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9일

선반이 떨어지는 사고

특별한 아침이다. 간밤에 부엌에 있던 선반이 떨어지며 그 위에 올려두었던 냄비며 식자재들이 바닥에 다 내동그라졌다. 요즘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크게 놀라서 깬 뒤라 다시금 영 잠이 들지를 안았다. 와장창창. 댕그렁 쨍그렁. 요란한 소리에 크게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며 깼다. 요란한 소리와 비명 사이의 찰나에 스치고 지나간 상상에 마음을 여전히 조이고 있었다. 하나가 우리 모르는 사이에 부엌에 들어가서 뭔가를 만지다 도미노처럼 물건들이 떨어졌나? 하나를 덥쳤을까? 벌떡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달려가 불을 키고 나니, 울거나 다친 하나는 없었고, 그냥 물건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있었다. 열어논 창문에 바람이 들이닥쳤나? 이건 어디서 떨어진거지? 잠이 덜 깬 몽롱한 상태라 단박에 상황이 판단이 서지 않았는데, 남편이 ”저 위에 밀가루랑 설탕단지를 안올려놔서 정말 다행이야!”라며 웃는 것이다. 올려다보니 반쯤 떨어진 선반이 대롱대롱 벽에 매달려 있었다. 드릴로 뜷은 구멍에서 선반을 고정하는 나사가 빠지지 않도록 잡아줘야하는 플라스틱 조각들이 어떤 이유였던간에 밖으로 흘러나왔던거다. 아래쪽 나사는 아직 버티고 있고, 위쪽 나사는 다 빠져있어서 벽에서 우선 선반부터 빼냈다.

사실 짜증이 날 법 한 일이었는데, 하나가 안다쳤다는 사실, 남편이 무겁고 위험한 것 올려두지 말라해서 그런 것들은 다 내려돈 덕에 설탕 및 밀가루를 청소하느라 씨름할 일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어이도 없기도 해서 너털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들어가서 다시금 잠을 청했는데, 통 잠을 잘 수 없었다. 간신히 잠이 다시 들 무렵, 하나가 악몽이라도 꾼 듯 다급히 나를 불렀다. 가보니 깨진 않았고, 무서운 꿈을 꾸다가 잠꼬대를 한 것 같았다. 땀에 흠뻑 젖은 아이를 쓰다듬으며, ”그냥 꿈이야, 진짜가 아니야.”란 말을 수 차례 반복한 후 발로 걷어차 침대 한켠에 뭉쳐진 이불을 끌어다가 아이의 몸에 덮어주었다.

이렇게 새벽을 요란하게 보낸 터라 아침이 그닥 상쾌하지 않았다. 침대에서 몸을 간신히 일으켰고, 난장판이 되어있는 부엌부터 정리해야했다. 아이의 도시락도 싸야 하는데… 빠듯하긴 해도 안될 일은 아니겠지 했는데, 거실에서 남편과 애가 씨름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다. 뭐 하나 틀어지면 저리 가라고 외치며 짜증을 있는대로 부리는 거다. 애가 훌쩍 큰다는 원더윅스가 예전처럼 심한 형태로 오지는 않지만, 간간히 말을 덜 듣거나, 짜증을 쉽게 또 많이 부리는 시기는 여전히, 종종 찾아오곤 한다.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인 것 같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이런 때 예전같이 짜증이 안난다는 점이다. 그냥 그러려니 한달까? 그냥 원래 애들은 그런거다 하고 마음을 내려놓으면서 많이 수월해졌다.

친구의 이혼

오늘은 내 마음 속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친구의 이혼 판결이 내려진 날이기도 하다. 이혼소송이라는 게 이렇게 질질 끄는 일인 지 몰랐는데, 새로운 출발을 하기 전 이렇게 진을 빼다니… 하는 마음이 반, 그래도 원하던 이혼 판결이 잘 나와줘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반이다. 이럴 때는 덴마크의 이혼절차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애가 없을 경우 온라인에 접속해 이혼 신고를 하면 바로 가능하고, 애가 있을 경우, 이혼에 대한 이견이 있을지라도 6개월의 숙려기간동안 혼인 파탄의 상황이 지속되면 그냥 이혼을 하게끔 해주는 절차가 깔끔하다. 그나마 6개월은 새로 생긴 조건이다. 이미 부부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싶으면 6개월도 길다 느껴진다.

