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세대의 이야기를 찾아서

아이의 일상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던 출산 후 1년을 빼고는 아이의 일상에서 내가 없는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아이는 열시간 이상 잠을 자니까 14시간도 채 안되는 시간에서 8시간은 유치원에 있고, 나머지 시간도 집안일이다 내 취미 활동이다 하면 남는 시간이 별로 없다. 아이에게 일상을 물어보고 요약해서 듣는 것이 대부분인 셈이다.

아이는 아직 나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비밀이라는 것을 갖기에 아직 입이 너무 근지러운 나이라 더 털어놓지만, 부끄러움/수치라는 감정을 서서히 배워가고 있는 것도 같고, 방에서 문닫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기 시작하는 걸 볼 때 나에게 많은 비밀을 갖는 시기가 곧 다가올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과 아이의 이런 저런 일상을 이야기하다가 우리의 어린 시절을 나눠보기도 했는데, 그보다 더 나아가서 나의 부모님 세대와 그 윗세대의 이야기는 참 들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형제 자매들과는 어떤 감정을 갖고 컸는지, 무슨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어떤 강렬한 감정을 느낀 일이 있었다면 그게 어떤 감정이었는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등… 항상 내가 관심을 받는게 커서, 내가 중심이었어서, 부모님은 어떤 생각을 갖고 컸는지 등 과거에 대한 궁금함을 마치 거세라도한냥 여쭤보지 않고 지냈다. 같이 하는 일상 만으로 부모님을 다 안다고 생각하며 넘겼지만, 그게 또 그렇지도 않은건데. 엄마 아빠도 어린 시절 보듬어주지 못한 내 속의 나를 품고 사셨을텐데 그건 친구들과 나누셨을까 하는 마음에 이제라도 여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간 누구에게도 일절 안하셨던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위암 수술후 간으로 전이되기 전 기간이었는데, 태극기함 만드는 숙제를 도와주신다고 오신 할아버지께서 톱질과 망치질을 하시면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참전 이야기를 해주신거다. 강제 동원이 된 배경, 어떻게 포로로 잡혀 러시아군인에게 끌려갔는지, 하마터면 사할린 동포가 되실 뻔했던 상황에서 어떻게 도망쳐나왔는지, 이남으로 돌아와는 과정 종전이 되면서 어떻게 38선을 넘었는지, 38선을 넘어 레이밴 선글라스를 쓴 미군장교를 본 순간 드디어 무사히 돌아왔다고 느낀 순간의 감정 등 정말이지 생생한 이야기였다. 폭탄을 안고 러시아 탱크 아래로 뛰어 들어가 탱크를 제거하는 임무를 받았는데, 안들어가면 일제 장교에게 죽고, 들어가면 터져 죽을 거 같아서 이도저도 못하다가 오줌을 싸고 기절하신 이야기, 이가 들끓는 옷을 벗어서 탈탈 털어 최대한 이를 제거하고 다시 입은 이야기, 포로들에게 밭에서 볼일을 볼 수 있게 해줄 때, 다시 이동하기 전 포로 수를 다 셀 수 없어 기관총으로 밭을 주욱 갈겨 쏘고 이동하는 걸 피하고자 인근 똥통에 숨었다가 온 몸에 똥독이 올라서 고생했던 이야기 등 정말 어디 소설에서나 볼법한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살면서 할아버지가 한번도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걸 들은적이 없다 하셨고, 이후 해병대에 들어가셨고, 그 끈끈한 전우애와 해병대의 강인함 이런 이야기만 듣고 보고 자라셨다 했다. 그런 이야기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건 본인이 곧 돌아가실 걸 아신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만 해보신다며..

엄마, 아빠, 그리고 이제 내년이면 백세가 되실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이번에 방문하면 꼭 들어보고자 한다. 이런 드라마틱한 일은 아니더라도,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궁금하다. 그때의 일상과 생각, 기억에 남는 것들 말이다. 그를 듣고 나면 엄마와 아빠를 조금 더 다른 형태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글로 남기고자 한다.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때 기록으로 남겼다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아서 기억이 드문드문 지워지고 오염되었다.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MUS의 철이 왔구나.

1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MUS (Medarbejderudviklingssamtalen, 직원계발면담). 쥐에 해당하는 단어인 mus와도 발음이 같아서 처음엔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MUS는 덴마크 직장 생활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MUS와 mini-MUS, 임금협상*은 하나의 사슬처럼 얽혀서 굴러간다. 연초에 MUS를 하고나면, 반년뒤에 mini-mus가 있고 오래지 않아 그 뒤로 연봉 협상이 따른다. (*민간에서도 비슷하게 굴러간다하지만, 나는 덴마크에서 민간 경험은 없으므로 중앙부처에 해당하는 Staten만 보자면 우리 사무관급에 해당하는 Fuldmægtig는 거의 개별 협상을 하지 않는다. 수당 정도만 협상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속한 노조가 협상한 결과를 그냥 받아들인다. 자신이 특별하게 더 잘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라면 개별 협상을 물론 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 난 딱히 내가 더 특별하게 잘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MUS는 Kompetencehjul이라는 툴을 통해 개인 역량 계발을 돕고자 하도록 하는데, 우리 조직같은 경우 구술커뮤니케이션, 서술방식 소통, 협업, 사회성 (사회성이 포함되어있다!), 직무전문성, 창조성 및 발명능력, 업무수행력, 생산성, 수용력 등 9개 분야로 계발분야를 설정하고 있다. 그러면 mini-MUS를 통해 반년 후 진행상황을 점검한다. 임금협상에서는 이걸 토대로 평균보다 잘하고 있을 경우 역량수당 분야에서 개별 협상을 할 수 있다.

