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양면

덴마크 남자 만나서 결혼해서 덴마크에서 사니 좋겠다는 이야기를 간혹 듣는다. 시월드 없어서 얼마나 좋겠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다른 나라에 사는 일은 내 나라를 반납하고 그 나라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최악의 상황은 내가 내 나라의 문화와 환경과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내가 살아야 하는 나라의 그것들을 너무 안좋아하는 경우일 거다. 최고의 상황은 내가 내 나라의 것을 안좋아하고 상대의 것을 좋아하는 경우일 거다. 그렇지만 이런 극단의 상황은 잘 없다. 대부분 자기 나라 것의 일부는 좋아하고 일부는 싫어하고 다른 나라 것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렇지만 이민이라는 건 그런 내 일부에 대한 선호를 반영해 취사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나라에 사는 이상 받아들여야 하는 규범이나 제도, 생활 여건 등이 존재한다. 내가 싫다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바뀌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 사는 일이라는 건 그런 거다. 그 나라의 것들을 좋든 싫든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하는 것. 그 나라의 싫은 것을 보며 내 나라의 대체제를 그리워하며 한탄을 한 들 바뀌는 건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건 틀린 말이 아니다. 물론 자기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있을 거고, 피해갈 방법이 있는 것도 있겠지만 전체를 바꿀 수도 없고, 그건 너무 큰 힘이 든다.

시댁이 좋아도 친정이 멀어지고 원하는 시기에 볼 수 없으며, 친구와 가족 모두 마찬가지이다. 세금을 많이 내면서 한국에서 받지 못하는 서비스를 받는 분야도 있겠지만 납부세금대비 한국에서보다 낮은 질의 서비스를 받는 분야도 있을 테다. 또는 한국에서는 무상인 것들, 예를 들어 무상보육, 무상급식 같은 것들이 여기에서는 해당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장바구니 물가는 싸서 집에서 해먹기는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외식물가는 너무 비싸서 외식 자주하며 살기 어려울 수 있다. 공공부문의 재정건전성이 탄탄한 편이지만 공공요금이 한국에 비하지 못하게 비싸다. 내가 제대로 세금 내고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어디고 서비스 물가가 매우 비싸다. 나도 칼퇴근을 할 수 있지만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아 퇴근하고 필요한 물건 사는 일이 힘들 수 있다. 나도 갑질이 별로 안당하는 세상에서 살 수 있지만 한국 배송서비스같이 우리 구미에 싹 맞는 서비스들이 잘 없을 수 있고, 불친절하다고 매장에서 컴플레인하는 등의 소소한 갑질은 할 수 없다. 공기는 좋겠지만 겨울이 아주 길고 우울하고 비가 많이 올 수 있다. 서로 평등한 문화를 즐길 수 있겠지만, 이미 한국에서 좋은 지위를 누리던 사람에겐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 것일 수 있다.

그냥 다 가질 수 없다.

내 생각엔 그렇다. 한국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곳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고, 한국에서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곳에서도 행복할 수 없을 확률이 높다고.

내가 여기가 좋고 잘 사는 건 다행히 내가 잘 적응했기 때문이고, 이곳의 것들이 한국의 것들보다 잘 맞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들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이곳의 좋은 점 이면엔 안좋은 것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내게 중요한 것이 잘 맞는 곳이 어디냐 하면 운이 좋게 덴마크이고, 이곳에서 만난 인연과 환경이 또 운이 좋게 좋았기 때문에 잘 지내는 것이지 그냥 여기가 좋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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