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
작년 말부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재취업…
환경경제학으로 1~2년 일한 주니어가 취직할만한 자리는 정부부처 중심으로 나오고, 컨설팅은 프로젝트를 이끌만한 정도의 경력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채용하고 있었다. 정부부처는 대부분 탁월한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하고 있었고, 분석 보고서를 쓰는 자리에 있어도 대부분 그 보고서가 활용되어 제도를 도입하는 데 역할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아서 법과 가깝게 지낼 수 있어야 했다. 그건 그 직전 직장에서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던 요소 중 한가지였다. 즉, 내가 원하는 자리가 잘 나오질 않았다.
그러니 내가 공부한 것을 활용해서 직장을 다시 잡는다는게 요원해보였고 시작부터 패배주의에 젖어있었다. 안될 거 같다는 내 프로필에 딱 들어맞지 않는 직종 몇군데로 통계청이나 조금 더 제너럴리스트 포지션에 지원해보고 서너번 미끄러지고 나니까 정말 다 안될 거 같아서 더 위축이 되었다.
더군다나 재취업을 적극적으로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 쪽 길을 다시 걷고 싶어진다면 공백기간이 너무 길어져도 안되니까 뭔가 시도해보려면 지금쯤에는 해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애매한 취업활동이었다. 덴마크의 물가를 생각하면 내 개인프로젝트로 시작한 일은 취미 용돈 벌이 수준에 지나지 않았고, 이걸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본격적으로 돈이 벌리는 아이템을 만들던가 다른 걸 하던가 해야했다.
옌스에게 다른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른 공부를 하기엔 대학원 졸업한지 얼마 안되서 입학이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뭔가 기존의 학업과 관련없이 구할 수 있는 일도 생각해봐야했다. 가장 쉽게 떠오른 건 보조보육교사. 유치원과 보조보육교사는 경력이 없이도 취업을 할 수가 있었다. 경력을 요구하는 데도 많지만, 경력 없이도 취업할 수 있는 곳도 많았으니까. 애를 보육원과 유치원에 보내면서 만나게 된 선생님들을 보면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하루하루 손에 쥘 수 있는 그 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정말 hands-on한 일을 하는 것도 잘 맞을 것 같았다. 옌스는 거의 재취업을 시도해보지도 않고 나를 과소평가하며 다른 길로 방향을 틀려는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내가 정말 다른 길을 원한다면 원하는 걸 해보라고, 그냥 회피하기 위해 선택하지 말고 곰곰히 생각해보라 했다. 그리고 그럴거면 이사 간 뒤에 취직을 하라고 했다. 마침 집도 사서 이사와 관련해서 할 일이 많으니까.
당장 일할 건 아니지만 미리 살펴나 보지 하는 마음으로 보조보육교사 채용공고를 살피며 뒤적거리다가, 기대를 내려놔서 마음이 편해져서 그랬는지, 부담 없이 환경경제학 관련 공고도 좀 살펴보게되었다. 마침 눈에 띄는 곳 두군데가 눈에 있었다. 이미 여러번 미끄러져서 기대도 크게 없었는데, 한군데에서 면접을 보자고 했다. 분위기도 좋았고 커뮤니케이션도 화상임에도 아주 매끄러워서, 이제 취업해도 일하는 데 커뮤니케이션이 장벽이 되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탁 들었다. 그새 확실히 늘긴 늘었구나…하는 생각. 사실 두군데 쓰면서 하나를 두개 문서로 나눠 저장한 후 필요한 것만 바꿔 쓰다가 두군데 모두 같은 팀명을 써내는 실수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에 불러준 거라 나의 자신감을 살려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자신감을 얻어 마침 재미있어 보이는 곳, 두군데에 이력서를 또 냈는데 다 면접에 불러주더라. 면접에 들어오는 사람 중 실무자가 기존 일하던 청에서 협업 파트너로 간간히 만나 회의하고 피드백 주고받고 하던 사람이어서 예감이 좋았다. 1차 면접인데, 인성검사에 케이스 테스트까지 있다고 하며 코로나 시대에 물리적인 면접으로 불러내던 이 곳에서 결국 이른 아침 면접을 보고 그날 점심 먹고 다른 곳 1차 면접 보러가는 길에 잡 오퍼를 받았다. 여기는 1, 2차를 구분하지 않고 한번에 다 보는 곳이었던거다. 보스가 될 사람에게 전화로만 통보를 받은 거라 서면으로 오퍼를 받기 전까진 확실하지 않으니까 (법률적으론..) 다른 곳에도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이 끝나고 나오니 오퍼가 서면으로 와있었다. 덴마크에서는 잡오퍼에 고용에 대한 확약의 표현이 있으면 이걸 토대로 기존 직장에 퇴사통보를 해도 안전한 고용 문서가 되기에 집에 와서 옌스와 상의를 조금 한 후 월요일에 있을 다른 곳 2차 면접(나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켜줬던 그 곳)에 면접 초대 거절 메일을 보냈다.
