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 속 내 안에 느껴지는 소소한 변화

지금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이래로 어느새 열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르다니.
요즘 들어 내 안의 소소한 변화가 느껴진다. 

1. 업무적으로 팀 안에서 내 위치가 확고해졌다. 원칙적 승인을 받은 모델을 모니터링그룹에 발표했는데 큰 호평을 받았다. 센터 안에서도 크게 칭찬을 받고, 발표를 들은 타부처 동료들에게도 내가 큰 전문성을 갖고 해당 모델을 잘 만들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는 평을 직접 또는 센터장을 통해 들었다. 2021년 입법을 위해 내년까지 모델을 만들고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모델이 구체적 형태를 띄기 시작하니 다른 업무와 연계되는 부분에 대한 협의도 늘어나고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자연히 내 위치도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2. 직장 동료들과 친해지고 내안의 내가 만들어낸 소외감이 사라졌다. 사실 업무하느라 바빠서 점심시간이나 회의시간 이외에 다른 동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않다. 간간히 잘 맞는 동료끼리 커피를 내리러 같이 캔틴에 가곤 하는데, 나는 그냥 혼자 내려가는 편이라 기회가 더 적은 편이다. 딱히 누가 날 소외시킨 것이 아닌데, 내가 스스로를 조금 소외시켰다. 별거 아니지만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두려움(사실 실수 해도 될텐데)이 마음속 깊은 곳에 스몰토크에 대한 불편함을 심어준 것 같다. 그냥 시간이 지나서인지, 업무적으로 내 영역이 확고해지면서 내 소속감이 강해진 게 기저의 이유가 된 것인지, 뭐가 계기가 된 지는 모르겠지만, 직장동료들과의 관계가 편해지고 다 가깝게 느껴진다.

3. 언어문제가 많이 흐려졌다. 보고서 작성, 내외부 프레젠테이션, 내외부 회의 및 토론, 유무선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점심시간이나 다과회에서 일어나는 다대다 커뮤니케이션 등 여러 상황에 끊임없이 노출되다보니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엄청 흐려졌다. 말로 인해 긴장하는 게 많이 흐려지다보니 어디 가서도 크게 위축될 일이 없다. 어쩌면 좁은 네트워크 속에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서로 잘 아는 사람이 한둘씩 끼는 상황들이라 위축이 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상황별 프로토콜에 대한 문화적, 직업적 이해가 늘어나고 언어 문제가 거의 흐려졌다. 특히 어제 회식에서 시끄러운 와중이 이런저런 별의 별 이야기를 다 하는 와중 나도 ‘이게 무슨 이야기지? 나는 어디에 있는거지?’ 하는 백지같은 상태에 빠지지 않고 다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뭐랄까… 언어면에서 궁극의 테스트를 통과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어의 발전은 역시 선형적이지 않고 계단식으로 이뤄지는 게 맞다. 한동안 발전이 안느껴졌는데, 지난 일이주 사이에 비약적 변화가 느껴지는 거 보니 말이다.

어제 회식간 레스토랑에서 옌스와 하나와 잠깐 통화한 후 한장

거의 올해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의 총평은 여기서 일하게 되서 너무 다행이라는 점, 이건 나에게 큰 네트워크를 선물해주고 성장하게끔 해준 아주 긍정적인 일년이라는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에 지원서를 써내고 서류전형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사실 채용되면 일은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성장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런 연유로, 공무원이 급여가 높은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하지만 보람도 있고, 훌륭한 동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이곳에서 나는 그냥 오래 일하면 좋을 것 같다고, 옌스에게 이야기를 했다. 옌스도 자기 일이 업무적인 스트레스도 더 크고 바쁘고, 우리는 애도 있고 하니, 아무래도 업무강도가 컨설팅 같은 사기업보다 낮은 공무원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 물론 여기도 승진하면 바쁘긴 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이야기인 것 같으니 지금 생각할 일은 아니고. 내년이 지나고 나면 더이상 내가 외국인이라 느껴지는 나만의 핸디캡 같은 건 완전히 떨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How wonderful!

해외생활 속 인간관계 맺기

나에게 인터넷에서 우연한 기회로 인사를 나누고 얼굴을 만나는 건 아주 드문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만나고 나서 또 만나고 싶은 연이 되는 건 그보다 더 드물다. 한국에 살았더라면 그런 기회를 만드는 일조차 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해외에 살다보면 그 전에는 안 할 일도 하게 되고, 안 할 일도 하게 되서 그런지 그렇게 만든 연들이 지금의 내 주변을 촘촘히 채우고 있다. 하긴. 내 남편조차 인터넷에서 만났으니 제일 중요한 인연부터 인터넷이 이어주었구나.

