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양면

덴마크 남자 만나서 결혼해서 덴마크에서 사니 좋겠다는 이야기를 간혹 듣는다. 시월드 없어서 얼마나 좋겠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다른 나라에 사는 일은 내 나라를 반납하고 그 나라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최악의 상황은 내가 내 나라의 문화와 환경과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내가 살아야 하는 나라의 그것들을 너무 안좋아하는 경우일 거다. 최고의 상황은 내가 내 나라의 것을 안좋아하고 상대의 것을 좋아하는 경우일 거다. 그렇지만 이런 극단의 상황은 잘 없다. 대부분 자기 나라 것의 일부는 좋아하고 일부는 싫어하고 다른 나라 것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렇지만 이민이라는 건 그런 내 일부에 대한 선호를 반영해 취사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나라에 사는 이상 받아들여야 하는 규범이나 제도, 생활 여건 등이 존재한다. 내가 싫다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바뀌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 사는 일이라는 건 그런 거다. 그 나라의 것들을 좋든 싫든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하는 것. 그 나라의 싫은 것을 보며 내 나라의 대체제를 그리워하며 한탄을 한 들 바뀌는 건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건 틀린 말이 아니다. 물론 자기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있을 거고, 피해갈 방법이 있는 것도 있겠지만 전체를 바꿀 수도 없고, 그건 너무 큰 힘이 든다.

시댁이 좋아도 친정이 멀어지고 원하는 시기에 볼 수 없으며, 친구와 가족 모두 마찬가지이다. 세금을 많이 내면서 한국에서 받지 못하는 서비스를 받는 분야도 있겠지만 납부세금대비 한국에서보다 낮은 질의 서비스를 받는 분야도 있을 테다. 또는 한국에서는 무상인 것들, 예를 들어 무상보육, 무상급식 같은 것들이 여기에서는 해당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장바구니 물가는 싸서 집에서 해먹기는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외식물가는 너무 비싸서 외식 자주하며 살기 어려울 수 있다. 공공부문의 재정건전성이 탄탄한 편이지만 공공요금이 한국에 비하지 못하게 비싸다. 내가 제대로 세금 내고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어디고 서비스 물가가 매우 비싸다. 나도 칼퇴근을 할 수 있지만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아 퇴근하고 필요한 물건 사는 일이 힘들 수 있다. 나도 갑질이 별로 안당하는 세상에서 살 수 있지만 한국 배송서비스같이 우리 구미에 싹 맞는 서비스들이 잘 없을 수 있고, 불친절하다고 매장에서 컴플레인하는 등의 소소한 갑질은 할 수 없다. 공기는 좋겠지만 겨울이 아주 길고 우울하고 비가 많이 올 수 있다. 서로 평등한 문화를 즐길 수 있겠지만, 이미 한국에서 좋은 지위를 누리던 사람에겐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 것일 수 있다.

그냥 다 가질 수 없다.

내 생각엔 그렇다. 한국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곳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고, 한국에서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곳에서도 행복할 수 없을 확률이 높다고.

내가 여기가 좋고 잘 사는 건 다행히 내가 잘 적응했기 때문이고, 이곳의 것들이 한국의 것들보다 잘 맞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들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이곳의 좋은 점 이면엔 안좋은 것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내게 중요한 것이 잘 맞는 곳이 어디냐 하면 운이 좋게 덴마크이고, 이곳에서 만난 인연과 환경이 또 운이 좋게 좋았기 때문에 잘 지내는 것이지 그냥 여기가 좋은 건 아니다.

시가와 친정사이, 그리고 행복의 레시피

아무래도 남편네 나라에 살다보니 친정보다 시가와 자주 보게된다. 물론 연락이야 비교할 수 없이 친정과 더 많이 하지만 보는 주기는 시가가 훨씬 잦다. 시부모님과 연락은 주로 문자메세지로 이뤄지는데, 간간히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로부터 메세지를 받고 나도 두분께 메세지를 보낸다. 주로  두분을 수신자로 헤딩에 넣어 시어머니께 문자를 보내드리지만, 혹여나 그게 섭섭하실까봐 시아버지께 보내기도 한다. 전화는 주로 시어머니와 이뤄지는데, 내가 전화를 드리기도 하고 시어머니가 주시기도 한다. 주기로 보자면 한 2주에 한 번 정도?

