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학부모 면담

학부모 면담을 다녀왔다. 옌스가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새벽같이 집을 나선 탓에 하나를 보육원에 내가 보내고 바로 이어 면담을 시작했다. 선생님은 하나의 발달에 대한 두페이지짜리 리포트를 준비해두고 있었고, 우리와 선생님의 설문조사에 의거해 외부 컨설팅기관에서 분석한 내용을 도표로 만들어 선생님과 우리의 아이의 발달에 대한 인지상황을 비교해보았다. 우리보다 하나의 발달에 선생님이 더 높이 평가하고 있는 몇가지를 제외하면 아이의 발달에 대해서 양측의 견해가 일치했다. 애들이 집과 보육기관에서 큰 편차를 보이지 않는 건 좋은 일이라고 했다. 

하나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잘 자라고 있었다. 사회성, 신체적 발달 (대근육, 소근육), 정서적 발달, 사회규범에 대한 적응 등 다방면에서 기대 이상의 발달을 보이고 있었다. 독특한 걸로는 신체적 접촉을 두려워하진 않지만 손 잡는 건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제일 탁월한 능력은 언어능력이라고 했는데, 이건 그닥 놀랍지 않았다. 보육원에서도 다른 큰 애들보다 언어능력이 뛰어나다고 대단하다는 말을 거의 매일 듣고 있었는데다가 집에서 매일매일 놀라고 있었으니까. 꽤나 독립적인 아이이지만 간간히 도움을 청하는 걸 보고 좀 더 독립적이 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하나 했는데, 집에서보다 보육원에서는 훨씬 독립적인데다가 오히려 도움을 청하는 상황을 판단해서 어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발달단계상에서 후에 나타나는 일이라고 했다. 집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적극적으로 도와주라고 했다. 이미 보육원에서 충분히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자기가 의지하고 편히 기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며. 그런 부분도 있구나 싶었다.  

앞으로 또 다른 힘듦이 있을 수 있겠지만 처음 1년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육아휴직도 있는 거겠지만. 요즘은 힘든 것보다는 매일매일이 놀라움인 것 같다.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새로운 능력을 마주하는 놀라움. 

오늘 친구네 집에 가서 7개월 근처의 아이들을 보며 놀다 왔는데 그때가 기억이 가물가물할 만큼 지금과 그때는 너무 다르다. 지금의 생각으로 돌아보면 이렇게 빨리 자랄 줄 알았으면 덜 힘들었을 것 같다. 이미 익히 들었던 이야기지만, 그걸 내 시간 감각으로 예상하기엔 경험 없이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그게 끝나면 곧 두돌이 될텐데 그게 얼마나 놀라운 일지. 내가 자는 애를 유모차에 끌고 미팅에 가려 나타났던 날,  지도교수는 세살 반만 되면 정말 다 키운 거라면서 그 다음엔 어휘의 차이일 뿐이지 거의 어른과 대화하듯 대화가 된다고 했는데 진짜 그럴 것 같다. 너무 빨리 자라지 마라는 말을 하지는 않겠지만, 이 순간을 하나하나 내 마음에 아로새기듯이 기억을 하며 키우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 그 시간이 새록새록 내 기억속에서 살아나기를…

21개월의 하나

하나는 이제 만 21개월이 조금 넘었다. 두돌까지 세달도 채 남지 않았다니, 세월이란 정말 쏜살같이 흘러가는구나. 보육원에서 부모와의 첫 면담이 좀 늦어졌지만 곧 시간을 잡는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요즘 부쩍 사회성이 늘어가는 것 같아서 그걸 지켜보는 게 즐거운데 내가 보는 일과 시간 밖의 하나에 대해 차분히 앉아 이야기할 시간을 갖는 게 참 기대된다.

하나는 보육원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애 중 하나라고 한다. 이중 언어인 아이는 말이 늦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닐 수 있다는 걸 예전 친구의 아이에게 본 것처럼 하나에게서도 확인한다. 보육원을 처음 시작했을 때 선생님이 이야기하기를, 물론 개인차이는 있지만 아이에게 언어 인풋을 많이 늘리면 이중 언어라도 늦게 말을 시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충분한 언어 인풋을 주었는지는 내 주관적인 경험이니 알 수 없지만, 유아 언어 없이 애가 알아듣든 말든 어려서부터 많이 말을 해주려고 노력했고 아이의 옹알이때부터 섀도잉을 포함해 아이의 말에 피드백을 열심히 해주었다. 그리고 하나는 말을 어찌나 열심히 연습하는지. 저렇게 끊임없이 연습하니 말이 늘지 싶을만큼 집요하다.

