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중간기록

뭔가를 발표한다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외부 발표 전 내부 발표 리허설이라도 부담스럽다.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올 때 쯤이면, ‘이건 평가를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추진한 일을 공유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이고, 그 피드백을 받아 더 좋은 결과물을 생산하기 위함이다. ‘라는 주문을 마음속으로 건다. 그러면 긴장감을 덜어낼 수 있다. 오랫동안 파고들은 내용이기에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이라 틀만 잘 잡아서 자료에 담아두면 된다. 그리고 다 잘 풀릴 것이다라고 주문을 걸고. 

다행히 내부 리허설을 잘 마쳤다. 이전에 이미 리허설을 한번 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분석의 틀을 완전히 바꾼 거였다. 영 설명이 잘 되지 않던 부분에 대해서 코멘트를 받고 방향 설정을 완전히 다시 했더랬다. 긴장이 되면서도 그 당시 나왔던 질문에 대해 하나씩 곱씹어가면서 충분히 준비했던 발표인데다가 똑똑한 동료들의 예리한 질문이 아주 다방면으로 나왔기에 그것에 답하며 준비한 것만으로도 포괄적으로 준비가 잘 된다 싶었다. 작게 보완할 것들이 있긴 했지만 별로 그런 게 없었고 나머지는 내가 아닌, 업계에 질문을 해야할 요소들이었다. 

심리상담을 받은 후 얻게 된 새로운 장점은 발표 중 청자의 눈빛이나 자세 등에서 불필요하게 신호를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전엔 혹시나 내 발표에 의구심이 생긴걸까? 내가 발음을 잘못했나? 뭔가 틀렸나? 하는 끊임없는 상상을 토대로 발표 중간에 나를 괴롭히고 집중력을 흐트려뜨렸는데, 이젠 그냥 그런 게 있으면 질문을 하겠지 하고 넘긴다. 그 사람이 손을 들때까지는 불필요한 상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운 게 정말 크다. 그게 몸 속에 아드레날린을 과도하게 분비하게 만드는데, 그게 없으니 차분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업계와 일을 하면 훨씬 더 비판적이거나 원색적인 목소리를 접할 수 있긴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어떤 코멘트를 하던지간에 긍정적인 톤을 유지한다. 그리고 코멘트의 경우 구체적으로 한다. 이런걸 보완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왜 이걸 이런 식으로 만들었냐 이런 비판적이고 불특정적인 피드백은 없다. 

새로운 감시 분야를 개발하는 것이라 시간이 많이 투여가 되고 있긴 하나, 프로그래밍 적으로 배운 것이 정말 많다. R을 훨씬 자유롭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걸로 새로운 연구 분야도 설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결과를 토대로 에너지청도 새로운 연구를 하려고 하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관심이 높아진 분야에 우리가 선제적으로 먼저 움직인 것이라 재미가 있다. 

긴 호흡의 프로젝트라 중간에 그 흐름 속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아마 이런 긴 호흡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맡아서 끝까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인 거 같다. 경쟁소비자청에서도 그런 프로젝트를 하다가 중간에 관두고 나와서 끝까지 하지 못했는데,  그때도 스트레스가 엄청 컸다. 큰 바다속에서 도대체 언제 헤어나올 수 있을지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중간중간 마일스톤 셋업이 힘들었던 것 같다. 여기보다 더 큰 조직에 중간중간 스파링을 할 사람도 너무 높은 사람이었고, 정치적으로도 여기저기 걸린게 많은 훨씬 큰 프로젝트였던 터라 이해관계자도 너무 많고 비교하기 어렵게 힘들었다. 지금 일보다도 이론적인 프로젝트였어서 더 그랬던 거 같다.

이번 프로젝트는 오로지 데이터를 갖고 씨름하는 것이라 데이터의 바다에서 헤메이다가 스트레스로 무너질 뻔 했는데, 그걸 잘 넘기고 나니 또 어떻게 어떻게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 긴 프로젝트의 장점으로 내가 조금 더 플래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경험도 쌓았고.

이제 남은 건 다음 주 중간결과를 업계대상으로 발표하고 최신 데이터를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이걸 정리해서 리포트로 만드는 것, 경영진에게 발표해 승인을 받은 후, 온라인 공청회처럼 이를 대외로 보내 피드백을 받고, 이걸 반영한 최종본을 또 한번 경영진에게 승인받고,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보내 그래픽 등을 이쁘게 만들어 최종 발표하는 거다. 그리고나서는 매년 데이터를 받아 모니터링을 하는 감시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만 남는다. 

