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학전 전환기 상담

반차를 내고 아이 유치원에 가서 취학전 전환기 상담을 하고 돌아왔다.

한국과 달리 덴마크에서는 0학년이라고 정규 과정 전 1년을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학교에서 보내게 한다. 0학년에서 보내는 시간은 시간의 양적 총량에 있어서 유치원에서와 다를 게 없지만 활동의 종류와 성격, 교사 1인당 배정되는 아이 인원수 등에서 차이가 꽤 난다. 덴마크는 보육원에서 유치원으로, 유치원에서 학교로의 전환 등에 있어서 그 과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한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인근 유치원을 몇차례 방문해서 아이들과 얼굴을 익히기도 하고, 반대로 아이들이 학교를 방문해 0학년의 생활을 간접 체험하며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지 등을 미리 익힐 수 있게 도와준다. 유치원으로 올라갈때도 같이 올라가는 아이들이 훨씬 긴 기간동안 틈틈히 유치원을 방문하게 해 전환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불안함을 최대한 낮춰주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어려서 보육원에 다닐 때는 육아를 이렇게 하는 게 맞는건가,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나 등에 있어서 하원길에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가 많았고, 유치원에 처음 올라가서도 계속 이어진 통합 유치원이라 선생님들과도 관계가 깊어지니 대화를 할 일이 많이 있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와 시작한 처음 유치원에서는 어수선한 분위기에 다른 애들을 떼리고 소리지르는 아이들이 많아서 1년의 짧은 기간동안 하나가 너무 힘들어해서 이런 상황을 개선해보기 위해 상담을 할 일들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이번 유치원에서는 내내 하나가 너무 잘 지내서 선생님과 가벼운 인사 정도 이외에는 크게 이야기를 할 일이 없었다. 중간 중간 잘 지내는지, 문제는 없는지 물어보기는 했어도 너무 잘 지낸다 하니 딱히 더 물어보기도 그랬고. 그런 연유로 이런 상담이 너무 오래간만이라 그간 하나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유독 궁금하고 살짝 긴장마저 되더라.

하나는 중간중간 짧게 들었던 피드백 그대로 너무 잘 지내고 있었다. 주변 상황을 잘 살피고, 민첩하고, 다른 사람을 돌볼 줄 아는 아이란다. 모든 발달 측면에서도 그 나이에 맞는 발달을 하고 있되 뛰어난 쪽에 속한다고 한다. 용감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에 두려움이 없고, 시도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을 적절히 한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들이 와서 활동을 하면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쭈뼛쭈뼛 위축되서 눈치만 보는 아이들도 있다면, 우선 당면한 과제에 바로 참여해서 질문을 해가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한다.

타인과 큰 갈등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없는데, 자기의 목소리도 낼 것은 내되 협상을 잘 하고 모두를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시키고, 양보할 때 양보하기 때문에 그렇다며, 삐져서 혼자 토라져 있는 형태로 갈등을 피하는 게 아니라 갈등 상황을 잘 해결한다고 한다. 그 점 참 마음이 놓이는 이야기였다. 살면서 수많은 갈등상황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줄 안다는 건 큰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규칙을 잘 이해해서 뭘 해야하고 하면 안되는지 잘 알아서 그를 잘 준수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누군가로 인해 분위기가 많이 안좋아지거나 위험하거나 등 하면 필요한 타이밍에 어른에게 알려준다고 한다. 그렇다고 고자질쟁이 같은 식으로 하는 건 아니고 제지할 수 있는 건 제지하고 크게 위해가 되지 않으면 어른이 개입할 때까지 개입하지 않고, 적당한 수준으로 도움을 요청한다니 내가 아는 하나가 맞다.

놀이를 만들어내는 창의성이 좋고 아이디어가 많은데 판타지 동물 이런식의 창의성은 아니라 현실성에 근간한 창의성을 보인다니 엄마 아빠의 드라이함이 반영된 부분이 있는 거 같다. 뭔가를 만들고 그리고 춤추고 몸을 써서 하는 활동에 특히 뛰어나다니까 그 점 많이 계발해주면 좋을 것 같다.

관찰력과 기억력이 뛰어난데, 거기에 질문을 잘 던져서 언제 저런걸 알아차렸지? 정말 좋은 질문인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많단다. 그런 생각을 나만 하는게 아니었다. 그리고 지적 호기심이 뛰어나다고 한다. 어른이 하자고 하는 활동에 있어서 “나는 싫어” 라며 빠지는 것 없이 항상 적극적이고 밝게 참여해서 타인의 참여를 유발한다고 한다.

유치원에 두 반이 있는데 취학연령 아이들은 모아서 따로 큰아이 그룹을 일주일에 한두차례 운영하는데, 다른 반 아이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서 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있는 아이라고 한다. 본인이 사랑이 넘치는 아이라 어린 아이들도 잘 보살피는데, 하나가 있으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하나가 있음을 알게끔 그 주변으로 많은 사람이 몰린다고 한다. 학교 가서 너무 잘 적응할거라고 하는데 참 마음이 놓이더라.

이제 이틀이면 하나 생일이고, 삼개월이면 학교를 시작하니 얼마나 시간이 빨리 흐르는지 모르겠다. 사랑이 넘치는 우리 아이.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게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이더라. 애를 데릴러 가야지 이제.

인간관계는 복잡해…

상사와 한 동료간에 갈등의 골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깊어진 골은 메우기 어려운 법인데… 인간관계는 각각의 화학작용에 따라 결과가 너무 달라지기에 A-B, B-C는 잘 지내더라도 A-C가 잘 지낸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나는 상사와 잘 지내고 그 동료와도 잘 지내고, 그 둘도 잘 지낼 줄 알았지만 상사와 그 동료는 갈등이 깊었던 거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부딪힐 수 있는 난관에 대해 고려를 잘 해야한다 하는 그 동료의 면을 나는 그 동료가 조심스러운 면이 많다고 느낀 것인데 반해 상사는 그 동료가 매사 부정적이다라고 느낀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평가에 대한 피드백의 방식이 그 동료는 적절하지 않다고 느끼고.

