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의식적 불안과 그의 고백

칭찬을 많이 듣고 자라서 그럴까? 크게 혼날 때면 밖에 나가라고 혼내시는 엄마가 정말 나가라고 한 거면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하면서 문 밖에서 앉아있던 때문일까?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잘하지 않으면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간간히 하곤 했다.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하던 부모님이지만 뭔가 내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하면 그걸 숨기고 싶어하고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건 부모님의 엄격한 순간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순간으로 오해해서 그런 것 같다. 사실 화해의 순간이나 다른 전혀 상관없는 순간에도 부모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도 이야기해주셨고, 나에게 참 다 잘 해주셨던 부모님이었는데도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1등을 했더라도 뭔가 실수를 해서 하나라도 틀리면 시험을 보지 않은 척, 금방 드러날 뻔한 거짓말을 해서 혼난 적도 있다. 엄마가 시험 본 거 왜 안봤다고 거짓말했냐고 물어보시는데, 내가 실수했다고 혼날까봐 그랬다고 한 기억이 난다. 엄마의 답은 기억이 안나는데, 그냥 그때 들킨 게 너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다. 나중에 엄마를 통해 들은 엄마의 반응은 역시 당황스러움이었다. 얘가 왜 실수로 틀린 거를 감추는데 급급해서 성적만 놓고보면 잘 한 것조차도 숨겨야했을까, 내가 뭔가 잘못했나 하는 당황과 황당. 그런 마음.

내가 보기에도 객관적으로도 크게 나쁜 것 같지 않은 성과가 엄마 앞에서는 항상 앞을 더 보고 나아가야 하는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결과였기에 나는 항상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 느꼈다. 그리고 엄마가 다른 친구의 부모님이나 이웃이 나를 칭찬하는 이야기에 겸양의 형태로, 아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정도로 이야기하시는 내용을 자주 듣다보니, 나는 항상 내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엇나가려면 엇나갈 수 있는 성향의 나였지만, 시댁과의 갈등 속에서 결혼의 의미를 우리 가족의 화목함, 우리가 잘 자라는 것에서 찾으시련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나는 아주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사춘기의 갈등을 겪으며 컸다. 문제를 일으켜도 되는 범주를 알고 적당히 사고를 치며 자랐다고 할까?

지금도 나는 간혹 두려움을 갖고 산다. 뭔가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시기가 올 때면 다시금 찾아오는 그런 두려움. 내가 부족한 사실을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알면 그들이 지금과 같이 나를 바라봐줄까 하는 두려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는 일은 크게 두렵지 않다. 이러나 저러나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니까. 그들이 나를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든 무슨 상관이랴. 다만 아끼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달리 바라볼까 하는 걱정과 불안.

회사를 관뒀을 땐 도망친 거였다. 나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던 기후변화관련 모델링과 법제 작업에서 빼준다고, 나와 같이 초기에 프로젝트에 들어가있던 선임이 빠지고 다른 선임이 프로젝트 리더로 들어왔던 이유도 유사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고 상사가 이야기했을 때도 나는 두려웠다. 6개월 안에 도래할 다른 내 프로젝트의 법제 작업이 무서웠다. 2-3년의 기한을 가진 장기프로젝트를 끌어가는 게 너무 부담이 컸다.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이 걸려있고 큰 돈이 걸려있는 프로젝트라는 것도 갈 수록 부담이 되었다. 옌스에게 스트레스를 적당히 이야기했지만, 조금 더 버텨보면서 다른 할 거리를 생각해보며 좀 준비가 되면 관두라고 했는데, 관두는 것에 대한 옵션 자체가 화제로 오르자마자 관둘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옌스야 내 미묘한 변화를 다 아는 사람이라 굳이 숨긴다고 오래 숨길 수 있는게 아니라 내 밑바닥부터 다 알고 있는 사람이고, 내가 부모님 만큼이나 밑바닥부터 신뢰하는 사람인지라 그런 좌절을 다 공유한다. 그래서 그 스트레스를 알고 있었고 그게 어마나 지배적으로 커지고 있는지도 지켜보았다. 그래도 좋은 직장을 선뜻 관두는 게 큰 리스크로 느껴했고 나도 그의 입장을 알고 있는지라 섣불리 관둘 수 없었다. 어느날 무슨 사업 같은 거 할 거리가 있으면 자본은 내가 델 수 있으니 그런 거 해보면 되지 않느냐고 묻길래, 그러면 번역이랑 덴마크어 강의 같이 내가 해보고 싶던 거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봤다. 깊이 알아본 일도 아니었고 그냥 막연했다.

그렇게 시작한 개인 프로젝트였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시간이 지나보니 시장조사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더라. 번역인세가 덴마크의 소득세를 떼고 나면 너무 박한 소득이고, 그렇다고 번역을 할만한 책을 발견해 계약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강의는 재미있고 보람도 있지만,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드는 일이라 다른 일을 할애할 시간을 제법 줄여야 했다. 책을 쓰는 일은 대충 주제는 잡았지만 덴마크어를 학습하는 것에도 시간을 할애하다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었다. 유튜브는 재택근무로 집에서 엄청나게 많은 회의를 하는 옌스와 함께하다보니 잠정적으로 중단한 상태가 되었다. 어느 방향으로도 제대로 가지 않는 것 같은 그런 순간, 나는 내 민낮을 마주해야했다. 이 프로젝트는 전혀 깊이 고려되지 않은, 찰나의 호기어린, 전 직장에서로부터의 도주를 감추는 프로젝트였다는 것을 말이다.

퇴사한지 만 4개월. 아직 다시 직장을 찾기에 휴식이 길지만은 않았던 기간. 다시금 취업의 전선에 뛰어들었다. 오늘 하나의 진정한 이력서를 내고 본격적으로 취업을 다시금 알아보려한다. 이러저러한 하부프로젝트의 경험 속에서 취업을 하더라도 사이드로 이끌어갈 일들을 확인했으니 다 접는 것은 아니다.

