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반년 후 덴마크어 능력 자가평가

반년이 흘렀다. 아니 며칠 남긴 했으니 반년이 흘렀다고 하긴 그런가?

누구를 만나 건 막상 대화를 하는 데 큰 막힘은 없고 강의를 들으러 가서 상대가 빠르게 말해도 90% 이상 문제없이 이해하니 적응을 거의 다 했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처음으로 만나서 내 소개를 하는 때마다 혹여나 내가 문법에 틀리는 말로 시작하게 될까 그로 인해 상대가 나를 어리숙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긴장이 마음 속에 자리하는 건 바뀌지 않는 거 같다. 무엇보다 처음을 내가 열어야 하는 상황은 긴장된다고나 할까? 튀는 게 싫은 것 같다.

3개월에 한번 새로 기업부 및 기업부 산하 기관에 임용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소개강좌가 열리는데 지난 번엔 회의와 겹쳐서 임용된 지 6개월만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다른 기관 사람들도 만나서 인사도 하고, 장관실을 비롯해 기업부 시설을 둘러보았으며, 조직, 전략, 인사 및 총선이후 유의사항 등 다양한 사항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각자 자기 소개를 구체적으로 할 일들이 생기는데, 그럴 때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곤 한다. 속으로, “틀려도 된다. 틀려도 된다. 상대는 나를 평가하려는 사람이 아니야.” 이런 말을 되뇌이다보면 긴장이 좀 풀리고 막상 대화를 시작하고 나면 큰 어려움은 없다. 이런 긴장감은 도대체 언제 없어지려는지. 없어지긴 하려는지.

그래도 달라진 건 점심시간에 대화에 느끼던 어려움이 많이 없어졌다는 거다. 조용한 회의시간에 한명씩 돌아가며 조용하게 이야기할 때랑 달리 구내식당에서 여러명이 대화를 동시에 나누는 점심시간은 참 어려웠다.

지난 주 금요일, 1년에 한번 하는 직원축제가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저녁 식사와 파티를 하기 전 야외 테이블에 앉아 직원들과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그 때, 구내식당에 소리가 많이 울리고 사람들이 크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보니 점심시간에 간혹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말할 기회가 있었다. 그랬더니 나만 그런게 아니라 네명 넘는 인원이 말을 하면 소리가 잘 안들린다고 하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아. 역시… 아무튼 이제는 많이 알아들어서 점심 때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날 저녁 엄청 시끄러운 속에서도 한껏 멕시코풍으로 장식한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목소리 높여가며 술도 마시고 대화도 하고 춤도 췄다.

간혹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기분이 들어서 내가 잘해야지 하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 내가 뭐라고 한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하나. 나는 하나의 개인일 뿐인데. 그런 쓸데 없는 생각으로 나를 부담지울 필요 없이 내가 부족한 점은 부족한 점대로 드러내고 배울 건 배우고 기여할 수 있는 건 기여하며 일하고 이 안에 녹아들다 보면 한국에서 온 내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직원으로 나를 스스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동안 더 빨리 늘지 않는 내 덴마크어를 두고 스스로 조급해하는 마음이 계속 있었는데, 6개월 사이에 많은 발전이 있었으니 앞으로 일년 후엔 크게 바뀌어 있지는 않으려나 하는 희망을 혼자 품어본다.

28개월 하나

특별히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좋은 게 아니면 하나는 밖에서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우리를 평균보다 힘들게 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친구를 만나러 나간 자리에 각자 애들을 데리고 왔는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카페라서 그런지 중간중간 나에게 와서 말을 걸긴 했어도 크게 힘들게 하지 않았다. 아빠랑 주말마다 가는 카페에서도 비슷하게 코너에 아이들 노는 코너가 있어서 그런지 왔다갔다는 해도 같이 먹기에 너무 힘든 아이는 아니다.

언젠가부터 기다린다, 순서를 지킨다는 컨셉을 이해하기 시작해서, “우리 이제 기다리는 거예요.”라고 이야기해주면 “Hannah venter! (하나는 기다려요)”를 조잘거린다. 수퍼마켓에서 자기 먹고 싶은 거 사달라고 해서 집어들고 계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 그때도 “Vi skal betale først! (우리 계산부터 해야해요)”를 외치며 기다린다. 계산대에서 계산이 끝나기가 무섭게 달라고 채근을 하기 시작하지만. 또 호기심 가는 물건을 만져보다가도 “그거 우리 것 아니예요.”라고 말하면 “Det er ikke vores! (그거 우리 것 아니예요)”라며 내려놓을 줄 안다.

간식은 중간에 주더라도 식사는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에만 하고, 안먹겠다 하면 안먹어도 된다 하고 중간에 끝났으면 식탁을 떠나도 좋다고 한다. 굳이 먹이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간혹 안먹는다 하면 한입정도 먹어보겠냐고 물어보는데 서서 한 입 먹어보고 나면 오래지 않아 우리가 앉은 자리에 와서 같이 먹으니 딱히 식사시간에 자리에 앉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굳이 와서 한 두입만 먹고 일어나는 걸로는 뭐라 하지 않는다. 처음엔 음식 남기는 거라든가 애써 만들었는데 안먹는 거라든가 하는 게 마음에 불편하고 스트레스가 되었는데,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나중에 배고프다고 따로 차려주고 하는 건 없으니 내가 더 육체적으로 힘들 건 없으니까. 안먹는 건 배가 안고파서 그러는 걸 것이라 생각하고 넘기고 나니 마음도 편해졌다. 애가 딱히 작은 것도 아니고, 보육원에서 애들하고 같이 먹으면 잘 먹는다니까 어느 때엔가는 잘 먹게 되겠지. 나도 만으로 9살까지는 진짜 잘 안먹어 작고 빼빼 마른 아이었으니까.

놀 때 순서지켜 놀라고 옆에서 상기시켜주면 순서 잘 지켜 놀고, 우리 것이 아니다 하면 금방 내려놓고, 우는 친구 있으면 안아줄 줄 알고, 인사하고 자리 뜨자 하면 씩씩하게 인사 잘 하고.

간혹 자기가 혼자 하려는 걸 우리가 도와주는 바람에 뒤로 넘어가 울고 난리법석을 떠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도 대부분 그 포인트를 아니까 그렇게 난리법석을 떠는 일도 많이 줄었다. 이제 말로 많은 걸 표현할 줄 알고.

넘어지고 해도 잘 안우는 편이고. 높은 데 기어올라가고 뛰어내리고 스릴 넘치는 일들을 엄청 좋아한다. 조심도 하지만 조심보다는 스릴에 무게가 더 실린 듯 하다. 이처럼 힘이 넘쳐 우리가 옆에서 그런 활동을 지지해주다보면 육체적으로는 힘들다. 하지만 주변 이야기 들어보면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다. 예민하지 않은 아이다.

기질 탓이 가장 크겠지만 보육원이나 집에서 많지 않은 대원칙만 지키면 대부분은 자유롭게 놔두는 편이라 자기도 그 규칙을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다른 애들 사이에서 같이 놀아야하는 환경에 두었을 때 노는 걸 보면 잘 아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 행동하는게 제법 다르다. 아예 공공장소에서 다른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없이 놀면 그건 다른데 내가 만난 친구의 애들과 같이 논다던가 하면 조금 조용하게 관찰을 많이 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편이다. 곧잘 놀기도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조잘조잘하는 게 없어진다.

