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용 전기차 구입. 또 다른 현대차

차를 샀다. 우리의 첫 차는 옌스차로, 이 차는 내 차로 하기로 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전 정권에서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의 대대적 지방이전을 했는데, 내가 일자리를 구한 곳도 그 중 하나이다. 별장지역 중 하나인 Frederiksværk이라는 셸란 섬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도시인데, 옌스네 카약클럽 별장이 그 바로 옆 Hundested이라는 곳에 있어서 몇번 차로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었다. 지금 사는 곳에서는 편도 45분 거리. 제법 먼 거다. 고속도로로 대부분을 달리는데 45분 걸리는 거니까. 다행히 앞으로 이사갈 곳에서는 편도 30분. 전직장이랑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차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단점. 코로나 이전에는 주1회 재택근무가 보장되었고, 집에 뭔가 수리하거나 해야 해서 집에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경우는 재택근무가 가능했는데 (필요시 재택근무는 일반적 문화) 코로나 이후 주당 재택근무일수가 혹여 늘어난다 하더라도 차는 꼭 필요한거다.

결국 차를 한 대 더 사기로 했다. 역시나 전기차를 사기로 했는데, 전기차는 좀 비싸다는 것이 흠. 따라서 중고차를 사기로 했다. 시작은 르노의 조이를 사려고 했는데, 몰아보니 예상보다 별로라서 현대 Ioniq을 사기로 했다.

처음 들렀던 중고차 매장은 정말이지 야매같은 느낌? 내가 차를 시승해보는데 서류도 없이 몰아보게 하고, 전기차와 관련된 질문을 해도 영 딴소리하고 잘 모르더라. 같은 모델이지만 주행거리가 다른 옆 차도 한번 몰아봐도 되냐 해서 그 사람이 차를 밖으로 빼준다고 했다. 그러고나서 내가 분명히 봤는데, 전원은 켜지는데 시동이 안걸리는 상태였다. 몇번 꼼지락 거리더니 나와서 배터리가 바닥이라고 하는거다. 시동 켜지는 거 봤는데, 무슨 소리냐, 70킬로미터 이상 남았던데, 라고 물어봤더니 그제사 실토한다. 시동이 제대로 안걸린다고. 아… 신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집으로 돌아오는 길, 원래 내일 보러가기로 했던 중고차 매장에 들러보라고 옌스가 제안을 해서 그리했다. 딱 봐도 오래된 자동차업체. 중고자동차 업력 25년에 해당 주소에서 20년 매장을 운영했고, 사업자 등록번호 바뀐 바 없이 계속 운영했다는 건, 부도 경험이 없는 안정적인 기업이라는 것. 원했던 차가 좀 상태가 안좋아서 예산과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더니 현대 아이오닉을 보여줬다. 몰고 보니 마음에 드는 것. 지금 우리차인 코나보다는 주행거리가 조금 더 짧지만, 주행내부인터페이스도 같고, 상태도 너무 깨끗하니 마음에 들더라.

옌스가 차값의 80%를 무이자로 빌려주겠다 했다. 월급으로 할부로 사려고 했더니, 금융비용 내지 말고, 자기에게 내라면서. 아니! 무조건 땡큐지요. 차 한대로 버텨보려는 옌스에게 차를 사자고 계속 꼬셨더니, 세컨카에 새차를 너무 낭비라며 중고 사면 자기가 무이자로 대준다는 거다. 열심히 직장생활 해서 차값 갚아야겠다.

나도 큰 의사결정 빨리하고 불도저같이 미는 사람이지만, 옌스도 의사결정 참 빨리하는 사람이다. 현대차를 아껴주는 옌스 덕에 해외서도 한국차 열심히 타는 우리. 옌스의 이러한 한국사랑에 도움을 주고자, 나도 한국어를 더 열심히 써야겠다.

시원 섭섭 달콤 씁쓸 후련 : 이상한 날.

2개월 단기로 일하려던 곳에서 계약 기간의 반의 반절도 채우지 못하고 오늘부로 관뒀다. 3개월 미만의 계약은 노티스 없이 관둘 수 있어서 결정을 내리자마자 관둘 수 있었다. 내 사정에 의해서 계약기간의 두달에서 2주를 못채우고 빨리 관두게 되는 것이라 가급적 회사측 입장에 맞춰서 관두려고 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커서 최대한 빨리 관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나무 다리를 건너며 지나간 다리를 태우는 것 같은 기분이라 피하고 싶었던 결정이었지만, 괜히 오래 있다가 괜히 감정만 더 상하고 나올 것 같아서 차라리 빨리 관두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 들었다. 이렇게 정리하게 된 건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리하는 게 나에겐 더 나을 거였다.

