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작은 챕터를 무사히 닫고

지난 6개월간 일해온 모델이 원칙적 승인을 받았다. 다음 단계로는 이 모델을 실제 활용한다면 발생할 수 있는 수자원 기업의 투자인센티브 구조변화에 대해 분석하기로 했다. 동시에 실제 이 모델을 활용할 경우 규제당국인 우리와 관련 자료를 보고해야 하는 수자원기업의 행정부담이 얼마나 될 지 현실적 문제에는 뭐가 있을지 등도 조사해야 한다. 기존 다른 유틸리티 섹터 규제에 사용되지 않던 투자수익모델인데다가 다른 나라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방식이라 탐색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대신 이론적으로 우리의 투자수익모델 도입 목적에 더욱 부합하는 방식이라 선례를 만든다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적극적 검토를 시작했다. 아마 모니터링그룹 회의에서도 열띤 토론이 있지 않을까 싶다. 


보고 결과로 청장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고, 부청장은 분기 이코노미스트 회의에 사례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게 칭찬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칭찬인지 아주 좋은 결과라는 식의 칭찬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었다. 회의 후 동료들이 축하한다는 말도 하고 센터장이 금요일 주간회의에서 박수를 쳐주라며 훌륭한 결과였다고 치켜세워주는데서야 청장과 부청장의 반응이 아주 우호적인 거였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어디가서 발표를 하든 느끼는 거지만, 목소리와 태도에서 나의 긴장감과 떨림을 통제할 수 있어도 손끝에서 보이는 미세한 떨림과 손바닥을 촉촉히 적시는 땀은 통제할 수 없다. 주로 펜을 꽉 쥐던가 컴퓨터 옆을 쥐던가 해야 그 떨림을 감출 수 있다. 어제 회의에서는 센터장과 동료가 바로 옆에 앉아있었어서 그들은 그 떨림을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덴마크어라 생기는 긴장감도 크지만, 그냥 발표가 가져오는 긴장감 탓이 가장 큰 것 같다.

열심히 하겠지만 항상 잘할 수 없음을 기억하고 잘하지 못할까봐 움츠러듬 없이 꾸준히 노력하고 도전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노력하자. 이또한 노력하자.

첫 MUS를 마치고

MUS (Medarbejderudviklingssamtale, 직원계발면담)은 1. 전반적 직장생활 만족도를 평가하고, 2. 연간 실적을 정리하고, 3. 내년 목표는 무엇인지, 4. 현재 역량의 상황을 평가한 후 5.계발해야 할 역량은 뭐가 있는지, 6. 미래 계획은 뭐가 있는지, 7. 직속상사에게 역량계발지원을 위해 요청할 건 뭔지, 8. 직속상사가 리더로서 개선할 점은 뭐가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미리 해당 내용에 대해 생각해보고 적어가야 한다. 그래야 일년에 두 번 (두번째인 mini-MUS는 MUS에 이야기한 항목에 대해 점검하고 연봉협상을 겸한다.) 있는 이 기회에 상사의 나에 대한 기대와 부응수준, 내가 회사에 나의 발전을 위해 요청할 것 등을 효과적으로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준비해간 내용을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상사의 평가에 대해 듣고 대화를 나누었는데, 약간 긴장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내가 요청하는 사항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사실 지난 8개월이란 시간동안 말도 글쓰기도 많이 늘었다고는 해도 내가 한국어나 영어로 일할 때보다 효율적일 수 없다는 한계 속에, 혹시 나에게 말은 하지 않지만 상사가 채용을 후회하거나 하는 건 없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도 살짝 했었다. 오늘의 면담을 통해 그런 걱정은 싹 털어버렸다. 


다만 상사의 마지막 조언 한마디가 내 마음에 확 와닿았다. Be compassionate to yourself. 내가 나 스스로의 발전에 대해서 야심도 있고 자기에게 엄격한 기준을 갖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결과를 내면 인내심을 갖지 못하는 성향인 것 같다며, 남에게 대하듯 나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면 좋겠다고 하더라. 이게 발전의 동력이긴 하지만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함을 나도 느껴서 고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데,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렇게 지금껏 살아왔던 터라.


이번을 계기로 직장안정성에 대한 이유없는 불안은 완전히 떨쳐버렸다. 얼마나 안도되는지….

직장생활 반년 후 덴마크어 능력 자가평가

반년이 흘렀다. 아니 며칠 남긴 했으니 반년이 흘렀다고 하긴 그런가?

누구를 만나 건 막상 대화를 하는 데 큰 막힘은 없고 강의를 들으러 가서 상대가 빠르게 말해도 90% 이상 문제없이 이해하니 적응을 거의 다 했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처음으로 만나서 내 소개를 하는 때마다 혹여나 내가 문법에 틀리는 말로 시작하게 될까 그로 인해 상대가 나를 어리숙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긴장이 마음 속에 자리하는 건 바뀌지 않는 거 같다. 무엇보다 처음을 내가 열어야 하는 상황은 긴장된다고나 할까? 튀는 게 싫은 것 같다.

3개월에 한번 새로 기업부 및 기업부 산하 기관에 임용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소개강좌가 열리는데 지난 번엔 회의와 겹쳐서 임용된 지 6개월만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다른 기관 사람들도 만나서 인사도 하고, 장관실을 비롯해 기업부 시설을 둘러보았으며, 조직, 전략, 인사 및 총선이후 유의사항 등 다양한 사항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각자 자기 소개를 구체적으로 할 일들이 생기는데, 그럴 때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곤 한다. 속으로, “틀려도 된다. 틀려도 된다. 상대는 나를 평가하려는 사람이 아니야.” 이런 말을 되뇌이다보면 긴장이 좀 풀리고 막상 대화를 시작하고 나면 큰 어려움은 없다. 이런 긴장감은 도대체 언제 없어지려는지. 없어지긴 하려는지.

그래도 달라진 건 점심시간에 대화에 느끼던 어려움이 많이 없어졌다는 거다. 조용한 회의시간에 한명씩 돌아가며 조용하게 이야기할 때랑 달리 구내식당에서 여러명이 대화를 동시에 나누는 점심시간은 참 어려웠다.

