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으로 보는 덴마크 내 근로문화가 차이

나라마다 근로문화가 다르듯이 분야마다도 근로문화가 다르다. 나는 중앙부처 중에서도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된 감독기구에서 일하기 때문에 정권에 따라 장관이 새로 바뀐다한들 우리의 일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장관이 우리에게 일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라고 지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일을 우리에게 요청할 수 있지만, 그 결과물은 전적으로 우리가 전문적으로 판단한 결과에 따라 제출할 뿐, 정치적 색깔에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장관이 결과를 틀 수 없게 되어있다. 이러한 정치적 독립성은 업무 추진에 있어서 짧은 의사결정 채널, 명확한 업무추진방향 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큰 장점이 있다. 물론 덕분에 중앙정부기관 지방이전을 할때 다른 많은 정치적 중립 기관들처럼 외곽으로 밀려났다는 단점이 있긴하지만… (우리 부 산하에서 유일하게 우리만 이전되었다.)

옷 입는 것만 봐도 중앙부처간에 차이가 보인다. 장관이 있는 부를 보면 다들 정장을 입는다. 20-40대 속하는 남자들을 보면 마치 맞춤정장인냥 몸에 딱 붙는 정장을 입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매우 전형적이게도 하얀 셔츠에 검색 수트를 입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예기치 못하게 갑자기 장관 보고를 들어가야할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권력에 가까운 곳에 일하다 보니 보수적이어서 복장도 보수적이라고 한다.

부(Ministeriet) 아래에는 세부 정책을 담당하는 국?정도로 번역할까 싶은 Styrelse 들이 있고, 우리처럼 법령에 따라 정치적으로 독립성을 보유한 감독기구와 국가가 지분을 보유하는 국유 기업이나 기관 등이 있다. Styrelse들을 보면 복장이 조금 더 자유롭다. 중요한 회의가 있으면 복장을 조금 더 갖춰입고오기도 하고 하는데 부와는 뚜렷하게 차이를 보인다. 예전에 근무했던 경쟁소비자청은 Styrelsen 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독립성을 인정받는 부서가 일부 있어서 좀 더 자유로운 것 같았지만 그래도 스마트캐주얼 정도 되는 드레스코드가 있는 분위기였다.

우리처럼 정치적으로 독립된 기구는 또 좀 다른게, 드레스코드가 없고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린 느낌이다. 추리닝을 입고 일하는 사람이야 없지만 대학교에서 연구만 하는 너드같은 복장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꽤 된다. 정말 평상복 느낌. 외부 회의가 있어도 같은 복장이다. 부서장은 다른게 부서장들은 항상 정장이나 스마트캐주얼을 입는다. 옷은 조직간 문화의 차이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일의 수행방식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부처의 종류에 따라 드러난다.

같은 조직 내에서도 부서마다 업무의 성격 또는 상사에 따라 근로문화가 꽤나 다르다. 우리 부서는 연구부서라 끊임없이 배울 수 있는 환경이다. 학계로부터 새로운 연구방식을 꾸준히 수혈받아 그게 규제 감독에 도입될 수 있게 하는 하는 역할도 있는지라 대학교에서 일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있다. 업무 자율성이 높고, 프로젝트 호흡이 짧은 것도 있지만 일년을 넘는 단위의 프로젝트도 많아서 업무 강도가 유동적으로 변하면서 좀 바쁜 시기가 오더라도 직원이 과한 일정으로 지쳐 나가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기 좋다. 이와 함께 주제에 대한 토의/토론이 매우 장려돠는 분위기이다. 이는 옷차림에서도 드러나는데 진짜 편안한 분위기.

덕분에 나도 맨날 입는 옷만 입고 다녀서 더이상 옷을 살 필요가 없어졌다. 여성 정장용 백팩도 그냥 유니섹스 백팩으로 대체되었고, 항상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깔끔하게는 입지만 포멀하지는 않게. 구두 안신은지는 백만년된듯한 기분이고 핸드백은 그냥 아켓에서 산 나일론 카메라백 하나로 얼마를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아주 닳아서 떨어질 때까지 들고 다닐 듯.

한국 전 동료들의 정장 사진을 보면 그게 익숙해서 이상하지 않은데 지금 동료들이 정장을 입고 출근하면 무슨 일 있냐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어볼 거다. 이런 상황인지라 사무실에 빼입고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포멀한 옷은 옷장에서 썩을 정도.