간혹 그 동료가 옆자리 다른 동료에게 이런저런 일적인 힘든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을 얼핏 듣는 적이 있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면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끼고 음악을 들으며 일하기에 그런 분위기를 크게 느끼지 못했었다. 점심을 같이 먹는 구내식당에서는 모두 같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는데, 거기서는 그냥 그 직원이 원래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분위기를 감지하기 어려웠다.

그 동료가 내 프로젝트에 조인을 한터라 간간히 상사랑 미팅을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담당하는 프로젝트이다보니 회의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말을 했기에 별 생각을 못했더랬다. 이제 이 갈등상황을 알게 되고 나니 회의에 들어가서 괜히 눈치가 보인다. 모르는척 하고 나 하던대로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찌할 수 없다.

이런 갈등상황이 잘 개선되어 모두가 좀 더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떻게 하는게 좋을 지 모르겠다. 사실 그 동료가 상사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부분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센터 특성상 개개인의 자율성이 엄청 큰데, 호흡이 일년쯤 되는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이 자율성에 묻혀 방향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나도 이런 부분에서 시작된 스트레스가 자아비판과 합쳐져 심리상담가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니 그 불만의 핵심을 이해한다. 이에 대해 나는 상사의 지원을 요청했고,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상사와 주기적으로 미팅을 하면서 방향성 설정에 도움을 받았는데, 이 방법을 내가 구체적으로 제안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동료가 원하는 것도 상사의 적극적 지원인데, 동료는 이 상사의 적극적 지원과 관리가 상사의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게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심리상담도 하고 상사랑 조율도 하고 난 후로 자율성 부분과 지원 부분에서 나는 적당한 균형을 찾았는데, 그 동료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상사의 관리를 요구해야하는 상황 자체가 잘못된 관리상황이라고 하고 있다. 나보다 훨씬 큰 상사의 적극적 지원과 관리를 원하는 동료로서 내가 받은 수준에 못미치는 지원과 관리를 받았으니 마음속 갈등이 얼마나 커졌겠는가.

이미 그렇게 커진 골은 좁히기 어려운 바, 아마 오래지 않아 동료는 사내 팀 이동을 하든가 이직을 할 것 같다. 마음이 뜬 듯 하기 때문이다. 상사도 인간이니 잘하는 것 못하는 것 다 있지만, 자신의 부족한 면을 피드백을 받는다면 고칠 의향이 충분히 있는 사람일 것 같은데, 상사를 향한 피드백이 어려운 건 나라를 불문하고 마찬가지인 것 같다. 덴마크는 위를 향한 쓴소리를 잘하는 나라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고 본인이 이야기 하지 않는 갈등 문제를 타인이 이야기하기는 어렵고. 나 말고 같이 프로젝트를 하는 동료가 상사에게 한번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 한번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

내가 혼자 하는 프로젝트를 주로 맡다보니 이런 어려움을 모르고 모든게 좋게 잘 돌아가려니…하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왠지 씁쓸하다. 누군가 힘이 들어하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불편하다. 감정까지 누군가가 해결해줄 수 없는 일이니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잘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다.

덴마크와 한국 직장생활의 차이점

은행에서 삼년 일한 초년생 시절을 제외하면 참 오랫동안 공공부문에서 일했다. 두번째 직장인 코트라는 공공부문에 일을 했지만서도 준정부기관에서 일한 탓에 그 애매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공무원은 분명 아닌데, 또 사기업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준공무원이라고는 해도 이게 기업의 수출과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업무였다보니까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니 그 일을 통해서 내가 배우게 되는 것들을 빼면 일의 성과에서 내 발자국을 찾기가 힘이 들었다. 지금은 내가 하는 일이 실제 덴마크 에너지 인프라 정책에 아주 작은 점이나마 남길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 다르다. 내가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과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리에 남아서 계속 기여하고자 하는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기에 중요하다 생각한다. 덕분에 감사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코트라를 나와서 일한 곳이라고 해봐야 덴마크 첫직장 취업 전 잠시 지도교수와 함께 단기로 참여한 컨설팅회사 프로젝트 한달반 정도 하나이고, 그 이후에는 중앙정부기관 두군데 뿐이니 덴마크 직장생활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경험은 물론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가 느낀 덴마크와 한국 직장생활의 차이점을 한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근무시간이 유연하다.

근무시간은 주당 37시간이 평균이다. 근무 쉬프트가 중요한 직종 – 예를 들어 병원 의사, 간호사, 환경미화, 선생님, 경찰, 생산직 근로자 등 – 은 유연하게 일하기 어렵지만 일반 사무직종의 경우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사무실에 있어야 하는 정해진 시간텀을 포함해 그 앞 뒤로 시간을 붙여 일해 37시간을 일하면 되니까 언제 출근도장 찍었는지 감시하는 사람이 없다. 간혹 9시에 근태점검을 하던 시절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 근태점검이 출입증을 태그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해야하는 건지 사무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는 시간을 기준으로 해야하는건지도 갑론을박했었는데. 아무도 퇴근시간은 그렇게 챙기지 않았는데… 그렇게 밥을 먹듯이 넘겨도…

데스크 전화와 데스크탑 컴퓨터가 없다.

랩탑, 핸드폰은 입사시 지급되는 기본 IT기기이다. 도킹 스테이션과 모니터 두개,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어서 앉거나 서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디폴트라 자리를 바꾸는 경우 랩탑과 핸드폰만 들고 이동하면 된다. 데스크 전화는 없다. 민간은 좀 다를지도 모르겠는데, 정부기관은 기본이 그렇다. 전화에 전화번호관련 솔루션이 탑재되어 있어서 소속기관 전화번호부가 깔려있다. 카톡 등 개인것을 업무에 섞지 않는다. 물론 회사 전화를 개인전화로 쓸 수 있도록 허락하는 기관도 있다. 그럴 경우 복지혜택에 수급으로 판단해 세금을 더 내야한다. 지난번 근무 기관은 이게 허용이 되었는데, 지금 직장은 허용이 되지 않아 다들 전화를 두개씩 들고 다닌다.