이제 만 28개월을 채웠는데 정말 많이 컸구나 싶다. 이제는 작은 인간이 되어서 부모와 여러 형태로 상호작용도 하고 대화도 제법 하고. 말이 많이 느니까 이렇게 수월해질 수가 없다. 이젠 예전에 아주 힘들었던 기억은 힘들었던 사실만 기억나지 별로 생각나지도 않는다. 우리야 둘은 안낳을 거지만 이래서 둘 낳는구나 싶기도 하고. 젊었다면, 내가 다른 나라에 이주해 새 커리어를 시작한 것만 아니었다면 애 하나 더 낳았을 수도 있겠지만, 이도 저도 아니니 말이다.

시부모님도 나이가 많이 들어가시고 멀리 사시는데다가 우리 부모님은 이역만리 떨어져 계시니 더욱이 기댈 데도 마땅하지 않고. 출산부터 지금까지 급하게 애가 아픈데 휴가를 내기 어려워 하루 이틀씩 시부모님 손을 벌린 거 아니면 우리끼리 다 해야만 했기에 하나 더는 못하겠다. 애야 우리 애지 시부모님이나 부모님 애들이 아니니 못맡아주신다고 서운할 일도 아니고. 출산 이후 애 맡기고 옌스랑 단 둘이 밖에서 저녁식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도 그립고. 하나 더 생기면 그런 게 더 어려워질텐데… 하나로 부모가 되는 기쁨을 충분히 누리고 있으니 이를 두배로 굳이 늘리며 고난도 두배로 늘릴 생각은 잘 안드는 게 아마 나이 탓일 거라 괜한 나이 핑계를 대본다.

앞으로 하나랑 같이 해나갈 여러가지 일이나 기대해보며 한 명만 잘 키워보련다.

어른에게도 엄청 높은 미끄럼틀을 겁없이 타는 하나
뒤에 자기 키의 두배가 되는 장에 (기어 올라가도록 설계) 기어 올라가 뛰어내리기를 다섯번도 넘게 반복했다. 잡아주고 뛰어내리기 도와주느라 나도 힘이 들더라.
그네도 요상하게 타야하고. 재미있게 노는 법은 역시 애들이 잘 안다니까.

덴마크 직장생활의 중요한 일부 – 금요일 아침식사

매주 금요일이면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30분 아침식사를 함께 하고 나머지 30분엔 회의할 게 있으면 하고, 아니면 해산한다. 직원들 수가 늘어나면서 20명에 다다르니 준비할 것의 무게도 너무 늘어나서 두명이 같이 준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식사로 먹을 빵으로는 큰 덩어리의 빵이나 일인용 분량의 작은 덩어리빵을 섞어서든 큰 덩어리 빵만이나 작은 덩어리 빵만으로 양을 맞춰서 준비한다. 또 그 후에 후식으로 먹을만한 wienerbrød (영어로는 Danish pastry이나 사실 오스트리아에서 이민온 제빵사가 만든데에서 기인한 탓에 비너브횔이라고 한다)을 준비한다.

이와 함께 빵 위에 발라먹을 버터와 얹어먹을 치즈, 잼, 햄, 폴랙(pålæg) 초콜렛(빵에 얹어먹도록 나온 얇은 판형의 초콜렛. 스프레드 대신 빵에 바로 얹어먹는다.)를 준비한다. 우리 센터 직원들의 취향을 반영해 버터는 락토스 없는 것도 하나 준비해가고 잼은 최소 두가지 종류로, 햄은 파마햄 종류, 치즈는 아주 전형적인 mellemlagret danbo와 함께 크리미한 브리타입의 치즈를 준비한다. 폴랙 초콜렛은 다크가 중요하다. 과일을 함께 준비하기도 하는데 요즘은 딸기 철이라 딸기를 가져가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

음료수로는 주스 세병을 준비하는데 오렌지, 사과에 다른 주스 한종류 섞어가는 게 보통이다.

두명으로 분량을 나눈 이후 한 명은 빵, 한명은 기타 같은 식으로 나누기로 했는데 나는 집 근처에서 회사가는 방향에 빵집을 찾기가 애매해서 항상 그 나머지를 사는 것으로 한다. 원래 다음달 생일 전날 아침식사 담당이었는데 동료가 이번주 아침식사 담당일에 휴가를 쓰려고 한다며 바꿔줄 수 없냐고 물었다. 마침 생일날 케이크도 사야하는데 아침식사도 준비해오려면 참 뭐가 많겠다 싶었기에 흔쾌히 승락했다.

저녁에 잦은 회식이 없고 점심시간도 자리 떴다 돌아오기까지 30분에 불과한 탓에 생일자가 가져오는 케이크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30분, 이렇게 회의를 겸한 금요일 아침식사 30분이 직원간 네트워킹에 중요하다. 각자 뭐하는지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디어도 주고받고, 또 사생활에 대해서도 담소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이해도 높이고 말이다.

내일 저녁엔 빨래를 하고 (공동빨래 공간 금요일 오후 예약이 내가 예약하기 전에 차버려서 할 수 없이 내일 예약했다.) 하나도 재워야 해서 (옌스와 매일 번갈아가며 애를 재운다.) 장을 보러 가기 어려울 것 같아 오늘 미리 금요일 아침식사 장을 봤는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덴마크 직장생활 만 4개월 평가

요즘 언론에 초점을 받는 업체들이 조금 있는데, 그와 관련해서 우리도 영향이 있을 거 같아서 주시하다가 사안을 조금 깊게 파고 들어봤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경영진의 관심이 쏠린 사안이라 급히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급히 작업을 해서 보고서를 만든 후에 경영진에 자료를 송부했다. 자료를 미리 보내둬야 주말에 경영진들도 자료를 읽고 월요일에 회의를 할 수 있으니까. 금요일은 그덕에 점심도 스킵하며 일하고 서둘러 퇴근했는데, 오늘 회의도 열두시 반에 잡힌 탓에 한시 반이 넘어 간신히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일이 커져서 그 일을 내가 본격적으로 담당하게 되었는데 재미있을 것 같다.

지난 4개월 조금 넘은 기간 동안 느낀 걸 몇 개 뽑아보니 참 신선하면서도 은근히 금방 익숙해지는 것 같다.

첫째로 보고서에 대해서 절대 막 수정하지 않는다. 보고서를 검토, 수정해서 나에게 보고서가 돌아올 때도, 그 분량이 많지 않고, 내용이 내가 의도하던 내용에 부합하는지 등을 확인하고 수정이 괜찮은지 봐달라고 표현하는 게 참 신선했다. 내가 외국인이니 나는 문법 틀린 거는 매우 환영하며 고쳐달라고 하는데, 그게 혹시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는지를 확인하는 것부터 좋은 의미로 얼마나 이상하던지.

그리고 잘 한 부분은 정말 열심히 칭찬해준다. 덴마크도 겸양을 중시하는 터라 칭찬에 반응하는 방법이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은데, 칭찬은 적극적으로 하는 편인 것 같다. 우리 센터장이 특별히 그런 타입인 것 같긴 한데.

