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즐기는 것들

좋아하던 텔레비전 시리즈들이 시즌을 거듭하며 지루해지고 좋아하던 음악들도 계속 반복해서 듣다보니 질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때마침 눈과 귀에 띄는 것들이 생겼다.

첫째로는 DR에서 새로이 시작한 드라마 시리즈인 Carmen Curlers라고 머리에 고정해두고 기다리면 컬이 생기는 고데기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악셀이라는 사람을 그렸다.

딱히 꼬집어 이야기 어려운데 좀 새로운 방식으로 영상을 담았다. 중간중간 자기 세계에 몰입하는 인물들의 상상과 현실이 뒤섞인 환타지스러운 영상기법이 DR에서 평소에 볼 수 있던 시대극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호기심이 더 가는 극이라고 할까?

둘째로는 Shu-bi-dua의 음악이다. 1970~80년대에 가장 전성기를 구가했던 팝락그룹인데, 사실 그 중 리드싱어였던 Michael Bundesen의 음악이 마음에 들었다는 게 보다 정확하겠다. 덴마크 어린이 노래는 어른들이 어른의 목소리로 부른 게 많은데 특히 60~80년대 음반 중에 좋은 게 진짜 많다. 그 중 한 노래가 매우 마음에 들어서 찾아봤더니 말로 엄청 많이 들어봤던 Shu-bi-dua의 리드싱어였던 것. 애들이 들으면 웃긴게 아닌 그냥 노래인데, 어른이 들으면 무슨 저런 걸로 노래를 만드나 싶어 웃음을 터지게 만드는 가사라던가, 아니면 손발가락이 오그라들만큼 찌질함을 너무 편안한 목소리로 불러서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속이 오글거리는 가사라던가 하는게 귀를 즐겁게 한다. 내 귀를 처음 사로잡은 노래는 Røde hunde. 이는 질병인 풍진을 뜻한다. 예비임산부들이 예방접종을 맞는 바로 그 풍진.

나는 풍진에 걸렸어. 나는 꽤나 아파. 내가 너무 불쌍해 라는 가사로 시작해서 중간에 열이 얼마나 나고 진통제랑 페니실린을 먹고 있다는 내용 등 가사를 들어보면 무슨 이런 걸 노래로 부르나 싶은데, 목소리만 들으면 그런 내용일지 모르겠는 노래라는 데에서 컨트라스트가 두드러져 재미있게 들었다.

옌스가 슈비두아를 듣고 마음에 든다면 정말 덴마크인 다된거라 하더라. 사실 한 삼분절은 덴마크인이 되어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긴 하다.

또 이렇게 덴마크를 알아가게 되는구나.

낯선 아침 출근시간의 시내 모습

출근시간에 코펜하겐 시내에 나온 건 정말 오래간만이다. 주차자리를 다행히 찾아서 차를 대고 조금 걸어서 가까운 카페로 이동하는데 아침 도시의 소음과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런 언더톤의 도시 소음을 들어본 게 얼마만인가.

낯선 도시 소음을 마주하고 나니 마치 내가 여행지로서 낯선 도시에 서있는 것 같았다. 도시를 구경하거나 여유를 즐기는 사람은 없고 다들 분주히 이동하는 모습.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 구분 없이 다 바빠보인다. 주말에는 들리지 않던 공사장의 소음, 지게차의 경고음, 도시의 언더톤에서 시끄러운 소음을 담당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분주히, 무표정한 얼굴로 자전거를 타고 쌩쌩 지나가는 사람을 보니 낯설다. 걸어 다니며 내 얼굴을 볼 일이 없기에 내가 아시아인이란 생각을 잊고 지내는데다가 주로 보는게 백인이다보니 그 얼굴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데 그마저도 낯설게 느껴져서 내가 이방인인 것 같다. 마치 시골쥐가 서울에 와서 정신 못차리는 상황같다.