옌스는 우리 부모님께 직접 연락을 드리지는 않고 내가 연락을 드릴 때 옆에 있으면 안부를 전하곤 한다. 영어로 아빠와는 대화를 할 수 있지만, 아직 옌스의 한국어 실력으로는 나 없이 부모님과 대화를 할 수 없기도 하고. 아마 이부분은 우리 부모님이 조금 섭섭해 하실 수도 있는 부분이긴 한데, 여긴 약간 자기 부모님에 대한 연락이나 그런건 셀프인 부분이 많아서 딱히 내가 뭐라 이야기하긴 애매하다. 시부모님께 연락 드린 것도 시부모님이 먼저 문자로 연락을 주셔서 답을 하다보니 나도 답을 하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아, 내가 조금 너무했나?’ 싶어 전화로 한 번 연락을 드렸더니 그 다음부터 조금씩 전화로도 연락을 주신 거였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보니, 아마 내가 좀 역할이 부족했나 싶다. 양쪽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하면 그냥 내가 잘 지낸다고 양쪽에 전할 뿐이지, 안부를 물었다는 사실을 옌스에게 전하는 건 잘 안했다. 옌스는 누가 전화나 문자로 연락하며 내 안부를 물으면 꼭 나에게 그 사실을 전하곤 했는데. 그런 사실을 듣고 나면, ‘아. 그 사람이 내 생각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걸 떠올려보면, 나도 그랬어야 했었는데… 옌스가 괜히 우리 부모님은 자기 안궁금해하나 싶어하겠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국제결혼이라고 시가와의 갈등이 없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는게 다 똑같다고, 여기도 가족간의 갈등이 다 있는 것이고,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도 집안 따라, 사람 따라, 국가별 문화 따라 갈등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그렇다. 다행히 난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시댁을 만나 아무런 문제 없이 아주 잘 지내고 있는데, 항상 그걸 당연시 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기억하고자 한다.

국제결혼은 양가의 문화가 만나는 것이라 나 뿐 아니라 시가 입장에서도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시부모님을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이 곳의 문화를 내가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어머님, 아버님으로 부르는 우리 문화를 시부모님이 받아들일 것이냐 같은 작은 문제부터 그렇다. 옌스는 처음엔 이상할 것 같다고 했지만, 시부모님께 내가 우리 문화를 설명하고 그래도 되겠는지 여쭤봤을 때 시부모님은 매우 좋아하시며 (그런 문화냐고 놀라시긴 했지만) 그러라고 하셨고, 그분들 또한 나를 딸 해인이라고 불러주신다.

시가를 방문해서 집안일을 거드는 문제부터, 시부모님이 우리집에 오셨을 때 어느 방이든 편히 드나드시는 것까지 다 다르다. 이건 그냥 나라간의 문화차이에 집안 차이가 겹쳐 있어, 어느 까지가 나라의 문화고 가풍인지의 경계가 모호하고 나로선 구분해내기가 불가능하다. 간혹 내가 생각하는 시가와 며느리 사이의 경계를 넘어선 행동들에 살짝 놀라는 일이 있더라도, 그게 만약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하실 일에서 벗어나있지 않다면 그냥 별 의미없이 받아들이기로 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예전에 우리 집에서 모여 같이 이동하는 일이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기억이 정확히 안나지만 시어머니께서 옌스 옷인가 소품인가를 하나 챙기시려고 침실 옷장을 여셨던 일이 있었다. 순간은 놀랐지만, 나와 같이 살기 전까지는 매우 편히 드나드시던 아들네 집이니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아실 것이고, 옷장을 여는 일이 갑작스레 터부시될 일도 아니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며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내가 시부모님을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내가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과 같을 수 없듯이 시부모님이 옌스나 시누이를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시부모님이 나를 딸과 똑같이 대하지 않으신다 해서, 아니면 옌스 생각을 하시는 것만큼 내 생각을 안하신다 해서 섭섭하지 않고, 섭섭해 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그런걸 느낀 바도 없지만, 설령 그런 일이 생긴다해도…) 같이 사는 아들이 행복하기를 위해서이든 어떤 이유이든 내가 잘 지내고, 잘 지내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일이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어찌 상대에게 기대하랴.

