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머리, 맨 얼굴, 운동화

겉머리는 까만데, 머리를 뒤적뒤적 들춰보면 들춘 곳마다 서너가닥씩 흰머리가 보인다. 얼굴색도 딱히 찝어 말하긴 어렵지만 조금 칙칙해져 보이는데, 아마 피부의 탱탱함이 줄어듦에 따라 조금씩 얼굴이 쳐지기도 하고 해서 그래 보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꺼워서 불만이던 눈두덩이는 가면 갈수록 얇아져서 눈을 부릅뜨면 쌍꺼풀이 만들어질 것 같은 기세다.

원래도 화장이라 함은 어디 갈때나 하는 것이었기에 이곳에서도 똑같이 하고 살지만, 요즘은 어디 갈때도 정말 큰 행사가 아니고서는 (그나마도 회사에서 하는 행사 등은 제외하고) 화장을 하지를 않으니 일년에 화장을 한번 할까 말까한다. 그나마 화장을 하다 안했을 땐 안한 얼굴이 칙칙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요즘 화장을 정말 드물게 하다보니 맨얼굴이 나쁘지 않게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 쫙 붙여 묶어 틀어올린 머리가 나에게 잘 어울리고, 상체는 적당히 타이트하게 붙는 옷, 하체는 루스하게 여유가 있는 옷이 잘 맡는다는 것 등을 알면서 옷을 사는 것이 쉬워졌다. 중앙부처가 아닌 이상 옷을 상당히 캐주얼하게 입어도 되는 공공부문에서 일을 하다보니 옷을 특별히 많이 갖고 있을 필요도 없다. 신발은 변호사나, 컨설팅 이런데 일하는 거 아니면 운동화를 신는 게 전혀 흠이 되지 않는 문화인 이상 더이상 구두를 신지 않는다. 입고 나를 치장하는 부분에서 시간이나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해졌는지…

체력도 예전같지는 않고, 조금만 다쳐도 낫는게 오래걸리는 걸 보면 나이가 드는 걸 느끼는데, 생각의 면에서 갖게 되는 많은 여유를 따져보면 나이가 드는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이. 변화.

올해 마흔이 된다. 한국 나이로야 이미 마흔이 되었다지만 그 방식으로 나이를 셈하지 않은 지 벌써 수년이 흘렀다. 여러가지로 내 일상에 변화가 느껴진다. 과거에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 중요해지고 중요했던 것이 중요하지 않아진다. 더이상 외양을 치장하는 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화장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심지어는 파티에 갈 때 조차도. 하이힐을 신지 않고 무거운 핸드백을 들지 않는다. 화장은 눈과 피부에, 하이힐은 발에 부담을 주니까. 자주 비가오는 날씨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외투는 우천시에도 젖을 걱정이 없는 실용적인 것으로 고른다. 셀룰라이트라던가 다른 곳보다 살이 더 붙은 곳 등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신체부위에 대해서도 크게 불평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생일이라던가 남편과의 기념일이라던가  나에게 특별했던 날이 덜 특별하게 느껴지고 이를 기념하는 행위는 매우 의식적으로 해야만한다. 일상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게 무뎌진다.

이런 일련의 차이는 하나를 관찰하는 속에 더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새로운 목걸이, 팔찌, 치마, 원피스, 신발 등 새로운 물건에 감격을 하고 어른들이 하는 건 다 하고 싶어한다. 또는 또래 언니들을 보고 경외를 하며 그들이 하는 것들을 자기도 하고싶어한다. 생일은 너무나 행복한 거고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감격스럽거나 절망스럽게 느껴지는 등 사소한 일에도 온 몸을 던져 감정을 느끼고 표현한다.

나이에 맞게 변하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이기도 하고 그런게 좋은 때도 있겠지만 간혹 그런 걸 뒤집을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의식적인 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