내가 얼마나 도시 생활에서 멀어져 지냈는지 느끼고 놀랬다. 집이 외곽이고, 회사는 더 외곽이니 자연에 둘러쌓여 소음 없이 살면서 간간히 사람 많고 관광지 느낌 가득한 주말의 도시만 구경하다가 이런 출근길 도시를 마주하고 나니 그 사실이 새삼 크게 느껴졌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

전기료와 가스요금이 엄청나게 올라서 경제 구석구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기료가 하루 시간대별로 등락을 거듭하는 수준은 그냥 몇배, 몇십배가 아니라 몇백배 단위로 등락을 반복한다. 실제 사용시간대에 따라 과금의 단가가 변동하는 요금제를 택한 사람들은 그 시간대별 단가를 보고 언제 세탁기와 식기세척기를 돌릴 것인지, 전기자동차를 충전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불필요한 전력망 투자를 막으려면 소비자로 하여금 가격 신호를 통해 피크시간대 전력사용을 줄이고 전력 사용량이 주는 밤 시간이나 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생산량이 많은 한낮 시간에 사용을 늘리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선결과제였다. 시간대별 가격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전기 단가가 평소에 비해 이렇게 껑충 뛰고 나서 전력 소비시간이 전기요금의 규모에 큰 영향을 주니까 사람들이 요금제를 변동제로 돌리고 적극적으로 가격 신호에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같은 이코노미스트에겐 이처럼 시장에 크게 쇼크를 주는 일은 자연과학계의 실험과 같은 일이라서 앞으로 이를 통해 들여다볼 것이 참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U 전기시장은 우리나라와 달리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뭔가 하나를 건드리려면 여러가지 사항을 동시에 건드려야 한다. 전력 송배전을 빼고는 시장자유경쟁체제가 도입되어있고 송배전과 같이 자연독점분야는 벤치마킹제도 등을 통해 시장의 효율성을 모방할 수 있도록 하는 독점 규제가 강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가스 가격이 전기 단가에 큰 영향을 주어 가스 가격에 따라 전기요금도 하늘 높이 행진하는 커플링 현상을 막기 위해 전기 시장의 가격 결정체계에 영향을 주는 이니셔티브를 도입하는 것도 이번 주 결정되었다. 경제이론적 관점에서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의 시장 개편이지만, 이처럼 가격이 너무 치솟하 민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정치적으로는 어떤 조치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정치 논리도 중요하기에 어쩔 수 없는 차악처럼 선택하게 된 방식이다. 내가 일하는 유틸리티청은 산업계에서는 잘 알지만, 일반 대중은 뭐하는데인지 잘 모르는 곳인데, 요즘 유례없이 매스컴에 많이 오르락내리락할만큼 에너지가 요즘 정말 큰 화두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에너지시장의 충격을 피부로 느끼는데, 세탁기를 시간대별 요금을 확인하고 싼 시간에 돌리는 것을 포함된다. 이에 더불어 전기차 충전기 요금이 오르게 된 것도 있다. 전기차 충전기 시장에 선발주자로 뛰어들어서 탄탄한 입지를 갖고 있는 Clever는 무제한 충전 상품을 갖고 있었는데, 드디어 이번주에 이 상품을 폐지하고 새로운 변동 단가의 조금 복잡한 상품을 출시했다. 충전회사를 바꾸는게 은근히 번잡한 일이라서 고민고민하다가 대안으로 제시된 상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쉽다. 전기차의 장점이 낮은 연료비용이었는데… 뭐 지금은 무슨 차를 갖고 있든간에 다 연료비용이 올랐으니 받아들여야지…

올 겨울 많이 추울 것 같다. 집에서 잘 껴입고 살아야지. 회사에서도 19도로 실내를 유지하기로 했다지만 이조차도 더 낮아질 지 알 수 없는 일… 정말 특별한 시기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역사책에 남을 현대사의 한 획에 남을 사건을 바로 피부로 겪으면서 말이다.