친구네 조부모님이 픽업해서 같이 놀고 저녁까지 먹고 오기로 한 하나를 하나 친구네 집에 가서 픽업하고 돌아오는 길에 메일이 와서 보니 계약서가 도착해있었다. 지난주 금요일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잡 오퍼에 사인을 해서 연봉 합의를 했었는데, 그걸 토대로 계약서가 도착해있었다. 그에 서명을 해서 송부를 하는데, 앞으로의 프로세스를 메일로 간략히 오리엔테이션해주고, 업무 시작 얼마 전에 각종 참고할 자료를 보내준다는 것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일해본 덴마크 직장은 중앙정부기관이고 이번에도 그렇다보니 다른 곳은 모르겠어도 중앙정부기관은 이런 스탠다드 프로세스가 있다. 그런데 직원 고용규모로 보면 이런 두 기관에 비해 훨씬 큰 내 전 직장은 아직도 사람보다 숫자, 성과가 중요해서 그 숫자와 성과를 뒷받침하는 게 사람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사람은 내가 신뢰를 받고 내가 하는 일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조직과 일에 대한 열정이나 신뢰가 없어지고, 결국 조직 이탈이 이뤄지는 것일텐데.

오늘은 어찌되었든 간에 문을 하나 닫고 다음 문을 하나 여는 작업을 한 날이 되어버렸다.

번역일 하던 것도 초벌을 마무리지어서 내일 검토해서 보내는 일만 남았으니 그것도 좋았고. 시행령을 번역해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의외로 상업번역이 나에게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해보고 나니 에세이나 소설 같은 걸 번역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다시 한번 느껴졌다. 상업 번역은 감정선을 살리는 미묘한 형용사와 부사가 난무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빠르게 번역할 수 있었다. 뒤로 갈 수록 문장의 형식과 내용에 익숙해지니 속도도 붙고.

어느새 3월도 거의 다 가버렸다. 새 직장으로 출근하기까지 한달여가 남았고, 이사까지도 한달 반정도 남았다. 남은 기간 열심히 여기저기 페인트질하고 청소하고 살 것 사고 옮기고 하면 또 다음 한 달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흘러있을 거 같다.

시원섭섭하고 달콤하고 씁쓸함과 후련함이 동시에 교차하는 이상한 날이었다. 날씨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대비가 더 이상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 잠을 자고 나면 내일은 그냥 상쾌한 새로운 하루가 되겠지. 인간에게 잠이라는 게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고민 끝 재취업.

재취업.

작년 말부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재취업…

환경경제학으로 1~2년 일한 주니어가 취직할만한 자리는 정부부처 중심으로 나오고, 컨설팅은 프로젝트를 이끌만한 정도의 경력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채용하고 있었다. 정부부처는 대부분 탁월한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하고 있었고, 분석 보고서를 쓰는 자리에 있어도 대부분 그 보고서가 활용되어 제도를 도입하는 데 역할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아서 법과 가깝게 지낼 수 있어야 했다. 그건 그 직전 직장에서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던 요소 중 한가지였다. 즉, 내가 원하는 자리가 잘 나오질 않았다.

그러니 내가 공부한 것을 활용해서 직장을 다시 잡는다는게 요원해보였고 시작부터 패배주의에 젖어있었다. 안될 거 같다는 내 프로필에 딱 들어맞지 않는 직종 몇군데로 통계청이나 조금 더 제너럴리스트 포지션에 지원해보고 서너번 미끄러지고 나니까 정말 다 안될 거 같아서 더 위축이 되었다.

더군다나 재취업을 적극적으로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 쪽 길을 다시 걷고 싶어진다면 공백기간이 너무 길어져도 안되니까 뭔가 시도해보려면 지금쯤에는 해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애매한 취업활동이었다. 덴마크의 물가를 생각하면 내 개인프로젝트로 시작한 일은 취미 용돈 벌이 수준에 지나지 않았고, 이걸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본격적으로 돈이 벌리는 아이템을 만들던가 다른 걸 하던가 해야했다.

옌스에게 다른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른 공부를 하기엔 대학원 졸업한지 얼마 안되서 입학이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뭔가 기존의 학업과 관련없이 구할 수 있는 일도 생각해봐야했다. 가장 쉽게 떠오른 건 보조보육교사. 유치원과 보조보육교사는 경력이 없이도 취업을 할 수가 있었다. 경력을 요구하는 데도 많지만, 경력 없이도 취업할 수 있는 곳도 많았으니까. 애를 보육원과 유치원에 보내면서 만나게 된 선생님들을 보면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하루하루 손에 쥘 수 있는 그 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정말 hands-on한 일을 하는 것도 잘 맞을 것 같았다. 옌스는 거의 재취업을 시도해보지도 않고 나를 과소평가하며 다른 길로 방향을 틀려는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내가 정말 다른 길을 원한다면 원하는 걸 해보라고, 그냥 회피하기 위해 선택하지 말고 곰곰히 생각해보라 했다. 그리고 그럴거면 이사 간 뒤에 취직을 하라고 했다. 마침 집도 사서 이사와 관련해서 할 일이 많으니까.

