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슈즈

어제 발레 수업 중 선생님이 토슈즈 신어본 사람 몇명이나 있는지 물어보셨다. 덴마크에 와서 발레 다시 시작하고 일년 쯤 지났을때인가? 그때 선생님이 토슈즈 클래스를 듣는 걸 권유하셨는데 왜 그때 안했는지 기억이 안난다. 부상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그것만이었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업을 조금 쉬었었는데 왜 그때 쉬었더라…?


그러나 이제라면 토슈즈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올 초에 다시 발레를 시작하면서 쉬는 기간동안 잊어버렸던 것들이 머리와 몸에 서서히 돌아온 것도 있고, 또 그간 이해가 안되서 잘못하던 것이 선생님의 몇마디와 함께 많이 고쳐져서 최근 좀 많이 는 덕도 있다. 그간 그렇게 이해가 안되던 고관절 균형자세와 복근을 풀업하는 방법, 턴아웃 근육을 쓰는 법, 한발로 서서 탕듀나 기타 자세를 할 때의 고관절 모양 등 많은 부분에서 이해가 늘었다. 발레 동작이 안정되고 부상이 없어지는 등의 수확이 있었다. 취미발레인으로 휴식 포함 7년의 기간, 휴식 제외하고 한 4년 정도 열심히 발레를 한 것 같은데 이제는 토슈즈를 시도해도 괜찮지 않을까?


요즘 일상은 발레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주중에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도 발레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고 주말에는 하나와 함께하는 발레 클래스도 있어서 주말까지 발레가 많은 시간을 채우고 있다. 일요일이면 월요일에 있을 발레가 기다려져서 얼른 월요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 정도이니 말이다. 


출산 후 발레 클래스 시간이 맞지 않아 미뤄두는 동안 몸의 라인이 영 별로였는데, 서서히 살도 빠지기 시작했고 온 몸에 다시 라인도 생기기 시작했다. 팔뚝 살도 없어지고 가슴팍에도 근육이 단단하게 붙고 복근도 단단해지고 있다. 등근육도 붙기 시작했지만 이건 따로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다리도 다시 많이 강해졌고. 코어근육 중 다리를 턴아웃해서 드는데 관여하는 장요근 강화가 중요하다. 그래야 부상 없이 다리를 더 많이 들 수 있으니까. 


토슈즈라.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발레샵에 가서 신어보고 천천히 골라봐야겠다. 꼬매고 손질하는데도 시간이 걸릴테니까. 아… 발레여…

첫 MUS를 마치고

MUS (Medarbejderudviklingssamtale, 직원계발면담)은 1. 전반적 직장생활 만족도를 평가하고, 2. 연간 실적을 정리하고, 3. 내년 목표는 무엇인지, 4. 현재 역량의 상황을 평가한 후 5.계발해야 할 역량은 뭐가 있는지, 6. 미래 계획은 뭐가 있는지, 7. 직속상사에게 역량계발지원을 위해 요청할 건 뭔지, 8. 직속상사가 리더로서 개선할 점은 뭐가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미리 해당 내용에 대해 생각해보고 적어가야 한다. 그래야 일년에 두 번 (두번째인 mini-MUS는 MUS에 이야기한 항목에 대해 점검하고 연봉협상을 겸한다.) 있는 이 기회에 상사의 나에 대한 기대와 부응수준, 내가 회사에 나의 발전을 위해 요청할 것 등을 효과적으로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준비해간 내용을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상사의 평가에 대해 듣고 대화를 나누었는데, 약간 긴장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내가 요청하는 사항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사실 지난 8개월이란 시간동안 말도 글쓰기도 많이 늘었다고는 해도 내가 한국어나 영어로 일할 때보다 효율적일 수 없다는 한계 속에, 혹시 나에게 말은 하지 않지만 상사가 채용을 후회하거나 하는 건 없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도 살짝 했었다. 오늘의 면담을 통해 그런 걱정은 싹 털어버렸다. 


다만 상사의 마지막 조언 한마디가 내 마음에 확 와닿았다. Be compassionate to yourself. 내가 나 스스로의 발전에 대해서 야심도 있고 자기에게 엄격한 기준을 갖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결과를 내면 인내심을 갖지 못하는 성향인 것 같다며, 남에게 대하듯 나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면 좋겠다고 하더라. 이게 발전의 동력이긴 하지만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함을 나도 느껴서 고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데,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렇게 지금껏 살아왔던 터라.


이번을 계기로 직장안정성에 대한 이유없는 불안은 완전히 떨쳐버렸다. 얼마나 안도되는지….