명절 스트레스도 없고, 연락 자주 안한다 타박하는 사람도 없고, 가정 대소사는 다 직접 챙기는 남편이 있으니 시가 문제로는 난 아주 땡잡은 기분이다. 내가 시부모님을 좋아하는 것처럼 옌스도 우리 부모님을 좋아하고, 특히 내년 한국에 방문해 우리 부모님과 지내며 혹여나 엄마와 단둘이 있는 순간이 생길 때에 대비하려고 옌스가 지금 바짝 한국어를 공부하는 걸 보면 참 고맙다.

반대로 옌스는 굳이 그렇게 안해도 되는데 자주 시가에 연락을 하는 나에게 참 고마워한다. 자기 가족은 자기가 챙기는 셀프문화가 자리잡힌 이 곳에서 자발적으로 꾸준히 연락을 하고 가까이 지내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연애 초기에, 자기 가족과 내가 만나는 자리가 몇번 있고 나서,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며, “가족과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는 게 아니라, 같이 보내는 시간이 너에게도 좋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너는 나와 함께하는 것이지, 내 가족과 함께하려는 것이 아니다. 혹여나 내 가족과 너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하면 난 네 편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옌스이니 물론 내가 가족과 잘 지내길 기대했겠고, 나도 그들이 이미 마음에 들었지만, 저렇게 이야기해준 자체에 마음이 정말 든든해졌었다.

이런 고마운 감정이 조금씩 쌓이는 걸 모아두었다가 간혹 표현하곤 한다. 그러면 옌스나 나나 모두 이런 것들 당연시 하지 말자며 이런 소소한게 삶을 행복하고 감사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에 공감하는데, 이런 게 서로 잘 맞는다는게 참 감사하다.

이제 불과 3년밖에 안된 커플이지만 정말 큰 갈등없이 행복하게 잘 살아온 것에 대해 요인을 분석해보자면,

  1. 우선 라이프스타일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 – 금전감각과 관리, 건강/체력관리, 가족과의 관계, 인생 전반에 걸친 목표와 생활 태도, 집안 관리 등등
  2. 서로에 대해 어떻게 해주길 기대하는 점이 없다거나, 딱히 기대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려는 점
  3. 서로가 하는 행동이 혹여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게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마음 상하게 하려고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4. 원하는 게 있으면 구체적으로 정확히, 또 솔직히 말하는 것
  5. 상대가 내 요구에 거절하더라도 이유가 합당하면 받아들이는 것
  6. 감사함과 사랑함을 작든 크든 꾸준히 표현하는 것
  7. 침묵 고문하지 않는 것 (이것은 절대 하지 않기로 약속한 바 있다.)
  8. 주말 하루는 꼭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갖는 것 (하나가 태어나면 다른 형태로 바뀌겠지만)
  9. 서로가 각자의 취미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적당한 수준의 개인 공간/시간/자유를 주는 것
  10. 서로를 위해 상대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것에 노력하는 것
  11. 우리 문화가 이렇다고 강요하지 않고 서로 대화를 통해 타협하는 것
  12. 우리의 현재 생활와 주어진 것에 대해 당연시 여기지 않는 것
  13. 이런 우리의 삶의 방식을 친정과 시가 모두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

대충 이런 것 같다.

간혹 국제결혼해서 해외에 나가 사니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런데 그게 좋을 수도 있지만 마음가짐에 따라서는 정말 더 힘든 게 될 수도 있다. 실제 그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커플들도 많이 있고. 사실 옌스를 만나서 한국의 문화 중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겪지 않아 좋은 대신에 한국 문화에서 내게 편하거나 득이되는 것들을 누리지 못해 좋지 않은 점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것 생각하면 끝이 없고 서로 자기 좋은 것만 주장하는 것으로 흐를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 둘이 합리적으로 판단해 공평하고 서로가 만족스러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한 쌍의 한-덴마크 커플 탄생

어제는 날씨가 하루종일 변덕스러웠다. 비가 오다 그쳤다, 흐리다 해가 떴다가, 바람이 불다 잦아들었다가. 정말 변화무쌍한 덴마크 여름 날씨의 전형이었다고 할 수 밖에. 덴마크에서 알게 된 친구의 결혼식이 예정되었던 어제, 교회 결혼식 후 운하 보트투어를 계획한 그들의 결혼식이 잘 진행될 수 있을지, 보트는 천장이 커버되는 보트인지 살짝 신경이 쓰였다. 덴마크에서는 나쁜 날씨는 없고 나쁜 옷차림만 있다는 이야기가 있기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우산에 더해 옌스는 우비 바지를 챙기고 나는 앞코가 막힌 플랫슈즈를 챙겼다.

