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일상 기록

학교에 다시 나가기 시작한 건 11월이지만 데이터 수집에도 시간이 걸렸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것도 시간이 조금 걸렸다. 12월엔 하나가 보육원 시작하면서 자주 아픈 탓에 집에 머무느라, 나도 같이 아프느라, 또 연말연시 연휴로 가족행사가 있느라 거의 날아가 버렸다. 다행히 가장 중요한 데이터를 연초까지 수집할 수 있어서 좀 본격적으로 일하나 했는데, 하나의 중이염과 낡은 컴퓨터와 빅데이터의 안좋은 궁합으로 인해 시간만 까먹었다. 그나마 위안을 하자면 낡은 컴퓨터를 갖고 씨름하느라 컴퓨터 메모리 칩에 대해, 큰 데이터를 로딩하느라 다양한 데이터 포맷과 그에 따르는 R의 데이터 로딩 함수를 이것 저것 익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간에 컴퓨터를 새로 사면서 맥에서 Windows로 갈아타는 동안 같은 코딩도 달리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를 해결하느라 하루동안 씨름했다. 수업을 듣는 동안 꾸준히 써왔던 R이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R과 많이 가까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Spatial data 쪽 분석에서 말이다. 많이 배우는 건 역시 노가다를 통해서인가보다. 오랜 시간을 투여하고 힘들게 익힌 만큼 각인도 더 되는 거랄까? 엄청 삽질한 뒤 교수와의 면담을 통해 같은 결과도 더 짧고 효율적으로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거나 아니면 더 좋은 결과물을 뽑아내는 것을 볼 때, 그게 탁 머리에 꽂힌다.

대학원 친구들이 서서히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덴마크 친구들만 구하더니 이제 슬슬 비덴마크 친구들도 직업을 구한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친구도 있지만, 그래도 많이들 여기에서 정착하는 것 같아서 좋다. 최근에는 임신한 친구도 생겨서 우리의 두번째 ENRE baby를 맞이할 생각에 나도 들뜬다. 나도 직업을 잘 구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간간히 엄습해오긴 하지만, 불안함을 갖는다고 직업이 잘 구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금에 충실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저녁에는 덴마크어 학원을 가는데, 선생님이 아주 좋으신 분이다. 가르치기도 정말 잘 가르치시고 학생 개인별 수준과 강점, 약점에 맞춰 조언을 따로 해주시는 것도 많다. 숙제는 너무 많지 않아서 바쁜 와중에 수업을 끼워넣기 좋은 편이다. 요즘은 정말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바쁜데 그중엔 덴마크어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래도 덴마크어는 미뤄둘 수 없을 만큼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다른 것 바쁘다고 미뤄두기엔 항상 가까이 둬야하는 존재… 최대한 일상생활 속에 덴마크어를 녹여야 해서 오늘은 드디어 교수님 면담을 덴마크어로 했다. 그 전엔 슬쩍 인사말을 덴마크어로 해도 지도교수님이 영어로 바꾸시길래, ‘아… 아무래도 역시 영어가 학교 공식 언어라 그렇신가?’ 했었다. 지난번 남편이 덴마크인이라 대화는 다 덴마크어로 한다고 흘려뒀던 탓일까? 오늘은 인사 뒤에 따르는 말도 덴마크어로 하시는 거다. 조금 더 집중을 요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내 논문에 대해 옌스와 평소에 많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고, 시댁 가족과 친척에게 논문을 설명하느라 덴마크어로 이래저래 이야기한 적도 많아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고, 또 컨텍스트를 정확히 아는 내 논문이고, 테크니컬한 이야기를 나누는 바라 복잡한 뉘앙스를 다룰 필요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앞으로는 덴마크어로 지도를 받기로 했다.

주재원 생활을 빼면 내 덴마크 생활이 학교를 중심으로 돌아가다보니 학교에서의 만족도가 정말 중요한데 그 점에서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교수님들도 정말 좋고, 수평적인 분위기라 질문하고 연락하고 하는데 어려움이 없고, 특히 내 지도교수님은 막상 가까이 지내보니 더 허물없고 열심히 도와주신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찌나 좋은지. 모든 수업에 대해 100%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누가 내 프로그램에 대해서 추천하겠냐고 물어본다면 100% 망설임 없이 강력히 추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 거기에 나라에서 주는 용돈을 받고 등록금도 안내고 학교를 다니니 더욱 감사한 일이다.

이번 주 토요일은 하나 생일이다.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휙 지나가버렸다. 생일 케이크는 집에서 만드는 게 대부분인지라 나도 집에서 만들건데, 스폰지 케이크를 빵집에서 주문할 수 있다고 해서 그건 3장 주문해뒀다. 내가 할 건 레이어 사이에 바를 바닐라 크림을 만들어서 레이어 위에 잼과 함께 얹고 마지판을 사서 밀대로 밀어서 얇고 길게 만들어 케이크 사이드를 두르는 것, 케이크 표면에 초콜렛 글레이징 하는 것이다. 바닐라 크림은 어제 하루 하나를 봐주러 보언홀름에서 먼길 와주신 시어머니께서 시간을 내어 가르쳐주셨다. 하루 전날 만들어서 차갑게 식혀야 하는 크림이라 오신 김에 직접 보여주시며 가르쳐주시겠다는데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만들고 보니 카스타드 크림 같은 것이었다. 어째 생크림과 다르다 했는데, 생크림은 맛이 나지 않아서 바닐라 크림을 만들어야 한다셨다. 시어머니의 어머니 레시피라는데, 집집마다 크게 차이나는 것 같지는 않다. 옥수수 전분이 들어간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의외로 설탕은 별로 안들어가고 단맛은 우유와 계란에서 오는 부분도 많았다.