지난 주 금요일, 1년에 한번 하는 직원축제가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저녁 식사와 파티를 하기 전 야외 테이블에 앉아 직원들과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그 때, 구내식당에 소리가 많이 울리고 사람들이 크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보니 점심시간에 간혹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말할 기회가 있었다. 그랬더니 나만 그런게 아니라 네명 넘는 인원이 말을 하면 소리가 잘 안들린다고 하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아. 역시… 아무튼 이제는 많이 알아들어서 점심 때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날 저녁 엄청 시끄러운 속에서도 한껏 멕시코풍으로 장식한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목소리 높여가며 술도 마시고 대화도 하고 춤도 췄다.

간혹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기분이 들어서 내가 잘해야지 하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 내가 뭐라고 한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하나. 나는 하나의 개인일 뿐인데. 그런 쓸데 없는 생각으로 나를 부담지울 필요 없이 내가 부족한 점은 부족한 점대로 드러내고 배울 건 배우고 기여할 수 있는 건 기여하며 일하고 이 안에 녹아들다 보면 한국에서 온 내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직원으로 나를 스스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동안 더 빨리 늘지 않는 내 덴마크어를 두고 스스로 조급해하는 마음이 계속 있었는데, 6개월 사이에 많은 발전이 있었으니 앞으로 일년 후엔 크게 바뀌어 있지는 않으려나 하는 희망을 혼자 품어본다.

덴마크 직장생활 만 4개월 평가

요즘 언론에 초점을 받는 업체들이 조금 있는데, 그와 관련해서 우리도 영향이 있을 거 같아서 주시하다가 사안을 조금 깊게 파고 들어봤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경영진의 관심이 쏠린 사안이라 급히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급히 작업을 해서 보고서를 만든 후에 경영진에 자료를 송부했다. 자료를 미리 보내둬야 주말에 경영진들도 자료를 읽고 월요일에 회의를 할 수 있으니까. 금요일은 그덕에 점심도 스킵하며 일하고 서둘러 퇴근했는데, 오늘 회의도 열두시 반에 잡힌 탓에 한시 반이 넘어 간신히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일이 커져서 그 일을 내가 본격적으로 담당하게 되었는데 재미있을 것 같다.

지난 4개월 조금 넘은 기간 동안 느낀 걸 몇 개 뽑아보니 참 신선하면서도 은근히 금방 익숙해지는 것 같다.

첫째로 보고서에 대해서 절대 막 수정하지 않는다. 보고서를 검토, 수정해서 나에게 보고서가 돌아올 때도, 그 분량이 많지 않고, 내용이 내가 의도하던 내용에 부합하는지 등을 확인하고 수정이 괜찮은지 봐달라고 표현하는 게 참 신선했다. 내가 외국인이니 나는 문법 틀린 거는 매우 환영하며 고쳐달라고 하는데, 그게 혹시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는지를 확인하는 것부터 좋은 의미로 얼마나 이상하던지.

그리고 잘 한 부분은 정말 열심히 칭찬해준다. 덴마크도 겸양을 중시하는 터라 칭찬에 반응하는 방법이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은데, 칭찬은 적극적으로 하는 편인 것 같다. 우리 센터장이 특별히 그런 타입인 것 같긴 한데.

직군별 이동이 없다. 행정직은 행정업무만 한다. 행정직이 오래 근무를 했다 해서 전문직군 업무를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이코노미스트 (økonom) 포지션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해당 학위가 있어야만 한다. 이를 대체할만한 이력이 있으면 모를까 짧은 행정 관련 직무교육을 받고 비서로 계속 일한 사람은 같은 직장에 계속 있었다고 해서 이코노미스트 포지션에 앉을 수 없다.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파는 것 뿐. 부서를 바꿀 수는 있어도 크게 자기가 속한 커리어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공공부문이 이런 건 더욱 강한 것 같다. 민간이야 사실 그런 업무를 할 수 있기만 하면 교육 백그라운드가 중요한 건 아니고, 경력이 길 수록 교육의 의미야 흐려지기도 하니까.

회식은 진짜 없다. 다 각자 바쁘니까. 나도 바빠서 참여하기도 어려우니. 대신 1년에 한번 센터데이를 한단다. 업무시간 중 프로그램은 철저히 업무와 관련해서 짜더라. 우리 같은 경우 우리가 관리하는 하수처리 업체 중 하나를 방문해서 하수처리 프로세스도 보고 설명도 듣고, 예산 관련 애로사항도 청취하는 걸로 짰는데, 대신 저녁에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는 걸로 했다. 음… 기대기대. 놀라운 건 이 모든 어레인지를 센터장이 했다는 것. 이게 가장 센터데이에서 가장 놀라운 파트였다. 일정은 두달 전에 이미 전체 직원에게 일정을 물어봐서 조율한 거였다.

행정 업무가 일에서 빠져 있으니까 일에 대한 집중도가 얼마나 올라가는 지 모른다. 자기가 어떤 일을 맡을 줄 알고 지원해서 채용된 포지션에서 다른 이상한 잡무 안하고 관련된 일을 중심으로 담당하면 당연히 집중도가 올라갈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가지수가 늘어나면 날 수록 데드라인 점검하는 것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니.

직장생활에서 친구 사귀는 건 힘든 일인 건 맞는 거 같다. 내가 내 생활에 여유를 내줄 수 없는 것처럼 타인도 자기 생활의 여유를 내주기 힘들고 그나마 그걸 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은 또 아침에 회사 헬스장에서 만나서 같이 운동하거나 같이 러닝클럽에서 뛰는 식으로 내가 맞추기 어려운 활동을 하더라.

금요일마다 직원들이 돌아가며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대충 사가는 품목은 큰 틀에서 정해져있지만 자세한 건 자기가 정하면 된다. 인원이 늘어나서 올 3월부터 2인이 분담해 해당 주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주스, 잼, 치즈, 버터, 햄, 과일, 빵, 패스츄리 등을 준비하면 된다. 은근 무겁다. 그래도 이렇게 금요일 아침에 30분 식사를 함께하며 담소를 나누고 센터회의를 뒤이어 하면 서로 공유할 정보도 나누고 친교도 나누고 좋다. 회식이 어려운 덴마크인에겐 회식같은 요소이다. 물론 점심도 있지만 점심보다는 회의실에 앉아서 하는 식사라 좀 더 친목요소가 더 있는 느낌?