우리도 결혼식날 비 오면 잘 산다고 하듯이 덴마크에서도 비 오면 잘 산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안 그래도 잘 살 것 같은 커플이었기에 비 오는 것 보면서 잘 살겠거니 싶었다. 우리도 비 오는 여름 날 결혼했기에 그게 꼭 크게 속상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계획에 차질이 빚어져도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즐길 커플인 것을 알았기에 마음 상하는 것 없이 그들이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실제 모두가 날씨에 상관 없이 아주 즐거운 결혼식을 즐겼다.

하이힐 신고 유럽의 돌길을 뛰는 것만큼 고역이 없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옌스도 잘 알게 되어서, 여유있게 미리미리 출발해 교회로 향했다. 옌스네 조카 세명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는 크리스챤스교회 (Christianskirke)에서 식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교회 구조가 평균적인 교회와 조금 다르다 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다른 면이 분명히 있었다. 신부에게는 다소 안타깝게도 복도가 짧고 좌우로 긴 교회였고, 신부가 미사 집전시 서는 연단이 복도 중간에 위치한 게 아니라 짧은 길이 때문인지 정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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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 위에 보이는 연단은 일반적으로 교회의 복도 중간에 측면에 위치해 있다. 결혼식에는 성직자가 저 위에 서지 않고 빨간 카페트 위에 선다. 세 번의 결혼식 중 두 번이 여성 성직자였고, 그 중 한 번은 아프리칸 혈통의 덴마크인 성직자였다. 루터교회라 우리나라의 천주교와도 개신교와도 절차적, 성직자의 역할적, 교회 건물의 구조적 측면에서도 다 차이를 보인다.

덴마크인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온 커플의 친구들 비중이 커 대부분의 미사는 영어로 진행되었다. 간혹 덴마크어로 이야기한 경우에는 따로 이를 영어로 해석해 반복하지 않아서 덴마크어를 알아듣게 되니 결혼식 절차도 재미있게 와 닿았다. 특히 비가 와서 둘이 잘 살 거라며, 애를 많이 낳든, 돈이 많이 들어오든 복이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마 덴마크 가족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였는지 굳이 영어로 되풀이 하지 않았는데, 이는 이야기 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살짝 해봤다. (나중에 한국에서 멀리 날아오신 그녀의 어머니께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고 살짝 말씀 드렸다. 행복하게 둘 잘 살 거라고.)

덴마크 교회결혼식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위 사진에 나온 의자의 좌석 배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원래는 4개만 놓이는데 (이 날은 신부 부모님 모두가 배석하기 위해 의자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원래는 신부 아버지만 동석한다.) 왼쪽에 신부와 아버지가, 오른쪽에 신랑과 베스트맨이 앉는데, 중간에 신랑, 신부만 일어나서 연단위에 선다. 혼인 서약과 반지 교환, 성혼 선언, 키스, 그리고 기도가 끝나면 이 둘이 왼편에 앉고 오른편엔 베스트맨과 신부 아버지가 앉게 되는 식이다. 이날은 의자 하나를 추가해 신부 어머님이 오른편에 앉으셨다.

결혼식 전 신랑이 그렇게 긴장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신랑을 자주본 것은 아니지만, 친구를 통해 들은 내용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본 내용을 토대로 형성된 그의 카리스마와 유머 넘치는 이미지와 매우 달랐다. 그 전에 옌스 동료의 결혼식에서도, 옌스 사촌의 결혼식에서도 엄청 긴장한 신랑의 모습을 봤는데, 역시 많은 하객들 앞에서 하는 결혼식은 누구에게나 긴장되는 순간인가보다. 베스트맨 증인 한 명만 두고 결혼한 우리야 딱히 긴장할 일은 없었기에 그냥 이런 타인의 긴장의 순간이 더 눈에 띄고 신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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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한 신랑과 그의 베스트맨. 그녀의 신랑은 항상 여유가 있어보였는데, 이 날 그의 모습에는 긴장이 넘쳤다. 저녁 식사 때 베스트맨의 여자친구를 통해 들은 바, 너무 긴장해서 뭘 어떻게 준비해야할 지 몰라해, 베스트맨이 하나하나 챙겨줬다 한다. 항상 계획이 철저하고 뭘 해야하는지 명확하며, 효율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그와 너무 달랐다고. 로맨틱하다.