햇살에 대한 감사

덴마크에 산다는 것은 길고, 어둡고, 음습한 겨울을 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11월부터 4월까지 6개월은 거의 겨울이라고 봐도 무방하니까. 추분을 지나가면 어두운 시간이 급격히 늘어나고, 해가 떨어지고 나면 급격히 어두워진다. 여름엔 해 자체가 엄청 늦게 떨어지는데다가 떨어지고 나서도 진짜 어두워지기까지 한참 걸렸는데 말이다.

이번주는 유독 흐리고 비가 자주, 꾸준히 왔다. 본격적으로 습도가 올라가는 가을은 원래 10월 세넷째주쯤에 시작되는데, 올핸 그 직전 이렇게 저기압이 찾아온 탓에 뭔가 가을이 일찍 찾아온 느낌이다.

해가 짧게 떴는데, 책상에 내려쬐는 햇살에 순간 너무 기분이 좋고 감사했다. 여름이면 덥고 뜨겁다고 불평하는 햇살이 이렇게 감사할 수가. 불과 5분도 안되어 사라진 햇살 한줌에 불과했지만 그 조차도 소중하다.

이제부터 들어설 본격적 가을과 겨울에 대한 마음 준비가 필요하다. 덴마크에 산 지 9년이 넘었지만 이 겨울은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내가 즐기는 활동들이 실내 활동들이라 겨울에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지. 옌스의 활동은 주로 야외에서 이뤄지는 거라 날씨와 일조시간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겨울엔 제약이 큰 편이다. 그래도 올 해는 일주일에 한번이나마 실내에서 외줄타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겠지.

잊지 말고 산책을 좀 다녀야겠다. 틈을 내서.

덴마크어 글쓰기 능력 향상

한국에서 계속 살고 일을 했다면 국어로 글쓰기에 대해 조금 더 공부를 했으려나? 아니면 그냥 우리 말이니까 딱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일 하다보면 경험이 쌓이면서 더 좋아질거다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 같다. 보고서 쓰면서 아쉽다는 생각을 간간히 하면서도 크게 글쓰기에 별도의 노력을 안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까.

대학원에서 논문을 쓸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다행히도 그 땐 논문 작성을 위한 글쓰기 클래스에서 글을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 등을 배우기도 했고, 개별적으로 드래프트를 보내 첨삭도 받으면서 아카데믹 글쓰기에 필요한 테크닉을 훈련받았다. 영어는 관련 자료도 많은 편이라 의지만 있으면 글을 좀 더 정갈하게 쓸 수 있었고, 2년동안 무수히 많은 그룹 과제를 내면서 친구들끼리 같이 글을 쓰는 과정에 서로 긍정적인 영향도 받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하나하나의 문장을 잘 쓰는 법, 그 문장이 문단에서 잘 어우러지게 하는 법, 지루함이 없게 문장의 구조를 바꿔가면서 쓰는 법, 그렇지만 읽기에 어렵지 않도록 어려운 개념도 쉽게 전달하는 법 같은 건 딱히 배운 적이 없다.

글을 잘 쓰는 법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덴마크어 학원에서 글을 아무리 잘 써봐야, 직장에 가서 글을 잘 쓸 수는 없었다. 첫 직장에서는 정말 많은 첨삭을 받았다. 지금은 그렇게 많은 교정을 받지 않지만, 내 문장들의 구성이 문단내에서 단조롭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래서 사두고 묵혀놨던 글쓰기 책을 펼쳤는데, 세상에. 이건 좋은 책이었네! 외국인을 위한 글쓰기 책이 아니라 보다 나은 덴마크어를 구사하고 싶은 덴마크인을 위한 책이다. 저널리스트들이나 방송국 아나운서의 글과 스크립트를 실제 사례에서 뽑아서 좋은 예, 나쁜 예로 예시를 들고, 어떻게 문장과 문단 구성을 바꿔볼 수 있는지, 그러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어떻게 쓰면 좋을 지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책을 구성했는데, 마음에 쏙 든다.