신체적으로는 키는 표준인 거 같다.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고. 몸도 딱 표준. 몸을 쓰는 건 참 열심히인데, 선생님들 표현으로는 작은 스파이더맨이란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까지 몸을 제법 사리는 편이면서도 자기 딴에 검증이 된 것에 대해서는 겁이 없다. 어디 부딪히거나 넘어져서도 피곤한 시간이 아니면 아주 아프기 전엔 아프다고 징징거리거나 울지 않고 툭툭 털고 일어난다. 막 기고 어디 잡고 일어서고 할 때부터 덴마크 엄마들이 하는 것처럼 하려던 건, 아주 위험한 게 아니면 넘어지고 부딪힐 기회를 주고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엔 상황을 차분한 얼굴로 얼른 판단한 후 필요 이상으로 과잉 반응하지 않고 괜찮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털고 일어나게 해줬다. 애들은 어떤 수준의 통증에 대해 얼마만큼 울어야 하는지를 엄마의 표정을 통해서 배우고 거기에 기준점을 잡는다고 들었는데, 하나의 기질 탓이 크겠지만 하여간 하나는 그런 면에서 참 강한 아이로 큰 것 같다.

내가 데릴러 가면 절대 그냥 옷을 입는 법이 없어서 보육원에 앉아 같이 거의 20분씩 놀다 오다보니 그 떄 남아있는 애들과 같이 노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게 되는데 아이들과는 제법 같이 놀이를 즐긴다. 우리가 집에서 하나에게 Goddag, goddag하면서 악수를 자주 시키는데, 요즘 간혹 우리에게 Goddag, goddag하면서 손을 잡아 흔들고 하더니, 보육원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그렇는 걸 봤다. Norma라고 하나보다 생일이 며칠 늦은 여자애가 있는데, 걔한테 그러고 Dagmar라는 다른 큰 여자애에게도 가서 또 그러더라. 그러니 Norma도 Dagmar에게 가서 똑같이 하고, 나에게 와서도 그러는 거였다. 공도 같이 던지고, 춤도 같이 추고. 어느 날은 Norma에게 가서 자기 모자와 자켓을 가리키며, “모자”, “자켓” 이러는 거다. 한국말로. Norma가 그런 하나를 보다가 나를 보더니 뭔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짓는다. 또 여기저기 애들한테 뛰어다니며 한명한명 짚어가며 이름을 불른다. 나에게 가르쳐주듯. 선생님 왈, 하나는 보육원 애들 모두의 이름을 다 알고 이름 외우는 거 좋아해서 새 아이가 들어오면 그 날부로 바로 이름을 외운다고 한다. 집에서 하도 연습을 해 나도 애들 이름 상당수를 알 정도니 말 다했다.

하나는 새로운 일에 너무나 즐거워하는 즐거운 아이란다. 별거 아닌 거에도 엄청 크게 웃고 즐거워하고 노래에 즐겁게 춤을 추는 흥이 많은 아이. 호기심도 엄청 많고 보육원 생활 태도도 좋다고 한다. 여태까지는 참 잘 커준 것 같다.

둘째는 없다라고 할 만큼 충분히 힘들었던 시간이지만, 둘째가 하나같이만 건강하고 씩씩하고 이쁘게 커준다면 둘도 낳고 싶을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보장은 전혀 없고 애들은 형제라도 너무나 다른 인격체일 것임을 알기에 둘째는 갖지 않을 거다. 그런 만큼 지나가는 이 시기가 돌아오지 않음을 알고, 매 순간이 소중하다. 하나를 키우면서 나도 엄청 큰다. 어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고 그에 맞춰 대응하려고 하고 인내심을 키우게 되는 등 말이다. 아이라면 참 싫어했던 내가 언제 이렇게 변했나 싶을만큼. 내 아이가 이쁜 만큼 다른 집 아이도 이뻐지고.

아기였던 게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닌 거 같은데, 아기라는 말은 붙일 수가 없을만큼 큰 하나. 어느새 이렇게 컸누. 지금은 내가 안아주겠냐고 물어보면 멀리 있다가도 확 뛰어와서 안아주고 내가 볼이 떨어져나갈 듯이 뽀뽀를 해주면 까르르 뒤집어지며 웃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허벅지와 종아리를 마사지해주면 간지러워 몸을 이리 굼실 저리 굼실 하며 배를 잡으며 웃고, 내가 하는 이런 저런 유치한 장난들 좋다며 또 해달라며 수십번이고 조르지만 이게 언제까지일까. 그런 생각이 들면 지금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거 같다는 표현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제야 와닿는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주렴 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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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17개월 발달사항

요즘 하나가 사용하는 단어가 많이 늘고 있다. 우선 Nej만 쓰던 것에서 벗어나 Ja도 적극적으로 쓴다. 뭔가를 원할 때 주세요나 giv mig 같은 표현을 쓰기 어려우니, 고개를 강력히 끄덕이면서 ja를 반복하면 그게 맞다거나 달라는 뜻이다.