헤드폰을 끼고 일해도 된다.

헤드폰을 요청할 수 있다. 소음차단이 되는 헤드폰을 달라고 해서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해도 된다. 대부분 자기 자리에서 전화를 받지는 않지만 업무상 이야기가 아주 길어지지 않는 경우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꽤 되니까 집중에 방해가 되는 걸 피하려고 헤드폰을 끼고 일한다. 전화가 오는 경우 진동으로 되어 있어서 헤드폰 꼈다고 못듣고 그런게 아니니 피해줄 일도 없다.

타인 앞에서 깨지지 않는다.

피드백 할 게 있으면 따로 불러서 하고, 그걸 타 부하직원에게 공유하지 않기에 상사로부터 타인 앞에서 깨지는 일이 없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리더로서의 자격을 의심받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상사로부터 깨지는 걸 본 일이 없다. 좋은 일은 반대로 타인 앞에서 칭찬한다. 다행히 지금까지 깨진 일도 없지만, 깨지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남들 앞에서 호되게 혼난다든지 하는 걸 걱정할 일이 없다.

복장 규정이 없다.

복장 부분은 많이 자유롭다. 문화가 있어서 각자 알아서 맞추는 분위기이나 간간히 안맞추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갖고 대놓고 뭐라 하지도 않는다. 물론 간혹 특별한 경우 뒤에서 놀랐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있을 수 있다. 그런 거 생각했다면 그렇게 튀게 입지 않을 사람들이기에 이러나 저러나 뭐라 하지 않는 거 같다. 언제 한번 배꼽이 보이는 탑을 입고 온 사람이 있었다. 나와 다른 직원 한명이 그녀를 구내식당에서 보고 큰 눈을 뜨고 눈빛을 교환한 뒤 놀랐다며 한마디씩 했다.

휴가 가면 연락이 안된다.

휴가 가는 기간 중 연락이 되어야 하는 경우는 정말 특별한 거 같다. 상사들은 조금 연락이 가능한데,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연락이 될 거라고 기대해서도 안되지만, 대부분은 이 기간에 연락을 극도로 피한다. 일반 사원급에서는 연락이 대부분 되지 않는다. 회사 전화도 컴퓨터도 두고 간다. 회사 전화의 VPN이 없으면 회사 시스템 접속 자체가 안되니까 연락이 될리가 없다. 따라서 휴가 기간에는 그냥 연락을 서로 하지 않는다.

회식이 거의 없다.

일년에 네번정도 회식이 있다. 두번은 팀빌딩 같은 걸로 세미나 같은 거 하고나서 저녁 먹는 거 하고, 두번은 여름 휴가 전에 파티 한번 하고, 겨울에 크리스마스 가까워서 연말 파티 한번 하는거다. 나는 한번 직원들 초대해서 식사 같이 한 적 있는데, 그때 다들 왔던 거 제외하고는 정해진 회식 외에는 따로 소규모 회식을 해본 적이 없다.

상사와 1대1 면담이 대충 한달에 한번정도 있다.

삼십분정도 할애해서 직속 상사랑 1대1 면담을 한다. 업무 관련 팔로우업도 하고, 주제는 없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직원에게 일상의 애로사항이 있는지 등도 들어보고 한다.

사수 부사수 개념이 없다.

대부분 입사 후 1달정도 정착을 도와줄 버디를 정해주는데 회사내 일상 생활과 관련해서 알아야 할 것, 중요 규정들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지, 회사 건물 안내, 건물 안내시 다른 부서 직원들에게 새직원 소개 등을 해준다. 그거 외에 꼭 알아야하는 것은 인사팀에서 입사 전에 이미 읽어볼 규정들을 보내주기도 하고 인트라나 인트로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시스템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되어있다. 사수 부사수 개념이 없고 모두 동료들이기 때문에 물어보면 친절히 다 알려준다. “누구씨. 이런거 꼭 말로 해줘야 알아요? 그정도는 학교에서 배우고 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하는 신경질적인 말투를 들을 일이 없다.

자기 발표는 자기가 준비한다.

필요한 자료와 관련 수치는 관련 담당자에게 요청을 한다 하더라도 최종 발표자료는 발표자가 준비한다. 상사의 발표자료는 상사가 만든다. 부하직원이 만들어가면 이렇게저렇게 만들라고 수정요구를 하고 다시 수정해 가져가면 또 수정하고 하는 무한반복을 안해도 된다. 심지어 청장들도 그렇게 한다. 자기가 만들어야 자기도 발표할 때 자신있게 발표할 게 아닌가! 이런데서 오는 생산성 향상이 엄청 크다. 낭비를 제일 싫어하니까.


덴마크 사람들은 딱 계약서에 써 있는 만큼만 일하려 한다. 성장하려는 욕구가 없다. 이기적이다. 개인적이다. 등등 덴마크 사람들의 근로 문화를 두고 이를 비판하는 한국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반대로 놓고보면 우리가 “주인의식”이라는 미명하에 알아서 계약서로 합의된 이상으로 스스로를 갈아넣는 것에 너무 익숙한 거 아닌가 싶다. 실용주의가 뼛속까지 박힌 이들은 형식에 크게 얽메이지 않고 서로를 인간대 인간으로 대하며 각자 할일 하는 것에 집중하는 걸 제일 중시한다. 완벽하다는 게 아니다.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같이 단점이 따라오지 않는가. 그런 단점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나면 이 문화가 인간의 정신건강에 크게 도움이 되는 건강한 면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될 뿐이다.

덴마크에서 주당 37시간 이상 일하면 정말 안될까?

덴마크에서 주당 37시간 이상 일했더니 국제채용 및 통합청 (Styrelsen for International Rekruttering og Integration, SIRI)에서 경고 서한을 받았다며 ‘무슨 이런 천국이 있냐?’ 또는 ‘이렇면 사회가 발전을 할 수 있나?’ 등등의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그러면 정말 덴마크에서는 주당 37시간 일하면 안되나?

절대 그럴리가 없다. 주변에 주당 37시간 근무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아무도 경고를 받지 않는다.