해외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주변 관계의 지도가 달라졌다. 한국에서 오래되었고 아주 가까웠지만 자주 연락하지는 못하며 마음에 곱게 담아 종종 생각하며, 매우 드물지만 만남이나 깊은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 적당한 거리의 관계로 온라인에서 즉흥적으로 가끔씩 댓글로 말을 주고 받지만 막상 더이상 만나는 일은 거의 없을 친구나 지인, 그리고 내가 사는 곳에 사는 사람들로 새롭게 사귄 친구. 모든 인적관계를 이 분류로 나눌 수는 없지만 큰 틀로 보면 대충 이렇게 나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시차가 있고 생활의 의무가 있다보니 한국에 사는 사람들과는 내 마음의 크기가 어떻든 제대로 된 연락의 빈도는 아주 크게 낮아졌다. 결국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의 사람을 새롭게 사귀어야 한다.

해외생활을 시작한 초기에는 이런 관계 지형의 변화가 씁쓸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 어떤 게 친밀함인가에 대해 내가 정의하는 방식이 바뀌었고, 관계의 변화가 내 거주지의 변동 때문이고, 그 와중에 각자가 많이 다른 길을 걷게 되서 낯설어진 이유도 있을 거다.

이제는 여기서 가까운 사람들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는데 나이 들어 새롭게 마음에 맞는 친구 사귀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느리지만 차곡차곡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하고 있다.

온라인에 올라온 질문에 간단한 답을 하고 전화로 대화를 간단히 나눈 뒤 전격으로 바로 만나게 된 사람이 있다. 아직 한번밖에 보지 않은 친구지만 네시간의 시간이 너무나 훌쩍 흘러갈 만큼 반갑고 유쾌한 만남이었다. 살아온 경로가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을 해보고 비슷한 사고의 변화를 경험해본 그녀와의 만남에 신선한 자극도 되고 앞으로 쌓아갈 인연의 가능성을 생각해보며 설레이기도 했다.

코트라 다니는 동안은 해외에서 한국사람을 만나는 걸 꽤나 꺼려했더랬다. 한국에서도 아무나 친구가 되는 게 아닌데 단지 해외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알게 되고 지나치다보면 괜한 말이 도는 일도 생기고 그닥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재원이라는 입장과 교민이나 유학생의 입장이 다르다 보니 서로 생활의 준거집단이 다르고 생활방식도 달라서 오해나 감정이 쌓이는 일이 생기기도 한 것 같다.

주재원의 틀을 벗고 나니 내 생각도 행동도 조금 더 자유로워졌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하다보니 관심사도 생각도 많이 바뀌고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좋은 경험이 켜켜히 쌓이며, 한국사람 만나는 것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한국사람 모두와 교제할 생각도 없지만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로 멀리하는 것도 없어졌다.

덴마크에서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국음식에 대한 그리움도 줄어들고 내 모국어가 아닌 말로 생활하는 게 더이상 불편하지 않고 덴마크 사람이나 다른 외국 친구와 한국인과는 또 다른 주제로 다양한 대화를 하는 게 매우 즐겁고 좋다. 그런데 나와 맞는 사람이라면 한국사람과 만나는 게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사람과만 교제하며 사는 건 이제 답답할 것 같은데 그게 완전히 배제되는 것도 싫은 거다. 그래서 한국사람들과의 교제를 보다 능동적으로 찾게 되었나보다. 새로 만나 인사하고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이 때로는 피곤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처음에 만나 클릭하는 것 같은 느낌의 인연도 이런 시도 없이는 맺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또 이런 생각이 어떻게 변할지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 주변에 생긴 관계의 틀이 만족스럽고 삶을 풍요롭고 내가 일상을 끌어나갈 힘을 내게 해 준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시부모님 오시기 전 한국방문기간을 정리하며

아기와 함께 하는 고국방문은 전혀 다르리라는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 유모차 하나로 대중교통 타고 다니며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던지라 아기가 하나 있는 게 크리 큰 장애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애가 카시트를 싫어하긴 했지만 금방 적응하리라고, 그전에 그랬듯이 애가 항상 건강할 것이라고, 밥은 항상 잘 먹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동경에도 가볼 수 있지 않겠냐면서 한번 계획해보자고 했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황당무계한 상상이었는지.

시부모님 계시는 한주를 제외하면 거의 한달 반에 달하는 시간이었는데, 가족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보자고 약속을 하고 기대를 한껏 하고 왔던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쉽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남편이 뭘 쓰느냐고 물어서 답을 해줬더니 자기는 이번 여행은 자기가 예상한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육아휴직여행이지 놀러가는 휴가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냐한다. 내가 나이브했나?

