리와 함께한 지 출생후 이제 20개월 되었는데 마치 우리와 평생을 한 느낌이 드니까 그 전에 결혼한 우리의 삶이 항상 그래왔던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거다.

우리 딴에야 조금 다툰 일은 있지만 어디 명함을 내밀기에도 민망한 작은 다툼이 전부인 것 같다. 결혼 전 둘이 다짐한 몇가지가 있는데, 서로 사랑하더라도 짜증나는 일들은 있게 마련이니 1) 절대 서운한 감정을 쌓아두고 냉전하지 않기, 2) 서로에게 항상 좋은 의도로 대하기와 상대가 그러하리라고 믿기, 3) 서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하기, 등이 있다. 아마 이를 지켜오기 위해 노력하고 지켜온 덕에 작은 다툼이 큰 다툼으로 번지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출산 후 1년 동안은 나의 여유가 없어지면서 내가 짜증내는 일이 제법 있었지만, 육아 및 가사일에 옌스가 익숙해지고, 하나가 커가면서 일들이 조금씩 줄어들자 과거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고 미움의 감정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흘릴 수 있었다.

사실 가까운 사람에게 가깝다는 이유로 내 힘든 순간 날을 새우고 의도치 않게 또는 죄책감을 심어준다던지 하는 식으로 의도적으로 상처를 줄 수 있고 또 주는 일이 흔하다. 가족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지만 관계는 정태적인 게 아니라 가까운 관계도 언제고 멀어질 수 있다. 그래서 소중하고 가까운 관계는 그 모습이 헤어져 변해버리기 전에 항상 잘 가꿔야 한다. 그리고 양쪽이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살면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 서로 타협하고 조율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 타협하고 조율한다 함은 매우 실용적인 관점에서 출발한다. 누가 옳고 그르냐, 어떤 것이 공평하냐와 같은 원칙이나 정의 중심의 접근이 아니다. 한 쪽의 상황이 어렵고 다른 한 쪽의 상황이 여유있으면 여유있는 쪽이 맞춰주고, 도움 받는 쪽은 고마워하고 도움을 잘 받아들이고 나중에 내가 여유있는 상황에 있을 때 또 도와주고 그런 거다. 어쩌다보면 항상 여유있는 쪽 또는 도움 받는 쪽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삶은 원래 그런 거 같다. 꼭 공평하지 않은 것. 서로 양보하려고 노력하고 그걸 각자가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고마워할 때 관계가 부드럽게 흐른다. 그러니 남이 어떻게 생각하던지 상관없이 두 사람만의 원칙을 갖고 문제를 풀어간다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생각한다.

물론 문제가 없는 관계라고 해서 좋은 관계라는 건 아니다. 평생을 같이 하려고 만난 사이이니 만큼 남들과는 다른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런게 있어서 결혼을 한 것일테니 그걸 가꿔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다. 옌스는 로맨틱함이라고는 찾아보기도 어려운 나와 달리 조금의 로맨틱함을 갖고 있다. 물론 이는 상대적인 거고 우리 둘다 별로 로맨틱한 유형은 아니다. 그래도 서로에 대한 로맨스는 아직까지 잘 갖고 있는데 그건 어쩌면 매일 사랑을 표현해서가 아닐까 싶다. 사랑을 표현하려다보면 칭찬도 해야하고 칭찬이 칭찬다우려면 구체적이어야 하다보니 서로에 대해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러다보면 잊고 있던 장점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고 또 모르던 부분도 보이기도 하고 괜히 가슴 설레는 순간도 다시금 생긴다. 그리고 상대의 그런 칭찬을 듣다보면 내가 아직 상대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에 나를 다시금 가꾸고 싶게되고 내 마음에도 달짝지근한 사랑의 기운이 번진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데, 옌스하고의 관계에서는 그냥 그렇게 되었다. 그게 바로 인연이라서 그런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유지하고 가꾸는 건 노력없이는 안된다는 측면에서 그냥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닐게다.