직군별 이동이 없다. 행정직은 행정업무만 한다. 행정직이 오래 근무를 했다 해서 전문직군 업무를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이코노미스트 (økonom) 포지션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해당 학위가 있어야만 한다. 이를 대체할만한 이력이 있으면 모를까 짧은 행정 관련 직무교육을 받고 비서로 계속 일한 사람은 같은 직장에 계속 있었다고 해서 이코노미스트 포지션에 앉을 수 없다.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파는 것 뿐. 부서를 바꿀 수는 있어도 크게 자기가 속한 커리어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공공부문이 이런 건 더욱 강한 것 같다. 민간이야 사실 그런 업무를 할 수 있기만 하면 교육 백그라운드가 중요한 건 아니고, 경력이 길 수록 교육의 의미야 흐려지기도 하니까.

회식은 진짜 없다. 다 각자 바쁘니까. 나도 바빠서 참여하기도 어려우니. 대신 1년에 한번 센터데이를 한단다. 업무시간 중 프로그램은 철저히 업무와 관련해서 짜더라. 우리 같은 경우 우리가 관리하는 하수처리 업체 중 하나를 방문해서 하수처리 프로세스도 보고 설명도 듣고, 예산 관련 애로사항도 청취하는 걸로 짰는데, 대신 저녁에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는 걸로 했다. 음… 기대기대. 놀라운 건 이 모든 어레인지를 센터장이 했다는 것. 이게 가장 센터데이에서 가장 놀라운 파트였다. 일정은 두달 전에 이미 전체 직원에게 일정을 물어봐서 조율한 거였다.

행정 업무가 일에서 빠져 있으니까 일에 대한 집중도가 얼마나 올라가는 지 모른다. 자기가 어떤 일을 맡을 줄 알고 지원해서 채용된 포지션에서 다른 이상한 잡무 안하고 관련된 일을 중심으로 담당하면 당연히 집중도가 올라갈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가지수가 늘어나면 날 수록 데드라인 점검하는 것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니.

직장생활에서 친구 사귀는 건 힘든 일인 건 맞는 거 같다. 내가 내 생활에 여유를 내줄 수 없는 것처럼 타인도 자기 생활의 여유를 내주기 힘들고 그나마 그걸 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은 또 아침에 회사 헬스장에서 만나서 같이 운동하거나 같이 러닝클럽에서 뛰는 식으로 내가 맞추기 어려운 활동을 하더라.

금요일마다 직원들이 돌아가며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대충 사가는 품목은 큰 틀에서 정해져있지만 자세한 건 자기가 정하면 된다. 인원이 늘어나서 올 3월부터 2인이 분담해 해당 주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주스, 잼, 치즈, 버터, 햄, 과일, 빵, 패스츄리 등을 준비하면 된다. 은근 무겁다. 그래도 이렇게 금요일 아침에 30분 식사를 함께하며 담소를 나누고 센터회의를 뒤이어 하면 서로 공유할 정보도 나누고 친교도 나누고 좋다. 회식이 어려운 덴마크인에겐 회식같은 요소이다. 물론 점심도 있지만 점심보다는 회의실에 앉아서 하는 식사라 좀 더 친목요소가 더 있는 느낌?

4개월이니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지난 기간에 대한 평가는 대만족이다. 오히려 너무 대만족이라 두려운 듯. 상사가 갑자기 바뀐다면 어떨까 등등 이런 생각 말이다. 우리 팀장은 여자인데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유형의 여자 상사로 카리스마, 부드러움, 유머, 강단을 잘 버무린 사람 같다. 쓸데 없는 생각말고 일이나 해야지. 새로운 프로젝트가 하나 떨어졌는데 사안을 과거사부터 깊게 파봐야 하는 일이라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분석리포트도 재미있지만 두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것도 하나가 안풀릴 때 다른 걸 하는 식으로 돌릴 수 있어서 더 좋을 것 같다.

살면서 하는 원치않는 환경개선 공사… 불만 폭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해서 꽤나 많이 참았는데 결국 오늘은 폭발하고 말았다. 사건의 발달은 아파트 환경개선 공사. 50-60년대경에 지어진 아파트인데, 외벽쪽에 곰팡이가 피는 집들이 있어서 심하게 핀 집들을 중심으로 건물주에게 해당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안건이 있었다. 같은 건물임에도 집집이 다른 건 환기의 정도가 차이나기 때문인 듯 하다. 우리는 옌스가 환기를 엄청 강조하고 나도 집에서 음식 냄새 나는 걸 그닥 안좋아해서 겨울에도 환기를 꾸준히 하고 봄, 여름, 가을에는 창문을 어딘가는 항상 조금이나마 열고 살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겨울에 밤새 자면서 창틀에 서린 습을 제거해야 하는 정도? 아무튼 그 안건이 급격히 진전되어 전 아파트에 환기시설을 새로이 설치해서 그를 통해 한시간에 십분 정도씩 강제로 환기를 시키는 방법이 채택되었다. 막상 곰팡이가 핀 집들도 그런 대규모 공사를 원한 건 아니고 곰팡이 제거만을 원한거였는데, 각각의 가정집마다 4주를 할애하는 대공사로 일이 커졌다.

우리 집은 북쪽 벽만 벽지가 살짝 떴는데, 그 안에 곰팡이가 피었을 수 있다며 한쪽 벽을 긁어내고 약품처리를 한 후 다시 벽지를 바르고 페인트칠을 한다고 한다. 심한 집은 짐을 다 빼고 호텔생활 하면서 지내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벽 긁어내는 공사는 한 방만 영향을 받은 터라 그냥 이 집에서 지내면서 공사를 견뎌내야 한다는 거였다. 프로젝트가 발표되고 공사가 시작되기 석달간 생각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는데, 퇴근해서 애 픽업하기 전에 서둘러 인부들이 다닌 곳을 진공청소기로 청소하고 물걸레질을 하고, 애 픽업해서 저녁 먹이고 재우고 하면 정말 진이 다 빠지는 거였다. 이 원치않는 공사가 끝나면 환경개선을 위한 공사인 바, 공사비용을 프로젝트 내용연수에 맞춰서 기간배분해 월세도 올려내야 해서 시작부터 짜증이 많이 나있는 상태였다. 4주 동안 다른 종류의 인부들이 와서 각자의 종목에 맞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고로 언제 어떤 인부가 다녀갈지 알 수 없는터라 열쇠를 프로젝트 담당사에 넘기는 것도 너무나 마음에 안들었다. 은퇴한 사람이나 실업자는 집에 있으면서 필요한 때 문을 열어주면 된다지만 일을 하는 사람이 그럴 수 없으니. 회사 직원들은 그냥 열쇠 넘겨주면 된다고, 도난 되는 거 있으면 보험으로 보상받으면 된다는 식이었는데, 사실 이렇게 열쇠 넘겨준 건 보험으로 보상 안된다고 한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인데다가, 해당 프로젝트 운영사에서 열쇠 관리를 철저히 한다면서 열쇠를 넘기라고 하고, 그게 안되면 집에 있으라는데… 신뢰는 하나도 없지만 어쩔 수 없으니 열쇠를 넘겼다.

