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를 통해 배운 내 몸 사용법

발레를 거의 십년 가까이 하게 되며 내 몸의 사용법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너무나 많다. 상하 좌우로 비틀어진 균형을 맞추는 것은 가장 큰 것중 하나인데 그 덕에 상하체 불균형도 사라지고, 짝짝이 가슴도 없어지고 두 다리간의 두께 차이도 거의 없어졌다. 중립 골반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고, 등판의 근육을 사용하는 법도 배워 더이상 상체가 앞으로 말리지 않게 되었고, 어깨를 내리는 법을 배우면서 목도 길어지고 어깨도 떡대같은 느낌이 사라졌다. 흉곽을 사용하는 방법도 배우면서 폐활량을 늘릴 수 있게 되었다. 목을 길게 세우는 법을 배워서 턱의 이중턱이 사라졌으며, 바른 자세를 통해 목과 어깨의 뭉침과 결림 등도 없어졌다. 이 밖에도 내 몸의 사용법에 대해 배운 것이 너무 많다.

이 모든 것은 누군가의 원포인트 레슨 등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럴 수도 없는 것이다. 평생 써오지 않던 근육은 여러번 자극을 이래저래 받지 않으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것이기에 한번 말해준다고 쓸 수 없다. 계속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하면서 틀린 근육도 써보고, 그러면서 주변 근육에 대한 이해도 높이고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하면서 또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하다보면 여러 근육 사용법을 익힐 수 있게 되는 거다.

내가 얼마전 곰곰히 생각을 해본 결과 나는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운동을 머리로 하는 편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을 참 헤매면서 배우는 편이었다. 그냥 난 운동 신경이 좋다고 착각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는 쉽게 배울 수 있는 것들도 나는 참 오랫동안 씨름을 하면서 배우는 편이다. 다만 나는 정확히 하는 것을 좋아해서 테크닉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편이다. 그래서 처음엔 남들이 쉽게 배우는 것을 헤매다가도 대충 즐기면 되지 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과 달리 뒤늦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지난 1년간, 아니 특히 지난 3개월간 테크닉적으로 크게 성장했음을 나뿐 아니라 우리 반 선생님, 주변 학생들이 여러번 언급할 만큼 두드러지게 느끼고 있다. 이젠 손끝과 상체 사용에 집중을 할 수 있게끔 말이다.

이를 통해 배운 건 조금씩 하면 좋아질 수 있고 나아질 수 있기에 나만의 페이스로 꾸준히 계속 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체득할 수 있었다. 말이 쉽지 속으로는 계속 의심의 소리가 울려오는 사안에 대해서도 항상 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고, 이는 인생의 어떤 측면에도 적용할 수 있는 레슨이다.

나는 못한다고 생각해온 달리기를 시작한 것도 이런 마음의 연장선상에서였다. 달리기와 수영은 내가 잘 못하고, 노력했어도 제대로 된 적이 없다 생각했는데, 그 어느 것도 발레만큼 노력한 바가 없는데 조금 해보다가 포기해놓고 어쩜 노력했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을까?

폐활량은 이제 충분하다 생각한다. 6킬로를 무리 없이 달릴 수 있으니 수영을 위한 폐활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상하체의 유기적인 사용도 가능하고, 팔이 아닌 어꺠로 움직일 준비도 되었다. 8월부터 발레를 1회 더 하는 대신 수영을 하루 하기로 결정해서 수업도 등록했다. (생활 체육에 대한 나라의 보조금 덕에 1년 시즌 수업권을 끊었는데 22만원 정도 하는 거가 참 놀랍다.) 하나가 11살이 되면 온가족이 같이 카약을 하고 싶어하는 꿈을 가진 옌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라도 수영은 꼭 해내야겠다. 카약을 하려면 600미터를 쉼없이 수영할 수 있어야 하기에…

지금 이미 하나가 그렇긴 하지만, 하나가 나와 옌스를 보면서 운동은 생활속에 항상 하는 거라 생각하며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활동적인 아이로 클 수 있길 바란다.