사랑한다는 건 사랑에 빠진다는 것처럼 감정의 회오리에 휩쓸리는 피동적인 게 아니다. 능동적인 행동이다. 어려울 때건, 내가 지치고 힘들때 건, 아끼고 가꿔나가는 게 관계이고 그 행동이 사랑한다는 행위이다. 결혼을 하고 같이 살다보면 처음과 같은 두근거림이나 열정은 서서히 사그라들지언정 내 마음에 큰 자리를 내어 같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다른 종류의 감정이 싹트고 서로를 위해 나를 내어줄 수 있게 되는데 나는 그게 사랑이라 생각한다. 먼저 결혼한 친구가 오래전에 나에게 결혼에 대한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해인아. 조급해 하지마. 대충 거슬리는 게 없다고 결혼하는 게 아니라 꼭 네가 존경할 만한 점이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해. 그래야 나중에 힘든 일이 있고 서로에게 지치는 순간이 와도 그 존경하는 점 때문에 그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어.” 라고 말이다. 그게 참 와닿았고, 그 말에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나니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이제 만난지 거의 5년이 다 되어가는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남편이나 시댁이나 좋은 사람을 만나서 잘 지내오고 있는 건 행운일 지 모르겠지만, 과거의 나였다면 이 관계를 현재와 같이 가꿔오지 못하고 아마 진작에 망쳐버렸을 거다. 결혼하기 전에 서로 합의한 이 원칙을 앞으로도 잘 지키고 서로를 귀하게 여긴다면 계속 행복한 가족을 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또 다른 한 쌍의 한-덴마크 커플 탄생

어제는 날씨가 하루종일 변덕스러웠다. 비가 오다 그쳤다, 흐리다 해가 떴다가, 바람이 불다 잦아들었다가. 정말 변화무쌍한 덴마크 여름 날씨의 전형이었다고 할 수 밖에. 덴마크에서 알게 된 친구의 결혼식이 예정되었던 어제, 교회 결혼식 후 운하 보트투어를 계획한 그들의 결혼식이 잘 진행될 수 있을지, 보트는 천장이 커버되는 보트인지 살짝 신경이 쓰였다. 덴마크에서는 나쁜 날씨는 없고 나쁜 옷차림만 있다는 이야기가 있기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우산에 더해 옌스는 우비 바지를 챙기고 나는 앞코가 막힌 플랫슈즈를 챙겼다.

우리도 결혼식날 비 오면 잘 산다고 하듯이 덴마크에서도 비 오면 잘 산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안 그래도 잘 살 것 같은 커플이었기에 비 오는 것 보면서 잘 살겠거니 싶었다. 우리도 비 오는 여름 날 결혼했기에 그게 꼭 크게 속상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계획에 차질이 빚어져도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즐길 커플인 것을 알았기에 마음 상하는 것 없이 그들이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실제 모두가 날씨에 상관 없이 아주 즐거운 결혼식을 즐겼다.

하이힐 신고 유럽의 돌길을 뛰는 것만큼 고역이 없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옌스도 잘 알게 되어서, 여유있게 미리미리 출발해 교회로 향했다. 옌스네 조카 세명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는 크리스챤스교회 (Christianskirke)에서 식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교회 구조가 평균적인 교회와 조금 다르다 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다른 면이 분명히 있었다. 신부에게는 다소 안타깝게도 복도가 짧고 좌우로 긴 교회였고, 신부가 미사 집전시 서는 연단이 복도 중간에 위치한 게 아니라 짧은 길이 때문인지 정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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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 위에 보이는 연단은 일반적으로 교회의 복도 중간에 측면에 위치해 있다. 결혼식에는 성직자가 저 위에 서지 않고 빨간 카페트 위에 선다. 세 번의 결혼식 중 두 번이 여성 성직자였고, 그 중 한 번은 아프리칸 혈통의 덴마크인 성직자였다. 루터교회라 우리나라의 천주교와도 개신교와도 절차적, 성직자의 역할적, 교회 건물의 구조적 측면에서도 다 차이를 보인다.