보육원에 하나 생일이라고 뭘 가져가야 하는데, 생일이 토요일이라 월요일에 하겠다고 했다. 도저히 금요일에 뭘 하기는 힘들 것 같고… 아마 빵을 구워가야할 것 같다. 보육원엔 단 건 갖고 가면 안된다고 하니 덴마크 생일에 보편적으로 먹는 우리 모닝빵 같은 걸 구워가야겠다. 흠흠… 믹스 사갖고 이스트랑 버터나 섞어 만들어가야지… 학부모는 역시 바쁘구나. 으흑. 하나 생일 장식도 사야하는데… 한국 부모의 돌잔치에 비하면 별로 하는 일도 없지만, 다 직접 하다보니 손이 가는 일이 좀 있다. 시부모님과 시이모, 이모부님이 와서 축하해주시기로 하셨다. 시누이는 먼 두바이에서 축전만 보내주는 것으로… 아쉬워라… 하나를 엄청 이뻐해주는 고모와 사촌 오누이가 와주면 진짜 좋을텐데… 우리가 4월에 가서 보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하나가 자주 아픈데 옌스는 직장을 다니니 내가 좀 더 유연하다는 이유로 계속 내 일이 뒤로 밀리니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겠다고 이야기했더니 내가 진짜 직업을 구하기 전까진 내가 하나 아픈 날 집에서 애를 보는 게 낫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헉. 아니…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이렇게 아둥바둥 열심히 공부할 이유가 있는거냐, 내 학업은 진짜가 아니라는 건데, 대충 해도 되는 거였냐 하니까, 그건 아니란다. 내가 유연해서 하나가 아플 때 내가 다 돌봐야 하면 이건 유연함이 아니라 절대적인 거니 뭔가 좀 아닌 것 같다고 하니 자기도 아차 싶었던가보다. 그날부로 적극성을 발휘해 시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해 일요일 밤에 날아오신 것이다. 평소 하나가 보육원에 갔을 시간 내내 어머니가 애를 돌봐주셨는데, 그 덕분에 일도 진척시킬 수 있었다. 오늘 혹시 하나가 보육원에서 많이 칭얼거려 중간에 픽업해야 할 일이 있을가 싶어 저녁까지 같이 계셔주시고 밤 비행기로 돌아가셨는데, 죄송한 마음도 있지만 도움이 필요할 땐 청하기로 했다.

요즘은 천천히 앉아서 뭔가를 할 시간도 별로 없고, 그냥 하루하루 바삐 사는지라 상념에 잠길 시간이 없어 블로그에 생각을 정리하기도 어렵다. 하나가 크는 모습을 좀 더 차분히 앉아서 기록하고 정리하고 싶은데… 그냥 사진과 비디오를 찍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으니 아쉽기 짝이 없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급히 써두지 않으면 내가 이 시점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것 같아 어수선히 정리도 되지 않지만 휘리릭 써내려간다. 학원을 간 날이라 11시 가까이 되서 집에 돌아오고 나니 눈도 풀리고 머리도 몽롱하다. 그만 덮고 가서 자야겠다. 내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생각의 흐름대로 쓰는 뒤죽박죽 장문

부제는 “대학원 생활의 즐거움과 내 정체성”

이번 구술시험은 그간 봤던 시험 중 가장 터프했다. 외부 시험관이 그렇게 많은 질문을 날카롭게 던지며 압박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10분 프레젠테이션에 10분 질문일 거라고 당초에 설명을 들었으나 시험 시간은 30분씩 배정되어 있었고, 막상 들어가서는 프레젠테이션 중간마다 질문이 들어와 발표와 질의응답이 뒤섞인 시간이 되었다. 시간 자체도 35분~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 부분은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답을 한 질문이 2개나 될 정도로 내 질문의 답에 또 질문을 하는 식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데, 그것 때문에 10점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중간에 이것저것 교수에게 귀찮을 정도로 질문했던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사실은 그러한 질문이 10점을 줄 것인지 12점을 줄 것인지를 보기 위해 한 질문이었던 것이었다.

우리 그룹 멤버를 모두 불러 각각의 개인시험 결과를 알려주고,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데, 내가 가장 방어를 잘 해서 가장 깊게 물어보았다고. 나보다 먼저 시험을 친 그룹멤버들이 질문이 어렵긴했지만 대충 답변은 다 했다며 편하게 생각하라길래 오히려 내가 더 못봤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초반 2/3까지는 정말 열심히 하다가 막판에 슬럼프에 빠지며 3주를 많이 놓쳤기에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는데, 그 앞에 많은 고민을 하고 따라갔던 게 해당 수업의 에센스를 이해하기엔 중요했었나보다.

지난 1년이 약간 넘는 기간동안 영어로 내 주장을 펼치고, 논거를 제시하고, 상대의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받아들일 부분을 받아들이고, 반박할 것은 반박하는 부분에 있어서 많은 훈련이 된 것 같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 사회 경험이 수업시간 중 적극적 참여를 가능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훈련이 된 것이다.