4개월이니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지난 기간에 대한 평가는 대만족이다. 오히려 너무 대만족이라 두려운 듯. 상사가 갑자기 바뀐다면 어떨까 등등 이런 생각 말이다. 우리 팀장은 여자인데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유형의 여자 상사로 카리스마, 부드러움, 유머, 강단을 잘 버무린 사람 같다. 쓸데 없는 생각말고 일이나 해야지. 새로운 프로젝트가 하나 떨어졌는데 사안을 과거사부터 깊게 파봐야 하는 일이라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분석리포트도 재미있지만 두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것도 하나가 안풀릴 때 다른 걸 하는 식으로 돌릴 수 있어서 더 좋을 것 같다.

3월 말 회사일상

간만에 집에서 두시간 야근을 했다. 집에 와서 애 픽업해 집 조금 치우고 저녁 요리해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오면 8시가 넘으니 두시간 야근이면 자기 조금 전까지 하는 야근이다.

하루 7시간 반에서 8시간 반 사이로 칼같이 일하는 편인데 내일 아침 상사가 출근하기 전까지 보내야 하는 자료가 있어 (정확히는 오늘까지 보내는 건데) 별 수 없이 야근을 했다. 에너지청에서 업무문의로 온 전화가 있어 그걸로 한시간 반을 쓰지 않았다면 거의 회사에서 다 쓸 수 있었겠지만, 또 그 전화협의가 결론적으로는 나에게도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되서 불만은 없다. 하필 또 전화가 점심시간 30분을 끼고 와서 혼자 샌드위치를 들고와 자리에서 일하면서 먹었는데 그 덕에 오늘은 아무와도 말을 섞지 못하고 주구장창 일만했다.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있는데, 일의 양이 적은 건 아니고 연말 성과평가에 내 보고서 진행상황이 별도 평가 항목으로 잡혀있고 그 비중이 커서 직장에선 정말 바쁘다. 이 와중에 일어난 발목부상이며 교통사고가 일신상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업무에 지장을 주는 형태가 아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진짜 이쯤이면 내 운이 진짜 좋은 거 같다.

임원진 보고 자료 송부 시한이 시스템으로 칼같이 정해져 있어서 그 전에 못보내면 보고 일정을 다시 잡아야 한다. 그건 최대한 지양해야 할 일이라 내일은 상사가 봐야 한다. 마음에 드는 보고서가 나왔으니 상사와 임원진 반응이 궁금하다.

요즘 직장에 스크린도어를 두 개나 설치하고 CCTV를 병행해 두 개 설치한단다. 정문 입구와 외부 출입구로 연결된 타워에만 두 개 있는 CCTV이니 총 세 개였는데 총 다섯개로 늘린다는 거다. 공공부문에 개인정보 보호 부문에서 물리적인 보호 강화에 대한 요구수준이 높아져서 취하는 조치라고 한다. 손님 오고가는 부분에서 생기는 문제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것 같다. 필요하니까 설치하긴 하는데 CCTV를 설치하는 건 반갑진 않다. 덴마크 사람들은 사생활 보호에서 오는 자유에 대한 가치를 감시로 인한 사건 예방 효과에서 오는 안전에 대한 가치보다 더 높게 쳐서 CCTV를 찾아보기가 힘든 편이다. 사실 뭐 감시당한다 해서 상관없을 삶을 살고 있지만, 이렇게 축적되는 시각정보가 앞으로 어떻게 사용될 지 모르니까 (중국처럼 수퍼스코어 산출한다든지) 이런 감시시설의 설치는 반갑지 않다.

반갑지 않은 공사로 인해 드릴로 바닥과 계단 철근에 구멍을 뚫는 소리가 어제, 오늘 귀를 울렸다. 보고서 쓸 땐 음악을 안듣는 걸 선호하는데, 거리가 꽤 되는데도 은근히 신경을 긁는 소리가 지속되서 이어폰을 귀에 꼽고 엉덩이 꼭 붙이고 앉아있었다. 안그래도 바빠 사람들과 교감할 새가 없긴 하지만 주변 소식에 더욱더 둔해질 수 밖에 없는 하루였다.

옌스는 월요일엔 갈비찜이 오늘은 비빔밥이 점심메뉴 중 하나로 나왔다는데, 우린 아시아 음식으로 가봐야 커리나 조금 더 이국적이어서 굴소스 볶음밥 정도로 끝난다. 음식이야 맛도 좋고 가격도 싸서 만족은 하는데, 그래도 아시아 음식도 조금 더 나오면 더욱 감사하겠다.

이제 회사생활의 적응은 끝난 거 같다. 이번 3월을 끝으로 수습기간이 완전히 끝난다. 덴마크 회사는 해고 기간만 지키면 해고는 매우 자유롭기 때문에 수습이 끝났다고 공무원이 철밥통인 그런 직장은 아니다. 그래도 수습기간은 해고 기간이 진짜 짧아서 수습기간이 끝났다는 건 나에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제 이 회사 들어와서 해볼 건 다 해본 거 같다. 보고서도 쓰고, 보고도 하고, 발표도 하고, 토론도 하고, 전화 상담도 하고, 전화 업무협의도 하고, 남의 전화 받아서 메모도 남겨서 넘겨도 주고. 새로운 게 없으니 긴장은 많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아직도 전화받으면서 ‘Forsyningssekretariatet, Det er Haein Lee Gundgaard.’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어색하다. 뭔가 긴 것 같이 느껴지지만 옛날에 ‘안녕하십니까. KOTRA 코펜하겐 무역관 이해인입니다.’라고 말했던 것 생각하면 음절 개수로는 지금이 더 적다.

이제 씻고 자야겠다. 내일 또 여섯시에 일어나야하니까. 그러고보니 이번주말이면 썸머타임이 시작되는구나. 한시간의 시차에 적응기간을 또 가져야 하는구나. 하나는 그 시차에 얼마나 잘 적응해줄까? 흠… Det er et godt spørgsmål…

2월 중순 직장일기

사람들이 힘들다고 앓는 소리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분명 스트레스 받는 순간들도 있고 일이 많을 게 보이는데도… 우리는 누가 더 힘들고 고생하는 지, 얼마나 더 안좋은 환경에 처해있는지를 놓고 경쟁하는 것 같았다면 여긴 안좋다거나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 것 같다. 다 좋았고 행복하고 그런 이야기를 별로 안한다. 꽤나 가까운 사람 아니면 그런 이야기를 안나누는 것 같다. 아니면 직장이라는 곳에서 기대되는 바가 긍정적인 사람이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식적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다. 진짜 덴마크 사람들이 소소한 데에서 오는 행복함에 더 가치를 두고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일상의 힘듦이란 건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서일 수도 있다.