덴마크인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온 커플의 친구들 비중이 커 대부분의 미사는 영어로 진행되었다. 간혹 덴마크어로 이야기한 경우에는 따로 이를 영어로 해석해 반복하지 않아서 덴마크어를 알아듣게 되니 결혼식 절차도 재미있게 와 닿았다. 특히 비가 와서 둘이 잘 살 거라며, 애를 많이 낳든, 돈이 많이 들어오든 복이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마 덴마크 가족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였는지 굳이 영어로 되풀이 하지 않았는데, 이는 이야기 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살짝 해봤다. (나중에 한국에서 멀리 날아오신 그녀의 어머니께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고 살짝 말씀 드렸다. 행복하게 둘 잘 살 거라고.)

덴마크 교회결혼식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위 사진에 나온 의자의 좌석 배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원래는 4개만 놓이는데 (이 날은 신부 부모님 모두가 배석하기 위해 의자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원래는 신부 아버지만 동석한다.) 왼쪽에 신부와 아버지가, 오른쪽에 신랑과 베스트맨이 앉는데, 중간에 신랑, 신부만 일어나서 연단위에 선다. 혼인 서약과 반지 교환, 성혼 선언, 키스, 그리고 기도가 끝나면 이 둘이 왼편에 앉고 오른편엔 베스트맨과 신부 아버지가 앉게 되는 식이다. 이날은 의자 하나를 추가해 신부 어머님이 오른편에 앉으셨다.

결혼식 전 신랑이 그렇게 긴장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신랑을 자주본 것은 아니지만, 친구를 통해 들은 내용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본 내용을 토대로 형성된 그의 카리스마와 유머 넘치는 이미지와 매우 달랐다. 그 전에 옌스 동료의 결혼식에서도, 옌스 사촌의 결혼식에서도 엄청 긴장한 신랑의 모습을 봤는데, 역시 많은 하객들 앞에서 하는 결혼식은 누구에게나 긴장되는 순간인가보다. 베스트맨 증인 한 명만 두고 결혼한 우리야 딱히 긴장할 일은 없었기에 그냥 이런 타인의 긴장의 순간이 더 눈에 띄고 신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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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한 신랑과 그의 베스트맨. 그녀의 신랑은 항상 여유가 있어보였는데, 이 날 그의 모습에는 긴장이 넘쳤다. 저녁 식사 때 베스트맨의 여자친구를 통해 들은 바, 너무 긴장해서 뭘 어떻게 준비해야할 지 몰라해, 베스트맨이 하나하나 챙겨줬다 한다. 항상 계획이 철저하고 뭘 해야하는지 명확하며, 효율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그와 너무 달랐다고. 로맨틱하다.

 

우리의 신부는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부모님과 함께 입장하였다. 몸에 꼭 들어맞게 끈으로 졸라 맨 새하얀 웨딩드레스는 그녀의 피부색과 어우러져 그녀를 환하게 빛나게 해주었다. 어머니는 이미 눈물을 참느라 입을 굳게 다무셨는데, 결혼식 내내 흐르려는 눈물을 참느라 고생하셨다. 신랑, 신부가 연단에 서있는 동안 베스트맨이 휴지를 찾아 건낼 정도였으니. 타국에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지고, 우리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등을 생각해보다 보니, 더 짠하게 느껴졌다. 붉어지는 눈시울을 참고 착석하시는 타이밍에 딸에게 눈물 안보이시려고 고개를 돌리시는데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냥 왠지 모르게 그래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안심하시라는 마음을 담아 환히 웃어드렸고, 어머님도 짧게나마 웃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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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신부 입장! 부모님을 양쪽에 모시고 입장했다. 양성평등에 있어 우리보다 앞서있다는 덴마크이지만, 결혼식 만큼은 아빠만이 동석하는 것이 일반이다. 국제결혼의 장점은 둘만의 스타일대로 바꿔도 그것갖고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 두 분과 함께 입장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드레스도 정말 아름다웠지.

 

You may now kiss your bride. 그들은 성혼 선언이 끝나고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의 커플처럼 키스를 나눴다. 이 키스는 Closing the deal 같은 게 아닐까? 정말 둘이 결혼한 것을 확인하는 순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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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may now kiss your bride.”