이런 내 민낯을 나 스스로도 제대로 들여다본 게 바로 요며칠이다. 이런 고민의 형태가 드러나고 나서 차마 이런 고민을 옌스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잠을 잘 못자는 것 같고 낮에 그 여파로 피곤에 찌든 것 같아 보이는 나에게 괜찮느냐고 물어보는데, 그에 구체적으로 답을 할 수 없어서 요리조리 답을 피하다가 이야기를 해야했다. 부모님이 나를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아도, 내가 실수하면 실망하시지 않을까, 걱정하시지 않을까 반사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처럼, 옌스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반사적으로 나에게 실망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일련의 고민을 나눌 수 없었다. 내가 나에게 실망하는데 내가 아닌 타인은 오죽할까 하는 불안은 뿌리깊은 비이성적이고 반사적인 반응이다.

내가 이런 나를 알기에, 그리고 과거에 이런 상황에서 옌스에게 고민을 나누며 그가 어떤 반응을 했는지 알기에 이번엔 보다 빨리 내 고민을 나눴는데, 역시나 옌스는 내가 항상 예상한 바 또는 그 이상으로 나를 보듬어 주었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냥, 시부모님께도, 부모님께도 같은 내용을 전했는데, 모두 참 한결같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형태와 내용으로 나를 보듬어주셨고 나에게 너무 혹독하게 굴지 않기를 원한다며 말씀해주셨다.

엄마와 가까운 친구가 나에게 해 준 이야기가 너무 일맥상통했는데, 사람은 흔들리는 속에서 살아내고 그 역경을 이겨내는 데에 인생의 의미가 있는 거지, 잘 사는 거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그들이 나를 아끼는 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잘 하지 못할 때 태도 때문이라는 것에서 내가 참 잘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너무나 고맙고 소중한 이야기였다. 내 부족함때문에 떠나갈까 걱정했던 사람들이 사실은 그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모습 때문에 아낀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충격이던지. 사실 엄마의 이야기는 내가 엄마가 되면서부터 엄마가 자식에게 어떤 마음을 가질 지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에 어떤면에서 예상할 수 있는 바도 있지만 친구는 또 달랐다. 그녀의 이해와 포용, 나에 대한 다독거림이 정말 내 마음의 불안함을 싹 녹여내더라. 그래서 내가 얼마나 생각이 얕고 부족했는지, 그런 지혜로운 친구를 곁에 둘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봤다. 그리고 그 따뜻한 말에 대한 고마움에 흐르는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이렇게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을 계속 아끼고 가꿔가야 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2020년 9월 12일

아이들은 참 다르구나.

친구와 잠깐 이야기를 했다. 그 집 아이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라 발달상 차이를 지켜보기에 좋고 신기한 점이 많다. 특히 그 차이에서 그런 점을 많이 느낀다.

그 아이는 수와 어떤 구조를 파악하고 구성하는 데 비상하고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 쪽으로 영재와 같은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에 대해 내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특별하다 생각하는 모습을 내비치니, 거기에 더해 창의성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비치더라. 꽤나 큰 애들이 할 레고 조립을 거의 혼자서 다하는 수준인데, 레고에 동봉된 조립도면을 거의 외워내서 그걸 혼자 해내는건데, 뭔가 창의적으로 만드는 쪽으로 특별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상자 밖에서 문제를 풀어내는 참신함 같은 것이 자기에게 부족해서 그런 걸 아이가 갖고 태어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런 게 잘 안느껴진다는 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하나와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어떤 정해진 것 그대로 해야하는 것을 별로 안좋아하고, 장난감 대부분을 그 본연의 목적대로 갖고 노는 것보다 자기 마음대로 바꿔서 노는 걸 좋아한다. 놀이를 만드는 걸 잘해서 자기가 만든 놀이에 친구들을 참여시키는 것을 잘한다. 바꿔 말하면 남들이 참여하고 싶을만한 놀이도 잘 만든다는 거다. 손목 시계를 시계로만 쓰는 게 아니라, 도장이라 치고 여기저기 도장을 찍는 시늉을 한다던가, 도장을 갖고 도장이고만 쓰는게 아니라, 반창고라고 하고 놀이로 상처났다고 하는 곳에 꾹 눌러 반창고를 붙여주는 시늉을 한다. 펜은 막대아이스크림이고, 아이스크림 콘은 약통이다. 한 사물의 형태에서 다른 사물의 대상에서 뽑아낼 수 있는 특성을 발견하면 그걸 그 다른 사물이라 칭하고 노는 대에 능하다. 추상화 능력과 창의력이 탁월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정해진 도면을 따라 뭔가를 정교하게 만드는 건 하나가 잘 하는 일이 아닌거다. 좋아하지 않으니 잘할 수가 없지.

이렇게 어린 아이들에게서 뚜렷한 특성들이 발견될 때, 태어날 때부터 사람이 갖고 태어나는 유전적 요소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되어 놀랄 떄가 많다. 그리고 잘 하는 것과 부족한 것을 어떻게 키워줄 지,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아니면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정말 부모가 생각하고 스스로를 교육해서 아이가 커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할 게 참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2020년 9월 9일

쉬웠다가 어려웠다가 하루하루를 종잡을 수가 없다.

요즘은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다르다. 하루는 너무나 쉬웠다가 다른 하루는 너무나 어려웠다가 종잡을 수가 없다. 머릿속에 새로이 들어가고 경험하는게 많아서 그런 걸까? 아직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이 능숙하지 않아서 뭔가 심사가 뒤틀리면 그날 하루가 어려워지는 걸까? 그렇기엔 또 기분이 좋은 날은 웬만한 일에도 쉽게쉽게 넘어간다.