가장 스트레스인 건 정보가 너무 없었다. 무슨 프로젝트를 어떤 순서로 진행하는지, 물건을 얼마만큼 비닐 등으로 커버해야하는지, 먼지가 얼마나 날리는 것인지, 누가 어디로 드나드는지 등 너무 정보가 없었다. 프로젝트에 대해서 아파트 위원회 임원인 옌스가 나보다는 잘 알겠지, 또 내가 너무 나대면 그렇겠지 싶어서 괜히 옌스 옆구리만 찔러대며 상황을 파악해보라는데, 너무 젠틀한 커뮤니케이션만 하는 것 같았다. 아파트 임대주를 대신해 관리하는 회사 프로젝트 책임자와 옌스가 프로젝트 시작일 전날 아침 이야기를 한 후 어느 날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어느날 어디 벽에 구멍을 낼 거니까 그때까지 어떤 준비를 하라고 들었다며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에 내가 퇴근하고 났더니 문 옆에 위아래 층을 관통하는 큰 관이 지나갈 천장과 바닥에 큰 구멍을 뚫은 것이었다. 아직 우리는 준비도 다 안되서 비닐도 안씌워놨는데. 집에 혼자 돌아와 궁시렁궁시렁 짜증을 바가지로 내며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과 표면 걸레질을 다 하고 옌스에게 볼맨 소리를 했다. 그 날 저녁 옌스가 그 이상의 공사는 이번주에 없을 거라고 했는데, 내 예감이 그렇지 않았다. 옆 라인 집에 잠깐 가서 보고 들은 바로는 그 다음 공정이 부엌과 목욕탕 사이 구멍 뚫는 거라고 했었는데… 예감이 안좋아서 해당 위치에 있는 부엌 찬장 위 물건을 다 치웠다. 역시나 다음날 돌아오니 집은 먼지 구덩이에 예상한 위치에 구멍이 떡하니… 옌스가 비닐도 우선 중요한 걸 중심으로 쳐둬서 전날보다는 양호했지만 그래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냥 궁시렁대고 옌스에게 짜증 좀 내고 참았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참기 어려웠던 게 전혀 통보된 바 없는 출입금지 팻말이 침실에 붙어있는 거였다. 우리 방에 외벽을 중심으로 1.5미터만 공간을 내달라 해서 침대도 다 분해해 접어두고 최대한 정리를 해뒀지만 우리가 출근준비할 때 필요한 물건은 다 방에 있는데.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하나를 픽업해야 하는 시간은 네시 반. 이미 시간은 십분밖에 안남았는데 폭발하고야 말았다. 그 방에 지난 주부터 시작한 발레에 가기 위한 물품이 다 들어있었는데, 오늘 고대하던 발레에 가는 두번째 날이었는데, 그것때문에 장까지 다 봐서 서둘러 돌아왔는데!!! 내가 여지껏 좋게 좋게 참고 있었는데 도저히 이건 참을 수 없다 싶어 옌스에게 내가 직접 전화하겠다고 하고 연락했다. 첫째로 공사한 업체에 연락해보니 내일까지 들어가면 안된단다. 아니 1.5미터 비우라고 들어서 그거 비워줬더니 이건 뭐냐 하니까 그건 관리업체랑 이야기하란다. 그런 정보 전달은 그 업체에서 맡은 일이란다. 둘째로 관리업체랑 이야기해서는 소리만 안질렀다 뿐이지 다다다다 쏘아붙였다. 우리에게 안내한 거랑 공사기간이 달라지는 거, 약속한 것과 계속 달리 공사를 진행해 원치않는 공사를 하며 월세도 올려내야 하는 우리에게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하는 건 도대체 뭐하자는 거냐며.

상대가 갑자기 쩔쩔매며 자기도 그런 상황인 줄은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하길래 나도 목소리 높여 이야기 한 점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 다는 알 수 없어도 방에 못들어 가는 상황 처럼 큰 변동이 있는 건 전날 미리 알려줘야 하는 거고, 그정도의 최소한의 정보라도 줘야 한다고 하고 몇가지 물어보고 통화를 끝냈다. 그러다보니 하나를 보육원 문닫기 5분 전에 픽업할 수 있었다. 아이고 미안해라…

이 공사는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건지… 원래 3주 걸린다는 공사가 4주 걸리는 걸로 늘어났는데, 4주면 끝나긴 하는건지, 4주 걸리면 비용이 늘어서 월세 인상폭도 늘어날 텐데 도대체 이건 뭔지. 제발 좀 빨리 끝나서 일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덕에 그간 버릴까 말까 고민하던 물건들은 확 버리는 계기는 되었지만…

운동 다시 시작 – 자전거와 발레

살이 제법 쪘다. 작년 가을 한국에 갔을 때만 해도 조금 찌려나 했는데 그 이후로 조금씩 꾸준히 살이 붙더니 도합 6킬로가 늘었다. 회사다닌다면서 운동에서 멀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대학원 다닐때만해도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저녁에 운동도 간간히 했는데 겨울 들어가면서 자전거를 타지 않고 통근거리가 길어져서 날씨가 자전거 타기에 적합해져서도 자전거를 타지 않은게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거기다가 떨어진 의욕을 탓하며 운동을 하지 않은 것도 큰 원인이고. 회사 식당에서 주는 밥 싸고 맛있다며 열심히 먹은 것도 뺼 수 없을 것이고 하나 밥 먹인다고 매일 밥을 하면서 남기지 않겠다고 줏어먹은 것도 빼먹을 수 없다.

한국에서 가져 온 접이식 작은 자전거와 중고로 여기에서 산 자전거 두개를 갖고 있다. 인구보다 많은 자전거로 유명한 나라이니 나도 여기서 살면 자전거 두대는 기본이지! 뭐 그런 이유는 아니다. 접이식 자전거는 바퀴가 너무 작아서 같은 거리를 뛸 때 기어를 21단으로 최대로 올려도 페달링을 너무 많이 해야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통근용으로는 무리였다. 장점은 작은 크기만큼 무게도 적게 나간다는 점. 10킬로가 조금 넘었던 것 같다. 다른 자전거는 중고로 800크로나 주고 사서 800크로나 들여 정비해 타고 중간에 또 정비하고 갈 거 간다고 800크로나 정도 들인 자전거다. 킬러모스(kildemoes)라고 여기 자전거 브랜드로 새거 주고 사려면 5000크로나 정도 드는 자전거니 딱히 비싸게 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 무겁다. 20킬로에 달한다. 기어가 내장기어라 비오거나 눈이올 때 부식에서는 조금 강한데 그런 날씨에 잘 타지 않는 나에겐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다. 오히려 내장기어라서 더 무거울 뿐이다.

무거운 자전거로 투덜거릴 때마다 옌스는 하나 새로 사도 좋은데, 내부에 제대로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때만 새로 사라고 했다. 사실 옌스도 밖에 주차해야 하는 경우 자전거를 절대 안타고 나간다. 비싼 자전거 도난당할까봐. 여기는 자전거 도난이 워낙 흔해서 그 점 주의해야한다. 그런데 대학원엔 그렇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어서 포기했었고, 또 그렇게 그냥 통근하는 거에 익숙해지고 나니 그 무거운 자전거로 매일 편도 25분짜리 길을 떄로는 왕복으로 때로는 편도로 타고 다녔다. 그런데 회사까지는 편도로 10분 이상 거리가 더 추가되는데다가 다소 높은 언덕길이 두번 추가가 되서 한번 통근 해보고는 너무 힘들어서 뻗었다. 이건 아니다 싶더라.