덴마크어 티칭과 번역, 기타 책 쓰는 일, 유튜브 등은 일부는 꾸준히 하고 있고 일부는 잠시 중단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제 불확실성이 모두 제거가 되었으니 편한 마음으로 오히려 더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내가 잘 하고 못하는 게 뭔지 알고, 그 모든 걸 편하게 인터뷰에서 털어놓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가 못하는 걸 할 수 있는 척 해봐야 너무 힘들고 포기할 걸 아니까. 사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일할 수 있는 덴마크어 실력도 전 직장의 혹독한 현장 체험에서 다져진 거긴 한데, 결국 관둔 걸 경험해봤으니… 그걸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하고 내 기대와 각오를 다 풀어놓고 나니 채용이 되어도 마음이 조금 더 편하다. 글을 남들처럼 화려하고 멋들어지게는 못쓰겠지만 보고서의 목적에 맞는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에는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도 해두었고, 외국인과 근무한 경험이 있는 상사라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력서나 대화, 케이스 프레젠테이션 등을 보면 언어는 걱정이 없다고 했으니까. (뭐 경쟁소비자청에서도 그랬는데, 이번엔 내 느낌이 다르다.)
또 공무원이냐고, 공공부문이 체질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냥 공공부문에 있는 이코노미스트일 뿐이다. 내가 받은 교육이 그런 자리에 가게끔 짜여진 거고 (정말 딱 그렇게 짜여져있더라. 난 이 자리에 있기 위한 수업들을 들어왔다.) 그런 일을 주는 자리에 간것 뿐이다. Forsyningstilsynet, 영어로하면 Danish Utility Regulator로 Center for Analyse (분석센터)에서 fuldmægtig økonom, 경제 사무관으로 일하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논문쓴 것에 더해, 논문 지도교수와 협업을 하게 되어 계약직으로 COWI에서 프로젝트 일을 했던 것, 경쟁소비자청에서 하던 일 이게 정말 다 엮이고 잘 엮여서 지금 자리를 얻게 되었기에 얼마나 이 일련의 우연이란 게 우리 인생을 엄청 크게 좌지우지하는구나 하는 것도 느끼고.. 여러모로 느끼는게 많다.
긴장도 되고 설레고… 5월 1일은 진짜 여러면에서 중요한 날이 되었다. 우리 새집 넘겨받는 날, 내 첫 출근날….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새집 사고, 하나 유치원도 원하는 시기에 시작할 수 있어서 내 올해 운 다 썼나 했더니 이렇게 취직까지. 2021년이 참 좋은 한해가 되는구나.
이제 죽이되든 밥이되든, 일을 잘 하든 못하든 오래 잘 버티고, 장수해보자. 코트라에서 장수한 마음가짐이면 여기서도 장수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겸손하되 패배주의나 냉소주의로 돌아서지 않도록 나에 대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참을성을 가져주자. 차로 30분 가야 하는 곳이라 절반 이상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곳이니 이 유연함을 통해 애도 잘 키워보고.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일지어다. 이 마음가짐 잊지 말자. 먼 곳이라 차를 또 사야 할 수 있는 곳인데도 흔쾌하게 내 온전한 의사결정을 지지해 준 옌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고.
해외 나와서 취업을 하려는 모든 취준생에게도 이 좋은 기운이 흘러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