먼저 개인이 매뉴얼 따라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나면 그걸 토대로 상사와 면담을하고, 내가 생각하는 중점 계발 분야가 뭔지, 상사가 생각하는 건 뭔지, 그걸 어떻게 계발할지 (연수, 업무 수행, 기타 구체적인 사항 등), 그걸 계발해서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지 등 양측에서 합의된 내용을 계발계획양식에 채워넣고 사인하고 나면 MUS가 끝난다.

예전엔 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나 그런 생각을 했는데, 작년 MUS 이후 이를 내 일과에 적극 반영하고 난 후에 이게 중요한 툴이란 걸 알게 되었다. 작년에는 구술 및 서술방식 커뮤니케이션 분야와 직무전문성 분야의 계발에 중점을 두고 싶다고 했는데, 여기에 포함된 내 계발분야를 내 업무시간에 평소에 녹여넣으면서 커뮤네케이션 부분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 교육도 내가 적극적으로 찾아서 가서 듣고, 평소에도 이를 활용하다보니 조직내에서 내 위치와 내 스스로 평가하는 내 모습이 같이 성장할 수 있었다.

나는 조직내 성장보다는 전문가쪽 역량을 키워가는 쪽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이야기함으로써 커리어 방향도 설정할 수 있었고, 내가 관심있는 직무에 대해서도 이야기함으로서 향후 기대되는 프로젝트의 참여에 대해서 나도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좋다.

한국의 인사고과는 정치적인게 컸다면 지금 소속된 조직에서는 MUS를 통해 자기가 능력을 계발, 성장하고 연봉의 형태로 그 보상을 받는 형태로 크게 정치적인 요소가 없다는데서 속이 아주 시원하다. 내가 남보다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내 현재에서 필요한 역량과 그에 맞춰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되는 거니까. 올해 농사를 또 잘 지어봐야지.

프로젝트 중간기록

뭔가를 발표한다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외부 발표 전 내부 발표 리허설이라도 부담스럽다.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올 때 쯤이면, ‘이건 평가를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추진한 일을 공유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이고, 그 피드백을 받아 더 좋은 결과물을 생산하기 위함이다. ‘라는 주문을 마음속으로 건다. 그러면 긴장감을 덜어낼 수 있다. 오랫동안 파고들은 내용이기에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이라 틀만 잘 잡아서 자료에 담아두면 된다. 그리고 다 잘 풀릴 것이다라고 주문을 걸고. 

다행히 내부 리허설을 잘 마쳤다. 이전에 이미 리허설을 한번 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분석의 틀을 완전히 바꾼 거였다. 영 설명이 잘 되지 않던 부분에 대해서 코멘트를 받고 방향 설정을 완전히 다시 했더랬다. 긴장이 되면서도 그 당시 나왔던 질문에 대해 하나씩 곱씹어가면서 충분히 준비했던 발표인데다가 똑똑한 동료들의 예리한 질문이 아주 다방면으로 나왔기에 그것에 답하며 준비한 것만으로도 포괄적으로 준비가 잘 된다 싶었다. 작게 보완할 것들이 있긴 했지만 별로 그런 게 없었고 나머지는 내가 아닌, 업계에 질문을 해야할 요소들이었다. 

심리상담을 받은 후 얻게 된 새로운 장점은 발표 중 청자의 눈빛이나 자세 등에서 불필요하게 신호를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전엔 혹시나 내 발표에 의구심이 생긴걸까? 내가 발음을 잘못했나? 뭔가 틀렸나? 하는 끊임없는 상상을 토대로 발표 중간에 나를 괴롭히고 집중력을 흐트려뜨렸는데, 이젠 그냥 그런 게 있으면 질문을 하겠지 하고 넘긴다. 그 사람이 손을 들때까지는 불필요한 상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운 게 정말 크다. 그게 몸 속에 아드레날린을 과도하게 분비하게 만드는데, 그게 없으니 차분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업계와 일을 하면 훨씬 더 비판적이거나 원색적인 목소리를 접할 수 있긴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어떤 코멘트를 하던지간에 긍정적인 톤을 유지한다. 그리고 코멘트의 경우 구체적으로 한다. 이런걸 보완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왜 이걸 이런 식으로 만들었냐 이런 비판적이고 불특정적인 피드백은 없다. 

새로운 감시 분야를 개발하는 것이라 시간이 많이 투여가 되고 있긴 하나, 프로그래밍 적으로 배운 것이 정말 많다. R을 훨씬 자유롭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걸로 새로운 연구 분야도 설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결과를 토대로 에너지청도 새로운 연구를 하려고 하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관심이 높아진 분야에 우리가 선제적으로 먼저 움직인 것이라 재미가 있다. 