 

우리의 신부는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부모님과 함께 입장하였다. 몸에 꼭 들어맞게 끈으로 졸라 맨 새하얀 웨딩드레스는 그녀의 피부색과 어우러져 그녀를 환하게 빛나게 해주었다. 어머니는 이미 눈물을 참느라 입을 굳게 다무셨는데, 결혼식 내내 흐르려는 눈물을 참느라 고생하셨다. 신랑, 신부가 연단에 서있는 동안 베스트맨이 휴지를 찾아 건낼 정도였으니. 타국에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지고, 우리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등을 생각해보다 보니, 더 짠하게 느껴졌다. 붉어지는 눈시울을 참고 착석하시는 타이밍에 딸에게 눈물 안보이시려고 고개를 돌리시는데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냥 왠지 모르게 그래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안심하시라는 마음을 담아 환히 웃어드렸고, 어머님도 짧게나마 웃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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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신부 입장! 부모님을 양쪽에 모시고 입장했다. 양성평등에 있어 우리보다 앞서있다는 덴마크이지만, 결혼식 만큼은 아빠만이 동석하는 것이 일반이다. 국제결혼의 장점은 둘만의 스타일대로 바꿔도 그것갖고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 두 분과 함께 입장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드레스도 정말 아름다웠지.

 

You may now kiss your bride. 그들은 성혼 선언이 끝나고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의 커플처럼 키스를 나눴다. 이 키스는 Closing the deal 같은 게 아닐까? 정말 둘이 결혼한 것을 확인하는 순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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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may now kiss your bride.”

 

장대비가 잠깐 그친 타이밍을 노려 배 타기 전 새로 탄생한 부부가 하객들에게 부부로 첫 인사를 나누는 리셉션을 위해 아페리티보를 즐기기 위해 야외로 이동을 했다. 부부는 같이 또 따로 하객들과 담소를 나눴고, 우리 모두 이 결혼을 축하하며 샴페인을 즐겼다. 간혹하는 와인 한 잔은 괜찮다는 의사의 말을 믿고 샴페인 한 잔을 하길 원했으나, 옌스의 강력한 주장으로 반 잔만 마실 수 있었다. 흑흑. 입덧 시작한 이후 역하게만 느껴졌단 레드와인과는 달리 샴페인은 여전히 싱그럽고 좋았다. 나는야 샴페인 p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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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 리셉션. 사실 완전 야외를 계획했다고 하나, 언제 비가 쏟아질 지 몰라 No. 2라는 레스토랑 테라스를 순식간에 빌려 이용했다. 다행히 그 와중엔 비가 한 방울도 안떨어졌다. 올 해 옌스 생일 때 갔던 곳으로 미슐랭 2스타의 영광에 빛나는 A.O.C. 주인이 같은 와인리스트로 약간 캐주얼한 파인다이닝을 위해 만든 곳이라 한다. 급작스런 요청에도 이런 리셉션 공간을 허해주어 어찌나 고맙던지. 괜히 다음에 또 한번 와야겠다 싶었다. 신부는 하객들과 환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우리 모두 준비된 샴페인을 마시며 즐거운 담소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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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샴페인은 옌스가 조금 뺐어 마셨다. 흑흑. 아기야. 너도 샴페인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 그래도 우리는 마냥 신났다. 4개월만의 술

 

빗속의 보트 투어는 장소를 바꾼 리셉션의 연속이었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온 하객에게는 관광의 요소도 있었겠지만, 이 곳에서 온 우리에게는 신선한 리셉션이었다고나 할까?  다행히 우리는 비가 쏟아지기 전 보트에 올라탔지만, 신랑 등 많은 사람이 쫄딱 젖고, 신부의 드레스 자락도 비로 다 젖었는데, 모두 즐거워했다. 이 어찌 아니 행복할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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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드레스와 양복이 젖어도 우린 개의치 않아요. 저흰 지금 막 결혼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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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마시고 즐깁시다.