목요일에 첫 8시간 에세이 시험이 있다. 공부하다가 이렇게 블로깅으로 딴 짓 하고 있는 건데, Political Ecology라고 선택과목이다. 재미있는 부분도 없는 부분도 있었는데, 텍스트의 유형과 구성 등도 경제학 및 생태학 저널 텍스트와 너무 달라 학기 내내 힘이 들었다. 인류학과 정치경제학, 정치과학, 생태학이 결합된 수업인데다가 많은 텍스트가 철학적이라 정말 적응이 안되었다. 양도 많고, 어휘도 다르고 엄청 방대하다. 뭔가 내가 사용하는 어휘가 이렇게 많다 하고 뽐내는 향연의 텍스트 같은 느낌? 미국에서 온 학생들도 사전을 찾아야 하는 단어가 있을 정도였으니…

이 시험은 내 최초의 4점도 불사하겠다는 마음으로 편히 접근하기로 했다. 성적이 나쁘게 나오면, 아… 내가 정치과학은 아니었다 하고 변명하기로 하고 말이다. 우선 그렇게 마음 먹고나니 조금 편해져서 설렁설렁이나마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아니었으면 아마 불안해서 정말 공부가 안되었을 것 같다.

이 늦은 나이에 회사를 관두고 대학원 다닌 건 어찌 보면 무모해도 보이지만 참 잘한 일이었다. 동기들과 학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문화, 정치, 예술, 여행, 스포츠, 파티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 항상 열정에 차있고 동기부여되어 있는 그들을 보면 내가 그들과 같은 삶을 다 누릴 수는 없지만 그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달이 된다. 각각의 국가별로 다른 상황에 대해 듣는 것도 즐겁고, 별 중요하지도 않은 농담으로 시시껄렁하게 웃는 것도 좋다. 간혹 힘든 상황이나 여건에 대해서 서로 묻고 의견을 나누며 진지해지는 것도 좋고,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논하며 나에게 조언을 구할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도 기쁘고 고맙기도 하다.

조금 뒤면 엄마가 된 나이지만, 난 사실 모성이 풍부한 엄마는 아니다. 아마 정말 엄마다운 엄마라기보다는 그냥 인생 선배나 친구 같은 엄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임신을 한 지금도 애에 대한 대화보다는 다른 것이 더 재미있다. 애가 태어나면 여러 궁금증과 내가 배워야 할 것들 때문에 내 화제의 중심에 아이라는 요소가 더 늘어나긴 하겠지만 세상이 뒤바뀌듯 내가 완전히 뒤바뀌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책임감있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겠지만 아마 애를 물고빨고 모든 것을 다 제치고 애가 일순위에 딱 등장하는 그런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뭘 이야기해도 다 애 이야기로 귀결되는 대화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결혼해봐, 지금 우리하는 이야기가 이해될 걸?”, “임신해봐, 또 달라질 걸?” 이런 질문과 같이, “애 낳아봐, 지금 생각한 대로 될 거 같아?”이라는 질문에 대한 내 답은 아마도 “내 인생이 딱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내가 지향하는 방향에 조금이나마 가까운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했기에, 인생에 한가지 정답만 있는게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어.”가 될 것이다. 하나가 태어나도 나는 하나 엄마가 아니라 나로서 존재할 것이고, 항상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뭔가 삐죽 나와서 튀는 사람이었던 나는 큰 틀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이의 존재는 인격적으로 훈련을 할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고, 많은 시행착오와 반성, 기쁨, 괴로움 속에 작고 큰 깨달음을 얻고 조금이나마 더 성장을 할 수 있겠지만, 갑자기 하나의 엄마로 뒤바뀌어 모성이 내 인생의 중심으로 부각될 수는 없다. 그리고 애의 성공이 내 인생사 목표도 아니고, 그게 나를 평가하는 잣대도 아니다. 난 인간이니 실패도 하겠지만, 내가 우리 부모님의 육아상 여러 의사결정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내 시행착오에 대해 크게 자책하거나 나를 비하하고 싶지 않다.

사람의 정체성은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나무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탈바꿈을 하게 마련이다. 엄청난 변화도 있을 수 있고 소소한 변화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끊임없이 재탐구해야 인생을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탐구가 잘 이뤄지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해야할 일만 명확해지면 남은 것은 실행 뿐이다. 실천으로 옮기고 나서는 내가 원하는 것에 최소한 가까운 곳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크게 불평할 것이 없다. 내가 불평을 엄청 하고 있다면 현재 잘못된 곳에 있다는 것. 내가 직장을 관두고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것은 바로 그 불평을 엄청하고 있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애를 낳아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큼의 어려움 등에 봉착한다 해도 그 안에서 최선의 길을 모색하고 나아가도록 노력할 것이고, 내가 노력을 할 동력만 갖고 있고, 실제 노력을 하고 있다면 난 불평하지 않을 거다.

예전에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이 와닿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 수록 와닿는다. 예전엔 ‘어차피 대천명이니, 사람이 크게 노력할 거 없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다. 이게 어찌 보면 ‘평안의 기도’라는 짧은 기도문과도 맞닿아있는 이야기 같다. “신이시여,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변화시키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요즘 내 머리를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뒤죽박죽 써서 정신이 없는 길고 산만한 글이 되었지만, 이게 말 그대로 내 요즘 머리속에 계속 흐르고 있는 생각들이다. 모성은 나의 성장의 원천이 되겠지만 나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 아닐 거라는 점, 그리고 더욱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자는 것이다. 난 이제 갓 36살, 앞으로 살날이 산날보다 훨씬 긴 젊은 사람이니 아직도 성장하고 발전을 위해 정진해야 하고, 그런 게 나니까.

