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일주일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매일 7시 반에 출근해서 캔틴에서 갓 구운 롤을 반으로 자르고 버터를 발라 치즈를 한장씩 얹고, 한 쪽에는 캔틴에서 만든 산딸기잼을 얹어 자리에 가져가 먹는다. 그렇게 하면 14크로나. 2400원 쯤 되는 아침 식사. 여기 외식물가가 두 배 정도 되는 걸 생각하면 저렴하다. 물론 제대로 먹는 점심식사가 27크로나 (4500원) 인 걸 생각하면 조금 비싸지만 그래도 저렴하다. 꽤 괜찮은 커피 기계가 캔틴에 24시간 무료로 오픈되어 있어 그걸 곁들이면 훌륭한 아침식사다. 10분이면 자리에 돌아와 앉아 먹으며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잡담은 거의 없다. 업무 이야기를 하며 한두마디 건네는 게 다이고 근무 시간엔 정말 강도높게 일한다. 오리엔테이션 미팅은 지금도 간간히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내 업무에 할당된 자료를 읽고 프로젝트 킥오프를 준비하는 게 가장 크다. 기존 규제방식에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는 것인데 다른 유틸리티 섹터에 도입된 규제를 참고하고 있다. 상하수도 섹터는 다른 에너지 유틸리티 섹터와 재정운용 방식이 달라서 다른 유틸리티 섹터에 도입된 규제를 그대로 이식할 수 없는데, 상하수도 섹터의 재정운용방식은 바꾸지 않으면서도 정치권에서 해당 규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해당 규제 도입은 올바른 결정이지만 그걸 어떤 식으로 녹여낼지는 고민해야 할 부분이고, 내년 상반기까지는 최종 보고서가 나와 입법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은 없다.

법 읽는 것은 시간이 생각보다 덜 걸리는데, 우리처럼 꼬아 쓰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여기 법 읽는 것보다 한국 법 이해하는 게 간혹은 더 어려운 것 같으니 놀라운 일이다.

오늘부터는 사전 찾는 시간이 진짜 많이 줄은 것 같다. 덕분에 읽는 속도도 느는데, 지난 일주일간 찾은 단어 숫자가 엄청난 덕이다. 단어장 노트의 반을 거의 다 채운 것 같으니 말이다. 다만 덴마크어를 읽고 이해하는 수동적 어휘와 내가 말을 할 때 꺼내서 쓸 수 있는 능동적 어휘 간에 차이가 많이 나니 간혹은 답답하다.

내 의견을 피력할 때 논리적으로 조리있게 설명하려다 보면 어휘의 한계로 갑갑할 때가 있다. 덴마크어로 머리를 풀가동해 쓰는 거라 생각안나는 단어를 영어로 꺼내기엔 쉽지가 않다. 처음 덴마크어를 배울 땐, 덴마크어->영어, 영어->덴마크어로 번역해 대화를 했기에 말이 안나오면 바로 그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를 뽑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덴마크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그 기저엔 모국어인 한국어가 무의식중에 깔려 있는 거라 덴마크어로 생각이 안나면 아예 이를 중단하고 영어 문장을 뽑아내야지, 한 두단어 갑자기 영어로 전환해서 말하는 게 힘들어졌다. 그러다보니 덴마크어로 말이 막히면 어버버 할 때가 있다.

오늘 잠깐 나의 보스인 센터장님과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본인이 남미에서 몇년 지내신 경험이 있으셔서 그 기분 잘 아신다며, 내 언어의 제약이 내가 멍청해서의 표현이 아님을 아주 잘 이해한다고 하셨다. 그걸 다 알고 채용한 거니 걱정 말라시며 내 불안을 잠재워주려 하셨다. 본인의 경험으로 (그 전에 한번 점심 때 이야기 해주신 적이 있었다.) 아시는 거니 빈말이 아닌 거 같아 위안이 더 되었다고나 할까?

3일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일주일이 아니라 사실 일주일하고도 이틀 더 일을 했다. 연말에 쪘던 살도 일 시작하고 나니 일찍 일어나서 피곤했는지 다 빠지고 살아있는 기분도 들고 좋다. 그러니까 하나와 옌스도 더 보고싶고 집에 와서 둘에게 더 잘 하고 싶고 그렇다.

얼른 나도 내 업무에 적응하고 덴마크어도 늘어서 온전히 1인의 몫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 날은 언제쯤 오려나. 한달은 너무 야심찬 거 같고, 3월 정도면 좀 그렇게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