아이들도 부모의 관계가 결혼상태가 유지되는 것도, 이혼한 것도 아닌 불확실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보다 훨씬 안정된 틀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조건을 받아들이는 게 정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건강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아이들의 아빠도 아이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대신 면접교섭을 하는 기간 중에 자신을 더 많이 내어주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흠뻑 적셔줄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길 바란다. 아이들 뿐 아니라 지금과 미래의 자신을 위해서.

하나도 요즘 부모의 이혼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부쩍 가지기 시작했다. 유치원 친구들 중 이혼한 부모의 집을 돌며 사는 삶의 형태에 인지를 하면서 생긴 일이다. 얼마전 유치원에서, 아이들 하나하나가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혼자 찾아서 유치원 선생님과 반 친구들을 다 대동하고 집으로 간 뒤, 집 대문 앞에서 독사진을 찍어 오는 투어를 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인쇄해 유치원 벽에 붙인 큰 동네 지도에 콜라주처럼 붙이는 미술 프로젝트를 했는데, 몇 명은 집이 둘이라는 게 특별하게 다가온 것 같다. 그걸 여러 번 물어봤으니까. 게다가 마침 그 이혼한 가정 중 하나에 하나의 가까운 친구도 해당되었는데, 친구가 엄마와 아빠의 아파트를 돌아가며 살고, 다같이 만나서 식사도 하고, 여름 휴가 중 짧은 기간이라도 시간을 같이 보내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이혼이 뭔가 즐겁고 신나는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사실 그냥 부모가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이혼을 하고 아이도 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걸 오히려 즐겁고 신나게 느낄 수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은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 혹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 부모의 이혼은 힘든 일일 수 있기에 그걸 마냥 즐겁고 신나는 일이라 인식하게 둘 수도 없어서 그걸 어떻게 중립적으로 설명하나 고민이 많이 된다. 이혼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면 그것도 잘못된 일이고.

며칠 전에는 집에 와서 나에게 엄마랑 아빠는 이혼했다고 역할놀이를 하자는 거다. 그래서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면 같이 못사는 데 좋아?”라고 물어보니, ”엄마랑 엄마 집에서 며칠 같이 살고 또 아빠랑 아빠 집에서 며칠 같이 살면 되지.”라는 거다. 아. 이런 관점에서 신나는 일인 거구나 싶었다. ”이혼은 엄마나 아빠 중 한명이 상대방을, 또는 두명 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는 거야. 엄마랑 아빠는 계속 사랑해서 이혼 안할 거고.”라고 말해주긴 했는데 앞으로 한동안 이혼은 아이에게 중요한 토픽이 될 것 같다. 이혼이 나쁜 게 아니고, 필요할 땐 꼭 해야하는 것이지만, 이혼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일이기에 그걸 쉽게, 재미삼아 주제로 삼을 건 아니라는 걸 아이에게 잘 설명하는 게 나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40개월의 하나

키는 95센티미터 정도, 몸무게 15킬로그램. 나이 대비 매우 평균적인 아이이다. 머리크기는 잊었지만 이또한 평균. 먹는 것은 덴마크에서 한국 식생활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식탐이 없고 그렇다고 적게 먹는 것도 아니다. 신체적 성장의 면에 있어서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는 평균을 유지하고 있다.

사회성이 탁웚하다. 모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고 자기를 소개하고 상대에 대해 질문한다. 이름을 외우는 것을 좋아하고 이름을 포함해 대화를 통해 습득한 정보를 대화에 적극 활용한다. 타인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상호작용에 관심이 많아 상대가 무시하고 갈 경우 다소 상심도 하고 주변 어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왜 상대가 자기를 무시했을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다행히도 그런 일을 훌훌 터는 걸 잘 한다. 주변의 친구와 어른에게 포옹 등 신체적 접촉을 통해 친밀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와 같이 노는 걸 좋아하지만 아쉬움이 없이 잘 놀기 때문인지 헤어짐은 우는 것 없이 흔쾌히 받아들인다.