긴 호흡의 프로젝트라 중간에 그 흐름 속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아마 이런 긴 호흡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맡아서 끝까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인 거 같다. 경쟁소비자청에서도 그런 프로젝트를 하다가 중간에 관두고 나와서 끝까지 하지 못했는데,  그때도 스트레스가 엄청 컸다. 큰 바다속에서 도대체 언제 헤어나올 수 있을지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중간중간 마일스톤 셋업이 힘들었던 것 같다. 여기보다 더 큰 조직에 중간중간 스파링을 할 사람도 너무 높은 사람이었고, 정치적으로도 여기저기 걸린게 많은 훨씬 큰 프로젝트였던 터라 이해관계자도 너무 많고 비교하기 어렵게 힘들었다. 지금 일보다도 이론적인 프로젝트였어서 더 그랬던 거 같다.

이번 프로젝트는 오로지 데이터를 갖고 씨름하는 것이라 데이터의 바다에서 헤메이다가 스트레스로 무너질 뻔 했는데, 그걸 잘 넘기고 나니 또 어떻게 어떻게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 긴 프로젝트의 장점으로 내가 조금 더 플래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경험도 쌓았고.

이제 남은 건 다음 주 중간결과를 업계대상으로 발표하고 최신 데이터를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이걸 정리해서 리포트로 만드는 것, 경영진에게 발표해 승인을 받은 후, 온라인 공청회처럼 이를 대외로 보내 피드백을 받고, 이걸 반영한 최종본을 또 한번 경영진에게 승인받고,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보내 그래픽 등을 이쁘게 만들어 최종 발표하는 거다. 그리고나서는 매년 데이터를 받아 모니터링을 하는 감시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만 남는다. 

남은 프로세스들도 한번씩 경험하면 프로젝트 운영 경험도 한번 쌓여서 앞으로의 일이 조금씩 더 수월해지겠지. 하지만 그 남은 프로세스들이 손이 많이 가는 일이 될 거다. 디테일이 중요해지는 단계니까. 열심히 달려보자!

안개낀 출근길. 그 아름다움

아침 출근길, 이제는 집에서 나오는 길이 어둡지 않다. 항상 그렇듯 변화는 순식간에 온다. 출근길이 밝아지기 시작하면 여름에 대한 기대감이 솔솔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이제 2월인데 무슨 여름이냐고? 일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겨울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르는 여름에 대한 사랑. 어두워지는 계절부터는 초를 그렇게 켜대고 1월말부터 2월초에 순이 돋아올라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하는 겨울꽃부터 시작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사소한 것을 발견하고 기념하는 것은 그렇게 해야 기나긴 겨울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가을부터 봄까지는 습하기 때문에 일교차가 커지는 시기에는 안개가 자주 낀다.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있지만 시야는 어느정도 확보되어 위험하지 않게 운전할 수 있는 날의 출퇴근길은 특별하다. 뭔가 그 사이로 들어가면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갈 것 같은 느낌이랄까.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한 탓에 평원을 가로지르는 긴 지방도로를 따라 운전을 하는데 밭과 숲이 어러진 길을 따라 가며 자세히 보이지 않는 건물과 지형지물의 실루엣과 색을 보니 갑자기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름답다는 생각은 항상 했지만, 문득 그게 특별히 아름다웠음을 인식하는 순간이랄까?

우리의 뇌가 익숙한 건 너무 당연하게 느끼게 만들어서 항상 보고 다니는 길을 아름답다고 느끼기 어려운데, 오랫만에 보는 밝지만 안개가 낀 길을 보자니 문득 그 익숙함 속의 낯섦을 일깨웠던 것 같다. 지방이전한 기관에 다니다보니 출퇴근길 사람과 부대끼지 않고 다닐 수 있는게 새삼 감사해진다. 애가 없이 도시생활 열심히 하고 싶었을 젊은 시절에 여기를 다녔으면 다른 생각을 했겠지. 적당한 때에 적당한 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좋구나.

여섯살의 아이는 여섯살의 아이다.

하나가 커가며 조금씩 내 손을 덜 탄다. 요즘은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주문하는 것 등을 직접하도록 가르치는 중인데 몇달전만해도 꽤나 쑥쓰러워했는데 요즘은 그런게 하나도 없이 잘 한다. 미리 할 말과 상황을 가르쳐주고 가서 직접 해봐 하면 변하는 상황에도 잘 대응해서 하고 온다.

자꾸 애가 할 줄 아는게 느니까 이정도는 혼자 할 수 있겠지 싶어 믿고 하게 뒀다가 낭패를 보는 일도 생기곤 한다. 주차장의 인도옆에 주차한 차 안에서 옌스가 기다리고 있고, 나는 계산만 하고 나서면 되는 길이었기에 아빠한테 먼저 가도 되냐는 하나에게 그러라고 했다. 어려운 길이 아니었다고 생각했고 잠깐 사이였으니까. 차에 갔는데 아이가 없다. 수퍼에서 몰 출구까지는 십미터에 거기서 십오미터면 되는 차까지 가는 길인데 어디서 사라졌지? 이 출구를 놓치고 다음 출구로 갔나 싶어서 얼른 뛰어 들어갔더니 다른 어른의 도움을 찾아 수퍼로 돌아오는 아이를 만났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아이를 안아주었다. 차분하게 오긴 했지만 놀랬을 터였다. 내가 좀 더 통제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이에게 시도해볼 기회를 여러번 주고 연습이 충분히 된 뒤에 할 일이었던 거 같다.