시험도 끝나고 여름방학이다!

시험이 다 끝났다. 대학원 시작한 이래로 뭔가를 꼭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첫 방학이다. 덴마크는 학교마다, 학부마다 학기 시스템이 차이를 보인다. KU의 SCIENCE Faculty는 1년을 4개의 블록으로 나누는 블록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데, 각 블록마다 2과목씩 듣고 시험을 본 후 한주의 방학을 갖는다. 혹시 재시험이 필요한 학생은 (최대 2번의 재시험 기회가 있다. Pass를 못했을 경우에 한해) 이 주간에 시험을 볼 수 있고, 다음 블록 수업은 미리 reading list를 제공하기에 학생들은 다음 블록 수업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방학이 방학이 아니다.

내 기우와는 달리 모두 12점을 받아, 이번 학기는 첫 시험을 7로 시작해 나머지는 모두 12로 마무리하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냈다. 평생에 해본 적 없는 과탑을! 옌스 왈 내가 시험을 보는 스킬이 탁월한 것 같다고, 자기는 이런 성적표 못봤다고 한다. (자기가 봤을 때 공부를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는 것 같지 않았다는 뜻인 듯. 할만큼 했는데…) 솔직히 KOTRA에서 오랜기간 근무한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written exam이야 이런 경력이 개입할 여지가 부족하지만 oral exam은 그간 무수히 많았던 발표, 고객과의 미팅 등에서 쌓은 경험이 큰 도움을 준다. 특히 해외무역관 근무할 때, 갓 부임한 무역관에서도 엄청 전문가인 것처럼 고객에게 신뢰감을 주도록 대화하는 훈련을 해온 것이 oral exam을 볼 때 설득력있게 전달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준 것도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딱히 성적에 집착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잘하는 것만 잘하면 된다는 주의였는데) 여기와서 이러는 이유는 사실은 남의 땅에 살면서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오기가 깔려있다. 단지 이민왔다는 이유로, 현지어에 있어서 원어민 수준이 아니라는 이유로 2등시민같은 처우를 받고 싶지 않기에 그렇다. 누군가가 나를 무시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그네들 마음안에 혹여나 나를 얕보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피해의식이 있는 모양이다. 교육을 통해 습득한 간접적 피해의식이겠지.

아무튼 절반을 무사히 마무리했고, 좋은 학우들과 이런 다시 올 일 없는 좋은 1년을 보내서 행복했다. 오늘 저녁엔 그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절반의 여정을 자축하기로 했는데 기대가 된다.

입덧이 다행이 많이 완화되었다. 이러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는데, 2주 혹독하게 하더니 좀 좋아졌다. 우유, 요구르트, 마늘 이런 것 빼고 속을 좀 이래저래 틈틈히 채워주면 심각한 미식거림은 찾아오지 않고 있다. 덕분에 오늘 아침 옌스와 커피(난 녹차) 데이트를 할 수 있었고, 이번주부터 시작되는 여름방학을 조금 여유롭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시험과 입덧 후 폭탄 맞은 것 같은 집도 정리할 수 있을 것이고. 학기 시작하고 나면 대청소는 하기가 어려운 관계로 버릴 건 미리미리 버리고 정리해야 나중에 애가 태어나도 관련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방학엔 덴마크어도 다시 공부하고, summer course 시작전에 계량경제학도 다시 좀 보고, 책도 읽고, 집도 정리하고, 덴마크 땅도 좀 더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려한다. 오늘 아침 일어나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이제 한동안 시험도 없고 reading list도 없다!라고 신나서 소리를 지르니, 옌스왈 인생이 시험이야, 라면서 찬물을 끼얹는다. 후후. 당신은 참 엄하지만 공정해 (Du er hård, men retfærdig!, 독재자를 비꼬는 표현)라고 이야기해주니 참 좋아한다. 항상 현실에 발을 내딛을 수 있게 해주는 옌스. 우리 둘만의 마지막 자유로운 여름휴가 즐겁게 보내자!!!!

첫해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입덧으로 몸이 안좋다는 것도 분명 사실이지만 사실 지금은 막판 스퍼트를 낼 힘이 딸린다. 마지막 시험 과목은 literature list가 엄청 긴데, 수업에서 literature의 상당수는 몇개의 용어를 차용한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시험이 개인과제 30%, 그룹 프로젝트의 개인 발표 및 질의응답 30%, curriculum literature와 관련된 발표 및 질의응답 40%로 개인과제는 이미 낸 것이니 그렇다치고, 나머지 60%의 절반 이상이 이 literature관련 시험이다. 문제가 주어지고 나면 준비한 내용을 1분동안 훑어보는 형태의 partial open book 시험인데, 과목 평가때도 이에 대해 많은 학생들이 불평을 한 것처럼 나도 많은 불만을 갖고 있다.

