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계속 살고 일을 했다면 국어로 글쓰기에 대해 조금 더 공부를 했으려나? 아니면 그냥 우리 말이니까 딱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일 하다보면 경험이 쌓이면서 더 좋아질거다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 같다. 보고서 쓰면서 아쉽다는 생각을 간간히 하면서도 크게 글쓰기에 별도의 노력을 안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까.
대학원에서 논문을 쓸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다행히도 그 땐 논문 작성을 위한 글쓰기 클래스에서 글을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 등을 배우기도 했고, 개별적으로 드래프트를 보내 첨삭도 받으면서 아카데믹 글쓰기에 필요한 테크닉을 훈련받았다. 영어는 관련 자료도 많은 편이라 의지만 있으면 글을 좀 더 정갈하게 쓸 수 있었고, 2년동안 무수히 많은 그룹 과제를 내면서 친구들끼리 같이 글을 쓰는 과정에 서로 긍정적인 영향도 받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하나하나의 문장을 잘 쓰는 법, 그 문장이 문단에서 잘 어우러지게 하는 법, 지루함이 없게 문장의 구조를 바꿔가면서 쓰는 법, 그렇지만 읽기에 어렵지 않도록 어려운 개념도 쉽게 전달하는 법 같은 건 딱히 배운 적이 없다.
글을 잘 쓰는 법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덴마크어 학원에서 글을 아무리 잘 써봐야, 직장에 가서 글을 잘 쓸 수는 없었다. 첫 직장에서는 정말 많은 첨삭을 받았다. 지금은 그렇게 많은 교정을 받지 않지만, 내 문장들의 구성이 문단내에서 단조롭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래서 사두고 묵혀놨던 글쓰기 책을 펼쳤는데, 세상에. 이건 좋은 책이었네! 외국인을 위한 글쓰기 책이 아니라 보다 나은 덴마크어를 구사하고 싶은 덴마크인을 위한 책이다. 저널리스트들이나 방송국 아나운서의 글과 스크립트를 실제 사례에서 뽑아서 좋은 예, 나쁜 예로 예시를 들고, 어떻게 문장과 문단 구성을 바꿔볼 수 있는지, 그러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어떻게 쓰면 좋을 지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책을 구성했는데, 마음에 쏙 든다.
덴마크어에서는 도치가 엄청 많이 쓰인다. 영어와 도치의 방식 자체는 비슷하지만 그 사용되는 빈도로 봤을 때 덴마크어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고, 종속절, 주절의 순서로 구성되는 복합절 문장의 경우에 주절의 주어 동사의 순서가 동사 주어의 순서로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던지 하는 면에서 영어에서 더이상 잘 사용되지 않는 문장 규칙이 덴마크에서는 살아있다. 그런 덴마크어만의 특징을 활용해 문장을 다채롭게 할 수 있고, 반대로 그걸 잘못 쓰면 또 의사 전달이 더 어렵게 될 수 있기도 하다. 이책은 이런 덴마크어 문법의 특징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아직 내가 읽어보지 않은 다양한 방법으로 “좋은 덴마크어”를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1년에 한번 Medarbejder Udviklings Samtale (MUS)라고 직속상사랑 인사 면담을 한다. 내 강점이 어디에 있고, 지난 1년간 계발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 전의 계발계획이 달성되었는지, 앞으로 어떤 분야의 계발을 이루고 싶은지, 그 계발을 어떻게 이룰지에 대한 실천 계획까지 다룬다. 내가 계발하고 싶은 분야의 하나로 커뮤니케이션 능력 향상을 선택했는데, 그 실천 방식 중 하나로 코스를 듣거나 이런 책을 읽고 이를 업무에 반영하는 것을 골랐다. 지금 이 책을 읽는 것도 따라서 내 업무 중의 하나인 것인데, 얼마나 좋은가.
언어 공부 책이 영어처럼 다채롭지 않아도 찾아보면 보물찾기하듯 뭔가 걸려나오는 것들이 제법 있다. 지금 이 책 이름은 “Godt dansk” (https://www.universitypress.dk/shop/godt-dansk-1235p.html) Syddansk Universitet에서 발간한 대학교에서 사용되는 글쓰기 교재로 보이는 책으로, 글쓰기 능력 향상을 원하는 덴마크어 고급학습자에게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