Bernstorff Slotshave

겐토프트 한 복판에는 베언스토프성과 부속 공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사택에 살 때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자주 가던 공원인데 거기 사는 동안에는 그 반쪽만 가봤었다. 간혹 자전거를 타고 주변 동네 중 안가봤던 길을 지나가곤 하는데, 삼 주 전인가 살면서 안다니던 길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그냥 이끌리는대로 가봤더니 그 반대쪽 끝편에 이런 잘 정리된 정원이 있는게 아닌가!

공원에는 사과나무, 배나무와 자두나무가 가득하고 거기에서 열리는 과일은 마음대로 따먹어도 된다. 문화부에서 관리하는 과거 왕실소유 성인데 이곳 나무는 코펜하겐 대학교 자연과학부에서 관리한다고 한다. 5월부터 10월 여름에는 주말마다 이 정원 가운데에 있는 루이스 여왕의 찻집 (Dronning Louises Tehus)에서 차를 마실 수 있다. 찻집이라 커피는 없는데 간단한 요기거리와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다. 괜찮은 찻집이었다. 같이 먹은 샌드위치도 굳. 막 빼어나게 맛있다 이런건 아닌데, 여기 산책 온 김에 쉬면서 먹는 걸로는 훌륭하다.

여름에 겐토프트에서 산책할 곳을 찾는다면 여기도 강추!

30개월의 하나

30개월의 하나가 어떤지 기록이 되어 있어야나 나중에 돌아볼 수 있을 거 같다. 일로 가정생활로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지만 짬을 내서 기록해본다. 

하나가 한국말과 덴마크어가 존재한다는 걸 이해한 건 대충 18개월  들어설 때 즈음부터였다. 사물이나 개념에 엄마와 아빠가 다른 표현방식을 쓴다는 것을 알고 그 표현방식에 한국어와 덴마크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덴마크어 어휘와 문장 구성이 한국어에 비해 월등히 낫지만 내가 한국어로 하는 말의 대부분을 이해하고 덴마크어로 표현한 단어에 대해서 그건 한국어로 뭐냐고 물었을 때 한국어 어휘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묻든 대부분 덴마크어로 답하고 간혹 한국어로만 아는 단어 (예를 들어 맵다와 같이 보육원에서 쓸 일이 없는 단어)나 덴마크어 문장에 섞어쓰는 게 일상이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 듣기를 통해 이해하는 수동적 학습만으로는 부족하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어휘를 선택해서 문장을 구성하는 능동적 학습이 필요한데, 그걸 강요하자니 한국어를 싫어하게 될 것 같고 쉽지가 않다. 그나마 요즘 한국어로 이게 뭐냐고 묻는 게 늘어나서 한국어 어휘를 넓히는 기회가 생기는게 다행이다. 덴마크어로 의사소통하는 부분만 따지면 미묘한 뉘앙스도 살려가며 대화하고 있어서 이맘때쯤 아이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거였구나 놀라곤 한다. 단어 열거로 의사소통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말다운 말을 긴 문장으로 하는 건지.

16개월인 친구네 애가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은 되나 아직 발화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하나는 언제 말을 시작했나 봤더니 만 15개월 되었을 때에는 아니오에 해당하는 엄마, 아빠, Hvad er det? (이게 뭐예요?), 하나 (자기 이름), 거북, nej (아니오), hej (안녕), bye 정도 말하고 기타 동물 소리흉내 (멍멍, 미야오, 구구, 꼬꼬 등)을 낼 수 있었다. 만 17개월이 되었을 때는 ja (예)를 사용하면서부터 조금 더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는 게 수월해졌다. 두달 사이 어휘가 빠르게 늘어서 할 수 있는 단어를 세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보육원 애들 이름을 다 기억하고 부정확한 발음이나마 애들 이름을 이야기해서 내가 다른 애들 이름 기억하는 것도 쉬워졌다.  보육원에서 또래 중 가장 말을 잘하는 애 중 하나였는데, 이중언어 하는 애들 중에 발화가 늦은 애도 있지만 하나처럼 오히려 더 잘 하는 애들도 있다고 들었더랬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아이가 맞는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살려줄 지 고민을해봐야겠다.

하나가 만 두살이 되자마자 발레를 시켰다. 어른과 함께 가서 하는 발레인데 하나의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도움이 될 활동 중 하나로 나도 즐길만할 걸 찾다보니 발레가 되었다. 처음엔 그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서 발레 수업 내내 노래에 맞춰 뛰려는 애를 잡아 함께하는 활동에 포함시키는 게벅찼다. 단 30분에 불과한 시간인데 말이다. 같이 움직여야 하는 규율에 애를 너무 맞추려다보면 애가 기분이 상해서 발레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고, 애를 마음대로 풀어놓으면 방해가 되니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애를 통제하고 활동에 동참시키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느라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진땀을흘린 날이 많았다. 거기다가 발레 수업이 끝나는 시간 때 즈음이 하나가 피곤해하는 타이밍이어서 안아달라는 하나를 안고 나 혼자 춤을 추느라 힘든 경우도 흔했다.

