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아침부터 회의준비를 하느라 바쁜데 옌스에게 문자가 왔다. 하나 보육원에서 픽업해서 집에 같이 있다고. 하나가 보육원 모래밭에서 나오면서 모래밭 담장을 넘다가 고꾸라져서 입술이 찢어졌단다. 보육원에서는 우선 상황이 생기자마자 피가 많이 나서 옌스에게 전화를 했고, 옌스가 서둘러 미팅 몇개만 캔슬하고 돌아와서 보육원에 갔다 한다. 컴퓨터는 켜지도 못했으니 하나 드롭하고 자전거 꺼내타고 회사에 가는데 15분에서 20분 걸리니, 그 사이에 생긴 일이였나보다. 대충 일이 벌어지고 20분정도만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피는 대충 멎어있었단다. 입에는 오렌지맛 아이스바를 물고서. 애를 놀래지 않게 지혈하고 통증도 경감시킬 요량으로 아이스바를 물렸다는데, 나쁘지 않은 방법인 거 같다. 우선 집에 데리고 와서 상처를 깨끗이 씻고 의사이자 세아이의 엄마인 시누이에게 페이스타임을 해보려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았단다. 그래서 치과의사셨던 시부모님도 입주변 상처에 대해서 대충 답변을 주실 거 같아 페이스타임을 해보니, 입술은 그정도 상처에 봉합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 같고 애도 전혀 이에 대한 통증을 호소하지 않으니 혹시 양치질할 때 잇몸에 부푸는 물집이 잡히는지, 치아 색깔이 변하는지 정도만 관찰하라고 하셨다. 소독약으로 소독 해주고 대충 보아하니 입술이 찢어지긴 했지만 입술 선 밖으로는 괜찮았다. 나는 다 씻기고 난 뒤를 봤으니 그런데, 옌스는 피떡이 앉은 얼굴을 봤었을터라 놀랐을 거 같다.
나도 미팅 내 발표순서를 바꿔서 내 발표를 맨 앞으로 돌리고 자리를 일찍 떴다. 옌스가 집에서 일을 할 동안 나는 하나를 데리고 밖에 유모차에 눕혀 낮잠을 재웠다. 애가 집에서는 침대에서 밤에만 자는 관계로 낮잠은 반드시 유모차에서 재우는데, 옌스가 일을 해야해서 두시반이 되도록 낮잠을 안자고 버텼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하나가 평소보다 길게 거의 두시간이 되도록 낮잠을 자고 수퍼마켓에 갔다. 가서 보육원 애들을 만나 부모들와 애들이랑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하나 반에 있는 루너라는 아이는 하나랑 비슷한 곳에 상처가 났더라. 다른 형태로 낙상사고가 있었다는데, 하루 차이로 비슷한 곳에 상처가 나다니. 우연도 참. 회사에서 애 얼굴에 상처나서 옌스랑 일 교대해주러 좀 가봐야 한다니 상사나 선임 모두 자기네 애들 경험담을 알려주면서 애들 사고는 너무 자주 일어나니 그 마음 잘 안다고 위로를 해주더라.
그런데 수퍼에서 또 만난 한 여자애를 빤히 보더니 쟤는 사라예요. 하고 이야기하는거 아닌가. 내가 모르는 보육원 친구인가 해서 걔 이름이 사라냐고 그 애 아빠에게 물어보니, 맞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 보육원 이름을 얘기하며 걔도 거기 보내냐 물어보니 아니라는 거다. 걔는 우리 하나를 모르는 듯 했다. 어떻게 알지? 싶었는데, 이 동네 살아서 여기 놀이터에서 만났나? 라는 거다. 음… 하나가 애들 이름 외우고 물건 주인 외우는 거 좋아해서 유아원으로 올라간 첫날 애들 이름을 다 외웠다며 놀랬다고 하긴 했는데 이렇게 랜덤하게도 기억할 수도 있는가 하며 팔불출 엄마처럼 놀라워했다. 마침 그 수퍼에서 하나 보육원 미술선생님도 만났는데, 하나 넘어졌을 때 바로 옆에 있었다며 하루종일 하나 괜찮았을 지 걱정했다고, 여기서 만나서 괜찮다고 듣고 나니 안심이 된다고 고맙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오히려 아이스크림도 물려주고 얼른 옌스에게 전화해주고 하루종일 신경도 쓰셨다고 해주시는게 내가 고마웠는데… 사실 내가 애를 봐도 있을 수 있는 사고인지라 보육원 탓을 할 일은 아니니 말이다.