동기가 없으면 정말 몸이 강하게 저항을 한다. 물론 이걸 읽고 배우면 도움은 되겠지만, 뭐랄까, 마음에 평가 방식이 좀 불합리하다라는 생각이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제대로 된 방학 없이 block사이 일주일씩의 휴식만으로 지난 1년을 끌고 왔으니 나도 지칠만큼 지쳤다.

늦깎이 공부를 하는 만큼 더 좋은 성과를 내야된다는 압박과 함께 유일한 동양인으로서 뭔가 쳐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오기, 나이가 들어서 늘어난 이해력 등이 결합되서 그런지 다행히 지금까지는 첫 과목 빼고는 모두 12점을 받았다. 내 소논문 지도교수 왈, 내가 그간 몇년 가르쳐 본 중 가장 과정에 engage된 학생이라고, 모르는 거 절대 포기하지 않고 여러번 물어보고 이해해서 독립적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소논문을 통해서 보인 만큼 이대로만 하면 석사논문까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아마 회사생활을 하면서 모르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얼굴 철판깔고 물어보고 배운 것이 도움이 되는 모양이라.

이제 마지막 시험 하나 남은건데, 잘 볼 자신이 별로 없다. 그룹프로젝트에 너무 진을 뺀 모양이다. 그렇게 열심히 한 그룹프로젝트는 30% 밖에 평가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 좀 억울하기도 하고…  결국 잘 못볼까봐 성적 잘 안나올까봐 두려워서 하는 핑계같기도 하고… 오늘 친구가 공유한 좋은 글귀에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은 두려움의 반대편에 서있다.”라고 되어 있었다. 그때, 내가 해야만 하는 것 또한 두려움의 반대편에 서있다는 생각이 들며 뜨끔했다. 이런 내 두려움을 들킨 것만 같아서.

모르겠다. 내일 하루 더 준비해서 금요일 아침 시험보고 끝나는건데,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잘하든 못하든 그걸로 내 석사 첫 일년이 끝나고 방학이다. 내 치졸한 두려움을 열어보이고 나면 좀 더 후련하게 집중할 수 있을까 블로그에 글을 쓰는건데, 제발 그리되기를 바라며 마무리한다.

소논문 제출 완료

지난 6주간 나를 힘들게했던 소논문을 드디어 제출했다. 담당교수의 최종승인을 받고 제출했으니 이제 오럴 디펜스만 잘 하면 된다. 이 소논문은 7.5 ECTS에 불과한 작은 수업의 결과물이지만, 앞으로 다가올 30ECTS의 논문이 어떤식으로 흘러갈 지에 대한 감을 잡아주는 좋은 경험의 산물이다.

한국에서 했던 석사가 약간 가라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정식 논문을 쓰는 대신에 경제학 에세이를 쓰고 졸업시험을 쳐서 졸업을 했기 때문이다. 경제학 에세이는 내용이나 형식면에서는 차이가 없는데, 내 담당교수가 주심이 되어 그 주심의 승인만 받으면 되고, 논문으로 DB에 등록되지 않는다는데서 차이가 난다. 대신 이 차이를 졸업시험이라는 것으로 대체하는데, 시험을 선호하는 나에겐 이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물론 나와 같은 길을 택하지 않고 정식으로 논문을 쓰고 디펜스를 한 사람도 있지만… 나는 주제를 늦게 잡아서 풀타임 직업이 있는 상태로 논문을 쓰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이곳에선 그런 옵션도 없거니와 이제는 풀타임 학생이니 그렇게 할 이유도 없다. 한국에서 논문을 쓸 때 담당교수와의 관계는 지금과 매우 많이 달랐는데, 훨씬 많은 지원을 받았다. 그때도 수업을 들어서 알고 있는 교수님이긴 했지만, 이곳에서처럼 상시적인 토론과 질문 등을 통해 교수가 학생들 면면을 잘 알고 있는 일이 드물었다. 이번 내 소논문 담당교수는 나를 잘 알고 있는 교수였고, 좋게 평가해주고 있는 교수였기에 더욱 많은 지원을 받은 것 같다.

이해가 안되면 혼자 주구장창 붙들고 있는 나였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초반에 중요 이론에 대해 내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어서 교수의 조언과 내가 생각한 방향의 차이를 어떻게 메워야하는지 엄청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미팅일정을 잡지 않은채로 시간이 흘러가니, 어떻게 되고 있냐고 메일로 확인을 하시는 거였다. 혼자 끙끙 앓다가, “그때 설명해주셨는데 여전히 이해가 잘 가지 않아 진척이 잘 되지 않고 있다. 정말 중요한 파트인데 내가 알고있는 바와 교수님이 말씀해주시는 게 달라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있다.”고 말씀드렸다.

황당해하실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해하겠다면서 잘 설명을 해주셨고, 그게 해결되고 나니 나머지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그 문제를 의논할 당시 프로젝트 관리가 잘 안된다고 상의하니, 그 스트레스 주는 역할 자기가 해주겠다면서 토픽마다 데드라인을 정해주시는 거였다. 아… 이런거 정말 좋아하는데. 누가 데드라인 정해주는 것…

정말 그 덕에 마지막까지 소논문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내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다음 논문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더 감을 잡을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그룹 보고서 말고 개인 프로젝트로 해서 교수의 수퍼비전을 받아가며 20페이지짜리 영문 보고서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래저래 성취감이 큰 수업이었다. 시험만 잘 보면 될텐데… 아 긴장된다.