요즘 다른 애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인지하고 다른 애들이 노는 곳에 가서 같이 노는 것 같다. 데릴러 가서 하나에게 왔음을 알리기 전에 몰래 지켜보다보면 다른 애들이랑 서로 주거니 받거니 행동을 따라하기도 하고 같이 어린 아이용 시소를 타기도 한다. 멀쩡히 가만히 있는 애에게 다가가서 옷을 당기거나 밀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가? 다른 애들 이름에 관심을 부쩍 갖는다. 내가 아는 애들이야 주로 나와 비슷하거나 늦은 시간에 픽업하러 오는 부모를 두는 애들인데, 발음이야 미숙하지만 그 애들 이름은 내가 이해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 애들과 친해서 그런지 그 아이들 이름을 주로 연습한다. 어쩌면 내가 그 애들 이름을 주로 언급한 걸 듣고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애스거를 애꺼로, 앨마를 앨마와 앨나의 중간 발음으로, 앤톤, 요샌, 크리스치애이너 등등 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아무튼 비슷하게 흉내낸다. 선생님들도 나도 알아듣고 있으니 말이다.

사물에 두가지 이름이 있다는 걸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엄마와 아빠가 같은 사물을 두고 다른 이름을 말하는 걸 이해하고 두가지 단어를 다 사용한다. 물론 덴마크어가 더 우위를 차지하는 건 분명하다. 신발은 스꼬, 양말은 껌퍼 (스트룀퍼의 룀이 굄과 비슷하게 들려서 그렇게 발음한다.) 와 양말, 빵은 빵과 꾈 (브뢸의 뢸이 꾈과 비슷하게 들린다.), 물은 맨(밴)… 아니 이제는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단어를 말한다. 애가 말이 통하기 시작하니 애도 수월하고 우리도 수월하다.

다양한 새를 보고 구분해서 내가 알려준 소리들로 꼬꼬꼬, 구구구, 까악까악, 삐삐삐, 꽉꽉꽉, 이런 소리를 내는 것도 놀랍다.

계단은 혼자 옆에 바를 잡고 오르내리고를 하고 미끄럼틀을 혼자 탄지는 벌써 몇달이 되었다. 요즘은 트렘폴린에서 몸을 튀기다가 손잡이를 잡고 뛰는 동작을 아주 미세하게 시작하는 것 같다. 팔과 배의 힘이 좋아져서 얼마 안있어 아기침대를 기어오를 것 같다. 침대의 한면을 곧 열어야 할 것 같다. 자칫하면 떨어지는 사고가 생길 수도 있으니.

밤중 수유를 15개월 좀 넘어서까지 했으니 좀 길게 했다. 밤중 수유를 끊는데는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그러고나니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7시부터 다음날 5시반-6시반 정도까지 쭉 잔다. 요즘 6시 반에 가까운 시간으로 일어나는 시간이 조금 늦어진 것 같다. 보육원에서의 낮잠은 1시간 반으로 거의 패턴이 정해진 것 같다. 아직 집에서는 주말에 오전, 오후 두번 낮잠을 자지만 말이다.

어느새 애가 이렇게 컸을까? 사람들이 애를 낳고 키우는 건 힘든 일이지만 행복하다더니만 그게 뭔 이야긴지 겪고나니 알게 되었다. 매일 밤마다 침대에 누워서 옌스와 하나가 믿을 수 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이야기하며 맞장구를 치는데 이런 팔불출들이 따로 없다. 8월에 부모님이 오셔서 2주동안 하나와 바짝 같이 지내시고 가시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하나가 또 새롭게 잘 기억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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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가장 좋아하는 훈이(Hundi)를 데리고 달려가는 하나

시부모님 오시기 전 한국방문기간을 정리하며

아기와 함께 하는 고국방문은 전혀 다르리라는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 유모차 하나로 대중교통 타고 다니며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던지라 아기가 하나 있는 게 크리 큰 장애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애가 카시트를 싫어하긴 했지만 금방 적응하리라고, 그전에 그랬듯이 애가 항상 건강할 것이라고, 밥은 항상 잘 먹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동경에도 가볼 수 있지 않겠냐면서 한번 계획해보자고 했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황당무계한 상상이었는지.