가까이는 사기업에 다니는 남편부터 그렇다. 밀린 이메일을 처리한다고 주말에도 간간히 일하는 남편은 평일에 평균 9시간정도 근무를 한다. 주당 근로시간이 50시간 좀 안되게 일하고 그런 일상적 야근은 이미 임금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며 별도의 추가 수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휴가떄도 이메일이 쌓이면 복귀후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틈틈히 이메일을 체크한다. 연간 6주의 휴가가 제공되지만 항상 조금씩 남겨서 다음해로 이월하는데, 이렇게 이월할 수 있는 한도가 제한되어 있고, 사용하지 못한 휴가는 휴가비로 지급되지도 않는다. 예전엔 휴가비로 지급받을 수도 있었던 모양인데 요즘은 그렇게 안된다고 한다.

나는 공무원이라 조금 다른데 우리나라의 사무관에 해당하는 fuldmægtig로서 주당 37시간의 근로시간을 지킬 수 있다. 근로시간을 매일 시스템에 기록하는데, 하루 기준 7,4시간에서 어떤 날은 더 많이, 어떤 날은 더 적게 근무할 수 있다. 9시부터 2시 반 사이에만 사무실에 있으면 되고 이 시간에 앞뒤로 시간을 추가해 평균 7,4시간을 일하면 된다. 마이너스 한도와 플러스 한도가 있는데, 마이너스 한도는 이틀정도 되고 플러스 한도는 영업일로 10일 정도에 해당하는 시간이었던 거 같다. 이 한도를 넘겨 일하면 휴가를 써야 하고, 너무 바빠서 휴가를 쓸 수 없는 경우에는 승인을 받도록 한다. 이걸 flekstimer라고 해서 근로시간 시스템에서 밸런스를 보면서 알아서 자기 근로시간을 관리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나중에 직원이 이를 한꺼번에 몰아서 자기가 가고 싶은 기간에 휴가를 왕창 몰아서 써서 근무에 차질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함이 하나 있고, 상사의 권한 남용으로 직원이 과다하게 일만 하고 자기 권리인 휴가를 못쓰게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 또 하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승진을 해서 다음 직급으로 올라가면 flekstimer에 제약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쌓아놓고 날리는 flekstimer가 많다. 이 시스템은 직급이 올라가면 갈 수록 어느정도 야근은 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깔고 있는 거다. 부서장급은 flekstimer의 컨셉이 없다. 그냥 휴가 딱 쓰는게 끝이다. 그나마 공무원은 이런게 가능한데 사기업은 그렇지 않다.

우리 집 이야기 말고도 많다. 컨설턴트나 법조계 사람들은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경고서한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왜 외국인에게는 이렇게 경고 서한이 날라오는 걸까? 이건 모든 외국인에게 오는 경고서한은 아니고 근로비자로 와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따라서 외국인청(Udlændingestyrelsen)에서 비자를 받아 와 있는 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없고, 국제채용 및 통합청에서 비자를 받아 와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근로비자로 오는 사람에게는 근로시간과 급여 등 여러가지 세부정보가 국제채용통합청에 다 통보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덴마크 국내 고용시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고를 하는 것이다. 정해진 급여만 주고 과도하게 외국인 노동력을 착취하면 덴마크 노동력을 채용하지 않을테니까. 그러면 같은 급여만 준다 쳤을때 외국인을 고용하려는 인센티브가 커질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인을 다수 채용하는 기업을 대상으로는 국제채용통합청에서 관리감독을 한다. 근로 여건이 근로 계약에 부합하는지를 대상으로 말이다. 영주권을 따면 더이상 그런 경고는 받지 않는다.

덴마크 사회도 끊임없이 발전을 한다. 그래갖고 어떻게 회사가 굴러가나 싶은 제도들이 많지만 많은 기업들과 조직들이 우리나라보더 훨씬 적은 인력으로 같은 일을 수행한다. 생산성이 높은 거다. 한국처럼 일이 빨리 돌아가지 않는데! 라고 불평한다면 같은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고용인원이 훨씬 적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1인당 생산성은 높다. 그러려면 불필요한 절차를 최소화하고 핵심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런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예를 들어 공무원 조직은 민원인과 접촉하는 전화시간, 방문 시간 등이 우리보다 짧게 잡혀있어서 일하는 중간중간 오는 전화에 업무 리듬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는다. 이걸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공무원은 일을 안하나? 일찍 퇴근한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민원상담시간을 따로 정해둔 것 뿐이다.

그래서 결론은, 덴마크에서 주당 37시간 이상 일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다. 근로비자 받고 일하는 외노자 아니면…

옷으로 보는 덴마크 내 근로문화가 차이

나라마다 근로문화가 다르듯이 분야마다도 근로문화가 다르다. 나는 중앙부처 중에서도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된 감독기구에서 일하기 때문에 정권에 따라 장관이 새로 바뀐다한들 우리의 일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장관이 우리에게 일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라고 지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일을 우리에게 요청할 수 있지만, 그 결과물은 전적으로 우리가 전문적으로 판단한 결과에 따라 제출할 뿐, 정치적 색깔에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장관이 결과를 틀 수 없게 되어있다. 이러한 정치적 독립성은 업무 추진에 있어서 짧은 의사결정 채널, 명확한 업무추진방향 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큰 장점이 있다. 물론 덕분에 중앙정부기관 지방이전을 할때 다른 많은 정치적 중립 기관들처럼 외곽으로 밀려났다는 단점이 있긴하지만… (우리 부 산하에서 유일하게 우리만 이전되었다.)

옷 입는 것만 봐도 중앙부처간에 차이가 보인다. 장관이 있는 부를 보면 다들 정장을 입는다. 20-40대 속하는 남자들을 보면 마치 맞춤정장인냥 몸에 딱 붙는 정장을 입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매우 전형적이게도 하얀 셔츠에 검색 수트를 입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예기치 못하게 갑자기 장관 보고를 들어가야할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권력에 가까운 곳에 일하다 보니 보수적이어서 복장도 보수적이라고 한다.