덴마크 친구들과 한국

발레를 꾸준히 오래 하다보니 이 바닥 좁은 덴마크 성인 취미발레계에 알게 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취미가 같다보니 할 이야기도 많고 다들 발레에 큰 열정을 갖고 있다보니 그 공통점에 가까워지게 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이번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나흘간 두시간반에 걸친 발레 여름캠프에 참가하면서 새롭게 알게된 사람도 있고 또 알던 사람과도 더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 중에 사람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하나 있어서 저녁도 같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게되는 시간을 가졌는데 발레 공연도 같이 보기로 했다.

재미있는 건 전혀 K-pop이나 드라마의 팬이 아닌데 한국 음식과, 문화, 역사 등에 관심을 갖고 여행을 벌써 두어차례 다녀오고 요리도 레시피를 찾아서 해먹는 사람도 있고, 그냥 재미있을 것 같다며 한국 여행 가보겠다고 한국어를 자습하기 시작한 사람도 있다. 한국어 배우는 건 요즘 좀 힙한 일 아니냐며… 음? 뭐라고??? 언제 그랬지?

한국 요리를 나에게 배워보고 싶다는 말을 지나가는 듯이 한 적이 있는데, 그럼 한번 우리집에 초대할 테니 같이 만들어보자고 했다. 오늘 종강저녁을 같이한 친구들 모두 너무 좋다며 9월에 자리를 한번 마련하다고 하고 으쌰으쌰 마무리했는데 기대가 된다.

외국인인 것이 언젠가부터 덜 특별할 만큼 국제화 되어가고 있는 코펜하겐이지만 오히려 그게 친구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고 있음을 이제사 느낀다. 나때문에 영어로 모든 대화를 바꿔줘야 했을 땐 뭔가 내 스스로 장벽을 느꼈지만 이게 해결되고 나니 옌스가 말한대로 취미활동을 통해, 나만의 특이점을 통해 친구를 사귈 수 있게 되었다.

뭐랄까… 한국인이라 덕 봤다는 건 살면서 별로 느껴본 적 없는데 요즘 좀 느낀다. 이런 기분도 나쁘지 않구나.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했다는 뜻이겠지.

2주 반만 지나면 다음 시즌 발레가 시작되는데 너무 기대된다… 요즘 많이 늘어서 더 추고 싶은 발레… 이제 피루엣도 더블턴을 시작했고… 주 3회로 한번 더 늘려볼까?

언어, 문화, 적응, 변화

글을 쓰면 내 스스로 교정을 볼 수 있어 그 글을 받아 읽는 사람은 최종본만 일게 되지만, 말은 한번 뱉고 나면 주어담을 수 없어서 상대가 내 실수를 다 들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외국어를 배우다보면 쓰기보다 말하기가 더 쉽기도 하면서 더 어렵기도 하고 그런 거 같다. 맞는지 틀리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말하느라 정신없어서 뱉어버리고 나서 내가 무슨말을 했는 지 기억도 잘 나는 단계면 쓰기가 더 부담스럽고 – 교정을 잘 볼 수 없는 단계라 화석처럼 남아있게 되는 실수가 두려워서 – 교정을 볼 수 있는 단계가 어느정도 되면 말로 하면 글처럼 수정을 볼 수 없어 실수를 남에게 보이게 되는 게 두려워서 말이다.

이제는 그 단계를 지나가는 것 같다. 실수를 아예 안해서가 아니라, 내가 말을 하면서 만드는 실수를 사후적이나마 빨리 고칠 수 있게 되었으며, 실수 자체를 크게 줄였으니 말이다. 요즘 느끼는 건 전 직장은 나에게 언어적 측면에서 트레이닝의 장이었고, 덕분에 엄청 늘었지만, 당시의 내 실력으로는 참 힘든 곳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직장에서 수월하게 기능하려면 지금 수준의 언어가 필요했던 거다. 아직도 부족함을 느끼지만, 이제는 두려움은 떨쳐내었다. 듣기에서 추측을 하는 부분이 없어진 것과 어떤 상황에서건 필요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떄문이다.

언어실력이 좋아지려면 그 언어와 친해져야 한다. 문화화도 친해져야 하고.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그 구석구석의 메커니즘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익힐 수 있으니까. 그러다보면 내 사고회로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내게 새겨진 문화와 새로운 문화가 나도 알 수 없는 새에 내 안에서 얽히고 섥혀 융화가 되면 내가 원래 그런 줄 알았었던 것마냥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바뀐다.