놀이를 잘 만든다. 상상력이 풍부해서 이러저러한 놀이를 잘 만들고 친구들을 놀이에 끌어들이는 것을 잘 한다. 장난감이나 사물을 본연의 모습이나 기능과 달리 사용하는데서 창의적임을 느낄 수 있다. 잠에서 혼자놀 때는 인형에 역할을 부여해 혼자 대화를 주고받는 역할 놀이를 많이 한다. 상황에 따라 부여하는 이름이 세트로 나뉘어있고 그 세트가 매우 다양하다. 사자 가족일 땐 엄마사자, 아마사지, 아기사자 이름이 뭐뭐고 고양이 가족일 땐 그게 또 다르고 그냥 아기일 땐 뭐고. 너무 많아서 이제는 내가 다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다.

노래는 좋아하지만 음정은 좋은 것 같지 않고 미술을 좋아하나 그건 내가 잘 모르겠다. 그냥 특별할 것 없이 그 나이 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정도인 것 같다.

숫자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냥 일부터 이십까지 세는 것 정도가 일상적으로 쓰게 되는 전부이고 시간에 대한 관념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매일 아빠가 읽어주던 라임책 덕에 두돌때 알파벳은 이미 읽을 수 있었지만 글자를 일고 싶어하는 욕구를 드러낸다거나 그런 건 보이지 않는다. 책은 좋아하는 것 같은 게 간혹 문닫고 조용히 있을 때면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고 집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덴마크어는 또래 애들중에서 뛰어나다. 발달 정기검진에서도 언어나 신체조절능력이 많은 부분에서 평균보다 1년정도 빠른 것 같다고 나왔는데 실제 보육원에서 다른 아이들을 만날 때 느끼는 것도 비슷하다. 어려서부터 발음도 좋았어서 타인과 의사소통이 어려서부터 쉬웠다. 아무래도 공갈젖꼭지를 물리지 않은 것도 발음이 일찌기 좋았던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오래 문 애들의 경우 이가 완전히 물리지 않아 발음이 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덴마크어가 뛰어난 것에 비해 내 노력의 부족탓인지 한국어는 부진하다. 요즘 좀 한국어 사용을 내가 늘리면서부터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자기도 자기 한국어가 뛰어나지 않은 건 잘 알고 있고 내 덴마크어가 완벽하지 않은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따금 다른 아이들 이름 발음을 교정해주기도 하고 문법을 교정해주는 것도 있다. 덴마크어애는 부정의문문에 긍정으로 답할 때는 Yes에 해당하는 ja를 jo로 바꿔 답해야 한다. 간혹 내가 그냥 이에 ja라고 하거나 실수로 ja라고 해야할 경우에 jo라고 답하면 정정해준다. 그리고 엄마 덴마크어는 나쁘지 않아 라고 이야기해주는 걸 보면 내 덴마크어가 모국어가 아님을 자기가 느낀다는 거다. 요즘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갖고 와서 한국어로 읽어달라고 한다. 이해를 다는 못할 텐데 열심히 듣고 질문하는 거 보면 기특도 하다. 주도적 한국어발화는 많이 제한적이고 주로 내 요구에 의해 한국어를 말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다. 생활속 레퍼런스가 떨어지는 게 한국어 실력 향상에 걸림돌이 된다.

성별 구분에 일찌기 관심을 가졌다. 여자, 남자 이렇게. 누가 가르친 게 아닌데 소방관처럼 그 끝이 영어로 하면 man으로 끝나는 단어일 경우 성별에 따라 자기가 단어를 변형해 woman에 해당하는 단어로 대체해 쓴다. 어느날 플레이데이트에서 애가 그렇게 단어를 쓰니 상대방 아이가 하나가 말한 게 맞는건가 싶어하며 다소 혼란스러워했는데 그 엄마 왈, 그런 거 내가 가르친 거냐 한다. 그런거 아니고 자기가 그냥 그런다고 했는데, 그 아이를 보면 남자냐 여자냐를 그렇게 따지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누가 시킨 게 아닌데 원피스, 공주, 악세사리 이런 거 엄청 좋아한다. 내가 그런 것도 아니고, 애한테 일찌기 중성적인 옷을 많이 입혀온 나인데.