그 이유야 어찌되었든 주변에서 앓는 소리를 안하니까 좋다. 왠지 한국에선 다들 앓는 소리를 하니까 그걸 이야기 안하면 여유가 넘쳐서 그런가, 열심히 안사는가 이렇게 생각할까봐 나도 같이 앓는 소리를 해야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대화가 항상 불만 열전으로 이어지곤 했으니까.

직원 한명이 내일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이라 저녁에 회사 바에서 맥주를 좀 마시고 밖에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초대했다. 회사 꼭대기에 있는 작은 타워에 푸스볼 테이블, 빌리아드 풀, 탁구대와 함께 커피머신이 놓여있고, 이 장소에서 금요일이면 간간히 사람들이 맥주와 스낵을 갖고 와 금요일 바(fredagsbar) 시간을 갖곤 한다. 우리 팀은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 하는데, 미리 1-2주 전에 시간 약속을 공지하면 애가 있는 사람들도 가능하면 아이 픽업 등을 배우자와 조율해서 참석한다. 대학원에서도 종종 하곤 했던 fredagsbar이지만 그래도 직장에서 하는 건 처음이라 기대되었는데, 탁구 경기를 하면서 몸도 신나게 움직이고 나니 기분이 산뜻해졌다. 4시 반이 넘었는데도 해가 쨍해서 옥상 테라스에 나가서 주변 구경도 하니 가슴도 탁 트이는 것 같고.

저녁식사는 자전거로 20분 거리에 떨어져있는 퇴직 직원의 아버지 식당에서 이뤄졌다. 아버지가 그리스인, 어머니가 덴마크인인 직원인데, 아버지와 형이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 제대로 그리스 식당에 가본 적은 없는데, 직원들과 줄 맞춰 자전거 타고가면서 음식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허기도 지고 기대감도 높아졌다. 구글 평점도 꽤나 좋더니만 음식이 실제로 좋았다.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

텔레비전 시리즈,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정치적 갈등상황, 로스킬레페스티발, 영화, 탄자니아 잔지바섬, 스쿼트, 데드리프트, 취직시 인적성검사, DHL 팀 달리기대회 작년 기록, 금년 대회 팀구성 및 합동 트레이닝 등 이것저것 다양한 주제가 왔다갔다 했다. 8명이 간 식사 장소에서 제일 구석 자리에 앉은 탓에 말을 못알아들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식당이 적당히 시끌시끌한데다가 사람들이 술을 마셔서 그런지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눠줘서 다행히었다.

딱히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이렇게 소소한 대화가 켜켜이 쌓이다보면 서로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알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친밀해지는 것 같다. 덴마크 사람들은 직장사람을 친구로 안둔다는 말도 있지만, 옌스를 봐도 그렇고 나도 전직장에 따로 만나 밥도 먹고 주말에 초대해 차도 마시고 하는 친구를 두게 된 걸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거 같다. 지금이야 몰라도 나도 한 몇년 다니다보면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이 생기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달말 첫월급이 나오고 나서 오늘은 직장연금 증서가 왔다. 경제학과 법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가입하는 DJØF라는 노동조합에서 운영하는 JØP이라는 팬션펀드에서 왔다. 아마 내가 전체 급여의 8% 정도를 내고 난 후 추가로 납입해야 하는 나머지의 1/3 정도를 더 내고나면 회사에서 나머지를 내는 구조였던 거 같다. 이것보다 더 납부할 수도 있었는데, 그냥 나는 월급으로 돌려 받기로 했다. 아마 내가 더 납입하는 것으로 하면 회사가 거기에 추가로 불입을 해주는 부분이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더 받을 수도 있었던 거 같은데, 그냥 나는 월급으로 받았다. 옌스랑 같이 주식에 투자하며 돈을 모으고 있으니 그냥 그쪽으로 돌려서 모으려고 한다. 이제 이렇게 연금에 가입도 했으니 해당 연금에서 운영하고 있는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고 싶으면 해당 대기자명단에 이름을 걸어둘 수 있는 권리도 생겼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옌스가 해당 펜션을 통해 얻은 건데, 둘다 그런 권리가 생기면 아파트 이사할 때 알아보기 조금 더 수월해질 것 같다. 지금이 부동산 시장이 피크같은 상황이어서 집이든 아파트든 사기에 부적절한 것 같아 우리에겐 임대아파트가 최고의 옵션이다. 물론 지금은 우리 아파트가 여러모로 우리에게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어서 최소한 애가 학교갈 때까진 이사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일 안할 땐 그렇게 일이 그렇게 하고 싶고 주말의 가치가 지금같이 크게 느껴지지 않더니 일을 시작하고 나니 주말이 또 참 기다려진다. 사람의 간사함이란. 물론 일하기 싫다는 것은 아니고, 주말에 애도 보고 밀린 정리정돈과 청소, 빨래를 하다보면 주말이 더 힘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주말이 주는 의미가 소중해진달까? 너무 바빠지니 주말에 가족이랑 빵집가서 커피에 빵 먹는거랑 집에서 먹을 거리 장보는 거 외에 돈 쓸 일도 없어져서 강제저축이 늘어나는 것은 참 좋다. 5주년 기념 선물은 도대체 언제 사지? 몰래 선물을 살 시간이 없다. 나도 이제 옌스처럼 선물은 아주 미리미리 기회될 때 사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지난 주 머리를 싸매게했던 한 문제의 챕터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오늘 잡았다. 기분이 좋아서 오늘 저녁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을 거 같아. 옌스가 동화책 읽어주는 게 다 끝났는데도 재잘재잘 떠들던 하나 소리가 잠잠해진 것 보니 둘다 잠이 들었나보다. 이따 옌스가 내 소리에 깨서 나오면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야지. 아픈 하나 데리고 집에서 일하느라 오늘 많이 고생한 옌스 마사지라도 해주면서.

첫 기업불만 상담기

회사에서 책상을 옮겼다. 선임컨설턴트 한명이 출산휴가로 자리를 일년동안 비우게 되었는데 그 자리로 옮겼다. 내 사업과 주로 관련된 선임컨설턴트와 센터장 사이의 자리로 옮겼는데, 그 전보다 이 두 사람에게 물어볼 것이 있을 때 틈을 노려서 짧은 토의를 하기 좋아졌다.