애가 발레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바는 없지만, 발레가는 시간을 고대하고, 보육원에서 다리를 들고 까치발로 다니고 빙글빙글 돌고, 선생님들이 뭐하냐고 물어보면 발레한다고 해서 선생님들이 하나를 Balletpige (발레소녀)라고 부를 정도기에 좋아하는구나 하고 추정할 뿐이다. 한달 반 정도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이번 주말부터 클래스가 시작되었는데, 가는 길에부터 그전에 배운 걸 기억하고 이야기하길래 신기했다. 이제 꽤나 장기 기억력이 생기는 모양이다.  지금은 2-3세 사이 유아반에서 배우고 있는데, 두살 반이되서 그런지, 이번엔 시키는 것도 제법 따라하고 애 쫓아다니느라 고생하는 거없이 30분을 잘 보내고 왔다. 내년에 3세 반에 올라갈 때면 혼자 들여보내도 걱정이 없겠다 확신이 들었다.

페달 없는 자전거는 발을 땅에 대는 시간이 얼마 안되게끔 쌩쌩 뒤로 밀기 시작해서 우리가 뛰어다녀야만 쫓아다닐 수 있게 능숙해졌다. 정글짐에 기어 올라가서 높은 곳의 미끄럼틀을 타고 씽씽 내려오는 것도 능숙해졌고 아빠가 잡아주는 손에 크게 기대지 않은채로 외줄타기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반동을 활용해 몸을 위아래로 흔드는 것까지도. 

어디 가서 크게 맞을 걱정은 하지 않는 게, 간간히 맞기는 하는 것 같지만 손바닥을 보이며 힘있게 팔을 뻗으면서 안된다고, 멈추라고 (Stop! Det må man ikke! Man må ikke slå!) 크게 외칠 줄 알아서 주변 어른의 시선을 쉽게 끌어낸다. 장난감이나 놀이터 시설 등에 대해서도 보육원에서 가르친 순서지키기, 적당히 놀고 양보하기 등을 이해하고 있어서 간혹 어른이 중재해야 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로 인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없어졌다. 그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서 가르쳐서 그런지 빨리 배우더라. 하나가 다른 애를 때리는 경우는 상대가 먼저 때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본 적도 더 어렸을 때나 있었고, 보육원에 물어봐도 그런 경우는 없다고 한다. 상대가 때린 경우에도 안된다 하고 크게 항의하는 거지 맞서 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다. 어려서는 애가 워낙 활동적이고 힘이 좋아서 남들 때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이제는 그건 크게 걱정을 안하고 지낸다. 

하나는 보육원에서 있던 일들을 이것저것 신나게 말해주는 편인데 궁금한 일 나중에 보육원가서 물어보면 되서 현황 파악이 쉽다. 친구 Feifei의 세살 생일에 케이크를 먹었는데, 자기는 케이크 안먹고 아이스바 먹었다며 시무룩하게 말하길래, 유당제한때문에 그런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그게 맞다고 이야기해주더라. 그리고 다른 애들이 자기들도 케이크 안먹고 아이스바 먹겠다고 해서 애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이제 생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자기 생일이 언젠지 자꾸 묻는다 최근 두어달사이에 애들 생일 잔치가 여럿 있었는데, 자기도 생일 주인공이 되고 싶었나보다. 하나 생일 땐 나도 케이크를 준비해야 할텐데 쩝. 그날은 대충 휴가 내고 새벽부터 준비를 하던가 해야할 것 같다. 

요즘은 수줍음을 조금 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낯선 남자에게 수줍음을 탄다. 인도에서 낯선 남자가 마주지나가면 내 바지가랑이를 잡고 뒤에 숨는다던가, 유모차에서 얼굴을 돌린다던가 한다. 그리고 나에게 Jeg er lidt genert. (저 조금 수줍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자는 매우 좋아해서 낯선 할머니나 아줌마 할 것 없이 마치 아는 사람이라도 되는 냥 Hej?! (안녕하세요)하고 크게 외치며 인사한다. 이 시기에 흔히 있는 거라고 하더니 수줍음의 수자도 모를 것 같던 하나도 그러는구나 싶었다.

지난달에 친구가 와서 자고 가면서 자기도 남에 집에 가서 자고 싶기도 하고 그런가보다. 나는 걔네 집에서 언제 자냐고 간간히 묻는다. 우리 집에서 그 친구가 자던 날, 내가 책을 다 읽고 자라고 한 뒤 자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옆에서 자는 척 했다. 그러자 지들끼리 나를 사이에 둔 두 침대에서 서서 대화를 나눈다. 

하나: 네 엄마는 어디에 가셨니?” 