덴마크어에서는 도치가 엄청 많이 쓰인다. 영어와 도치의 방식 자체는 비슷하지만 그 사용되는 빈도로 봤을 때 덴마크어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고, 종속절, 주절의 순서로 구성되는 복합절 문장의 경우에 주절의 주어 동사의 순서가 동사 주어의 순서로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던지 하는 면에서 영어에서 더이상 잘 사용되지 않는 문장 규칙이 덴마크에서는 살아있다. 그런 덴마크어만의 특징을 활용해 문장을 다채롭게 할 수 있고, 반대로 그걸 잘못 쓰면 또 의사 전달이 더 어렵게 될 수 있기도 하다. 이책은 이런 덴마크어 문법의 특징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아직 내가 읽어보지 않은 다양한 방법으로 “좋은 덴마크어”를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1년에 한번 Medarbejder Udviklings Samtale (MUS)라고 직속상사랑 인사 면담을 한다. 내 강점이 어디에 있고, 지난 1년간 계발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 전의 계발계획이 달성되었는지, 앞으로 어떤 분야의 계발을 이루고 싶은지, 그 계발을 어떻게 이룰지에 대한 실천 계획까지 다룬다. 내가 계발하고 싶은 분야의 하나로 커뮤니케이션 능력 향상을 선택했는데, 그 실천 방식 중 하나로 코스를 듣거나 이런 책을 읽고 이를 업무에 반영하는 것을 골랐다. 지금 이 책을 읽는 것도 따라서 내 업무 중의 하나인 것인데, 얼마나 좋은가.

언어 공부 책이 영어처럼 다채롭지 않아도 찾아보면 보물찾기하듯 뭔가 걸려나오는 것들이 제법 있다. 지금 이 책 이름은 “Godt dansk” (https://www.universitypress.dk/shop/godt-dansk-1235p.html) Syddansk Universitet에서 발간한 대학교에서 사용되는 글쓰기 교재로 보이는 책으로, 글쓰기 능력 향상을 원하는 덴마크어 고급학습자에게 강추한다.

아이를 통해 나도 다시 그 시절을 겪는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는 것처럼 어린 시절 기억들은 자주 떠올리던 기억이 아니면 잊혀지는 것이 많다. 내가 부모님에게 어떻게 어리광을 부렸는지, 어떤 감정을 겪었는지 등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잊혀진 어린 시절을 하나를 키우면서 다른 방식으로 다시 경험한다. 아이가 아닌 부모로서, 나라가 바뀌어 새로운 맥락에서.

하나는 신체적 접촉을 매우 좋아한다. 부모가 쓰다듬어주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자기 전 책을 다 읽고 나면 꼭 잠이 들때까지 몸을 쓰다듬어줘야 한다. 그런 연유로 만으로 거의 여섯살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한번도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하나를 재워준 적이 없다. 아이의 부드러운 뱃살을 쓰다듬는 그 따뜻한 감촉을 우리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일 거다. 또 길을 가다가 갑자기 “엄마, 안아주세요.”라던가, “엄마, 뽀뽀.”라면서 신체적 접촉을 원하는 때가 있다. 나는 어땠는가? 전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나와 옌스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과의 신체적 접촉을 좋아하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친구들 중 하나에게 작별 포옹을 하겠다고 안아줄때면 소극적으로 안겨줄 뿐이지 적극적으로 안아주는 건 정말 내키는 경우 아니면 애착을 느끼고자 하는 접촉을 좋아하지 않는다. 꽤나 드문일이더라.