시부모님 계시는 한주를 제외하면 거의 한달 반에 달하는 시간이었는데, 가족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보자고 약속을 하고 기대를 한껏 하고 왔던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쉽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남편이 뭘 쓰느냐고 물어서 답을 해줬더니 자기는 이번 여행은 자기가 예상한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육아휴직여행이지 놀러가는 휴가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냐한다. 내가 나이브했나?

하나는 도착해서 첫 2주를 감기로 고생하며 신고식을 하더니 지난 며칠은 돌발진이라는 것으로 고생을 했다. 사흘 정도를 고열로 고생을 하더니 갑자기 어제 열꽃이 피는 것이었다. 열꽃을 찾아보니 돌발진이라는 병명을 알 수 있었는데 증상이 정확히 하나와 일치하더라.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니 (혹여나 다른 병일 수도 있어서) 열이 내리면서 발진이 난 거면 돌발진이 맞고 (증상으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병이란다.) 그거면 힘든 부분은 다 지난거라며 열이 다시 오르는지와 가려워서 긁는 일이 있는지 등만 관찰하라고 했다. 39도가 넘어 끙끙거리던 밤만은 병원으로 가야하는지를 참 고심했는데, 결국은 안가기를 잘했다. 가봐야 해열제 처방 받는 거 외엔 크게 해줄 수 있는게 없다고 한다.


최근 하나는 부쩍 컸다.

엄마, 아빠를 말하고, 드디어 책은 먹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뚜렷하게 인식한 것 같다. 새로운 단어를 반복해서 이야기해주거나 혀를 차는 것 같은 소리를 들려주면 한참 관찰하다 따라하곤 한다.

애가 이유를 모르게 찡찡댈 때 달래줄 수 있는 방법이 안거나 업어주는 것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놀아주는 것으로 상당부분 대체되었다. 좋아하는 인형을 주고 안아주는 거는 정말 피곤해서 쉬고싶을 때만 통한다.

숟가락으로 떠먹여주는 이유식은 거의 다 거부한다. 자기가 손가락으로 탐험을 한 음식을 자기가 손으로 먹거나 포크로 먹기를 원하고, 어른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싶어한다.

할머니가 안아주면 엄마가 방에 들어가서 쉬거나 외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할머니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안아주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가 생겼다. 물론 아예 내가 외출하는 경우는 아빠보다 할머니가 안아주는 것을 선호하고 할머니를 많이 따른다고 한다.

대문은 사람들이 사라지는 문이라는 것을 알게된 모양이다. 언젠가 그 앞에 가서 손가락질하며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더니, 그리로 누군가 옷을 입고 나가려면 싫다고 운다.

또 누울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말이 뭔지를 실감하게 해주는 게, 기저귀를 간다거나 손톱을 깎는 등 하나가 싫어하는 일을 내가 할 때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괜히 울면서 땡깡을 부린다. 구해달라는 듯이. 자기가 울면 애교를 떠는 사람들을 보고 그런 판단을 한 것 같다. 그러면 나 혼자 하겠다고 저리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한다. 이러나 저러나 해야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할 일을 하면 하나는 곧 딴 짓하며 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안된다는 말을 이해하는 것 같은데, 안되는 일은 우리가 보지 않는 틈을 노리려는 모습을 보인다. 호시탐탐…

낯을 가리는 것이 얼굴을 보고 우는 것 말고 수다를 멈추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엄청 수다쟁이인 녀석이 낯선 사람이 있으면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가고 나면 그간 말을 못해 답답했던 듯 터진 둑처럼 수다를 떨기도 하고, 친해지고 나서 말을 많이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듣던 것처럼 기왕이면 젊은 사람을, 여자를 더 좋아한다. 특히 나이든 남자는 친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제 다음주 월요일에 짐 싸고 화요일에 호텔로 옮겨서 시부모님 공항에서 픽업하고 나면 일주일 여러 행사를 마치고 덴마크로 귀국하는 일만 남았다. 아이를 낳고서부터는 인간관계의 지평이 엄청 바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크게 느낀 여행이었다. 왜 아이를 낳은 부모들이 달라지는지는 되고서야 이해하게 되더라. 내 딴엔 타인의 시선으로 이해하려 한다하면서도 그렇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게 된 계기도 되었다. 만나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던 내 아끼는 지인들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게 된다. 정말 만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