추상적 개념에 대한 관심

죽음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겨울왕국을 본 이후부터다. 하나보다 나이가 많은 유치원 친구들이 하나에게 엘사를 소개시켜줬는지 세돌이 지난 때부터 겨울왕국 타령을 하더라. 그래서 보여준 겨울왕국. 주인공 엘사와 애나의 부모님이 배의 난파사고로 사망한 것을 만화에서는 초상화에 검은 베일을 드리우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이걸 하나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들의 부모님이 바다에 빠져 돌아가셨고, 더이상 엘사와 애나는 부모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는데,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어 땅에 묻히고, 그렇게 세상을 떠난 사람은 우리 마음속에만 살아 숨쉰다고 설명해줬는데, 나와 옌스가 세상을 떠나 언젠가는 자기와 같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이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죽음에 대해서 오랫동안 이해하려 노력하고, 이제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개략적으로 이해했다. 이것이 하나가 이해한 첫 추상적 개념은 아닐 거다. 사랑이라는 개념도 피상적이나마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 차이라하면 사랑은 우리와 자신과의 교감을 통해 연결시킬만한 경험고리가 있다면, 죽음은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상상속에만 존재하는 거라는 데 있다. 물론 겨울왕국이나 다른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보고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 자기 상황에서 느낄 일은 없었으니까.

요즘은 진실과 과제에 대한 개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자기의 미니 욕조 안에서 얼굴이 그려진 낚시채를 엘사로 정의하고 엘사가 엄마, 아빠를 찾아 헤메는 거다. 내가 옆에서 지켜보다가, ”엘사, 너희 부모님은 돌아가셨어. 더이상 부모님을 만날 수 없어.”라고 이야기를 해줬더니, 하나가 냉큼 나를 저지한다. ”엘사는 진실을 알면 안돼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걸 알면 안돼요!”라는 거다. 진실? 어디서 배운 표현이지? 집에서 쓴 적은 없으니 당연히 유치원에서 배운 표현이겠지만, 어떤 맥락에서 배운 걸까?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까, 알면 안되는 일이라는 거다. 아… 숨겨진 진실은 파고드는 게 좋지 않다는 맥락에서 배운 거구나. 도대체 유치원에서 어떤 상황에 그런 표현을 들었을까? 남편은 진실이라는 단어를 가르쳐준 적이 없다는데. 특히 그런 맥락에서는.

아이의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는 머리를 열어서 확인할 수도 없고, 다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궁금하고 또 궁금하구나. 말속에 은연중 드러나는 흔적으로 그 머리속을 곁가지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2020년 8월 30일

두발자전거를 온전히 타기 시작하다

내 생일 즈음에 하나에게 페달이 달린 두발자전거를 선물했다. 그게 두달 조금 지난 일이다. 하나는 두돌때부터 페달이 달리지 않은 두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데, 이걸 타고는 내가 빠르게 뛰지 않으면 따라잡지 못할 만큼 빠르게, 급회전도 하면서 능숙하게 탄지 벌써 몇달이 된 시점이었다.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자전거 중 가장 작은 것을 샀는데, 아이들 자전거는 아주 특별하게 비싼 게 아니면 아이 체중 대비 정말 무거운 것들 밖에 없었다. 애가 금방 자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 비싼 걸 사기는 어려워서 그냥 살만한 범위 내 자전거에서 가볍고 조금 비싼 걸 골랐다. 그래도 9킬로그램이 조금 넘더라. 내 자전거가 스포츠 자전거로 개중 가벼운 것임을 감안하더라도50킬로그램대의 내 체중에 자전거10킬로그램인 걸 생각하면, 아이 15킬로의 몸무게에 9킬로는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냥 복잡한 계산 없이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런 자전거를 아이가 처음에 타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이미 자유로이 빨리 탈 수 있는 발자전거가 있는데, 어떻게 타야할 지도 잘 모르겠고 힘든 페달자전거는 인기가 별로 없었다. 본인이 그렇게 원하던 분홍색 자전거였음에도.

그래도 옌스가 시간이 날 때마다 자전거 타보겠냐고 물어보고, 옆으로 허리를 구부정하게 기울여 하나 자전거를 뒤에서 밀며 뛰어다니는 수고를 여러번 거듭한 탓에 8월 중반에 들어 거의 매일 하나가 자전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주변을 관찰해보더니, 큰 애들은 페달자전거를 타고 작은 애들이나 발자전거를 탄다, 이런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자기도 큰 애가 되어가고 있으니 자전거를 탈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자전거가 무거운데다가 발이 땅에 적당히 닿을 정도로 안장을 낮게 설치했더니 페달질이 힘들어서 그런지, 옌스가 밀어주면 자기는 균형만 잡으며 크루징을 하고, 페달은 발판 정도로만 썼었다. 옌스가 손으로 페달을 돌리는 걸 여러번 도와주고 나니 서서히 페달을 밟기 시작했고, 가장 어려워하던 스타트는 약간의 내리막 비탈길에서 모멘텀을 활용한 연습을 반복하더니 어느새 요령을 터득해 평지출발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 온 가족이 해안도로로 나가 하나의 자전거 투어를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며 함께하기로 했다. 결론은 대성공이었다. 우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인라인스케이트 도로에서 하나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가 리드를 함에 있어서 불편함이 없었고, 하나도 넘어짐 없이 우리의 신호에 따라 정지와 출발을 반복하며 완주해줬기 때문이다. 어느새 배가 고파진 하나가 찡찡거리긴 했지만, 주차장에 위치한 아이스크림집을 미끼로 써서 완주에 성공했다. 제법 긴 거리긴 했지만, 유치원에서 긴 소풍을 가면 길게는 8-9킬로미터도 너끈히 걸어내는 아이인지라 큰 무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와 온가족이 함께 체육활동을 한 건 처음이라서 의미가 큰 하루였다. 통상, 우리가 하는 체육활동은 하나가 제대로 참여하기 어려운 것들이라 옌스가 줄을 타거나 외발자전거 연습을 하면, 내가 그동안 하나와 그 인근에서 다른 걸 하다가 교대를 해왔는데, 이번엔 모두가 동시에 같은 경험을 나누었으니까. 새로운 시대가 열린 기분이다. 아이와 취미를 나누는 시대. 뭔가 꿈꾸는 이야기 같구나.