요즘 한국노래를 듣고 있었다. 가사를 안듣고 노래 음정만 듣는 습관이 있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친구 생일 때 한국 가요의 감수성에 대해 이야기가 나와서 요며칠 가사에 신경을 써서 들어봤다. 나이가 들어서 생각이 바뀐 것도 있지만, 내가 가슴에 절절히 와닿는다면서 좋아했던 한국가요의 가사를 들으며 creepy하다고 느껴지는 사랑 노래가 너무 많다 느꼈다.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남자다움이 폭력으로 느껴지는 이곳에서 살다보니 사랑 노래의 절절한 가사가 스토킹, 나르시즘, 착각, 자기만의 감정에 취한 것, 오지랖, 등등처럼 전혀 그 전의 내가 느낀 바 없는 감정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냥 그당시 내 시간에 얽혀있는 노래를 들으며 즐기는 것은 그와 상관없이 여전히 좋지만, 내가 변해서 그 노래가 더이상 내 감수성에 어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어디 가든 적응하게 되어있지만, 어디 가서도 빠르게 변화하고 적응하는 한국인의 유전자 덕에 내가 이 곳 덴마크의 사회와 문화에 유독 빨리 적응해서 한국의 감수성에서 더울 빨리 멀어진 게 아이러니하다.

하나 유치원 마지막날…

하나의 지금 유치원 마지막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10개월부터 시작해서 52개월인 지금까지 약 4년 가까이 다닌 이곳에 나도 정이 엄청 많이 들었다. 가장 정이 많이 들은 선생님과는 내일 픽업 담당인 내 시간이 맞지 않아서 금요일에 인사를 나눴다. 안아도 되겠느냐고 여쭤보고 괜찮다는 답을 들어서 (백신 1차 접종을 완료하셨으니..) 꼭 안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우리 집에 아이들과 소풍을 나오는 것도 매우 환영이고, 여름 휴가중에 괜찮다면 유치원을 방문해도 되겠는지도 문의하였다. 그전에 선생님한테 하나가 그래도 된다고 했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또 혹시 모르니까.

선생님들께 드릴 초콜렛 한팩과 선생님과 아이들과 함께 나눌 케이크도 한판 구웠다. 지금 오븐에서 초콜렛 케이크의 향기가 솔솔 풍기고 있는데, 하나와 함께 만들어서 더 특별한 케이크. 하나가 원하는 엘사는 내가 만들어줄 수 없지만 – 퐁당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이사 사후 작업으로 바쁜 시기에 이 이상 시간을 쓰기는 어렵고… – 하나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렛 케이크 위에 이쁘게 장식은 해줄 수 있으니까. 어떤 장식인지는 자기도 모르게 서프라이즈로 해달라고 했으니 천천히 생각을 해봐야겠다.

작별은 힘들지만, 또 새로 시작하는 시점에 정신이 팔려서 처음엔 힘든줄도 모르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리움이 뒤늦게 몰려오지 않을까 싶다. 하나 친구들도 초대해서 과거의 인연도 잘 아껴 키워나가야지. 이렇게 하나가 이별을 이해하게 되고 또 크겠지.

5월의 월(?)기

이번 한 달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후딱 지나갔다. 인사팀의 입사 1개월 면담을 하면서 “아… 어느새 한 달이 지났구나…”하고 알아차렸다. 집 안에도 신경쓸 일 투성이고, 회사에서도 적응하고, 하나를 기존 유치원으로 원거리 통원을 시키다보니 그 어느때보다 시간이 화살같이 지나가버렸다.

