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 돌아온 가을

가을이 돌아왔다. 흐린 하늘과 함께.

덴마크의 가을날씨 흐린 하늘, 비가 오지 않아도 항상 젖어있는 땅 (특히 42번째 주 이후), 잦은 비, 간혹 오는 폭풍 등으로 요약된다. 기온은 10~15도 사이를 오가는 것으로 여름대비 평균 5도~10도 가량 낮아진다. 한국에 비해 선명하지 않은 단풍. 딱히 매력적인 계절은 아니다. 그래도 여름내내 줄어들었던 바람이 다시금 세차게 불기 시작해 바람의 나라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해줘 싫지만은 않다.

덴마크에서는 여닫이 창문이 보통이라 이런 계절 창문을 잘 고정해두지 않으면 꽝하고 귀를 때리는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아파트엔 우리집 창문처럼 이렇게 열리는 창문이 흔한데 (거의 360도 가량 회전이 가능해서 집 안에서 창을 안밖으로 닦기 편하다. 사실 애 있는 집에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창문은 중간에 고정할 수 있는 걸쇠가 아주 조금 열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것밖에 없어서 이렇게 확 180도 열어놓지 않으면 바람 많은 시기엔 열어둘 수가 없다. 가을엔 바람이 잘 안부는 날이 별로 없기에 거의 항상 이렇게 열어둬야 한다. 덕분에 창문을 활짝 열고 싶은 날은 제대로 열어둘 수 있지만, 또 활짝 열고 싶지 않은 날도 열어두고 싶으면 어쩔 수 없이 활짝 열어놔야 한다는 면에서 장단점이 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런 창이 찔끔 열 수 있는 창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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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에 보이는 하늘이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다. 아이 심심해.

그런데 날이 이렇니까 실내가 좋아진다. 이곳의 실내 조명은 노랗고 우리보다 훨씬 조도가 낮아, 어렸을 때 좋아하던 스탠드만 켜놓던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래서 덴마크 사람들이 hygge를 중시하고, 불 밝게 켜는 것을 싫어하는 모양이다. 내가 뭘 찾는 것도 아니면서 천장등이라도 켜놓고 있으면, 옌스는 아직도 덴마크의 hygge를 못배웠냐며 스탠드를 켜주고 천장등을 끈다.

집에서 마시는 커피가 맛있어지는 것도 이맘때쯤. 밖이 조금 쌀쌀해지니까 창문 열어두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 얼마나 맛있게 느껴지는 지. 야외커피 느낌이랄까?

주말, 한인회에서 여는 추석모임에 다녀왔다. 서울 뿐 아니라 유럽의 다른 주요 도시에 가도 도회지에 나온 느낌이 든다며 기분이 전환된다고 하는데, 이리 심심한 덴마크 삶이 좋은 나는 촌이 좋은 모양이다. 매일 빠르게 바뀌는 일출, 일몰시간, 시기별로 차이나게 꽃을 피우는 다른 종류의 식물, 헐벗음에서 연한 초록과 또 짙은 녹음으로, 녹음에서 스리슬쩍 노란색으로 조금씩 옷을 갈아입는 나무, 새끼 오리와 백조가 성장하는 모습, 계절별 구름과 하늘 색깔의 변화, 시기별로 바뀌는 새소리 등 그런 변화를 느끼고 살 수 있게 된 것이 나는 마냥 신기하고 좋아서 그렇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문화생활은 충분히 즐기면서 말이다.

한국에 비해서는 다소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나무들이 노랗게 옷을 갈아입는 것을 관찰하는 건 좋다. 변화는 사람을 자극하니까. 이렇게 올 한해도 후반기로 들어서는구나.