부(Ministeriet) 아래에는 세부 정책을 담당하는 국?정도로 번역할까 싶은 Styrelse 들이 있고, 우리처럼 법령에 따라 정치적으로 독립성을 보유한 감독기구와 국가가 지분을 보유하는 국유 기업이나 기관 등이 있다. Styrelse들을 보면 복장이 조금 더 자유롭다. 중요한 회의가 있으면 복장을 조금 더 갖춰입고오기도 하고 하는데 부와는 뚜렷하게 차이를 보인다. 예전에 근무했던 경쟁소비자청은 Styrelsen 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독립성을 인정받는 부서가 일부 있어서 좀 더 자유로운 것 같았지만 그래도 스마트캐주얼 정도 되는 드레스코드가 있는 분위기였다.

우리처럼 정치적으로 독립된 기구는 또 좀 다른게, 드레스코드가 없고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린 느낌이다. 추리닝을 입고 일하는 사람이야 없지만 대학교에서 연구만 하는 너드같은 복장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꽤 된다. 정말 평상복 느낌. 외부 회의가 있어도 같은 복장이다. 부서장은 다른게 부서장들은 항상 정장이나 스마트캐주얼을 입는다. 옷은 조직간 문화의 차이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일의 수행방식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부처의 종류에 따라 드러난다.

같은 조직 내에서도 부서마다 업무의 성격 또는 상사에 따라 근로문화가 꽤나 다르다. 우리 부서는 연구부서라 끊임없이 배울 수 있는 환경이다. 학계로부터 새로운 연구방식을 꾸준히 수혈받아 그게 규제 감독에 도입될 수 있게 하는 하는 역할도 있는지라 대학교에서 일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있다. 업무 자율성이 높고, 프로젝트 호흡이 짧은 것도 있지만 일년을 넘는 단위의 프로젝트도 많아서 업무 강도가 유동적으로 변하면서 좀 바쁜 시기가 오더라도 직원이 과한 일정으로 지쳐 나가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기 좋다. 이와 함께 주제에 대한 토의/토론이 매우 장려돠는 분위기이다. 이는 옷차림에서도 드러나는데 진짜 편안한 분위기.

덕분에 나도 맨날 입는 옷만 입고 다녀서 더이상 옷을 살 필요가 없어졌다. 여성 정장용 백팩도 그냥 유니섹스 백팩으로 대체되었고, 항상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깔끔하게는 입지만 포멀하지는 않게. 구두 안신은지는 백만년된듯한 기분이고 핸드백은 그냥 아켓에서 산 나일론 카메라백 하나로 얼마를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아주 닳아서 떨어질 때까지 들고 다닐 듯.

한국 전 동료들의 정장 사진을 보면 그게 익숙해서 이상하지 않은데 지금 동료들이 정장을 입고 출근하면 무슨 일 있냐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어볼 거다. 이런 상황인지라 사무실에 빼입고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포멀한 옷은 옷장에서 썩을 정도.

공영방송 인터뷰를 한다해도 따로 옷을 더 차려 입지 않고 그냥 나서서 인터뷰를 하는 덴마크인들을 티비에서 보면서 덴마크 이주 초기 문화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니 나도 얼마나 변했는지 새삼 놀랍다.

곧 동지다.

우리가 동지를 팥죽 먹으면서 기념하는 것처럼 서양에는 크리스마스가 있다. 원래 예수의 탄신일과 무관했던 페간 전통인 동지기념일을 해당 지역 기독교 전파를 위해 예수의 탄신일처럼 이용했다는 가설이 있듯 덴마크의 크리스마스 전통은 사실 예수 탄신일 보다는 엘프, 요정 등으로 번역되는 nisse (니써/니쎄)로 가득하다. 애초에 크리스마스의 명칭은 예수의 탄신일과 상관없는 단어인 Jul (율)이다. “Det nordiske ord jul kendes også som urgamle låneord i finsk juhla ‘fest’ og det lidt senere lån joulu ‘jul’. Ligesom det vestnordiske flertalsord jól er de dermed vidnesbyrd om, at man i Norden i førkristen tid havde en festperiode, som blev kaldt jul.” – lex.dk 말그대로 축제라는 뜻의 단어이다.

엊그제부터 출근하면서 정말 어둡구나 생각했다. 날이 흐린 관계로 오전 아홉시가 되어서야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여덟시 반에 일출이 있긴 한데 정말이지 지평선 끝자락에서 떴다가 끝자락에서 지는 해는 그 밝기가 미미해서 조금이라도 흐리면 해가 어느정도 올라오기 전까지는 해가 뜬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을정도로 어둡다. 그리고 일몰도 세시 반이라 세시면 거의 깜깜해진다. 12월 들어서면서 이미 충분히 어둡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어두워지니 어두워도 너무 어둡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때 쯤이면 동지가 된다. 와우!!!! 너무 신난다!!!

내가 원할때 불을 켜고 끌 수 있는 시대에 사는 나도 동지를 이렇게 반기는데 옛사람들은 어땠을까? 동지는 정말 기쁜 날이었을거다. 가장 어두운 날, 앞으로 있을 하루하루 밝아질 날들을 기대할 수 있는 그런 날 말이다.

안그래도 어두운 겨울날을 코로나로 더욱 어둡게 보냈던 지난 2년을 마무리하고 올해는 좀 밝게 보내나 했더니 유럽에 찾아온 전쟁과 에너지위기로 그 분위기가 이전같지 않다. 에너지위기를 두차례 겪었던 세대는 그 때의 에너지 절약 습관이 몸에 배었다고 하던데, 아마 우리 세대도 이런 습관이 깊숙하게 자리잡지 않을까 싶다. (덴마크어로는 “척추에 내려앉을” 것 같다고 하는데, 뭔가 더욱 깊게 그 흔적을 남길 것 같은 표현이다.)

아무튼 곧 동지다. 연말 휴가가 다가오니 조금 더 일하고 휴가 기간을 즐겁게 보내자!