당장 일할 건 아니지만 미리 살펴나 보지 하는 마음으로 보조보육교사 채용공고를 살피며 뒤적거리다가, 기대를 내려놔서 마음이 편해져서 그랬는지, 부담 없이 환경경제학 관련 공고도 좀 살펴보게되었다. 마침 눈에 띄는 곳 두군데가 눈에 있었다. 이미 여러번 미끄러져서 기대도 크게 없었는데, 한군데에서 면접을 보자고 했다. 분위기도 좋았고 커뮤니케이션도 화상임에도 아주 매끄러워서, 이제 취업해도 일하는 데 커뮤니케이션이 장벽이 되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탁 들었다. 그새 확실히 늘긴 늘었구나…하는 생각. 사실 두군데 쓰면서 하나를 두개 문서로 나눠 저장한 후 필요한 것만 바꿔 쓰다가 두군데 모두 같은 팀명을 써내는 실수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에 불러준 거라 나의 자신감을 살려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자신감을 얻어 마침 재미있어 보이는 곳, 두군데에 이력서를 또 냈는데 다 면접에 불러주더라. 면접에 들어오는 사람 중 실무자가 기존 일하던 청에서 협업 파트너로 간간히 만나 회의하고 피드백 주고받고 하던 사람이어서 예감이 좋았다. 1차 면접인데, 인성검사에 케이스 테스트까지 있다고 하며 코로나 시대에 물리적인 면접으로 불러내던 이 곳에서 결국 이른 아침 면접을 보고 그날 점심 먹고 다른 곳 1차 면접 보러가는 길에 잡 오퍼를 받았다. 여기는 1, 2차를 구분하지 않고 한번에 다 보는 곳이었던거다. 보스가 될 사람에게 전화로만 통보를 받은 거라 서면으로 오퍼를 받기 전까진 확실하지 않으니까 (법률적으론..) 다른 곳에도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이 끝나고 나오니 오퍼가 서면으로 와있었다. 덴마크에서는 잡오퍼에 고용에 대한 확약의 표현이 있으면 이걸 토대로 기존 직장에 퇴사통보를 해도 안전한 고용 문서가 되기에 집에 와서 옌스와 상의를 조금 한 후 월요일에 있을 다른 곳 2차 면접(나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켜줬던 그 곳)에 면접 초대 거절 메일을 보냈다.

덴마크어 티칭과 번역, 기타 책 쓰는 일, 유튜브 등은 일부는 꾸준히 하고 있고 일부는 잠시 중단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제 불확실성이 모두 제거가 되었으니 편한 마음으로 오히려 더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내가 잘 하고 못하는 게 뭔지 알고, 그 모든 걸 편하게 인터뷰에서 털어놓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가 못하는 걸 할 수 있는 척 해봐야 너무 힘들고 포기할 걸 아니까. 사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일할 수 있는 덴마크어 실력도 전 직장의 혹독한 현장 체험에서 다져진 거긴 한데, 결국 관둔 걸 경험해봤으니… 그걸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하고 내 기대와 각오를 다 풀어놓고 나니 채용이 되어도 마음이 조금 더 편하다. 글을 남들처럼 화려하고 멋들어지게는 못쓰겠지만 보고서의 목적에 맞는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에는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도 해두었고, 외국인과 근무한 경험이 있는 상사라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력서나 대화, 케이스 프레젠테이션 등을 보면 언어는 걱정이 없다고 했으니까. (뭐 경쟁소비자청에서도 그랬는데, 이번엔 내 느낌이 다르다.)

또 공무원이냐고, 공공부문이 체질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냥 공공부문에 있는 이코노미스트일 뿐이다. 내가 받은 교육이 그런 자리에 가게끔 짜여진 거고 (정말 딱 그렇게 짜여져있더라. 난 이 자리에 있기 위한 수업들을 들어왔다.) 그런 일을 주는 자리에 간것 뿐이다. Forsyningstilsynet, 영어로하면 Danish Utility Regulator로 Center for Analyse (분석센터)에서 fuldmægtig økonom, 경제 사무관으로 일하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논문쓴 것에 더해, 논문 지도교수와 협업을 하게 되어 계약직으로 COWI에서 프로젝트 일을 했던 것, 경쟁소비자청에서 하던 일 이게 정말 다 엮이고 잘 엮여서 지금 자리를 얻게 되었기에 얼마나 이 일련의 우연이란 게 우리 인생을 엄청 크게 좌지우지하는구나 하는 것도 느끼고.. 여러모로 느끼는게 많다.

긴장도 되고 설레고… 5월 1일은 진짜 여러면에서 중요한 날이 되었다. 우리 새집 넘겨받는 날, 내 첫 출근날….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새집 사고, 하나 유치원도 원하는 시기에 시작할 수 있어서 내 올해 운 다 썼나 했더니 이렇게 취직까지. 2021년이 참 좋은 한해가 되는구나.

이제 죽이되든 밥이되든, 일을 잘 하든 못하든 오래 잘 버티고, 장수해보자. 코트라에서 장수한 마음가짐이면 여기서도 장수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겸손하되 패배주의나 냉소주의로 돌아서지 않도록 나에 대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참을성을 가져주자. 차로 30분 가야 하는 곳이라 절반 이상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곳이니 이 유연함을 통해 애도 잘 키워보고.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일지어다. 이 마음가짐 잊지 말자. 먼 곳이라 차를 또 사야 할 수 있는 곳인데도 흔쾌하게 내 온전한 의사결정을 지지해 준 옌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고.