 

 

인생 트레이너와 함께한 동네 자전거 여행과 덴마크 삶의 소소한 즐거움

CBS에서 MMPI 과정을 듣느라 6월까지 꼼짝없이 바쁜 옌스의 스케줄로 인해 같이 있지만, 따로 활동하는 시간이 많이 늘었다. 덕분에 집에 면학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SNS를 하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던 나였는데, 옆에 앉은 그가 독서를 하니, 뭔가 눈치가 보이기 시작해서 나도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옌스는 습관의 사람이다. 습관을 잘 만들고, 한번 만든 습관은 잘 유지한다. 뚝심의 인간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뼛속까지 경제학자라 시간 낭비를 하기 싫어해서 자기에게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해 시간을 잘 배분한다. 난 습관을 잘 못들이는 사람이다. 중요하다고 하는 순간 마음먹고 집중을 해 원하는 결과를 내는 일에는 강하지만, 인생지사 그렇게 짧고 굵게 살 수 없다. 따라서 난 자꾸 동기부여를 해줘야 한다. 내 스스로 동기부여가 안되면, 옆에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두고 스스로를 독려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내가 제일 배우고 싶은 성실함과 뚝심을 갖고 있는 옌스가 내 옆에 있어줘서 참 고맙다.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은 순간, 다시 정진하는 길로 돌아올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옌스가 빠뜨리지 않는 것은 체력관리이다. 아침마다 윗몸일으키기 등을 포함해 15분 정도 꼭 근력운동을 하고, 카약과 인라인스케이트 등을 꼭 2번씩은 한다. 10kg씩 몸무게가 오르락 내리락 변하던 내가 살이 크게 않고 유지하는 것도 옆에서 운동을 장려하고, 나를 데리고 나가는 그 덕분이다. 걸어서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하러 나가자고 한다.

겨울에 한번, 정말 나가기 싫은데 옌스가 산책을 나가자고 하길레 간신히 따라 나선적이 있다. 정말 추웠는데, 조금 걷고 나니 좋았다. 그 날, “앞으로 내가 나가기 싫어해도 사실 나오면 좋아하니까 게으름 피워도 꼭 끌고나와줘.”라고 부탁을 했다. 나가자고 할 때, 기다 아니다는 말을 안하고 미적대고 있으면, “Come on, it’s good to have some fresh air.”라고 하며 독려하는데, 안나갈 수가 없다. 내가 한 말도 있고 하니.

그래서 가급적이면, 나가고 싶지 않아도 옌스가 나가자도 하면, 흔쾌히 좋다고 답을 해버린다.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 나갈 마음이 생긴다.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저녁 먹고 8시가 넘었는데, 바람도 많이 부는데, 자전거 투어를 나가자고 한다. 나가면 좋을 것 같기도 해서 알았다고 했는데, 안나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 했다. 낮에 비가 많이 오고나서 구름이 이쁘게 남았더라. 자전거를 타고 쌩쌩 움직이니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비포장 산책길이라 중간중간 쿵하면서 튕겨 놀라기도 한다. 갑자기 오리 또는 거위때가 나타나기도 하고, 탁트인 호수가 나오기도 한다. 습지인지라 다채로운 생태가 발견되고, 갈대숲에선 바람에 사라락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게 천국인가 싶은 그런 느낌.

덴마크의 삶은 한국의 삶에 익숙하고, 그 삶의 패턴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에겐 힘든 것이라 생각한다. 불편함을 받아들여야 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출장온 대기업 중역분들 중엔, 여기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어보신 분들도 많았다. “차도 비싸 코딱지 만한 차 사야지, 밥 값 비싸지, 맛집도 적지, 술도 비싸고, 문도 일찍 닫고, 세금 많이 내지, 무슨 재미로 살아요? 한국은 돈만 있으면 살기 정말 좋아. 여긴 재미없는 천국이야.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지만.” 판에 박힌듯한 이야기를 해주신 분들이 꽤나 있었다.

다행인건 내가 소비보다는 경험 중심의 삶을 원하고, 북적이는 거 싫어하고, 술 집에서 와인이나 한잔 남친과 기울이면 되고, 소소한 즐거움에 행복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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