2020년 8월 28일

사회적 욕구가 강한 아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상당히 힘들게 시작했다. 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드러눕고 왁왁 거리며 울고 성질을 내는데 마음의 평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똑바로 행동하지 않고 그렇게 성질을 부리면 엄마는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했다. 엄마가 화가 날 대로 난 것을 눈치챈 아이는 그제서야 자기는 엄마와 이야기 하고 싶다며 울고 백기를 들었다. 사과할 준비가 되었냐니까 죄송하다며 옷도 갈아입고 머리 빗겨달라고 거울 앞에 가서 앉았다. 애써 화난 감정은 추스르고 이야기를 하는데, 애가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해서 그 감정의 앙금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건 아닌지라 딱딱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막상 집 문만 나서면 유치원을 가는 길은 매우 쉽다. 데려다 주는 건 주로 남편이 하는 일인데, 남편도 문을 나서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문을 나서면 그다음엔 쉽다고 했다. 유치원에 들어가서도 나를 한 번 포옹해주고 뽀뽀 한 번 하고 나면 손쉽게 헤어짐을 받아들인다. 어떤 날은 창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쏜살같이 자기 반으로 들어가 친구들과 놀기도 한다. 친구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유치원에 가는 걸 싫어한 적이 한 번 없고, 삼주간의 여름휴가 기간 중에는 친구들을 너무나 그리워해서 중간에 플레이데이트를 꼭 해야할 만큼 친구와 노는 걸 너무나 좋아한다.

친구 사귀는 것도 좋아하는데, 말의 호흡이 잘 맞아 대화가 통하고, 보육원/유치원에서 보편적으로 가르치는 사회적 규칙을 잘 지키는 아이라면 누구와도 잘 노는 편이다. 뛰고 넘어다니고, 기어오르고, 매달리는 식으로 노는 것도 좋아하고, 상상력을 활용해서 놀거나, 역할 놀이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친구와 케미가 맞지 않을 경우 혼자 떨어져서 일인 다역으로 대화를 하며 놀기도 하지만, 역시 친구와 함께하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오늘은 남편이 차고 앞 공터에서 외발자전거를 타며 클럽저글링을 연습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행인이 자기도 한번 타볼 수 있냐며 말을 걸어왔다. 개중 쉬운 외발자전거 한개를 그에게 내어주어 타보게끔 해줬는데, 그 전에 타본 적 있다는 그니는 두어번의 시도 끝에 다칠까봐 몸을 사리며 그만 타겠다고 하더라. 그 와중에 하나는 두발 자전거를 혼자서 온전히 탈 수 있게 되었고, 그 행인의 주변으로 자전거를 요리조리 타는 거다. 예전같으면 이름부터 다짜고짜 물어봤을 것 같은데, 요즘 크면서 예전보다는 (아주 조금이지만) 수줍음을 타는 탓인지, 이름은 물어보지 않고 대화만 하고 자전거를 타며 자랑을 하더라.

그 행인도 자기 갈 길을 가고 나도 하나와 장을 보러 동네 수퍼에 갔는데, 가는 길에 그 행인에 대해 하나가 나에게 이것 저것 물어봤다. 왜 그 사람은 아빠의 외발자전거를 타 본 건지, 아빠만큼 잘 못타는지, 어디 사는지, 이름은 뭔지 등등. 직접 물어보지 그랬냐고 했더니 잊어버렸단다. 이말을 믿지는 않는다. 그렇게 궁금한 것을 쌓아뒀다가 나에게 물어보는 자체가, 잊어버렸다는 말과 앞뒤가 안맞지 않은가? 이유는 불문하고, 나도 모르겠고, 다음에 그 사람을 만나면 꼭 물어보자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수퍼에 그 사람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얼른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보라 했더니, 아이는 쌓아뒀던 질문을 던지고, 자기가 엄마랑 쇼핑하러 왔음도 이야기하고, 그사람은 거기에 왜 왔는지, 뭘 사러 왔는지 이것저것 묻고 대화를 나누더라.

사실 하나가 길에서 마주치는 많은 사람과 시시콜콜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까 나도 동네 길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예상치 못하게 대화도 많이 하고 이름도 기억하게 되는 등 과거에 안했을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가 어른, 아이, 동물 가리지 않고 사회적 교류를 하는 것을 유독 좋아해서 말이다. 굳이 사회성을 두고 보자면 옌스보다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사회적이었는데, 나도 이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다. 어른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많이 나눠서 그런가? 표정도 그렇고 대화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상대의 이름을 자주 부르기도 하는 등 내가 일부러 배우려 해온 테크닉들을 이 아이는 타고난 거 같아서 탄복을 하게 된다. 사람마다 재능이 다 다른 곳에 있지만 이 아이에게 있는 재능에는 사회성이 있구나 싶다. 아이를 보며 배운다는 말이 나는 아이의 실수를 통해 어른도 배운다는 뜻인 줄 알았더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정말 애를 통해 내가 배울 일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내 열정이 향하는 곳에 발레가 있다.

아마 직업이었으면 달랐을 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발레는 취미였으니까.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을지언정 압박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가정은 의미가 없다. 가족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에서 지금 나에게 내가 가장 열정과 애정을 품은 대상이 뭐냐고 묻는다면 지체할 바 없이 발레라고 답할 거다. 나에게 한 주, 한 주를 이끌어가는 그 열정의 원천은 발레니까.