책장을 새로이 사주고 디스코 램프랑 인형집, 전축 등을 그 위에 이쁘게 놔줬더니 자기 방이 큰 애 방같이 느껴졌던 거 같다. 그 다음부터는 저녁엔 방 정리를 제법해서 더이상 전쟁통같은 방에서 재워야 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때로는 같이 정리를 해야하기도 하지만, 정리하다가 딴짓하고 노는 것으로 새는 일이 줄어들면서 같이 정리하기도 수월해졌다. 그런데 어느날 그렇게 함께 정리를 하다가 머리카락 뭉텅이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싶어서 이게 뭐냐고 물었는데, 잘 모르겠단다. 음? 모른다고? 가위가 옆에 보이고, 가위로 싹둑 잘린 흔적이 보이는 머리카락인데? “내가 보기엔 네 머리카락 같은데, 아냐?”라고 재차 물으니, 씩 웃으면서 자기 머리를 어쩌다보니 자르게 되었다면서 죄송하단다. “네 머리카락이니까 미안할 일은 아닌데, 잘못해서 귀를 자를 수도 있고, 눈을 찌를 수도 있으니 머리카락은 엄마 없는데서 자르면 안돼. 그리고 다른 것보다 엄마한테 사실대로 이야기해야돼.”라고 말을 하자 “네.”라고 배시시 웃으면서 답을 한다. 왜 엄마한테 바로 이야기 못하고 모른다고 한건, 말하기 어려워서 그런거냐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단다. 자기 생각에 엄마가 하면 안된다고 하는 일일 것 같았던 거 같다. 나도 생각해보면 언젠가 앞머리를 바짝 당겨 눈썹 위로 잘랐던 일이 있었던 거 같다. 자르고 나서 머리가 짤뚱하게 올라갔던 기억도 나고. 다만 그래서 울었는지 뭘 어쨌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때 나도 몰래 했던 것 같은 기억만 어렴풋이 날 뿐. 아이가 잘못된 일이라도 나에게 언제고 솔직히 이야기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제 오늘 옌스가 취미활동을 하는 시간동안 이것저것 하나가 좋아할법한 일들을 하면서 여자들끼리 데이트를 많이 했다. “하나랑 같이 이렇게 데이트하니까 너무 hyggelig하고 좋다.”라는 내 말에, “자기도 딱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신나하는 모습에 나도 마음이 간질간질 따뜻했다. 엄마를 말이라면서 이름이 sommer에 성이 bacon이라고 작명도 해주고, 자기 수레를 끌으라고 이랴이랴 채찍질에 당근도 주고 하면서 그 큰 민속촌을 쏘다녔는데, 나이 든 엄마지만 그나마 이런 걸 해줄 수 있는 체력이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나도 덕분에 즐겁게 구경도 하고 놀다 왔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 또 이 나라의 학제도 덕분에 배우면서 학창생활이 어땠는지 되감아 가면서 생각해볼 수 있겠지. 초등학교 학창 시절 생각하면 3학년과 6학년의 담임선생님이 기억나는데, 특히 3학년때 담임선생님이 떠오른다. 다른 것도 아니고 쉬는시간에 선생님이 우리랑 놀아주시던 기억이다. 성함도 기억나지 않는데, 전두환씨처럼 머리가 벗겨지셨지만 또 얼굴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이들지 않았던 선생님이었는데, 연배가 어떠셨는지 모르겠다. 그 선생님이 자기는 기마자세로 단단히 자세를 잡고 서서 옆에서 순서대로 달려오는 애들 배를 잡고 일종의 공중제비를 돌릴 수 있게 해서 반대편 옆쪽으로 다시 뛰어가게 세워주시는 놀이였다. 많은 애들이 했는지, 아니면 내가 해달라고 해서 해주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기억이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나는 선생님과 어떤 관계를 쌓고 커갈지 궁금하고, 그걸 옆에서 간접적이나마 겪고 볼 걸 생각하니 설레기도 한다.