해외 나와서 취업을 하려는 모든 취준생에게도 이 좋은 기운이 흘러가기를…

벌써 7년

옌스와 연애를 시작한 게 바로 7년전. 뭔가 오래되지 않은 과거 같기도 하면서 7년밖에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이상하다. 덴마크 나와서 딱 반년 지낸 후에 옌스를 만났으니 덴마크 살이도 7년 반이 되었다는 이야기구나.

내 인생에 작고 큰 챕터가 여럿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챕터의 시작은 옌스와의 만남이다. 옌스를 만나고 사랑을 알았고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고, 배려가 어떤 건지 배우게 되었다. 나의 장단점을 보다 잘 알게 되었고, 내 단점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인생의 닻과 같이 거친 풍랑이 와도 나를 단단히 붙들어줄 옌스를 만나 나는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와 나는 서로 보완이 많이 되는 존재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나에게 사랑을 일상 속에서 느끼게 해주고 나의 존재를 기쁘게 받아들여주는 그가 있어서 힘든 순간에도 버틸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서로를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존재. 옌스를 만나기 전엔 실패한 많은 연애를 거치고 나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없다고 단언을 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와의 만남으로 그런 생각이 다 뒤집어졌다.

7년의 시간이 지난만큼 우리도 나이가 들었다. 거울을 보면 우리 얼굴에도 주름이 늘었고 머리카락에도 세월의 흔적이 발견된다. 나는 머리 속 새치가 늘어서 간간히 뽑아주느라 바쁘고, 옌스 머리는 갈색에서 회색으로 바뀌었다. 우리 사랑의 결실인 하나가 네돌이 지났으니 놀라울 것도 없지.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우리.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오순도순 잘 살아가길…

코로나 제한조치 속 한국방문 단상

덴마크와 한국 모두 강도높은 코로나 제한조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양태는 다르다.

덴마크는 사적인 공간에서 모이는 것에 대해서는 5명 초과해서 모이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이를 강제하지 않는다. 막힌 공적 공간에서는 마스크를 쓰게 하지만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수퍼마켓과 약국, 테이크아웃 목적으로 한 카페와 식당을 제외하고는 오프라인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다. 기타 문화 공간도 다 닫았다. 학교는 모두 닫고 온라인 교육으로 돌리고, 근로자의 경우도 물리적 출근이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다 재택근무로 돌렸다. 보육원, 유치원은 정상적으로 운영하지만, 아이들을 소그룹으로 나누기 위해 가능한 8:30-15:30 기간동안만 맡기고, 재택 보육이 가능한 경우 보내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한국의 학교, 보육, 근로 관련은 모르겠지만, 5인 이상 집합금지과 항상 마스크착용 의무화를 제외하면 거의 일상이 그대로 돌아가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영업시간은 제약이 있는 것 같은데 애 있는 엄마로 영업시간 제약은 애초에 느낄 일이 없어서 나에게는 여파가 없었다.

애가 있기도 하고 안그래도 코로나로 사람간 간격을 유지하기 어렵거나 밀폐된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는 시설은 피하기도 했는데다가, 사실 머무는 기간 중 1주일을 제외하고는 누구를 만나거나 만날 계획이 없기 때문에 크게 코로나 제한조치를 느낄 일은 없었는데, 사람이 주변에 거의 없는 야외에 있어도 마스크를 상시 쓰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상속 여파를 덴마크에서보다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마스크를 써서 그런가? 아니면 사람이 많아서 거리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하도 많으니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포기해서 그런가? 아무튼 사람들이 카페나 상점에서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과하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거리를 유지해달라고 하면 아차 싶다는 표정으로 거리를 유지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구는 내가 요란스럽게 느껴질 정도였고, 계산대에서는 계산을 하러 줄 선 사람과 계산을 끝내고 나가는 사람의 동선을 분리하는 게 어려워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엉키니 거리 유지가 어렵기도 하고.

마스크를 어디 가든 써야 하니까 애를 데리고 사람 많은 곳에 잘 안나가게 된다. 그러니 아무리 걸어다녀도 읍내에 나가지 않고는 사람 그림자도 보기 어려워 마스크를 안써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홍천에 쳐박혀 동네 산책 하는 것에 만족하게 된다. 그런데 애랑 오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자연이 있으니 이러저러 활동을 통해 놀이터를 대체시켜줄 수도 있고. 아마 이래서 마스크를 야외에서도 쓰게 하는가보다. 나오고 싶은 의욕을 아예 꺾어버리도록. 그래서 그런가. 산책하면서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통통하거나 마르거나가 대부분이고, 덴마크 아이들처럼 탄탄한 근육을 가진 애들은 보이지가 않는다.

코로나는 우리가 알던 일상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구나. 대충 올 가을까진 꼼짝없이 이 코로나 시국이 유지될 것 같은데, 자연이 바로 코앞에 붙은 곳으로 이사가게 되는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애를 조금 더 편하게 풀어놓고 숲으로 호수로 다니며 야외활동을 늘릴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말이다.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집을 계약했다.