우리 센터에 있는 이코노미스트 포지션의 사람들은 대부분 경상적인 운영업무와 2~3년에 걸친 장기 분석업무를 나눠 맡는다. 새로 입사한 경우, 나처럼 분석업무부터 시작해 경상 운영업무를 맡는 경우도 있고, 나와 같이 입사한 사람들처럼 경상적인 업무부터 시작해 분석업무를 맡는 경우도 있다.

지난주 금요일에 경상적인 운영업무 하나를 맡았는데, 작지만 업체 및 국세청과의 전화/이메일 상담이 주를 이루게 된다. 국세청이 상하수도 기업에 법인세를 메기는 과정에서 과표산정방식을 두고 국세청과 상하수도 기업이 이견을 보여 법원에 소가 제기되었는데 작년 말 국세청이 최고심까지 올라가 패소를 했단다. 2009년 과표를 재산정하는데 우리가 업체의 요금산정 상한설정에 사용하는 자산과 이에 따른 규제목적의 감가상각을 가져다 쓴다는데, 그와 관련되서 약간의 조정업무가 수반되어야 한다.

어떤 식으로 조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상하수도 기업 및 국세청에 공지가 되었고, 자발적으로 상하수도 기업들이 조정작업을 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신뢰성 문제로 우리가 직접 조정내용을 확인해주길 원했지만, 우리 인력상 불가능한 일이라 국세청에서 몇개 업체를 무작위로 선정해주면 해당 업체의 조정 내용이 합리적인 범위내에서 이뤄졌는지 내가 확인해 답해주면 된다. 혹여나 업체들중에 질의가 있는 경우에도 내가 답을 해줘야 하는데, 이 일을 맡게 된 금요일에 바로 전화문의가 하나 왔다. 아니 문의가 아니라 거세게 불만을 표출하는 전화였다.

2009년 규제목적의 감가상각자료와 대차대조표를 인터넷에 이렇게 공개해도 되냐는 것이 불만의 요지였다. 국세청과의 세금 소송은 민감한 내용인데 잘 모르는 언론기자가 이 내용을 파보다가 자기네 회계목적상의 대차대조표와 규제목적의 대차대조표의 차이를 갖고 스캔들이다 뭐다 떠들면 책임 질거냐, 업체들 정보 다 내리라는게 주 요지였다. 규제목적의 대차대조표는 회계목적의 대차대조표와 세무목적의 대차대조표와 다르다고 내가 이해한 바대로 설명을 해줬다. 그랬더니 이 업무를 자기가 10년이나 담당했는데 그걸 모를 거 같냐며, 언론에서는 이 어려운 컨셉을 잘 이해 못하고 잘 못 팔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불만 상황에 대해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거라 우선 걱정하는 부분은 이해하고 내가 신입이라 이걸 인터넷에 공지하면 안된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입장을 취하기 어렵다 답을 했다. 상사와 상의해서 우리 입장을 확인한 후 답변을 주겠다고 했더니, 자기가 너무 무리하게 소리를 높여가며 논리 다 버려가며 항의를 했다는 걸 느꼈던 걸까? 자기가 흥분했던 것 같다면서 소리 높여 항의한 것 미안하다고 갑자기 분위기를 전환했다며 주말 잘 보내고 나중에 답을 다시 달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상사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니 이미 해당 내용은 2009년에 홈페이지에 업체별로 공개가 다 되었던 내용이고, GDPR이며 문제가 될 만한 것은 다 법적으로 내부 검토를 받고 국세청과도 조율을 다 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또한 내가 이해하고 설명한 바가 맞고, 잘 대응했다고 들었다. 상하수도 업체들이 원래 목소리 높여 항의하는 일이 잦으니 그냥 흘려들으라면서, 마지막에 사과를 하더라는 말에 오히려 놀랬다. 또한 이번 건에 대해서는 우리 입장은 바꿀 게 전혀 없고, 공무원으로서 규제대상 기업의 이런 불만을 들어주고 다독여주는 것도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될 일상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은행이나 KOTRA에서 일하면서 흥분하고 그냥 막무가내로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을 한두번 만났던 게 아닌지라 이번 업체는 그에 비하면 애교에 불과했지만, 딱히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마지막에 그 사람이 사과하고나서 기분좋게 인사를 나누고 전화를 끊긴 했지만 말이다.

2월도 거의 절반이 다 흘러가고 있다. 아직도 배울 게 많지만 시간이 자꾸 가니 신입티 내기도 힘들어져가고 있다. 그래도 일은 재미있고 사람들도 좋아서 매일 출근하는 게 기운이 난다. 안그래도 해도 서서히 길어져서 신체 에너지 레벨이 은근히 오르고 있는 거 같은데 말이다. 직원 중 한명이 다른 곳으로 이직하게 되어서 환송 겸 fredagsbar도 하기로 했는데, 그에 이어 저녁식사도 같이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있어서 그렇기로 했다. 이직하는 직원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그리스식당인데 (아버지가 그리스인, 어머니가 덴마크인인 직원이다.) 구글 평도 좋아 기대가 된다. 진정한 의미의 덴마크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 같아서도 좋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잘 흘러가면 좋겠다.