 

장대비가 잠깐 그친 타이밍을 노려 배 타기 전 새로 탄생한 부부가 하객들에게 부부로 첫 인사를 나누는 리셉션을 위해 아페리티보를 즐기기 위해 야외로 이동을 했다. 부부는 같이 또 따로 하객들과 담소를 나눴고, 우리 모두 이 결혼을 축하하며 샴페인을 즐겼다. 간혹하는 와인 한 잔은 괜찮다는 의사의 말을 믿고 샴페인 한 잔을 하길 원했으나, 옌스의 강력한 주장으로 반 잔만 마실 수 있었다. 흑흑. 입덧 시작한 이후 역하게만 느껴졌단 레드와인과는 달리 샴페인은 여전히 싱그럽고 좋았다. 나는야 샴페인 p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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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 리셉션. 사실 완전 야외를 계획했다고 하나, 언제 비가 쏟아질 지 몰라 No. 2라는 레스토랑 테라스를 순식간에 빌려 이용했다. 다행히 그 와중엔 비가 한 방울도 안떨어졌다. 올 해 옌스 생일 때 갔던 곳으로 미슐랭 2스타의 영광에 빛나는 A.O.C. 주인이 같은 와인리스트로 약간 캐주얼한 파인다이닝을 위해 만든 곳이라 한다. 급작스런 요청에도 이런 리셉션 공간을 허해주어 어찌나 고맙던지. 괜히 다음에 또 한번 와야겠다 싶었다. 신부는 하객들과 환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우리 모두 준비된 샴페인을 마시며 즐거운 담소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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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샴페인은 옌스가 조금 뺐어 마셨다. 흑흑. 아기야. 너도 샴페인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 그래도 우리는 마냥 신났다. 4개월만의 술

 

빗속의 보트 투어는 장소를 바꾼 리셉션의 연속이었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온 하객에게는 관광의 요소도 있었겠지만, 이 곳에서 온 우리에게는 신선한 리셉션이었다고나 할까?  다행히 우리는 비가 쏟아지기 전 보트에 올라탔지만, 신랑 등 많은 사람이 쫄딱 젖고, 신부의 드레스 자락도 비로 다 젖었는데, 모두 즐거워했다. 이 어찌 아니 행복할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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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드레스와 양복이 젖어도 우린 개의치 않아요. 저흰 지금 막 결혼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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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마시고 즐깁시다.

웨딩 디너는 아주 오래된 고풍스러운 건물에 위치한 Bastionen og Løven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진행되었는데, 여자는 자리가 정해져있고, 남자는 랜덤으로 뽑은 번호표에 따라 자리가 배정되고, 중간에 한번 테이블을 바꿔 앉는 식으로 테이블 팰리닝이 되어 있었다. 결혼식을 위해 만든 홈페이지와 청첩장 뿐 아니라 네임택조차 통일한 커플의 정서에 탄복했다. 사실 신부가 너무 바빠서 이런 준비는 신랑이 대부분 했다는데, 그의 세심함과 얼마나 정성스럽게 이들을 준비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결혼때는 옌스가 손수 한장한장 이름을 칼리그래피로 써 넣었는데, 덴마크 결혼식에서 이 테이블 네임택이 갖는 중요성이 꽤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안그래도 시어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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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세팅과 이름표. 이 꽃은 우리 집으로 가져왔다. 다 산거라며 신부가 집에 갖고가라고 귀띔을 해준 덕에 집이 화사해졌다.

 

해외에서 온 손님이 많은 결혼식이라 큰 틀에서는 덴마크 전통 결혼식을 유지하되 살짝 다른 모습도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결혼식이었다. 특히 Hurra라고 뭔가 축하할 일이 있을 때 꼭 외치는 3번의 짧은 Hurra와 1번의 긴 Hurra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이 신선했다. 난 당연히 가족들의 스피치 뒤에 이것이 따를 줄 알고 내 스피치의 마무리를 이로 준비했었는데, 오히려 내가 유일하게 이 건배사를 외쳤다. 이에 때맞춰 신랑의 친한 친구 중 한명이 Han skal leve라고 이 Hurra를 크게 외치는 노래를 뒤이어 부르기 시작해 홀 안이 Hurra로 가득차 어색함이 없어졌다. 해외 손님들이 이 Hurra가 어떤 건지 몰라 약간 어색함이 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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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의 스피치. 사랑이 듬뿍 느껴졌다.

