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

호사다마라는 말을 믿는 건 아니다. 오히려 호사다마라는 말을 알기에 좋은 일이 많은 중에는 안좋은 일들을 조금 더 크게 포착하고 인지하게 되어 마치 마가 낀 것 같이 느껴지는 것 뿐이라 생각한다. 요즘 사사로운 사건 사고가 많다. 2021년, 원하던 집도 사고, 하나 유치원 옮기는 일도 수월하게 되고, 직장도 잡는 등 굵직하게 좋은 일들이 있어서 작은 사건 사고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 같다.

고기를 오븐에 굽다가 온도계를 너무 깊게 꼽아 온도 측정이 잘못되고 있음을 발견했는데, 그걸 뺀다는 게 220도의 달궈진 오븐 안에 오래 있던 금속침을 맨손으로 뽑아서 손 끝을 데었다. 뜨거우니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만으로 빨리 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예전에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냉동고가 없는 작은 냉장고에 넣어두시며, 조금 이따가 꺼내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었던 걸 갖고 두고두고 웃은 적이 있었는데, 딱 그런 생각을 한 것이었다. 나 스스로 두고두고 웃을 이야기다. 아무튼 기름처럼 손에 들러붙는 종류의 것에 덴 게 아니라 빨리 찬물에 담그고 나니 그런대로 심하진 않은 것 같았다. 물집도 잡히진 않았고. 요리할 것들이 있어서 중간중간 아픈게 심해지면 잠시 손가락을 찬물에 담그면서 요리를 했다. 우습게 본 화상이 요리를 하는 와중에 진행이 조금 더 되어 신경도 화상을 입었는지 하루정도 손가락으로 뭔갈 건드리면 바늘로 깊게 쑤시는 듯한 감각을 맛봤다. 말초신경의 위력을 느꼈달까.

그게 다 나을 때 즈음해 샐러드를 칼과 손가락을 이용해 뚝뚝 끊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손가락을 베었다. 칼과 맞닿는 손가락만 조심하다가 뭔가 딴 생각을 했는지 샐러드를 잡고 있던 반대편 손가락을 쑥 베어버렸다. 화상을 입었던 바로 그 손가락. 큰 살점이 뚝 떨어져 덜렁거리는데 너무 소름끼치게 아파서 소리도 안나오고 “하악…”하는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마시고 서둘러 지혈을 했다. 옛날에 아빠가 인도에서 손을 크게 베이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잘 하지 못한 지혈을 남자 간호사가 엄청난 힘으로 1분만에 지혈한 기억이 났다. 얼마나 꾹 눌러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내 손이기도 하고, 정확히 어디가 아픈 건지 아니까 온 힘을 다해 지혈을 했다. 다행이 한끝이나마 붙어있는 살점을 뚜껑 삼아 누르는데, 1분이 지나서 한번 보면 꼭 한쪽 어디선가 피가 흘러 새어나오는거다. 무엇보다도 온 몸을 관통하며 떨게 하는 통증이 새로웠다. 우선 지혈이 어느정도 된 후에는 진통제부터 먹었다. 만 하루동안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손이 욱신거리고 시큰거릴 정도로 아팠으니 칼로 이렇게 베어본 건 처음인 것 같다. 만 이틀이 지난 지금은 닿으면 아픈 정도니까 많이 회복된 것 같다.

좀 강력한 진통제로 코디마오뉠이라는 걸 먹었는데, 10%이상이 경험하는 부작용을 겪어 그날 저녁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고생까지 했으니 정말 여러모로 고생한 날이었다.

요즘 내가 부주의해졌나보다. 그래서 사소한데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 같다. 아마 큰 일에 집중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쓰고 나서 그런 거 같다. 좀 조심해야지. 어쩌면 그래서 호사다마라는 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큰 일을 치르고 나면 마음이 탁 풀어져서 부주의해지다보니 이런 저런 사고가 많이 나니 주의하라고.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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