공영방송 인터뷰를 한다해도 따로 옷을 더 차려 입지 않고 그냥 나서서 인터뷰를 하는 덴마크인들을 티비에서 보면서 덴마크 이주 초기 문화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니 나도 얼마나 변했는지 새삼 놀랍다.

[덴마크 vs. 한국] 공공부문 근로문화 비교 – 타부처와 협업

내부적으로 꼭 공문서의 형식으로 남겨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데에 있어서는 이메일이 사용된다. 여러부처가 협업을 해서 통합된 문서를 생산해야 하는 경우, 예를 들어 기후변화와 관련된 정책문서를 생산할 경우 엄청 많은 메일이 오고 간다. 주무부처가 초안을 만들기는 하지만 그 문서가 오고가면서 관련부서 담당자들이 트랙체인지 기능을 통해 수정제안을 하고 코멘트를 주고 받는다. 물론 해당 코멘트를 담당자 이름으로 보내기까지 상사와 조율을 한다. 그리고 해당 사안이 아주 중요하거나 마무리 단계로 넘어갈 경우 사안에 상응하는 책임자와 조율을 한다. 이 과정이 우리보다 형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이뤄진다. 메일로 상사에게 코멘트를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권한 이양도 많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런 협업패턴은 여러 부처가 연관된 법안을 만들때도 마찬가지다.

부처간에 이견이 갈릴 때는 코멘트로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주무부서가 총대를 매고 정리를 하기도 하는데, 여기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적극적인 코멘트를 요청하는데, 언어적인 문제도 있고 어떤 포인트를 봐야하는지도 미숙하기도 했다. 덕분에 초반엔 너무 무른사람처럼 보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한국 공공부문에서 일을 중단한지 5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그 새 한국의 공공부문 근로문화도 바뀌었을까 싶지만, 사실 이런 수준의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형식주의 탈피에서 느껴지는 생산성 향상이 엄청 크기에 우리나라에도 이런 캐주얼한 근로문화가 도입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덴마크 주말근무/야근. 외노자의 두려움

뜨거운 감자인 정책을 위한 모델을 만드는 부서에 있다보면 덴마크라고 다를게 없구나. 금요일 늦은 밤에 메일을 보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뭐고, 주말동안 자신이 할 건 뭐고 자기 담당 파트는 월/화까지 준비되는 데 내 파트는 언제까지 될 수 있냐는 메일. 주말에 일을 해서 최대한 빨리 보내야겠다. 안그래도 이미 바쁜 다음 주인데… 겁나게 바쁘겠다. 좀 더 차분히 더 꼼꼼하게 준비하고 싶은데 또 장관님 생각은 다르신거지… 재택근무에 보육원도 닫아서 풀타임 근무하려면 아침 7시부터 6시까지 일하면서 중간에 애도 보고 밥도 해야하는데.

그래도 한국과 다른 건 진짜 응급한 상황이 아니면 야근이나 주말근무에 대한 직접적 요구는 없다는 것. 딜리버리만 맞추면 된다 이거지. 물론 중간중간 유연적 태도에 감사하다며 (미리) 떡밥이 깔리는 경우도 있다.

뭐 근로 문화에 불만은 없다. 그냥 여기에도 바쁠 때는 어쩔 수 없는 걸 아니까. 업무가 늘고 커버리지가 넒어질 수록 로드가 올라간다. 한국에서 일할 때보다 짧은 시간 일하지만 더 갈려들어가고 이 분야에는 내가 전문가가 되는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으니까. 주변의 뛰어난 동료들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과거 논문 쓸 때는 그냥 분석만 하는 거였다면 이젠 이 내용을 매뉴얼로 만들어 남들이 다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고 실제 경제에 큰 영향이 가니까 두렵다. 큰 신뢰만큼 두로움도 커진다. 거기에 덴마크어로 일을 하는 것도 미묘하지만 끊임없이 두렵다. 매일 매일 직면하는 두려움이 스트레스이기도 하지만 아드레날린같기도 하다. 중앙부처에서 일한다는 건 그렁 그런 것 같다. 박봉이지만 영향력이 있는 곳에서 일함으로써 내가 한 일이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잘 헤쳐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