수퍼마켓에서 수차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기에 혼자 탈 수 있을 줄 알았다. 혼자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오겠다고 했다. 워낙 한국에서처럼 엘리베이터가 많으면 잘 타겠지만 엘리베이터 탈 일이 별로 없는 이곳에선 흔히 타진 않으니 경험이 현저히 부족했다. 아마 버튼을 충분히 꾹 누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두층간을 오고가는 엘리베이터라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는지 움직이는 중인지 등을 알 수 없는 엘리베이터인데 애가 안내려온다. 내가 갑자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 여기 있다고 외치고 내려오는 버튼을 눌렀다. 그럼 두대 중 하나가 먼저 내려오겠고 하나가 탄 게 아니면 한번 더 누르려고. 다행히 하나가 타있던 엘리베이터가 내려왔고 아이는 놀라서 눈물을 왈칵 터뜨렸다. 고장났는줄 알고 너무 무서웠단다. 무서웠구나. 한참 안아주고 진정을 시켰다. 아마 버튼이 다 안눌린 거 같다며 고장난 건 아니었으니 다음에 엄마랑 다시 해보자고 했다. 그땐 내가 버튼 제대로 누르는 것까지 밖에서 보고 내려가서 기다리겠다고. 그러면 무서울 거 없이 내려올 수 있을 거라고. 해보겠냐니 그러자고 한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자 있는데 고장나면 어쩌냐한다. 엘리베이터에서 혼자타는 연습을 할 땐 고장 버튼부터 가르쳐야겠다.

애가 할 줄 아는게 너무 많아지니까 너무 당연히 할 거 같이 느껴지는 것 같아 안가르치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거 같다. 이제 학교에 가면 더욱 혼자할 게 많아질테니 조금 더 신경써서 일상의 것들을 가르쳐야겠다.

사고쳤는줄 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하루

GIS 프로그램으로 파일을 열다가 빈 파일을 덮어 저장하는 실수를 했다. 그런 실수를 했음을 안 건 세개의 파일을 그렇게 한 후였다. 열기만 하는 거라서 그냥 공용폴더에서 바로 열었는데 그런 실수를 하다니… 세상에나… 얼른 상황을 상사에게 보고하자 하니 상사는 회의중으로 부재중이다. 얼른 상황을 보고하고 누구에게 연락해서 상황을 조치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답장이 바로 와서 우선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으나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거다.

점심 내려가면서 같은 사무실 동료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얼굴로는 웃고 있는데 속이 까맣게 타고 있다고 했더니 그거 다 버전 백업 될 거라면서 걱정을 말라하는거다. 정말? 아. 그래도 안정이 안되네…라고 하니까 날짜별로 백업이 이뤄지던지 뭔가 있을거다. 확실하다고. 긴장 풀라고 하니 조금 마음이 안정되더라. 마침 컴퓨터 교체가 월요일이라 서버에 저장이 안되는 것들의 백업을 하면서 긴장감을 없애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더니 상사가 IT담당자를 데려왔다. 세상에. 이게 쉽게 구버전을 복구할 수 있었던거구나! 컴맹이었군!! 이러면서 얼른 상황을 수습했다.

사고쳤는 줄 알았던 순간, 사고는 최대한 빨리 보고하라던 IT 지침처럼 바로 보고했는데, 상사 왈, 사고 치고 오랫동안 뭉개다가 나중에 사고를 보고하는 사람들이 제법 되서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사람이 많다며 잘샜단다. 나도 그 마음은 이해하겠는게 순간 당황스러움, 미안함, 수치스러움 등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더라. 이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였는줄을 몰랐으니 그렇긴 했지만 그런 성격이 아닌 정말 문제였더라면 어땠을런지. 아무튼 마음이 여전히 시끄럽다. 감정의 잔상이라는 건 문제가 해결되었음에도 남아있는 것이 마치 물에 던진 돌이 일으킨 파동 같다. 그 파동이 멈출때까지 파동이 남아있는 것…

취학전 전환기 상담

반차를 내고 아이 유치원에 가서 취학전 전환기 상담을 하고 돌아왔다.

한국과 달리 덴마크에서는 0학년이라고 정규 과정 전 1년을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학교에서 보내게 한다. 0학년에서 보내는 시간은 시간의 양적 총량에 있어서 유치원에서와 다를 게 없지만 활동의 종류와 성격, 교사 1인당 배정되는 아이 인원수 등에서 차이가 꽤 난다. 덴마크는 보육원에서 유치원으로, 유치원에서 학교로의 전환 등에 있어서 그 과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한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인근 유치원을 몇차례 방문해서 아이들과 얼굴을 익히기도 하고, 반대로 아이들이 학교를 방문해 0학년의 생활을 간접 체험하며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지 등을 미리 익힐 수 있게 도와준다. 유치원으로 올라갈때도 같이 올라가는 아이들이 훨씬 긴 기간동안 틈틈히 유치원을 방문하게 해 전환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불안함을 최대한 낮춰주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어려서 보육원에 다닐 때는 육아를 이렇게 하는 게 맞는건가,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나 등에 있어서 하원길에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가 많았고, 유치원에 처음 올라가서도 계속 이어진 통합 유치원이라 선생님들과도 관계가 깊어지니 대화를 할 일이 많이 있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와 시작한 처음 유치원에서는 어수선한 분위기에 다른 애들을 떼리고 소리지르는 아이들이 많아서 1년의 짧은 기간동안 하나가 너무 힘들어해서 이런 상황을 개선해보기 위해 상담을 할 일들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이번 유치원에서는 내내 하나가 너무 잘 지내서 선생님과 가벼운 인사 정도 이외에는 크게 이야기를 할 일이 없었다. 중간 중간 잘 지내는지, 문제는 없는지 물어보기는 했어도 너무 잘 지낸다 하니 딱히 더 물어보기도 그랬고. 그런 연유로 이런 상담이 너무 오래간만이라 그간 하나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유독 궁금하고 살짝 긴장마저 되더라.