애를 키우면서 체력적으로 힘든 시기는 다 지나고 나니 애를 키우며 내가 겪는 많은 일들과 배움이 인생을 새롭게 채워주는구나 싶어서 이런 소중한 시간을 갖게 해주는 아이에게, 그 시간을 같이 행복하게 나누고 채워가주는 옌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부모에게서 받는 것과 또 다른 차원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눠주는 아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소중한 일이다.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실내암벽타기

코로나와 관련된 모든 제한조치가 해제된 이른 봄부터 다시 벽을 타기 시작했으니 대충 반년 쯤 벽을 탄 것 같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번, 많으면 서너번도 탔다. 잡생각 따위는 자리잡을 새 없이 한 걸음씩 올라가는 것이 내 성향에 정말 잘 맞는다. 손의 피부가 거칠어지고 손가락 마디마디와 발가락, 손 발 여기저기에 생기는 굳은 살은 안타깝지만, 사실 크게 상관은 없다. 안느는 거 같은데 천천히 늘고, 어제까지 반밖에 못올라가던 루트를 그보다 몇미터 더 올라가고, 완등하고, 중간에 실패없이 완등을 할 수 있게 되고, 기존에는 생각도 못했던 루트를 올라가게 되고, 기존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오를 수 있게 되고… 무엇보다 강해지게 된다.

클라이밍 자체도 좋지만, 소셜라이징 측면에서도 클라이밍 경험은 긍정적이다. 낯선 사람과 만나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을 크게 즐겨하지 않지만, 벽을 타는 공간에서는 사람들과 대화를 조금 더 쉽게 나눌 수 있다. 어제만 해도 나의 클라이밍 파트너가 일찍 암장을 떠나야 하는 관계로 홀로 남게 되었는데, 딱 봐도 나처럼 혼자서 벽을 타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말을 걸었다. 암장을 새로이 바꾼 체코 대학원생이었는데, 수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벽을 타고 내려와서 바톤 터치를 하고 장비를 교대하는 타이밍이면 이런저런 대화를 하게 되는데,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아도 장비를 교대할때마다 대화를 하면 그 또한 제법 시간이 된다. 무슨 일을 하는지, 뭘 공부하는지, 언제부터 등반을 했는지부터 가벼운 사생활까지도. 때로는 잘 모르는 사이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에서는 털어놓기 어려운 일도 가벼운 주제처럼 털어놓을 수 있기도 하고, 생사를 서로의 손에 맡기고 서로의 등반을 응원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유대감과 친밀감이 빠르게 생기게 된다.

엄지발가락 부상으로 암벽타기와 발레 모두를 잠시 중단했다가 암벽등반에 먼저 복귀한지 두주째인데, 발도 천천히 좋아지고 해서 언제 발레에 복귀를 해야할지 고민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발레를 줄이고 나니 내가 너무 바쁘게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발레를 일주일에 한번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발레를 한동안 확 쉴까 하는 마음도 드는데, 옌스는 취미를 몇개는 가져 두는 것이 지금과 같이 뭔 일이 있어서 하나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다른 것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해서 – 그 말이 맞기도 하고 – 고민이다. 우선 발레는 를르베 상태로 오래 균형을 잡고 서있으면서도 발가락에 통증이 없을 때까지는 쉬기로…

흰 머리, 맨 얼굴, 운동화

겉머리는 까만데, 머리를 뒤적뒤적 들춰보면 들춘 곳마다 서너가닥씩 흰머리가 보인다. 얼굴색도 딱히 찝어 말하긴 어렵지만 조금 칙칙해져 보이는데, 아마 피부의 탱탱함이 줄어듦에 따라 조금씩 얼굴이 쳐지기도 하고 해서 그래 보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꺼워서 불만이던 눈두덩이는 가면 갈수록 얇아져서 눈을 부릅뜨면 쌍꺼풀이 만들어질 것 같은 기세다.