이놈의 덴마크어는 언제까지 나를 긴장시키려나

덴마크어와 스웨덴어, 노르웨이어는 뿌리가 같은 스칸디나비아언어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노르웨이어는 특히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쓰인 것으로만 보면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고 유럽 제품 안내문에 노르웨이어와 덴마크어는 간혹 함께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또 스웨덴어와 노르웨이어가 발음으로는 꽤나 비슷해서 서로 잘 알아듣는다. 코펜하겐 바로 옆에 붙은 스웨덴의 스코네지방은 덴마크 방송을 많이 봐서 스코네 사람들은 덴마크 말을 잘 알아듣는데, 덴마크 사람들은 스코네 억양을 잘 못알아 듣는다. 그런데 스톡홀름 스웨덴어는 덴마크 사람들이 알아듣기 꽤나 쉬운데, 반대로 스톡홀름 사람들은 덴마크어를 상시로 접할 기회가 없어서 덴마크어를 잘 못알아듣는다. 재미있는 것은 서로 형제의 나라이고 말의 뿌리가 같으니 만큼 서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서로의 말을 못알아듣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이 나라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 각자 나라의 말을 하고 대화를 하는데 문제는 서로 항상 그렇게 잘 알아듣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옌스와 내가 살림을 합치고 아직 결혼은 하기 전이었던 2015년 상반기, 4개월동안 옌스는 스웨덴 스코네지방에 있는 3대 도시인 말뫼에서 장기 출장형식으로 근무했다. 간혹 같은 단어지만 완전히 다른 뜻을 의미하는 몇가지 단어를 제외하고는 업무 상 쓰이는 말은 이해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 한다. 뭘 대화할지도 알고 업무의 흐름도 아니까 더욱 그랬는데 점심시간만 되면 자기한테 뭘 물어보거나 말을 걸지 않았으면 할 정도로 이해도 잘 안되고 대화에도 끼기 힘들었다고 한다. 서로 대화가 이사람 저사람 범위를 바꾸어 이뤄지고 주변도 시끄러워서 잘 안들리는데다가 주제도 예상치 못하게 다양하게 넘나드니 말이다.

그 비슷한 감정을 내가 느낀다. 업무는 대충 이야기할 게 뻔하고 이해 못하면 다시 물어보고 확인하면 되고, 주변이 시끄럽지 않아 잘 들리고, 한명 한명 순서를 지켜가며 이야기를 하니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다. 그런데 점심 때는 도대체 무슨 주제를 이야기할 지 알 수 없다. 자기 가족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영화나 스포츠 이야기를 하다가 일 이야기도 했다가 여행도 이야기하고.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럭비공 같다. 그리고 서로 말을 끊기도 하고 큰 구내식당의 울림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고 음식을 씹으면서 우물우물 말하기도 하고 꽤나 어렵다. 중간에 몇 단어만 못알아들으면 그 다음 대화에 포인트를 못잡겠어서 이해가 어려워지기도 하니 바보처럼 간혹 씩 웃고 아무런 말 없이 듣기 평가 하면서 밥만 먹기도 한다.

오늘 모니터링 그룹 회의가 있어서 청장님을 처음 개인적으로 마주하며 보고할 일이 생겼다. 시작부터 조금 웃겼던 것은 부청장님은 지난 월요일에 내 이름을 처음에 어떻게 발음해냐 하면서 물어보시길래 해인이라고 가르쳐 드렸는데, 그 날 이미 하인으로 잘못 부르기 시작하시더라, 이제 그 이름으로 완전히 잘 못 외우셨다. 그냥 하도 하인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러시려거니 했다. Ha-ein으로 읽는 모양이다. 모음이 너무 많아서 문제… Hæin으로 개명하기엔 너무 늦었다. 논문을 Haein으로 내서… 이름을 보고 받아 적을 때는 대부분이 Haien으로 쓰고 말이다.

아무튼 보고회의에서 발표하는 건 센터장님을 제외하고는 나와 내 동료 두명이었는데, 동료가 먼저 발표하고 내가 뒤를 잇는 순서였다. 동료가 수행하는 보고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주제만 알고 있었는데 동료와 청장님이 이런저런 질의응답을 나누는데 간간히 못알아듣는 게 나오는 거다. 과연 내 업무에 대한 내용을 잘 설명하고 질의에 답변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면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게 심장에서 느껴졌다. 귀에 들릴 것처럼 심장이 쿵쾅쿵쾅하는데, 어찌나 긴장되고 손에 땀이 나던지. 심호흡을 하면서 차분해지자며 회의실 안에서 혼자 속으로 명상을 했다.

결론적으로는 다행히잘 끝났다.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내용으로 배경지식이 없으니 놓치는 단어도 많고 알아듣기 힘든 거였다. 덴마크어는 앞으로도 간간히 나를 긴장하게 만들 거 같다. 항상 뭐든 간에 첫번째 것들은… 예를 들어 업체들 앞에서 발표를 한다거나 그런 거…

오늘 있던 미팅이 중요한 미팅이었어서 남편도 결과가 궁금했는지 회사에 있는데 전화를 했더라. 나도 너무 잘 끝나서 기뻤는데, 남편이 내일 이상으로 기뻐해줘서 더 행복했다. 앞으로 일이 잘 안되는 때도 있을 거고, 새로운 사람이 보스로 와서 안맞는 보스와 일하거나 저평가가 되는 시점도 있을 수 있지만, 잘한 경험이 있으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크게 갖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이번 경험이 소중했다.

2월 1일, 전직원 월 조회에서 1월 중 입사한 직원들과 함께 자기 소개도 해서 데뷔고 하고, 청장과의 미팅에서 내 개인적인 소개도 구체적으로 하면서 업무적으로 경영진 앞에 데뷔도 한 큰 날이다. 음력으로 2018년 마무리를 잘 한 기분이랄까? 이제 음력이고 양력이고 모두 새해가 될 다음주부터 또 새롭게 시작을 잘 해봐야겠다. 으샤으샤!

덴마크의 야근, 근로문화, 생산성

덴마크라고 야근이 없을리가. 빈번히 야근을 하는 옌스를 봐서 야근이 없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청에도 야근이 있다. 우선 기본으로 한분기당 20시간은 기본으로 깔고 가서 급여에 반영이 되어 있다. 이보다 적게 일한다고 토해내지는 않는데, 이 이상을 안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는 것 같다.

직장에 따라 탄력근무의 가능 정도는 다른데 내가 일하는 곳은 탄력근무가 가능하다. 우리 청 같은 경우 근퇴규정에 따라 9시 이후 출근의 경우 직속상사에게 사전 보고를 해야하지만 그 전에는 개인 상황에 맞춰 시작하고 퇴근하는 게 가능하다. 주 평균 37시간을 일해야 하지만 해당 월에 부족한 시간은 다른 달에 채우면 된다. 야근을 하면 그걸 모아서 휴가로도 쓸 수 있는데, 그 쌓을 수 있는 한도가 있다. 그걸 넘으면 해당 센터장과 협의해 휴가를 실제 사용해야 한다. 물론 이 또한 회사나 부서마다도 다른데, 옌스네 같은 경우 야근한다고 우리처럼 휴가일수를 쌓을 수 있고 그런 건 아니다. 급여가 높은 만큼 결과를 기준으로 일하는 거다보니 근무 시간은 별로 신경을 안쓴다. 야근을 안하고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구조이니만큼.