회사생활은 아직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기 어려울만큼 짧은 기간이기도 하고, 재택근무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가타부타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지난번 조직에 비해 절반정도로 크기가 작기도 하고, 우리 센터 자체가 7명으로 오붓하게 작은 센터라 가족같은 분위기가 크게 느껴진다는 면에서 좋다. 지난번 직장의 1층 건물에 일부 센터 두고 있었던 터라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면도 나쁘지 않다. 중순에 한번 전직원 단합대회를 하느라 직원의 절반쯤 나와서 두시간동안 7개의 포스트를 돌면서 미션을 수행했는데, 덕분에 거기에서 익숙한 얼굴 몇에게 인사를 건내고 대화를 할 기회도 있었다. 그걸 떠나서 조직 전체가 서로를 다 알고 지낸다는 느낌이다. 지나가다가 나는 모르는 동료들은 나를 붙들고 새로 온 사람이냐며 자기를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부서 직원들은 전직장 동료직원들 보다 전반적으로 릴렉스된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 전 동료들도 좋았지만 이번 동료들은 또 다른 느낌으로 좋다는 느낌이다. 좀 더 훈훈하고 털털한 느낌? 성비는 여자가 나를 포함해 두명뿐이라 전 직장 부서의 여자 중심의 환경과는 정반대이다. 일할 때 나는 남자 직원들과 더 케미가 잘 맞는 느낌이다. 내 생각에 직장의 성비는 중요한 거 같다. 균형잡힌 성비가 서로 보완도 해주고 하면서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리더와 같이 가까이 일하는 동료와 케미가 잘 맞는 건 진짜 중요하다 싶은데, 둘다 좋은 것 같다. 나와 같이 일하는 시니어는 기존에 알고 있으면서 같이 일하기 좋을 거 같은 사람이다 싶었는데, 정말 그렇다. 따뜻하고 인정이 많지만 일 잘하고, 해야될 말은 윗사람에게도 똑부러지게 하는 스타일.

기존 조직에 비해 HR이 직원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정성을 들이는 것 같다. 아마 조직의 크기가 작아서 가능한 부분이 있는 것도 있는 것 같고, 지방이전대상으로 코펜하겐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로 이전하면서 “좋은 직장 만들기”가 중요 전략부문의 하나라 그를 정말 실행에 옮기는 것 같다. 아무튼 근무 첫 달에서 받은 첫인상은 좋다. 앞으로 더 좋게 만들어가는 것은 내 몫이겠지.

집은 큰 틀에서는 정리가 되었고, 아직 좀 더 들일 것들이 남았지만, 그건 살면서 해도 될 부분이라서 대충 6월 중순이면 완전히 정리가 끝날 것 같다. 6월 중순엔 아파트도 열쇠를 건내줘야해서 이번 주말부턴 아파트 청소와 손질을 해야한다. 하… 정말 이사는 엄청 큰 일이구나. 오래오래 이 집에서 잘 가꾸면서 오래 살아야지. 아직 이 집에 대해서 알아갈 것도 많고, 배울 일도 많고. 살면서 알아두면 좋을 기술들을 배우는 감사한 기회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가꿔가봐야지. 젊어선 주택에 대한 로망이 전혀 없었고 생기지도 않았었다. 왜 사서 고생? 하는 느낌? 애가 생기고 자연이 좋아지고, 더이상 도시가 크게 그립지 않을만큼 도시에서 누릴 걸 충분히 누렸더니 이렇게 일하며 집을 가꾸는 게 집에 애정을 붙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손 타지 않은 곳이 없는 만큼 애정이 곳곳에 서리는 거지.

이제 하나도 하루만 나가면 유치원을 옮긴다. 우리가 정신이 없어서 이전과정이 스무스하지는 않게 되었는데 – 적응기간 없이 바로 유치원을 변경하는 식으로 – 그래도 잘 지내리라 믿으며… 이번 일요일 밤엔 초콜렛케이크를 구워야하는구나. 내일 장 좀 봐야지. 엘사 피규어도 만들어달라는데, 그건 못하겠다고 잘랐다. 만들 방법이 없나. 퐁당으로? 흠흠.