원래도 화장이라 함은 어디 갈때나 하는 것이었기에 이곳에서도 똑같이 하고 살지만, 요즘은 어디 갈때도 정말 큰 행사가 아니고서는 (그나마도 회사에서 하는 행사 등은 제외하고) 화장을 하지를 않으니 일년에 화장을 한번 할까 말까한다. 그나마 화장을 하다 안했을 땐 안한 얼굴이 칙칙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요즘 화장을 정말 드물게 하다보니 맨얼굴이 나쁘지 않게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 쫙 붙여 묶어 틀어올린 머리가 나에게 잘 어울리고, 상체는 적당히 타이트하게 붙는 옷, 하체는 루스하게 여유가 있는 옷이 잘 맡는다는 것 등을 알면서 옷을 사는 것이 쉬워졌다. 중앙부처가 아닌 이상 옷을 상당히 캐주얼하게 입어도 되는 공공부문에서 일을 하다보니 옷을 특별히 많이 갖고 있을 필요도 없다. 신발은 변호사나, 컨설팅 이런데 일하는 거 아니면 운동화를 신는 게 전혀 흠이 되지 않는 문화인 이상 더이상 구두를 신지 않는다. 입고 나를 치장하는 부분에서 시간이나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해졌는지…

체력도 예전같지는 않고, 조금만 다쳐도 낫는게 오래걸리는 걸 보면 나이가 드는 걸 느끼는데, 생각의 면에서 갖게 되는 많은 여유를 따져보면 나이가 드는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높아진 물가, 달라진 식생활

물가가 많이 올랐다. 전기료가 오르니 남들 유류대만큼은 아니더라도 통근과 관련된 비용도 오르고, 특히 식생활과 관련되서는 물가가 오르는 것을 크게 느낀다. 많이 오른 품목은 20-30%씩 오르기도 했으니 같은 메뉴를 유지한다면 장바구니 지출이 엄청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으로 얼마나 에너지 비용이 오를 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살던대로 살 수는 없는 법. 생활비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식비를 구조조정하기로 했다.

맛있지만 다소 고가 카테고리에 속하는 브랜드를 많이 판매하는 동네 수퍼에서 장을 보다가 적당한 퀄리티와 좀 더 표준적인 카테고리에 속하는 브랜드를 많이 판매하는 다른 동네 수퍼에서 장을 보기 시작했다. 크게 가격을 신경쓰지 않고 매달 정해진 예산에만 맞춰 장을 보다가 단가에 조금 더 신경을 기울여가며 장을 보다 보니 가격 차이가 10% 가까이 차이나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래도 덴마크 통화가 원화 대비 약 180-190배의 가치를 지니다보니 표시되는 단가 차이가 1~2 크로나 밖에 차이가 안난다해도 개당 단가 자체가 10크로나다라 하면 큰 차이가 나게 되는데, 아무래도 1~2 크로나 차이는 기억에 크게 남지 않는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기존에는 맛있는 브랜드, 고품질 제품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장을 봤다면, 이제는 그보다 하위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장을 본다. 대충 비슷한 제품을 산다고 해도 크게 지출을 낮출 수 있으니 물가가 올라도 좀 더 싸게 살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하지 못하는 품목도 있으니 모든 품목에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할 수 있으면 그리한다.