친구: “우리 엄마는 일하러 가셨어.” (집들이 파티 가느라 우리집에 애를 맡긴 거지만 애들은 일하러 간 걸로 오해했다.) 

하나: “너희 엄마는 휴가가셨니?” 

친구: “아니” 

하나: “그러면 Lagkagehuset (체인점 빵집)”에 가셨니?” 

친구: “아니” 

하나: “히히. 그거 나야. 내가 오늘 lagkagehuset에 다녀왔어” 

이날 하나는 우리와 그 빵집에 다녀왔는데, 이렇게 그걸로 농담까지 할 줄이야. 애들의 대화를 이렇게 들어볼 날이 없었는데 애들이 벌써 말장난도 치면서 노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이미 가까이 잘 노는 친구가 생긴 것도 놀랐고. 

내가 선생님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특정 친구와 놀기보다는 재미있는 걸 하는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데, 서서히 친한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툭하면 듣는 이름이 대충 열명 안으로 좁혀진 것만 봐도 그렇고. 

밤에는 옌스와 번갈아가며 책 읽어주고 재우는데, 간혹 주인공이 우는 이야기가 나오면 하나도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고, 티비에서 주인공이 울어도 같이 운다. 공감능력이 좋은 아이라고 보육원에서 들었는데 실제 우리가 느끼기에도 그렇다. 내가 공감능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 후천적으로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는 편인지라 그런 걸 볼 때 좋다 싶다.

아이가 태어나서 세살까지 부모를 기쁘게 하는 걸 보답하기 위해 부모가 그 나머지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은 적이 있다. 그 삼 년의 시간이 벌써 거의 다 흘렀구나. 앞으로도 계속 이쁘고 사랑스러운 딸이겠지만 이 첫 삼 년의 시간은 참으로 기적같은 시간이라고 기억할 것 같다. 작은 핏덩이에서 이렇게 아이같은 아이로 성장한 기적.

3주의 휴가

휴가 3주차에 접어들었다. 첫주의 시작은 집안 페인트칠로 땀을 빼는 육체노동이었지만 둘째주에는 시댁에서 먹고, 쉬고, 자고, 하나와 화끈하게 놀아주는 가족의 시간이었다. 마지막주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하나와 재미있게 놀아줄 수 있으면서도 우리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성인이 된 후 이렇게 여유로운 휴가를 보내본 적이 없다. 아니 그보다 일찍으로 시간을 돌려 중학생이 된 이후 이렇게 3주의 시간을 연속으로 여유롭게 보내본 적이 있던가.

덕분에 일상으로 돌아갈 힘이 나는 모양이다. 다소 긴 시간 쉰 탓에 돌아갈 걱정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3주간의 여름휴가라는 게 아주 적당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하나는 무섭게 크고 있고 한마디로 경이롭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이다. 애를 일반적으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다른 애들도 좋아하게 되고, 다른 부모들이 애들 자랑하는 걸 이해하지 못해하던 내가 그게 너무나 이해가 되고 애들의 성장 하나하나가 너무나 놀랍게 느껴진다. 기적같은 것이라 할까. 애들이 뛰어노는 혼돈의 상황이 평화로 느껴지게 바뀌는 기적. 관계의 축이 바뀌고 관심의 초점이 바뀐다.

이번 휴가는 그런 하나와 살갑게 부대끼는 그런 기간이다. 육아 초기, 사회생활이 없어지는 변화 속에 나의 시간을 간절히 그리워했다면, 그리고 육아가 제일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가장 힘든 시기가 지난 지금, 아이가 너무 이쁘고 같이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이제 다시 가을 한국 방문휴가를 가질 때까지, 연말 연시 연휴를 맞이할 때까지 하나와의 집중적인 시간은 미뤄둘 수 밖에 없지만, 그 때를 기다리며 일상을 열심히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내 사랑 하나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내가 보는 덴마크는 얼마나 평균의 덴마크일까? 사실 별로 평균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고 좋은 직장에서 고소득을 올리고 좋은 집에서 사는 사람이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만 보고 살게 된다.

예전에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중학생때나 고등학생 때는 세상에 그렇게 내 또래만 보였는데, 직장인이 되었더니 학생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직장인만 보인다고. 물론 다른 사람도 보이지만, 직장인에겐 직장인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고, 대학생에겐 대학생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다. 그냥 자기 눈에 자기와 비슷한 사람만 정보를 주로 처리해 저장하고 나머지는 흘려보내서 그런 것 같다.

내 주변에 인종차별 하는 사람 없고, 성차별 하는 사람이 없으니 여기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려니 하지만, 또 여기 살면서 이런 저런 경험한 사람들 이야기도 듣게 된다. 내 남편네 가족이 다 화목하고 막상 주변 가까운 곳에 이혼한 사람들이 별로 없지만 통계를 보면 이혼률이 낮지 않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이런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생각을 하지만 막상 내 옆에서 부대낄 일 없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렇게 화면에서만 보고 지낼 사람들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지도 모르겠다.