일요일에 옌스가 집을 보고나서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방 두개 크기가 생각보다 작은 거 빼고는 괜찮다고 하는데, 좋은 마음을 애써 절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보다 별로였던 마음을 확 드러낸 것 같기도 하고 문자로는 정확히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전화를 했다. 부동산 사이트에 올라온 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을 보고 느낀 건 평소에 관리가 잘 된 집이라는 거였는데, 정말 그랬던 모양이다. 이미 매물로 올라온지 한 달이 지났던 터라 뭔가 사진에 안드러나는 하자가 있었나 했는데, 그냥 우연히 그랬던 것 같다.

지난번에 부동산 매매 트렌드를 잘 몰라서 여유있게 움직이며 집 한번 더 봐도 되냐고 물었다가 팔렸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신속하게 움직였다. 괜히 내가 한국에 있다고 기다릴 게 아닌 거 같았다. 이미 옌스가 보러갔던 날 거기에 있던 다른 사람도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옌스랑 역할을 나눠 나는 변호사를 알아보고 부동산에 오퍼를 던지고, 옌스는 은행대출 사전승인을 맡았다.

일요일에 변호사를 찾아두고 월요일 오전에 은행과 변호사에 연락했다. 부동산에 일요일에 이미 연락을 해두었더니 은행 사전승인을 받아야만 매도인과 상의할 수 있다고 하더라. 빨리 접근해야 괜히 입찰 형식의 가격경쟁으로 흐르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에 집 보러가기 전부터 가격 전쟁에는 관심이 없다하며 이미 협상대상 있으면 안보겠다고 부동산에 이야기해두었기에 그도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었고, 부동산에서는 사실 누가 사든 수수료수입이 엄청 크게 차이나는게 아니니 빨리 확정을 하고 싶을 터였다. 관심있는 사람이 또 있으니 빨리 추진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언질을 주었다는데, 그 내막이야 모를 일이라도 우리는 마음에 들었고 시장에 나온 가격에서 조금 더 깎고 하느라 집을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오후에 이미 은행 사전승인을 받아 부동산에게 오퍼를 던졌고, 다음날 부동산은 우리의 신원 조회 등 필요한 절차를 밟아가기 시작했다. 5년 이상 거주해야 외국인이 부동산을 살 수 있는데, 그거야 문제될 것 없었다. 변호사는 우리가 계약서에 변호사 검토 조건부 계약을 명시하면 혹시 문제되는 요소가 있으면 그때가서 조율하면 되니 계약서상 이견이 없으면 서명을 하라고 했다. 화요일에 집과 관련한 일련의 문서를 다 받고 수요일, 오늘 오전에 계약서를 받아 낮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 바로 오후에 상대도 서명을 했다.

변호사가 관련 문서를 다 검토하고 난 후 다음주 월요일에 변호사와 미팅을 하기로 했는데, 거기에서 문제가 없으면 계약금 치르고, 집 상태보고서를 기반으로 한 집소유주 변경 보험 가입하고, 나중에 잔금 치르고 5월 1일부로 열쇠를 넘겨받게된다. 우선 그 사이에 주식시장이 어떻게 될 지 몰라 둘다 후딱 다운페이할 금액에 해당하는 주식을 후딱 팔았다. 장이 좋아서 주식도 눈깜짝할 새에 팔리고…

딱히 집을 수리할 건 아니라서 페인트칠 하고 바닥 좀 갈고 청소 싹 하고 들어가면 될 것 같다. 물론 우리 나올 집도 페인트칠 하고 청소 싹 하고 나와야겠지만… 5월이면 4개월인데, 귀국해서 자가격리도 좀 하고, 하나 유치원 대기도 걸고 집 가구 배치도 고민하고 하다보면 후딱 시간은 갈 것 같다.

첫 집을 이렇게 보지도 않고 계약해서 얼떨떨하고 현실감 없지만, 둘 다 너무 마음에 드는 집을, 너무나 매끄러운 과정을 통해, 아무런 갈등 없이 계약했다는 점에서 기쁘구나. 이제 집 계약이 아무런 문제없이 매매로 이어지기만을 바라고, 그게 되면 하나에게 말하는 일만이 남았다. 다 마무리 잘되길…

아이가 진정 스승이구나 싶은 순간

네돌이 불과 한달정도밖에 남지 않은 요즘, 하나가 부쩍 컸음을 새삼 느낀다.

얼마전에 하나가 볼일을 본다고 화장실을 가더니 뭔가 놀라거나 당황했을 때 낼 법한 소리를 질렀다. 나는 부엌에서 저녁식사 재료를 손질하며 손에 물을 뭍히고 있었고 옌스는 거실에서 재택근무의 연장을 하고 있었기에 조금 더 손쉽게 갈 수 있는 옌스가 하나에게 달려갔다. 갑자기 애가 화를 내는 비명 소리를 지르고 발로 바닥을 구르고 아빠에게 성을 내길래 나도 손의 물기를 닦고 화장실로 나섰더랬다.