예전에는 육류 소비 비중이 높았는데, 하나가 고기류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육류를 아주 가끔 구입하고, 구입하더라도 가공육 중심으로 소량만 구입해서 메뉴 자체를 채식 중심으로 돌리기 시작하니 지출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게 채식의 비중을 크게 늘리게 되었는데, 기후 변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이라서 괜찮다. 나의 창의력을 조금 더 올려야 한다는 부분은 있지만, 그렇게 식생활도 바꿀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진짜 이 전쟁은 어디로 흘러갈 것이며, 앞으로의 추운 겨울은 어떨 것인가? 공공건물은 모두 실내기온 상한을 19도로 설정했고, 옌스네 회사도 “연대의식”에 따라 공공건물은 아니지만 19도 상한을 따라간다고 한다. (실제 비용 측면에서라도 그리 하고 싶을텐데 공공이 한다니까 얼씨구나 따라한 것일 거라 생각한다.) 공공건물은 이에 더불어 벌써 온수를 잠궜다. 벌써 물이 차던데… 한겨울 찬 물로 손 씻으면 참 손이 시려울 것 같다. 커피랑 차를 많이 마시겠네. 한국에서 한 때 14도의 추운 사무실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큰 도움은 되겠지만, 사람이 고통은 금방 잊지 않는가? 그리고 지금이야 19도라 해도 나중에 18도로 내려갈 수도 있는거고. 집도 마찬가지고.. 빨리 전쟁은 끝나고,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성도 빨리 없애고 재생에너지로 얼른 전환을 했으면 좋겠다. 비행기도 비싸지니 여행은 최소화하고…

심리상담을 통한 내적변화를 느낀다

매주 받던 심리상담을 격주에 한번으로 줄였다. 한달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 상황이 많이 좋아진 덕이다. 요즘은 굳이 업무가 아니더라도 일과 관련된 생활에 있어서 나를 두렵거나 불편하게 해 피하고자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그 때 내 마음 속 소리가 어떤 건지, 그 소리가 왜 내 마음속의 소리에 불과한지 설명도 듣고, 실제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봐야할지, 그래서 이 마음 속 근거없는 두려움의 소리가 근거 없음을 확인해 볼 수 있는지, 그리고 왜 이런 두려움들이 하등에 두려울 것이 없는지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모든 상담의 기본 원리는 간단한데 내 뇌가 오랫동안 움직여왔던 자동화된 방식을 다른 방식으로 돌리는 거라 일정 기간 반복적인 상담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도 정말 짧은 시간동안 내가 오랜 시간 갖고 있던 두려움들을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아서 오히려 이 시간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사실 같은 이유로 지난 직장을 관둔건데 그때 이런 도움을 받았으면 달랐을까? 모르겠다. 우선 상담 자체를 받음에 있어서 언어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 나의 부족함을 나도 많이 느끼고 있던터라 그게 내 머리속 두려움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때 상담을 받았으면 더 좋아졌을지도 모르지만. 뭐 그걸 지금 생각해서 달라질 건 없으니 그냥 지금이라도 상담을 받고 내 안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일이다.

어제 직원전체 워크샵이 있었는데, 조직내 피드백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떻게 피드백하는 것이 좋은지, 피드백을 어떻게 조직내 일상화할 수 있는지 다뤘다. 나의 경험과 그게 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가 희망하는 변화의 방향은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상대의 의견을 물음으로서 비판이 아니라 대화의 시작으로 풀어가라는 것 하나. 피드백의 대상이 자신이 호감의 대상이 되고, 충분한 능력이 있으며, 같은 그룹의 소속원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 상대가 방어태세로 전환하지 않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하나. 이 둘이 어제 워크샵의 큰 레슨이었다.

아침식사, 스낵, 점심식사, 야외 활동, 저녁식사까지 타 부서에서 일하며 적당히 알고 지내는 직원들, 그보다 잘 알고 지내는 직원들 등과 대화를 나누고 상호작용할 시간이 있었는데, 심리상담가가 나에게 주었던 태스크들을 시행해보고난 후 상담가가 했던 이야기들처럼 내 마음 편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침 바로 전날 있었던 상담에서 네트워킹하는 걸 참 불편해하는 나에게 이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덕이다. 내 두려움에 나를 보느라 타인을 보는 것을 잘 못하고 있었음도 느꼈고, 앞으로 좀 더 편하게 여러 상황에 접근할 수 있을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상황에 잘 맞는 상담가를 만난 것이 참 좋은 일이었다. 덕분에 인생의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되었고 앞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여러 상황에 노출될 것이 기대도 되고… 여러모로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