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수퍼마켓에 간단히 장을 보러 나섰다. 토요일이지만 옌스는 일을 하러 회사에 나간터라 혼자 나섰다. 큰 수퍼마켓이 아닌터라 통로가 좁은데, 바나나를 집으려는 첫 순간부터 내 앞에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걷는 할머니가 계셨다. 구경하느라 길을 막고 계신 것도 아니고, 나도 급한 볼 일이 있는 사람도 아니라 굳이 실례한다고 해가며 서두르기가 그랬다. 조금 지나보니 앞에 온 할아버지와 함께 오신 모양이다. 할머니와 갈리 키가 훤칠하신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거동이 편해 보였다. 첫번째 갈림길이 아오는 곳부턴 안의 동선이 자유로워져 멀리 돌더라도 이분들 앞으로 지나가는게 편하겠다 싶어 그리했다.
원하는 것들을 고르고 계산대 앞에 다다르자, 그 근처에서 뭔가 하나를 집어들어 상의하시는 두 분이 눈에 다시 띄었다. 백발이 성성하고 거동이 다소 불편한 나이가 될 때까지 오손도손한 두 분을 보자, 얼마전에 유튜브에서 본 100 Years of Beauty: Aging이라는 동영상이 기억났다. 한달 뒤면 결혼할 20대의 한 커플을 대상으로, 지금부터 90대까지 주요 연령대에 도달했을 때 그들의 예상되는 모습으로 분장을 해서 각자, 그리고 서로에게 보여주는 동영상이다.
의외로 우리는 자신의 미래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않는다. 막연한 상상을 할 뿐이지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기 어렵기 때문에 그 상상의 모습이 현실화될 때 깜짝 놀라게 된다. 가까운 미래의 모습은 충분히 예상이 되기에 그들도 그냥 주름에 놀라고 웃고 넘어갔지만, 그보다 나이가 든 모습에서는 눈물을 글썽이고만다. 현재 또는 과거 부모의 모습을 자기의 미래 모습에서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갖추었을때까지의 삶이 어땠을까하고 감정이입이 되기 때문이다. 보는 나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모습을 본 것도 아닌데, 그들의 늙어가는 모습에 나의 미래를 투영해보게 되는 것이다.
처음 내 앞에서 길을 막고 계신 할머니를 뵈었을 때만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계산대에서 두분의 대화 장면을 보고는 갑자기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지금도 여기저기 다치면 회복이 예전만큼 잘 되지 않고, 운동하다가 반복적으로 부상을 입은 곳은 그냥 약간의 만성적 통증을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드는데, 그 나이가 되면 얼마나 몸이 불편해질까? 우리 엄마, 아빠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는 만성적인 증상들을 갖고 계실텐데, 지금의 건강한 나로는 그 기분을 잘 모르지만 과연 어떨까? 젊음이 지금 느끼는 것보다 크게 부러워지겠지? 이런 생각이 스쳐감과 함께, 예전에 내가 “나는 60세 정도까지 짧고 굵게 살면 좋겠어!”라고 하던 말이 얼마나 생각없이 했던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경험과 지혜를 쌓아간다는 것과 함께 갖고 있던 것들을 잃어간다는 것이 아닐까? 너무 먼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싶지 않은 것은 그와 함께 잃어갈 것을 미리 상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 옌스와 함께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 손주를 보게 되겠지. 그들이 잔디밭을 뛰노는 것을 보면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날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몸이 예전같지 않아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때도 있겠다. 그러다가 내가 아닌 옌스가 먼저 세상을 뜨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나보다 나이가 많고, 여자가 더 오래 살곤 하니까. 소중한 순간이 와서 그걸 그와 나누고 싶어도 더이상 나눌 수 없을 때 그 아픔이 얼마나 클까? 그 또한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무던해질까?’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수퍼마켓에서 계산을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와 함께 부모님을 포함한 소중한 나의 가족, 친구, 친척 등이 떠오르며 그들이 갑자기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침에 괜한 소리로 잔소리를 한 내가 괜히 야속했다.
오늘 아침, 회사 나가기 전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옌스에게, 플라스틱 장식이 달린 숟가락은 가급적이면 쓰지 말아달라고, 식기세척기에 넣기 어렵다며 부탁을 한 것이다. 금속 숟가락이 아직 남아있는데, 같은 부탁을 한번 한적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손에 잡히는 것을 쓴 것이 약간 신경에 거슬렸고, 말투에 그 마음을 싣지 않고자 노력을 했건만 서로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가 그 미묘한 차이를 못느낄 리가 없다. 그런 말을 하자마자 괜한 소리했다 싶어 약간 미안했는데, 내 아침 식사에 들어있는 딸기를 달라는 그의 말에 얼른 분위기를 바꿀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 잔소리를 하며 속상하기 보다는,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하나라도 더 해줘야 하는데, 하면서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마음을 먹어도 짜증을 낼 일도 생길 것이고, 잔소리도 하고, 불평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 이런 경험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시 먹는다면 나도 그런 노부부와 같이 오래도록 오손도손 살 수 있을 것이고, 혹여나 그가 먼저 세상을 뜬다 해도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 할 수 있을 것이다.
내일 당장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현재를 살라는 말은 너무 현실감 없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간혹은 미래의 모습을 떠올려보고, 그 때도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나를 위해 현재를 잘 살아야겠다. 지금 내 옆에 있는 그와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사람, 그리고 혹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내 주변에 나의 삶의 반경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돕고, 좋은 마음을 갖고 대하면서 살 수 있도록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 곱게 나이를 먹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