새 직장, 첫 출근

계약서 상으로는 5월 1일이었지만 정식 첫 출근은 오늘이었다. 집 페인트칠이다 이사준비다 뭐다 해서 정신없는 와중에 맞이한 첫 출근이라 그런지 막상 아무런 생각 없이 갔다. 그래도 전날 잠이 잘 안와서 설친 거 보면 흥분이 있었던 것 같다. 마치 늦게 마신 커피의 카페인으로 잠을 못 이루는 것처럼 온 몸에 흥분상태가 유지되는 것 같은 기분. 꿈에 옌스가 무슨 단어의 발음을 교정해주면서 왜 이 발음 자꾸 틀리냐고 하는 것도 나오고, 첫 출근에 상사랑 이야기 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잘 안나오고 혀가 꼬여서 자꾸 말이 틀리는 것도 나온 거 보면, 아무런 생각없이 있던 것 같아도 무의식 저편에는 긴장과 걱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직까지 재택근무라 회사 건물은 거의 텅텅 비어 있었지만, 오늘 여러 센터에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면접때 쥐 죽은 듯하던 적막은 없고 약간의 생명력이 느껴졌다. 업무 시작을 도와줄 파트너로 지정된 동료직원이 나를 마중나왔고 전체 건물을 돌며 소개를 해줬다. 전체 인원이 125명이라 하는데, 서로 다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고 할 만큼 잘 알고 지내는 것 같았다. 나도 오늘 짧은 시간동안 우리 부서 뿐 아니라 지원부서의 동료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몇 몇은 이름을 외우게 되었으니 시간이 흐르면 속속들이 새로운 동료를 알게되리라 본다. 다들 나를 보면, 우리 인사 안나눈 거 같다며 인사를 청하고 이름을 교환했으니 이게 전체 청의 문화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센터의 장이 새로이 부임해 상당수의 센터장들이 출근을 했는 모양이었다. 청장을 포함해. 우리 센터가 청장과 같은 층에 있는데 도시락의 샌드위치 하나를 다 먹고 다음 샌드위치를 꺼내려는 타이밍에 내 책상이 있는 사무실에 들어와 새로 온 것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내더라. 경쟁소비자청의 절반 조금 넘는 크기의 조직이라 그런지 조직 구조도 더 수평적이고, lean한 것 같았다.

경쟁소비자청에 첫출근할 때를 기억해보면 진짜 머리에 엄청난 인풋을 우겨 넣는 기분이었다. 덴마크어로 취직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타이밍에 덴마크어로 일을 시작해야 되는 것 하나, 법령, 시행령 등을 포함해 한 무더기의 보고서를 손에 건내 받고 시작했는데, 생소한 분야의 어휘를 통째로 익혀야 하는 부담이 하나 있었다. 또한 덴마크 직장문화, 회의 문화, 조직 구조, 커뮤니케이션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규범을 익히는 것도 큰 도전이었다. 그래서 첫날 정말 머리가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화 하나하나 집중해서 들어야 간신히 이해되고, 또 뭘 말하거나 쓸때마다 틀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회의에서 자기 소개할 때 뭘 어떻게 말해야 하나, 남들은 어떻게 말하나 관찰하고 내가 튀거나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등도 신경쓰이고 등등… 그래서 첫 한달은 집에 오면 너무너무 피곤했더랬다.

그런데 이번 출근은 우선 산업 분야는 달라도 업무는 연관성이 있는 것들이라 완전 생소하지 않다는 점, 더이상 언어가 큰 장벽이 아닌 점 등이 작용해서 그런지, 매끄러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동료들도 다 차분하고 좋은 것 같고, 같이 일할 게 기대되는 사람들이다. 그 전 직장도 좋은 동료들이 많았지만, 이번이 더 케미가 잘 맞을 것 같은 느낌… 진짜 느낌적 느낌인 근거 없는 느낌이지만 말이다.

이번엔 너무 달리지도, 너무 나에 대해 부담을 주지도 말고, 천천히 내 페이스 찾아가며 롱런하는 것이 목표다. 이사가 마무리 되면 다시금 내 프로젝트들도 다시 천천히 굴리기 시작하고 말이다. 오늘은 좀 푹 잘 수 있을 거 같다.

페인트칠 스킬 +100

오늘 드디어 거실과 게스트룸/사무실 페인트칠을 완료했다. 두번을 칠하기도 하고 큰 면적을 차지하는 1층에서도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두 공간인데다가 거실은 천장까지 칠해야해서 진짜 힘들었다. 실패를 통해서 배운다고, 게스트룸 1차 페인트칠에서 경험을 한번 쌓고, 거실 천장 1차 칠과 벽 한면 1차 칠을 통해서 경험을 또 한번 쌓은 후에 엄청 많이 배웠다. 그 다음부터는 빠르게 속도를 내서 페인트칠을 했다. 중간중간 작은 레슨을 통해 스킬을 계속 쌓아갔다. 남은 곳이 아직 제법 많지만 우선 가구가 들어가야 하는 공간부터 빠르게 칠을 하면 이사하기 전에 대충 중요한 공간은 마무리할 수 있을 거 같다. 여름휴가때 남은 페인트칠을 조금 더 해야할 것도 있고 살면서 조금씩 고치고 가꾸며 살아가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깨에 담이 온 옌스는 괜히 페인트칠하다가 또 무리가 갈까봐 페인트칠에서 빼고 이사짐을 싸달라고 했다. 그것도 힘들긴 하지만, 페인트칠은 마르기 전에 쭉 해야 하는 등 일의 특성상 무리가 더 가기 쉬울 것 같아서. 나도 페인트칠에 속도가 붙으니 힘든 것도 덜해지더라. 페인트칠도 코어근육으로 해야하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팔로 하다가 어깨랑 팔 나가는 줄 알았다. 힘들어 많이도 못하겠더니 요령을 체득하면서 덜 힘들게 빠르게 할 수 있는 요령이 붙더라.