그냥 각자가 보는 그 세상이 그 곳을 전부라고 느끼겠고 그게 정답이라고 타인에게도 설파할 지 모르겠지만, 그냥 우리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살고 있을 뿐이다 싶다. 물론 코끼리가 각 나라마다 다르니 어느 나라나 같은 모습이다라는 건 아니다. 여기에 살면 살 수록 “유럽”, “덴마크”라는 단어로 이곳을 설명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뭐라 말하기 어려워진다.

직장생활 반년 후 덴마크어 능력 자가평가

반년이 흘렀다. 아니 며칠 남긴 했으니 반년이 흘렀다고 하긴 그런가?

누구를 만나 건 막상 대화를 하는 데 큰 막힘은 없고 강의를 들으러 가서 상대가 빠르게 말해도 90% 이상 문제없이 이해하니 적응을 거의 다 했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처음으로 만나서 내 소개를 하는 때마다 혹여나 내가 문법에 틀리는 말로 시작하게 될까 그로 인해 상대가 나를 어리숙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긴장이 마음 속에 자리하는 건 바뀌지 않는 거 같다. 무엇보다 처음을 내가 열어야 하는 상황은 긴장된다고나 할까? 튀는 게 싫은 것 같다.

3개월에 한번 새로 기업부 및 기업부 산하 기관에 임용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소개강좌가 열리는데 지난 번엔 회의와 겹쳐서 임용된 지 6개월만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다른 기관 사람들도 만나서 인사도 하고, 장관실을 비롯해 기업부 시설을 둘러보았으며, 조직, 전략, 인사 및 총선이후 유의사항 등 다양한 사항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각자 자기 소개를 구체적으로 할 일들이 생기는데, 그럴 때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곤 한다. 속으로, “틀려도 된다. 틀려도 된다. 상대는 나를 평가하려는 사람이 아니야.” 이런 말을 되뇌이다보면 긴장이 좀 풀리고 막상 대화를 시작하고 나면 큰 어려움은 없다. 이런 긴장감은 도대체 언제 없어지려는지. 없어지긴 하려는지.

그래도 달라진 건 점심시간에 대화에 느끼던 어려움이 많이 없어졌다는 거다. 조용한 회의시간에 한명씩 돌아가며 조용하게 이야기할 때랑 달리 구내식당에서 여러명이 대화를 동시에 나누는 점심시간은 참 어려웠다.

지난 주 금요일, 1년에 한번 하는 직원축제가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저녁 식사와 파티를 하기 전 야외 테이블에 앉아 직원들과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그 때, 구내식당에 소리가 많이 울리고 사람들이 크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보니 점심시간에 간혹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말할 기회가 있었다. 그랬더니 나만 그런게 아니라 네명 넘는 인원이 말을 하면 소리가 잘 안들린다고 하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아. 역시… 아무튼 이제는 많이 알아들어서 점심 때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날 저녁 엄청 시끄러운 속에서도 한껏 멕시코풍으로 장식한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목소리 높여가며 술도 마시고 대화도 하고 춤도 췄다.

간혹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기분이 들어서 내가 잘해야지 하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 내가 뭐라고 한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하나. 나는 하나의 개인일 뿐인데. 그런 쓸데 없는 생각으로 나를 부담지울 필요 없이 내가 부족한 점은 부족한 점대로 드러내고 배울 건 배우고 기여할 수 있는 건 기여하며 일하고 이 안에 녹아들다 보면 한국에서 온 내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직원으로 나를 스스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동안 더 빨리 늘지 않는 내 덴마크어를 두고 스스로 조급해하는 마음이 계속 있었는데, 6개월 사이에 많은 발전이 있었으니 앞으로 일년 후엔 크게 바뀌어 있지는 않으려나 하는 희망을 혼자 품어본다.

28개월 하나

특별히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좋은 게 아니면 하나는 밖에서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우리를 평균보다 힘들게 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친구를 만나러 나간 자리에 각자 애들을 데리고 왔는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카페라서 그런지 중간중간 나에게 와서 말을 걸긴 했어도 크게 힘들게 하지 않았다. 아빠랑 주말마다 가는 카페에서도 비슷하게 코너에 아이들 노는 코너가 있어서 그런지 왔다갔다는 해도 같이 먹기에 너무 힘든 아이는 아니다.