웨딩 디너는 아주 오래된 고풍스러운 건물에 위치한 Bastionen og Løven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진행되었는데, 여자는 자리가 정해져있고, 남자는 랜덤으로 뽑은 번호표에 따라 자리가 배정되고, 중간에 한번 테이블을 바꿔 앉는 식으로 테이블 팰리닝이 되어 있었다. 결혼식을 위해 만든 홈페이지와 청첩장 뿐 아니라 네임택조차 통일한 커플의 정서에 탄복했다. 사실 신부가 너무 바빠서 이런 준비는 신랑이 대부분 했다는데, 그의 세심함과 얼마나 정성스럽게 이들을 준비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결혼때는 옌스가 손수 한장한장 이름을 칼리그래피로 써 넣었는데, 덴마크 결혼식에서 이 테이블 네임택이 갖는 중요성이 꽤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안그래도 시어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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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세팅과 이름표. 이 꽃은 우리 집으로 가져왔다. 다 산거라며 신부가 집에 갖고가라고 귀띔을 해준 덕에 집이 화사해졌다.

 

해외에서 온 손님이 많은 결혼식이라 큰 틀에서는 덴마크 전통 결혼식을 유지하되 살짝 다른 모습도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결혼식이었다. 특히 Hurra라고 뭔가 축하할 일이 있을 때 꼭 외치는 3번의 짧은 Hurra와 1번의 긴 Hurra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이 신선했다. 난 당연히 가족들의 스피치 뒤에 이것이 따를 줄 알고 내 스피치의 마무리를 이로 준비했었는데, 오히려 내가 유일하게 이 건배사를 외쳤다. 이에 때맞춰 신랑의 친한 친구 중 한명이 Han skal leve라고 이 Hurra를 크게 외치는 노래를 뒤이어 부르기 시작해 홀 안이 Hurra로 가득차 어색함이 없어졌다. 해외 손님들이 이 Hurra가 어떤 건지 몰라 약간 어색함이 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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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의 스피치. 사랑이 듬뿍 느껴졌다.

중간에 옆방에 가서 보니 gavebord라고 선물 테이블이 하객들의 선물로 꽉 차 있었다. 괜히 흐뭇해졌다. 우리나라의 축의금 문화와 달리 하객들은 선물을 준비하는데, 결혼하고 나면 하나하나 선물을 열어보며 선물명을 기록해 두었다가 이를 잘 쓰겠다며 고맙다는 답례카드를 보내곤 한다. 축의금과 달리 기억에 남고 좋더라. 초대 받아 정해진 RSVP 기간까지 온다고 답한 사람은 정말 어디 아파 쓰러지거나 집안에 무슨 큰 일 없으면 반드시 오고, 거의 하루 종일 낮부터 새벽까지 함께 즐기고 기뻐한다. 대신 초대한 사람은 참석자를 리셉션과 디너를 통해 하루 크게 대접한다는 방식이다. 따라서 축의금으로 대충 결혼 끝나면 수지가 대충 균형되게 끝나는 우리 결혼식과 달리 신랑, 신부의 지출로 식이 이뤄지게 된다. 왠만해서는 결혼 전 신랑, 신부를 다 만나 본 경우가 대부분이고, 직장 동료는 그 관계가 아주 오래되서 정말 친한 친구가 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초대되지 않는다. 청첩장 돌려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고, 하객 입장에서도 그리 가깝지 않은데 청첩장 받았다는 이유로 꾸역꾸역 가야하거나, 가지도 않을 애매한 거리인데 축의금 내야 하나 하는 고민 같은 것 할 필요가 없어 좋다. 대부분 결혼 계획을 아주 일찍 하기 때문에, 못 온다는 경우가 많지 않고, 애초에 초대할 만한 사람만 하기에 초대 받은 사람은 아주 기꺼이 온다. 자비를 내고 비행기를 타고서도.