다음 주엔 출근인데 할 일은 태산같고. 출근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안든다. 너무 바빠서. 어쩌면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몸이 힘든대신 쓸데없는 걱정할 시간이 없어서 말이다. 페인트도 새로 사야하는데. 얼른 페인트도 사고 얼른 필요한 방 페인트칠 하고 해서 월요일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게되길…

새집의 열쇠를 넘겨받았다.

4월 21일. 우리 가족에게 역사적인 날. 드디어 우리집 열쇠를 넘겨받았다. 청소 깨끗이 하고 벽에 구멍 막고, 페인트칠 하고, 전등 필요한 곳에 사다가 달면 큰 일은 끝난다. 아. 가구 들이는 것과 이사가 남았지.

매도자가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넘겨줘서 크게 힘을 써서 청소해야 할 건 없더라.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한번 해야할 것 같다. 여러모로 신경을 써줘서 그게 여러 과정에서 느껴졌다. 집에 들어오니 환영의 의미로 놓아둔 튤립하며 하나 탈 수 있게 차고에 그네도 걸어두고 여러모로 신경을 써줬더라. 냉동고도 넘겨줘서 편히 음식을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저녁에 청소도구 및 급하게 사용할 일상 물품 등을 가지고 가서 두었는데 부엌에 수납 공간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알고 있었는데 알아보고 더 놀란? 기존 우리 부엌이 얼마나 좁았는지를 새삼 느꼈다. ㅠㅠ

이쁘게 인테리어 하고 살던 매도자의 집 모양으로 반했었지만 깔끔하게 써서 별도로 인테리어 공사 할 거 없이 입주할 수 있는 상태여서 빈 집을 보고도 기분이 좋았으며, 그 전엔 남의 집이라 못했던 모든 공간을 구석구석 보고 더 마음에 들어서 좋았다. 여기가 정말 우리집이구나. 애정을 갖고 그들이 가꾼 공간이구나. 우리도 그래야지…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해서 기쁘다. 여기서 꾸려나갈 삶이, 보낼 많은 시간이 너무나 기대된다.

호사다마

호사다마라는 말을 믿는 건 아니다. 오히려 호사다마라는 말을 알기에 좋은 일이 많은 중에는 안좋은 일들을 조금 더 크게 포착하고 인지하게 되어 마치 마가 낀 것 같이 느껴지는 것 뿐이라 생각한다. 요즘 사사로운 사건 사고가 많다. 2021년, 원하던 집도 사고, 하나 유치원 옮기는 일도 수월하게 되고, 직장도 잡는 등 굵직하게 좋은 일들이 있어서 작은 사건 사고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 같다.

고기를 오븐에 굽다가 온도계를 너무 깊게 꼽아 온도 측정이 잘못되고 있음을 발견했는데, 그걸 뺀다는 게 220도의 달궈진 오븐 안에 오래 있던 금속침을 맨손으로 뽑아서 손 끝을 데었다. 뜨거우니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만으로 빨리 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예전에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냉동고가 없는 작은 냉장고에 넣어두시며, 조금 이따가 꺼내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었던 걸 갖고 두고두고 웃은 적이 있었는데, 딱 그런 생각을 한 것이었다. 나 스스로 두고두고 웃을 이야기다. 아무튼 기름처럼 손에 들러붙는 종류의 것에 덴 게 아니라 빨리 찬물에 담그고 나니 그런대로 심하진 않은 것 같았다. 물집도 잡히진 않았고. 요리할 것들이 있어서 중간중간 아픈게 심해지면 잠시 손가락을 찬물에 담그면서 요리를 했다. 우습게 본 화상이 요리를 하는 와중에 진행이 조금 더 되어 신경도 화상을 입었는지 하루정도 손가락으로 뭔갈 건드리면 바늘로 깊게 쑤시는 듯한 감각을 맛봤다. 말초신경의 위력을 느꼈달까.