언젠가부터 기다린다, 순서를 지킨다는 컨셉을 이해하기 시작해서, “우리 이제 기다리는 거예요.”라고 이야기해주면 “Hannah venter! (하나는 기다려요)”를 조잘거린다. 수퍼마켓에서 자기 먹고 싶은 거 사달라고 해서 집어들고 계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 그때도 “Vi skal betale først! (우리 계산부터 해야해요)”를 외치며 기다린다. 계산대에서 계산이 끝나기가 무섭게 달라고 채근을 하기 시작하지만. 또 호기심 가는 물건을 만져보다가도 “그거 우리 것 아니예요.”라고 말하면 “Det er ikke vores! (그거 우리 것 아니예요)”라며 내려놓을 줄 안다.

간식은 중간에 주더라도 식사는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에만 하고, 안먹겠다 하면 안먹어도 된다 하고 중간에 끝났으면 식탁을 떠나도 좋다고 한다. 굳이 먹이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간혹 안먹는다 하면 한입정도 먹어보겠냐고 물어보는데 서서 한 입 먹어보고 나면 오래지 않아 우리가 앉은 자리에 와서 같이 먹으니 딱히 식사시간에 자리에 앉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굳이 와서 한 두입만 먹고 일어나는 걸로는 뭐라 하지 않는다. 처음엔 음식 남기는 거라든가 애써 만들었는데 안먹는 거라든가 하는 게 마음에 불편하고 스트레스가 되었는데,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나중에 배고프다고 따로 차려주고 하는 건 없으니 내가 더 육체적으로 힘들 건 없으니까. 안먹는 건 배가 안고파서 그러는 걸 것이라 생각하고 넘기고 나니 마음도 편해졌다. 애가 딱히 작은 것도 아니고, 보육원에서 애들하고 같이 먹으면 잘 먹는다니까 어느 때엔가는 잘 먹게 되겠지. 나도 만으로 9살까지는 진짜 잘 안먹어 작고 빼빼 마른 아이었으니까.

놀 때 순서지켜 놀라고 옆에서 상기시켜주면 순서 잘 지켜 놀고, 우리 것이 아니다 하면 금방 내려놓고, 우는 친구 있으면 안아줄 줄 알고, 인사하고 자리 뜨자 하면 씩씩하게 인사 잘 하고.

간혹 자기가 혼자 하려는 걸 우리가 도와주는 바람에 뒤로 넘어가 울고 난리법석을 떠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도 대부분 그 포인트를 아니까 그렇게 난리법석을 떠는 일도 많이 줄었다. 이제 말로 많은 걸 표현할 줄 알고.

넘어지고 해도 잘 안우는 편이고. 높은 데 기어올라가고 뛰어내리고 스릴 넘치는 일들을 엄청 좋아한다. 조심도 하지만 조심보다는 스릴에 무게가 더 실린 듯 하다. 이처럼 힘이 넘쳐 우리가 옆에서 그런 활동을 지지해주다보면 육체적으로는 힘들다. 하지만 주변 이야기 들어보면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다. 예민하지 않은 아이다.

기질 탓이 가장 크겠지만 보육원이나 집에서 많지 않은 대원칙만 지키면 대부분은 자유롭게 놔두는 편이라 자기도 그 규칙을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다른 애들 사이에서 같이 놀아야하는 환경에 두었을 때 노는 걸 보면 잘 아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 행동하는게 제법 다르다. 아예 공공장소에서 다른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없이 놀면 그건 다른데 내가 만난 친구의 애들과 같이 논다던가 하면 조금 조용하게 관찰을 많이 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편이다. 곧잘 놀기도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조잘조잘하는 게 없어진다.

이제 만 28개월을 채웠는데 정말 많이 컸구나 싶다. 이제는 작은 인간이 되어서 부모와 여러 형태로 상호작용도 하고 대화도 제법 하고. 말이 많이 느니까 이렇게 수월해질 수가 없다. 이젠 예전에 아주 힘들었던 기억은 힘들었던 사실만 기억나지 별로 생각나지도 않는다. 우리야 둘은 안낳을 거지만 이래서 둘 낳는구나 싶기도 하고. 젊었다면, 내가 다른 나라에 이주해 새 커리어를 시작한 것만 아니었다면 애 하나 더 낳았을 수도 있겠지만, 이도 저도 아니니 말이다.

시부모님도 나이가 많이 들어가시고 멀리 사시는데다가 우리 부모님은 이역만리 떨어져 계시니 더욱이 기댈 데도 마땅하지 않고. 출산부터 지금까지 급하게 애가 아픈데 휴가를 내기 어려워 하루 이틀씩 시부모님 손을 벌린 거 아니면 우리끼리 다 해야만 했기에 하나 더는 못하겠다. 애야 우리 애지 시부모님이나 부모님 애들이 아니니 못맡아주신다고 서운할 일도 아니고. 출산 이후 애 맡기고 옌스랑 단 둘이 밖에서 저녁식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도 그립고. 하나 더 생기면 그런 게 더 어려워질텐데… 하나로 부모가 되는 기쁨을 충분히 누리고 있으니 이를 두배로 굳이 늘리며 고난도 두배로 늘릴 생각은 잘 안드는 게 아마 나이 탓일 거라 괜한 나이 핑계를 대본다.