덴마크 내 한국 문화의 주류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예전과 다르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외국 식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치는 기본이고 비빔밥을 좋아한다거나 좋아하는 한식당이 있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고 김치를 퓨전으로 활용해 메뉴에 소개하는 레스토랑과 까페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방송에서도 한국 음식을 만드는 법을 소개하기도 하고. 과거와 다른 점이라면 대사관이나 기관을 중심으로 홍보하는 부스나 이벤트가 소개되는 게 아니라 현지 미디어가 기획을 해서 소개한다는 게 있다. 또 한국 문화가 단지 K팝을 좋아하는 특정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이너하지만 더이상 섭컬쳐가 아닌 주류문화처럼 떠올랐다는 게 있다.

이처럼 변화가 생긴 건 최근 몇년의 일인 것 같다. 덴마크에 왔던 초창기에만 해도 한류는 완전 남의 나라 이야기였고,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K팝 중심의 한류도 그냥 일부 십대소녀들의 팬덤 정도로 보일만한 찻잔속의 태풍이었는데 더이상은 그렇지 않다. K팝 하나로는 이처럼 한국문화가 주류의 하나로 들어서지 못했을 것 같은데, K팝과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끈 한국영화나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 한강 작가의 소설을 포함해 다양한 측면에서 한국의 위상을 올릴만한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변화를 주변 동료들도 인지하고 한국문화가 주류로 편입된 것 같다는 코멘트를 하곤 한다.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소설이 덴마크어로 출간되었고, 주요 일간지인 Berligske에서 이에 대한 좋은 평론도 실었다. 아마 이번 주말에 시부모님이 오시면 이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지 않을까 싶다. 한국사람이 늘고,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늘면 이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들이 자연스럽게 한국 홍보대사가 되기 때문에 이런 기사가 실리면 주변에 더욱 한국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한국이 잘 알려져야 나에게 좋다거나 한국의 발전이 내 발전이고 하는 등의 나의 정체성에 국가를 일치시키는 감정은 없다. 다만 우리나라가 널리 알려지면 내 배경에 대해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정도 내 배경을 타인이 자연스럽게 이해해 아주 오래된 정보를 배경으로 질문을 해오거나 하는 일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하나가 앞으로 한국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할만한 좋은 동기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고.

한국 소설을 덴마크어로 읽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한강작가의 소설도 번역되었지만 이를 읽어보진 않았는데, 이번 소설을 계기로 한국 소설도 한번 읽어보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다. Pigen fra det store hvide skib이라는 소설에서 한국전쟁 당시의 유틀란디아 병원선 내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읽으며 과거의 한국을 다른 나라 사람의 시선에서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번은 그런 건 아니지만 한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을 덴마크어로 읽는 것도 즐거운 재미를 선사할 것 같은 기대가 있다.

덴마크어 학습방법

팔꿈치 신경이 눌려서 새끼와 약지손가락에 살짝 저림이 생겨서 의사를 만나고 왔다. 팔꿈치 터널 증후군때문인데 클라이밍에서 난이도를 올리면서 내 현재 팔 인대가 감당할 이상의 부하를 준 탓인 듯 하다. 팔을 접고 옆으로 누워 자는 자세도 한몫 한 것 같고.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하는데, 저리다는데 쓰이는 표현을 søvnig라는 단어로 했는데, 약간 다른 sovende라는 단어로 표현했어야 했던 모양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졸려운”과 “자고 있는”의 차이인데 자고 있는에 해당하는 단어를 썼어야 했다. 의사가 정정을 해줘서 정확한 표현을 하나 알고 넘어가게 되었으니 하나의 수확. 아 대충 잠과 관련된 단어를 쓰는 것 같아서 søvnig로 썼는데, sovende였었냐며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진료가 끝나고 덴마크에서 산 지 얼마나 되었냐고 의사가 묻는다. 2013년 7월 말에 왔으니까 이제 9년이 좀 넘었다고 했더니, 놀랍다며, 진료하면서 보면 오랫동안 살아도 덴마크어 못하는 사람 정말 많은데 søvnig 아니었으면 몰랐을 거라고.

연극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걸 혼자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할 때 더 좋다. 그런데 의사가 말한대로 오래 산다고 해서 덴마크어를 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같이할만한 친구가 많지 않다. 발레 친구들은 발레 보는 걸 좋아하지 연극을 좋아하지는 않더라. 사실 난 덴마크어를 잘 못할때도 연극을 종종 봤는데, 배경 지식을 갖고 들어가면 그런대로 따라갈만했고, 또 그런 경험을 통해 덴마크어가 조금씩 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욱 의식적으로 그런 활동을 찾았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이해해서 온전히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다 이해하지 못할 때도 take away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괜찮다는 어프로치로 감상하면 공부도 되고 문화생활도 되니 좋지 아니한가!

내 주변에 도대체 어떻게 덴마크어를 늘려갈까 고민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아이디어로서 영감을 주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내 문화생활 파트너를 늘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사심이 가득한 글.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재미있기도 하고 스트레스받기도 하는 일이다. 이미 영어로 생활이 가능한 사람이 비영어권 국가에 살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쉽지 않다. 굳이 그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새로운 언어를 쓰고 배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더듬어가며 바보같아 보여지는 상황에 나를 던져넣고 싶지 않고 싶은 건 대부분이 느끼는 심정일 거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나를 던져 넣지 않고 책으로 영화로 말을 늘린다는 건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 능독적 활용 없이 수동적 인풋만을 활용하는 학습만으로는 능동적 활용능력과 수동적 활용능력의 갭이 갈수록 커져서 능동적 활용을 오히려 꺼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덴마크어처럼 빠르게 말하고 우리 기준에서 매우 미묘한 차이를 가진 다수의 모음 음가를 지닌 언어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능동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경우 자신의 어휘와 독해 능력 대비 타인이 내 말을 알아듣게 하거나 내가 타인의 말을 알아듣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크게 떨어지게 되서 시간이 갈 수록 자신감을 잃게 된다. 내가 쓴 시간에 비해 나아지는 게 크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 특히 자신감을 잃게 된다.

성인이 되어 비영어권에 나와 언어를 배워야 되는 상황이라 하면 어떻게 하는 게 빨리 배우는 방법이 될까?