하나는 중간중간 짧게 들었던 피드백 그대로 너무 잘 지내고 있었다. 주변 상황을 잘 살피고, 민첩하고, 다른 사람을 돌볼 줄 아는 아이란다. 모든 발달 측면에서도 그 나이에 맞는 발달을 하고 있되 뛰어난 쪽에 속한다고 한다. 용감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에 두려움이 없고, 시도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을 적절히 한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들이 와서 활동을 하면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쭈뼛쭈뼛 위축되서 눈치만 보는 아이들도 있다면, 우선 당면한 과제에 바로 참여해서 질문을 해가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한다.

타인과 큰 갈등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없는데, 자기의 목소리도 낼 것은 내되 협상을 잘 하고 모두를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시키고, 양보할 때 양보하기 때문에 그렇다며, 삐져서 혼자 토라져 있는 형태로 갈등을 피하는 게 아니라 갈등 상황을 잘 해결한다고 한다. 그 점 참 마음이 놓이는 이야기였다. 살면서 수많은 갈등상황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줄 안다는 건 큰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규칙을 잘 이해해서 뭘 해야하고 하면 안되는지 잘 알아서 그를 잘 준수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누군가로 인해 분위기가 많이 안좋아지거나 위험하거나 등 하면 필요한 타이밍에 어른에게 알려준다고 한다. 그렇다고 고자질쟁이 같은 식으로 하는 건 아니고 제지할 수 있는 건 제지하고 크게 위해가 되지 않으면 어른이 개입할 때까지 개입하지 않고, 적당한 수준으로 도움을 요청한다니 내가 아는 하나가 맞다.

놀이를 만들어내는 창의성이 좋고 아이디어가 많은데 판타지 동물 이런식의 창의성은 아니라 현실성에 근간한 창의성을 보인다니 엄마 아빠의 드라이함이 반영된 부분이 있는 거 같다. 뭔가를 만들고 그리고 춤추고 몸을 써서 하는 활동에 특히 뛰어나다니까 그 점 많이 계발해주면 좋을 것 같다.

관찰력과 기억력이 뛰어난데, 거기에 질문을 잘 던져서 언제 저런걸 알아차렸지? 정말 좋은 질문인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많단다. 그런 생각을 나만 하는게 아니었다. 그리고 지적 호기심이 뛰어나다고 한다. 어른이 하자고 하는 활동에 있어서 “나는 싫어” 라며 빠지는 것 없이 항상 적극적이고 밝게 참여해서 타인의 참여를 유발한다고 한다.

유치원에 두 반이 있는데 취학연령 아이들은 모아서 따로 큰아이 그룹을 일주일에 한두차례 운영하는데, 다른 반 아이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서 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있는 아이라고 한다. 본인이 사랑이 넘치는 아이라 어린 아이들도 잘 보살피는데, 하나가 있으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하나가 있음을 알게끔 그 주변으로 많은 사람이 몰린다고 한다. 학교 가서 너무 잘 적응할거라고 하는데 참 마음이 놓이더라.

이제 이틀이면 하나 생일이고, 삼개월이면 학교를 시작하니 얼마나 시간이 빨리 흐르는지 모르겠다. 사랑이 넘치는 우리 아이.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게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이더라. 애를 데릴러 가야지 이제.

인간관계는 복잡해…

상사와 한 동료간에 갈등의 골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깊어진 골은 메우기 어려운 법인데… 인간관계는 각각의 화학작용에 따라 결과가 너무 달라지기에 A-B, B-C는 잘 지내더라도 A-C가 잘 지낸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나는 상사와 잘 지내고 그 동료와도 잘 지내고, 그 둘도 잘 지낼 줄 알았지만 상사와 그 동료는 갈등이 깊었던 거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부딪힐 수 있는 난관에 대해 고려를 잘 해야한다 하는 그 동료의 면을 나는 그 동료가 조심스러운 면이 많다고 느낀 것인데 반해 상사는 그 동료가 매사 부정적이다라고 느낀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평가에 대한 피드백의 방식이 그 동료는 적절하지 않다고 느끼고.

간혹 그 동료가 옆자리 다른 동료에게 이런저런 일적인 힘든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을 얼핏 듣는 적이 있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면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끼고 음악을 들으며 일하기에 그런 분위기를 크게 느끼지 못했었다. 점심을 같이 먹는 구내식당에서는 모두 같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는데, 거기서는 그냥 그 직원이 원래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분위기를 감지하기 어려웠다.

그 동료가 내 프로젝트에 조인을 한터라 간간히 상사랑 미팅을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담당하는 프로젝트이다보니 회의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말을 했기에 별 생각을 못했더랬다. 이제 이 갈등상황을 알게 되고 나니 회의에 들어가서 괜히 눈치가 보인다. 모르는척 하고 나 하던대로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찌할 수 없다.