“무슨 일이 생긴거예요?”

하나는 엄청 서럽게 울면서 아빠가 속옷을 들춰 엉덩이를 봤다며, 유치원에서도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그러면 안되는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미안하다면서 바지에 혹시 오줌 싼건가 놀래서 본 거라고 양해받을 만한 일인 것처럼 가벼이 넘겼는데, 애 마음은 아닌 거였다. ‘아… 애가 이제 사생활의 영역에 대한 개념이 생겼구나… 엄마나 아빠가 아직도 큰 일 보고나면 엉덩이를 닦아주니까 그런 점은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자기가 허락하지 않은 타이밍에서의 신체에 대한 사생활을 이제 존중해 줘야 하는 거구나… 우리가 미처 생각을 못했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빠가 엉덩이를 봐서 하나가 속이 상했어요?”

“오줌 쌌다해도 유치원에서는 속옷을 열어보고 엉덩이를 확인하지 않는단말이예요! 그렇게 하는 거 아니랬어요!

기저귀를 뗀 이후에 유치원에서 바지에 오줌을 싼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아마 유치원에서는 욕실에 데리고 가서 씻기기 전까진 오줌을 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바지 뒷춤을 들춰보는 일은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자기 신체 부위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교육하는 모양이다.

얼른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에게 아빠가 잘못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엄마와 아빠가 세심하지 못했다며 속상한 마음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볼일 다 본 후에 손 씻고 아빠한테 가서 아빠가 잘못한 거고 사과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라고 했다.

이날 저녁, 양치질을 하기 전에 꼭 뻔히 보이는 숨바꼭질을 즐기는 하나를 “찾기” 시작했다. 꼭 자기 침대에 이불 덮고 숨는 하나. 숨바꼭질에서 우리가 못찾을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라 이 루틴을 즐기는 거다. 아빠랑 하나가 만든 루틴에 나도 하나의 요구로 동참하게 되서 나는 나식대로 숨바꼭질 술래 역할을 했다. 이불 아래 숨은 하나를 발부터 찾아서 킁킁 냄새를 맡은 후에 “이 쉰내나는 발가락은 하나 발가락인데!”하면서 “하나 맞구나!” 하고 찾아냈었더랬다.

덴마크에 얼레리 꼴레리에 해당하는 “Øv, bøv, bussemand, sure tæer i saftevand”이란 노래가 있다. “얼레리 꼴레리, 코딱지, 주스에 담근 쉰내나는 발가락” 이런 내용인데, 여름에 간혹 하나 발에서 쉰내가 날 때 이 노래를 부르면서 발을 씻어주면서 가볍게 놀린 일이 있었다. 이후에도 발에 쉰내가 나지 않아도 몇번 그걸로 놀린 적이 있었는데, 사실 하나 발에 쉰내가 계속 나면 그걸로 안놀렸을텐데, 쉰내가 안나니까 놀렸던거다. 그런데 그게 속상했나보다. 애들이 유치원에서 금요일마다 따돌림 방지 교육을 받는데, 거기서 받은 교육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간 쌓여온 게 어제 터진 모양이다.

“발가락에 냄새 나는 것만으로 그게 저인 걸 맞출 수는 없는 거예요. 발가락에 냄새 나는 사람이 저만 있는게 아닌데, 발가락에 냄새 난다고 그게 어떻게 저인지 아는 거예요? 그리고 발가락에 냄새가 나는 걸로 자꾸 놀리면 안돼요! 같은 걸로 자꾸 놀리면 안된다고 했어요!”

아차…

“미안해요. 엄마가 하나 발가락에서 냄새가 안나니까 그렇게 놀려도 놀리는 거라 생각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엄마 착각이었네. 진짜 놀린 거는 아니예요. 그리고 앞으로는 그렇게 안할게요. 미안해요.”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싶었다. 아닌 것으로 놀리는 것이든 맞는 것으로 놀리는 것이든, 상대가 아주 재미있다며 유쾌하게 웃고 있어도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게 남을 수 있다는 건 나도 경험한 바 있는데, 상대가 아이라고 해서 그냥 재미있게 받아들일 거라 착각했었다. 그리고 뭐가 되었든 반복적으로 놀리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오늘, 하나가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면서 엄청 우렁찬 소리로 힘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감자튀김 똥이 나온다면서 (이건 도대체 어떤 똥인지..?) 힘을 또 끙차하고 주는데 나랑 옌스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동시에 키득 거렸다. 그러자 하나가 묻는다.

“왜 웃는 거예요?”

우리가 그냥 웃는 거라고 답을 하자

“제가 낸 소리 때문에 웃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그렇게 비웃으면 안되는 거예요!”

라고 훈계를 한다.

“아.. 비웃은 건 아니고, 너무 재미있어서 웃은 거예요! 미안합니다!! 다음부터는 안웃을게요!”

라고 답을 하자

“그렇게 성의없이 미안하다고 사과만 하면 안돼요! 미안할 일을 만들지 않게 기억을 하고 미안할 일을 하지 말아야죠!”