우선 일상에서 그 언어를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 상대가 답답해서 영어로 전환하더라도, “내가 덴마크어를 배워야 돼서 덴마크어로 대화를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최대한 덴마크어로 하고 싶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거나 표현이 안되면 그때 영어로 일부 이야기하겠다.”라고 표현하면 여태까지 딱 한명 빼고는 다 기꺼이 덴마크어로 응대해줬다. 덴마크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바로. 음식을 주문하는데 필요한 표현, 상점에서 물건을 살때 가격을 묻고, 물건의 위치를 묻고, 결제 방법에 대한 대화 등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른 대화 표현을 학원에서 배웠으니 그걸 바로 써보는 것이었다. 당연히 일상 생활에서는 예상치못한 추가 질문이 따라오기도 하고 그를 이해하지 못해서 재차 물어보다가 이해 안되서 영어로 바꾸게 되는 일도 있고, 실수를 해서 엉뚱한 결과가 생기기도 했다. 그런 에피소드들은 일련의 대화를 더욱 쉽게 기억하도록 한다. 실수했던 일이야 말로 잘 기억이 나게 되서 다음에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수준보다 조금 어려운 것이라서 처음 한 챕터 정도는 내가 마주하는 단어의 10% 정도를 사전에서 찾아야 하는 책 정도가 좋다. 소설이든 뭐든 대부분 어떤 주제나 장르상의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같은 단어가 여러번 나오게 된다. 단어장을 만들어서 그냥 그 단어를 찾은 결과를 적어내려가면서 읽다보면, 동사와 같이 문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어중에서 자꾸 기억이 안나 여러번 사전을 찾아야 하는 단어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걸 왜 기억 못하지 하는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그냥 여러번 단어장에 기록을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타이밍에는 기억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처음엔 사전찾느라 정신없던 챕터 두어개가 지나고, 슬슬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구간이 나온다. 책 한권을 다 끝내지 못해도 좋다. 그렇게 몇 챕터 읽고 다른 책을 또 읽고 하다보면 작가별로 다른 어휘나 문장의 사용형태에 노출이 되면서 어휘와 표현을 늘릴 수 있게 된다.

책이 지겹거나 공부하기 싫을 땐 영화나 티비 트라마, 리얼리티쇼,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별로 내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보면 된다. 자막 띄워 놓고 다 이해한다는 목표 의식은 옆에 접어 두고 즐기면서 보되, 반복되는 모르는 단어때문에 이해에 방해가 된다 싶은 건 사전을 찾아보면서 본다. 시간이 흐른 후에 실력이 조금 더 늘었다 싶을 때 또 한번 본다. 그러면 그 전보다 더 많이 들리고, 더 많이 이해된다.

영상의 경우 음성보다 영상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더 많은 음성 노출을 위해서는 라디오나 팟캐스트를 이용하는 것이 아주 좋다. 전적으로 음성에 의존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압도적인 양의 노출이 가능하다. 그리고 뭔가 읽으면서 해독할 수 있는 보조 매체가 없기 때문에 귀의 민감성이 고조된다. 쉐도윙을 하면서 굳이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따라 말하며 듣기도 하고, 굵직한 내용을 중심으로 따라가면서 관련 어휘들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대부분 주제에 따라 반복되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그 단어를 모르더라도 소리를 따라할 수 있고, 그게 워낙 중요한 단어의 경우 소리 비슷하게 구글 검색해보면 오타가 나더라도 비슷한 추천단어 검색결과를 볼 수 있고, 매체의 프로그램 소개 내용을 통해 관련 내용을 검색해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관련된 글 등을 찾아 읽어보면 음성으로 들었지만 정확히 뭔지 몰랐던 단어를 눈으로 마주했을 때, ‘아, 이건가?’하는 생각과 함께 사전을 찾아볼 수 있고, 그 궁금증이 해소되었을 때 경험이 그 단어를 보다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연극을 보는 것은 영상과 또 다르다. 중간에 멈추고 사전을 찾아볼 수 없지만, 영상보다 또박또박한 발음을 들을 수 있다. 발성에 있어서 전문가인 배우들이 나와서 공연을 하기 때문이다. 미리 내용을 학습하고 가서 볼 경우 그걸 토대로 상당 부분 따라갈 수 있다.

잘 이해될 수 있을 때쯤 봐야지, 들어야지, 경험해야지, 말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반대로 보고, 듣고, 경험하고, 말해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조언하고 싶다. 순서가 반대다. 공을 어떻게 차야하고 다루는 지에 대해 정말 잘 설명한 책을 자세히 읽는다 해도 축구를 직접 해서 몸에 익히지 않고서는 그 책에 기술된 내용을 다 이해할 수도 없고 그렇게 다 기술된 책을 찾을 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완벽하지 않게라도 일상생활을 덴마크어로 완전히 전환하는데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다. 학업이 영어로 이뤄졌기에 전문적 영역에서의 덴마크어 전환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상황에 던져져서야 이뤄졌으니 정확히는 4년이 걸렸다고 할 수 있겠다. 어렵게 이력서를 써서 제출했기에 가능할지 어쩔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작되었던 직장에서의 첫 한두달은 업무시간의 40%를 사전 찾는데 쓴 것 같다. 법전이며, 공문서, 리포트 등 읽을 게 태산이었는데다가 보고서를 쓰면서 정확한 표현을 쓰기위해 사전에 크게 의존해야했기 때문이다. 중간에 스트레스로 10개월 정도 쉬었던 기간에 다양한 텍스트를 읽고, 학원에 다시 나가 조금 더 인텐시브하게 공부한게 한단계 언어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어 다음으로 덴마크어가 편하다. 어휘는 덴마크어가 영어보다 부족할지언정 듣기능력에서는 덴마크어가 더 낫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실생활의 표현에 있어서 덴마크어 표현력과 이해력이 영어의 그것보다 낫다. 아무래도 영어 공부를 예전처럼 안하기도 하고 영어로 된 영화나 티비 시리즈를 안보는 이유가 한 몫 하는 거 같다.