대학원 첫 시험을 치르고

홀가분하다. 한 주 후에 다시 시작될 과목을 준비할 것을 생각하면 마냥 홀가분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주말만큼은 친구들과 와인을 앞에 두고 시끌벅적 떠들고, 한국에서 오는 가족들과 상봉도 하고, 산책도 하며 마냥 즐기리라.

시험 전날부터 서서히 시험에 대한 무게가 어깨를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초조함. 시험기간이 되니 괜한 손톱만 괴롭히게된다. 오후 두시. 시험까지 23시간이 남았는데, 아직 미처 읽지 못한 챕터가 남아있고 작년과 제작년 시험문제는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했다. 제한된 시간 내 전체 이론을 충분히 숙지하고 시험을 볼 것이냐, 과년도 시험문제를 중심으로 공부할 것이냐로 고민을 하다가 이론 공부를 우선순위로 택했는데, 프로그램내 다른 학생들은 다들 과년도 시험문제를 푸는 것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남과 다른 선택을 할 때면 불안함이 엄습한다. 과연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인지 확신이 없기에. 그러나 그간 세번의 과제를 무리없이 제출했으니, 시험이라고 다를 바 있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세차게 고개를 흔들고 불안함을 가능한한 멀리 밀쳐둔다.

오전부터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으니, 잠시 산책도 하고 장도 봐오자 싶어 밖으로 나왔다. 오전내내 자욱했던 안개는 사라지고 축축하리만치 이슬이 잔디에 잔뜩 내려앉았다. 조금 걷고나니 신발이 다 젖어버렸다. 넓은 잔디에 사람은 없고 갈매기와 비둘기만 보인다. 바닷가라는 생각은 안하고 살지만, 사실 바다에서 매우 가까운 곳이라 나라 어디에서고 갈매기를 볼 수 있는데, 그게 아직까지도 나에겐 낯설고 신기하다. 아주 큰 갈매기는 거의 매같은 느낌이지만, 작은 갈매기는 다리도 가늘고 길쭉한 게 흰색 깃털로 빼입어 괜히 아는 채 하고 싶어진다.

우리 동네의 잔디밭은 매우 넓지만, 아파트로 잘 숨겨져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가장 넓은 쪽으로 걸어들어갔는데, 역시나 나밖에 없어 방해받을 게 없는 기분이다. 아차. 내가 거기에 있는 새들에게는 방해꾼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한국보다 위도가 높은 이곳에선 가을부터 해가 아주 낮게 누워서 지나간다. 두시면 해가 눈을 향해 바로 들어와 석양 직전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때문에 겨울엔 햇볕을 쬐도 추위에 큰 도움이 안되는 듯 하지만 그래도 그 빛깔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시험기간이라고 안에만 처박혀있었더니 낙엽이 많이 져버렸다. 부모님이 오시면 그 끝자락 남은 것 보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비바람이 남은 기간 남은 단풍을 다 쓸어가버리지 않기만을 빌어봤다. 덴마크에서 많이 보는 수종이 우리와 다른 것도 있고, 나이가 다르고, 가지치기를 하는 방식도 달라서 가로, 잔디밭, 숲에서 보는 상당수의 나무는 밑둥부터 아주 굵고 키가 아주 크거나 옆으로 넓게 퍼져있다. 그래서 잔디밭에 몇그루의 큰 나무가 낙엽을 소복히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녹색 위에 노랗고 빨간 빛깔이 켜켜이 내려앉아 한 폭의 그림과 같은 풍경을 그리곤 한다.

30분의 산책동안 신발은 흠뻑 젖었고, 스트레스로 인한 나의 흥분도 조금은 가라앉았다. 시험기간이라고 라면만 먹지 말고 좋은 음식도 먹어야 뇌도 활동하지, 시험 전엔 좋은 음식을 먹어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동네 수퍼마켓에 들러 특가 할인하는 쇠고기 스테이크를 사갖고 돌아왔다.

마지막 챕터는 가장 최근에 배운 것이고 수업 중 잘 이해를 했으니, 목차만 읽어보고 나머지 시간동안은 과년도 문제를 훑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한 시험세트당 4시간 분량이니 모두 샅샅이 보고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것만큼만 하기로 했다. 저녁 9시, 더이상은 읽을 수가 없었다. 공부 더이상 못하겠다고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자, 옌스는 어차피 지금 모르는 건 읽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거 없으니, 스스로 여태까지 해온 것을 믿고 푹 쉬라고 한다. 기억도 나지 않는 쓸데없는 농으로 나를 박장대소하게 했고, 그 덕에 나는 마음 편히 공부를 접을 수 있었다.

시험 당일, 4시간 동안 집중해서 문제를 풀어야 하니 공부는 안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챕터 소제목과 정리노트를 눈으로 가볍게 훑어내린 후 모든 것을 덮었다. 오픈북 시험이니만큼 관련 자료를 바리바리 쌓긴 했지만, 4시간 동안 약 30문제를 과연 얼마나 자료를 보고 쓸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도 몇번은 아주 요긴하게 활용할 거란 생각에 소중하게 챙겨뒀다.