탕듀부터 시작해 쥬테, 롱드잠, 프라페, 아다지오, 그랑바뜨망 등 서서히 템포를 올려가는 바부터 시작해서 가벼운 점프부터 왈츠와 같은 말랑말랑한 춤을 통해 큰 점프로 이어져가는 센터까지 구성 자체가 긴장감을 서서히 고조시킨다.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나간다 할까? 뭐랄까 쫄깃한 긴장감이 사람을 흥분시킨다. 그래서 힘들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아드레날린이 온몸에 퍼져나가는 흥분감이 막판까지 힘을 짜내어 뛰고 돌게 만든다.

165센치미터의 키에 56 킬로그램의 몸무게. 가볍지 않다. 체지방도 있기에 몸이 조각된듯한 근육질도 아니다. 그래도 오랜 기간을 투자해온 탓에 몸에 잔 근육들이 세세히 잡혀있다. 발레를 하지 않던 시기에 없던 그런 근육들말이다. 승모근과 삼각근, 갈비뼈를 둘러싼 코어근육과 그 위를 덮은 복근, 등판의 어깨뼈를 둘러싼 근육, 척추 옆 근육, 그밖에 다리 안쪽 근육, 다리를 들어올리는 근육, 엉덩이 근육 등 정말 많은 근육들이 달라졌다. 상체 44, 하체 66과 같은 불균형이 많이 사라져서 상하의 사이즈도 중간에서 만나게 되었다.

몸이 좋아지니 동작도 좋아진다. 상하체가 연결되어 손부터 발끝까지 긴장감으로 팽팽히 연결시키는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빠른 템포로 움직이는 동작에서는 이를 다 세세히 신경쓰지 못하고 놓치는 것들이 생기지만, 느린 템포로 움직이는 동작에서는 최대한 온 몸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느끼며 동작을 한다. 그런 유기적인 움직임이 느껴질 때면 거울에 비친 내 움직임도 썩 마음에 든다. 나아질 부분이야 좀 많겠냐마는, 또 그 와중에 좋은 것을 찾아낼 수 있어야 더 나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코로나 락다운을 계기로 집에서 파쎄 균형 잡기에 시간과 공을 많이 들였다. 춤이란 게 넓은 공간을 필요하고, 같이 상호작용을 할 사람이 있는 사회적인 운동이라서 그런지 혼자서 좁은 공간에서 하기엔 동기부여가 잘 안되더라. 그래서 좁은 공간에서 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균형잡기와 턴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아하!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고나 할까. 아직도 끊임없이 교정하고 수정하지만, 근본적인 원리는 조금 알게 되면서 파세에 그전보다 큰 안정감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턴도 좋아지기 시작하고.

출산 이후 2년 정도의 공백이후 다시 시작했던 게 이제 대충 1년 반이 조금 넘는데, 그때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해 헤매던 나였는데, 이제 틴 학생을 제외하고는 제일 잘하는 학생이 되었으니 그 성장이 크다 하겠다. 작년 10월 하순부터 시작된 포인트슈즈클래스에서 처음 포인트슈즈를 신었던 내가 피케 턴부터 시작해 지금은 5 번 포지션에서의 앙디올 피루엣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발레 선생님도 코로나 락다운이 풀린 6월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내 실력에 큰 변화가 있음을 느끼는 걸 내가 알 수 있었다. 그 전보다 세세한 부분에서 조언을 해주고 내가 바를 하고 있는 곳에 와서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해주는 데에서.

오늘은 더블 피루엣을 연습하라고 이야기해줬다. 그럴 탈렌트가 느껴져서 하는 이야기라며, 일부러 너무 컨트롤하며 박자에 맞춰 한번만 돌 필요 없다고. 덕분에 한바퀴 반이긴 하지만 더블을 시작했다. 아직 시선 처리가 안좋아서 모멘텀을 상실하는 탓에 두바퀴를 다 돌지 못하는 거다. 이제 그걸 좀 신경써서 연습해야 하겠다.

오늘 수업 이후 이 끓어오르는 아드레날린을 주체하지 못해서 이렇게 블로그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다. 밤이 늦었으니 이제는 이 흥분을 내려가라앉히며 잠에 들도록 노력을 해봐야겠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니까.

ByHæin 유튜브채널

너무 어설프게 시작하긴 했지만, 동영상을 하나하나 찍으면서 조금씩 자연스러워 지는 모습도 보이고, 편집 프로그램도 조금씩 수월하게 느껴지고 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덴마크어 공부를 위한 컨텐츠를 중심으로 올리고 있는데, 또 앞으로 어떻게 컨텐츠를 확장해나갈지 고민을 계속 하고 있다. 앞으로 잘 지켜봐주시길…

2020년 8월 27일

하기 싫다고 거부하는 일을 강제로 시키기

간혹 심하게 떼를 쓰는 날이 있다. 평균적으로 보자면 떼를 크게 쓰는 애는 아니지만, 떼를 쓴다고 하면 정말이지 너무 힘이 좋아서 다루기 힘들지경이다. 오늘 플레이데이트가 있어서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아이의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놀다 왔다. 볼로네즈 파스타를 한껏 먹었다고 하는 걸로 보아 평소보다도 많이 먹고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 집 부모들과 잠시 담소를 나눈 후에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데, 이미 피곤해서 그런지 신발을 신는 타이밍부터 뭐하나 작은 거라도 자기가 원하는 바에서 틀어지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오늘 유치원에서 야외활동을 하느라 걷기도 많이 했을 거고, 새로운 집에 가서 노느라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자극도 많았을 거다. 지금 나는 애의 훈육에 감정을 보다 배제하고자 의식적으로 더 노력하고 있는 터라, 그냥 그렇게 행동하면 안된다고 조용히 설명하고, 내가 해야할 일에만 초점을 맞춰 애를 안아 들고 차에 태워 집에 왔다.