우리 청 시스템 중 근로 시간관리 시스템이 있는데 매일 써야하는 시스템 중 하나이다.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고 내가 일한 시간을 사업이나 활동별로 나눠 분배해 입력해야 한다. 그걸로 해당 조직의 인력자원이 어떤 사업에 얼마만큼 배분되었는지를 보게 된다. (우리 조직은 진짜 사업예산이라고는 거의 인건비 예산이 대부분이다.) 출퇴근 시간을 입력하긴 하지만, 부서장의 허가를 받아 집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고 야근한 내역도 집에서 해당 시스템에 입력하면 된다. 가벼운 시스템이라 입력하느라 번거로운 것도 없다.

요즘 바로 이 시스템에 야근을 꽤나 자주 넣고 있는데, 이번 금요일에 있는 모니터링 그룹 회의 준비 때문이다. 내가 현재 시작한 프로젝트는 내년 상반기에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대충 한달-한달 반에 한번 정도 청장, 부청장, 센터장, 담당자로 구성된 모니터링 그룹 회의가 진행된다. 세 개의 세부사업이 모여 하나의 큰 분석사업을 이루고 있는데, 각 담당자 세명까지 하면 총 6명이 참석하는 회의이다. 회의 자료는 항상 회의가 있는 날 전날 낮 12시까지가 데드라인으로 잡혀있으니 내일 오전까지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오늘 오전까지 우리 센터장에게 넘겼고 센터장이 내일오전까지 검토를 해서 넘길 예정이다. 그 과정까지 우리 청 내외부 유관담당자들과 회의도 있었고 내부 사업 착수 보고에 대한 협의를 거쳐 보고서 초안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받고, 1차로 이번주 월요일 부청장 보고회의를 했다. 그 이후 회의 결과에 맞춰 보고서를 최종 작성한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금요일에 모니터링 그룹에 착수보고를 하게 된다. 일 시작한지 4주 되었으니 꽤나 가쁘게 뛰어온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저녁에 퇴근 직전에 일을 지시 받아 아침 9시까지 모여 회의를 할 일도 여러차례 있었고 나도 보고서를 보내면 상사나 선임 컨설턴트가 저녁에 읽어보고 오전에 회의를 할 일도 있었다. 서로 야근에 대해서는 안되는 상황을 특별히 제시하는 게 아니면 쉽게 기대하는 문화임을 느낄 수 있었다. 다들 애가 있으니 집에 가면 애 픽업해서 밥 하고 집 좀 치우고 먹이고 씻기고 재운 이후 8시 쯤부터 일을 시작하는 거 같다. 그 때쯤부터 이메일이 오고가는 거 보면 말이다.

사회의 평균으로 보면 이렇게 야근하는 게 일상은 아닌 거 같다. 그렇지만 여기도 대학원 나와 큰 기업이나 정부기관에서 단순 행정직 이상의 일을 하는 경우는 야근이 일상으로 기대되는 경우가 많다.

나같은 경우 오전 7시 반부터 일을 시작해서 점심시간 30분 포함해 하루 8시간을 회사에서 일한다. 7시~7시 반 사이부터 일하기 시작하는 사람은 대충 3명. 점심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동료들이랑 같이 서둘러 밥 먹고 올라오는 게 일상이다. 회의에 잡담은 없고 미리 정해진 시간 이내에 맞춰 회의하는 걸 매우 중시한다. 업무용 전화로 아이폰을 모두 받는데, 따로 전화 부스가 있다. 업무 전화가 와도 대부분 자기 컴퓨터를 들고 이 전화 부스로 들어가서 전화를 한다. 사무실에 대부분 적막이 흐르고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사무실을 채운다. 자리에서 받아도 되는데 이 적막을 깨는게 좀 어색한 모양이다.

생산성은 꽤나 높은 것 같다. 그 이유로는 한국에서보다 형식적인 요소들이 일에서 크게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고칠 게 있으면 구체적인 피드백이 문서에 코멘트로 오고 사전에 작성에 대해 큰 틀을 명료하게 지시해 주기 때문에 버전이 늘어지는 경우가 적다. 그리고 최종으로 부서장이 수정하는 경우는 나에게 이렇게 저렇게 고치라는 대신에 직접 고치기 때문에 불필요한 낭비가 줄어든다. 적은 시간을 일해도 자원 낭비 요소를 줄여 같은 성과를 내는 게 가능해지니 생산성이 높은 나라로 되어 있는 것 같다.

아직 청장회의는 참석해 보지 않았으니 모르겠지만 부청장과 회의를 해본 결과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시도 명료하고 여러가지 좋은 인사이트와 인풋도 받아왔다. 여기도 조직서열은 느껴지는 게 아무리 수평적이고 서로 성 없이 이름만으로 부르더라도 태도면에서 선임컨설턴트가 부청장을 대하는 것과 센터장을 대하는 게 미묘하게 달랐다. 조금 더 조심스럽고 깍듯한 느낌.

오늘은 자료를 이미 센터장에게 넘겨둔 터라 간만에 야근에서 해방되었다. 아… 조금 쉬어야지. 주말에 못본 드라마도 한편 보고. 뉴스도 보고. 포스트 한편 더 쓰고. 🙂

신입사원 졸업

내일부로 학생직원이 한 명 새로 들어온다. 점심 먹으러 구내식당 내려가는데 동료 중 한명이, “신입사원 지위를 누릴 수 있을 때 마음껏 누리세요. 내일부터는 모르는 거 질문하기 없기!”라고 했다. ‘아. 맞다. 내일 아침 환영다과가 있었지.’ 싶었다.

나랑 같이 면접을 봤지만 2018년 계속 사업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어 나보다 1개월 먼저 일을 시작했던 직원 두 명이 있다. 나를 환영하는 다과회에서 그 중 한명이 “나도 얼마전에 신입사원이었는데, 이렇게 너를 환영하는 다과에 와서 자기 소개를 하니 어느 새 마치 오래된 기존 직원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라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기분을 내가 느낀다.