오늘은 영어로 하고 다음에 덴마크어로 해야지, 덜 중요한 것일때 덴마크어로 해야지, 이런 마음은 옆에 고이 접어두고 이 말 빼고는 못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할 때 언어가 는다. 원래 쉬운 길이 있으면 그리로 가게 되어 있다. 그 두 길 다 가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 길은 공사중으로 닫아두고 언젠가는 가야 할 길로 지금 당장 가자. 훨씬 더 빠르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낯선이들 속에서 오롯이 나로 자유로이 서기

처음이었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네트워킹을 하고 코스를 듣고 내 의견을 말하고 질문을 하고 내 소개를 하고 하는 과정 속에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가를 생각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말한 것 말이다. 나에게 향했던 내 내부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타인의 발언을 들을 때 그에 100% 집중해 경청하니 상대방이 더 잘보이기 시작했다. 내 결점에 집중하고 그걸 타인이 어떻게 볼까 걱정하느라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모습이.

언어가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내 머리속에 자리한 번잡한 생각이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한 것이었다. 테크니컬한 내용의 강의와 토의를 따라가고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내 덴마크어가 부족할까봐 미리 변호하거나 하는 일이 필요없었다. 조금씩 실수하거나 그러면 또 어떠한가. 우리말하면서도 실수 할 수 있는 건데. 저녁 식사하다가 문화간 차이 이야기가 나와서 덴마크 이주시 경험을 이야기하니 언제 왔냐고, 이민온 지 몰랐다고 하는 거보면 작은 실수는 그냥 나만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있던 거였던 거 같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건 틀려도 괜찮다는 걸 배웠다는 거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다른 동료가 있고, 나는 그 자리를 메울 다른 것을 갖고 있으며, 나는 계속 배워가고 계속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저런 사람인데… 이런 생각으로 걱정하거나 나를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고 그래서 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나다. 이 말이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새롭게 와닿은 순간 이게 정말 나를 자유롭게 하는 말임을 알았다. 나를 어떤 말로 정의할 수가 없고 나는 그냥 내 생각과 행위, 선호, 가치관 등으로 구성된 사람이고 이는 내가 내리는 일련의 결정과 행위로 끊임없이 변하는 동태적인 유기체이기에 나를 어떤 말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나는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가치관과 선호, 정보를 토대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거다. 정보가 추가되거나 가치관이나 선호가 바뀌면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고. 타인이 나를 좋아하건 안하건 나는 나이고 타인의 평가는 나의 어느 일면만을 갖고 평가하는 것이기에 필요한 오해가 있으면 풀고, 그게 아니면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 하고 넘어가는 거다. 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오늘은 스스로에게 정말 칭찬해줄 날이다. 내가 낯선이들 사이에서 나로서 자유롭게 오롯이 선 날이기 때문이다. 잘 했어!

나이들어간다는 것

내 대학교 3,4학년 시절의 큰 비중을 채웠던 경영학회 GMT. 지도교수이셨던 박영렬 교수님이 퇴임을 하신다고 홈커밍데이 겸 퇴임 축하를 한다고 참석여부를 확인하는 메일을 받았다. 어느새 박교수님이 퇴임을 하실때가 되었구나. 아… 내 흰머리가 늘고 내 남편, 부모님, 시부모님의 나이듦을 보고 느낀 것과 또다른 형태로 세월의 흐름을 체감했다.

근 1~2년 새 유독 내 신체나이가 들어감을 느끼고 있다. 피부의 탄력이 예전같지 않고 머리카락을 좀 들춰 뒤적거려야 몇 개 찾을 수 있던 흰머리가 표면으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이미 라인에도 몇가닥 새싹처럼 올라와서 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피부에 상채기라도 나면 예전엔 그냥 둬도 낫던 것이 이제는 소독약 없이는 덧나서 낫는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안경 없으면 피곤했지만 그래도 벗고 생활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안경 안쓰면 안그래도 짧은 팔을 길게 뻗어 미간을 찌푸려봐야나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있다. 저녁 약속에 좀 이쁘게 한다고 안경 벗고 나가면 메뉴를 보느라 고생을 하니 오래지 않아 안경은 두고 다닐 수 있는 물품에서 제외될 모양이다. 몸의 근력이나 그런 걸로만 보면 내 인생에 유래없이 강한 시기이지만, 조금만 잘못 쓰면 인대나 관절 등에서 신호를 보내온다. 물론 덕분에 관절을 정확한 방향으로 쓰는 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게 되었으니 꼭 나쁜것만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을 보면 각각 커리어의 정점을 달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영 동떨어진 비영어권 환경에서 살며 대학원 공부를 다시해 새로운 커리어로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일을 시작했으니 정말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다. 나이에 상관없이 (나이가 아주 많았다면 상관없지 않았겠지만) 이렇게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해 젊은 동료들과 같이 일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뭐 아주 젊은 동료들도 아니기도 한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를 놀라게 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분야의 바다에서 지적 호기심을 갖고 뭔가를 파는 일이 적어졌는데, 일이 나를 새로운 분야로 던지곤 하면 그제서 또 이를 배우느라 헤메기도 하고 가슴이 뛰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되려 젊어짐을 느끼곤 한다. 그런 면에서 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거의 이십년이 흘러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파고 있는 지금, 감사함을 느낀다. 다시금 삼각함수를 파고, 전기공학과 관련된 이론을 보고, 이제사 왜 수학과 물리 등이 중요한지 또한번 느끼는데 옛날 이걸 왜 배우는지 알았더라면 더 재미있게 배웠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어감과 내 익숙한 영역에서의 활동기간이 함께 길어지면 두려움이 늘어나는데, 이를 깨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다보면 그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시선 속 나,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관계를 보느라 끊임없이 나를 중심으로 보던 시선을 밖으로 돌릴 수 있게 되고 나니 새로움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를 내던질 수 있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변화는 분명히 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구분할 것 없이 말이다. 하지만 두가지 모두 그 변화 속에서 젊음을 챙길 수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느낄 수 있는 수평적인 사회에서 살며 더욱 자유롭게 새로움을 탐색할 수 있다는 건 그런 점에서 축복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