이런 갈등상황이 잘 개선되어 모두가 좀 더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떻게 하는게 좋을 지 모르겠다. 사실 그 동료가 상사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부분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센터 특성상 개개인의 자율성이 엄청 큰데, 호흡이 일년쯤 되는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이 자율성에 묻혀 방향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나도 이런 부분에서 시작된 스트레스가 자아비판과 합쳐져 심리상담가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니 그 불만의 핵심을 이해한다. 이에 대해 나는 상사의 지원을 요청했고,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상사와 주기적으로 미팅을 하면서 방향성 설정에 도움을 받았는데, 이 방법을 내가 구체적으로 제안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동료가 원하는 것도 상사의 적극적 지원인데, 동료는 이 상사의 적극적 지원과 관리가 상사의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게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심리상담도 하고 상사랑 조율도 하고 난 후로 자율성 부분과 지원 부분에서 나는 적당한 균형을 찾았는데, 그 동료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상사의 관리를 요구해야하는 상황 자체가 잘못된 관리상황이라고 하고 있다. 나보다 훨씬 큰 상사의 적극적 지원과 관리를 원하는 동료로서 내가 받은 수준에 못미치는 지원과 관리를 받았으니 마음속 갈등이 얼마나 커졌겠는가.

이미 그렇게 커진 골은 좁히기 어려운 바, 아마 오래지 않아 동료는 사내 팀 이동을 하든가 이직을 할 것 같다. 마음이 뜬 듯 하기 때문이다. 상사도 인간이니 잘하는 것 못하는 것 다 있지만, 자신의 부족한 면을 피드백을 받는다면 고칠 의향이 충분히 있는 사람일 것 같은데, 상사를 향한 피드백이 어려운 건 나라를 불문하고 마찬가지인 것 같다. 덴마크는 위를 향한 쓴소리를 잘하는 나라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고 본인이 이야기 하지 않는 갈등 문제를 타인이 이야기하기는 어렵고. 나 말고 같이 프로젝트를 하는 동료가 상사에게 한번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 한번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

내가 혼자 하는 프로젝트를 주로 맡다보니 이런 어려움을 모르고 모든게 좋게 잘 돌아가려니…하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왠지 씁쓸하다. 누군가 힘이 들어하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불편하다. 감정까지 누군가가 해결해줄 수 없는 일이니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잘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다.

덴마크와 한국 직장생활의 차이점

은행에서 삼년 일한 초년생 시절을 제외하면 참 오랫동안 공공부문에서 일했다. 두번째 직장인 코트라는 공공부문에 일을 했지만서도 준정부기관에서 일한 탓에 그 애매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공무원은 분명 아닌데, 또 사기업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준공무원이라고는 해도 이게 기업의 수출과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업무였다보니까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니 그 일을 통해서 내가 배우게 되는 것들을 빼면 일의 성과에서 내 발자국을 찾기가 힘이 들었다. 지금은 내가 하는 일이 실제 덴마크 에너지 인프라 정책에 아주 작은 점이나마 남길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 다르다. 내가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과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리에 남아서 계속 기여하고자 하는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기에 중요하다 생각한다. 덕분에 감사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코트라를 나와서 일한 곳이라고 해봐야 덴마크 첫직장 취업 전 잠시 지도교수와 함께 단기로 참여한 컨설팅회사 프로젝트 한달반 정도 하나이고, 그 이후에는 중앙정부기관 두군데 뿐이니 덴마크 직장생활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경험은 물론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가 느낀 덴마크와 한국 직장생활의 차이점을 한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근무시간이 유연하다.

근무시간은 주당 37시간이 평균이다. 근무 쉬프트가 중요한 직종 – 예를 들어 병원 의사, 간호사, 환경미화, 선생님, 경찰, 생산직 근로자 등 – 은 유연하게 일하기 어렵지만 일반 사무직종의 경우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사무실에 있어야 하는 정해진 시간텀을 포함해 그 앞 뒤로 시간을 붙여 일해 37시간을 일하면 되니까 언제 출근도장 찍었는지 감시하는 사람이 없다. 간혹 9시에 근태점검을 하던 시절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 근태점검이 출입증을 태그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해야하는 건지 사무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는 시간을 기준으로 해야하는건지도 갑론을박했었는데. 아무도 퇴근시간은 그렇게 챙기지 않았는데… 그렇게 밥을 먹듯이 넘겨도…

데스크 전화와 데스크탑 컴퓨터가 없다.

랩탑, 핸드폰은 입사시 지급되는 기본 IT기기이다. 도킹 스테이션과 모니터 두개,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어서 앉거나 서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디폴트라 자리를 바꾸는 경우 랩탑과 핸드폰만 들고 이동하면 된다. 데스크 전화는 없다. 민간은 좀 다를지도 모르겠는데, 정부기관은 기본이 그렇다. 전화에 전화번호관련 솔루션이 탑재되어 있어서 소속기관 전화번호부가 깔려있다. 카톡 등 개인것을 업무에 섞지 않는다. 물론 회사 전화를 개인전화로 쓸 수 있도록 허락하는 기관도 있다. 그럴 경우 복지혜택에 수급으로 판단해 세금을 더 내야한다. 지난번 근무 기관은 이게 허용이 되었는데, 지금 직장은 허용이 되지 않아 다들 전화를 두개씩 들고 다닌다.