남은 프로세스들도 한번씩 경험하면 프로젝트 운영 경험도 한번 쌓여서 앞으로의 일이 조금씩 더 수월해지겠지. 하지만 그 남은 프로세스들이 손이 많이 가는 일이 될 거다. 디테일이 중요해지는 단계니까. 열심히 달려보자!

인간관계는 복잡해…

상사와 한 동료간에 갈등의 골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깊어진 골은 메우기 어려운 법인데… 인간관계는 각각의 화학작용에 따라 결과가 너무 달라지기에 A-B, B-C는 잘 지내더라도 A-C가 잘 지낸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나는 상사와 잘 지내고 그 동료와도 잘 지내고, 그 둘도 잘 지낼 줄 알았지만 상사와 그 동료는 갈등이 깊었던 거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부딪힐 수 있는 난관에 대해 고려를 잘 해야한다 하는 그 동료의 면을 나는 그 동료가 조심스러운 면이 많다고 느낀 것인데 반해 상사는 그 동료가 매사 부정적이다라고 느낀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평가에 대한 피드백의 방식이 그 동료는 적절하지 않다고 느끼고.

간혹 그 동료가 옆자리 다른 동료에게 이런저런 일적인 힘든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을 얼핏 듣는 적이 있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면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끼고 음악을 들으며 일하기에 그런 분위기를 크게 느끼지 못했었다. 점심을 같이 먹는 구내식당에서는 모두 같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는데, 거기서는 그냥 그 직원이 원래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분위기를 감지하기 어려웠다.

그 동료가 내 프로젝트에 조인을 한터라 간간히 상사랑 미팅을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담당하는 프로젝트이다보니 회의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말을 했기에 별 생각을 못했더랬다. 이제 이 갈등상황을 알게 되고 나니 회의에 들어가서 괜히 눈치가 보인다. 모르는척 하고 나 하던대로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찌할 수 없다.

이런 갈등상황이 잘 개선되어 모두가 좀 더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떻게 하는게 좋을 지 모르겠다. 사실 그 동료가 상사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부분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센터 특성상 개개인의 자율성이 엄청 큰데, 호흡이 일년쯤 되는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이 자율성에 묻혀 방향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나도 이런 부분에서 시작된 스트레스가 자아비판과 합쳐져 심리상담가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니 그 불만의 핵심을 이해한다. 이에 대해 나는 상사의 지원을 요청했고,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상사와 주기적으로 미팅을 하면서 방향성 설정에 도움을 받았는데, 이 방법을 내가 구체적으로 제안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동료가 원하는 것도 상사의 적극적 지원인데, 동료는 이 상사의 적극적 지원과 관리가 상사의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게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심리상담도 하고 상사랑 조율도 하고 난 후로 자율성 부분과 지원 부분에서 나는 적당한 균형을 찾았는데, 그 동료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상사의 관리를 요구해야하는 상황 자체가 잘못된 관리상황이라고 하고 있다. 나보다 훨씬 큰 상사의 적극적 지원과 관리를 원하는 동료로서 내가 받은 수준에 못미치는 지원과 관리를 받았으니 마음속 갈등이 얼마나 커졌겠는가.

이미 그렇게 커진 골은 좁히기 어려운 바, 아마 오래지 않아 동료는 사내 팀 이동을 하든가 이직을 할 것 같다. 마음이 뜬 듯 하기 때문이다. 상사도 인간이니 잘하는 것 못하는 것 다 있지만, 자신의 부족한 면을 피드백을 받는다면 고칠 의향이 충분히 있는 사람일 것 같은데, 상사를 향한 피드백이 어려운 건 나라를 불문하고 마찬가지인 것 같다. 덴마크는 위를 향한 쓴소리를 잘하는 나라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고 본인이 이야기 하지 않는 갈등 문제를 타인이 이야기하기는 어렵고. 나 말고 같이 프로젝트를 하는 동료가 상사에게 한번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 한번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

내가 혼자 하는 프로젝트를 주로 맡다보니 이런 어려움을 모르고 모든게 좋게 잘 돌아가려니…하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왠지 씁쓸하다. 누군가 힘이 들어하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불편하다. 감정까지 누군가가 해결해줄 수 없는 일이니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잘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