생각해보니 회사에는 자전거 주차 공간이 직원 주차공간 안에 별도로 구비되어 있다. 직원 신분증을 찍고 들어와야 하는 공간이니 안전하다. 요즘 살이 쪄서 운동 겸 자전거를 타려고 하니 자전거를 사야겠다 하니 옌스가 반색을 하며 훈수를 둔다. 1-2킬로가 크게 차이를 주고 자전거 프레임 구조도 큰 의미를 갖는다며 추천 브렌드를 내민다. 그래서 사기로 한 건 trek 자전거. 가까운 곳에 매장이 있어서 가서 한번 타봤는데 자전거 처음 페달질할 때 느낌이 완전 다르더라. 10.5킬로라는데 내 작은 자전거랑 비슷한 무게에 큰 사이즈인 거니까 색다르더라. 12킬로짜리는 내 키에 맞는 미디움 프레임이 있었는데, 내가 사고싶은 모델은 큰 프레임만 있어서 대충 느낌만 봤고, 다음주에 자전거가 매장에 들어오면 테스트 해보고 사는 것으로 했다. 8500크로나니까 조금 비싸긴 한데 한달에 통근 기차권이 600크로나가 넘는 걸 생각하면 1년여에 원가를 뽑는거고 운동도 겸하는 거니까 크게 비싼 건 아니다. 여름엔 조금 더워서 땀도 나겠지만 출근해서 살짝 샤워를 하고 일을 하면 되니까 땀나는 거에 대한 부담도 없고.

거기에 발레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옌스네 카약클럽 근처에 성인 초중급반 발레반이 있는데 7시 45분부터 시작한다. 버스를 타면 30분 걸리는데다가 30분에 한번 오는 버스라 타이밍 맞추기도 어렵고 옷 갈아입고 뭐 하고 하려면 너무 일찍부터 집을 떠야 하는데, 차가 생겼으니 가는게 너무 힘들 지 않다. 그래서 옌스에게 발레 수업 나가도 괜찮은지 양해를 구했는데 역시나 흔쾌히 지지해줬다. 자기도 저글링한다고 화요일마다 나갔었으니 말이다. 요즘은 팔꿈치 부상으로 조금 쉬긴 해도 다 나으면 다시 나갈 것이기도 하고.

내 몸이 싫어진 순간이 와서 이젠 다시 움직여야 한다. 내 몸이 싫어지면 다시 좋아지도록 해야지. 건강도 다시 찾고. 발목도 많이 좋아졌으니 재활도 해야하고. 여러모로 타이밍이 좋은 거 같다. 다시 강인한 몸으로 돌아가야지.

오늘의 에피소드 – 하나와 옌스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아침부터 회의준비를 하느라 바쁜데 옌스에게 문자가 왔다. 하나 보육원에서 픽업해서 집에 같이 있다고. 하나가 보육원 모래밭에서 나오면서 모래밭 담장을 넘다가 고꾸라져서 입술이 찢어졌단다. 보육원에서는 우선 상황이 생기자마자 피가 많이 나서 옌스에게 전화를 했고, 옌스가 서둘러 미팅 몇개만 캔슬하고 돌아와서 보육원에 갔다 한다. 컴퓨터는 켜지도 못했으니 하나 드롭하고 자전거 꺼내타고 회사에 가는데 15분에서 20분 걸리니, 그 사이에 생긴 일이였나보다. 대충 일이 벌어지고 20분정도만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피는 대충 멎어있었단다. 입에는 오렌지맛 아이스바를 물고서. 애를 놀래지 않게 지혈하고 통증도 경감시킬 요량으로 아이스바를 물렸다는데, 나쁘지 않은 방법인 거 같다. 우선 집에 데리고 와서 상처를 깨끗이 씻고 의사이자 세아이의 엄마인 시누이에게 페이스타임을 해보려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았단다. 그래서 치과의사셨던 시부모님도 입주변 상처에 대해서 대충 답변을 주실 거 같아 페이스타임을 해보니, 입술은 그정도 상처에 봉합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 같고 애도 전혀 이에 대한 통증을 호소하지 않으니 혹시 양치질할 때 잇몸에 부푸는 물집이 잡히는지, 치아 색깔이 변하는지 정도만 관찰하라고 하셨다. 소독약으로 소독 해주고 대충 보아하니 입술이 찢어지긴 했지만 입술 선 밖으로는 괜찮았다. 나는 다 씻기고 난 뒤를 봤으니 그런데, 옌스는 피떡이 앉은 얼굴을 봤었을터라 놀랐을 거 같다.

나도 미팅 내 발표순서를 바꿔서 내 발표를 맨 앞으로 돌리고 자리를 일찍 떴다. 옌스가 집에서 일을 할 동안 나는 하나를 데리고 밖에 유모차에 눕혀 낮잠을 재웠다. 애가 집에서는 침대에서 밤에만 자는 관계로 낮잠은 반드시 유모차에서 재우는데, 옌스가 일을 해야해서 두시반이 되도록 낮잠을 안자고 버텼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하나가 평소보다 길게 거의 두시간이 되도록 낮잠을 자고 수퍼마켓에 갔다. 가서 보육원 애들을 만나 부모들와 애들이랑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하나 반에 있는 루너라는 아이는 하나랑 비슷한 곳에 상처가 났더라. 다른 형태로 낙상사고가 있었다는데, 하루 차이로 비슷한 곳에 상처가 나다니. 우연도 참. 회사에서 애 얼굴에 상처나서 옌스랑 일 교대해주러 좀 가봐야 한다니 상사나 선임 모두 자기네 애들 경험담을 알려주면서 애들 사고는 너무 자주 일어나니 그 마음 잘 안다고 위로를 해주더라.

그런데 수퍼에서 또 만난 한 여자애를 빤히 보더니 쟤는 사라예요. 하고 이야기하는거 아닌가. 내가 모르는 보육원 친구인가 해서 걔 이름이 사라냐고 그 애 아빠에게 물어보니, 맞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 보육원 이름을 얘기하며 걔도 거기 보내냐 물어보니 아니라는 거다. 걔는 우리 하나를 모르는 듯 했다. 어떻게 알지? 싶었는데, 이 동네 살아서 여기 놀이터에서 만났나? 라는 거다. 음… 하나가 애들 이름 외우고 물건 주인 외우는 거 좋아해서 유아원으로 올라간 첫날 애들 이름을 다 외웠다며 놀랬다고 하긴 했는데 이렇게 랜덤하게도 기억할 수도 있는가 하며 팔불출 엄마처럼 놀라워했다. 마침 그 수퍼에서 하나 보육원 미술선생님도 만났는데, 하나 넘어졌을 때 바로 옆에 있었다며 하루종일 하나 괜찮았을 지 걱정했다고, 여기서 만나서 괜찮다고 듣고 나니 안심이 된다고 고맙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오히려 아이스크림도 물려주고 얼른 옌스에게 전화해주고 하루종일 신경도 쓰셨다고 해주시는게 내가 고마웠는데… 사실 내가 애를 봐도 있을 수 있는 사고인지라 보육원 탓을 할 일은 아니니 말이다.

내가 머리 빗어주고 묶어주고 나면 내 머리도 빗어주겠다, 묶어주겠다 나서고, 뭐 내가 하나만 하면 자기도 혼자 하겠다고 “Jeg skal selv prøve!” (내가 직접 해볼거예요.) 하고 말하며 나서는 것도 다 대견하고 예쁘다. 나나 옌스가 침대 옆에서 책 읽어주고 잠을 재우는데, 자기가 자기 인형 재워주겠다고 침대 옆에 앉아서 책을 집어 드는 것이 웃기고 엄마나 아빠가 낮잠을 자면 자기가 아끼는 인형과 이불을 갖고 와서 우리 위에 올려두는 것도 웃기다. 자기가 그들이 필요하듯 우리도 그들이 필요할 거라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다.