라고 쏘아 붙이는데, 할 말이 없더라. 내가 한 말을 고대로 나에게 되돌려주고 있더라. 아… 반성해야지 싶었다. 그래서 옌스랑 우리 좀 주의해야겠다고 나지막히 대화를 나누는데, 하나가 화장실 문을 탁 닫더라. 그래. 너도 화장실 문을 닫는 법도 배워야지…

아무튼 애가 어리다고 애 다루듯 대하면 안되는 부분이 생긴다는 것을 기억해야할 에피소드가 많았던 지난 이틀이었다. 참 많이 컸구나. 대견하고, 뿌듯하고, 고맙고, 사랑스럽다.

2020년 9월 12일

아이들은 참 다르구나.

친구와 잠깐 이야기를 했다. 그 집 아이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라 발달상 차이를 지켜보기에 좋고 신기한 점이 많다. 특히 그 차이에서 그런 점을 많이 느낀다.

그 아이는 수와 어떤 구조를 파악하고 구성하는 데 비상하고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 쪽으로 영재와 같은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에 대해 내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특별하다 생각하는 모습을 내비치니, 거기에 더해 창의성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비치더라. 꽤나 큰 애들이 할 레고 조립을 거의 혼자서 다하는 수준인데, 레고에 동봉된 조립도면을 거의 외워내서 그걸 혼자 해내는건데, 뭔가 창의적으로 만드는 쪽으로 특별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상자 밖에서 문제를 풀어내는 참신함 같은 것이 자기에게 부족해서 그런 걸 아이가 갖고 태어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런 게 잘 안느껴진다는 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하나와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어떤 정해진 것 그대로 해야하는 것을 별로 안좋아하고, 장난감 대부분을 그 본연의 목적대로 갖고 노는 것보다 자기 마음대로 바꿔서 노는 걸 좋아한다. 놀이를 만드는 걸 잘해서 자기가 만든 놀이에 친구들을 참여시키는 것을 잘한다. 바꿔 말하면 남들이 참여하고 싶을만한 놀이도 잘 만든다는 거다. 손목 시계를 시계로만 쓰는 게 아니라, 도장이라 치고 여기저기 도장을 찍는 시늉을 한다던가, 도장을 갖고 도장이고만 쓰는게 아니라, 반창고라고 하고 놀이로 상처났다고 하는 곳에 꾹 눌러 반창고를 붙여주는 시늉을 한다. 펜은 막대아이스크림이고, 아이스크림 콘은 약통이다. 한 사물의 형태에서 다른 사물의 대상에서 뽑아낼 수 있는 특성을 발견하면 그걸 그 다른 사물이라 칭하고 노는 대에 능하다. 추상화 능력과 창의력이 탁월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정해진 도면을 따라 뭔가를 정교하게 만드는 건 하나가 잘 하는 일이 아닌거다. 좋아하지 않으니 잘할 수가 없지.

이렇게 어린 아이들에게서 뚜렷한 특성들이 발견될 때, 태어날 때부터 사람이 갖고 태어나는 유전적 요소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되어 놀랄 떄가 많다. 그리고 잘 하는 것과 부족한 것을 어떻게 키워줄 지,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아니면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정말 부모가 생각하고 스스로를 교육해서 아이가 커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할 게 참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2020년 9월 9일

쉬웠다가 어려웠다가 하루하루를 종잡을 수가 없다.

요즘은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다르다. 하루는 너무나 쉬웠다가 다른 하루는 너무나 어려웠다가 종잡을 수가 없다. 머릿속에 새로이 들어가고 경험하는게 많아서 그런 걸까? 아직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이 능숙하지 않아서 뭔가 심사가 뒤틀리면 그날 하루가 어려워지는 걸까? 그렇기엔 또 기분이 좋은 날은 웬만한 일에도 쉽게쉽게 넘어간다.

추상적 개념에 대한 관심

죽음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겨울왕국을 본 이후부터다. 하나보다 나이가 많은 유치원 친구들이 하나에게 엘사를 소개시켜줬는지 세돌이 지난 때부터 겨울왕국 타령을 하더라. 그래서 보여준 겨울왕국. 주인공 엘사와 애나의 부모님이 배의 난파사고로 사망한 것을 만화에서는 초상화에 검은 베일을 드리우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이걸 하나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들의 부모님이 바다에 빠져 돌아가셨고, 더이상 엘사와 애나는 부모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는데,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어 땅에 묻히고, 그렇게 세상을 떠난 사람은 우리 마음속에만 살아 숨쉰다고 설명해줬는데, 나와 옌스가 세상을 떠나 언젠가는 자기와 같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이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죽음에 대해서 오랫동안 이해하려 노력하고, 이제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개략적으로 이해했다. 이것이 하나가 이해한 첫 추상적 개념은 아닐 거다. 사랑이라는 개념도 피상적이나마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 차이라하면 사랑은 우리와 자신과의 교감을 통해 연결시킬만한 경험고리가 있다면, 죽음은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상상속에만 존재하는 거라는 데 있다. 물론 겨울왕국이나 다른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보고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 자기 상황에서 느낄 일은 없었으니까.