운동기능이 뛰어나다. 체력 단련이 일상화된 게 우리집 발레바를 무슨 철봉처럼 메달리는데 쓴다. 매일. 팔다리, 코어가 모두 아주 단단하다. 봉을 타고 약간이나마 올라갈 정도니. 뛰어다니는 자세에 있어서도 어린 아이같은 어색함은 완전히 없어졌다.기어 올라가고 내려오고 높이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다. 자기가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아기용 그네 같은 경우는 하늘높이 밀어도 두려움이 없으니 말이다. 그건 아주 어려서부터 그네를 태운 탓인 것 같긴 하다. 옌스가 애를 이래저래 많이 훈련을 시키는 것도 있어서 발달이 빠른 것 같다. 요즘은 두발자전거와 외줄타기도 연습중이다.

기저귀는 코로나 재택근무를 계기로 떼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편할수가. 여기는 대충 세돌 근처에 자연스럽게 떼는데 서너번 실수하고 더이상은 실수하지 않고있다. 밤엔 그냥 기저귀를 채우는데 거의 마른 기저귀가 대부분이다. 마르지 않은 경우 아침에 깬 이후에 눟는 경우가 주인 것 같다

예전에 지도교수가 세돌 반 지나면 거의 다 키운 거라더니 진짜 거의 그런 것 같다. 밥도 예전보다 덜 흘리고 먹고, 원하는 건 다 의사표현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해 해결하니까. 둘째를 낳을 생각은 없지만 이쯤 수월해지니 내가 한 5년정도 젊었으면 힘들었던 기억 이쯤에선 다 잊고 하나 더 낳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나이에는 우리 둘 다 하나로 족하다. 조카가 남자 사촌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옌스가 꿈 깨라고 말해줬다. 하나면 족하지 아무렴.

38개월 하나

자기는 대놓고 한국어 잘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하나. 덴마크어만 아주 잘 하고 발음도 이 또래 애 같지 않게 또박또박 잘한다. 한국어와 덴마크어 간에 격차가 엄청 크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주어진 범위 안에서 노력하는 수밖에.

요즘은 역할놀이에 꽂혔다. 역할에 따라 이름이 바뀌고 나도 그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부여가 된다. 나는 잘 기억하는데, 옌스는 너무 역할이 다양해서 자긴 기억 못하겠다고 한다. 사람과 하는 역할놀이도 있지만 인형들에게 역할을 나눠준 뒤 혼자 다인역할을 하며 놀기도 한다.

프로즌과 라이온킹을 본 후 부모의 죽음이나 자녀의 독립 등에 대해 처음으로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나가 태어나기 전에 옌스와 같이 간 곳에 하나와 처음으로 같이가다가 내가 길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더니 자기는 어디에 있었냐 묻는거다. 아직 너는 세상에 없었다 하니 자기를 혼자 어디에 두고 둘만 다녀왔는가 싶었는지 자기 두고 떠나면 안된다고 서럽게 울더라. 그러고 나서 덧붙이길 자기는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네로 비행기 타고 갈거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기를 잘 보살펴 주셔서 다시 행복해 질 거라고. 여기서 빵 터졌다.

사회성이 엄청 좋다. 동네에서 덕분에 아는 사람이 늘었다. 어찌나 인사성이 좋은지. 코로나 때문에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해야하는지라 목청 높여 대화를 시도한다. 간혹 그냥 무시하고 가는 어른들도 있는데, 그럴 땐 자기랑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서운해하기도 하고.

우리 집에 반절이 옷걸이로 사용되는 발레바가 있는데 나머지 반절은 하나의 철봉으로 사용된다 나는 옷걸이가 걸린 쪽을 발레바로 쓰고. 어찌나 힘이 좋은지. 매일 엄청 자주, 또 오래 매달린다. 복근이 덕분에 장난이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표정이 엄청 풍부하다. 또렷하고. 이녀석 나중에 뭘 할런지.

떼를 쓸 때는 또 엄청나다. 음… 시부모님도 하나 보시더니 보통이 아니라며 첫째 조카랑 비슷한 것 같다 하시는데… 평소에는 참 수월한 아이지만 한번 성깔을 부릴 땐 정말 대단하다. 흠…

모두가 자기 새끼 다 이뻐하듯이 우리 눈에 세상에서 제일 이쁘고 사랑스러운 하나. 계속 이렇게만 자라주면 정말 더 바랄게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