뭘 하더라도 삐딱선을 타는게, 차에서 내려야 되는 데 카시트에서 내리지 않고 자겠다고 하고,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는 둥 이미 집 안에서 전쟁을 한바탕 할 것 같은 예감을 불러일으켰다. 전조가 보였다고나 할까.

아니나 다를까? 집에 들어가서 손 씻는 일이 전쟁이었다. 손을 안씻겠다고 베란다에 쳐둔 자기 텐트로 쏙 들어가버렸다. 남편이 손부터 씻으라고 여러번 이야기했는데도 따르지 않자, 애를 들쳐없고 화장실로 데리고 가고 있었다. 목욕은 안시키더라도 세수 시키고, 엉덩이, 손은 씻겨야 해서 옷을 벗겨야 하는데, 절대 협조하지 않겠다며 목욕탕 바닥에 드러눕는거다. 나는 올바로 행동하지 않겠다고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면서.

이제 우리도 한두번 한 일이 아니니 이력이 나지 않았겠는가? 내가 몸통을 딱 잡고 남편이 손과 얼굴을 씻기고, 남편이 양다리 부여잡고 내가 몸통을 잡고 엉덩이를 씻기고 몸에 물을 타올로 말렸다. 귀를 뚫고 갈 것 같은 날짐승의 포효같은 목소리로 자기가 씻겠다고 하는데 – 진작에 씻지, 다 씻기고 난 후에 또 이렇게 청개구리 짓을 한다. – 그걸 받아주면 또 난리칠 게 불 보듯 훤해서 방으로 들쳐없고 갔다.

의외로 얌전히 속옷은 입었지만, 잠옷은 안입겠다고 또 반기를 들기에, 그 옷 입기 싫으면 그냥 누구 주겠다고 경고했다. 진짜 안 입으면 누구 줄 생각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옷인데, 그렇게 남 주고 나면 자기 손해지. 역시나 얼른 잠옷을 입었는데, 아직 분이 하늘 끝까지 뻗쳐서 식지가 않는 거다. 들짐승이 내는 으르릉 소리로 같은 소리를 음절 사이사이 끼워 넣으며 ”엄 으르렁 마 으르렁. 제 으르렁 손 으르렁 제 으르렁 가 으르렁… (엄마. 제 손 제가 다시 닦을 거예요!)” 이렇게 말을 하는데 남편이나 나는 너무 어이도 없고 뭐가 그렇게 분할까 싶어서 너털웃음이 나왔다. 나도 안다. 아직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작은 일에도 이런 말도 안되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냥 그 머리속과 가슴속에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가 돌고 있는 건지 이해하고 싶어도 상상할 수가 없어서 우스운 것 뿐이었다.

마지막 관문인 양치질은 생각보다 쉽게 넘어갔다. 자기도 알기 때문이다. 강제로 양치질을 하는 게 그닥 유쾌한 일이 아님을. 힘은 힘대로 썼는데 피할 수도 없고, 우리도 우악스럽게 힘을 써서 아이의 턱을 붙들어야 하니 턱도 아플 게 틀림없다. 대부분 10초 안에 굴복하고 입을 열었지만, 그 저항을 참 많이도 했었으니 우리나 애나 이골이 난 전쟁이다. 그래서 더이상 양치질은 큰 관문이 아니게 된 것 같다.

세살 반.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아직 훨씬 많은 나이. 해야하는 것은 해야하고, 해서 안되는 것은 하면 안되고, 하고 싶은 것도 하면 안될 게 많고… 그런 아이를 대상으로 우리는 감정을 싣지 않고 최대한 우리의 역할을 다하는 건데, 지금 여기에 오기까지 크고 작은 전투를 많이 치르면서 마음 속 갈등도 정말 많이 겪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이렇게 해도 되나?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지? 그런 갈등. 때로는 유치원 선생님의 조언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육아서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일련의 문제들을 해결하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부정적 인센티브를 결부시킨 훈육 – 예를 들어, 이렇게 행동하면 네가 원하는 일들을 해 줄 수 없다든가, 재우러 들어갔는데 애가 자지 않을 때 지금 잠자리에 누워서 잘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엄마가 그냥 나가겠다는 것과 같은 부정적 인센티브 설계 – 를 어떻게 배제할 것인가 하는 것이 있다.

나와 씨름을 해서 그런지, 오늘은 아빠가 재워주는 날이었는데도 꼭 엄마를 옆에 두겠다고 주장하여 우리 가족 셋 다 하나 방에 누워서 남편이 읽어주는 책을 들었다. 어른 둘이 누워 자리도 없는 매트리스에 엄마랑 같이 있겠다고 내 몸 위에 자기 몸을 겹쳐누웠는데, 솔직히 너무 무거웠다. 그래도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씨름을 한 뒤에 애와 살을 부비고 누우니 너무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재워도 되는데, 자기가 덴마크어로 책을 읽어줘야하는 날이라며 우기는 남편을 보며, 남편도 참 많이 바뀌었다 싶었다. 애가 어릴 때는 지금과 같은 수준의 감정교류가 어려웠던 탓에 내가 대신 애를 재우겠다 하면 냉큼 좋다고 바꾸고 나갔을 남편이었는데, 지금은 아이 재우는 게 너무 좋고, 중요해서 바꿔주지 않겠다니. 아무튼 그렇게 애는 잠이 들었다. 너무 피곤한 탓인지 7시 반에 재우러 들어가 9시 반이 되서야 잠이 들었다. 내일 고생하겠네. 오늘은 우리도 일찍 자야할 것 같다. 내일의 전투에 준비태세를 갖추려면…

2020년 8월 26일

부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당당히 요구하자

남편과 나, 둘 다 가벼운 감기기운이 있어서 코로나 테스트 예약을 해두었다. 토요일에야나 테스트가 가능하다고 해서 남편이 사무실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야 집에서 일하니까. 학생들에게 연락해서 수업을 취소한다고 해두었다. 코로나라고 생각되기 너무 어려운 증상이지만 예방 차원에서. 애는 아무런 증상이 없어서 유치원에 보냈다.