3일부터 일을 시작했으니까 일 시작한지 거의 만 3주 되었나보다. 내가 맡은 분석사업도 슬슬 발동이 걸리고 있다. 다음주 월요일 부청장 미팅이 있어서 그 보고에 앞선 보고서를 작성하는 중이다. 일 시작한 첫주에 내가 과연 보고서를 덴마크어로 쓰고 관려된 내용을 보고할 수 있을지, 과연 그들이 내 덴마크어 업무수행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잘못 뽑은 건 아닌지 스트레스를 제법 받았었다. 수습기간 3개월에 자르는 경우는 진짜 특별한 경우라며 그런 걸 생각하는 건 말도 안된다고 옌스가 말했지만, 그게 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도대체 나를 왜 뽑았을까? 경력을 2년 인정해 준다고 했는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언제 적응할 수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다. 원래 신입사원은 그런거야 라면서 자위하기도 했지만 또 다시금 밤에 침대에 누우면 불안한 생각이 엄습해와 깊은 잠이 들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그 모든 게 적응의 일부분이었던 것 같다.

첫주엔 정말 내 뒤에 보는 사람이 없는 구석자리에 앉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나게 자주 사전을 찾았다. 그간 대충 감으로 알고 있었지만, 딱 한단어로 번역해봐라 하면 그렇게 하기 어려웠던 단어들부터 새로운 단어까지 다 찾아내려다보니 읽는 자료마다 단어 뜻이 누덕누덕 적혀있었다. 내용을 정리하면서 읽기보다는 우선 닥치는 대로 읽었다. 중간중간 궁금한 점만 적어내려가며 담당자별 인트로 미팅을 할 때 질문을 해서 내 업무와 그들의 업무가 어떻게 연결될 지 최대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유사 제도에 대한 경험이 있는 다른 센터와의 미팅 두 건을 마친 후 센터장과 선임컨설턴트와 현황미팅을 가졌다. 그리고 센터장으로부터 보고서를 하나 만들어 현재 우리가 가장 많이 참고해야할 섹터의 제도 도입 내용을 정리해보고 우리 섹터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을 나눠 정책적 고려사항을 도출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어떤 식으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할 지 아주 러프하게만 틀을 정해준 거라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우선 그냥 한국에서 였으면 어떻게 일했을까를 생각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었다. 다만 덴마크어로. 보고서 작성 메뉴얼도 대충 훑어봤었는데다가 관련 보고서를 2-300 페이지를 읽고 났더니 대충 어떤 문체를 쓰는지 알 수 있었고, 무지막지하게 단어를 많이 (그중 같은 단어도 잘 기억 안나는 것을 두세번도 찾아봤었다.) 찾아본 게 다 도움이 되서 생각했던 것이랑 달리 빨리 보고서를 써내려갈 수 있었다. 최종은 아니지만 보고서 서론만 남겨두고 작성한 보고서를 갖고 센터장과 선임컨설턴트를 대상으로 한시간 정도 브리핑과 토의를 했는데, 아주 의미가 있었다. 우선 내가 작성한 방향에 대해서 매우 좋게 생각을 했고, 이번 브리핑을 연습삼아 다음주에 있을 부청장 미팅의 브리핑에 대한 부담을 덜을 수 있었다. 또한 2월 초에 내 담당 사업에 대한 모니터링 그룹 미팅이 있어 청장 주재하에 진행 내용을 발표해야 해서 이 작은 스텝 하나하나가 연습이고 경험이 된다.

이 작은 경험을 통해 얻은 건, 우리 청에서 나를 괜히 뽑은 건 아니고 내가 기여할 바가 있었다는 확인이다. 기후변화적응과 관련한 범정부차원 정책 이니셔티브가 수립중에 있는데, 환경식품부와 에너지유틸리티기후부가 부처간 이견을 조율하는 단계에 있다. 이 부처간 이견이 조율되고 나면 수자원관리 기능을 담당하는 우리 센터에 경제적비용편익에 대한 분석업무가 떨어질 거라 이걸 수행하기 위한 사람을 2019년 중에 채용하고자 하고 있었다 한다. 다만 이 업무는 착수 시점이 애매해서 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면서 지금 내가 담당하는 업무를 수행할 사람을 2019년 1월부터 바로 일할 수 있게 채용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비용편익분석은 내 논문을 통해 했던 것과 매우 깊게 연관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내 학부 전공의 경영학과 은행 재무기획팀 근무 경력을 보고 아주 딱 맞다 생각했던 것이다. 학부때 별로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투자 관련 수업도 많이 듣고, 결국 다 중도에 포기하긴 했었어도 은행 다니며 CFA와 FRM도 끄적끄적 공부도 하고, 재무기획팀에서 예산 (및 약간의 관리회계) 기획과 성과평가 업무를 하며 이래저래 머리에 쌓아왔던 먼지쌓인 지식이 도움이 되는 때가 온 것이다. CAPM이며 WACC이며 기업재무에 손을 댈 날이 이렇게 뒤에 올 지는 전혀 몰랐는데. 힘들었던 은행업무시절, 금융은 뒤도 안돌아보겠다 했던 걸 지금 손바닥 뒤집듯 갑자기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차피 전문가의 손이 필요한 경우 외부에 손을 뻗어야 하지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면 제도 도입이 어렵기에 그걸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히지만 우리 센터 안에 할 사람이 없는 걸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오늘 보고하고 느낀 후에 자신감과 안도감이 버무러진 감정을 느꼈다.

보고서 작성이야 코트라에서 끊임없이 하던 것이었으니 그냥 언어만 바뀐 것 뿐이고. 선임 컨설턴트가 경력직을 채용하면 이런 거 설명 안해줘도 되서 너무 편하다고 하던데 나도 나라가 달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들이 있구나 싶은 생각에 다행이다 생각했다.

오늘부로 신입사원은 졸업한 느낌인데 공식적으로도 내일부로 신입사원은 졸업이다. 오늘 보육원에서 하나를 2월 18일부로 다음단계 보육원으로 이동시킨다고 들었는데 나뿐이 아니라 하나도 졸업이구나. 세상으로 나가는 전체 교육과정 중 가장 이른 단계를 졸업하는 거니 세상의 신입사원 졸업이라고나 할까?

내일 얼른 보고서를 마무리 짓고 다음 단계 일을 시작하도록 해야겠다. 얼른 공을 선임컨설턴트에게도 넘겨야 문법 검토도 받고 최종 마무리도 될테니까. 우선 오늘은 밀린 드라마 한편 보고 잠을 자야겠다. 아이 피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