컴퓨터 시험인데, 내 디지털 펜이 시험시간 5분전에서야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일부러 미리가서 다 세팅도 하고 준비했는데, 왜 펜 테스트는 안했지 하는 자책감도 들었지만, 컴퓨터를 리부팅하고 펜이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시험 폴더가 컴퓨터에 나타났다. 데이터와 배경 상황만 거의 반페이지가 넘는데, 난 반도 미처 못읽은 상황에 컴퓨터 타자소리가 홀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금방 타닥타닥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괜히 초조함만 가중되었다. 마침 갖고 온 귀마개가 생각나 이를 귀에 꼽고나니 소음이 가라앉으면서 마음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도 금방 시험에 몰입해들어갔다. 갖고 온 자료도 많이는 아니더라도 몇가지 공식과 가정 등을 확인하는 중요한 순간에 요긴하게 써먹었고, 내가 다 읽지 못한 챕터에서 많이 출제되었지만, 한문제 빼놓고는 무리없이 풀어냈다. 네시간 동안의 시험동안 대부분의 학생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문제를 푸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6시, 못풀었던 문제를 풀려고 하는 순간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닫힌다. 제출 버튼을 누르고 일어나니 각자의 얼굴에서 희비가 갈린다. 학생들 모두 나름의 기준과 기대를 갖고 오늘의 시험에 임했으리라. 누구는 통과만 하기를 바라며 본 사람도 있고, 누구는 좋은 성적을 받기를 바라며 본 사람도 있다. 어차피 성적이 앞날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에 점수에 일희일비할 것도 없지만, 혹시나 나중에 공부를 더하려고 하면 성적도 중요하니 초조한 마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시험 전날 마지막까지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실망스러움도 일면 들었으나, 그게 나인 것을 받아들여야지 어쩌나 하며 넘어갔다.

7시. 내가 제출했던 시험의 pdf 사본이 메일로 날아들었다. 어떻게 썼는지 읽어보려고 했지만, 집중도 되지 않아서 접어두었다. 혹여나 성적이 영 이상하면 그때 다시 열어나봐야지 하며 보관함으로 넘겨버렸다.

시험은 대충 잘 본 것 같다. 시작이 반이라는 마음으로 첫 스타트를 잘 끊어야겠다 싶어 더욱 열심히 했다. 혹여 결과야 어떻든 내가 그리 싫어했던 과목인 계량경제학을 스스로 만족할만큼 공부하고 이제는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매우 큰 수확을 했으니, 겸허히 받아들여야겠다.

오늘부터 주말은 (밀린 집안일 빼고) 자유다.

코펜하겐 대학교 환경자원경제학 수학 중간소감 정리

블로그에 글을 쓴 지도 어느새 한달이 넘어간다. 주당 22시간의 학교수업과 7시간의 덴마크어 수업, 이에 따르는 숙제와 읽을거리, 프로젝트 등으로 인해 잠을 줄여도 모든 것을 할 수가 없는지라, 흐르는 것을 찬찬히 보고 정리할 시간이 없어졌다. 그저 흐르는 물결속에 방향을 잃지 않도록 균형만 잡고 가는 형국이다.

코펜하겐 대학교의 SCIENCE Faculty는 1년 2학기제가 아닌 4블록제를 택하고 있다. 겨울방학은 단 2주에 불과하고, 여름방학은 한국과 동일하다. 물론 지금과 같이 가을에 1주의 방학이 있고, 블록 사이 한주간의 방학이 있지만 그걸 다 합쳐도 한국의 방학엔 비할 수가 없고, 휴일도 부활절 주간 외엔 학기중 휴일도 없으니 학업 강도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프로그램엔 2명의 덴마크인 외에는 나머지 18명이 외국인인데, 다들 덴마크 수업 방식에 상당히 놀랄 정도로 학업 강도가 세다.

학교마다, 단대마다, 프로그램마다 커리큘럼이 매우 다양하고 수업의 강도가 매우 다양하기에 이를 일반화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SCIENCE Faculty에 있는 다른 프로그램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강도높은 수업과 읽을 거리, 프로젝트에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있다. 실례로 내가 아는 사람만 두 명,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중도 하차했다. 이는 SCIENCE 단대에 많은 자원이 분배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인문쪽 단대는 자원 부족으로 수업시수가 너무 부족해서 불만인 경우도 있다기에 불평은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외부인으로서 다른 나의 관점이 2년의 학업을 통해 덴마크화되어 이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게 되기 전에, 첫번째 블록의 2/3가 끝난 이 시점에서 우리 프로그램에 대해 간단히 느낀 바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 주도적인 학습이 없으면 배울 수 없다.

첫 수업일로부터 한달 이전에 이미 읽을 거리와 교재목록, 수업일정이 배포되며, 읽을 거리를 다 읽어왔다는 가정 하에 수업이 진행된다. 한 블록에 한국 기준으로 6학점에 해당하는 과목 2개를 배우게 되기에 한 과목 당 한주에 배우는 양이 한국에서의 배가 된다. 논문을 포함해 읽을 거리를 인터넷으로 사전에 제공하기에 못찾아서 못읽어왔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또한 읽어왔다는 가정하에 수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토론과 수업 내 프로젝트가 진행되기에 준비가 부족해지면 긴 수업시간이 다 낭비가 된다. 석사과정에 진학한 사람들은 학업에 뜻이 있어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전반적으로 남달라, 다들 열심히 해온다.

  • 학업의 목표가 뚜렷하다.