친구가 유치원에 아이 언어 발달과 관련된 걱정을 진지하게 나눴더니 미팅을 잡아줬다고 했다. 어제 미팅을 했었을 것 같아 잘 했는지 연락을 했더니, 언어 발달 프로그램을 별도로 잡아준다고 했단다. 유치원 내부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또 외부 전문가를 통해 밖에서 개별적으로.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은 한국 뿐 아니라 덴마크에서도 적용이 되는 모양이다. 예전에 하나 병원에 입원했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부모가 매사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이에게 추가적인 자극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설 경우 적당한 시기에 부모가 개입을 해서 도움을 청하고 대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선의를 믿고 움직이지 않으면 바쁜 일상 속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곤 하는 게 여기서도 일어난다.

잘 따르는 선생님과의 작별

유치원 선생님 한 분이 이달 말을 기점으로 관두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으신 분으로 하나가 엄청 따르는 분이고, 우리 유치원에서 14년이나 일하신 분이라 왜 관두시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선생님을 마주쳐 관두시는 이유 여쭤봐도 되겠느냐 했더니, 작년에 새로 부임한 유치원장님과 맞지 않아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야 선생님들하고만 접촉하니까 원장님이 어떤지는 느낄 일이 없어서 어떤 면에서 맞지 않았는지 여쭤보니, 선생님들끼리 잘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상의를 하면, 선생님들끼리 잘 결정하라고 한다는 거다. 본인은 어려움이 있을 때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을 해줄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며, 그게 안되는 채로 시간이 흐르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는 거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나도 과거 경험을 통해 알기에 이해한다는 말이 그냥 나왔다. 양쪽의 말을 다 들어본 건 아니지만, 선생님의 느낌은 또 본인의 느낌인 거니까, 둘 사이의 리더쉽 관점에서의 케미스트리가 매우 안맞았다는 건 분명하다. 누군가에겐 좋은 리더일 것이고, 누구에게는 안좋은 리더일 것이고. 아쉽다는 마음과 함께 보고 싶을 거다라고 이야기하는데 목이 잠기고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내 아이를 봐주는 선생님으로 믿도 맡기도 따라온 좋은 선생님이 리더와의 케미 문제로, 오래 일하신 직장을 떠나 다른 곳을 알아보신다니 마음이 엄청 상했고, 진짜 보고싶을 거였기 때문이었다.

아이도 선생님이 매우 보고 싶을 거다. 어느 타이밍인가에는 하나도 유치원을 졸업해서 선생님을 거의 보지 못하는 시기가 오긴 하겠지만, 그건 자기의 새로운 앞길에 대한 설렘과 겹치며 그 여파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넘어가겠지. 특히 미리 진학할 학교를 방문시키며 적응기간을 거치는 덴마크의 시스템 속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자기의 일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선생님이 관두는 건, 그것도 자기가 정말 많이 따르는 선생님이 관두는 건 조금 충격적인 일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고 길게 아이를 돌봐주던 선생님들이 관두시거나 일하시는 건물을 바꾼 일이 몇차례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힘들어할 지도 모르겠다. 아직 세상을 삼년 반 정도밖에 살지 않은 아이지만, 정을 쌓고 작별을 하는 일에 적응하고 있다는 것에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나오시는 다음주 월요일에 하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별거 아니야, 라고 털 수 있는 능력

Pyt med det! Skidt, pyt! 라는 말이 있다. 안좋은 일인데, 별 거 아니라고 하고 넘어가자고 할 때 하는 말이다. 작은 일에 집착하는 것,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일이다. 작은 실패도 넘어가지 않고 개선을 하든, 정정을 하든 해서 상황을 바꾸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그냥 넘어가도 될만한 일 하나하나에 집착해서 짜증을 자주 느끼거나, 실패하는 일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시간이 갈 수록 덴마크인들도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 같지만, 우리나라와 다르다고 여전히 느껴지는 건 어떤 일상의 불편함이나 실수, 실패 등에 있어서 ”Pyt med det!” 하고 말하며 툭툭 털고 가는 걸 잘한다는 거다.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이런 태도를 가르쳐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포함해서.

우리도 하나에게 어떤 실수나 실패를 할 경우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하면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잘 못하는 일로서, 나 또한 이런 마음을 가지려고 실천하고 있는 바라 더욱 이를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제 하나는 두발 자전거를 평지에서 스스로 출발해서 페달을 밟아 주행하고 코너를 돌고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브레이크를 잡아 정지하는 것까지 모두 익혔다. 아직 잘 못하는 것들이 있지만, 우선 해낼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그러기까지는 물론 무수히 많이 넘어지고 연습을 했다. 넘어질 때마다 아파하는 건 호호 불어주고, 피나면 반창고도 붙여주지만, 원래 그렇게 배우는 거라며 시도하게끔 도와준다. 하기 싫다면 강요하지는 않고. 동시에 아이 아빠나 나 모두 각자의 취미를 연마하는 과정에서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또한 연습만이 실력이 좋아지는 유일하는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Øvelse gør mester. (Practice makes perfect.)”, 이건 하나가 세살이 되기 전부터 이미 흔히 하게 된 말이다. 그래서 그냥 실패에 크게 속상해하지 않고 배우는 법을 이미 익힌 것 같다. 혼자서도 잘 일이 안풀리면, ”Pyt med det!”하고 이야기 하니 말이다.