중간에 옆방에 가서 보니 gavebord라고 선물 테이블이 하객들의 선물로 꽉 차 있었다. 괜히 흐뭇해졌다. 우리나라의 축의금 문화와 달리 하객들은 선물을 준비하는데, 결혼하고 나면 하나하나 선물을 열어보며 선물명을 기록해 두었다가 이를 잘 쓰겠다며 고맙다는 답례카드를 보내곤 한다. 축의금과 달리 기억에 남고 좋더라. 초대 받아 정해진 RSVP 기간까지 온다고 답한 사람은 정말 어디 아파 쓰러지거나 집안에 무슨 큰 일 없으면 반드시 오고, 거의 하루 종일 낮부터 새벽까지 함께 즐기고 기뻐한다. 대신 초대한 사람은 참석자를 리셉션과 디너를 통해 하루 크게 대접한다는 방식이다. 따라서 축의금으로 대충 결혼 끝나면 수지가 대충 균형되게 끝나는 우리 결혼식과 달리 신랑, 신부의 지출로 식이 이뤄지게 된다. 왠만해서는 결혼 전 신랑, 신부를 다 만나 본 경우가 대부분이고, 직장 동료는 그 관계가 아주 오래되서 정말 친한 친구가 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초대되지 않는다. 청첩장 돌려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고, 하객 입장에서도 그리 가깝지 않은데 청첩장 받았다는 이유로 꾸역꾸역 가야하거나, 가지도 않을 애매한 거리인데 축의금 내야 하나 하는 고민 같은 것 할 필요가 없어 좋다. 대부분 결혼 계획을 아주 일찍 하기 때문에, 못 온다는 경우가 많지 않고, 애초에 초대할 만한 사람만 하기에 초대 받은 사람은 아주 기꺼이 온다. 자비를 내고 비행기를 타고서도.

내 결혼식에도 내 쪽과 옌스 쪽 하객 중 해외에서 온 손님들이 있었다. 오히려 한국-덴마크 든 국제커플 결혼할 때 난감한 상황은 한국식으로는 초대할 정도의 사람이지만 다른 쪽 관습으로는 초대할 만큼 가까운 사람이, “저 결혼식 불러주실거죠?”라고 물어오는 경우다.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설명하고 정말 가까운 사람만 초대한다고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지만, 실제로는 거절하기 정말 어려운 난처한 상황. 오히려 부르고 싶었지만, 우리 식으로는 비행기 표값을 대줘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신랑은 이해 못할 것이기에, 그리고 예산 문제로도 그럴 수 없는 상황) 한국식 짧은 휴가 문화 및 신랑, 신부가 따로 하객을 케어할 수 없는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초대하지 못하는 하객들도 많은데, 애매한 관계의 사람은 당연히 초대할 수 없다. (간혹 당연히 초대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 중 초대받지 못하면 섭섭해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아무튼 초대 받으면 정말 고마운 것이고, 그래서 같은 나라에 있는 경우는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고 (거의 그럴 일이 없다. 3~6개월 전에 초대하니까) 거절하면 사이가 약간 어색해지기에 대부분은 다 온다. 우리도 매우 감사하며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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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한가득 결혼 선물이! 우리 것은 한 복판의 핫핑크!

여느 덴마크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많은 스피치가 있었으며, 친구와 가족들이 공연 등도 준비했다. 다만 다른게 있다면 흥이 많은 비 덴마크 하객들이 떼창을 부르며 공연을 얼마나 흥겹게 만들었던지. 옌스는 이런 웨딩 디너는 처음이었다며 즐거워했다. 각각의 결혼식마다 살아있는 특색이 결혼식 참석을 항상 즐겁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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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의 오래된 고향친구들이 공연을 준비했다.