헤드폰을 끼고 일해도 된다.

헤드폰을 요청할 수 있다. 소음차단이 되는 헤드폰을 달라고 해서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해도 된다. 대부분 자기 자리에서 전화를 받지는 않지만 업무상 이야기가 아주 길어지지 않는 경우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꽤 되니까 집중에 방해가 되는 걸 피하려고 헤드폰을 끼고 일한다. 전화가 오는 경우 진동으로 되어 있어서 헤드폰 꼈다고 못듣고 그런게 아니니 피해줄 일도 없다.

타인 앞에서 깨지지 않는다.

피드백 할 게 있으면 따로 불러서 하고, 그걸 타 부하직원에게 공유하지 않기에 상사로부터 타인 앞에서 깨지는 일이 없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리더로서의 자격을 의심받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상사로부터 깨지는 걸 본 일이 없다. 좋은 일은 반대로 타인 앞에서 칭찬한다. 다행히 지금까지 깨진 일도 없지만, 깨지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남들 앞에서 호되게 혼난다든지 하는 걸 걱정할 일이 없다.

복장 규정이 없다.

복장 부분은 많이 자유롭다. 문화가 있어서 각자 알아서 맞추는 분위기이나 간간히 안맞추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갖고 대놓고 뭐라 하지도 않는다. 물론 간혹 특별한 경우 뒤에서 놀랐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있을 수 있다. 그런 거 생각했다면 그렇게 튀게 입지 않을 사람들이기에 이러나 저러나 뭐라 하지 않는 거 같다. 언제 한번 배꼽이 보이는 탑을 입고 온 사람이 있었다. 나와 다른 직원 한명이 그녀를 구내식당에서 보고 큰 눈을 뜨고 눈빛을 교환한 뒤 놀랐다며 한마디씩 했다.

휴가 가면 연락이 안된다.

휴가 가는 기간 중 연락이 되어야 하는 경우는 정말 특별한 거 같다. 상사들은 조금 연락이 가능한데,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연락이 될 거라고 기대해서도 안되지만, 대부분은 이 기간에 연락을 극도로 피한다. 일반 사원급에서는 연락이 대부분 되지 않는다. 회사 전화도 컴퓨터도 두고 간다. 회사 전화의 VPN이 없으면 회사 시스템 접속 자체가 안되니까 연락이 될리가 없다. 따라서 휴가 기간에는 그냥 연락을 서로 하지 않는다.

회식이 거의 없다.

일년에 네번정도 회식이 있다. 두번은 팀빌딩 같은 걸로 세미나 같은 거 하고나서 저녁 먹는 거 하고, 두번은 여름 휴가 전에 파티 한번 하고, 겨울에 크리스마스 가까워서 연말 파티 한번 하는거다. 나는 한번 직원들 초대해서 식사 같이 한 적 있는데, 그때 다들 왔던 거 제외하고는 정해진 회식 외에는 따로 소규모 회식을 해본 적이 없다.

상사와 1대1 면담이 대충 한달에 한번정도 있다.

삼십분정도 할애해서 직속 상사랑 1대1 면담을 한다. 업무 관련 팔로우업도 하고, 주제는 없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직원에게 일상의 애로사항이 있는지 등도 들어보고 한다.

사수 부사수 개념이 없다.

대부분 입사 후 1달정도 정착을 도와줄 버디를 정해주는데 회사내 일상 생활과 관련해서 알아야 할 것, 중요 규정들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지, 회사 건물 안내, 건물 안내시 다른 부서 직원들에게 새직원 소개 등을 해준다. 그거 외에 꼭 알아야하는 것은 인사팀에서 입사 전에 이미 읽어볼 규정들을 보내주기도 하고 인트라나 인트로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시스템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되어있다. 사수 부사수 개념이 없고 모두 동료들이기 때문에 물어보면 친절히 다 알려준다. “누구씨. 이런거 꼭 말로 해줘야 알아요? 그정도는 학교에서 배우고 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하는 신경질적인 말투를 들을 일이 없다.

자기 발표는 자기가 준비한다.

필요한 자료와 관련 수치는 관련 담당자에게 요청을 한다 하더라도 최종 발표자료는 발표자가 준비한다. 상사의 발표자료는 상사가 만든다. 부하직원이 만들어가면 이렇게저렇게 만들라고 수정요구를 하고 다시 수정해 가져가면 또 수정하고 하는 무한반복을 안해도 된다. 심지어 청장들도 그렇게 한다. 자기가 만들어야 자기도 발표할 때 자신있게 발표할 게 아닌가! 이런데서 오는 생산성 향상이 엄청 크다. 낭비를 제일 싫어하니까.


덴마크 사람들은 딱 계약서에 써 있는 만큼만 일하려 한다. 성장하려는 욕구가 없다. 이기적이다. 개인적이다. 등등 덴마크 사람들의 근로 문화를 두고 이를 비판하는 한국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반대로 놓고보면 우리가 “주인의식”이라는 미명하에 알아서 계약서로 합의된 이상으로 스스로를 갈아넣는 것에 너무 익숙한 거 아닌가 싶다. 실용주의가 뼛속까지 박힌 이들은 형식에 크게 얽메이지 않고 서로를 인간대 인간으로 대하며 각자 할일 하는 것에 집중하는 걸 제일 중시한다. 완벽하다는 게 아니다.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같이 단점이 따라오지 않는가. 그런 단점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나면 이 문화가 인간의 정신건강에 크게 도움이 되는 건강한 면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될 뿐이다.