요즘은 진실과 과제에 대한 개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자기의 미니 욕조 안에서 얼굴이 그려진 낚시채를 엘사로 정의하고 엘사가 엄마, 아빠를 찾아 헤메는 거다. 내가 옆에서 지켜보다가, ”엘사, 너희 부모님은 돌아가셨어. 더이상 부모님을 만날 수 없어.”라고 이야기를 해줬더니, 하나가 냉큼 나를 저지한다. ”엘사는 진실을 알면 안돼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걸 알면 안돼요!”라는 거다. 진실? 어디서 배운 표현이지? 집에서 쓴 적은 없으니 당연히 유치원에서 배운 표현이겠지만, 어떤 맥락에서 배운 걸까?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까, 알면 안되는 일이라는 거다. 아… 숨겨진 진실은 파고드는 게 좋지 않다는 맥락에서 배운 거구나. 도대체 유치원에서 어떤 상황에 그런 표현을 들었을까? 남편은 진실이라는 단어를 가르쳐준 적이 없다는데. 특히 그런 맥락에서는.

아이의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는 머리를 열어서 확인할 수도 없고, 다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궁금하고 또 궁금하구나. 말속에 은연중 드러나는 흔적으로 그 머리속을 곁가지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2020년 8월 30일

두발자전거를 온전히 타기 시작하다

내 생일 즈음에 하나에게 페달이 달린 두발자전거를 선물했다. 그게 두달 조금 지난 일이다. 하나는 두돌때부터 페달이 달리지 않은 두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데, 이걸 타고는 내가 빠르게 뛰지 않으면 따라잡지 못할 만큼 빠르게, 급회전도 하면서 능숙하게 탄지 벌써 몇달이 된 시점이었다.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자전거 중 가장 작은 것을 샀는데, 아이들 자전거는 아주 특별하게 비싼 게 아니면 아이 체중 대비 정말 무거운 것들 밖에 없었다. 애가 금방 자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 비싼 걸 사기는 어려워서 그냥 살만한 범위 내 자전거에서 가볍고 조금 비싼 걸 골랐다. 그래도 9킬로그램이 조금 넘더라. 내 자전거가 스포츠 자전거로 개중 가벼운 것임을 감안하더라도50킬로그램대의 내 체중에 자전거10킬로그램인 걸 생각하면, 아이 15킬로의 몸무게에 9킬로는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냥 복잡한 계산 없이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런 자전거를 아이가 처음에 타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이미 자유로이 빨리 탈 수 있는 발자전거가 있는데, 어떻게 타야할 지도 잘 모르겠고 힘든 페달자전거는 인기가 별로 없었다. 본인이 그렇게 원하던 분홍색 자전거였음에도.

그래도 옌스가 시간이 날 때마다 자전거 타보겠냐고 물어보고, 옆으로 허리를 구부정하게 기울여 하나 자전거를 뒤에서 밀며 뛰어다니는 수고를 여러번 거듭한 탓에 8월 중반에 들어 거의 매일 하나가 자전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주변을 관찰해보더니, 큰 애들은 페달자전거를 타고 작은 애들이나 발자전거를 탄다, 이런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자기도 큰 애가 되어가고 있으니 자전거를 탈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자전거가 무거운데다가 발이 땅에 적당히 닿을 정도로 안장을 낮게 설치했더니 페달질이 힘들어서 그런지, 옌스가 밀어주면 자기는 균형만 잡으며 크루징을 하고, 페달은 발판 정도로만 썼었다. 옌스가 손으로 페달을 돌리는 걸 여러번 도와주고 나니 서서히 페달을 밟기 시작했고, 가장 어려워하던 스타트는 약간의 내리막 비탈길에서 모멘텀을 활용한 연습을 반복하더니 어느새 요령을 터득해 평지출발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 온 가족이 해안도로로 나가 하나의 자전거 투어를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며 함께하기로 했다. 결론은 대성공이었다. 우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인라인스케이트 도로에서 하나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가 리드를 함에 있어서 불편함이 없었고, 하나도 넘어짐 없이 우리의 신호에 따라 정지와 출발을 반복하며 완주해줬기 때문이다. 어느새 배가 고파진 하나가 찡찡거리긴 했지만, 주차장에 위치한 아이스크림집을 미끼로 써서 완주에 성공했다. 제법 긴 거리긴 했지만, 유치원에서 긴 소풍을 가면 길게는 8-9킬로미터도 너끈히 걸어내는 아이인지라 큰 무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와 온가족이 함께 체육활동을 한 건 처음이라서 의미가 큰 하루였다. 통상, 우리가 하는 체육활동은 하나가 제대로 참여하기 어려운 것들이라 옌스가 줄을 타거나 외발자전거 연습을 하면, 내가 그동안 하나와 그 인근에서 다른 걸 하다가 교대를 해왔는데, 이번엔 모두가 동시에 같은 경험을 나누었으니까. 새로운 시대가 열린 기분이다. 아이와 취미를 나누는 시대. 뭔가 꿈꾸는 이야기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