앞으로 하나랑 같이 해나갈 여러가지 일이나 기대해보며 한 명만 잘 키워보련다.

어른에게도 엄청 높은 미끄럼틀을 겁없이 타는 하나
뒤에 자기 키의 두배가 되는 장에 (기어 올라가도록 설계) 기어 올라가 뛰어내리기를 다섯번도 넘게 반복했다. 잡아주고 뛰어내리기 도와주느라 나도 힘이 들더라.
그네도 요상하게 타야하고. 재미있게 노는 법은 역시 애들이 잘 안다니까.

덴마크 직장생활의 중요한 일부 – 금요일 아침식사

매주 금요일이면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30분 아침식사를 함께 하고 나머지 30분엔 회의할 게 있으면 하고, 아니면 해산한다. 직원들 수가 늘어나면서 20명에 다다르니 준비할 것의 무게도 너무 늘어나서 두명이 같이 준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식사로 먹을 빵으로는 큰 덩어리의 빵이나 일인용 분량의 작은 덩어리빵을 섞어서든 큰 덩어리 빵만이나 작은 덩어리 빵만으로 양을 맞춰서 준비한다. 또 그 후에 후식으로 먹을만한 wienerbrød (영어로는 Danish pastry이나 사실 오스트리아에서 이민온 제빵사가 만든데에서 기인한 탓에 비너브횔이라고 한다)을 준비한다.

이와 함께 빵 위에 발라먹을 버터와 얹어먹을 치즈, 잼, 햄, 폴랙(pålæg) 초콜렛(빵에 얹어먹도록 나온 얇은 판형의 초콜렛. 스프레드 대신 빵에 바로 얹어먹는다.)를 준비한다. 우리 센터 직원들의 취향을 반영해 버터는 락토스 없는 것도 하나 준비해가고 잼은 최소 두가지 종류로, 햄은 파마햄 종류, 치즈는 아주 전형적인 mellemlagret danbo와 함께 크리미한 브리타입의 치즈를 준비한다. 폴랙 초콜렛은 다크가 중요하다. 과일을 함께 준비하기도 하는데 요즘은 딸기 철이라 딸기를 가져가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

음료수로는 주스 세병을 준비하는데 오렌지, 사과에 다른 주스 한종류 섞어가는 게 보통이다.

두명으로 분량을 나눈 이후 한 명은 빵, 한명은 기타 같은 식으로 나누기로 했는데 나는 집 근처에서 회사가는 방향에 빵집을 찾기가 애매해서 항상 그 나머지를 사는 것으로 한다. 원래 다음달 생일 전날 아침식사 담당이었는데 동료가 이번주 아침식사 담당일에 휴가를 쓰려고 한다며 바꿔줄 수 없냐고 물었다. 마침 생일날 케이크도 사야하는데 아침식사도 준비해오려면 참 뭐가 많겠다 싶었기에 흔쾌히 승락했다.

저녁에 잦은 회식이 없고 점심시간도 자리 떴다 돌아오기까지 30분에 불과한 탓에 생일자가 가져오는 케이크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30분, 이렇게 회의를 겸한 금요일 아침식사 30분이 직원간 네트워킹에 중요하다. 각자 뭐하는지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디어도 주고받고, 또 사생활에 대해서도 담소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이해도 높이고 말이다.

내일 저녁엔 빨래를 하고 (공동빨래 공간 금요일 오후 예약이 내가 예약하기 전에 차버려서 할 수 없이 내일 예약했다.) 하나도 재워야 해서 (옌스와 매일 번갈아가며 애를 재운다.) 장을 보러 가기 어려울 것 같아 오늘 미리 금요일 아침식사 장을 봤는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덴마크 직장생활 만 4개월 평가

요즘 언론에 초점을 받는 업체들이 조금 있는데, 그와 관련해서 우리도 영향이 있을 거 같아서 주시하다가 사안을 조금 깊게 파고 들어봤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경영진의 관심이 쏠린 사안이라 급히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급히 작업을 해서 보고서를 만든 후에 경영진에 자료를 송부했다. 자료를 미리 보내둬야 주말에 경영진들도 자료를 읽고 월요일에 회의를 할 수 있으니까. 금요일은 그덕에 점심도 스킵하며 일하고 서둘러 퇴근했는데, 오늘 회의도 열두시 반에 잡힌 탓에 한시 반이 넘어 간신히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일이 커져서 그 일을 내가 본격적으로 담당하게 되었는데 재미있을 것 같다.

지난 4개월 조금 넘은 기간 동안 느낀 걸 몇 개 뽑아보니 참 신선하면서도 은근히 금방 익숙해지는 것 같다.