하나는 도착해서 첫 2주를 감기로 고생하며 신고식을 하더니 지난 며칠은 돌발진이라는 것으로 고생을 했다. 사흘 정도를 고열로 고생을 하더니 갑자기 어제 열꽃이 피는 것이었다. 열꽃을 찾아보니 돌발진이라는 병명을 알 수 있었는데 증상이 정확히 하나와 일치하더라.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니 (혹여나 다른 병일 수도 있어서) 열이 내리면서 발진이 난 거면 돌발진이 맞고 (증상으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병이란다.) 그거면 힘든 부분은 다 지난거라며 열이 다시 오르는지와 가려워서 긁는 일이 있는지 등만 관찰하라고 했다. 39도가 넘어 끙끙거리던 밤만은 병원으로 가야하는지를 참 고심했는데, 결국은 안가기를 잘했다. 가봐야 해열제 처방 받는 거 외엔 크게 해줄 수 있는게 없다고 한다.


최근 하나는 부쩍 컸다.

엄마, 아빠를 말하고, 드디어 책은 먹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뚜렷하게 인식한 것 같다. 새로운 단어를 반복해서 이야기해주거나 혀를 차는 것 같은 소리를 들려주면 한참 관찰하다 따라하곤 한다.

애가 이유를 모르게 찡찡댈 때 달래줄 수 있는 방법이 안거나 업어주는 것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놀아주는 것으로 상당부분 대체되었다. 좋아하는 인형을 주고 안아주는 거는 정말 피곤해서 쉬고싶을 때만 통한다.

숟가락으로 떠먹여주는 이유식은 거의 다 거부한다. 자기가 손가락으로 탐험을 한 음식을 자기가 손으로 먹거나 포크로 먹기를 원하고, 어른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싶어한다.

할머니가 안아주면 엄마가 방에 들어가서 쉬거나 외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할머니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안아주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가 생겼다. 물론 아예 내가 외출하는 경우는 아빠보다 할머니가 안아주는 것을 선호하고 할머니를 많이 따른다고 한다.

대문은 사람들이 사라지는 문이라는 것을 알게된 모양이다. 언젠가 그 앞에 가서 손가락질하며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더니, 그리로 누군가 옷을 입고 나가려면 싫다고 운다.

또 누울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말이 뭔지를 실감하게 해주는 게, 기저귀를 간다거나 손톱을 깎는 등 하나가 싫어하는 일을 내가 할 때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괜히 울면서 땡깡을 부린다. 구해달라는 듯이. 자기가 울면 애교를 떠는 사람들을 보고 그런 판단을 한 것 같다. 그러면 나 혼자 하겠다고 저리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한다. 이러나 저러나 해야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할 일을 하면 하나는 곧 딴 짓하며 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안된다는 말을 이해하는 것 같은데, 안되는 일은 우리가 보지 않는 틈을 노리려는 모습을 보인다. 호시탐탐…

낯을 가리는 것이 얼굴을 보고 우는 것 말고 수다를 멈추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엄청 수다쟁이인 녀석이 낯선 사람이 있으면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가고 나면 그간 말을 못해 답답했던 듯 터진 둑처럼 수다를 떨기도 하고, 친해지고 나서 말을 많이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듣던 것처럼 기왕이면 젊은 사람을, 여자를 더 좋아한다. 특히 나이든 남자는 친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제 다음주 월요일에 짐 싸고 화요일에 호텔로 옮겨서 시부모님 공항에서 픽업하고 나면 일주일 여러 행사를 마치고 덴마크로 귀국하는 일만 남았다. 아이를 낳고서부터는 인간관계의 지평이 엄청 바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크게 느낀 여행이었다. 왜 아이를 낳은 부모들이 달라지는지는 되고서야 이해하게 되더라. 내 딴엔 타인의 시선으로 이해하려 한다하면서도 그렇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게 된 계기도 되었다. 만나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던 내 아끼는 지인들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게 된다. 정말 만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자기연민

오늘 친구와 잠깐 메신저로 짧은 대화를 하다가 자기연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연민이 많은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나도 자기연민이 참 많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걸 언제부터 떨궈냈었더라?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30대에 들어서 정신적으로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 동시 다발적, 유기적, 총체적인 변화라 어떤 계기로 언제 변했는지를 꼽기는 참 어렵다. 그렇지만 과거의 내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난다.

지금도 머리에 남아있는 자기연민에 대한 민망한 기억 한조각. 버스에서 찔찔 짜며 나는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고 앉아있었다. 마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인냥. 이유는 잘 풀리지 않는 연애였다.