내 결혼식에도 내 쪽과 옌스 쪽 하객 중 해외에서 온 손님들이 있었다. 오히려 한국-덴마크 든 국제커플 결혼할 때 난감한 상황은 한국식으로는 초대할 정도의 사람이지만 다른 쪽 관습으로는 초대할 만큼 가까운 사람이, “저 결혼식 불러주실거죠?”라고 물어오는 경우다.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설명하고 정말 가까운 사람만 초대한다고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지만, 실제로는 거절하기 정말 어려운 난처한 상황. 오히려 부르고 싶었지만, 우리 식으로는 비행기 표값을 대줘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신랑은 이해 못할 것이기에, 그리고 예산 문제로도 그럴 수 없는 상황) 한국식 짧은 휴가 문화 및 신랑, 신부가 따로 하객을 케어할 수 없는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초대하지 못하는 하객들도 많은데, 애매한 관계의 사람은 당연히 초대할 수 없다. (간혹 당연히 초대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 중 초대받지 못하면 섭섭해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아무튼 초대 받으면 정말 고마운 것이고, 그래서 같은 나라에 있는 경우는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고 (거의 그럴 일이 없다. 3~6개월 전에 초대하니까) 거절하면 사이가 약간 어색해지기에 대부분은 다 온다. 우리도 매우 감사하며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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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한가득 결혼 선물이! 우리 것은 한 복판의 핫핑크!

여느 덴마크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많은 스피치가 있었으며, 친구와 가족들이 공연 등도 준비했다. 다만 다른게 있다면 흥이 많은 비 덴마크 하객들이 떼창을 부르며 공연을 얼마나 흥겹게 만들었던지. 옌스는 이런 웨딩 디너는 처음이었다며 즐거워했다. 각각의 결혼식마다 살아있는 특색이 결혼식 참석을 항상 즐겁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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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의 오래된 고향친구들이 공연을 준비했다.

신랑과 신부는 얼마나 행복해보이던지. 옆의 어머니도 이제는 눈물은 닦으시고 즐거이 식사와 담소를 즐기고 계셨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축복하는 결혼이니 잘 살겠지 하는 마음이 드셨을까? 영어로 진행되는 파티로 인해 다소 지루하셨을 것 같긴 하다. 새벽같이 준비 시작하셔서 다음날 새벽까지 진행되는 결혼이니 얼마나 힘드셨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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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를 나누시길래 이렇게 다정한 눈빛을 나누시나요?

6시부터 시작된 길고 긴 저녁식사가 11시 즈음 끝나면, 테이블을 정리하고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꾼다. 12시가 되기 전 새로 탄생한 부부가 춤을 추는데, 이들을 삥 둘러싼 하객들이 전통 웨딩댄스 곡에 맞추어 한발 한발 다가서는데, 부부가 더이상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지면 춤은 끝나고 신랑 친구들이 모여들어 신랑의 양쪽 양말 끝을 가위로 자르는 것으로 모든 공식 일정은 끝난다. 그러면 자정부터 신나는 댄스파티와 술 타임이 새벽 5시 정도까지 이어진다.

우린 1시 정도에 자리를 떴다. 춤도 삼십분 정도 열정적으로 췄겠다 (과거의 수차례의 경험으로 이번엔 플랫슈즈로 갈아신고 저녁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춤도 출 수 있었고)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조금 보낸 뒤 자리를 뜨기로 했다. 항상 우리는 나이드신 분들 뜨는 타이밍에 뜨는데, 이렇게 새벽까지 노는 게 익숙치 않는 나 때문이다. 그래도 커피까지 마시고 버텨 (입덧은 아마 거의 끝난 듯?) 1시까지 즐겁게 놀고 돌아온 나에게 대견하다고 칭찬을 해주고 싶다. 사실 이제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 배가 은근히 뭉쳐서 더이상 서있기 피곤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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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까지 받아가며 연습한 덴마크 전통의 웨딩 댄스. 아름다웠어요!

내가 초대를 받아 커플이 참석한 결혼식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첫번째는 옌스네 친척, 두번째는 옌스 친구 결혼식이었으니 말이다. 덴마크식 스피치 문화를 알지 못해 신부를 위해 한마디할 사람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초대해준 그녀에게 정말 고맙기도 하고 해서 스피치를 준비했는데, 잘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이제 대충 아는 상황인지라 그 어떤 결혼식보다도 편안하고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하객들도 다들 어찌나 유쾌하고 흥이 넘치는 사람들이던지. 6시 정도부터는 날도 개어 사진도 야외에서 잘 촬영할 수 있었고, 그들이 계획했던 결혼식이 큰 변동 없이 아주 잘 진행된 거 같아서 그들을 대신해 내가 다 기뻤다.

이 둘이 평생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작은 일에 기뻐하고 서로 사랑하며 해로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잘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