전공 프로그램 및 각 과목별 학업 목표가 뚜렷하다. 따라서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 자기가 얻어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전체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가 어떤 길을 갈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 수업 이외의 세미나 등을 통해, 아카데믹 라이팅, 프레젠테이션, 데이터베이스 서치 방법 등 학업을 위해 필요한 툴을 사용할 방법을 함께 배울 수 있다. 학생들이 학업 프로그램 중 길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꾸준한 정보와 교육이 주어진다. 한국에서 학사와 석사를 했었을 때 내가 다른 학생 또는 선배와의 교류를 통해 스스로 찾아서 나아가야 했던 길을, 이곳에서는 시스템을 통해 꾸준히 제공해주니, 이 툴을 사용해 보다 체계적으로 학업에 집중할 수 있다.

  • 교수과 학생간의 거리가 가깝고 교수의 수업 준비가 철저하다.

교수님을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처음엔 그리도 낯설더니만, 이제는 편하게 이름으로만 부를 수 있다. 많은 학생들이 이 부분을 놀라워한다. 수업에 질문을 적극적으로 하라고 꾸준히 유도하며, 질문에 명확한 답이 다 제공되지 않는 경우 별도로 연구해 답변을 제공한다. 또한 오래된 노트를 들고와서 수업을 하는 경우는 없다. 학생의 질문과 그 전 시간 진도, 학생들의 이해 수준 등에 따라 수업 슬라이드 변경, 추가자료 제공 등 피드백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제공된다. 너무 많은게 제공되서 다 읽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우는 있어도, 교수의 학업준비가 소홀하다는 생각은 할 수가 없다. 과제를 제출하고 나면 오래지 않아 교수가 항목 하나하나 검토해 구체적인 피드백을 제공한다. 그리고 교수 연구실로의 방문을 매우 장려한다.

  • 연습시간이 있어서 배운 내용을 수업 내 프로젝트를 통해 실생활에 적용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수업 시간 중 1/3은 연습에 할애된다. 교수는 학생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각 그룹의 수업내 프로젝트 수행을 돕는다.

  • 과제를 다 내고 통과해야만 시험을 치룰 수 있고, 과제를 다 통과한 사람은 대부분 시험에 합격한다.

대부분 한 과목당 과제가 2~3개 정도가 주어진다. 이 과제를 모두 제출해서 통과를 해야만 최종 시험을 치를 수 있다. 시험은 구두시험이 되는 경우도 있고, 필기시험이 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시험은 모든 가용 자원을 활용해 풀 수 있게 되어있으나, 내용을 모르면 어차피 풀 수 없게 되어 있기에 컨닝은 있을 수가 없다. 과제를 통해 수업을 충분히 이해하고 가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다. 6주 동안 2~3개의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서는 항상 한국에서의 중간/기말고사와 같은 긴장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기에 시험기간이라 특별히 난리칠 이유가 없다. 과제는 대부분 팀 과제 형태로 제출이 되기에 동료들끼리 돕는 문화가 형성된다. 혹여나 시험에 불합격할 경우, 한 학기 후와 또 한학기 후로 해서 2번 재시험 기회가 있다. 어떻게 해서든 학생들이 이해하고 통과를 하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주도적 학습이 없이는 통과하기 어렵기에 중도 탈락이 발생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외부 시험 감독관이 동석해 평가하기에 교수가 학점 부여에 독점적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이 줄어든다.

교수의 전권이라는 것은 없다. 외부 시험 감독관이 동석해 시험 채점을 함께 한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와서 채점을 하는 것이고, 시험의 장소도 학교가 아니라 외부의 장소가 되기도 하는 등 상당히 공정한 성과 평가가 이뤄진다.

대충 정리해보니 이정도인 것 같다. 전체적인 소감을 평가해보자면, 정말 만족스럽다. 예전에는 내가 이것을 배우면 과연 앞으로 이를 써먹고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면, 지금 생각으로는 이렇게 2년을 채우고 졸업하면 충분히 이 분야의 전문가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회사 생활을 12년 넘게 하다가 학교로 돌아와, 따끈따끈한 지식으로 무장한 파릇파릇한 젊은 이들과 경쟁을 과연 할 수 있을까 엄청 긴장하고 왔는데, 공부에 꼭 때가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간만에 공부를 하는 나는 그들과 달리 학업에 대한 갈망이 있기에, 그리고 또 다른 경험을 토대로 이해의 폭이 넓어져 있기에 오히려 유리한 점도 있다. 그리고 몇년전 파트타임으로 야간에 다시 했던 석사과정 중 존경하는 이학배 교수님께 통계학에 대해 꽤나 탄탄한 기반을 쌓았고, 다시한번 경제수학과 미시경제를 공부하면서 오래되었던 지식에 기름칠을 조금이나마 했기에 이 모든게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모로 그간 이래저래 쌓아온 일들이 헛된 것은 없다는 생각에 지금 주어진 것도 열심히 하면 다 피가되고 살이될 것이라 생각한다. 늦깎이 공부가 부끄러울 것도 없으며, 늦은 것도 없다. 오히려 이 늦은 시기에 의식주 걱정 없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 특권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며 감사하고 축제처럼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항상 전문가가 되지 못한 것, 뭔가 내가 이 땅에 본질적인 측면에서 기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많은 갈등을 해가며 지난 12년 직장생활을 해왔는데, 환경경제학자가 됨으로써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길이 조금씩 보이기에 남은 2년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들기 시작한다. 이 초심을 앞으로도 이어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