물건과 관련되어서도 뭔가 잘못되었을 때, 그걸 해결하거나 크게 속상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치려고 한다. 이미 꺠진 거 속상해봐야 달라지는 거 없으니까, 얼른 그 감정을 털어버리는 게 중요하다 싶다. 어제는 하나가 많이 기대하던 새 신발 두 켤레가 도착했다. 발이 커져서 새로이 신발을 장만해야 했는데 신발이 젖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여벌까지 해서 두 켤레를 주문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색깔 취향 정도만 반영해 내 마음대로 나이키 등에서 활동성이 좋은 신발 중심으로 구입을 해왔는데, 이번엔 본인의 취향을 적극 반영해서 불이 들어오는 캐릭터 신발 – 내 취향이나 기준에는 별로 맞지 않지만 – 을 샀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한켤레의 불이 잘 안들어오는 거였다. 한짝은 아예 불이 들어오지 않고, 다른짝은 반절만 들어오는 거다. 막상 주문한 나도 속상한데, 반품하고 또 주문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번잡했다. 내 거였으면 그냥 넘어갈만한 일이었는데 어떻게 할까…하는 갈등으로 찰나의 순간 마음 속이 동하고 있었는데, 하나가 “Pyt med det!”라며 괜찮다는 거다. 그래서 얼른, “신발 색깔이 이뻐서 불이 조금 안들어와도 마음에 들지?”라고 물어봤더니, 그렇다는 거다. 귀찮았던 마음을 한번에 해결해 준 하나의 태도에 고맙기도 하고, 귀찮음을 이겨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고 다소 미묘한 마음속 갈등이 생겼지만, 그냥 그런 속상한 상황을 그렇게 넘길 수 있는 태도를 가진 하나가 대견해서 그거려니 넘겼다.

자식을 키우는 일에 농사라는 표현이 이런 때 와닿는다. 하루하루의 작은 일들이 쌓여서 아이의 태도에 영향을 주니까. 물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서 농사라는 표현을 쓰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직접 어떻게 발현할지 선택할 수 없는 유전자라는 씨앗이 가장 큰 일을 결정한다는 점에서도 말이다. 콩심은 데 콩나지, 팥이 나지는 않을 게지 않겠는가. 

2020년 8월 24일

아이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

주말에 친구 두명과 그들의 가족을 초대해서 오후 내내 놀고, 식사도 같이 하는 등 나름 큰 사회활동도 있었고, 여기저기 몇몇 놀이터를 돌아다니며 힘들게 놀아서 그랬는가, 하나가 오늘은 피곤했는가보다. 유치원에서 데리고 오는 순간부터 평소보다는 기운이 덜 넘쳐보였고, 작은 일에도 크게 성질을 내는 것이 피곤한 탓인 것 같았다.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아빠가 집에 와있냐고 물어보길래, 아직 회사에 계신다고 했더니, 나보고 갑자기 사랑한다는 거다. 그 뒤를 이어, 아빠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덧붙이며. ”왜 아빠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 이야기 들으면 아빠가 슬퍼하실 거 같은데요?”라고 물어봐도 그냥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단다. 집에 올라오는 길에, ”집에 가면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이 뭐지요?” 라는 질문에 입을 삐죽삐죽하며 ”손을 씻어야해요.”라고 답을 하더니, 그 루틴 마저도 다 못마땅한 듯, 화장실 세면대 앞에 서있기만 하고 손은 안씻는단다. 손 다 씻을 때까지는 화장실에서 나오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나는 빨래를 널러 베란다에 나가있는 도중, 손 씻는 소리가 들리더니 애가 거실로 들어오는 거다. 세면대 물 흐르는 소리는 계속 나는데.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언성을 높이면서 물을 잠그고 돌아오는데, 이 작은 반항꾼 얼굴엔 심통이 가득나 있다.

빨래를 계속 널고 있으니 나에게 말을 거는데, 이번엔 내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네가 태도가 영 엉망이라서 너랑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고 하니 자기는 엄마랑 이야기하고 싶다고 바르게 이야기하더라. 그래서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빨래 너는 것도 돕고, 다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나와서 나와 놀자고 해서 힘껏 몸으로 열심히 놀아줬다. 이렇게 엄마랑 놀자고 하는 것도 몇년이나 갈까 싶어서. 좀 놀았다 싶었더니 그제사 아빠가 보고 싶다는 거다. 그 참에 왜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느냐 질문을 던지니, 아빠가 집에 없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고 서운했다는 거다. 아… 서운하면 미운거구나. 그걸 잊었구나. 평소에 아빠가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내가 데리고 오고 해서 아빠가 좀 늦게 오는 걸 당연히 받아들이는 줄 알았더니, 그게 서운하기도 하고 그래서 기분도 나쁠 수 있구나.

막상 아빠가 왔는데, 여전히 엄마랑 놀려는 아이를 보며, 그전엔 이런 아이의 나에 대한 집중과 큰 관심이 버겁기도 했던게 기억나면서, 힘들지만 즐기라는 주변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았다. 정말 이게 얼마나 소중한 관심인가. 그리고 이 시간이 얼마나 짧은 건가. 막상 이러다가도 내가 발레 간다고 집을 나서면 쿨하게 바이바이 하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살짝 서운하려고도 하는 거다. 이 이중적이고 복잡한 기분

오늘은 내 예상대로 애가 피곤했었는지, 평소보다 삼십분 정도 이른 여덟시에 이미 골아떯어졌다고 했다. 잠시 들어가서 자는 모습을 바라보니,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세상 남부러울 게 없는 가장 큰 보물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애 이마를 쓰다듬었다. 한켠으로는  살짝 꺠어나 나에게 인사를 해줬으면 하는 마음 반, 다른 한켠으로는 푹 계속 잘 잤으면 하는 마음 반으로… 잘 자렴, 하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