신랑과 신부는 얼마나 행복해보이던지. 옆의 어머니도 이제는 눈물은 닦으시고 즐거이 식사와 담소를 즐기고 계셨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축복하는 결혼이니 잘 살겠지 하는 마음이 드셨을까? 영어로 진행되는 파티로 인해 다소 지루하셨을 것 같긴 하다. 새벽같이 준비 시작하셔서 다음날 새벽까지 진행되는 결혼이니 얼마나 힘드셨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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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를 나누시길래 이렇게 다정한 눈빛을 나누시나요?

6시부터 시작된 길고 긴 저녁식사가 11시 즈음 끝나면, 테이블을 정리하고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꾼다. 12시가 되기 전 새로 탄생한 부부가 춤을 추는데, 이들을 삥 둘러싼 하객들이 전통 웨딩댄스 곡에 맞추어 한발 한발 다가서는데, 부부가 더이상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지면 춤은 끝나고 신랑 친구들이 모여들어 신랑의 양쪽 양말 끝을 가위로 자르는 것으로 모든 공식 일정은 끝난다. 그러면 자정부터 신나는 댄스파티와 술 타임이 새벽 5시 정도까지 이어진다.

우린 1시 정도에 자리를 떴다. 춤도 삼십분 정도 열정적으로 췄겠다 (과거의 수차례의 경험으로 이번엔 플랫슈즈로 갈아신고 저녁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춤도 출 수 있었고)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조금 보낸 뒤 자리를 뜨기로 했다. 항상 우리는 나이드신 분들 뜨는 타이밍에 뜨는데, 이렇게 새벽까지 노는 게 익숙치 않는 나 때문이다. 그래도 커피까지 마시고 버텨 (입덧은 아마 거의 끝난 듯?) 1시까지 즐겁게 놀고 돌아온 나에게 대견하다고 칭찬을 해주고 싶다. 사실 이제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 배가 은근히 뭉쳐서 더이상 서있기 피곤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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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까지 받아가며 연습한 덴마크 전통의 웨딩 댄스. 아름다웠어요!

내가 초대를 받아 커플이 참석한 결혼식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첫번째는 옌스네 친척, 두번째는 옌스 친구 결혼식이었으니 말이다. 덴마크식 스피치 문화를 알지 못해 신부를 위해 한마디할 사람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초대해준 그녀에게 정말 고맙기도 하고 해서 스피치를 준비했는데, 잘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이제 대충 아는 상황인지라 그 어떤 결혼식보다도 편안하고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하객들도 다들 어찌나 유쾌하고 흥이 넘치는 사람들이던지. 6시 정도부터는 날도 개어 사진도 야외에서 잘 촬영할 수 있었고, 그들이 계획했던 결혼식이 큰 변동 없이 아주 잘 진행된 거 같아서 그들을 대신해 내가 다 기뻤다.

이 둘이 평생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작은 일에 기뻐하고 서로 사랑하며 해로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잘 살아!!!

 

 

 

 

 

 

 

 

 

 

사랑하는 그대에게

주말에는 항상 나와 커피데이트를 하고 싶어하는 당신. 그 데이트를 하지 못하는 몇 안되는 날, 내 빈자리가 느껴졌다고 이야기해주는 당신. 자주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를 만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겠다고 말해주는 당신. 내가 아름답다고 이야기해주는 당신. 어딜 가나 내 손을 꼬옥 잡고 다니는 당신. 손님이 오는 날이면 디저트를 만들어주는 당신. 나의 어린 감성을 채워주기 위해 유치한 행동을 해주는 당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마음으로 상황을 보려고 최면을 걸 때면, 항상 좋은 일만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실망하거나 낙망하지 말라고 현실감을 일깨워주는 당신. 힘든 일이 있을 때 가만히 안아주며 좋은 점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당신. 내가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 마음안의 어려움을 눈치채 보듬어주는 당신. 나를 항상 지켜보고 있고 나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당신. 항상 겸손하고 변함이 없는 당신. 배움이 가장 재미있다며 그를 옆에서 바라보며 나도 자극받게 해주는 당신. 삶에 대한 올바르고 균형잡힌 태도를 갖고 있는 당신.

이제 당신을 만난지 몇일이면 2년이 되는구나. 내 삶은 당신을 만나서 정말 행복해. 그래서 고맙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