덴마크에서 주당 37시간 이상 일하면 정말 안될까?

덴마크에서 주당 37시간 이상 일했더니 국제채용 및 통합청 (Styrelsen for International Rekruttering og Integration, SIRI)에서 경고 서한을 받았다며 ‘무슨 이런 천국이 있냐?’ 또는 ‘이렇면 사회가 발전을 할 수 있나?’ 등등의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그러면 정말 덴마크에서는 주당 37시간 일하면 안되나?

절대 그럴리가 없다. 주변에 주당 37시간 근무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아무도 경고를 받지 않는다.

가까이는 사기업에 다니는 남편부터 그렇다. 밀린 이메일을 처리한다고 주말에도 간간히 일하는 남편은 평일에 평균 9시간정도 근무를 한다. 주당 근로시간이 50시간 좀 안되게 일하고 그런 일상적 야근은 이미 임금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며 별도의 추가 수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휴가떄도 이메일이 쌓이면 복귀후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틈틈히 이메일을 체크한다. 연간 6주의 휴가가 제공되지만 항상 조금씩 남겨서 다음해로 이월하는데, 이렇게 이월할 수 있는 한도가 제한되어 있고, 사용하지 못한 휴가는 휴가비로 지급되지도 않는다. 예전엔 휴가비로 지급받을 수도 있었던 모양인데 요즘은 그렇게 안된다고 한다.

나는 공무원이라 조금 다른데 우리나라의 사무관에 해당하는 fuldmægtig로서 주당 37시간의 근로시간을 지킬 수 있다. 근로시간을 매일 시스템에 기록하는데, 하루 기준 7,4시간에서 어떤 날은 더 많이, 어떤 날은 더 적게 근무할 수 있다. 9시부터 2시 반 사이에만 사무실에 있으면 되고 이 시간에 앞뒤로 시간을 추가해 평균 7,4시간을 일하면 된다. 마이너스 한도와 플러스 한도가 있는데, 마이너스 한도는 이틀정도 되고 플러스 한도는 영업일로 10일 정도에 해당하는 시간이었던 거 같다. 이 한도를 넘겨 일하면 휴가를 써야 하고, 너무 바빠서 휴가를 쓸 수 없는 경우에는 승인을 받도록 한다. 이걸 flekstimer라고 해서 근로시간 시스템에서 밸런스를 보면서 알아서 자기 근로시간을 관리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나중에 직원이 이를 한꺼번에 몰아서 자기가 가고 싶은 기간에 휴가를 왕창 몰아서 써서 근무에 차질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함이 하나 있고, 상사의 권한 남용으로 직원이 과다하게 일만 하고 자기 권리인 휴가를 못쓰게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 또 하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승진을 해서 다음 직급으로 올라가면 flekstimer에 제약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쌓아놓고 날리는 flekstimer가 많다. 이 시스템은 직급이 올라가면 갈 수록 어느정도 야근은 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깔고 있는 거다. 부서장급은 flekstimer의 컨셉이 없다. 그냥 휴가 딱 쓰는게 끝이다. 그나마 공무원은 이런게 가능한데 사기업은 그렇지 않다.

우리 집 이야기 말고도 많다. 컨설턴트나 법조계 사람들은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경고서한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왜 외국인에게는 이렇게 경고 서한이 날라오는 걸까? 이건 모든 외국인에게 오는 경고서한은 아니고 근로비자로 와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따라서 외국인청(Udlændingestyrelsen)에서 비자를 받아 와 있는 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없고, 국제채용 및 통합청에서 비자를 받아 와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근로비자로 오는 사람에게는 근로시간과 급여 등 여러가지 세부정보가 국제채용통합청에 다 통보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덴마크 국내 고용시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고를 하는 것이다. 정해진 급여만 주고 과도하게 외국인 노동력을 착취하면 덴마크 노동력을 채용하지 않을테니까. 그러면 같은 급여만 준다 쳤을때 외국인을 고용하려는 인센티브가 커질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인을 다수 채용하는 기업을 대상으로는 국제채용통합청에서 관리감독을 한다. 근로 여건이 근로 계약에 부합하는지를 대상으로 말이다. 영주권을 따면 더이상 그런 경고는 받지 않는다.

덴마크 사회도 끊임없이 발전을 한다. 그래갖고 어떻게 회사가 굴러가나 싶은 제도들이 많지만 많은 기업들과 조직들이 우리나라보더 훨씬 적은 인력으로 같은 일을 수행한다. 생산성이 높은 거다. 한국처럼 일이 빨리 돌아가지 않는데! 라고 불평한다면 같은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고용인원이 훨씬 적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1인당 생산성은 높다. 그러려면 불필요한 절차를 최소화하고 핵심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런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예를 들어 공무원 조직은 민원인과 접촉하는 전화시간, 방문 시간 등이 우리보다 짧게 잡혀있어서 일하는 중간중간 오는 전화에 업무 리듬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는다. 이걸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공무원은 일을 안하나? 일찍 퇴근한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민원상담시간을 따로 정해둔 것 뿐이다.

그래서 결론은, 덴마크에서 주당 37시간 이상 일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다. 근로비자 받고 일하는 외노자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