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습을 그려가기

옛날에 교과서에서 큰바위얼굴을 읽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큰바위얼굴을 닮은 사람을 찾아오던 소년이 나중에 그 바위와 닮은 얼굴을 갖게 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예전의 나는 참으로 내가 아닌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에게 없으면서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있던 사람을 볼 때마다 내가 작게 느껴지고, 왜 나는 그런 면모를 갖지 못하는가, 왜 나는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버리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으로 나를 많이도 괴롭혔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내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모습에 가깝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고 여전히 많이 멀다. 아니 이제는 이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라는 게 딱히 없어진 것 같다. 그렇지만 예전에 내가 나를 싫어하던 모습에서는 벗어난 것 같다. 

내 못난 점이 훗날 드러날까 싶어 그런 못난 부분을 미리 한껏 꺼내보이는 것이 하나의 예다. 아마도 일련의 드러낸 단점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왜곡된 마음의 결과였던 것 같다. 내 단점을 굳이 감추자는 것도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상대가 관찰하고 발견할 수 있도록 놔두지 않고 그런 점을 불필요하게 다 미리 볼 수 있게 다 끄집어내서 설명하거나 보여줬다. 이런 내 모습이 참 싫으면서도 그렇게 하곤 했다. 그리고 장점은 항상 겸양의 탈을 쓰고 과하게 그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말이다. 아마 내가 노력을 해서 장점을 보여줬는데도 거절당하는 상황을 방지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30대 초반까지의 나는 컴플렉스 덩어리였다. 외모도 별로고, 왈가닥에 할 줄 아는 건 일밖에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언어에 감각이 있다곤 해도 해외에서 살다온 사람에 비할 바도 아니고. 뭔가 눈에 띄게 뛰어난 게 없던 것 같았다. 오히려 못난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

어려서 들었던 코가 조금만 높았다면 더 예뻤을텐데, 이빨만 교정이 잘 되었어도 (내가 인내심을 갖지 못하고 고등학교 때 관뒀다.) 더 이뻤을텐데. (결국 30대에 들어 턱관절 문제의 악화로 내돈 들여 다시 교정했다.) 주변에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만 안들었어도 아마 내 이나 코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성격적으로는 내 왈가닥같은 성격으로 좋아하는 애의 관심을 받지 못하자, 그 고민의 결과로 엄마가 성격을 한번 좀 얌전하게 바꿔보자 하고 이야기해주셨는데, 그 성격이 그런다고 바뀔리도 없고, 그냥 내 성격이 단점으로 느껴지게 되는 계기만 된 것 같다. 

그 많은 게 바뀐 건 30대 들어서 심리서에 대해 열심히 읽어가며 나의 감정에 대해 이성적, 분석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하면서, 옌스를 만나기 시작하면서였다. 외모와 성격을 포함해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기뻐해주고, 단점에 대해 조차 장점으로 봐주는 옌스와 함께하며 나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내 모습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다보니, 나에 대한 나의 불만족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변화라는 건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도 머리속에서 만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그냥 나는 나의 장점이 있음을 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다 내 것으로 할 수 없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음도 알고. 또 그래서 이제 나를 과도하게 깎아내리거나 칭찬을 과하게 거부한다거나 남을 좋게 평가해주기 위해 나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우아함을 항상 갖고 싶었는데, 그건 나와 너무나 멀리 있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나를 희화화하고 익살스러운 행동을 하면서 그렇게 하는 나를 혐오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에게도 그러한 면이 있음을 발견했고 그걸 평소 생활에서도 체화하고자 노력했더니 나를 익살스러운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예전엔 이런 체화의 노력을 가식이라 평했을텐데, 그렇지 않음을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가진 사람을 보면 부러워하지 말고 노력을 해야 함을 깨달았다. 꾸준함만이 답이다. 그리고 지금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게 출발선이니까. 그렇게 나는 나를 그려가고 있다. 

나의 차가운 단면

간혹 내가 참 차가운 사람이다 싶은 때가 있다. 감정이 완전 메마른 건 아니지만 머리가 감정에 앞서기도 하고. 사실 그 덕에 크게 누구와 다투거나 하지 않는 것 같다. 옌스를 만나고 사랑하고 또 잘 다툴 일이 없는 건 둘이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만약 옌스가 나와 반대의 사람이었으면 나는 정말 힘들었을 거고, 내가 현재의 나와 반대의 사람이었으면 옌스가 나를 견디지 못했을 거다. 감정이 상한 일이 있었으면 곰곰히 앉아 생각을 해보고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이성적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내 감정을 전달하고 내가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범위 안에서 상황을 바꿀 만한 방법을 제시하고 해결하니 소리 높여 다툴 일이 없다.

그런데 삶은 나와 닮은 사람과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저런 인생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내 이야기에 서운해할만한 사람들이 꽤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줬으면 하는 바램에서 하는 푸념을 들을 때라던가, 내가 생각하기엔 합당하지 않은 일인데 동의를 구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라던가. 원하는 답을 해주기가 너무 어렵다.

사실 내가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닌데, 10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참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나이가 들며 외양도 달라지지만, 그보다는 내 알맹이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 문득 드는 생각은, 해외생활이 나를 바꾼 것 같다. 혹시 내 깊숙한 속에 내밀하게 힘들어하는 나를 내가 숨겨두고 있는건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지만,  적응의 시기도 많이 지나고 더이상 그렇게 힘든 것 같지는 않다.

누가 잘해야만 한다고 한 건 아니지만 그간 시키지 않아도 한국에서 살아온 방식은 여기에 산다고 변하지 않기에 뭘 해도 그냥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래서 잘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내가 정말 독립된 존재로 강인하게 살지 않으면 내 삶이 힘들어지니 최대한 빨리 홀로 서기할 수 있게 언어도 배우고, 학업도 열심히 하고, 체력도 기르려 한다. 뭘 하더라도 남편도움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어떤 문제에 대한 상의는 해도 실제 서류작업을 하거나 행정처리나 금융거래를 하든 사전을 찾든, 구글 번역기를 돌리든, 법전을 읽고 공문서를 읽어내서라도 다 직접 했다. 간혹은 남편에게 이민자로서 이렇게 뭘 하나 하려해도 다 어려운게 너무 힘들다고 푸념하기도 했지만 결국 언젠가는 내가 다 배워야 할 일이니 하겠다고 나서서 다 했다. 그러니 누가 나에게 그런 걸 다 빨리 잘해내는게 부럽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면 부럽거나 할 일이 전혀 아니고 그냥 열심히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열심히 하지 않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그건 개인의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해줄 수 밖에. 결국은 공감이 참 결여된 응답이다.

내가 이렇게 했다고 남들도 이렇게 해야하는 게 아닌데, 타인의 힘듦에 대한 하소연이나 고민을 들을 때면 내가 너무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답을 한 것 같다. 나도 십년전의 나였으면 지금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했을텐데. 좀 더 공감하고 이해해주지 못하는 내가 아쉽다. 물론 공감 잘 못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건 아니라 그건 내 본성이려니 싶지만… 내가 딱히 차가운 사람이 되려고 해서는 아닌데 조금 그런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해서 아쉬운 거다. 아기가 태어나고 내 모성애를 자극해주면 바뀔까? 아기가 태어난다고 내가 엄청 바뀔 것 같지는 않은데.

인생사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는 거니까, 한켠으로 차가운 면을 가진 나를 받아주는 사람들하고 만이라도 잘 살아봐야지. 모두에게 사랑을 받으려하는게 아니라 미움받지 않으려는 것도 다 욕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