덴마크어는 말하기도 잘 하고 한국어는 듣기 중심으로만 잘하지만, 하나가 문장을 만들어 말할 때 부정어와 목적어 위치가 간혹 잘못되는 걸 보고 내가 발견한 건 한국어가 덴마크어에 영향을 주는 부분도 있다는 거다. 간식으로 싸주는 딸기 먹은 이야기를 할 때 Jeg jordbær spiste. 라며 나는 딸기 먹었다를 직역해서 말한다든지 Jeg ikke spiser 라면서 나는 안먹을거다라고 이야기하든지 말이다. 처음엔 그냥 실수라고 생각했는데, 자주 말해서 생각이 필요없는 문장은 실수를 안하고 자기가 생각해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만들 때 이런 실수를 하더라. 요즘에서야 한국어 단어도 책읽으면서 같이 한국어로 따라하며 열심히 익히지 그 전엔 내가 한국어로 읽어주면 덴마크어로 같은 이야기를 따라하곤 했다. 주언어 위에 다른 이중언어를 쌓으면 된다고 하니 그냥 별 부담없이 언어교육을 시키고 있는데 하나는 잘 할 거 같다. 요즘 과거형도 슬슬 익히기 시작하는 거 같아서 애들의 언어 발달의 신묘함에 놀래고 있다.

오늘은 이 밖에 옌스가 연출한 아주 웃기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하나랑 방에서 놀고 있는데 옌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보고 화장실로 와보라는 거다. 되게 민망하면서도 웃긴 표정을 지어서 변기가 막힌 건 아닌거 같고 뭐지? 싶어서 봤더니 변기 위 플라스틱 변좌가 깨진거다. 헐. 어쩌면 그런 일이!! 자기 엉덩이가 큰 건 알았지만 이렇게 무거웠냐면서 웃어대는데. 옌스가 예전에 날렵한 경주용 카약에 자기 엉덩이가 꽉 껴서 힘들었다고 하며 자기 엉덩이 안큰데…라길래 나보다 당신 엉덩이가 크다고 해준 적이 있었다. 키가 커서 상대적으로 작은 거 뿐이지 우리가 옆으로 누워있으면 내 골반 높이보다 당신 골반 높이가 더 높다고, 그리고 엉덩이도 그렇게 살이 없는 건 아니다 라고 해줬었는데. 흠흠. 내가 자주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거라고 말도 안되게 장난으로 우기길래, 나는 변비가 잦은 사람이라 오래는 앉아있어도 자주는 안앉아있는다, 자주 앉는 건 당신이라고 해줬다. 남의 집에서 그렇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지… 그런데 변좌는 어떻게 바꾸지? 나사를 어떻게 푸는걸까? 유튜브를 연구해봐야겠네…

다르긴 하지만 여기도 이상향의 천국은 아니다.

내일은 임원진 회의에 처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실제 데이터를 갖고 모델을 테스트해 본 결과를 보고하는 거라 내용면에서는 긴장할 것이 없긴 하지만 인사해본 적 없는 비담당 임원들도 동석하는 자리에서 발표를 하는 건 어떨런지 모르겠다.

아직도 상사와 임원을 이름으로 부르는 게 익숙하지 않다. 상사나 선임과 이야기하다가 부청장과 청장 (둘다 공교롭게 야콥이다.) 을 칭할 때 야콥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야콥이 이렇게 지시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참 불편하다. 뭐랄까… 미스터 할, 미스터 샴부엌 이런식으로 이야기하면 편할 것 같은데 말이다.

대화 중간중간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 지난 주 전화로 다른 청 사람과 오랜 시간 통화했을 때 그 사람은 중간중간 내 이름을 불러가며 대화를 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좋은 생각이다, 해인.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해인. 나도 네 생각해 동의한다, 해인. 그래서 그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 해인. 이처럼 중간중간 이름을 부르니까 나도 애써 마티아스라는 이름을 애써 껴 봤다. 그렇게 하다보면 좀 더 친밀해지는 거 같긴 한데 (앞으로 협업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라 그래서 나쁠 건 없다.) 그러기까지는 입에 붙이려고 노력 많이 해야할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여기도 직장에 이상한 사람 있고, 그래서 갈등도 다 있게 마련이다. 커리어 컬럼에 “상사가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일 경우 어떻게 해야할까?”, “상사로 인한 스트레스로 직장에 가기 힘들 때 어떻게 해야하나?” 이런 것들이 실리는 게 흔한 일이니 말이다. 물론 그럴 경우 직장에서 문제시 되는 경우가 많아서 한국에서보다 그런 사람을 마주할 확률은 낮지만, 없지는 않다. 옌스는 우리 회사 분위기가 특별하다고 한다. 공공부문인데다가 정치적으로 독립성이 커서 장관이 좌지우지하기 어려운 기관에 전문성이 큰 기관이라 그런 거 같다고 한다. 그 점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사람 사는 곳 다를 것 없다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났는데, 덴마크의 평등에 대해 과하게 왜곡된 정보가 한국에 떠돌고 있는 것 같다. 급여 부분에서 청소부를 하든 의사를 하든 급여가 별 차이가 없다든가 하는 정보 말이다. 그럴리가. 여기가 사회주의라는 건 공산주의라는 게 아니다. 나라에서 많은 부분의 복지를 민간에 맡기지 않고 공공에서 책임지고 떠맡는다는 것이고 그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걷는다는 것 뿐이지, 경제가 돌아가는 기본 방식은 자본주의다. 신체노동을 수반하는 직업이나 사무직이나 기본적으로 최저 세전 임금수준이 높고, 직업이 없는 사람을 받쳐주는 사회안전망 덕에 빈곤선에 있는 사람이 적다는 거지 그 사람들이 어떤 조직의 위에 앉아 많은 사람들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장기간의 교육이 필요한 전문직만큼 월소득이 높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의 경우 직업전선에 일찍 뛰어들어서 생애 소득 기간이 길어지니까 생애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고연봉자와 소득 차이가 더 줄어들 것이다.

시청청소부가 의사와 결혼을 한다던데 청소부 세후 소득이 월 기준 35000크로나(원화 600만원) 쯤 되고 의사는 별로 안번다 이런 글이 돈다고 이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글이 한인회에 올라왔다. 나도 블로그 여기저기에서 본 글이었다. 개인의 세율은 개개인별로 차이가 많이 나서 별로 안내는 사람도 있지만, 세후 소득이 35000크로나쯤 되려면 노동시장분담금, 개인소득세 해서 거의 50%에 가까운 세금을 내야한다. 주변에 물어보니 가족들을 포함에 직원들도 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 한다. 우리 청도 예산 절감에 대한 압박을 상시 받고 있고 그건 시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예산 문제로 여러가지 서비스를 외주로 돌리는 건 덴마크 공공부문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거라 우리 청의 경우 외주로 돌아가 있다. 그리고 청소부문은 난민이나 비서구국가에서 이주온 이민자가 거의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교, 스포츠센터, 호텔, 기차역, 백화점 등 할 것 없이 청소하는 사람은 다 피부색이 어두운 이민자들이다. 간혹 한국의 단점을 강조하려 복지가 강하다고 이야기되는 덴마크를 예로 들어 사실이 아닌 이야기로 한국을 못살 나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 곳이라고 완전한 천국이 아니라는 거다.