나에게 있어 성공한 연애는 옌스와의 연애 뿐이다. 결과만 두고서가 아니라 그냥 과정 자체가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했을 땐 나에 대한 자신감 부족으로 전전긍긍하며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하거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는 관계까 만족스럽지 않은 점 등 말이다. 그 균형이 맞는 관계가 있었다면 지금 이곳에 옌스와 부부가 되지 못했을 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 날, 자기연민의 주제는 외로움이었다. 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거냐며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었는데, 핸드폰을 열어 주소록을 훑어보니 마땅히 전화할 사람이 없던 거였다. 그때만 해도 화면이 두개라 듀얼이라고 한 애니콜 듀얼폴더 폰을 썼었던 것 같다. 나의 외로움을 마음편히 토로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해져 어찌나 내가 불쌍하던지. 창문에 머리를 기대어 서울역 연세빌딩앞을 지나는 버스 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콧물을 훌쩍거렸다.

지금 생각하면 요즘 소위말하는 중2병같은 감성이었던 것 같다. 물론 힘들었던 것은 맞지만 자기연민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면서 그걸 오히려 더 부풀려서 극적으로 만들어 필요 이상으로 나를 불쌍하게 여겼다. 참 민망한 기억이다.

자기연민이란게 완전히 지울 수 없는 감정이라 그 감정 완전히 지우고 사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각자가 갖고 있는 그 감정의 크기는 많이 차이 날 수 있다. 이는 꼭 사람사이의 차이만이 아니라 개인의 과거와 현재사이에도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내가 그렇듯이 말이다. 타인에 대한 연민은 좋지만 자기연민은 좋은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완전히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라도 잘 다스려서 불필요하게 취하지 않는게 좋은 그런 감정. 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걸어온 게 나중에 다시금 늘리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변화에 익숙해지기

손님을 집에 초대하는 일이 예전처럼 부담스럽지 않다. 손님을 초대하는 일이 왜 부담스러웠는가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결국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데, 무엇이 익숙하지 않았었나?

여러명을 위해 좁은 부엌에서 요리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부엌은 내가 가져본 것 중 가장 작다. 너비가 1미터도 안되는 공간을 활용해 4~5가지 메뉴를 준비하는 것이 힘들다. 그리고 조리법에 숙달되지 않았다. 한식을 준비하는 것은 주로 엄마가 하신 일이었고, 집에서 내가 한 요리라고는 쉬운 단품요리를 제외하고는 다 양식이었던 관계로 재료의 분량을 확인해가면서 만들어야 했다. 특히 한식은 양식과 달리 한상차림이기에 다수의 요리가 제 온도에 맞게 동시에 나가도록 하는 일은 상당히 머리가 아팠다. 좁은 부엌에서 이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상황을 더 복잡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손님맞이가 익숙하지 않았다.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 본 경험이 별로 없었기에, 손님을 맞이하고, 요리가 완료되기 전까지 손님이 편하게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잘 모르니 마음이 불편했다. 특히 내 손님이 아니라 옌스의 손님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을 맞이하는 것에서 더욱 불편함이 있었다.

무엇이든 자주 해봐야 는다고, 손님을 자주 맞이하다보니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생기니 또 초대하겠다는 마음도 먹게된다. 물론 손님 초대하는 일도 돈이 꽤 드는 일이라, 이번 달 손님을 너무 많이 초대했더니 생활비를 너무 많이 써버렸으니, 한동안은 초대는 자재해야겠지만 말이다.

현지에 영구 정착할 목적으로 삶을 셋팅하기 시작한지 이제 반년이 되었다. 이국땅에서, 학교가 시작하기 전까지 어디고 적을 두지 않는 생활을 처음으로 해보면서, 외로움도 느껴보았다. 그러나 이제 현지의 네트워크도 조금씩 구축되고, 말도 조금씩 늘기 시작해 주변인과 친밀도도 높아지면서 조금씩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이 들고 있는 요즘 여름도 막바지에 접어들어간다.

코트라를 다니며 해외 생활의 햇수가 늘어가면서 내 인간관계의 지형이 이미 많이 바뀌긴 했지만, 그곳을 떠나 현지에 정착하면서 그 모습은 더욱 크게 변할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하니까. 그래도 좋은 것은 오래 묵을 수록 좋은 것이니,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변함없이 더 좋을 것이고, 새로운 것은 더하면서 가꿔가면 된다. 정리되는 인간관계엔 서운해할 이유가 없다. 그건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니 나에게도 책임이 절반이 있기 때문이고 결국 그 또한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반려를 얻게 되면서 생긴 여러가지 변화는 나에게 모두 중요하고 긍정적인 것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도 여전히 있지만, 어색하고 힘들었던 손님초대가 반복되면서 즐겁고 익숙해지는 것처럼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변화도 시간이 지나서 익숙해지면 유익할 뿐 아니라 즐거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