첫째로 보고서에 대해서 절대 막 수정하지 않는다. 보고서를 검토, 수정해서 나에게 보고서가 돌아올 때도, 그 분량이 많지 않고, 내용이 내가 의도하던 내용에 부합하는지 등을 확인하고 수정이 괜찮은지 봐달라고 표현하는 게 참 신선했다. 내가 외국인이니 나는 문법 틀린 거는 매우 환영하며 고쳐달라고 하는데, 그게 혹시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는지를 확인하는 것부터 좋은 의미로 얼마나 이상하던지.

그리고 잘 한 부분은 정말 열심히 칭찬해준다. 덴마크도 겸양을 중시하는 터라 칭찬에 반응하는 방법이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은데, 칭찬은 적극적으로 하는 편인 것 같다. 우리 센터장이 특별히 그런 타입인 것 같긴 한데.

직군별 이동이 없다. 행정직은 행정업무만 한다. 행정직이 오래 근무를 했다 해서 전문직군 업무를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이코노미스트 (økonom) 포지션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해당 학위가 있어야만 한다. 이를 대체할만한 이력이 있으면 모를까 짧은 행정 관련 직무교육을 받고 비서로 계속 일한 사람은 같은 직장에 계속 있었다고 해서 이코노미스트 포지션에 앉을 수 없다.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파는 것 뿐. 부서를 바꿀 수는 있어도 크게 자기가 속한 커리어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공공부문이 이런 건 더욱 강한 것 같다. 민간이야 사실 그런 업무를 할 수 있기만 하면 교육 백그라운드가 중요한 건 아니고, 경력이 길 수록 교육의 의미야 흐려지기도 하니까.

회식은 진짜 없다. 다 각자 바쁘니까. 나도 바빠서 참여하기도 어려우니. 대신 1년에 한번 센터데이를 한단다. 업무시간 중 프로그램은 철저히 업무와 관련해서 짜더라. 우리 같은 경우 우리가 관리하는 하수처리 업체 중 하나를 방문해서 하수처리 프로세스도 보고 설명도 듣고, 예산 관련 애로사항도 청취하는 걸로 짰는데, 대신 저녁에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는 걸로 했다. 음… 기대기대. 놀라운 건 이 모든 어레인지를 센터장이 했다는 것. 이게 가장 센터데이에서 가장 놀라운 파트였다. 일정은 두달 전에 이미 전체 직원에게 일정을 물어봐서 조율한 거였다.

행정 업무가 일에서 빠져 있으니까 일에 대한 집중도가 얼마나 올라가는 지 모른다. 자기가 어떤 일을 맡을 줄 알고 지원해서 채용된 포지션에서 다른 이상한 잡무 안하고 관련된 일을 중심으로 담당하면 당연히 집중도가 올라갈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가지수가 늘어나면 날 수록 데드라인 점검하는 것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니.

직장생활에서 친구 사귀는 건 힘든 일인 건 맞는 거 같다. 내가 내 생활에 여유를 내줄 수 없는 것처럼 타인도 자기 생활의 여유를 내주기 힘들고 그나마 그걸 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은 또 아침에 회사 헬스장에서 만나서 같이 운동하거나 같이 러닝클럽에서 뛰는 식으로 내가 맞추기 어려운 활동을 하더라.

금요일마다 직원들이 돌아가며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대충 사가는 품목은 큰 틀에서 정해져있지만 자세한 건 자기가 정하면 된다. 인원이 늘어나서 올 3월부터 2인이 분담해 해당 주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주스, 잼, 치즈, 버터, 햄, 과일, 빵, 패스츄리 등을 준비하면 된다. 은근 무겁다. 그래도 이렇게 금요일 아침에 30분 식사를 함께하며 담소를 나누고 센터회의를 뒤이어 하면 서로 공유할 정보도 나누고 친교도 나누고 좋다. 회식이 어려운 덴마크인에겐 회식같은 요소이다. 물론 점심도 있지만 점심보다는 회의실에 앉아서 하는 식사라 좀 더 친목요소가 더 있는 느낌?

4개월이니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지난 기간에 대한 평가는 대만족이다. 오히려 너무 대만족이라 두려운 듯. 상사가 갑자기 바뀐다면 어떨까 등등 이런 생각 말이다. 우리 팀장은 여자인데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유형의 여자 상사로 카리스마, 부드러움, 유머, 강단을 잘 버무린 사람 같다. 쓸데 없는 생각말고 일이나 해야지. 새로운 프로젝트가 하나 떨어졌는데 사안을 과거사부터 깊게 파봐야 하는 일이라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분석리포트도 재미있지만 두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것도 하나가 안풀릴 때 다른 걸 하는 식으로 돌릴 수 있어서 더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