내가 무슨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직업에 상관없이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굴에 불쾌함을 드러내는 일 없이 (네 따위가 감히? 이런 류의 불쾌함) 말을 섞는다는 점에서 직업에 대한 차별이나 귀천 의식이 드러나지 않는 건 분명하다. 어쩌면 아주 부자가 아닌 한 18세 독립을 하면서 수퍼마켓에서 일하거나 신문을 돌리고, 청소를 하는 등의 아르바이트를 다 해본 경험이 있어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서로가 서로를 아껴야 상대가 나를 아껴준다는 의식이 발로한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도 성공하고 싶어하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싶어하고 내 배우자가 비슷한 백그라운드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보다 그런 사람이 적고, 그걸 표현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니까 그게 표면에 드러나는 일이 없을 지는 몰라도 그런게 아예 없는 게 아니다. (그런 걸 표현하는 경우 교양이 없는 사람이 경우나 교육을 잘 못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가 클 이나라가 앞으로도 살기 좋은 나라였으면 좋겠지만, 여기도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고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 잘 사는 부모들이 자식에게 아낌없이 투자하고 부모 세대의 불평등아 자식세대로 고착되는 경향은 서서히 증가하고 있어 안타깝다. 그런 사회의 역동성이 사람들의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 주고 사회의 안전성과 시민간의 신뢰도를 높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큰 틀이 바뀌지는 않지만 곧 있을 선거가 (나는 투표권이 없지만) 조금이나마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3월 말 회사일상

간만에 집에서 두시간 야근을 했다. 집에 와서 애 픽업해 집 조금 치우고 저녁 요리해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오면 8시가 넘으니 두시간 야근이면 자기 조금 전까지 하는 야근이다.

하루 7시간 반에서 8시간 반 사이로 칼같이 일하는 편인데 내일 아침 상사가 출근하기 전까지 보내야 하는 자료가 있어 (정확히는 오늘까지 보내는 건데) 별 수 없이 야근을 했다. 에너지청에서 업무문의로 온 전화가 있어 그걸로 한시간 반을 쓰지 않았다면 거의 회사에서 다 쓸 수 있었겠지만, 또 그 전화협의가 결론적으로는 나에게도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되서 불만은 없다. 하필 또 전화가 점심시간 30분을 끼고 와서 혼자 샌드위치를 들고와 자리에서 일하면서 먹었는데 그 덕에 오늘은 아무와도 말을 섞지 못하고 주구장창 일만했다.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있는데, 일의 양이 적은 건 아니고 연말 성과평가에 내 보고서 진행상황이 별도 평가 항목으로 잡혀있고 그 비중이 커서 직장에선 정말 바쁘다. 이 와중에 일어난 발목부상이며 교통사고가 일신상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업무에 지장을 주는 형태가 아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진짜 이쯤이면 내 운이 진짜 좋은 거 같다.

임원진 보고 자료 송부 시한이 시스템으로 칼같이 정해져 있어서 그 전에 못보내면 보고 일정을 다시 잡아야 한다. 그건 최대한 지양해야 할 일이라 내일은 상사가 봐야 한다. 마음에 드는 보고서가 나왔으니 상사와 임원진 반응이 궁금하다.

요즘 직장에 스크린도어를 두 개나 설치하고 CCTV를 병행해 두 개 설치한단다. 정문 입구와 외부 출입구로 연결된 타워에만 두 개 있는 CCTV이니 총 세 개였는데 총 다섯개로 늘린다는 거다. 공공부문에 개인정보 보호 부문에서 물리적인 보호 강화에 대한 요구수준이 높아져서 취하는 조치라고 한다. 손님 오고가는 부분에서 생기는 문제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것 같다. 필요하니까 설치하긴 하는데 CCTV를 설치하는 건 반갑진 않다. 덴마크 사람들은 사생활 보호에서 오는 자유에 대한 가치를 감시로 인한 사건 예방 효과에서 오는 안전에 대한 가치보다 더 높게 쳐서 CCTV를 찾아보기가 힘든 편이다. 사실 뭐 감시당한다 해서 상관없을 삶을 살고 있지만, 이렇게 축적되는 시각정보가 앞으로 어떻게 사용될 지 모르니까 (중국처럼 수퍼스코어 산출한다든지) 이런 감시시설의 설치는 반갑지 않다.

반갑지 않은 공사로 인해 드릴로 바닥과 계단 철근에 구멍을 뚫는 소리가 어제, 오늘 귀를 울렸다. 보고서 쓸 땐 음악을 안듣는 걸 선호하는데, 거리가 꽤 되는데도 은근히 신경을 긁는 소리가 지속되서 이어폰을 귀에 꼽고 엉덩이 꼭 붙이고 앉아있었다. 안그래도 바빠 사람들과 교감할 새가 없긴 하지만 주변 소식에 더욱더 둔해질 수 밖에 없는 하루였다.

옌스는 월요일엔 갈비찜이 오늘은 비빔밥이 점심메뉴 중 하나로 나왔다는데, 우린 아시아 음식으로 가봐야 커리나 조금 더 이국적이어서 굴소스 볶음밥 정도로 끝난다. 음식이야 맛도 좋고 가격도 싸서 만족은 하는데, 그래도 아시아 음식도 조금 더 나오면 더욱 감사하겠다.

이제 회사생활의 적응은 끝난 거 같다. 이번 3월을 끝으로 수습기간이 완전히 끝난다. 덴마크 회사는 해고 기간만 지키면 해고는 매우 자유롭기 때문에 수습이 끝났다고 공무원이 철밥통인 그런 직장은 아니다. 그래도 수습기간은 해고 기간이 진짜 짧아서 수습기간이 끝났다는 건 나에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제 이 회사 들어와서 해볼 건 다 해본 거 같다. 보고서도 쓰고, 보고도 하고, 발표도 하고, 토론도 하고, 전화 상담도 하고, 전화 업무협의도 하고, 남의 전화 받아서 메모도 남겨서 넘겨도 주고. 새로운 게 없으니 긴장은 많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아직도 전화받으면서 ‘Forsyningssekretariatet, Det er Haein Lee Gundgaard.’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어색하다. 뭔가 긴 것 같이 느껴지지만 옛날에 ‘안녕하십니까. KOTRA 코펜하겐 무역관 이해인입니다.’라고 말했던 것 생각하면 음절 개수로는 지금이 더 적다.