내가 머리 빗어주고 묶어주고 나면 내 머리도 빗어주겠다, 묶어주겠다 나서고, 뭐 내가 하나만 하면 자기도 혼자 하겠다고 “Jeg skal selv prøve!” (내가 직접 해볼거예요.) 하고 말하며 나서는 것도 다 대견하고 예쁘다. 나나 옌스가 침대 옆에서 책 읽어주고 잠을 재우는데, 자기가 자기 인형 재워주겠다고 침대 옆에 앉아서 책을 집어 드는 것이 웃기고 엄마나 아빠가 낮잠을 자면 자기가 아끼는 인형과 이불을 갖고 와서 우리 위에 올려두는 것도 웃기다. 자기가 그들이 필요하듯 우리도 그들이 필요할 거라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다.
덴마크어는 말하기도 잘 하고 한국어는 듣기 중심으로만 잘하지만, 하나가 문장을 만들어 말할 때 부정어와 목적어 위치가 간혹 잘못되는 걸 보고 내가 발견한 건 한국어가 덴마크어에 영향을 주는 부분도 있다는 거다. 간식으로 싸주는 딸기 먹은 이야기를 할 때 Jeg jordbær spiste. 라며 나는 딸기 먹었다를 직역해서 말한다든지 Jeg ikke spiser 라면서 나는 안먹을거다라고 이야기하든지 말이다. 처음엔 그냥 실수라고 생각했는데, 자주 말해서 생각이 필요없는 문장은 실수를 안하고 자기가 생각해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만들 때 이런 실수를 하더라. 요즘에서야 한국어 단어도 책읽으면서 같이 한국어로 따라하며 열심히 익히지 그 전엔 내가 한국어로 읽어주면 덴마크어로 같은 이야기를 따라하곤 했다. 주언어 위에 다른 이중언어를 쌓으면 된다고 하니 그냥 별 부담없이 언어교육을 시키고 있는데 하나는 잘 할 거 같다. 요즘 과거형도 슬슬 익히기 시작하는 거 같아서 애들의 언어 발달의 신묘함에 놀래고 있다.
오늘은 이 밖에 옌스가 연출한 아주 웃기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하나랑 방에서 놀고 있는데 옌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보고 화장실로 와보라는 거다. 되게 민망하면서도 웃긴 표정을 지어서 변기가 막힌 건 아닌거 같고 뭐지? 싶어서 봤더니 변기 위 플라스틱 변좌가 깨진거다. 헐. 어쩌면 그런 일이!! 자기 엉덩이가 큰 건 알았지만 이렇게 무거웠냐면서 웃어대는데. 옌스가 예전에 날렵한 경주용 카약에 자기 엉덩이가 꽉 껴서 힘들었다고 하며 자기 엉덩이 안큰데…라길래 나보다 당신 엉덩이가 크다고 해준 적이 있었다. 키가 커서 상대적으로 작은 거 뿐이지 우리가 옆으로 누워있으면 내 골반 높이보다 당신 골반 높이가 더 높다고, 그리고 엉덩이도 그렇게 살이 없는 건 아니다 라고 해줬었는데. 흠흠. 내가 자주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거라고 말도 안되게 장난으로 우기길래, 나는 변비가 잦은 사람이라 오래는 앉아있어도 자주는 안앉아있는다, 자주 앉는 건 당신이라고 해줬다. 남의 집에서 그렇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지… 그런데 변좌는 어떻게 바꾸지? 나사를 어떻게 푸는걸까? 유튜브를 연구해봐야겠네…