그게 다 나을 때 즈음해 샐러드를 칼과 손가락을 이용해 뚝뚝 끊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손가락을 베었다. 칼과 맞닿는 손가락만 조심하다가 뭔가 딴 생각을 했는지 샐러드를 잡고 있던 반대편 손가락을 쑥 베어버렸다. 화상을 입었던 바로 그 손가락. 큰 살점이 뚝 떨어져 덜렁거리는데 너무 소름끼치게 아파서 소리도 안나오고 “하악…”하는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마시고 서둘러 지혈을 했다. 옛날에 아빠가 인도에서 손을 크게 베이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잘 하지 못한 지혈을 남자 간호사가 엄청난 힘으로 1분만에 지혈한 기억이 났다. 얼마나 꾹 눌러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내 손이기도 하고, 정확히 어디가 아픈 건지 아니까 온 힘을 다해 지혈을 했다. 다행이 한끝이나마 붙어있는 살점을 뚜껑 삼아 누르는데, 1분이 지나서 한번 보면 꼭 한쪽 어디선가 피가 흘러 새어나오는거다. 무엇보다도 온 몸을 관통하며 떨게 하는 통증이 새로웠다. 우선 지혈이 어느정도 된 후에는 진통제부터 먹었다. 만 하루동안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손이 욱신거리고 시큰거릴 정도로 아팠으니 칼로 이렇게 베어본 건 처음인 것 같다. 만 이틀이 지난 지금은 닿으면 아픈 정도니까 많이 회복된 것 같다.

좀 강력한 진통제로 코디마오뉠이라는 걸 먹었는데, 10%이상이 경험하는 부작용을 겪어 그날 저녁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고생까지 했으니 정말 여러모로 고생한 날이었다.

요즘 내가 부주의해졌나보다. 그래서 사소한데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 같다. 아마 큰 일에 집중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쓰고 나서 그런 거 같다. 좀 조심해야지. 어쩌면 그래서 호사다마라는 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큰 일을 치르고 나면 마음이 탁 풀어져서 부주의해지다보니 이런 저런 사고가 많이 나니 주의하라고. 주의하자.

오래된 연인

오늘 잠시 보다만 다큐멘터리에서 롱디를 해 절절한 젊은 커플 이야기가 나왔다. 시작하지 오래 되지 않아 롱디를 시작한 이 커플의 재회 장면을 보면서 이렇게 애닲았던 적이 언제였더라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롱디라고 해봐야 연애한지 1년되던 때 쯤에 내 한국 방문 4주, 얼마전 연초에 하나와 한국 방문 3주, 이게 전부였어서 그랬는지, 저렇게 절절한 적은 없었다. 연애 초기에 옌스가 손만 잡아도 떨리고,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녹는 것 같던 시기도 있었지만, 같이 산지 6년에 애가 네살이 넘은 지금은 그런 애닲은 감정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래도 옌스가 간간히 다가와 나를 잡아 당기며 그 큰 몸에 푹 덮이게 꼭 안아 내 머리 위에 턱을 얹고 있으면 그 따뜻함에서 사랑을 느낀다.

요즘 그런데 내가 조금 건조했던 것 같다. 이사도 해야하고 준비할 것도 많고 등등 하다보니 옌스에게 많이 신경을 못 쓴 것 같다. 저 포근함을 느낀 횟수가 적었던 것으로 보아 내가 다가갔던 순간들이 적었던 것도 같고. 요즘 옌스가 어깨죽지에 담이 와서 건드리면 아파하니까 안아주거나 쓰다듬어주는 것 조차도 신경쓰이기도 했고. 오래된 연인이 된 건가? 이렇게 관심을 덜 두고 있었다니.

이사하고 정리하면 더 챙겨줘야지… 라는 것 말고 지금도 틈을 내서 조금 더 챙겨줘야겠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가장 소중히 다뤄야지… 가까이 있다고 당연시 하면 안된다. 가까울 수록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관심 갖고 지켜봐줘야 더 가까워지니까. 오늘 딸기라도 좀 챙겨줘야지. 내 몸 힘들다고 쉬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챙겨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