이제 씻고 자야겠다. 내일 또 여섯시에 일어나야하니까. 그러고보니 이번주말이면 썸머타임이 시작되는구나. 한시간의 시차에 적응기간을 또 가져야 하는구나. 하나는 그 시차에 얼마나 잘 적응해줄까? 흠… Det er et godt spørgsmål…

3월 셋째주 기록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옌스와 소파에 어깨를 붙이고 앉아서 쉬고 있다. 요즘 일하면서 출퇴근 하면서 한국 노래를 많이 듣고 있다. 노래의 국적을 불문하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나 가수라든가 가사를 외우는 노래라든가 하는 게 별로 없는 탓에 그냥 그때 그때 떠오르는 장르의 노래를 듣는게 일상인데, 요즘은 어쩌다 god 노래를 듣게 된 이후로 한국 노래를 듣고 있다. 김광석의 노래는 20대엔 별로 좋은 지 몰랐는데 30대가 되면서 그 맛이 참 느껴지고 좋아졌다. 어찌나 이렇게 감미롭고 구슬픈지. K-pop 말고 다른 한국 노래는 없냐던 옌스도 김광석 노래는 마음에 든다고 한다. 밥딜런과 닐영 등의 가수를 좋아하는 옌스에게 김광석 노래는 나쁘지 않은 초이스일 거라 생각을 했는데 역시…

오늘 차를 인도받았다. 직불카드로 이렇게 큰 금액을 결제해본 적이 없어서 살짝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결제를 할 수 있었다. 딜러도 괜찮다고 했고 은행 홈페이지에도 잔고내 결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지만, 또 사람 마음이 불안하려면 여러가지로 불안하니까. 매연은 싫다는 옌스와 전기자동차의 승차감을 좋아하는 내가 의기투합하여 고른 건 현대자동차에서 나온 코나 전기자동차였다. 한번 충전에 500킬로미터를 뛸 수 있는 차는 인기가 너무 좋아 1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고 300킬로미터 차량에서 고르면 재고로 이미 있는 건 14일 안에 받을 수 있고 아니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했다. 우리는 재고에서 고르겠다 했더니 흰색, 빨간색, 애시드옐로우 색에서 고를 수 있다고 해서 애시드옐로우 색으로 골랐다. 흰색은 지루하고, 빨간색은 우리 취향이 아니고, 애시드옐로우색은 옌스가 좋아하는 밝은 연두색과도 맡닿아 있어서 쉽게 골랐다. 6개월 기다리는 건 우리가 원하는 선택지가 아니었으니까.

Acid yellow KONA electric

차값은 옌스가 냈으니 보험료는 내가 내라 해서 보험료는 내가 내기로 했다. 보험도 현대가 노르웨이 보험사랑 제휴해서 하는 것으로 골랐다. 옌스가 내 한국사랑을 적극 지원해주는 것이 참 좋다. 핸드폰 바꿀 때도 중국폰이 조금 더 싸서 그걸로 바꿀까 하면, 한국거 사라고 밀어주거나, 이번 자동차 살 때도 가급적이면 한국차 사라고 하는 것 말이다. 일본차는 사지 말라고 말하는 센스(?)까지 겸비하다니. 😉

하나는 엄청 잘 크고 있다. 모토릭 부분에서도 언어발달에서도 자기 나이보다 훨씬 빠른 발달을 보이고 있고 주변을 잘 챙기는 성격이란다. 덴마크어가 빠르게 늘기 시작하던 시기부터 한국어 사용은 매우 자제하더니 요즘 갑자기 한국어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애를 낳기 전과 애가 돌이 되기 전엔 꼭 한국어로만 말할 거라고 다짐을 했었는데, 주변 사람들과 내가 뻔히 덴마크어로 소통하는 게 보이는데 덴마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척을 할 수가 없다. 내 한국어 질문에 하나가 덴마크어로 답을 하면 맞다고 하면서 같은 내용을 한국어로 반복해 주고, 하나가 질문을 덴마크어로 하면 내가 그걸 또 한국어로 확인해준 후 한국어로 답을 해준다. 한국어로는 하나가 뜻을 모르는 단어의 경우는 덴마크어로 답을 한번 해주고 한국어로 세번 쯤 반복해 답을 해주는데 내가 하는 게 맞는 지 알 방법은 없지만 그냥 밀고 나갈 뿐이다. 모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했으니 꾸준히 해봐야지.

고집도 성깔도 있지만 엄마가 단호하게 굴 때는 받아들일 줄도 알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고래고래 울만큼 울고 나면 툭툭 털고 일어날 줄도 아는 쿨한 아가씨다. 발레춤 추는 걸 좋아해서 주말에 밖에 나갈 준비하면 발레춤추러 가냐고 하고 머리 빗으면 엉킨 머리 푸느라 땡기는 것 싫어하면서도 자기 전에는 꼭 머리 빗어달라고 하며 등을 내어주는 귀여운 아가씨다. 보육원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몸을 어떻게 써야하는 지 정말 잘 아는 작은 장난꾸러기지만 친구가 울면 가서 안아줄 줄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이것저것 손가락으로 찍어가며 티비 프로그램을 골라 보지만 막상 조금만 무서운 게 나오면 엄마아빠를 불러 끌어안고 보는 겁도 있는 아가씨. 동양과 서양의 특징을 모두 섞어 갖고 태어난 하나. 우리에겐 너무나 축복같고 감사한 세상에서 가장 이쁜 아이이다. 다른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시때때로 하나 사진을 열어보며 키득거리기도 하고 어쩌면 이렇게 귀엽고 이쁘고 총명하냐며 탄복하는 팔불출이다. 다들 지금이 제일 이쁠 때라 하는데 그 말이 정말 맞는가보다.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단계는 돌을 시점으로 지난 거 같고 아직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시기는 안온 것 같고 말이다. 즐겨야지. 머리와 가슴에 이 시기를 아로새기듯 기억해야겠다.

TV에 푹 빠진 하나

나는 이제 수습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얼마전 상사와 평가 미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첫 1-2주동안 덴마크어로 일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 건지 걱정하면서 혹시 잘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다 말하니, 절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라면서 지금 해당 경제분석 프로젝트 너무나 순항하고 있는데 왜 그런 걱정을 하냐면서 놀라더라. 나도 지금은 이 프로젝트의 중요성도 인식하고, 나도 이걸 할 수 있음도 알고, 덴마크어로 보고서 쓰고 발표하고 이런 일련의 것이 다 가능함을 알기에 그런 걱정은 안하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시간이 약이라고, 아직 점심시간 대화는 챌린징하지만 일 면에서는 다행히 잘 굴러가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미래 상하수도 요금에 꽤나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기업, 이익단체 뿐 아니라 우리 경영진도 관심을 지대하게 갖고 있다. 경영진과의 미팅 주기가 짧아지고 있고 보고의 비중이 늘어나고 하면서 내 이름도 더이상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발음하고 기억해주게 되었으니 이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까지는 최소한 잘릴 일이 없을 거란 생각과 함께 조직도 나의 경험을 염가에 쓰고 있는 거라는 생각도 든다. 덴마크어가 완벽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조직이나 나나 윈윈하고 있는 게 아닐까.

발도 이제는 많이 나아져서 어제부로 목발은 졸업했다. 아직 절뚝거리며 걷고 통증과 함께 운동반경이 꽤 제한되어 있지만 천천히 집중해서 조심스레 걸을 땐 절뚝거리는 걸 거의 없앨 수 있을 정도이니 완전 감동이다. 삐면 전치 2주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2주정도면 그래도 심한 건 없어지니 말이다.

내일은 시부모님을 뵈러 보언홀름에 갈 거라 대충 가방을 쌌는데 하룻밤만 자고 올 거라 짐이 많지 않아 마무리는 내일 지으면 될 것 같다. 10시 비행기니 서둘러 나가야 하긴 하지만서도 하나 짐은 하나 자는 동안 쌀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하나가 얼마나 좋아할런지. 한국에 계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방문은 가을로 미뤄두고 지금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방문으로 족해야지. 덕분에 우리도 코펜하겐을 잠시나마 벗어나보고. 저녁식사 준비도 손에서 놓고 시부모님이 해주시는 음식 잘 먹고 잘 쉬다 와야지. 다행히 날씨도 나쁘지 않을 거 같으니 말이다. 이제 가서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